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8 12:26:45

DEC 디젤동차

파일:하위 문서 아이콘.svg   하위 문서: DEC 디젤동차/현황
,
,
,
,
,
#!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
파일:KORAIL_White_로고.svg
한국철도공사의 디젤동차
<colbgcolor=gray> 간선열차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한국철도공사 소속 기관차 · 전동차

파일:철도청 응용로고 (한글 좌우).png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191919> 대한민국 철도청 우등형 디젤전기동차
Diesel Electric Car
}}}
파일:DcWXtGeVwAADGJE.jpg
무궁화호로 격하된 당시
파일:대통령 특별 동차.jpg
대통령 특별동차[1]
차량 정보
<colcolor=#024999,#7bfbff> 열차 형식 우등형 디젤 전기동차
구동 방식 디젤 동력분산식 열차
기관 형식 커민스 KTA2300
최고 속도 110km/h
신호 방식 ATS
제작회사 대우중공업
도입연도 1979년
운행년도 1979 ~ 2000년
도입량수 10량
전동차비 4:1
편성 량수 5량 1편성
파일:DAEWOO_DEC.jpg
대우중공업 공식 홍보 기사
대한뉴스 1567호 - 호남복선 개통

1. 개요2. 역사
2.1. 도입2.2. 편성
2.2.1. 내부
2.3. 기술적 사양
2.3.1. 사양 상세설명
3. 운행4. 퇴역, 그리고 폐차5. 여담6. 관련 문서

1. 개요

優等形디젤動車 / Diesel Electric Car

대한민국 철도청에서 운용했었던 디젤-전기식 동차. 약자는 Diesel Excellent Car. 다만, 구동 방식이 정확히 말하면 디젤-전기식이어서 Diesel Electric Car로도 통한다.

형제기라 할 수 있는 EEC 전동차와 함께 일본의 485계 전동차를 참고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485계 특유의 고공운전석 디자인을 하고 있고 1994년 철도청 도색 개정 이전까지 적용했던 도색도 일본 특급열차 도색을 약간 변형한 것이며,[2] 전면부에 붙어 있는 십자마크도 당시 일본국유철도의 특급열차 마크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2. 역사

2.1. 도입

1979년 철도청에서는 비전철화 구간의 새마을호 운행을 위해 디젤동차 도입을 결정했다. 형제기인 EEC 전동차보다 1년 먼저 제작되었다. 도입된 편성 수는 5량 2개편성 10량. 하지만 이보다 먼저 1969년 대통령 전용 열차용 2량이 일본에서 도입되었으며 메기특동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2.2. 편성

총 5량 1편성으로, 운전실(일반실, Mc) - 동력차(일반실, M) - 부수차(특실+식당, T) - 동력차(일반실, M) - 운전실(일반실, Mc)로 고정으로 편성되었다. 반실형으로 특실과 식당차가 들어갔으며, 부수차 객실을 반으로 갈라서 반은 특실, 나머지 반은 식당차로 운용했다. EEC와 마찬가지로, 직각형 객차와 금형과 규격은 같지만, 동차다 보니, 각종 기기들과 커넥터가 전혀 상이하므로 일반 무궁화호 객차와의 호환성이 없었다.

EEC와 마찬가지로 M차(동력차) 하부에 수세식 화장실을 위한 물탱크를 넣기 곤란해서 T차에 화장실과 세면대가 각각 2곳씩 달려 있었으며, 시대적 배경에 따라 화장실의 오물 처리는 역시 비산식이었다.

2.2.1. 내부

파일:dec내부.jpg
현역 시절의 내부

2.3. 기술적 사양

2.3.1. 사양 상세설명

최고속도는 110km/h로 EEC 전동차의 그것과 동일했다. 엔진은 V12 커민스 KTA 2300을 얹었고, 편성의 총 출력은 1440kW(= 2160Hp 이상)에 달했다. 다만 엔진의 출력은 개당 970Hp로, 두 선두차에 각 하나씩 있었으므로 엔진 출력은 1940Hp였다. 이들은 디젤 엔진에서 나오는 동력으로 발전기를 돌리고 그 발전기가 전동기에 전기를 공급하고 전동기는 바퀴 돌려서 열차를 움직이는 식으로[3] 운행했다. 따라서 전기 차량이 쓰는 발전 제동을 쓸 수 있었다.

