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1 01:30:41

도원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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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사성어
복숭아 동산 맺을 옳을
유비, 관우, 장비 복숭아나무 숲에서 의형제를 맺었다는 이야기를 뜻하는 말. 삼국지평화 초반부 및 삼국지연의는 1회에서 황건적의 난과 도원결의를 다루며 시작한다. 몇몇이 의기투합하거나 의형제나 의남매, 의자매를 맺는 일 자체를 뜻하는 일종의 관용어( 사자성어)처럼 쓰이기도 한다.

2. 정사

도원결의는 정사 삼국지에는 직접적으로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 유관장 세 명이 서로 형제처럼 지냈다는 기록은 정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선주(유비)가 평원상이 되자 관우와 장비를 별부사마로 삼고 부곡을 나누어 통솔하게 했다. 선주는 두 사람과 함께 잠자며 같은 침상을 썼고 은혜가 형제와 같았다.
촉서 관우전
나(관우)는 조공(조조)께서 후히 대우해주시는 것을 잘 알고 있으나, 유장군(좌장군 유비)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고 함께 죽기로 맹세했으니 이를 저버릴 수는 없소.
촉서 관우전
장비는 자가 익덕이고 탁군 사람이다. 젊어서부터 관우와 함께 선주를 섬겼는데, 관우가 몇 년 연장이어서 장비는 그를 형으로 섬겼다.
촉서 장비전
지금 한왕(한중왕 유비)은 일시적인 공로에 근거하여 한승을 높은 신분이 되게 했지만, 마음속의 평가가 어찌 군후(관우)와 동등하겠습니까! 게다가 한중왕과 당신은 비유컨대 한 몸처럼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고 화와 복도 같이 합니다.
촉서 비시
관우와 유비는 도의상으로는 군신 관계지만, 은혜는 마치 부자의 관계입니다.
위서 유엽

당대에도 널리 퍼진 사실이었는지 타국의 인물들도 이 셋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 후세 사람들이 이런 기록들을 보고 "저 3명이 실제로 의형제이지 않았을까?"라고 상상해서 만들어진 것.[1] 게다가 실제로도 이들이 의형제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당대의 역사서에서 숱하게 나온다. 그 증거가 바로 위의 기록들.[2]

흔히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의 창작으로 알려져 있으나, 원래는 삼국지평화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그 유명한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날 수는 없었지만,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죽기를 원합니다!'도 이미 삼국지평화에 있었던 대사이다. 물론 나관중이 연의를 쓸 때 삼국지평화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은 아니고 일부 대사를 살짝 각색하기는 했다. 즉, 이름을 알 수 없는 삼국지평화의 저자가 지어냈거나 또는 삼국지평화가 만들어지기 전 민간 설화로 전해지고 있던 것을 수록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다른 인물들의 기록으로 보아 당시에는 친한 사람들끼리 의형제를 맺는 풍습이 흔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등 한수라던지. 사실 지금도 중국에서는 꽌시 문화가 있어 사이가 깊어지면 거의 친형제같이 지내는 경우가 꽤 있다.

동향 출신인 유비와 장비는 몰라도 불분명한 일로 탁군으로 망명한 타향인인데다 자존심이 강한 관우가 두 사람과 각별한 사이가 됐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세 사람은 출신과 성격에 상관없이 서로 금방 뜻이 통할만큼 잘 맞는 면이 있었던 걸로 보인다. 그래서 반평생을 함께 하며 셋이서 죽을 때까지 의리를 지켰던 듯하다.

이 세 명 가운데 관우와 장비는 서로 반대되는 성격을 가졌는데, 삼국지의 저자인 진수는 두 사람에 대해 관우는 사대부에게는 오만하고 소인에게는 관대했다고 서술하였으며, 장비는 군자는 공경하고 소인을 박대하였다고 서술하였다. 허나 이렇게 반대되는 두 사람은 최후만은 어느 정도 비슷했고 이 때문에 진수는 두 사람도 결국 단점을 극복 못해서 망한 것이라고 직접적으로 비판하였다.

3. 원문

飛曰:「吾莊後有一桃園,花開正盛;明日當於園中祭告天地,我三人結為兄弟,協力同心,然後可圖大事。」玄德、雲長,齊聲應曰:「如此甚好。」次日,於桃園中,備下烏牛白馬祭禮等項,三人焚香,再拜而設誓曰:「念劉備、關羽、張飛,雖然異姓,既結為兄弟,則同心協力,救困扶危;上報國家,下安黎庶;不求同年同月同日生,但願同年同月同日死。皇天后土,實鑒此心。背義忘恩,天人共戮。」誓畢,拜玄德為兄,關羽次之,張飛為弟。祭罷天地,復宰牛設酒,聚鄉中勇士,得三百餘人,就桃園中痛飲一醉。
장비가 말했다. "내 집 뒤에 복숭아밭이 있는데, 꽃이 한창 성할 때요. 내일 동산에서 천지에 제사를 지내고, 우리 셋이 의형제를 맺어 힘을 합치고 마음을 함께 해야, 큰 일을 도모할 수 있을 테요." 현덕 운장이 일제히 대답하였다. "좋은 생각이네." 다음날, 복숭아밭에서 검은 소와 흰말을 갖추어 제물로 삼고, 세 명이 분향한 뒤, 두 번 절하여 맹세하였다. "유비, 관우, 장비는 비록 성씨는 다를지언정 의형제를 맺은 즉, 마음을 함께하고 힘을 합추어, 어렵고 위험할 때 서로 도울 것이다. 위로는 나라에 갚고, 아래로는 뭇사람을 평안케 할 것이다. 한날한시에 태어나지 않았으나 한날한시에 죽기를 바라며, 하늘과 땅의 왕이 우리 마음을 굽어 살피어, 의와 은혜를 저버리는 자는 하늘과 사람들이 벌하여 죽을 것이다." 맹세를 마치고 절하여 현덕을 맏형으로, 관우를 둘째로, 장비를 막내로 삼았다. 천지에 제사를 다 지내고 다시 소를 죽이고 술을 가져왔으며, 고을 중의 용사들을 모아 300여 명을 이루니, 복숭아밭에서 취할 때까지 마셨다.

도원결의는 삼국지연의의 제1장에 등장하는 내용으로, 대략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황건적에 맞설 관군을 모집하는 방을 보고 난세를 탄식하던 돗자리 장수 유비에게 장비가 다가와 "사나이가 되어서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해야지 어찌 탄식하기만 하고 있는가?"라고 물으면서 술집에 들어가서 술자리를 가진다. 여기에 의용군에 지원하려던 관우가 합세, 함께 천하를 평정하자면서 그날 바로 복숭아 밭에 가서 의형제를 맺고 황건적과 싸울 의병을 일으킨다. 덤으로 탁군의 청년 수백 명도 함께 도원에서 술을 마시고 의병이 되었다. 이 때 유비가 만 28세, 관우가 만 27세, 장비가 만 22세로 형제의 서열이 정해진다.[3][4]

삼국지 관련 매체를 읽다가 이 설명문을 읽으면 뭔가 많이 빠진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런데 원래 삼국지연의의 도원결의는 이렇게 아주 단순한 내용이다. 유비가 부모님께 차를 가져다주려다 도적에 빼앗기고 장비가 찾아주는 에피소드라든지, 후에 장비와 유비가 재회하여 관우까지 함께 유비의 어머님을 뵙고 유비 어머니가 준비한 술로 도원결의를 한다든지, 옛 악연 때문에 서로 치고받던 관우와 장비를 유비가 뜯어 말리며 서로 얼굴도장을 찍었다든지[5] 장비가 바위 밑에 넣어둔 고기를 관우가 바위를 치우고 가져간다든지 하는 에피소드들은 모두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 등의 훗날 작품들에서 첨가된 것이다. 삼국지연의 원본과 원문에 충실한 정역본으로 읽으면 딱 저 내용만 나온다.

후대에 첨가된 에피소드에 따르면 도원결의 직전, 유비의 집에 세 사람이 모이고 유비 어머니가 좋은 날이니 좋은 술이 필요할 것이라면서 아껴뒀던 술을 꺼내 도원결의를 맺는데, 이 때문에 도원결의의 장소가 유비네 복숭아밭으로 오해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원문에 따르면 도원결의를 맺은 장소는 장비 소유의 복숭아밭이다. 상식적으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가난한 유비네 집에 복숭아밭이 있었다면 돗자리를 짜면서 생계 유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밭을 일구면서 살았을 것이다.

