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삼국지평화 판본[1] '전상삼국지평화(全相三國志平話)'의 본문. |
1. 개요
삼국지연의보다도 이전에 쓰인 삼국지[2] 창작물로 당시 만담가였던 강사[3]들의 화본이다.'평화'는 우리말로 하면 '구어체' 정도 의미인데, 딱딱한 문어체가 아니라 이야기하듯 쓴 역사 소설을 가리키는 말이다. 평화가 유행한 시대는 원대초기로 잡극에서 소설로 넘어가는 시대였기 때문에 《삼국지평화》는 역사서 정사 삼국지와 함께 삼국시대의 인물들에 대한 사료로서의 가치가 상당히 크다. 이를 통해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 사마광의 자치통감까지 뒤지면서 소설체를 완성시킨 삼국지연의의 작가 나관중이 상당한 거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나라 지치 연간에 건안 지역의 우씨가 역사 그림책 모음집인 전상평화를 발행했다.
한국에는 2000년 출간된 정원기 교수의 번역본이 있었으나 절판되었고 2020년 12월 김영문 박사가 원본의 삽화를 모두 넣고 새롭게 번역하여 출간했으며, 2024년 11월 김강모의 삽화 포함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2. 내용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복수극의 구조도 가지고 있어 작중 모든 주역은 자신의 원한을 갚는다(아래 환생 항목 참고). 헌제는 본래 역사보다 30년을 더 살아서 위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고 만족하고 죽으며, 에필로그는 난데없이 유비의 후손이라는 유연( 서진을 멸하고 전조를 세운 유연이라는 인물이 존재하긴 했지만 유비와는 전혀 혈연관계가 없다. 유연은 심지어 한족도 아니고 흉노족이다)이 진나라를 멸망시켜 유비의 복수가 완성되는 식. 이 두 가지 예 모두 실제 역사와 한참은 다르다. 역사적인 고증도 많이 어긋나고 분량도 작다. 현재 필사된 것은 이야기꾼들의 기본 대본이라 하며 실제로는 이걸 바탕으로 엄청나게 늘려서 얘기를 했을 것이라고 한다.[4] 또한 과장이나 잔혹성도 더 심해서 독우를 때리는 이야기도 연의와는 달리 장비가 지방의 태수의 일가족을 몰살하고 독우를 죽인 뒤 시체를 토막낸다.한고제 유방을 비열한 인물로 보는 시각이 이미 이때부터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사마의가 진주인공이 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민담의 영향으로 선악대비가 명확하여 조조는 연의보다 몇배는 더 잔혹하고 찌질하게 묘사되며,[5] 장비의 경우 주인공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띄워주는데 여포가 장비와 싸우다 겁에 질려 도망가기도 한다. 장비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민중들을 위해 장비의 활약이 많이 과장되어 있다. 여포에게 포위되자 조조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왕복해서 총 6번이나 여포의 포위망을 뚫질 않나, 장판파에서 고함소리로 장판교를 끊어버리질 않나, 손부인이 아두를 데리고 오나라로 가려할 때 장비가 고함을 지르자 손부인이 수치심에 자살을 하질 않나 한마디로 장비가 나서면 모든 일이 해결된다. 망탕산에 들어가있을 때는 황제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연호가 쾌활이었다. 유비와 재회하자 황제 자리를 유비에게 준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를 하는 단점도 가지고 있다. 장비에 대해 일본 학자 이나미 리쓰코는 이 작품이 민중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다보니 폭발적인 활력을 가진 장비의 매력에 중점을 두어서 파천황적인 재미가 있다고 얘기했다.
