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1-24 05:10:18

엄헌

진서(晉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color: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제기(帝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사마의 사마사 · 사마소(昭) 사마염
4권 「혜제기(惠帝紀)」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사마충(衷) 사마치 · 사마업 사마예 · 사마소(紹)
7권 「성제강제기(成帝康帝紀)」 8권 「목제애재폐제기(穆帝哀帝廢帝紀)」
사마연(衍) · 사마악 사마담 · 사마비 · 사마혁
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 31·32권 「후비전(后妃傳)」 ||
[ 재기(戴記) ]
||<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width=33%> 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2><width=34%>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width=33%>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
유원해 , 유화 · 유선, 유총 ,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석륵 , 석홍 · 장빈, 석계룡 ,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모용외 , 배억 · 고첨, 모용황 , 모용한 · 양유,
110권 「모용준재기(慕容儁戴記)」 111권 「모용위재기(慕容暐戴記)」
모용준 , 한항 · 이산 · 이적, 모용위 , 모용각 · 양무 · 황보진,
112권 「부홍등재기(苻洪等戴記)」 113 · 114권 「부견재기(苻堅戴記)」 115권 「부비등재기(苻丕等戴記)」
부홍 · 부건 · 부생 , 왕타, 부견 , 왕맹 · 부융 · 부랑, 부비 · 부등 , 삭반 · 서숭,
116권 「요익중등재기(姚弋仲等戴記)」 117 · 118권 「요흥재기(姚興戴記)」 119권 「요홍재기(姚泓戴記)」
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 윤위, 요홍
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800080><tablebgcolor=#800080> ||
}}} ||

嚴憲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조위 서진의 여성으로 옹주 경조군 사람. 헌(憲)은 본명이 아니고 다. 두유도(杜有道)의 아내, 아들은 두식, 딸은 두위, 사위는 부현.

정숙하며 도량이 있었고, 13세 때 두유도에게 시집가 1남 1녀를 낳았지만 18세 때 남편 두유도가 죽어 과부가 되자 홀로 어린 자녀들을 훌륭히 길러냈다. 부현이 엄헌의 딸 두위에게 계실(후처)이 되어주기를 청하자 엄헌은 바로 허락했는데, 부현은 당시 권력을 잡은 조상 일파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사람들이 이를 걱정하니 엄헌은 조상 일파는 교만해서 사마의에게 무너질 것이라 예측하고 결혼을 허락했는데 과연 그렇게 되었다.

아들 두식의 사촌형 두예가 진주자사일 때 참소를 당하자 엄헌은 두예에게 치욕을 참으면 삼공에 이른다는 속담을 인용한 서신을 보냈고, 과연 두예는 나중에 의동삼사가 되었다. 부현의 전처의 아들 부함이 6살일 때 일찍이 계모 두위를 따라서 엄헌을 만났는데, 엄헌은 부함을 천리마라고 칭찬하면서 나중에 출세할 것이라고 예측했고 여동생의 딸을 부함에게 시집보냈다. 과연 부함은 나중에 유명해졌다. 엄헌은 66세의 나이로 죽었다.

파성넷의 진서 엄헌열전 번역본에서는 마치 엄헌이 부현과 재혼한 것처럼 오역이 되어있는데 부현은 엄헌이 아니라 엄헌의 딸 두위와 결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