4. 분석

치밀한 복선, 소설의 장치, 적합한 개연성 등을 따지는 현대 소설의 관점에서 보면 도원결의는 굉장히 구시대 감성에 인기를 끄는 굉장히 갑작스럽고 순진무구한 전개다.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오로지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의기투합"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유비, 관우, 장비가 그 전에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에 대해선 그나마 잘 알려져 있었던 게 유비. 연의에서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으며 돗자리 장수를 했다는 것, 공손찬과 함께 학문을 익혔다는 것, 유가촌이 있어서 도움을 받았다는 것 등이 도원결의 이전에 있었다고 알려진 사실들이다. 그에 비해 관우나 장비는 정말로 알려진 내용이 거의 없으며 대부분 후대에 창작되었거나 덧붙여진 내용들이다. 복잡해져 따질 것이 많아진 현대 시대 감성 기준으로는 이 장면에 대해 납득하지 못할 이유를 따지자면 끝도 없고, 트집을 걸려고 하면 역시나 끝이 없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도원결의는 고전소설로서 삼국지의 도입부를 장식하는 가장 강렬한 장면이다. 유비, 관우, 장비의 만남이 합리성이나 개연성을 떠나 직선적이고 간결하기 덕분에 도원결의에서 보여주는 의리와 우정이 더욱 빛난다. '아무 관련 없던 세 남자가 세상을 구하기 위한 대의 아래 우정으로 똘똘 뭉쳤다.' 라는 대목이 주는 남자의 로망[6] 간단하고도 강렬한 충격, 비루한 신세였음에도 불구하고 큰 뜻을 품고 살던 유비가 그의 뜻을 함께하는 두 아우를 만나는 '우연성' 때문에 삼형제의 '운명적인 관계' 역시 더욱 돋보인다. 말하자면, '어차피 맺어질 사람들은 맺어지게 마련'인 것이다.

게다가 지식인들보다는 주로 평범한 농민 상대의 길거리 강담극으로 시작한 삼국지연의의 전체 흐름을 보면 유비, 관우, 장비의 과거를 길게 서술하면 과거 기준으로는 관객들이 지루해할 우려가 있다. 훗날 난세를 헤쳐나가 천하를 다투는 스토리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기에 나관중 쓸 필요가 없는 내용이라고 간주했을 수도 있다.[7] 삼국지에서 중요한 것은 생사를 같이하기로 결의한 삼형제가 대륙을 누비며 그 우정과 결의를 끝까지 지켜나가는 장면이지, 이들의 과거가 어떠했는가는 비교적 그 중요도가 떨어진다. 당초 난세에는 그 인물의 과거가 어땠느냐보다는 지금 나와 함께 할 수 있는가가 중요했을 것이다.[8]

이는 고전소설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삼국지연의는 고전소설인 만큼 현대소설과는 문체와 서술법이 다르다. 당시에는 만담가에 가까운 강사[9]들이 관중을 모아놓고 판을 벌여서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려면 그리 의미가 없어 보이는 과거사를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는 것보다는 강렬하고 멋진 묘사, 그리고 그들의 주요 행적 위주로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고전소설도 이와 마찬가지로, '영웅은 영웅을 알아보고, 대의를 위해 셋이 함께 떨치고 일어났다' 라며 도입부를 정리하고 바로 중요한 내용으로 들어가는 것이 몰입감 넘치고 내용도 깔끔한 것이다. 이런 전개가 현대인에게는 먹히지 않을 뿐.[10]

어찌보자면 정서의 차이라고 할 수 있으며, 도원결의 대목을 읽는 현대인들의 반응이 '뭐 이렇게 뜬금없어'인 것도 시대가 지나면서 독자들의 정서와 취향이 변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현대 삼국지 관련 매체에서는 도원결의 장면 이전에 짧게라도 삼형제가 엮이는 과정을 묘사한다. 일부 삼국지 판본에서도 이 셋이 어떤 일로 우연히 엮인 후 다시 재회하여 그때부터 의기투합했다는 식의 묘사가 나오며, 평역자나 편집자의 취향에 따라서 그 내막이 상세하게 달라진다. 독자들 또한 자신들의 취향에 따라 선호하는 판본이 달라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편으로는 현대소설의 관점에서 본다고 해도, 도원결의의 구성을 꼭 부적절하다고 평가할 수만은 없다. 작중의 모든 사건에 대해 독자에게 그럴싸하게 납득시키는 것이 작가의 책임이지만, 소설의 분량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다. 그래서 작가는 작중의 모든 사건에 대해서 일일이 기승전결을 부여할 수가 없다. 삼국지연의는 유관장 세 사람이 만나 의형제가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유관장 삼형제가 한말의 난세를 헤쳐나가는 이야기다. 세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삼형제가 되는 것은 이야기의 발단이며, 분량이 정해진 소설이다보니 "셋이 출발하기 전에 원래부터 이랬었다" 하는 식으로 간단한 배경이야기처럼 서술하는 것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후의 극 전개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부분이라면 현대 소설에서도 굳이 시시콜콜하게 서술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이들이 왜 같이 만나 형제가 되었냐가 아니라, 서로 형제가 된 그들이 어떻게 난세를 헤치며 끝까지 배신하지 않고 맹세를 지켰는지이기 때문이다. 다만 현대까지 소설의 작법은 등장하는 인물, 사건 및 소재의 배경에 대하여 제한된 분량을 사용하면서도 독자가 납득할 수 있는 개연성을 최대한 제공하는 기술을 발전시켜왔는데, 이는 독자의 요구가 그러한 방향으로 변화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에 쓰여진 삼국지연의에서는 유관장 삼형제의 과거 이야기를 추가하는데 조금 더 신경을 쓰고 공을 들이게 된 것이다.

관점을 달리하면, 도원결의 장면의 개연성을 위해서는 그 앞부분에 서술이 필요한 내용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도 생각해볼 수 있다. 셋이 의형제가 되는 과정에 대해 충분한 개연성을 확보하려면 한나라 말기의 사회상에 대한 묘사가 필수적이며, 일개 민간 의료사 겸 종교 교주가 휘하 무리들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나라의 존망을 위협한 과정에 대해서도 설명이 필요하다.[11] 또한 한나라 조정이 어떻게 썩어갔으며, 당대 제후들이 어떻게 해서 군벌로 성장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하다보면, 한나라의 정치와 군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언급하게 될 것이다. 이 정도 설명을 써놓은 후 삼형제가 걸어온 과거를 슬쩍 양념으로 곁들이면 충분한 개연성이 확보될 것이며, 도원결의 장면만 가지고 하나의 완결된 시나리오를 만들 수가 있다. 그리고 이쯤 되면 이것은 이미 소설이 아니라 역사 교양서적의 수준에 달해 있다.

물론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저것은 지나친 과장이 아니냐, 도원결의의 개연성이 부족하니 보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저렇게까지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반론하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물론 이는 옳은 말이다. 예를 들어 위의 예시에서 '오행도참설부터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부분은 거의 정신줄 놓은 드립의 영역에 속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과장 역시 어떤 작품이든 그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에 대해 완벽한 인과관계와 기승전결을 제시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며, 어떠한 지점에서 그런 설명을 중단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설명하는 예시로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즉 어떤 요소의 인과관계를 완벽하게 설명하려 하면 그 설명에서 또 새로운 요소가 등장하게 되기에 그에 대한 새로운 설명이 필요해진다. 따라서 완벽한 설명을 위해서는 사실상 무한한 분량이 필요하다. 결국 고전소설이든 현대소설이든 <여기까지만 설명하면 독자들이 충분히 납득할 것이다> 라고 짐작되는 지점에서 더 이샹의 설명은 생략해버리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다만 고전 독자에 비해 현대 독자들의 경우 그 '지점'의 위치가 좀 더 멀어지고 그 사이의 영역에 대해서도 디테일한 부분까지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다. 최근의 삼국지연의 매체에서 도원결의 장면 전에 유관장 3인이 미리 만나 얽힌 이야기 이외에도 배경인 한나라 말기의 혼란상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함께 설명해주는 경우가 많아진 것 역시 결국은 이 때문.

또한 이는 독자의 관점 변화로도 설명할 수 있는 문제이다. 중국 고전 전통에서 <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협객>은 아주 전형적인 영웅상 중 하나였고, 이런 협객들이 사소한 계기로 뜻이 맞아 서로 생사를 함께하는 것 역시 전형적인 클리셰였다. 그러니 그저 술집에서 뜻이 맞는 사람끼리 만나 대뜸 의형제를 맺고 생사를 함께하기로 맹세하는 것이 (최소한 창작물 속에서는)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며, 그들의 영웅호걸다움을 보여주는 면모로 여겨질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고방식이 변화한 현대인 독자들의 눈에 그것은 이상한 일로 비치기에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설명해줄 복선을 만들어줄 필요가 생긴 것이다.

