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0 15:15:52

러시아계 아제르바이잔인


러시아인 디아스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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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이민사3. 여담4. 목록5. 관련 문서


파일:Russian_settlers,_possibly_Molokans,_in_the_Mugan_steppe_of_Azerbaijan._Sergei_Mikhailovich_Prokudin-Gorskii.jpg
  • 19세기 아제르바이잔에 정착한 몰로칸 가정

1. 개요

러시아계 아제르바이잔인( 아제르바이잔어: Azərbaycanda ruslar;  러시아어: Русские в Азербайджане)은 아제르바이잔의 2번째 소수민족이며 2020년 러시아계 혈통이 라고 주장하는 아제르바이잔인이 135,200명으로 조사 되었다.

2. 이민사

오늘날의 아제르바이잔에 해당하는 지역은 19세기 초반 러시아 제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러시아 제국은 아제르바이잔에서 기원한 이란의 카자르 왕조와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조지아의 동부, 그리고 오늘날의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에 해당하는 지역을 획득하였다. 러시아 제국은 토지 이용이 조방적으로 이루어지는 목축 대신 집약적으로 이루어지는 농경이 세입이 높다는 이유로, 유목민들의 토지를 은근슬쩍 뺏어다 새로 이주해오는 농민들에게 나눠주는 정책을 취하곤 했는데, 이는 아제르바이잔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한 때 아르메니아인들이 극소수만 남아있던[1] 아르메니아 고원 일대에서는 러시아 제국의 암묵적인 지원 하에 이란이나 아나톨리아에서 이주해온 아르메니아인들이 정착하여 아제르바이잔계 유목민들을 몰아내고 농장을 개간하였다. 한 편 오늘날의 아제르바이잔에 해당하는 지역에는 아르메니아 고원 수준의 대대적인 인구 교체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비슷한 식민 정책이 이루어졌다. 정교회 고의식파 중에서도 이단으로 여겨져 심한 배척을 받았던 몰로칸파 신도 상당수가 19세기 초반 아제르바이잔 각지로 추방되었는데, 대신 이들에게는 아제르바이잔에서 새로 농촌 공동체를 세울 권리가 주어졌다. 물론 몰로칸파 농민들이 정착한 토지는 무주공산은 아니고 아제르바이잔인들의 목초지를 아무것도 모르는 몰로칸 농민 이주민들에게 은근슬쩍 떠넘긴 것이라 종종 아제르바이잔 유목민들과 몰로칸파 농민들 사이에 폭력 사태가 벌어지곤 했다.

파일:바쿠 오페라.webp
러시아 제국의 그저그런 변방 지대로 여겨지던 아제르바이잔은 19세기 중반 바쿠를 중심으로 대규모 유전이 개발되면서 급변했다. 알프레드 노벨 가족이 바쿠에서 일했던 일화나, 훨씬 후대 일이지만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바쿠 유정지대가 전략적 요충지로 여러 차례 언급되었던 사실에서 보듯 바쿠는 러시아 제국의 알짜배기 유전 지대로 개발되었던 것이다. 1823년에는 세계 최초의 파라핀 공장이 바쿠에 건설되었고, 1846년에는 바쿠 근교 비비헤이바트에 세계 최초의 유정이 들어섰다.

바쿠의 유전이 개발되면서 러시아 제국 각지는 물론 물론 유럽 각국의 석유 화학 기술자들이 바쿠에 체류/정착하면서 바쿠는 일종의 국제도시로 탈바꿈했다. 바쿠에는 정유업 및 석유화학공업 관련 기술자들을 위한 빌라 페트롤리아(Villa Petrolea)라는 구역이 들어서기도 했다. 바쿠의 러시아인 사회는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전까지 꾸준히 번영을 누렸다.

제1차 세계 대전 러시아 혁명 과정에서 바쿠의 러시아인 및 여타 서구인 기술자 상당수는 바쿠를 버리고 다른 도시나 국가로 피난하였다. 러시아인 기술자들은 러시아 내전이 끝나고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안정된 이후에야 바쿠로 복귀할 수 있었다. 러시아 제국 시절 아제르바이잔 현지인들이 하층민으로 천대받았던 것과 다르게,[2][3] 소련 시절에는 아제르바이잔인들에 대한 공교육이 개선되고, 차별이 줄어들면서 아제르바이잔인들의 계층 이동이 훨씬 더 활발해졌다. 아제르바이잔 현지인들이 바쿠 유전의 고급 인력 수요를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소련 내 여타 지역의 석유 화학 기술자들이 바쿠에 체류해야 할 필요가 점차 감소하였고, 이는 1970년 이후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내 러시아인 인구가 이주/감소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1970년 통계 기준 510,059명이던 아제르바이잔 내 러시아인 인구는 1989년 통계 기준 392,304명으로 감소하였다.

소련 해체와 아제르바이잔의 독립 이후 상당수의 러시아인들이 아제르바이잔을 떠나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등 다른 나라로 이민한 가운데, 일부 러시아인들은 아제르바이잔에 잔류를 결정한다. 이들 및 이들의 후손들을 오늘날 러시아계 아제르바이잔인들로 분류할 수 있다.

3. 여담

아제르바이잔의 러시아인 거주 지역 중 이바노브카라는 마을은 오늘날에도 소련 시대 콜호스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바노브카는 19세기 초반 러시아 본토에서 아제르바이잔으로 추방된 몰로칸 신도들이 세운 마을인데, 해당 마을 주민들은 오늘날에도 몰로칸파를 믿는다고 한다.

아제르바이잔인들은 절대다수가 시아파 무슬림이지만, 아제르바이잔 내에는 일부 순니파 무슬림들도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 중 적지 않은 수는 러시아 혹은 크림 반도에서 이주해온 타타르인들이다.

4. 목록

  • 아나톨리 바니솁스키
  • 니콜라이 바이바코프
  • 가리 카스파로프
  • 블라디미르 마코고노프
  • 막심 메드베데프
  • 마트비 스코벨레프
  • 헤타크 가주모프
  • 디미트리 나자로프
  • 라디크 이사예프

5. 관련 문서


[1] 사파비 제국이나 카자르 왕조 등 근세 이란 왕조들은 하렘의 후궁이나 노예병을 이웃한 캅카스 국가에서 납치해서 충원하곤 했는데, 가장 만만한 게 조지아와 아르메니아 일대의 기독교인 주민들이나 다게스탄, 체르케시아의 순니파 무슬림들이었다. [2] 1910년 통계에 의하면 바쿠의 법조인 107명 중 38명이 러시아인, 48명이 아르메니아인이었으나 무슬림은 겨우 4명에 불과했다. [3] 석유 사업으로 벼락부자가 된 아제르바이잔인들도 많았지만, 남아제르바이잔 일대의 기근을 피해 카자르 왕조 영토에서 몰래 밀입국한 아제르바이잔이나 농촌에서 바쿠로 상경한 아제르바이잔인들이 워낙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