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15:07:13

제3차 포에니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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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로마 제국 깃발.svg 파일:투명.png 로마의 대외전쟁파일:투명.png 파일:라바룸.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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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포에니 전쟁 파일:attachment/mon_256_1.png 카르타고 공화국
제2차 포에니 전쟁 파일:attachment/mon_256_1.png 카르타고 공화국
제1차 마케도니아 전쟁 파일:attachment/mon_256_2.png 마케도니아 왕국
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 파일:attachment/mon_256_2.png 마케도니아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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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만티아 전쟁 파일:external/b66a81d7e3c5440cfef450e3309a2b4b425f1dcd788e510bd84b747e2e2573be.png 아레바키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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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체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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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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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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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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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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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14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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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포에니 전쟁
Third Punic War
시기 기원전 149년 ~ 기원전 146년
장소

카르타고
교전국 파일:attachment/mon_256.png 로마 공화국 파일:attachment/mon_256_1.png 카르타고 공화국
지휘관 파일:attachment/mon_256.png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파일:attachment/mon_256_1.png 하스드루발 보이오타르케스
병력 80,000명 30,000명
피해 불명 거의 전멸
결과 로마의 최종 승리, 카르타고의 멸망

1. 개요2. 배경
2.1. 로마와 그리스2.2. 누미디아와의 전쟁2.3. 강화 결렬, 순진한 외교의 최후
3. 카르타고 공방전4. 이후5. 평가 및 여담

[clearfix]

1. 개요

기원전 149년에 발발하여 기원전 146년까지 일어난 로마 공화국 카르타고 공화국의 최후의 전쟁으로, 118년에 걸친 장대한 포에니 전쟁의 대미를 장식한다.

이 전쟁의 결과 카르타고는 완전히 멸망했다. 그리고 로마는 패망한 카르타고의 풍요로운 영토를 식민지로 접수하면서 지중해의 절대 강대국으로 발돋음하게 되었다.

2. 배경

두 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에서 연패하면서 카르타고는 서부 지중해 패자의 위상을 완전히 상실했다.

제2차 포에니 전투에서 패배한 카르타고는 로마를 멸망시킬뻔한 만큼 불리한 조건에 강화를 맺으면서 해군을 해체, 육군 축소, 이미 점령당했지만 모든 해외 영토의 소유권을 로마에게 완전히 넘겼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로마의 허락없이는 전쟁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사실상 카르타고는 로마의 속국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었다. 게다가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로마에게 엄청난 공포를 안겨주다보니 로마인들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 있었다. 그나마 스키피오 나시카 등의 온건파는 카르타고의 존속을 주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여전히 카르타고는 풍부한 농업 생산력과 지리적 위치에 있는 뛰어난 상업력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웠으나 군사적으로는 완전히 몰락한 상태였다. 1차, 2차 포에니 전쟁때와는 달리 이 시점의 카르타고는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 1차와 2차 포에니 전쟁 기간 동안에 이베리아 반도는 물론, 그리스를 사실상 손아귀에 넣고 중동의 헬레니즘 왕조들까지 정복하며 군사력을 전 지중해에 과시하고 있었던 로마에게 대항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카르타고의 멸망을 불러온 결정적인 문제는 카르타고가 여전히 부유했다는 점이었다. 카르타고가 차라리 연이은 전쟁으로 빈곤하고 가난한 나라가 되어서 정말로 로마의 자비에 구걸하는 신세가 되었다면 그나마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페니키아인들이 공들여 개척한 농업 생산력과 뛰어난 해상 무역 덕분에 카르타고는 패배하고 무장해제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유하고 잘 사는 나라였다. 그러나 문제는 카르타고인들이 이제 자신들의 ''를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을 잃어버렸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이러한 카르타고의 부를 탐냈던 것이 전쟁의 원인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카르타고가 그 부를 통해 다시 강성해지는 것을 로마가 두려워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렇게 봐야 하는 이유는 카르타고 점령 이후의 로마가 카르타고가 다시 일어서지 못 할 정도로 철저하게 파괴했기 때문이다. 카르타고는 기원전 150년에 인구 250,000명의 엄청난 대도시였으며 웅장한 건물도 많이 있었다. 기계도 없이 일일이 손으로 건물을 지어야 하는 시절에 250,000명의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대도시가 얼마나 큰 가치가 있을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사막화가 진행되어 척박한 땅인 지금과는 달리 당시의 카르타고는 풍요로운 곡창 지대를 갖고 있었으며, 지중해의 한 가운데라 유리한 교역 거점이기도 했다. 제정 로마 시절의 카르타고가 재건된 도시임에도 인구가 500,000명까지 늘어나 아프리카 속주의 주도가 되었다는 것만 봐도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카르타고의 입지 조건이 얼마나 좋았는지 알 수 있다. 상식적으로 이런 도시를 점령했으면 거주민은 노예로 팔아버리거나 죽이더라도, 도시 자체는 이주민을 보내서 살리는게 당연히 유리하다.

