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5-05 23:02:55

김영재(1911)


파일:김영재(1911).jpg

1. 개요2. 생애3.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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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11년 4월 5일~ 1965년 7월 20일

조선의용대 한국광복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국민혁명군 대한민국 국군 공군 장교. 독립운동가인 김홍일의 조카이며,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 추서.

2. 생애

김영재는 1911년 4월 5일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김홍익(독립운동가이자 국민혁명군과 대한민국 국군 장군인 김홍일의 큰형)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본에 유학을 갔다가 1931년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고, 1932년 1월 김석, 서재현[1], 이규서, 연충열, 한영려 등과 상해한인청년당을 조직해 이사에 선임되었고, 일제 밀정 처단 및 주요기관 폭파 등의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32년 4월 숙부 김홍일과 함께 홍커우 공원 의거 윤봉길이 사용한 폭탄 제조 작업에 참여하였다. 그 후 의열단에 가입해 김원봉이 설립한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졸업학고 동교 교관으로 보병조전, 소총 및 기관총 조립법을 담당했으며, 1935년 민족혁명당에 입당했다.

1935년 중국비행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국민혁명군 공군에 입대했으며, 기계사의 직책으로 중일전쟁에 참전했고, 장개석 총통 전용기의 조종사와 기상관제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1938년 조선의용대 제3지대장에 임명되어 활약하다가 1940년 광복군 창설 시 광복군 총사령부에서 요인 경호 및 비서직을 맡았으며, 1945년 미군과 함께 한국항공대를 창설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광복 후 국민혁명군 공군에서 활약한 김신, 최용덕, 이윤철 등과 함께 대한민국 공군에 들어갔으며, 6.25 전쟁 발발 당시 여의도 비행장에서 공군 후방요원들을 수원 공군기지로 인솔하였다. 국민혁명군 공군에서 기계사 직책을 맡은 경력을 살려 대한민국 공군에서 군수 및 정비 분야에서 활약했으며 정비창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공군 대령으로 예편하였고, 1965년 7월 20일 사망했다.

3. 참고자료



[1] 독립운동가 서병호의 아들이며 해방 후 해군 정비창장 역임, 서경석 목사의 아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