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마추어 시절
군산에서 초, 중학교를 마치고 한서고에 스카우트되어 오승환과 한솥밥을 먹었다가 오승환은 경기고로, 채병용은 신일고로 전학갔다. 신일고 시절에는 3루수와 4번타자로 활약했는데 장타력이 꽤 있어 뉴욕 양키스에서도 노렸던 타자였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00년 첫 대회였던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16강전에서 부산고의 추신수를 상대로 투런홈런을 때리는 등 분전했으나 3-7 패배를 막지 못했다.[1] 같은 해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오승준, 박용진, 김경태, 최홍진 등 동료들과 마운드를 분담하며 결승전에 진출했으나 경기고에게 7-10 패배를 당하며 눈물을 삼켰다.[2]그리고 2001년 신인드래프트 2차 4라운드에서 SK 와이번스의 지명을 받아 내야수가 아닌 투수로 입단했다.
2. 프로 시절
2.1. 2001~200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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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철이 물러나고 2003년부터 삼성 배터리코치 출신인 조범현이 SK의 신임 감독으로 부임한 뒤에도 전천후로 뛰며 34경기 114이닝을 소화했고 9승 5패 4세이브 2홀드를 기록했다. 그해 한국시리즈에서는 3차전과 6차전에 선발로 등판해 두 경기 모두 7과 3분의 1이닝을 투구했고 6차전 승리 투수가 되는 등, 이 때만 해도 이닝 이터의 기질도 있었을 정도였다. 어쨌든, 2003년 마무리 투수였던 조웅천과 함께 SK 투수진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데뷔 초기부터 너무 전천후로 나서서 그런지 팔꿈치에 탈이 났고 결국 혹사 후유증으로 2004년 한 해를 팔꿈치 수술과 재활을 하느라 통째로 쉬었고, 이후에는 선발로 보직이 고정되어 어느 정도 꾸준함을 보여줬지만 지금까지도 2002년 ~ 2003년 만큼의 구속과 이닝 소화력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부상 복귀 후 지금까지 선발로 뛰면서 소화한 경기당 평균이닝은 5~6이닝 남짓이며 완투는 2014년 9월 11일 넥센전 완투승 이전까지 12년 동안 단 한 번도 기록하지 못했다. 뛰어난 구위에 비해 몸이 버티질 못하는 셈.
2.2. 2007 시즌
2007년에는 선발로 고정되어 28경기에 선발 등판해 146이닝 동안 11승 8패 평균자책점 2.84[5]를 기록하며 레이번- 로마노를 잇는 SK의 3선발로 자리잡았다.2007년 7월 5일 대구 삼성전에서 선발로 등판해 그해 SK의 11연승을 저지하기도 한 김재걸의 목 뒷 부분을 맞추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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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008 시즌
2008 KBO 리그 승률 1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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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을 확정짓고 포효하는 모습. |
2.4. 2009 시즌
2회 WBC에서 부진해 패닉상태에 빠진 김광현을 대신해 2009년 개막전 선발로 낙점되었지만 3이닝 5실점으로 부진,[8] 송은범이 SK의 우완 선발진 자리에 들어간 대신 4월 중순부터는 삐걱거리는 불펜진에 긴급투입되었다.그러던 4월 23일 문학 롯데전에 구원등판해 던진 직구가 타석에 서 있던 조성환의 안면부를 강타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실신한 조성환을 앞에 두고도 별다른 사과 없이 투구연습을 계속하는 모습이 화면에 잡히면서 야구팬들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이후 박재홍이 김일엽의 공에 과민반응 하면서 이후 롯데와 SK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9][10]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며 1군에서 빠졌고 일본에서 검진한 결과 오른쪽 팔꿈치 인대 손상 등 모두 세 군데에 복합적으로 부상을 당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미 2000년대 초반에 수술을 받았던 부위인 데다가, 당장 수술이 불가피하며 재활에만 1년이 걸린다는 절망적인 상황. 하지만 팀을 위해 수술을 미루고, 9월 중순 1군에 복귀해 SK가 19연승을 달릴 동안 불펜에서 활약했다.