문학적인 상징으로 도원결의를 해석하자면, 도원향, 즉 복숭아꽃이 만발한 세계는 고대 중국인들의 신화였던 서왕모의 복숭아 과수원부터 유래되어서 도연명의 도화원기를 통해 중국인들이 꿈꾸는 완벽한 이상향의 세계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도연명의 도화원기 이후로 도원향은 성당 시절의 왕유와 이백의 시를 통해 이상향의 상징으로 다시금 각인되었고, 북송의 소동파는 도연명을 중국 제일의 시인으로 숭상하면서 도원향은 중국을 넘어서 한국과 일본같은 한자문화권 국가에서도 이상향의 대명사로 불후의 명성을 가지게 되었다.

삼국지연의를 쓴 나관중에게도 이상향으로서의 도원이라는 문학적 상징이 매우 익숙하였을 것이다. 나관중이 쓴 도원결의 장면은 삼국지연의 초반부의 절정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지연의의 세 주인공,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는 도원향이라는 이상향에서 신성하고 순수한 약속를 맺었다. 도원에서의 결의는 이상의 상징이고, 질서의 상징이고 신뢰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평화로운 낙원으로서의 도원향은 유비 삼형제가 결의후에 뛰어들게 된 파천황의 세계인 한말 위진남북조의 대혼란이 벌어지는 현실세계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후한 말부터 불어닥친 소빙하기로의 기후변화는 온갖 자연재해를 불러왔고, 그 결과 황건적의 난이라는 거대한 폭발로 현세지옥의 절정을 이루었다. 후한 육천만명의 인구가 백년도 못가서 2천3백만명으로 무려 60%의 인구가 사라지는 종말론의 세계였다[12]. 도원향의 평화롭고 풍족한 이상향과는 달리 후한말과 위진남북조 시대의 현실은 식인행위까지 벌어지는 약육강식의 냉혹한 본능이 횡행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아포칼립스적인 세계를 초래한 황건적의 난 역시 공교롭게도 유비 삼형제와 대비되는 또다른 삼형제인 장각, 장보, 장량에 의해서 일어났다.

나관중은 도원향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간에 삼국지연의 초반부 절정장면에 배치함으로써 위진남북조 시대에 못지않게 참혹한 원말명초의 혼란기에서 중국 민중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상향인 도원향에 대한 희망을 삼국지연의의 주인공들에게 투영했었을 것이다.

도원결의는 서왕모의 복숭아 과수원을 연상시키는 천상의 이상적인 공간에 사는 삼국지 연의의 세 주인공들을 마치 환웅 신화같은 천손 신화의 영웅들처럼 참혹한 현세지옥의 세계로 하강시킴으로써 천상의 이상적인 질서와 유토피아를 지상에 재현하려는 상징이었을 것이다. 또한, 조셉 캠벨의 신화비평에 기초해서 분석하자면 결의가 이루어지는 도원은 '모험에의 소명'이 부여되는 평화로운 일상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도원결의를 이후의 유비 삼형제가 걸어갈 혼란스러운 중국 대륙과 도식적으로 비교하자면, 아래와 같다.

도원 ↔ 세속
천상 ↔ 지상
이상 ↔ 현실
질서 ↔ 혼란
평화 ↔ 전쟁
신의 ↔ 배신
유비 삼형제 ↔ 장각 삼형제

위와 같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나관중이 신화적인 공간[13]인 도원을 교묘하게 배치한 이러한 대비효과는 유비 삼형제에게 신화적인 아우라를 부여함으로써 그들의 영웅적인 행보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효과를 준다. 또한 유비 삼형제의 비극적인 결말에 상심할 독자들에게 주인공 삼형제가 죽더라도 다시 돌아갈 이상향으로서의 발할라 혹은 발리노르같은 공간인 도원을 미리 제시함으로써 위안과 희망을 주는 효과 또한 있었을 것이다.[14]

5. 결론

중요한 것은 도원결의 이전이 아니라 도원결의 이후 유관장 삼형제의 행보다. 평생토록 겪었던 험난한 시련은 물론이요, 조조 손권을 비롯한 여러 적들의 수많은 공격과 유혹에 삼형제는 굴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서로 저버리지 않으며 오히려 의기투합하여 난세를 헤쳐나간 덕에 도원결의는 비록 허구의 이야기일지라도 이들의 영원한 우정을 일컫는 대명사가 될 수 있었다. 군신과 형제와 친구와 부부 사이에 배반과 통수가 밥먹듯이 일어났던 후한 말의 난세였기에 이들의 의(義)는 그런 진흙탕 속에서 더욱 빛날 수 있었다. 굳이 후한 말 난세가 아니더라도 역사에서는 동서를 막론하고 권력 싸움에 많은 피가 흘렀던 사례는 상당하며, 심지어 혈연도 뭣도 없었던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런데 혈연관계도 아니었던 사람들끼리 난세에 뭉쳐 숱한 위기를 맞닥뜨려도 죽을 때까지 배신하지 않았다는 건 상당히 깊은 인상을 주기 좋은 예다.

난세이던 당시엔 상관 양아버지를 죽인 여포, 의심이 든다고 자신을 친절히 맞이해주던 옛 친구와 그 일가족을 죽인 조조[15], 사세삼공 명문가이고, 형제이지만 싸우지 못해 안달이 난 원소 원술, 황족이지만 망해가는 황실을 외면한 채 황제놀이를 하던 유표 유언 등도 있었다. 누구보다 사람들 눈을 신경써야 할 군웅들조차 이랬는데 일반 사람들이야 오죽했겠는가.

이런 험난한 시대에 유관장 삼형제는 난세에 몸을 던진 작은 세력으로 수많은 고비를 겪고 아예 적에게 풍비박산이 나 부득이하게 서로 떨어지게 된 일도 여러번 있었고, 더 크고 강한 세력들의 유혹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한날 한시 함께 살았던 생전은 물론, 비록 한날 한시 같이 죽지는 못했을지언정, 유비, 관우, 장비는 자신들이 죽는 그 순간까지 단 한 번도 서로 배반하지 않았다. 정사에서든 연의에서든. 관우만 하더라도 조조에게 항복한 뒤 엄청난 호의를 받았지만 모두 저버린 채 결국 빈털터리에 객장 신세인 유비에게 돌아갔고 최후에는 손권에게 사로잡혀 죽는 순간에도 그 의리를 저버리지 않았다. 유비와 장비는 관우를 죽인 오를 치는 것이 무리인 줄 모를 바보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관우에 대한 의를 저버리지 않았고 결전을 준비했다. 비록 이릉대전이 촉한의 미래를 사실상 결정한 대실패로 끝났으나 유비는 아우들을 위해 이를 실행에 옮겼다. 유비가 냉정히 판단하여 이릉대전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유비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었을 것이며 오늘날 그의 위상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비록 촉한은 실패했지만 2천년 가까이 동아시아에서 꾸준히 회자되는 이들은 사실 역사의 승자나 다름 없다.

애당초 관우의 일화를 필두로 유비 세력 자체가 의리남들의 모임이기도 했다. 유비가 여포의 배반으로 서주에서 탈출해 조조의 객장으로 머물 당시 조조는 관우는 물론 장비, 미축, 손건, 간옹 등 유비의 핵심 인재들에게 관직을 주며 은근슬쩍 유비의 세력과 인재를 와해시켜 자기 휘하로 흡수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특히 장비에게는 중랑장 벼슬까지 내렸고, 장비의 아내 하후씨는 위략에서는 납치당했다고 언급하나 포섭하고자 정략결혼으로 장비를 하후씨 집안 사위로 끌어들이려다 실패한 것을 납치로 언플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오나라의 주유는 적벽에서 관우와 장비를 직접 다루어본 사람인데, '관우와 장비는 천하의 용장이지만 오직 유비에게만 충성하니, 일단 유비를 잡아놓고 온갖 부귀영화를 줘서 무능한 인간으로 만든 뒤에 내가 저 둘을 다루면 천하통일도 꿈은 아니다'라며 손권에게 구체적인 계획까지 제안했다. 손권이 위나라와 오나라 사이에 완충지역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유비를 놓아주는 바람에 이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 때도 주유는 유비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를 무력화하고 관우와 장비를 수하에 두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유비를 죽인다면 저 둘을 따르게 할 가능성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을 암시한다.