장비 못지 않게 과장된 인물로는 신선으로 등장하는 제갈량과 방통이 있다. 제갈량은 오나라에 사자로 갔으면서 항복을 권고하러 온 조조의 사자를 목베며 방통은 장비에게 목이 달아났다가 살아나서 이에 원한을 품고 형주 4군을 선동시켜 반란을 일으켰다가 제갈량의 설득으로 그만둔다. 삼국지연의에 비하면 관우의 활약은 많이 축소되고 간결하게 표현되었는데 화용도의 경우 갑자기 안개가 끼어서 조조가 그냥 돌파해버린다. 오나라는 거의 엑스트라에 가까운 분량을 자랑하며 왕평이 성을 함락 못시켜 제갈량에게 참수당하는 굴욕을 당하는 등 이걸 보고 나면 삼국지연의가 촉빠라느니 하는 말은 못하게 된다. 또한 문신들이 푸대접을 받아서 조조의 경우 그나마 가후가 많이 나오는 편이고 군사에 가까운 역이 장료다.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별호가 지낭선생일 정도로 아예 책사 포지션이다. 또한 초선과 여포는 본래 부부였다가 황건적 때문에 헤어진 것으로 나오는데, 평화에서 왕윤은 이를 알고서도 초선을 동탁 몰락의 도구로 이용한다.
'평화'의 주제는 인과응보이지 조조가 얼마나 잔인한가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조조는 길평을 죽이지만 동승에 대한 처우는 언급이 없다. 또한 조조의 서주 학살은 언급이 되어 있진 않지만 조조가 형주로 와서 그의 군대가 사람들을 죽이니 유비를 따라 나선다는 내용은 있다. 또한 그저 조조가 막연히 찬탈할 마음을 품은 역적이라는 설정일 뿐 구체적으로 어떠한 악행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미흡하다. 그런가하면 '평화'에서 옹호받는 인물들은 유비를 비롯한 촉한 사람들이며 그에 해당되지 않으면 얼렁뚱땅 넘어간다. 한 예로 유비가 도겸을 구원했다는 언급도 없고 그냥 도겸이 유비에게 서주를 물려줬다고 나온다. 유비가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개연성이 이런 식이다. 그런가 하면 적벽에서 조조군에게서 화살 10만 개 얻어낸 장본인은 제갈량이 아니라 주유로 나온다. 또한 황호에 관한 언급도 없고 촉한 멸망 후 유선이 '촉이 기억나지 않습니다'라고 말을 한 내용도 '평화'에서는 빠져 있다.
결말은 얼마 되지 않아서 유비의 친척으로 설정된 유연[6]의 아들 유총이 결국 진나라를 멸하고 한나라를 부흥시키는 것으로 끝난다. 즉 이걸 보면 후삼국지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도 알 수 있다는 이야기다.
3. 환생
아래 기사 인용문에서처럼, 토사구팽의 대상이었던 한신· 팽월· 영포가 환생하여 유방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7]책은 후한 말기의 혼란과
십상시의 전횡을 묘사하며 바로 소설로 진입하는 '
삼국지연의'와 달리
조조·
유비·
손권의 환생 이야기도 담고 있다. 한 고조
유방의 건국 과정에 큰 공을 세우고도
토사구팽을 당한
한신·
팽월·
영포가 저승의 판결을 통해 각각 이승의 조조·유비·손권으로 환생해서 한
헌제로 환생한 고조 유방에게 복수한다는 설정이 눈길을 끈다. 한신에게
천하삼분지계를 건의하고 유방에게서 독립하라고 말하는
괴철은
제갈량으로 환생해 유비에게 천하삼분지계를 건의하고 군사로 활약한다. 저승의 판결을 내린 사마중상은
사마의로 환생해 진나라 건국의 기초를 놓는다.
유비보다 먼저 왕이 됐다…장비 활약상 두드러진 '삼국지평화', 연합뉴스, 2020-12-08
유비보다 먼저 왕이 됐다…장비 활약상 두드러진 '삼국지평화', 연합뉴스, 2020-12-08
3.1. 요음사사마모단옥(鬧陰司司馬貌斷獄)
명나라 때 풍몽룡이 쓴 소설 「요음사사마모단옥(지옥을 떠들썩하게 한 사마모의 단죄; 鬧陰司司馬貌斷獄)」은 엄밀하게는 삼국지평화의 본 내용은 아니며, 삼국지평화의 내용을 더 확장시킨 것이다. 여기서는 더욱 많은 등장인물들을 대상으로 환생을 통한 복수 스토리를 확장하였다.