2009년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에서도 위급할 때마다 선발과 중간계투를 가리지 않고 등판하는 투혼[11]을 보였지만 끝내 마지막 7차전에서 나지완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고[12] 패전투수가 되었다. 2008년 한국시리즈 마지막 5차전 1사 만루에서 김현수를 병살로 잡으면서 마무리를 지었던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되었다.[13] 2009년 포스트시즌 성적은 15이닝 11피안타 3실점, 12삼진 3볼넷, 평균자책 1.80이었지만 마지막 공 하나에 울어야 했다. 위에 언급된 두 빈볼사건으로 인해 상당히 많은 안티들의 표적이 되었지만, 플레이오프때부터의 망가진 몸을 이끌고 보여준 투혼으로 인해 안티들이 줄었다. 뿐만아니라 한국시리즈에서까지 투혼을 발휘해서 4차전 선발, 6, 7차전 마무리로 나왔다. 마지막 끝내기를 맞고 나서 아쉬운 마음에 눈시울을 적시던 채병용을 본 SK팬들도 많이 울었다고 한다.[14] 이후 그는 쫓겨나듯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입대를 하였다.
여담이지만 끝내기 홈런을 친 나지완은 채병용의 신일고 후배이다.[15] 전년도인 2008년 한국시리즈에서 채병용에게 병살타를 친 김현수 역시 신일고 출신. 2년연속 신일고 출신들이 다 끝을 보았다.
그리고 이 홈런은 8년 뒤 같은 타자가 다른 팀의 다른 우완 투수를 상대로 한국시리즈에서 똑같은 코스로 재현해 집에서 쉬다가 의문의 1패를 당했다.
2.5. 공익근무
그동안 팀 사정상 계속 병역을 미루고 있다가, 2009 시즌이 끝난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게 되었다.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한 이유는 팔꿈치 토미 존 수술로 추정된다.[16]입대 전, 연봉 문제로 구단과 약간의 갈등이 있었다. 이미 팔꿈치 인대가 손상되어 있는 등 위험한 상태임에도 팀의 우승을 위해 수술도 안 하고 마지막으로 공을 뿌렸으니 팔꿈치의 상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 것이다. 하지만 연봉협상에서 2천만원 삭감당했다. 그래서 "죽어라 던진 것이 후회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후 기사를 보면 마음을 고쳐먹은 듯. 채병용은 부상으로 훈련소 입소가 연기된 상황에서 일단 계약을 마쳐야 SK 입장에서는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할 채병용에게 군 보류수당(연봉의 40%)을 지급할 수 있기 때문에(계약도 안한 사람에게 돈을 줄수는 없으니까) 계약을 한 것이라 한다.
2010년 3월 21일 득녀하였다. 4월 8일에 입대. 2012년 4월 10일에 소집해제되어 복귀하였다.
2.6. 2012 시즌
복귀한 후로는 계속 2군에 있었지만 7월 18일 LG전에 복귀하여 1이닝 동안 2피안타(1홈런) 1실점이라는 그리 좋지 않은 투구기록을 남긴 채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성준 투수코치의 말에 따르면 아직 컨디션이 다 올라오지 않은 상태라고 하는데 부상인 줄도 모르고 제춘모를 땡겨쓴 것과 함께 2012년 이만수 감독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케이스가 되었다.그리고 24일, 송도구장에서 열린 LG 2군과의 경기에서 8이닝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
팬들은 채병용의 부활에 기뻐하면서도 이만수 감독에게 혹사당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큰 듯.[17]
그리고 8월 11일 선발로 등판한 두산과의 경기에서는[18] 윤석민에게 동점 적시타, 김재호에게 역전 3루타, 정진호에게 희생 플라이를 내주면서 7이닝 5실점으로 시원하게 털렸다.
8월 18일 KIA와의 경기에서 0:2로 이기던 6회초 나지완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맞고 말았다. 2009년 한국시리즈의 끝내기 홈런의 악몽도 있었고, 이전에도 우익수 라인 쪽 변태 2루타와 좌익수 쪽 안타를 맞았던 터라 불안불안했다. 하지만 6.2이닝 1실점으로 시즌 첫 승을 거뒀다.