사실 유관장 삼형제를 제외하더라도 삼국지에서 손책 주유, 한수 마등 같은 경우처럼 의형제를 맺은 다른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한수와 마등 같은 경우는 연의 기준으로 마등이 죽을 때까지 한수와 친했지만 아들인 마초 대에서는 조조의 농간으로 한수와 갈라지면서 빛이 바랬고, 정사에선 아예 한수와 마등이 서로 대립했다 뭉쳤다를 반복했기 때문에 의형제는 말뿐이지 사실상 서로를 이용하는 쪽에 가까웠다. 손책과 주유의 경우는 사이가 좋았지만 그들의 관계가 시험받을 정도로 큰 위기가 없었다. 주유의 신의와 충성심을 증명하는 사건으로 적벽대전이 있긴 하지만, 이건 손책 사후 손권과의 일이라서 유비 삼형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옅다.

결국 도원결의는 그 자체보다도 맹세를 한 유관장 삼형제가 이후 온갖 유혹과 위기를 맞닥뜨려도 흔들리거나 굴하지 않고, 숱한 역경들을 겪었어도 끝끝내 서로 배신하지 않으며 그 결의를 끝까지 지켜냈기에 특히 돋보이는 것이다. 삼형제는 서로 20대에 만나 관우가 패사할 때까지 수십 년을 함께 했다. 지금보다 평균 수명이 짧고 혼란했던 천몇백 년 전 시대에서 수십 년을 굳건한 결속력으로 이어진다는 건 좀처럼 볼 수 없는 일이다. 고대까지 갈 것도 없이 현대인들 역시 수십 년은 고사하고 단 몇 년이나 몇 개월이라도 굳건한 신뢰가 이어지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이런 점이 당대인들은 물론 후세까지도 사대부나 민중, 삼국지연의를 형성한 이야기꾼들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큰 울림과 감동을 줬던 것이다. 중국 뿐만 아니라 삼국지가 널리 퍼진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도원결의가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까지도 의리의 상징으로 굳어진데는 다 이유가 있다.

도원결의에서 사소하지만 재미있는 부분으로 나이 문제가 있다. 정사 삼국지에서는 일단 유관장 3인의 생년월일은 명시되지 않았는데, 다른 자료들까지 참고하면 유비는 161년생이고 관우는 160년생 혹은 162년생, 장비는 165년생으로 장비가 확실히 막내인 것은 맞다. 문제는 관우인데,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는 민간설화의 162년 관우 출생설을 채택하여 나이순으로도 유비>관우>장비가 되도록 설정하고 있다. 다만 장비가 167년생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관우가 160년에 태어났다는 설도 있는데, 이를 채택한 것이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다. 여기에서는 실제 나이로 따지면 관우가 유비보다 한 살 많지만 관우가 스스로 맏이가 되는 것을 사양하고, 인덕의 그릇이 큰 유비에게 큰형 자리를 양보한 것으로 나온다. 항우와 유방도 반진전쟁 당시 유방이 나이가 많았지만 세력이 큰 항우가 형을 맡은 바 있다.[16]

6. 기타 창작물에서

원작의 도원결의가 현대인들의 시각에서는 매우 뜬금없는 장면이기 때문에, 도원결의 전에 배경이 될만한 뭔가를 끼워넣는 것은 삼국지 각색물에서는 매우 흔한 일이며 중국에서도 도원결의 이전에 유관장 삼인이 유주로 오기 전까지 겪은 사연과 관련된 각종 민담이 매우 많이 전해진다.

6.1. 민담

민담에서는 도원결의의 전후 사정을 추가하는 것이 많다.
  • 한 용이 두 호랑이를 나누다. : 장비가 고기를 팔고 있었는데 그 옆에서 관우가 커다란 항아리를 하나 가져와서는 그 속에 든 고기를 공짜로 나눠줬다. 이 때문에 다혈질인 장비는 참지 못해서 결국 관우와 장비가 맞붙었다.[17] 그리고 유비가 관우와 장비를 힘으로 떼어버린 후 중재해서 셋이 같이 다니게 되었다. 84부작 삼국지에서 약간 비틀어 인용된 민담이다. 여기서 한 용은 훗날 황제가 된 유비, 호랑이는 오호대장군이 된 관우와 장비를 의미한다.
  • 나무타는 세 형제 : 셋이서 서로 형이 되려고 싸우던 도중 장비가 기습적으로 주위의 큰 나무에 먼저 올라가는 사람이 큰형이 되자고 외친 다음 재빨리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관우는 아차 당했다 싶었지만 둘째가 되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나무 중간까지 올라간 것으로 만족. 그런데 유비는 나무 밑둥을 껴안고 "이 나무는 본래 뿌리로부터 나온 것이니 뿌리에 가까이 있는 내가 큰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이 재치에 관우와 장비도 동의하여 결국 올라간 나무 높이의 역순으로 형제 서열을 정했다는 이야기. 중국의 진유동 삼국지, 대만의 채지충 삼국지가 이 민담을 차용했다.
  • 박봉성 삼국지에선 현지 취재 중 들은 민담을 소개하는데 유비, 관우, 장비 셋이 알게 되어 뜻이 잘 맞음을 알게 되자 의형제를 맺으려고 하는데 장비야 어차피 제일 어리니 막내로 자연스럽게 빠졌지만 유비는 황실 후예, 관우는 나이가 제일 많아서 둘 사이는 일단 상호존대하는 식으로 덮어두게 된다. 그러던 중 유비와 장비가 관우의 집에 초대되고 유비는 관우가 권하는 돗자리에 앉는데 그때부터 관우가 안절부절하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여긴 유비가 왜 그러냐고 묻자 관우는 유비를 일어서게 하고 앉아있던 돗자리를 걷는데... 돗자리 아래엔 구덩이가 파졌고 그 안에는 관우가 산채로 잡은 용이 쑤셔박혀 있던 것이다. 즉 유비가 변변찮은 인물이면 용이 날뛸 테고 그렇지 않고 용이 가만 있다면 용을 잡아가둔 자신보다 더 위대한 영웅일 거라고 생각한 것. 감복한 관우가 이제부터 주군으로 모시겠다고 하자 유비는 그럴 거 없이 형제가 되자고 하여 나이 무시하고 유관장 삼형제가 만들어진다.

6.2. 코에이 테크모 삼국지 시리즈

몇 몇 시리즈에서는 도원결의 이벤트가 존재한다. 없는 시리즈라도 이 셋은 기본적으로 서로에 대한 시스템적 상성이 매우 좋고, 관우와 장비는 웬만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유비를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때문에 유비 세력을 멸망시키고 관우와 장비를 등용하려면 유비를 어떻게든 죽이지 않고 포로로 만들어 등용시켜야만 한다. 인연 시스템이 있는 삼국지 13에서 이 셋은 도원결의라는 전용 인연으로 엮여있다.

6.3. 삼국지 영걸전

서장에서 이벤트로 등장한다. 이후 관우가 사망한 상태에서 한조재흥 엔딩을 보면 회상 이벤트로 등장하고, 관우를 살린 상태[18]에서 한조재흥 엔딩을 보면 삼형제가 다시 도원을 찾아와 다시 한 번 도원결의를 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6.4.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

요시카와 에이지가 독자적으로 각색한 전개가 여러 작품에서 인용되면서 유명하다.[19]

돗자리 장수인 유비가 몇 년동안 뼈가 빠지게 모은 돈으로 어머니에게 선물하려고 그 당시엔 초레어급 사치품이던 (茶)를 사다가 황건적한테 털릴 뻔하자 장비가 와서 유비를 도와준다. 그 대가로 한나라 왕실에서부터 내려오던 가보였던 자신의 검과[20] 장비의 볼품없는 검을 바꾸는데, 유비의 모친은 그 검이 무슨 검인 줄 알고 그렇게 쉽게 바꿔줬냐며, 고작 차를 지키기 위해 그 검을 남에게 줘 버린 것이라면 자신은 그걸 먹을 필요가 없다면서 차를 강물에 던저버린다. 이후 우연히 장비를 만나게 된 유비는 그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장비는 칼에 어울리는 인물이 되어 달라며 돌려준다. 그리고 의형제인 관우를 찾아가 유비에 대해 알려주는데 관우는 처음에는 "그런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어디 있느냐?" 하면서 장비를 나무라지만 사실 그것은 주변에 소문이 새나가지 않기 위함이었고 밤이 되자 무장을 챙겨서 직접 유비를 찾아온다. 유비의 모친은 이런 날이 오길 기다렸다며 비밀리에 준비한 술상을 대접하고 관우와 장비는 유비에게 주군으로 모실 테니 받아달라 청한다. 아직은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는 유비의 말에 관우는 평생 함께 하자는 의미에서 의형제를 맺자고 제안하고 유비도 이를 수락하면서 세 사람은 도원결의를 맺게 된다.

이 각색 전개는 원작에서는 등장도 안 하는 유비의 어머니가 상당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오리지널 캐릭터 홍부용이 등장한다.