이런 꿀같은 도시를 로마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로마가 멸망할뻔 했다는 분노에 휩싸여 17일 동안 철저히 태우고 뭉개버렸다.[1] 어찌나 철저히 때려부쉈던지 오늘날 제정 로마 시절의 유적은 곧잘 발굴돼도 도시국가 카르타고의 유적은 잘 안 나올 정도이다. 로마가 점령한 도시는 숱하게 많았지만 이런 운명을 맞은 도시는 카르타고 외에는 거의 없다. 로마가 단지 카르타고의 부를 탐냈다면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도시를 부숴버릴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한마디로 로마인들에게 카르타고는 저주스런 이름이었고, 제2의 한니발이 나올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카르타고가 재건되는건 로마인이 카르타고에 대한 강박관념을 완전히 떨쳐낸 100년 뒤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절이었다. 불과 50년밖에 지나지 않은 아우구스투스 시절에 이미 인구 500,000명을 찍을 정도로 급속히 발전했다.

2.1. 로마와 그리스

한동안 카르타고와 로마 사이에는 평화가 지속되었다. 카르타고를 굴복시킨 로마는 다음 목표로 풍요로운 동방에 위치한 헬레니즘 국가들을 노리고 그리스인들의 분쟁에 개입하여 그리스에서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기원전 190년 로마는 안티오코스 3세 메가스('대왕')의 치세하에서 전성기를 누리던 셀레우코스 제국 마그네시아 전투에서 격파하면서 그리스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패권을 확립했고, 패권하에 들어온 그리스와 아나톨리아 일대의 군소국가들을 상대로 온건주의적인 외교를 추진했다. 당시 로마 원로원내에는 스키피오 가문을 위시한 온건파가 많았고, 또한 온건주의 외교는 이탈리아 반도 내의 동맹시를 다루는 전통적인 방식이었다.

온건주의 외교 노선은 로마 문화의 전통인 파트로누스 - 클리엔테스 관계를 국가간에 적용한 것으로 로마가 파트로누스 역할을 하고, 동맹시들이 클리엔테스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이 관계에서 로마는 동맹시들에게 보호를 제공하고, 동맹시들은 로마에게 지원을 해주어야 하는 책임이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에서 전제되는 것은 동맹시들이 로마의 패권을 자발적으로 인정해야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관계는 상당히 느슨한 관계였는데 이탈리아 반도 내의 도시국가들은 로마와 수백년간 전쟁을 했으므로 로마의 군사적 강력함을 알고 있었고, 또한 지리적으로 가까웠으므로 이 관계를 훌륭하게 유지해왔다.