9월 2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홈경기에서 이종욱[19], 김재호, 최주환에게 연속안타를 내주고 2실점 2자책점을 기록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20] 결국 이재영과 교체된 이후 채병용이 덕아웃에서 글러브를 집어던지며 멘붕한 모습이 MBC 스포츠플러스를 통해 전국으로 나갔다.
9월 2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경기에서 8이닝 무사사구 1실점 호투를 펼치며 시즌 2승을 거뒀다.
9월 27일 문학구장에서 한화와의 경기에서 6이닝 1실점으로 3승을 거뒀다.
10월 2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한화와의 경기에서 장성호에게 통산 1,000타점 기록을 헌납하였다. 그리고 엄정욱은 김태균에게 끝내기를 내주며 패전투수행.
롯데와의 2012년 플레이오프 1~4차전에 등판하지 못했다가 10월 22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3:0으로 지던 2회말 2사 1, 3루 상황에서 등판하여 4이닝 75투구수 1피안타 3볼넷 5탈삼진 무실점 호투했고, 팀이 스코어 3:6으로 역전승하여 이날의 승리투수 및 데일리 MVP가 되었다.
채병용은 삼성과의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2경기 4⅓이닝 5피안타 1피홈런 2볼넷 5탈삼진 4실점 4자책점 평균자책점 8.31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채병용은 2012년 포스트시즌에서 3경기 8⅓이닝 6피안타 1피홈런 5볼넷 10탈삼진 4실점 4자책점 평균자책점 4.32, 1승을 기록했다.
2.7. 2013 시즌
공익근무를 마치고 팀에 복귀한 첫 시즌에는 비교적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팀의 선발의 한 축을 맡을것으로 생각하는 등 기대를 많이 받았으나 중간 계투에서도 헤매는 모습을 보이며 처참한 성적을 남기고 2군에서 던졌다.2.8.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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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플로리다 스프링캠프에서 연습경기때 괜찮은 퍼포먼스를 찍어주며 이만수 감독으로 부터 캠프 MVP로 선정되었다.
3월 11일 삼성과의 시범경기 1차전 팀의 두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2⅓이닝 1피안타 1볼넷 1K 무실점 홀드를 기록하였다.
3월 30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자력으로 아웃카운트를 잡지 못한 채 2안타를 맞고 0.1이닝 만에 내려갔다.
4월 3일 LG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등판, 5이닝 5실점 5삼진을 기록하면서 1승을 얻었다.
4월 9일 두산전에서 선발로 등판해서 5.2이닝 3실점 5삼진을 기록하면서 2승을 기록했다.
이후 다음날 말소되었다. 4일 휴식기가 끼어있기 때문. 말소는 이창욱과 함께 처리되었으며 1군에는 임경완과 이명기가 콜업되었다. 팬들은 하필 올라오는 사람이 왜 임작가냐며 한탄하는 중.
전반기를 마무리했던 시점의 성적은 6승 9패 88.2이닝 59삼진 29볼넷 18피홈런 평균자책점 6.09의 부진한 성적이었으나, 어찌어찌 올스타전에서 김광현을 이어 등판했지만 피홈런 1위의 위엄답게 올스타전에서도 홈런을 내주고야 말았다.
8월 20일 문학 두산전에 선발로 등판, 2⅔이닝 2실점 4피안타 5볼넷 3실점의 부진한 피칭을 했다. 3회를 마무리 짓지 못한 시점에도 불구하고 83개나 되는 투구수를 기록한 데서 보여지듯 전반적으로 매우 부진했다. 이마저도 2회 1사 만루 상황에서 정수빈의 타구를 박정권이 어렵게 잡아내 3루 주자를 홈에서 아웃시켰기 때문에 이정도로 끝난 것, 실제로 3회에 또 만루찬스를 만들어 주고, 밀어내기까지 허용하는 등, 훨씬 큰 실점을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3회에 팔꿈치 이상을 느낀듯 한 징후를 보여줘서, 혹시 부상에 의한 부진이 아닌가 걱정이 되는 상황, 팀은 다행히도 이명기와 최정, 김강민의 활약으로 3:6으로 역전승.
