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범

전직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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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282b9><colcolor=#fff> 장기범 張基範

1. 개요

2. 현역 방송인 시절

3. 은퇴 이후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찍은 생애 마지막 사진

4. 약력

• 1927년 5월 5일 인천에서 출생, 고려대학교 정법대학 졸업
• 1948년 서울 중앙방송국 아나운서로 입사
• 1957년 중앙방송국 아나운서 실장
• 1958년 방송문화상 수상
• 1959년 미국 국무성 초청으로 미국의 소리 방송 근무
• 1963년 홍조근정훈장 수상
• 1965년 서울특별시 문화상 수상
• 1966년 춘천방송국장
• 1967년 서울 텔레비전방송국 제작과장
• 1968년 중앙방송국 라디오 제작과장
• 1969년 부산방송국장
• 1970년 중앙방송국 보도부장
• 1971년 대구방송국장
• 1972년 새마을훈장 근면장 수상
• 1973년 한국방송공사 라디오국장
• 1976년 한국방송공사 연수원장
• 1977년 한국방송공사 방송위원
• 1977년 대통령 문화포장 수상
• 1980년 부산방송국장
• 1981년 한국방송공사 방송심의위원
• 1982년 정년퇴임
• 1988년 3월 18일 별세(향년 60세)

5. 에피소드

• 1950년 6.25 전쟁이 터질 당시 스물 세살의 패기 넘치던 청년 장기범은 6월 28일 새벽 방송국이 대전으로 철수하면서 정동 방송국을 빠져나오기 직전 방송실에 행진곡 레코드 판을 걸어놓고 맨 마지막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국군 전사들을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임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후일 장기범이 술자리에서 몇 번 털어놓은 것이 후배 아나운서들의 입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 1959년 미국의 소리 파견 근무를 나가게 된 장기범은 당시 사무관[7] 직책으로 일반 아나운서보다는 조금 많은 봉급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 자신의 사무관 월급을 어렵게 지내던 두 후배 아나운서 들이 나누어 받도록 몰래 조치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자신은 미국의 소리에서 근무하며 미국 국무부의 월급을 받게 되니, 월급을 이중으로 받을 필요가 없다는 이유였다. 이 해묵은 뒷이야기도 당시 장기범의 은혜를 입은 모 후배 아나운서의 취중진담으로 세상빛을 볼 수 있었다.

• 장기범은 고려대학교 선배이자 위대한 시인이며 사상가인 조지훈을 존경하여, 그의 저서인 지조론을 항상 끼고 살았고 평소 말버릇처럼 "한 말씀도 안하셔도 좋으니 그냥 약주라도 한잔 대접하며 뵙기만 했으면 좋겠다" 라고 되뇌었다고 한다. 그런데 조지훈 선생도 장기범에 대한 마음이 각별했으니, 한번은 장기범의 후배 아나운서인 이규항[8]이 고려대 시절 은사인 조지훈을 찾아 뵈었는데 조선생이 이규항에게 " 공보부에서 인물 하나 꼽으라면 장기범 아나운서 하나!" 라고 털어놓았다 한다. 이 둘은 6.25 전쟁 때 피난지인 부산에서 두어 번 정도 스쳐간 사이라고 하는데, 역시 선비는 선비끼리 통하는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 유도 초단에 수준급의 수영과 스케이트 실력을 자랑하는 스포츠맨이었지만 한 번도 남에게 완력을 자랑한 적이 없었고 미국의 소리 파견 시절 영어로 된 뉴스원고를 스스로 번역하여 방송하고 타임 지에서 공모한 새로운 영어단어 모집에 "노케이( 오케이의 반대말)"라는 단어로 당선될 정도로 상당한 영어 실력을 자랑했지만 그는 술에 떡이 되어서도 한 번도 영어를 입밖에 낸 적이 없었다.

• 어느 해 아나운서 동료들과 연안부두로 바람을 쐬러 갔는데 횟집의 야외 탁자에 앉다가 의자가 부서지며 그 자리에 나동그라지자 옆에 있던 신혼부부인 듯한 청년이 장기범을 부축하면서 "괜찮으십니까?"를 연발했고, 장기범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이런 젊은이만 있으면 된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날 장기범은 그 젊은 부부의 술값까지 내주었다고 한다.