요시카와 에이지를 원작으로 삼은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는 물론이고 정비석 삼국지, 곱빼기 삼국지, 고우영 삼국지[21] 등 한일의 많은 삼국지가 이 장면을 넣었기 때문에, 이게 원래 삼국지에 있는 내용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6.5. 삼국전투기

삼국전투기의 시작은 반동탁 연합군이기 때문에 초반부에 도원결의는 등장하지 않으나, 삼국전투기에서 유관장 형제가 개그 캐릭터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시점인 적벽대전 편에서 꽤 멋있게 회상 형식으로 그려졌다.[22]

우이 전투 편에서 언급된 바에 따르면, 삼국전투기 한정으로 도원결의가 이뤄졌던 장소는 사실 포도밭이었다는 설정이다. 처음에는 유비의 개드립인 듯 싶었지만 진지한 캐릭터인 관우까지 거들면서 확정. 끝나고 포도 먹은 거 기억 안나느냐?

작 중 진지한 캐릭터인 관우까지 유비의 말에 동조한데다 거기에 더해 중간에 복숭아 도(桃)를 포도 도(萄)로 패러디한 개그까지 나와서 진짜로 포도밭에서 한 거 아니냐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원전은 복숭아밭이 맞다. 복숭아나무 자체가 중국 원산이고 지금도 탁현 지역을 비롯한 중국 북동부 지역은 복숭아의 주 산지로 유명한 데 반해, 포도는 중국에 전래된 시기가 장건이 비단길 개척하던 때였기 때문에 후한 말만 해도 매우 귀한 이국의 과일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23] 결국 최훈의 패러디는 어찌보면 쓸데없는 개그. 동아시아 문명권에서 도원은 일종의 이상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도원결의는 당시 일종의 관용구처럼 쓰이던 표현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후 유비 사망시에 그려진 편에서는 도원종언이 그려졌다.

6.6. 삼국지톡

파일:복숭아나무_아래서_짠.jpg

반동탁연합 24화에서 언급. 유비 관우는 맥주를, 장비는 콜라를 마시고 있다.[24] 작품 내외로 유관장 삼형제는 통칭 ' 피치 보이즈'로 불린다.

촉 위주로 진행되는 작품임에도 자세한 묘사가 되지 않고 단순히 언급되는 수준에 그쳤으나, 이릉대전 에피소드의 프롤로그에서 유비의 악몽으로서 등장한다. 도원결의를 회상하는 유비의 꿈으로 시작하나 이윽고 관우와 장비, 그리고 유비 본인마저 불길에 사로잡혀 불타버리는 악몽으로 이어진다. 실로 길고 긴 빌드업.

6.7. 배한성의 고전열전

2부에서 다뤄진다. 도원결의를 한 후 서열을 다루기 위해 슈퍼스타 도원결의를 한다. 사회자는 배칠수, 심사위원은 슈퍼스타 K의 심사위원이었던 윤종신.

당연히 장비는 윤종신 팬이라고 그에게 아부했지만 심사는 냉정했기에 꼴지. 이 결과에 열받은 장비는 "난 처음부터 윤종신 니가 싫었어!"라며 발끈했다. 1등은 유비가 되었다.

6.8. 와이파이 삼국지

1화 프롤로그가 도원결의로 시작되며, 오리지널 설정으로 탁현역 1번 출구의 복숭아 농장에서 하는 것으로 구체화되었다. 그와 함께 유비, 관우, 장비의 소개가 들어간다. 이후 도원종언까지 여러 차례 작중에서 언급된다.

6.9. 정비석 삼국지

유비가 노모를 대접하기 위해 차를 샀다가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보검과 차를 같이 황건적에게 빼앗기고 살해당할 위기에 몰렸는데 이를 장비가 황건적들을 패대기치고 되찾아주며 유비를 구해줬다. 그 이후로 유비와 장비는 친구로 지냈는데 어느 날 장비가 학식이 뛰어나면서도 힘에서 자신에게 전혀 안밀리는 사람을 자기 친구라고 데려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관우였다. 이렇게 세명이 만나자 바로 의형제를 맺었는데 의형제를 맺기에 앞서 서로의 족보를 확인해본 결과 유비가 황실 종친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그렇게 유비를 큰 형님으로, 관우를 둘째, 장비를 막내로 해서 형제가 되기로 맹세를 했다.

6.10. 김경한 삼국지

죄를 짓고 도망치는 관우 유비가 자신의 식구로 받아들여서 관우를 보호하며 같이 살게 되었고 나이가 어려서 아직 자(字)가 없었던 장비에게 유비가 직접 관우의 휘가 우(羽)라는 것을 이용해 "너희들은 나의 날개나 다름없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은 언제나 사이가 좋아야 하고 그래서 내가 나의 자와 이 친구의 휘를 조합해서 장비 너의 자를 지었노라." 라면서 장비에게 익덕(翼德)이라는 자를 지어주었다. 이렇게 장비의 자를 지어 준 이후 유비는 관우와 장비 외에도 동네 친구인 간옹까지 불러들여서 4명이서 의형제를 맺었다. 이 과정에서 유비는 자신이 황건적을 토벌하겠다고 했는데 이 때 의용군을 모집하기 위해서 탁현 누상촌 곳곳에 방을 붙였고 이에 응한 젊은이들이 벌떼같이 모여들어서 다같이 도원결의에 참여했다. 그리고 이 도원결의는 황건적 토벌 출정식도 겸했다.

6.11. 이문열 평역 삼국지

이문열 평역 삼국지의 도원결의는 꽤 독자적인 창작으로 나간다. 유비는 탁군 저잣거리의 유협 집단을 이끄는 두목이고, 장비는 그의 부하다. 그리고 장세평 소쌍의 갈등이 도원결의의 시발점이 된다. 장세평이 탁군의 말 시장을 독점하려고 자신과 친한 장비를 내세워 소쌍을 훼방 놓는데, 소쌍의 부탁을 받은 관우가 장비와 한판 벌이게 된다. 그러다 유비가 말리면서 셋이 만난다. 이후 유비는 장세평과 소쌍을 불러 중재를 한 후, 관우와도 친분을 쌓는다. 그러다 몇 년 후 황건적의 난이 일자 유관장 삼형제는 도원결의를 하고 의형제를 맺은 뒤 의병을 거병한다. 병사들은 그들이 이끌던 유협 집단을 기초로 하고, 말과 자금은 장세평과 소쌍으로부터 지원받는다.

이문열 삼국지가 퍼지기 이전에는 위의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에 나오는 도원결의 버전이 널리 알려졌기에 이야기가 생판 달라진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문열도 이 스토리가 창작이라고 서문에 밝혔지만, 두 이야기가 모두 창작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인터넷이 대중화되고 온라인에서 삼국지 관련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원문을 충실하게 번역한 정역본이 많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25]

6.12. 84부작 삼국지

연의의 내용과 약간 불일치하게 관우와 장비가 싸우는 걸 유비가 말렸다는 민담을 차용했다. 그렇게 의기투합한 뒤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부터 원작에 맞게 진행된다. 도원결의와 유비군의 거병을 삽입곡에 맞춰 함축적으로 담아낸 것이 큰 특징. 중요 장면에서 뮤직비디오 처럼 노래가 들어가는 이 드라마의 특징상 이 장면에서도 노래가 들어가는데, 곡명은 '这一拜'. 유비 삼형제의 도원결의부터 의병군 훈련까지를 다루는데, 유비의 쌍고검, 관우의 청룡언월도와 장비의 장팔사모도 동네 대장간에서 이때 만들어지며, 유비의 의병군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의병이 아니라 정예군을 훈련하는듯 박력이 넘친다[26].

다만 이후에 이어진 유비 삼형제가 황건적을 토벌하던 이야기가 너무 간단히 다루어져 허전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27] 이 토벌 장면이 바로 황건적에게 패배해 쫒기던 동탁을 구해주는 대목. 그러나 동탁이 유비를 무시하는 장면이 좀 허무한 관계로 오히려 동탁이 나쁘다기 보다는 불쌍해 보이고, 특히 이 장면과 대비되는 조조가 유비를 높게 평가하는 대목이 빠져서 원작의 의도와는 많이 달라보인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다 보니 자막만 살짝 바꿔 내용을 코믹하게 바꾼 짤방도 있는데, 맏형을 정하자면서 재산이 많은 순으로 순번을 정하자는 장비, 수염이 긴 순서대로 하자는 관우, 이 둘을 타이르는 척하다 귀 큰 순서대로 정하자는 유비가 나오는 짤방이 바로 그것이다. #

6.13. 삼국

조조가 동탁을 암살하려다 실패하고 도주하고 있을 때 짤막하게 등장한다(2화). 하지만 실제론 별 과정이 없었음을 감안하면 합당하긴 하나, 정작 반동탁 연합군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축소된 것이 더 문제였다.