때문에 로마는 그들의 온건한 외교 노선을 신뢰하고 있었고, 따라서 새롭게 패권하에 들어온 동방의 그리스 국가들에게도 같은 노선을 적용시켰다. 하지만 그리스는 이탈리아 도시들과는 달랐다. 이들은 로마와 전쟁을 해본 경험도 별로 없는데다가 지리적으로도 이탈리아 도시들에 비해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 로마를 그다지 위협적으로 여기지 않았다. 또한 파트로누스 - 클리엔테스 관계라는 것은 그리스인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그리스인들은 개인주의적인 사상이 매우 강했고, 이것은 그리스 철학의 발달 등으로 표현되었다. 또한 많은 도시들에서 귀족은 몰락했고, 완전한 민주주의를 하고 있었다. 강력한 가문이 뒤를 봐주고 그의 서포트가 된다는 식의 로마식 전통을 이해할 리 없었다. 때문에 그리스의 도시들은 자발적으로 로마의 패권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또한 로마의 온건한 외교를 로마인들이 그리스인들의 우수한 문화에 열등의식을 느껴 비굴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2]

그 결과 그리스인들은 로마인들에 대해 상당히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물론, 사사건건 군사적으로 반발하려고 했다. 이러한 태도는 새로 손에 넣은 도시들이 당연히 클리엔테스의 책임을 다할 줄 알았던 로마에겐 뜻밖이었고,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 지친 로마인들은 온건주의 외교노선에 대해 회의를 품기 시작했고 이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로마 시민들은 이렇게 반발할 때마다 전쟁터에 끌려가야했기 때문에 그리스의 잦은 반발에 대해 꽤 분개하고 있었다.

발레리우스 가문은 명웅변가 대 카토를 내세워 이러한 여론에 편승하여 정치적인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했다. 발레리우스 가문이 영향력을 확대하자 온건주의 노선이었던 스키피오 일족이 속한 코르넬리우스 가문의 정치적인 영향력은 점차 약화되었고, 이러는 과정에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탄핵당해 실각하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원로원 내의 대 카토의 영향력은 확대되었고, 이것이 시민들의 호응을 얻자 로마는 점점 강경노선 외교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새롭게 정계의 중심인물로 부상한 대 카토는 두 가지로 유명하였는데, 첫 번째로 그리스 문화를 매우 혐오하는 태도를 보였고, 두 번째로 카르타고를 반드시 멸망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카르타고와 별로 관련이 없는 연설에서도 "Carthago delenda est."(카르타고는 멸망해야 합니다.)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2.2. 누미디아와의 전쟁

한편 로마가 이렇게 한눈 판 사이 카르타고는 다시 재건하고 부유해지기 시작할 무렵 로마의 정세 변화를 지켜보던 누미디아의 왕 마시니사는 자신의 왕국을 넓히기 위해 바로 옆에 붙어있었던 카르타고를 침략하기 시작했다. 카르타고는 누미디아의 침략과 약탈로 큰 피해를 입었는데 로마의 허락없이는 전쟁을 할 수 없었으므로 로마에게 군사행동의 허가를 요청했으나 로마는 제2차 포에니 전쟁 당시 동맹국이었던 누미디아에게 우호적이었고, 여전히 카르타고에게 적대적이었으며 애초에 누미디아가 알아서 카르타고의 힘을 빼주니까 오히려 로마에게는 잘한 일이지 나쁜 일이 아니었기에 로마의 허락을 받을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카르타고 내에서는 로마가 일부러 자기들을 괴롭히려 한다는 반로마 감정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누미디아는 더 기고만장해져서 계속 침공을 하자 마침내 이것을 견디다 못한 카르타고는 꼭지가 돌아버려 로마와 맺은 조약을 무시하고, 군사행동을 하기로 결정한 후 대규모 용병을 모집해서 25,000명의 병력으로 누미디아군에 맞서싸웠지만, 카르타고는 2차 포에니 이후 군은 약화되었기에 예전의 카르타고가 아니었기 때문인지 오히려 이들은 오로스코파 전투에서 누미디아군에게 패배했다.[3] 패배한 카르타고는 누미디아에 50년간 배상금을 주기로 했고 누미디아군은 본국으로 철수했다. 하지만 이 패배뿐만 아니라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 소식을 들은 로마 원로원은 즉시 무단으로 전쟁을 벌인 카르타고에게 조약을 어겼다며 선전포고를 결의했다.