후한 말에
성은 사마,
이름은 모,
자는 중상(仲相)이라는
천재가 익주에 살고 있었다. 사마모는 매우 영리하고 재능이 뛰어났으나, 때는 매관매직이 성행하였던 영제 시절이라 가난한 그는 50살이 되도록 초야에 묻혀 살았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염라대왕이 된다면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불평하는 원사를 써서 태웠는데
옥황상제가 그의 뜻을 알고 하룻밤 동안 임시 염라대왕을 시켰다. 옥황상제는
지옥에 350년 이상 해결하지 못한 송사들이 있는데 사마모가 이것을 공정하게 판결하면 내생에 복을 받고 그러지 못하면 방자하게 입을 놀린 대가로 영원히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사마모는 자신 있게 송사를 판결해 보겠다고 했고 이에 판관이 네 가지 송사를 내놓았다. 모두
전한 초기의 사건으로 350년 이상 끌어 온 것이었다.
아래는 사마모의 판결문이다.사마모는 문서를 읽고 원고와 피고를 모두 부르고 관련 있는 사람들도 모두 불러 이야기를 듣고 난 뒤 판결을 내렸다.
" 한신은 한나라에 충성을 다했지만 억울하게 죽었으니 내생에 한나라의 승상이 되고 후일 위왕의 지위에 봉해져 한나라 강산의 절반을 차지할 것이다. 그러면 마음껏 전생의 원수를 갚을 수 있으며 생전에 황제로 칭하지 않으니 배반할 마음이 없었음을 밝히고 그대의 아들이 그대를 황제로 추존해 한나라를 위해 세운 공을 보상 받을 것이다.
유방은 한나라의 마지막 황제로 태어나도록 하라. 그대가 전생에 공신을 저버렸으니 내생에는 그 신하에게 눌려 불안하게 살다 죽을 것이다. 여치는 다시 유방의 황후가 되도록 하라. 한신에게 시달리다가 결국 그에 의해 죽을 것이니 그를 죽인 원한을 갚는 것이다.
소하는 한신의 신하가 되도록 하라. 매우 총명하기로 이름이 나고 한신에게서 높은 봉록을 받으니 이는 한신을 세 번 추천한 은혜를 갚는 것이다. 하지만 한신에게 죽음을 당할 지어니 이것은 군사 기밀을 밝히고 한신에게 죽음을 내린 업보이다. 그대는 그를 속여 장락궁으로 불러들여 죽이지 않았는가.
영포는 강동을 차지하고 한신·팽월과 함께 천하를 3분하도록 하라. 팽월은 정직한 사람이었으니 촉 땅을 차지하고 황제가 되어 한신·영포와 함께 천하를 3분하도록 하라."
그러자 팽월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천하가 3분될 때는 크게 혼란할 시기입니다. 어찌 조그마한 촉 땅만을 가지고 한신과 영포를 상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럴 것 같아 그대를 도와줄 사람을 같이 보내 주겠다. 한신에게 유방·항우와 함께 천하를 3분하라 했던 괴철이 그대의 책사가 되어 개국 공신이 되어 줄 것이다. 그리고 한신의 수명을 잘못 예언했던 점쟁이 허복(許復)[8]이 그대에게 서천 땅을 안겨 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화살을 맞고 낙봉파에서 죽을 것이니 이는 점을 잘못 친 업보이다. 또 번쾌와 항우가 그대를 도울 장수가 될 것이다. 번쾌의 처 여수는 언니를 도와 한신을 죽게 했고, 항우는 자영을 죽이고 함양을 불태웠으니 둘 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그러나 번쾌는 충성스럽고 용맹하며 아첨하지 않았다. 또 항우는 태공을 죽이지 않고 여치를 더럽히지 않았으며[9] 술상에서 유방을 비겁하게 죽이지 않았다. 그러니 그대들은 내생에 의롭고 용맹하며 강직하게 살고 사후에 신으로 추앙받을 것이다.