그 외 서주성 전투 후 유관장 3형제와 조운이 다시 만나는 장소도 도원인지라 제 2의 도원결의 같은 모습을 보인다. 차이점이 있다면 3형제가 아닌 4형제( 공손찬의 진영에서 만난 조운과 함께 출진하며 유비가 "이제 자네까지 4형제"라고 언급하는 장면이 있다)이고, 그 전에 장비가 관우에 대한 오해 때문에 술마시고 깽판친지라 도원이 망가져 있다는 것. 이 때 유비는 망가진 도원을 흩어졌다 다시 뭉친 4형제에 비교했다.

6.14. 진삼국무쌍 시리즈

2편과 3편 인트로 영상, 4편에서 유비나 관우 등의 스토리 모드 이벤트 영상에서 도원결의가 나와준다. 4편 맹장전의 누상촌 구출전이란 외전 시나리오에서는 황건적의 깽판을 정리하다 만난 셋이 의를 맺는 것으로 창작했다. 5편에선 이 세 명의 무쌍 모드 스토리 역시 황건의 난 이후로 결의를 옮긴 것. 즉, 연의 원작처럼 뜬금없이 결의 후 싸운 것이 아니라 함께 싸운 뒤 그 속에서 각자의 신념을 확인하여 의형제가 된다는 내용. 코에이 창작이지만 의외로 개연성이 생기고 드라마성이 확보되는 연출과 흐름이었다. 다만 전투가 주요한 게임인 만큼 이외의 작품에선 결의 장면 자체를 안넣는 경향이 많아졌다. 위에 있는 7편에선 결의를 오마주한 장면이 촉군 첫 시나리오 시작 컷신이 나오거나 DLC 월페이퍼를 구입해서 갤러리에서 감상이 가능한 정도가 끝. 8편에서는 시리즈 최초로 도원결의를 제대로 촉 스토리 모드 인트로 영상에 넣어준다.

6.15. 레전드히어로 삼국전

파일:도원결의.jpg
4화에서 미축을 쓰러뜨린 유비가 '관우 영웅패'의 조언으로 소멸 직전의 '장비 영웅패'와도 새로운 군신계약을 체결해서 장비패를 되살린 뒤, 자신의 거처인 도원관의 이름을 따 냉장고에 있던 황도복숭아 통조림으로 의형제를 맺으며 "도원결의!!"라고 외친다.

6.16. 유비 패왕설

유비가 강하다고 유비와 맞짱을 뜨러온 관우와 장비가 유비에게 두들겨 맞고 아우가 되었다는 개드립. 뜬금없이 찾아와서 의형제를 맺는 중간부분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

6.17. 연희 시리즈

삼국지에서 소재를 따온 미연시답게 시리즈 첫 번째 작 연희무쌍에서 나오지 못한 유비 진 연희무쌍에는 나오면서 도원결의를 맺는데 특이하게도 한명이 더 끼어들어 같이 도원결의를 맺는다. 단, 애니메이션에서는 도원결의가 나오지 않는다.

6.18. 창천항로

처음 유비, 관우, 장비 셋이 만날 때는 묘사되지 않았으나 35권에서 형주 공방전에 출진한 관우가 꾸는 꿈으로 보여준다. 작품 초반에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관우가 귀중한 꿈이라고 언급하는 것을 보아 도원결의를 했던 것으로 보이며, 관우가 이 꿈을 꾸면서 미소를 짓는데 작중 관우가 유비, 장비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는지를 보여주는 장면. 이는 마지막권의 작중 관우 최후의 대사인 "행복한 꿈을 살았다. 이제 우리 형제들의 꿈은 불멸로 남으리라"라는 대사와도 이어진다.

다른 작품들에선 유관장 삼형제만이 형제 결의를 맺는 장면으로 연출되지만, 여기선 유관장 세 명 뿐만 아니라 유비가 이끌던 협객조직인 '귀낭'과 관우의 조직인 '미염단'의 조직원들도 형제로서 도원결의에 함께 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6.19.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유비 관우 자아아앙비~ 아~ 아~
복숭아나무 아래서
형제가 되기로 맹세를 했네
1권 전체를 도원결의 자체도 아니고 도원결의의 계기가 되는 창작 사건에 할애하고 있다. 본래 이 만화가 내용 분할이 좀 심하게 들쭉날쭉하긴 하다. 내용은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의 그것과 같다.

6.20. 트러블 삼국지

1화에서 각각 돗자리, 정력제, 돼지고기등을 팔다 의기투합하게 된 유비, 관우, 장비는 술자리에서 누가 맏형이 되느냐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지만[28], 술은 안 마시고 안주만 축내던 장비가 가장 먼저 나가리 되고, 관우는 자신이 술계산을 해서 기선을 제압하려 했지만, 이미 계산은 유비가 끝낸 뒤라 자연스럽게(?) 유비가 삼형제 중 맏형으로 추대된다. 이후 이들은 도원장 여관에서 날이 샐 때까지 에로비디오를 보면서 올나잇을 했다더라..가 트러블 삼국지에서의 도원'장'결의의 전말.

6.21. 토탈 워: 삼국

홍보 트레일러에서 도원결의를 묘사한 영상이 나오며, 인게임에서 삼형제로 편성해 전투를 하면 로딩화면에서 간혹 도원결의의 구절을 언급한다. 전투에서는 적장들이 관우에게 '가서 복숭아나 먹어라' 도발을 하면 관우가 발끈하여 '감히 우리 형제들의 결의를 모욕하느냐' 분노하는 모습이 나온다. 관우가 강력한 용장이기에 어지간한 네임드가 아니고서야 관우에게 복숭아 타령하는 것은 사망플래그 취급받는다. 이 외어 세명을 함께 데리고 다닐 시 의형제 보정을 받으며 관우, 장비는 유비를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DLC인 천명에선 유비로 진행할 경우,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는 턴에 도원결의를 맺는 이벤트가 일어나며 유비 휘하에 형제들이 들어오며, 그 다음턴에 말장수가 군자금을 지원해주어 무장을 갖추게 된다.

6.22. 짤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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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2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6.23. SD건담 삼국전

공통적으로는 관우 건담 장비 건담 유비 건담의 삼위일체 발동 및 그걸 통해 적을 물리치는 것을 보고 그것에 반해 의형제가 되기로 했으며, 세부적인 차이는 이렇다.
  • 공식 코믹스:
  • 프라모델 동봉 코믹스: 동탁군 병사들을 물리쳐 민간인을 구한 유비가 지나가다 장비를 만났고, 당시 장비는 유비를 황건적으로 오인하여 다짜고짜 싸움을 걸게 된다. 그러다 여포 톨기스가 난입했고, 여포는 둘의 싸움으로 엉망이 된 한 건물에서 전국옥새를 얻은 뒤 그걸 가지고 동탁에게 돌아간다. 그러자 서로의 오해를 푼 두 사람은 곧 여포를 추격하게 되고, 어느 성에서 여포를 다시 만나지만 이때는 여포의 부하인 고순 바이에이트와 진궁 메리크리우스가 대신 나서서 유비, 장비와 대결한다[29]. 그러나 유비가 금방 고순과 진궁의 합동 공격의 약점을 간파했고, 장비의 필살기 '폭렬대뢰사'에 고순과 진궁은 바로 사망하게 되나 직후 여포가 난입해 유비와 장비를 압도하고 결정타를 날리려는 순간, 관우가 둘을 구해주며 등장한다.
그런데 여포는 의외로 관우와 안면이 있는 터라 '또 네놈이 나를 방해하는구나...'라는 식으로 짜증을 냈고[30], 관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유비와 장비에게 셋이서 함께 여포를 공격하자고 얘기한다. 그렇게 3:1의 싸움이 벌어졌고, 여포의 공격을 관우가 막으면서 유비와 장비가 곧바로 마무리를 지으려 하나 '전율의 폭장'이라는 이명을 가진 여포답게 금방 떨쳐내어 셋은 부상을 입게 된다. 하지만 관우가 장비에게 자신들의 갑옷 일부를 유비에게 주는 식으로 힘을 보태면 가능하지 않을까 제안을 하고, 장비도 미심쩍지만 한번 해보자는 식으로 유비에게 자신들의 견갑(관우는 오른쪽 어깨 부분, 장비는 왼쪽 어깨 부분)을 유비에게 주자 유비는 곧바로 삼위일체 모드를 발동, '삼위일체 성룡참'으로 여포를 쓰러뜨린다. 그리고 여포를 물러가게 한 후에 셋이 서로 얘기를 나누면서 결의형제를 맺게 된다.[31]
  • 애니메이션: 유비가 황건적의 장수 중 하나인 '마원의 자쿠'를 쓰러뜨리긴 했지만[32] 정작 스승인 '노식 짐 캐논'이 사망했으며, 스승의 장례를 치른 후 길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지나가다 장비와 관우가 서로를 황건적으로 오해하고 싸우던 걸 말렸고, 당시 황건적의 간부인 '장량 멧사라'를 유비가 쫓아냄으로써 관우, 장비랑 같이 협력하게 된다. 이후 조조군과 손견군에 의해 황건적이 대부분 소탕됐고, 간부들인 '장각 파라스 아테네', '장보 보리노크 사만', 장량 멧사라가 도망칠 때 이 셋과 만나게 되며 서로 간의 대결이 펼쳐친다. 이때 황건적 삼형제가 황천 디오로 합체하고 바로 공격해서 유비 일행을 압도하지만, 유비가 금방 일어나 다시 결의를 다졌고 이에 관우와 장비도 동의하자 삼위일체 모드가 발동되었으며[33], 역시 삼위일체 성룡참으로 황천 디오, 즉 장각 삼형제를 완전히 물리친다. 그리고 관우가 용제검의 각성을 보고 곧바로 유비에게 자신을 의형제로 받아달라고 청했으며, 장비도 똑같이 청함에 따라 셋의 도원결의가 이뤄지게 된다.