하지만 이집트의 역사가 아피아노스에 따르면, 마시니사는 로마가 카르타고와 전쟁을 벌인 것에 격분했다고 한다. 이는 카르타고의 영역을 장기적으로 갉아먹어 종국에는 북아프리카의 패권을 확립하려던 자신의 야망이 로마의 개입으로 인해 좌절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제3차 포에니 전쟁에 단 한 명의 누미디아군 병사도 파견하지 않았으며, 노골적으로 로마에 불만을 표시하다가 기원전 148년에 승하했다.

2.3. 강화 결렬, 순진한 외교의 최후

카르타고는 지금의 전력으로는 로마군과 싸워봤자 필패이고 이미 2차 포에니 전쟁 이후 더 이상 전쟁은 싫다는 감정이 많아 로마 원로원에게 사절을 여러차례 보내 사과하며 앞으로는 강화를 준수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로마는 카르타고 전체의 무기 몰수와 새로운 배상금 부과 등 다양한 압박을 가했고 카르타고는 어쩔 수 없이 로마가 내세우는 여러가지 조건을 모두 받아들였다. 로마는 조건대로 카르타고가 모든 조건을 받아들여서 배상금과 무기들을 넘겨받자[4] 더욱 중대한 조건을 내놓았는데, 선전포고 철회의 대가로
수도를 파괴하고, 모든 주민들을 해안에서 15km 밖으로 이주하라
라고 협박했다.

이 15km의 이주 조건에 대해 카르타고 사절들은 이것은 카르타고를 죽이는 것이라고 항의했으나[5] 로마 원로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전쟁일 뿐이라며 이들을 돌려보냈다. 카르타고 사절의 절반 이상은 멸망이나 다름없었기에 카르타고로 돌아가는 중에 다른 나라로 달아나버렸다. 이들은 카르타고 시민들이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6] 따라서 분노한 시민들을 마주하기 전에 목숨을 구하고자 한 것이었다.

과연 카르타고 시민들은 이 조건을 듣자마자 분노하며 귀국한 사절들을 모두 처형해버렸다. 이것은 이 사절들이 카르타고 내에서 로마와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한 뒤 시민들을 설득해 사절로 간 평화주의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사절들을 다 처형한 뒤 카르타고인들은 로마와 전쟁을 결의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제3차 포에니 전쟁이었다.

그렇게 카르타고와 로마는 다시 전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승패는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난 것이나 다름없었고, 카르타고인들은 그들의 손으로 자신들의 도시를 파괴해 굴욕감과 비참함을 맛보느니, 끝까지 로마인들과 싸우다 죽는 것을 택한 것에 불과했다.

3. 카르타고 공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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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시작하자마자 로마군에 의해 카르타고 시가 완전히 포위되어 공성전이 되었다. 카르타고는 로마의 속임수에 넘어가 모든 무기를 잃었지만, 지도자가 된 하스드루발의 지도하에 자신들에게 익숙지 않는 대규모 징병까지 감행하여 30,000명의 병력을 채웠고, 도시 안의 모든 무기공장을 가동하여 다시 무장을 갖추었지만 그래도 무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다.

카르타고의 힘줄을 끊어놓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만큼은 아니더라도, 마지막 숨통을 끊는 것 역시 결코 작지 않은 명예가 될 것이었다. 제2의 아프리카누스를 노린 로마의 집정관들이 무려 80,000명이나 되는 병력으로 맹공을 퍼부었지만, 하스드루발과 카르타고인들은 아예 살아남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처절하게 항전하며 3년이나 버텨냈다. 카르타고인들이 육상으로도, 해상으로도 완전히 고립된 도시에서 군대의 양과 질, 전략과 보급 등 어떤 면으로도 부족함이 없었던 로마군을 상대로 이만큼이나 버틴 것은 물론 대단했으나, 이것은 적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죽더라도 한명의 로마인을 더 데리고 가고 싶겠다는 심정으로 항전하여 그저 하루하루 파멸을 늦추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로마 시민들이 봤을 때 보급, 병력 질, 규모,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우세를 점하며 완전히 고립시킨 적을 상대로 3년씩이나 결판을 내지 못하는 것은 전혀 즐거운 상황이 아니었고 오히려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이렇게 장기전이 되면서 엄청난 시간과 인력, 물자가 소모되었고, 로마 시민들의 전쟁피로도 역시 계속해서 심화되었다.