기신은 유방에게 충성을 다하고 마지막에는 그로 분장하고 싸우다 적군에게 죽었다. 그대는 장판에서 주인의 아들을 구하고 백만 대군 속에서 무용을 떨치는 명장이 될 것이다.
척씨는 팽월의 정실 부인이 되도록 하라. 여치는 팽월의 용모에 반했으나 그 음탕한 마음을 성사하지 못했고, 유방이 척씨를 사랑함을 시기했으니 아예 두 사람이 부부가 되어 여치가 시기하지 못하게 하겠다.
여의(如意)는 다시 척씨의 아들로 태어나도록 하라. 기신이 구해낼 아이가 바로 그대이다. 그대는 태자로 2년, 황제로 40년, 총 42년 간 부귀를 누리며 평안하게 살 것이다. 여치의 시기에 의해 비참하게 죽은 것을 보상하는 바이다.
정공은 영포의 부하가 되어라. 비록 유방을 살려주긴 했지만 결국 주인을 배신하지 않았는가? 전생에 항우를 끝까지 섬기지 않았으니 내생에도 영포를 끝까지 섬기지 못할 것이다.
홍문의 연회에서 유방을 구한 항백은 혈육을 배반하고 남의 편을 들었고, 옹치는 원수 유방이 주는 작위를 받았으니 둘 다 항우의 원수다. 내생에 항우가 잠시 한신에게 의탁할 일이 있을 것인데 그 때 두 사람 다 그의 칼에 목이 잘릴 것이다.
항우를 몰아세운 그대들 여섯 장수 역시 그에게 죽음을 당할 것이다. 항우가 한신에게 머물러 있다 다시 팽월에게로 돌아갈 때 항우가 그대 여섯이 지키는 다섯 관을 지나며 그대들을 모두 벨 것이다."
사마모는 한나라와 초나라가 천하를 다툴 때 은혜나 원수를 채 갚지 못한 자, 억울하게 죽었거나 재능을 다 펴 보지 못한 자들도 모두 삼국시대에 다시 태어나게 해서 뜻을 펴게 했다. 그리고 야박하고 남을 해친 자, 악독한 음모를 꾸민 자, 은혜를 갚지 않은 자들은 말로 태어나 장수들을 태우게 하며 고생스러운 일생을 살게 했다.
사마모가 하룻밤 만에 판결을 끝내니 옥황상제가 탄복하며 말했다.
"잘 하였다. 그대 역시 한신의 부하가 되어라. 그대는 훗날 승상의 지위에 올라 후일 삼국을 통일할 자의 조상이 될 것이다. 한신이 비록 원수를 갚지만 황제를 깔보고 황후를 시해하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다. 따라서 그대의 후손이 한신이 한 행동을 그대로 되풀이할 것이다. 후세 사람들이 전생의 사연은 모르고 후세의 행동만을 배울까 염려되어 하는 일이니 후세 사람들에게 선행을 권해야 한다. 그러니 한신은 원망하지 말거라. 그대는 또 바라는 것이 있는가?"
"저의 처 왕씨는 평생을 저와 함께 하며 부귀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제가 후세에 부귀를 누린다면 그녀 역시 다시 저의 아내가 되어 부귀를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알겠다."
옥황상제는 이를 흔쾌히 허락했고 사마모는 이승에 돌아와 왕씨에게 사연을 알려줬다. 얼마 뒤 사마모는 죽었고 왕씨도 따라 죽었다. 결국 사마모와 왕씨를 포함해서 사마모가 판결한 장수들도 모두 각자 분담된 역할로 환생했다.[10]
요약하자면" 한신은 한나라에 충성을 다했지만 억울하게 죽었으니 내생에 한나라의 승상이 되고 후일 위왕의 지위에 봉해져 한나라 강산의 절반을 차지할 것이다. 그러면 마음껏 전생의 원수를 갚을 수 있으며 생전에 황제로 칭하지 않으니 배반할 마음이 없었음을 밝히고 그대의 아들이 그대를 황제로 추존해 한나라를 위해 세운 공을 보상 받을 것이다.
