세계 각국의 영화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아시아 | 한국 · 일본 · 대만 · 홍콩 · 중국 · 북한 · 몽골 · 필리핀 · 베트남 · 태국 · 말레이시아 · 인도네시아 · 싱가포르 · 인도 · 파키스탄 |
중동 | 이란 · 이스라엘 · 레바논 · 아랍에미리트 · 튀니지 | |
서유럽, 남유럽 | 영국 · 프랑스 · 네덜란드 · 벨기에 · 독일 · 이탈리아 · 스페인 · 그리스 · 튀르키예 | |
북유럽 | 스웨덴 · 노르웨이 · 핀란드 · 덴마크 · 아이슬란드 | |
동유럽 | 러시아 · 헝가리 · 체코 · 슬로바키아 · 폴란드 · 리투아니아 · 라트비아 · 에스토니아 | |
아메리카 | 미국 · 캐나다 · 멕시코 · 쿠바 · 브라질 · 아르헨티나 · 베네수엘라 · 칠레 · 콜롬비아 | |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
나이지리아 · 가나 · 호주 · 뉴질랜드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35deg, #0072ce 70%, #0072ce 80%, #000 80%, #000 90%, #fff 90%, #fff)" | ||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
<colcolor=#000><colbgcolor=#fff> 상징 | 국호 · 국기 · 국장 · 국가 |
역사 | 역사 전반 · 에스토니아 공국 · 리보니아( 리보니아 검의 형제기사단) · 러시아 제국 · 에스토니아 제1공화국 · 소련(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 |
정치·치안·사법 | 정치 전반 · 대통령 · 총리 · 입법부 · 스텐보크 하우스 | |
외교 | 외교 전반 · 발트 3국 · 유럽연합 | |
경제 |
경제 전반 · |
|
국방 | 에스토니아군 · 독립 전쟁 | |
문화 | 문화 전반 · 에스토니아 신화 · 에스토니아 요리 · 에스토니아 축구 국가대표팀 · 에스토니아 영화 · 에스토니아어 | |
지리 | 탈린 · 타르투 · 행정구역( 틀) | |
인물 | 루이스 칸 · 콘스탄틴 패츠 · 파울 케레스 · 카르멘 카스 · 케르스티 칼률라이드 · 카야 칼라스 · 알라르 카리스 | |
민족 | 에스토니아인 · 러시아계 에스토니아인 · 세투인 · 에스토니아계 러시아인 · 에스토니아계 미국인 · 리보니아인 | |
기타 | 스카이로드 · Skype · e-Residency |
Film of Estonia
기본정보 (
2018년) 출처(EFP: 유럽 영화 프로모션) |
|
인구 | 130만 명 |
순수 자국생산 장편영화 | 12편 |
관객 수 | 360만 명 |
1인당 연간 영화 관람 횟수 | 2.77회 |
자국영화 점유율 | 17.8% |
스크린 수 | 104개 |
1. 개요
에스토니아의 영화.2. 영화 시장
1인당 연간 영화 관람 횟수가 2.77회로 영국 영화 시장의 같은 숫자(2.65회)보다도 높다. 총 인구가 너무 적어서 영화 시장 발달이 미약한 게 문제.자국 영화 점유율은 2011년 5.1%에 불과했으나 서서히 성장하여 2018년 기준 17.8%까지 올라섰다.
3. 역사
3.1. 러시아 제국
1896년에 탈린에 최초로 영화가 상영되었다. 1908년 탈린에 최초로 영화관이 들어섰다.최초의 에스토니아 영화는 요한네스 페수케(Johannes Pääsuke)가 1912년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면서 시작된다. 1914년 Karujaht Pärnumaal (Bear Hunt in Pärnumaa)라는 드라마 영화가 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에스토니아에 영화 문화가 들어왔다.
3.2. 에스토니아 제1공화국( 1919년 ~ 1939년)
1919년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에스토니아는 에스토니아 제1공화국으로 독립한다.3.3. 소련 가입
1939년 8월 아돌프 히틀러와 이오시프 스탈린은 폴란드와 발트 3국, 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을 둘이서 반띵하는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는다. 독소 불가침조약에 따라 에스토니아는 1940년 소련의 붉은 군대가 쳐들어와서 1919년 독립한 지 20년 4개월만에 에스토니아는 멸망한다. 소련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발트 3국을 독립국이 아닌 러시아 제국때처럼 소련의 연방국으로 직접 편입했다.3.4. 1990년 에스토니아 독립 ~ 1990년대
1989년 동유럽 혁명의 분위기에 발트 3국은 탈린부터 빌뉴스까지 인간띠를 만들면서 노래를 부르는 " 노래 혁명"을 통해 1990년 나란히 소련으로부터 독립한다. 에스토니아는 소련에서 독립하자마자 탈린에 있는 스탈린 동상을 치우고 그 자리에 히틀러 동상을 갖다놓는[1] 반러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었다.에스토니아 영화는 이 때부터 "에스토니아" 영화로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3.5. 2000년대
2000년대에 차근히 성장하던 에스토니아 영화 시장은 대침체로 인해 큰 침체를 맞는다. 금융위기 여파에 국내 영화 제작사들이 줄도산하여 한 때 거의 명맥이 끊길 뻔했다.3.6. 2010년대
대침체 여파로 인해 자국 영화들이 줄도산하여 2011년에 5.1%까지 떨어졌던 자국 영화들은 2013년부터 에스토니아 국내 경제가 회복되면서 다시 서서히 성장하고 있다.2015년에 1944라는 에스토니아 영화가 한국에 개봉하면서 엄청난 반향을 이끌어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