3. 운행

1980년 4월 10일, 서울- 전주 새마을호 열차로 데뷔했다. 최초로 운행된 새마을호 동차이다.[4] EEC 전동차와 같은 연도에 데뷔했다. 그래서 이들은 처음부터 일반실, 특실 모두 직각형 새마을호 객차와 동일한 2-2 배열의 좌석을 채용하였으며, 리클라이닝은 기본이었다.

이후로 DHC 동차가 나올 때까지 새마을호로 잘 운용되어 오다가[5], DHC가 나온 이후 무궁화호로 격하되었다. 격하된 데에는 객실 수준보다 110km/h 밖에 안되는 주행 성능이 더 결정적인 요인으로 추정된다.[6] 실내 스펙이 비슷한 직각형 새마을호의 경우 대부분 1990년대 초반까지 새마을호 등급을 유지했는데 150km/h 주행이 가능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무궁화호 격하와 동시에 일반실은 2+3배열개조 동력차 8행 39석, 부수차 17행 83석 총 327석, 개조되는 운명을 맞이했다.

무궁화호 격하 이후로도 주요 간선에서 잘 활약했으며, 장항선 경춘선이 주 무대였다.

<1979년~1987년 (새마을호)>
호남선: 서울 - 광주(1983~1985)/서울 - 목포(1985~1986)
전라선: 서울 - 남원(1979~1983)/서울 - 여수(1986~1987)

<1987년~1999년 (무궁화호)>
경부선: 서울 - 대전, 대구 - 부산
경춘선: 청량리 - 춘천
장항선: 서울 - 장항

4. 퇴역, 그리고 폐차

파일:KORAIL_DEC.jpg

무궁화호로 격하되고 약 10여 년이 흐른 1990년대 중반부터는 노후화로 인해 차량 자체의 고장이 급격히 많아지면서 철도청의 골칫거리로 전락하였다. 이 탓에 주요 장거리 간선 운행에서는 대부분 제외되었고, 최후에는 NDC 동차와 같이 대구- 부산간 무궁화호 열차로 운행하였다. 그렇게 소소한 말년을 보내가다 내구 연한이 끝을 향해 달려가던 2000년 말, 20여년의 현업 생활을 끝마치고 조용히 퇴역[7]하여 대전철도차량정비단에 유치되었고 3년 뒤인 2003년 폐차 발령을 받고 고철로 분해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영영 모습을 감추었다.

말년에는 DHC 디젤동차처럼 기관차 견인으로 운행한 듯하다.

5. 여담

당시 EEC의 폐차 때문에 전국 철도 동호인들의 시선은 EEC에 몰려있었다. 게다가 EEC 이후 당시 시점에서 후속 간선형 전동차 도입에 대한 계획이 아예 없었다. 당시 EEC가 폐차되고 누리로 TEC 전동차가 운행될때까지는 8년이라는 시간 공백이 있었다.[8] 반대로 DEC는 동력 전달방식은 달라도[9] 이미 후속 차량으로 말년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그 당시는 KTX 개통 전까지 최고급 열차였었던 PP동차도 있었고 같은 디젤 동력분산식 차량 임을 감안한다면 직계 후계라 할 수 있는 NDC 디젤동차, CDC 디젤동차(이후 일부 RDC 디젤동차로 개조)가 있었다. 그래서 철도 동호인들은 EEC 보존에 올인해서 결국 EEC 전동차 철도박물관으로 보내는 데 성공하였지만, DEC는 끝내 묻히고 말았다.