8월 29일 LG와의 경기에서 또 홈런을 맞았다, 그것도 2개나. 8월 29일 기준으로 21경기에서 24 피홈런을 자랑하는 리그 홈런왕이 되어버렸다. 이어지는 9월 5일 롯데와의 경기에서도 1피홈런 적립.
9월 11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9이닝 4피안타 1탈삼진 2사사구 2실점으로 지난 2002년 이후 12년만의 완투승을 거뒀다.
한동안 피홈런을 적립하지 않다가 10월 17일 넥센과의 시즌 최종전에서 서건창의 역대최초 시즌 200안타, 강정호의 유격수 최초 40홈런이라는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며 허용투수로 등극하였다.[21] 이날 맞은 홈런 2개를 포함해서 1시즌 27피홈런으로 시즌을 마감.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중 HR/9이 1.87로 명실상부한 홈런왕으로 등극했다.
팀의 구멍난 투수진을 메꾸기 위해 김광현에 이은 토종 2선발로 선발 로테이션을 돌며 130이닝을 채웠고, 오랜만에 규정 이닝도 채운 시즌.
2.9.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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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9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5회 1사 주자 1, 2루 상황에서 흔들리던 윤희상의 뒤를 이어 구원 등판했는데 박석민의 본헤드성 주루 플레이[22]가 나오며 무실점으로 이닝을 종료하고 승리투수가 되었다.
4월 21일 눕동님을 따라했다.
8월 25일 KIA전에 2회 1사부터 나와 사실상 선발 역할을 했는데 4.2이닝 6K로 호투했다.
8월 30일 kt전에 1회 무사 만루를 만들고 강판당한 선발 윤희상에 이어 등판하였으나 박경수에게 만루홈런을 맞고 말았다.
임시 선발, 롱 릴리프를 주로 맡은 올 시즌을 4승 4패 1홀드 83이닝 78K ERA 6.07로 마감했다.
작년은 어떻게든 이닝을 소화해주며 규정 이닝도 채우는 등 김광현에 이어 토종 2선발로 버텨왔고, 개인 첫 완투도 해봤으나 토종 2선발 자리는 박종훈에게 넘겨주었고 본인은 부진의 늪을 헤어나오지 못하며 그저 패전처리로 전락했다. 과거의 채병용을 기억하는 SK팬들에게는 가슴아픈 시즌. FA를 신청할 것으로 예상되나 그저 보호명단 제외용으로 신청할 것으로 보인다.
2.10. FA
15년 동안 SK에서 선수 생활을 한 만큼, 내 가슴에는 항상 SK가 새겨져 있다고 느낀다. 앞으로도 SK의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설 수 있어 기분이 좋다. -2015년 FA 계약 직후
우선협상기간에 3년(2+1년) 총액 10.5억원(계약금 2.5억원, 연봉 16,17년 2.5억, 18년 3억)에 계약하며 박정권과 같이 유이하게 팀에 잔류했다. 계약후 "15년 동안 SK에서 선수 생활을 한 만큼, 내 가슴에는 항상 SK가 새겨져 있다고 느낀다. 앞으로도 SK의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설 수 있어 기분이 좋다"라고 인터뷰 하며 팀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2.11. 2016 시즌
윤길현의 보상선수로 온 김승회와 땀 듀오를 형성을 할 예정이다.[23]
올 시즌도 정해진 보직 없이 전천후 마당쇠로 기용되며 활약중이다. 개막 이후 3경기에 등판했지만 특별히 보직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홀드나 세이브를 추가하지 못했다.
그러다 4월 9일 LG전에서 선발 박종훈이 5⅓이닝을 소화하고 강판되자 두번째 투수로 등판. 2⅔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고 8회말 김성현이 결승홈런을 때려내며 이날의 승리투수가 되었다.