• 그리고 어느 날에는 Y대학교 앞의 술집에서 한잔 하고 있었는데, 옆 자리의 대학생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것에 귀를 기울여 보니 허튼 소리가 하나도 없자 장기범은 속으로 '저런 젊은이들만 있으면 나라의 미래 걱정은 없다'고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고, 술자리가 파한 뒤 그 젊은이들 술값까지 대불하고 돌아갔다는 얘기도 있다.

• 장기범이 현역 방송인으로 활동하던 시절 결혼식 주례를 맡아달라는 요청이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그 때마다 장기범은 "제가 인생에 대해 뭘 안다고 주례를 맡습니까" 라면서 정중히 거절했다. 어느 날은 한 지인이 청첩장에 주례로 장기범의 이름을 넣어서 대량으로 인쇄했으니 주례를 서 주셔야 겠다고 억지로 요청하자 장기범은 마찬가지로 아래와 같이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 1960년대 새로이 개국한 TBC, MBC 등 민영 방송국에서 KBS의 간판 아나운서 장기범을 스카웃 하기 위해 적지않은 추파를 던졌고, 당시 그다지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던 장기범으로선 KBS보다 훨씬 좋은 대우에 끌릴 법도 했지만 결국 그는 KBS를 떠날 수 없다는 강한 신념으로 모든 유혹을 뿌리친 채 끝까지 KBS에 남았다. 그러나 민방의 이적 제의를 받고 옮겨가는 다른 후배들은 굳이 잡으려 들지 않았다.[9] 가난의 고통은 나 하나만으로 족하다는 의미였다.

• 부산방송국장 재임 시 전임 국장이 방송국에 남기고 간 막대한 부채를 해결하려고 적지 않게 고생했다고 한다. 손님 접대는 항상 방송국 부근의 허름한 음식점에서 해결했고, 관사에 살면서 한겨울에 손수 연탄불을 갈아 넣는 등의 노력으로 전임자의 빚을 상당히 줄일 수 있었는데, 장기범이 부산방송국을 떠난 뒤 취임한 후임 국장이 인계받은 빚에 대해 "이것은 장기범 국장이 진 빚이다" 라고 서울 본사에 고발하려 했지만, 장기범의 성품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부산방송국 직원들이 "오히려 전임 국장 빚을 이정도로나마 줄여놓고 가셨다"고 강력히 증언하여 누명을 피할 수 있었다.

• 대구방송국장 역임 시절에 장기범은 방송국 입구에서 라이터를 팔던 한 잡상인과 술친구가 되었는데, 처음에 그 라이터 장수는 장기범을 경계하였지만 술자리가 거듭되면서 장기범이 자신을 진정한 친구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을 열면서 몇 년간 우정을 나누었다고 한다. 이렇듯 장기범은 서로 마음만 통하면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누구든 친구로 받아들이는 넓은 마음씨의 소유자였다.

• 1980년 11월에 벌어진 언론통폐합 당시 부산방송국장으로 재직 중이던 장기범은 그 해 크리스마스 날 후배 방송인들이 보고 싶어서 서울로 올라왔고, KBS뿐 아니라 통합당한 TBC, DBS와 보도기능을 상실한 CBS 출신 간부급 아나운서들을 모아 술자리를 가졌다. 그날 암담하고 답답한 심정으로 술잔을 기울이다 만취한 장기범은 밴드의 반주에 맞춰 다 같이 아리랑을 부르다가 마지막에 울분에 찬 한마디를 남겼다.