6.24. 필살VS로맨스

한날 한시에 같이 죽기를 이라는 부분이 사망플래그같다며 복을 비는 내용으로 맹세한다.

7. 기타

  • 도원결의가 행해졌다고 전해지는 장소에는 현대에 들어와선 호텔이 세워졌는데, 언제나 전세계의 삼국지 팬들 덕분에 즐거운 아우성을 지르고 있다고 한다. 원래 여기에는 나름 오랜 시간동안 사당이 조성되어 유관장 당사자들과 여러 신하들을 모시고 있었고 여러 사람들이 글이나 비석 등을 만들어 놓았는데, 홍위병이 처리했다.
  • 본인들 뿐만 아니라 자식들에게도 비슷하게 이어졌다. 유비의 아들 유선이 장비의 사위가 되고, 관우의 손자 관통이 유비의 손녀사위(유선의 사위)가 된 것. 그 덕분에 세 사람은 사후에도 서로가 사돈이 됨을 통하여 도원결의를 계속 유지하게 된다.
  • 이들이 도원에서 결의를 맺었기에 이들이 죽는 부분은 도원종언이라 불리기도 한다.
  • 탁군 누상촌은 지금의 베이징 근처 하북성 탁주시인데 베이징 근방은 대대로 풍부한 일조량과 적은 강수량 때문에 좋은 복숭아가 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도원결의가 묘사되던 시기 전후로 이 일대 복숭아가 유명했다는 의미도 담겨있다는 주장이 있다. 다만 역사서도 아니고 그저 민담 형식의 소설에서 그런 세세한 것까지 고려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으며, 무릉도원이라는 말처럼 옛부터 중국인들은 신비롭고 영험한 장소를 복숭아 나무가 잔뜩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고 후세 사람들 또한 이 세명의 맹세를 소설적으로 신비롭게 꾸미기 위해서 도원이란 명칭을 사용한 것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 고시학원 강사 박도원의 도원결의는 도원결의 스파르타의 줄임말이다.
  • 청두 유비혜릉 사당 안에는 유비만 아니라 관우와 장비, 제갈량의 상까지 모셔져있다. 장비와 제갈량이야 그렇다쳐도 한번도 익주에 오지 않은 관우의 상까지 모셔졌다는 걸 보아 이 셋이 생전에 누구보다도 굳건한 사이였음을 알리는 목적으로 셋의 상을 유비의 무덤에 놓은 모양이다.
  • 토탈 워: 삼국에선 삼형제가 한 군단으로 활동하는 경우, 전투 전 도입 대화로 도원결의를 맺는 회화가 나온다. 그 외에도 적군의 경우엔 형제들에게 '가서 복숭아나 먹어라!'란 말로 형제들의 결의를 모욕하는 전투 대사도 있다.
  • 연의 내에서는 도원결의가 상당히 유명하다는 설정인지 하비성에서 장료가 관우를 항복시키려고 설득할 때 도원결의를 어길 거냐고 들먹인다.
  • 만화 원피스에서도 주인공 루피와 에이스, 사보가 의형제를 맺을 때 이 도원결의를 오마주한다.
  • 파일:l_2020081101001226500093744.jpg
    반중이라는 공통의 키워드를 가진 대만, 홍콩, 태국의 젊은 네티즌층 사이에서 중국의 횡포를 국제적으로 알리고 세 나라가 단결할 수 있는 온라인 연합체를 신설하기로 했다. 이에 세 나라 국민들이 자주 마시는 밀크티에 착안해 연합체의 이름을 밀크티 동맹으로 짓기로 결정했고, 연합체의 결성을 삼국지에 나오는 도원결의에 빗대어 복숭아 밭에 태국, 대만, 홍콩인이 밀크티를 서로 위로 올리며 의리를 다지는 듯한 그림을 올리며 활동하기 시작했다.
  • 파일:엘롯기 폭발.jpg

    2016년 6월 14일 엘롯기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나란히 역전패를 당하자 도원결의 짤방에 엘롯기 세 팀을 합성한 짤이 만들어기도 했다.
  • 현재까지도 이 도원결의를 맺은 유관장 간의 의리는 동북아시아 역사를 대표하는 최고의 의리로 손꼽히며, 촉까거나 삼국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일단 그들의 의리가 대단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2020년 9월 9일 한국의 '공정한 사회를 위하는 의사들의 모임'이 4대 의료 개혁에 반대하여 의사 국시를 거부한 의대생들을 응원하는 글에 '관우가 밀려오는 적들에 겁을 먹고 제일 먼저 유비를 배신하고 적에게 투항하였으며 다음날 장비도 관우를 뒤따라 투항하였다'는 내용을 적었다가 네티즌들의 비웃음거리로 전락한 일이 있었다.