4월 21일 넥센전에서 ⅔이닝을 1탈삼진 무실점으로 막고 첫 홀드를 추가했다.
그 이후에도 마당쇠 역할을 잘 수행하다가 5월 7일과 8일에 각각 홀드를 추가했다. 등판상황은 자주 있는 편이나 마당쇠의 숙명인지 홀드나 세이브와 같은 눈에 보이는 개인 기록을 쌓기는 힘든 편이다.
연봉 대비 알토란 같은 활약을 하고 있다. 좋을 때의 구위는 필승 계투 못지 않을 정도. SK팬들에게도 웬만해선 욕을 먹지 않는 거의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오히려 팀 내 고액 연봉자들 중에 부진한 선수 연봉을 떼어다 채병용에게 주고 싶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나올 정도.
결국 셋업맨 박정배가 불안해지자 사실상 셋업맨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8월 10일 부상을 당한 박희수를 대신해 마무리로 올라오고 있다.
9월 2일 넥센전에서 0.2이닝밖에 던지지 못하며 부진한 임준혁의 뒤를 이어 등판해 53개의 공을 던졌다.
9월 3일 NC전에서 너클볼로 테임즈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내는 등 2.2이닝 동안 호투하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9월 8일 현재 75.1이닝에 방어율 4.06을 마크하고 있다. 2016시즌이 타신투저 시즌임을 감안하면 진짜 알토란 같은 활약 중이다. 사실상 SK의 중간계투진이 무너진 가운데 홀로 중심을 잡고 있다.
시즌 최종 성적은 83.2이닝 ERA 4.30으로 FA 광풍 속 3년 10.5억을 받은 선수의 활약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시즌 내내 SK팬들에게 거의 까이지 않았다. 후반기에 완벽히 부활하여 팬들의 찬사를 받은 최정도 시즌 초중반 엄청 부진하여 욕을 실컷 먹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2.12. 20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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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즌 극초반기를 보낸 후, 점차 불안한 불펜이 되어 가더니 결국 일을 냈다. 5월 21일 NC와의 경기에서 0.1이닝 3자책점을 기록하고 문승원의 데뷔 첫 QS를 날려먹었다. 이 경기로 평균 자책점은 6점을 찍었고, 2군으로 내려갔다. 대신 올라온 투수는 2군에서 마무리 투수를 맡던 김찬호.
6월 13일 한화 전에서 8:6으로 앞선 7회초 등판하였으나 연속안타를 맞으며 3실점하며 팀이 역전패를 당하는데 일조하였다.
7월 5일 KIA전에서 5회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3실점했다.
2.13. 20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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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엄청나게 빠진 모습으로 스프링캠프에 참여했다. 본인에 의하면 선수 생활의 황혼기를 잘 보내기 위해 무려 16kg나 감량했다고.
살과 함께 구위까지 빠져나간 모양인지, 3월 13일에 열린 NC와의 시범경기 개막전에서 난조를 보인 메릴 켈리의 뒤를 이어 0:2로 뒤진 5회말에 등판하여 나성범에게 홈런을 얻어맞는등 고전하며 1이닝 2실점의 좋지못한 성적을 기록하였다.이날 경기는 팀이 8회초, 9회초에 각각 원종현, 임창민을 영혼까지 탈탈탈 털어서 순식간에 8득점을 해서 8:4로 역전승을 거두었다.
6월 16일 처음으로 1군에 등록, 당일 롯데전에서 9회초 9:3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 1이닝 1K를 기록하였다.
7월 21일 사직 롯데전에서 9회말 4:2 무사 1,2루 상황에서 등판해 시즌 첫 세이브를 올렸다. 마무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멘탈임을 다시 한 번 증명.[24]
7월 25일 문학 두산전에서 4회초 1사 만루 상황에서 등판해 무실점으로 잘 막은 후 5회초도 무실점으로 막으며 이 날의 승리투수가 되었다.
최근 구위와 구속이 살아나며 위기속에서 팀을 여러번 구해주는 키플레이어로써 잘해주고 있다.