• 1987년 4월 28일, 장기범을 존경하는 모든 후배 아나운서들이 비밀리에 성금을 모아 깜짝 환갑 잔치[10]을 열어 주었다. 그냥 평소처럼 조촐하게 술 한잔 하는 자리인 줄 알고 후배들과 같이 식당에 도착한 장기범은 그의 환갑을 축하하는 선후배 동료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방송계 최강 주당으로 인증받은 장기범이었지만 참석한 모든 이들이 연신 따라주는 축하주에 대취하고 말았다. 장기범은 취한 와중에도 선배들의 축하 인사말에 귀를 기울이며 답례를 잊지 않았고 후배들에게는 따뜻한 충고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줄곧 꼿꼿한 모습을 보였다. 이날은 전혀 슬픈 일 없이 경사스럽기 그지없는 자리였는지라 다 함께 마음껏 마시면서 신나게 목청 돋구어 노래 부르고 웃으며 즐겼는데, 정작 식당 주인과 종업원들은 유명 아나운서들이 오프라인에서 원 없이 노는 보기 힘든 광경을 넋 놓고 지켜보다가 술과 고기가 얼마나 들어갔는지 놓치는 바람에 음식 값은 대충 치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 장기범은 평소 하급자에게도 경어를 쓸 정도로 인자한 성격이었지만, 방송은 항상 정확한 사실만을 전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던 그인지라 후배들의 방송중 실수엔 깐깐하고 매서운 호랑이 선배이기도 했다. 어느 날 방송국에서 라디오 뉴스를 듣고 있는데 앵커를 맡은 A모 아나운서가 전라북도 옥구군[11](沃溝郡)을 옥강군이라고 읽었다. 당시의 뉴스 원고는 한자 투성이였고, A아나운서는 도랑 溝(구) 자를 익힐 講(강)으로 오독한 것이었다. 뉴스가 끝나자 마자 장기범은 A아나운서는 물론 그 동기들까지 전부 아나운서실로 호출했고 종이에 전라북도 옥구군(全羅北道 沃溝郡)을 한자로 써서 A에게 읽어 보라고 하자 그는 또다시 전라북도 옥강군 이라고 당당하게도 읽는 것이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장기범이 벽에 걸린 세계지도를 가리키며 "이 사람들 안되겠구만, 저기 지도에서 뉴질랜드를 찾아봐요!" 라고 버럭 호통을 쳤고, A를 비롯한 아나운서들은 퍼렇게 질려서 아프리카 부근을 더듬거리고 있었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 1970년 5월 서거한 영친왕의 인산[12]에 모든 방송국이 출동하여 그 실황을 중계했고, 물론 KBS도 예외는 없었다. 그런데 영친왕 인산 중계를 맡은 B모 아나운서가 영친왕의 운구를 뒤따르는 조문객들이 든 만장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 그냥 "지금 수많은 조문객들이 족자를 들고 운구를 뒤따르고 있습니다" 라고 멘트를 쳐버렸다. 이 방송을 본 장기범이 이를 가만히 둘 리가 없었고, 방송국으로 복귀한 B아나운서를 불러서 "중계 수고했어요. 수고는 무슨 헛수고만 했다[13] 그런데 이 사람아, 족자가 뭐야? 만장이지 만장!" 이라고 한바탕 꾸지람을 늘어놓았다. 된통 혼쭐이 난 B는 뒤돌아서서 홧김에 걸직하게 내뱉기를, "아놔 X팔, 족잔지 만장인지 누가 알았어야 말이지!!!"

• 평소 말술을 자랑하던 장기범이었지만 아무리 만취해도 곧은 자세와 언행을 유지하던 주선(酒仙)의 경지에 도달한 인물이었다. 술자리에서 격앙되거나 눈꼴 사나운 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항상 "자 술 한잔 하시죠, 네?" 라며 조용히 달랬고, 무지막지 퍼 마신 다음날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칼같이 출근하는 꼿꼿함을 보이며 1948년 입사 후 1982년 정년퇴임 때 까지 34년 간 재직하는 동안 무결근 무지각이란 기록을 세운 바 있다.[14]
  장기범이 춘천방송국 국장으로 좌천되었을 당시 그가 술만 마시고 산다는 험담이 서울에 퍼졌다는 얘기를 들은 부하 직원이 장기범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자 아래와 같이 담담하게 말했다고 한다.

• 변웅전이 아나운서가 된 계기를 제공해줬다. 변웅전은 어린 시절 라디오에 경품 응모를 했는데 아버지와 함께 장기범 아나운서의 라디오 프로를 듣고 있다가 "서산에 살고 계시는 변웅전 씨가 당첨되었습니다"라는 안내멘트에 감명을 받고 아나운서를 지망하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