그 결과 전쟁에 넌더리가 나버린 로마 시민들과 원로원은 전쟁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7] 집정관 자격 연령에 약간 미달했지만 카르타고 포위전의 첫 2년 동안 다른 지휘관들보다 확연히 나은 활약을 보여 준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를 집정관으로 선출하여 지휘를 맡겼다. 원칙을 어겨가며 뽑아준 만큼 반드시 끝장을 보라는 의사표시였다.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총지휘를 맡은 로마군이 집요하게 공격을 지속했고, 결국 전쟁 3년차에 성벽이 드디어 뚫렸다. 성벽을 넘어선 로마군을 기다리는 것은 도시 전체에서 목숨을 버리고 달려드는 카르타고 시민들이었다. 수많은 카르타고 시민들이 싸우다가 죽는 길을 택했고, 학살과 자결이 더해지면서 희생자의 수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이원복 화백의 《 먼나라 이웃나라》에서는 제3차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군이 패배한 카르타고인들의 용맹을 기려 생존자들을 살려주고, 이주를 허락했다고 되어 있지만, 실제론 전혀 아니다.[8] 성을 함락한 로마군은 카르타고인이 처절하게 저항하자 더욱 거세게 공격하여 무자비한 대학살을 벌였기에 마지막 저항까지 쓰러져 갈 무렵에는 하스드루발이 남은 시민들이라도 살리기 위해 로마군에게 항복했고[9]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받아들이면서 처절하고 잔혹했던 전투는 끝이 났다. 결국 살아남은 카르타고인은 고작 50,000명에 지나지 않았고,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비참한 노예의 낙인이었다. 이렇게 기원전 146년에 한니발의 조국 카르타고는 멸망하고 말았다.

전설에 따르면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는 멸망하는 카르타고를 보면서 트로이의 멸망을 예견하는 《 일리아스》의 한 구절을 읊으면서,
"언젠가는 로마 역시 카르타고처럼 멸망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예언은 서로마 제국에는 로마 약탈,[10] 동로마 제국에는 제20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에서 보듯 비교적 유사하게 들어맞았다.[11] 허나 1,600년 뒤에나 멸망하는건 자기도 몰랐을 것이다

4. 이후

한때 수백 년 동안 지중해를 호령했던 해양민족 카르타고의 본거지는 남김없이 초토화되었고, 폐허뿐인 황무지로 방치되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기에 비로소 재건을 시작했고,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재건을 끝마친 뒤에는 로마 제국의 직할령으로 편입되어 아프리카 속주로 재편되었다. 북아프리카의 풍요롭고 비옥한 농지는 라티푼디움으로 바뀌어 로마 귀족들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 주었지만, 또 다른 갈등의 단초를 남기고 말았다. 이후 이슬람의 침공 이전까지 북아프리카의 주요한 항구 도시로서 번영했다.

5. 평가 및 여담

많은 학자들이 로마가 카르타고의 모든 무기를 내놓으라고 했을 때, 이를 따른 건 카르타고의 실수라고 평가한다. 1, 2차 포에니 전쟁을 통해 로마군과 더 이상 싸우기 싫었던 카르타고인들은 로마의 말을 따랐지만, 로마는 애초부터 카르타고를 멸망시킬 생각이었기 때문에 로마에게 큰 이득이 되었을 뿐이었다. 이 일화는 훗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을 줬다.

신화에서 아이네이아스가 카르타고를 떠날 때 예언되었던 디도 여왕의 저주도 카르타고가 멸망함으로서 끝나게 되었다.