10월 10일 두산전 9회말 1사 3루 12:5로 앞선 상황에서 등판해 초구에 이병휘를 병살로 잡아내며 공 한개로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2.14. 20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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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다가 4월 20일 강지광과 함께 콜업되었다.
4월 24일 삼성전 11회말 1점차로 앞선 가운데 등판해 너클볼과 투심을 선보이며 시즌 첫 세이브를 거두었다.
4월 25일 삼성전 10회초에 등판해 아웃 카운트를 하나 잡았으나 2명을 출루시키며 백인식과 교체됐다. 그리고 백인식이 실점하지 않고 경기를 마무리 지으며 시즌 첫 홀드를 챙겼다.
4월 26일 1군에서 말소됐다.
최근 2군을 씹어먹고 있다. 투심과 너클볼을 잘 사용하면서 2군 타자들을 요리하는 중. 방어율은 1.93이다.
5월 31일 콜업됐다.
6월 1일 한화전에서 0.1이닝 동안 3피안타 3실점으로 부진했다.
6월 9일 삼성전에 등판해 2이닝 동안 3피안타 1피홈런 2볼넷 1실점을 기록했다.
6월 10일 박희수와 함께 말소됐다.
10월 30일 현역 은퇴 선언을 했다. 은퇴식은 2020년 정규시즌 중에 진행하려했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대유행으로 인해 박정권과 함께 2021년 10월 3일로 미뤄졌다.
여담으로 너클볼 구종가치 1위를 기록했다(...). 채병용을 제외한 모든 투수는 2위가 되었다.
3. 국가대표팀과의 악연
커리어 내내 준수한 활약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팀과는 지독하게도 인연이 없는 걸로도 유명하다.데뷔년도인 2002년에 신인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의 활약을 하며 부산 아시안 게임 발탁을 노렸으나 조용준, 김진우에게 밀려 발탁되지 않았고,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 때도 역시 윤석민, 우규민, 장원삼 등에게 밀려 탈락하였으며 2008년 시즌에는 당시 2점대 방어율에 선발, 중간계투를 가리지 않는 전천후 활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임태훈에게 밀려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임태훈은 나중에 윤석민으로 교체가 되었으나 더 이상의 교체는 없었고 채병용의 국대 도전기는 이것으로 마침표를 찍게 된다.
결국 병역혜택을 받지 못하고 공익근무요원(토미존 수술 경력)으로 군복무했다.
[1]
부산고는 이 날 경기에서 추신수가 14탈삼진 4피안타 3실점 완투승을 거뒀고 8강전에서는
조영훈의
속초상고, 준결승전에서는
김백만이
덕수정보고의
류제국의 맞대결에서 승리, 결승전에서는 추신수가 진통제 투혼을 발휘하며
이동현과
오승환의
경기고를 이기고 1999~2000 대통령배 2연패를 달성했다.
[2]
경기고는 창단 후 첫 전국대회 우승을 기록했다. 이동현은 결승전에 완투승 및 결승홈런을 기록하며 맹활약했고 대회 최우수선수로 선정됐다.
[3]
채병용,
제춘모,
윤길현,
오승준.
[4]
정규시즌 종료 당시에만 해도 데뷔 첫 해부터 선발진에 합류해 탈삼진왕까지 차지한 KIA의 고졸신인
김진우도 유력한 신인왕 후보였으나 그해 플레이오프에서 최악의 부진으로 인해 신인왕은 사실상 조용준에게 넘어갔다.
[5]
다니엘 리오스에 이은 평균자책점 리그 2위.
[6]
김동주에게 사구 이후 맞서는데다 헤드락까지 걸 정도면 어느정도 전투력에 자신 있고 배짱이 있기에 가능한 일...웬만한 선수들은
김동주에게 맞설 생각조차 못 한다.
[7]
이는 김동주에 부정적인 감정을 가진 팬들로부터 칭송받았다.
[8]
이 날, 유인촌 장관이 시구할 때 마운드 뒤쪽에서 몸을 풀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 자리에서 폭죽이 터진 것. 그래서 1회부터 밸런스가 영 좋지 않았고 시구자는 대차게 까였다.
