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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87년 5월 28일 |
경상도
밀양도호부 부내면 가곡리 (현 경상남도 밀양시 가곡동4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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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25년 1월 14일[2] |
중화민국
길림성 연길도 영안현 (현 중화인민공화국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닝안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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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 |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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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1887년 5월 28일 경상도 밀양도호부 부내면 가곡리(현 경상남도 밀양시 가곡동4통)에서 태어났다.일찍이 중화민국으로 망명한 그는 1919년 11월 10일 길림성 길림현 파호문(把虎門)밖 화성여관(華盛旅館)에서 배중세, 이수택, 이낙준(李洛俊), 고인덕 등과 함께 의열단을 조직했다. 이후 봉천성 흥봉도(興鳳道) 안동현(安東縣)에 원보상회라는 미곡상을 운영하며, 이곳을 연락기점으로 삼아 무기 구입, 동지 은신 등을 도모하며 군자금을 마련했다.
그러던 중 의열단장 김원봉으로부터 폭탄 구입과 국내로의 운반을 지시받은 그는 1920년 초 곽재기, 이성우(李成宇) 등이 구해온 폭탄 3개를 원보상회(元寶商會)를 통해 경상남도 밀양군에 거주하는 김병환에게 보내어 그의 집에 감추게 했다. 또한 나머지 폭탄과 권총은 배중세가 경상남도 김해군 하계면 진영역 앞 자신의 집에 감추어뒀다. 이후 이종암이 거사를 계획했으나, 이병철이 김병환의 집에 있는 폭탄이 발각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종암에게 알리어 그만두게 했다.
이렇듯 이병철은 안동현에서 동지간의 연락 업무 및 폭탄 운송 등의 임무를 수행하다 1925년 1월 14일 중화민국 길림성 연길도(延吉道) 영안현(寧安縣)[3]에서 별세했다. 그의 장례는 의열단 부단장이었던 이종암이 김백파(金白波)·최홍기(崔鴻基) 등과 함께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병철에게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