같은 해에 그리스에서 세 번째로 큰 대도시인 코린토스도 카르타고와 마찬가지로 로마인들에 의해 멸망했다.( 아카이아 전쟁)[12] 그리고 기원전 133년에는 이베리아 반도 켈티베리아 지방의 도시인 누만티아도 두 도시와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누만티아 전쟁)

한편 1985년 1월에는 이탈리아 로마 시장 이자 이탈리아 공산당의 당원이었던 우고 베테레와 튀니지의 튀니스(현재의 카르타고) 시장 체드리 쿠리빈이 만나 공식적으로 전쟁 종결에 서명하기도 했다. 이로써 공식적으로 보면 제3차 포에니 전쟁은 2,131년 만에 끝난 셈이다. 이렇듯 2,000여 년이 지난 이후에 전쟁 종결에 서명하게 된 것은, 공식적인 종전 선언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만 고대에는 종전협정이 있어야 전쟁이 끝난다는 개념이 없었고, 더군다나 이 전쟁은 카르타고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마지막이라서 종전협정 자체가 있을 수가 없다. 어차피 현대 이탈리아와 튀니지는 고대 로마와 카르타고와는 달리 라틴계와 페니키아인의 나라가 아니라 인종이 복잡하게 뒤섞인 상태라서 큰 의미가 없다. 이건 그저 이탈리아와 튀니지의 관계 개선을 위한 퍼포먼스이자 상징적인 협정이다.

[1] 서양에서는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카르타고에 두 번 다시 농작물이 자랄 수 없도록 땅에 소금을 뿌렸다는 말이 유명하다. 다만 실제로는 그를 증명할 당시 사료가 없어서 중세쯤에 만들어진 말로 보인다. # [2] 그리스인들은 로마가 우리를 군사적으로 정복했으나, 우리는 로마를 문화적으로 정복했다고 자화자찬했다. [3] 먼나라 이웃나라》 6편인 <이탈리아> 편에서는 누미디아군이 완파당했다고 나온다. 오류 중 하나이다. [4] 이때 무기의 양이 무려 100,000벌이나 되어 로마에서 놀랄 정도였다. 만약 카르타고가 항전으로 선회할 경우 로마군도 엄청난 피해를 받았을 것이었다. [5] 카르타고의 주 산업은 해상 무역인데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주하라는 것 자체가 카르타고를 죽이는거나 마찬가지다. 즉 애초부터 로마는 카르타고를 멸망시킬 생각이었던 것이다. [6] 카르타고도 로마와 마찬가지로 공화정 국가였다. [7] 그러나 확실히 지나치게 전쟁이 늘어지자 로마 본국에서도 반전 여론이 생기긴 했다. 만약 카르타고가 1~2년만 더 버텼더라면 역사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 [8] 이원복도 시간이 지나면서 잘못 알고 있던 걸 알았는지 이원복 교수의 만화로 보는 세계사에서는 이런 말이 없다. [9] 하스드루발의 아내와 아들 2명은 노예가 되기보다는 불타는 신전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항복한 하스드루발은 로마로 끌려가서 노예가 되었지만 별탈없이 잘 살았다. [10] 물론 410년의 로마 약탈로 로마 제국이 바로 멸망한 것은 아니었으나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인해 전통적으로 속국이나 산하 이민족을 다루던 방식인 조약 혹은 동맹(foedus)의 형태가, 서로마 중앙정부에서 더 이상 제대로 이민족 통제를 할 수 없게 되자, 오히려 역이용당해서 하나하나씩 지방 속주의 영토와 서로마 군대의 주요 보직이 게르만인들에게 넘어가다가 마침내 오도아케르가 동로마 제국에 바치는 형식을 빌려서 서로마 황제위 자체를 폐지함으로써 멸망했다. [11] 수도 밖의 거의 모든 땅이 오스만군에게 넘어간 상태에서 치열한 공성전 끝에 수도가 함락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12] 그래서 각 연도별 영역을 다루는 영상을 보면 기원전 146년에 그리스와 카르타고가 점령당하면서 급속하게 로마 공화국의 영역이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