[9]
그래도 경기 끝나고 조성환을 병문안하여 사과했다. 그런데 하필 조성환이 대인배적인 발언(내가 못피해서 그렇다. 정말 미안하다.)을 하는 바람에 묻혔다.
[10]
그리고 이날 롯데 자이언츠를 대상으로 다큐영화가 촬영중이었는데, 그 영화가 바로
나는 갈매기. 해당
영상을 보면 당시 롯데 구단의 덕아웃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야구선수들이 화나면 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게시한다. 그래서인지 이 제목으로 게시된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 야구 혐오자들의 롯데 선수들을 향한 원색적인 비난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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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감독의 말에 따르자면 SK에서 가장 배짱이 좋은 투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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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병용 본인은 공이 손을 떠나자 마자 끝났다고 생각했고, 이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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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비슷한 사례로 2001 한국시리즈에서 삼진으로 물러남으로써 시리즈를 끝내고 이듬해 한국시리즈에선 끝내기 홈런을 친
마해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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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맞았던 끝내기 홈런은 혹사당한 팔이 한계를 못 이기고 바깥쪽 직구로 난 사인대로 못 던지고 몸쪽으로 던진 공을 나지완이 쳤던 것이었고, 나지완도 선구안보다는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공을 뿌리기 전 몸쪽 공만 무조건 노리겠다고 못박고 친 홈런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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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나지완이 신일고에 입학한 2001년 채병용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 데뷔를 한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상 같은 시기에 고등학교를 다닌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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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선수 중에 공익요원 복무자 비율이 다른 운동보다 큰 건 사실
토미 존 수술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팔꿈치 인대 손상 가능성이 매우 심한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투수는 흔하며 심지어 포수나 유격수, 외야수 등 야수도 토미존 수술을 생각보다 많이 받는다. 또한 투수로 프로가 되었다가 이미 아마시절 당한 혹사 누적으로 얼마 못가 토미존 수술을 받고 야수가 된 케이스도 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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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비단 채병용만의 문제가 아니라,
윤길현에게도 포함되는 문제라는 주장은 근거없다. 윤길현은 상무에 입대했다 2011년에 제대하여 2012년 스프링캠프에 참가할 만큼 전력감으로 기대되는 상황이었기 때문.라고 하는데 실은 윤길현도 입대하자마자 수술과 재활로 상무에서 활약은 없었으며 상태가 심각해서 퇴원과 동시에 전역했다고한다. 따지고보면 채병용보다 더 심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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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헌이 당시 각 팀 에이스를 잘 털어먹기로 유명했는데,
차우찬,
송승준,
류현진,
윤석민,
봉중근과 함께 밥으로 여겼던 투수가 채병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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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상은 이 때 좌측 펜스 근처에서 공을 놓치는 뇌수비를 시전하며 1루타를 2루타로 만들어 5회초에 호수비로 얻은 까방권을 날려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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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이날 승리 투수는 두산의 마무리투수
프록터에게 돌아갔는데, 채병용은 이 경기로 두산 상대 2패를 얻은 반면, 프록터는 SK 상대 2승을 챙겼다. 당시 3승을 거뒀는데 1승 상대는
LG 트윈스였고, 이 후 LG를 상대로 1승을 추가하며 통신사 계열의 팀 상대로만 2승 씩을 챙겼다. 2012년에
kt wiz가 있었다면 6승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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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채병용은 이날 경기 전까지 넥센 선수들에게 홈런을 단 한개도 맞지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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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우의 중견수 쪽 높게 뜬 타구가 아직 처리되지도 않았는데 2루주자
박한이를 추월하면서 2아웃, 그리고 타구는
중견수가 아닌
좌익수에게 잡히면서 3아웃이 적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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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김승회는 시즌 종료 후 친정팀인 두산으로 가며 땀듀오는 볼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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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채병용은 SK의 한국시리즈를 7번 모두 경험했고,
2008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무사 만루를 무실점으로 막은 적도 있다. 이런 채병용의 멘탈을 흔들기에 이번 상황은 역부족이였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