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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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런 장면이 만들어지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중국의 민중적 영웅상인 호협(豪俠)의 모습이 대강 이런 식이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의 민담에서는 평범하게 지내던 영웅이 뜻밖의 일을 만나서 오로지 대의를 위해서 떨치고 일어난다는 구조가 많다. [2] 주유의 경우 유관장의 신의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유비의 능력을 경계하면서도 유비를 죽이려는 시도보다 유비를 볼모로 삼아 관우와 장비가 오나라를 따르게 만들어 주유 자신이 그들을 부리면 대업을 이룰 수 있다고 손권에게 진언한다. 이는 주유 역시 유비를 죽이면 관우와 장비가 절대 따를 리 없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다. [3] 연의에서 도원결의 당시 유비의 나이가 만 28세로 나온다. 관우나 장비는 당시의 나이가 직접 언급되지 않지만 사망할 때 관우는 건안 24년(서기 219년)에 58세로 죽었다 나오고 장비는 장무 원년(서기 221년)에 55세로 죽었다고 나온다. 그리고 유비가 장무 3년(서기 223년)에 63세로 사망했다 나오기 때문에 생일이나 월을 따지지 않고 연도로만 가감했을 때 유비는 관우보다 1세 연상, 장비보다 6세 연상이라는 계산 결과가 나온다. [4] 정사에서는 유비의 나이만 언급되어 있다. 관우와 장비 모두 몰년은 기록되어 있으나 생년이 기록되지 않아 자세한 나이는 알 방법이 없다. 다만 촉서 장비전에 장비가 관우보다 나이가 어려 그를 형으로 섬겼다는 기록은 남아있다. [5] 이것도 판본에 따라 묘사가 달라져서, 단순한 주먹다짐으로 그리는 버전도 있고 집에서 무기까지 들고 와 제대로 맞붙는 골때리는 상황으로 연출되는 버전도 있다. 싸움이 붙은 원인도 예전에 두 사람이 장사를 하면서 갈등이 있었다든지, 지인 문제로 어그로가 끌렸다든지 하는 등 다양한 버전이 있다. [6] 삼국지연의의 해외 명칭이 The Romance of Three Kingdoms임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물론 여기서 Romance는 로맨스(연애물)가 아니라 로망이다. [7] 삼국지연의는 유관장 삼형제가 주인공이라곤 하지만 실제로는 계속 시점이 바뀌면서 여러 인물들을 묘사하는 군상극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8] 실제로 이 시대는 기존부터 이어져 오던 사회상이 그 권위의 추락과 득세의 열망으로 인해 무너지면서 금수저부터 흙수저까지 온갖 사회 계층에서 별의별 인물들이 다 판치고 다니던 격변의 시대였다. 삼국의 세 군주들만 봐도 유비는 말이 좋아 황실 후손이지 정사에 대놓고 짚신을 팔면서 생계를 이었다는 말이 적혀있는 평민이나 다름없었고, 조조는 명문가 출신이긴 하지만 은근히 괄시당하는 환관의 손자(조조의 아버지가 환관 조등의 양자였다)였으며, 손권은 지방 호족 출신으로 속된 말로 자기 나와바리에선 한따가리 해도 중앙에는 진출해보지도 못한, 3명 전부 그 시대에는 하자가 하나씩 있는 출신이었다. 이 3명 말고도 후한말 시기에 활동했던 인물들의 대부분도 그때 기준으로 나사가 더 많이 빠진 사람들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이민족 킬러로 불리는 공손찬은 첩의 자식인 서자인데다가 조조랑 맞장을 깠던 원소는 서자인 그 공손찬한테 얼자(노비자식)라고 면전에서 까였던 사람이다. [9] 우리나라로 치면 판소리꾼. 특히 양반들의 향유물로 바뀌기 이전에 시장바닥에서 돈을 받으며 공연했던 초창기 쪽이다. [10] 현대 매체에서는 사건의 개연성을 중시하므로 이런 전개가 거의 쓰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로맨스 소설을 쓰더라도 주인공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서로를 사랑하게 됐는지 그 과정을 재미있고 설득력 있게 그려 내야지, 갑자기 눈이 마주치고 운명의 이끌림을 느껴 평생 사랑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이런 전개를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토르: 천둥의 신에서 고전적인 느낌을 줘 보겠다고 토르 제인 포스터의 관계를 그런 식으로 묘사해 서구권 평론가들이 모인 로튼토마토에서 호의적 반응을 얻었다. [11] 여기서 더 나아가면 왜 하필 노란색을 상징으로 삼았는지에 대해 오행도참설을 가져와서 해설해야 하는데, 그러면 오행 이론은 물론 도교 사상의 발달 과정 및 변천사까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에 대해 빅토르 위고를 비롯한 근대 유럽, 특히 프랑스 소설가들이라면 이렇게 쓰고도 남지 않았겠느냐고 농담하는 이들도 있는데, 사실 그들이 그렇게 쓸 수 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단어당 지불받는 원고료였다. 길게 쓸수록 많은 원고료를 받을 수 있으니 온갖 장광을 다 풀어서 길게 쓸 동력이 생겼던 것. 물론 그렇다고 아무 소리나 하면서 무조건 분량만 늘이면 독자들이 화를 내서 그의 소설을 보지 않게 될테니,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는 그 시대의 소설 독자들이 나무위키스러운 지식자랑을 읽는 것 또한 즐거워하던 시대였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사실 한국에서도 이문열처럼 관련 지식을 잔뜩 늘어놓는 스타일의 소설가가 큰 인기를 끌었던 시기가 있으니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냥 핵심 줄거리를 스피디하게 진행하는 스타일이 유행하는 시대가 있으면 관련 정보나 지식, 주변부 에피소드 등을 잔뜩 엮어 읽을거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스타일이 유행하는 시대도 있는 법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12] 물론 정말 3천7백만명이 죽었다는 의미는 아니고, 혼란과 무정부상태로 인해 호적에 등록된 인구의 비율이 그만큼 격감했다는 의미이다. 근대 이전 동아시아의 역사에서 혼란기를 지날때마다 인구가 절반 이하로 격감하는 것은 십중팔구 정말 절반 이상의 사람이 죽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등록된 인구가 그만큼 격감했다(=인구집단에 대한 정부의 통제력을 상실했다)는 뜻이다. [13] 삼국지연의의 중반부에 도원처럼 평화롭고 신화적인 공간이 또 나온다. 바로 삼국지연의의 네 번째 주인공인 제갈량이 은거했던 고향 융중(隆中)이다. 이후에도 여러 도사들(서촉의 멸망을 예고한 자허상인, 이릉대전의 패배를 예고한 이의기 등)을 등장시켜서 사람이 노력해도 하늘의 뜻을 이길 순 없음을 계속 시사한다. [14] 이러한 것을 반영했는지, 삼국지 IP 게임의 대표작인 진삼국무쌍 3에서는 적장인 유비의 사망대사가 "저 도원으로 돌아가는가"이다. [15] 정사에도 위서 무제기에 배송지 주로 등장한다. 다만 연의에선 아버지 친구로 나온다. [16] 항우는 사망 당시 나이가 고작 30세였다. 반면 유방은 항우와 만났을 당시 이미 40대였다. [17] 또는 장비가 팔다 남은 고기를 우물 안에다 넣고 큰 바위로 입구를 막은 뒤 "이 바위를 들 수 있으면 안에 있는 고기 다 가져가도 됨"이라고 하면서 갔는데 그 말을 들은 관우가 바위를 들어 고기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도 한다. 이후는 동일. [18] 관우를 살리려면 맥의 전투에서 관우를 지정된 곳으로 탈출시키거나 적을 전멸시켜야 한다. [19] 정확히 말하자면, 요시카와 에이지의 순수 창작이라기 보다는, 일본의 여러 기존 삼국지 판본들을 차용해, 각색된 설정들을 기호에 맞게 곁들였다고 보는게 맞다. [20] 유비는 이때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21] 고우영 삼국지에서는 홍부용을 감부인과 동일인으로 설정해서 이 창작 전개와 이후의 전개를 더 자연스럽게 연결되게 했다. [22] 다만 해당 컷에서의 유관장 삼형제는 본편에서의 모습과는 다소 스타일이 다른, 간단히 말하면 익히 알려진 중국스러운 복식을 갖추고 근엄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본작에서의 도원결의가 진짜 저랬다기보다는 그냥 서비스컷 정도로 이해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23] 맹달의 아버지 맹타 장양에게 포도주를 뇌물로 바치고 벼슬을 따낸 적이 있다. [24] 도원결의 당시, 장비가 현대 기준 나이로 고등학생이었던 것을 반영한 것이다. [25] 이문열 버전의 삼국지는 초반에는 독자적이고 새로운 에피소드가 여럿 창작되어 들어가 있었지만 연재소설 형식으로 집필하다보니 나중에는 내용을 따라가는데에 그치게 된다. [26] 사실 저기 나오는 병사들은 정규군이 맞다. 촬영할 때 엑스트라로 인민해방군을 동원했기 때문이다. [27] 그렇다고 해도, 황건적의 난 자체가 통생략되고 도원결의 장면부터 간단하게만 나오던 유비 삼형제가 달랑 셋이서 18로 제후에 합류하는 신삼국보단 낫다. [28] 서로 맏형 자리를 양보하는척 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장점을 어필하였다. 가령 나이 많은 관우는 '장유유서라 했으니 유비 님이 맏형이 되어주시오'라고 했고, 학벌이 높은 유비는 '학식이 있는 관우 님이 맏형이 되어주시오'라고 하는 등. [29] 정확히는 둘이 여포 장군이 직접 나설 필요가 없고, 얘들 쯤은 우리 선에서 해결한다고 얘기하여 여포가 허락해 준 것. [30] 정확히는 예전 관우의 애인이었던 누란 건담(SD건담 삼국전 코믹스의 전용 인물로, 모티브는 빅토리 건담)을 여포가 죽였기 때문에 관우가 여포에게 원한을 가진 것이었다. [31] 단, 여포는 유비 일행을 인정하는 듯한 말을 하고 물러나면서도 옥새는 여전히 가지고 있었으며, 돌아온 후 동탁 자쿠에게 이것을 바친다. [32] 당시 노식에게서 받은 용제검을 각성시켜 스승을 공격한 마원의를 죽인다. [33] 코믹스와 달리 유비가 용제검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용제검이 다시 한번 각성함에 따라 관우와 장비의 갑옷 일부가 갑자기 빠져나가 유비에게 붙는 식으로 연출됐다. 물론 이때는 서로가 아직 제대로 아는 사이도 아니라 관우와 장비가 자신들의 갑옷이 유비에게 붙은 것을 보고 놀라는 건 당연했을 터. [34] 유비, 관우, 제갈량이 식탁 앞에 모여 칭다오 병을 들고 건배를 하고 있다. 장비는 술 버릇이 좋지 않아서 이날 나오지 못했다는 후문이 있다. [35] 혹은 제갈량이 산둥성 출신 이라서 썼다라는 썰도 있다. 제갈량은 칭다오에서 가까운 린이시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