물론 둘은 제작시기도 비슷해서 스펙도 거의 같았고, 외형만 봐도 전면부의 십자마크, 그리고 DEC는 엔진때문에 창문이 더 적었던 것을 제외하면 완전히 똑같았기 때문에 둘 중 하나만 하더라도 크게 역사에 남기지 못한 아쉬움(?)은 없어서 열의가 적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이전에도 DC 디젤동차를 통해 대한민국에 존재했던 디젤동차인 DEC와 다르게 EEC는 한국 최초의 중장거리 여객용 전동차였던 만큼 그 기술적 가치면에서도 EEC에 비해 다소 처지기도 했다. 즉 당시 철도 동호인들은 DEC 보존에 관심이 없었다기보다는 둘 다 살리려다 이도 저도 안되느니 하나에 집중해서 기술적 가치가 더 큰 EEC만이라도 어떻게든 살리고보자 였다고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한국철도의 전철화 비중이 낮았던 탓에 기술적으로 더 진보된 EEC보다 DEC가 더 고급 열차로 도입되었다는 것은 특이한 점이다.

한때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대전정비창에 유치되어 있던 DEC 사진이 돌았지만, 끝내 2003년을 전후해서 분해되어 고물상으로 팔려가게 되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국내 마지막 DEC인 구 특별동차가 2015년 철도박물관에 전시되었다. 안내판에 국내 마지막 남아있는 DEC라고 쓰여있다. 본동은 1969년 일본차량제조[10], 경호동은 1985년 대우중공업 제작이다.

6. 관련 문서


[1] 좌측은 대통령 전용, 우측은 경호원 전용이다. [2] 다만 당시 새마을호의 이미지 컬러는 파랑색이었기에 색상은 달랐다. 도리어 무궁화호로 도입된 EEC 전동차가 특급열차 도색과 유사한 빨강색이었으며 DEC도 무궁화호로 격하된 뒤에는 빨강색으로 재도색되었다. [3] 디젤기관차라고 하는 물건은 상당수가 이런 방식이다. 거대한 동력을 제어하는 데 가장 적절한 방식이 전기이기 때문이다. 한국철도공사의 특대형(7000~7500번대) 디젤기관차 역시 사실은 전기 모터로 움직인다. 다만 DEC의 독특한 점이라면 디젤 엔진은 전후 동력차에 집중 시켜 두었고, 전동기는 객차에 분산 시켜 두었다는 것. [4] DEC - DHC 디젤동차 - 210000호대 전동차 순서로 도입되었다. [5] 다만 노선 이동은 종종 있었다. [6] 오랫동안 승강장이나 간판 등에서 일반 열차를 표현하는 디자인으로 특유의 고공운전석 이미지를 쓸 정도로 고공운전석 디자인을 특히 마음에 들어했던 철도청이 DEC와 EEC를 각각 겨우 2편성씩만 만든 것도 이 부족한 스펙 때문일 이유가 크다. [7] 대한민국에서 마지막으로 굴린 2+3배열 시트가 달린 열차이기도 하다. 객차형 무궁화호 및 NDC 디젤동차는 1999년 2+2 배열로 시트 개조가 완료됐다. [8] EEC 퇴역 후 3년 뒤 고속 전동차인 KTX-1이 운행을 개시하긴 했으나, 당연히 일반 간선형 전동차인 EEC와 고속열차인 KTX-1을 같은 범주에 넣기는 힘들었고, 그렇게 생각한 사람도 없었다. 역할 문제는 별개로 생각하더라도, 애초에 전동차란 점 하나 빼면, 기술적인 공통점도 아예 없었으니... EEC는 역할만 제외하면 수도권 전철 1호선용으로 대한민국 철도청(이후 한국철도공사로 승계)과 서울지하철공사(현재 서울교통공사로 합병)가 도입했던 초저항 차량과 기술적으로 동일한 차량이었다. [9] DEC가 동력분산식, DHC가 동력집중식 [10] 485계 전동차, 키하 07형 동차 등을 생산한 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