유방은 한나라의 마지막 황제로 태어나도록 하라. 그대가 전생에 공신을 저버렸으니 내생에는 그 신하에게 눌려 불안하게 살다 죽을 것이다. 여치는 다시 유방의 황후가 되도록 하라. 한신에게 시달리다가 결국 그에 의해 죽을 것이니 그를 죽인 원한을 갚는 것이다.
소하는 한신의 신하가 되도록 하라. 매우 총명하기로 이름이 나고 한신에게서 높은 봉록을 받으니 이는 한신을 세 번 추천한 은혜를 갚는 것이다. 하지만 한신에게 죽음을 당할 지어니 이것은 군사 기밀을 밝히고 한신에게 죽음을 내린 업보이다. 그대는 그를 속여 장락궁으로 불러들여 죽이지 않았는가.
영포는 강동을 차지하고 한신·팽월과 함께 천하를 3분하도록 하라. 팽월은 정직한 사람이었으니 촉 땅을 차지하고 황제가 되어 한신·영포와 함께 천하를 3분하도록 하라."
그러자 팽월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천하가 3분될 때는 크게 혼란할 시기입니다. 어찌 조그마한 촉 땅만을 가지고 한신과 영포를 상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럴 것 같아 그대를 도와줄 사람을 같이 보내 주겠다. 한신에게 유방·항우와 함께 천하를 3분하라 했던 괴철이 그대의 책사가 되어 개국 공신이 되어 줄 것이다. 그리고 한신의 수명을 잘못 예언했던 점쟁이 허복(許復)[8]이 그대에게 서천 땅을 안겨 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화살을 맞고 낙봉파에서 죽을 것이니 이는 점을 잘못 친 업보이다. 또 번쾌와 항우가 그대를 도울 장수가 될 것이다. 번쾌의 처 여수는 언니를 도와 한신을 죽게 했고, 항우는 자영을 죽이고 함양을 불태웠으니 둘 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그러나 번쾌는 충성스럽고 용맹하며 아첨하지 않았다. 또 항우는 태공을 죽이지 않고 여치를 더럽히지 않았으며[9] 술상에서 유방을 비겁하게 죽이지 않았다. 그러니 그대들은 내생에 의롭고 용맹하며 강직하게 살고 사후에 신으로 추앙받을 것이다.
기신은 유방에게 충성을 다하고 마지막에는 그로 분장하고 싸우다 적군에게 죽었다. 그대는 장판에서 주인의 아들을 구하고 백만 대군 속에서 무용을 떨치는 명장이 될 것이다.
척씨는 팽월의 정실 부인이 되도록 하라. 여치는 팽월의 용모에 반했으나 그 음탕한 마음을 성사하지 못했고, 유방이 척씨를 사랑함을 시기했으니 아예 두 사람이 부부가 되어 여치가 시기하지 못하게 하겠다.
여의(如意)는 다시 척씨의 아들로 태어나도록 하라. 기신이 구해낼 아이가 바로 그대이다. 그대는 태자로 2년, 황제로 40년, 총 42년 간 부귀를 누리며 평안하게 살 것이다. 여치의 시기에 의해 비참하게 죽은 것을 보상하는 바이다.
정공은 영포의 부하가 되어라. 비록 유방을 살려주긴 했지만 결국 주인을 배신하지 않았는가? 전생에 항우를 끝까지 섬기지 않았으니 내생에도 영포를 끝까지 섬기지 못할 것이다.
홍문의 연회에서 유방을 구한 항백은 혈육을 배반하고 남의 편을 들었고, 옹치는 원수 유방이 주는 작위를 받았으니 둘 다 항우의 원수다. 내생에 항우가 잠시 한신에게 의탁할 일이 있을 것인데 그 때 두 사람 다 그의 칼에 목이 잘릴 것이다.
항우를 몰아세운 그대들 여섯 장수 역시 그에게 죽음을 당할 것이다. 항우가 한신에게 머물러 있다 다시 팽월에게로 돌아갈 때 항우가 그대 여섯이 지키는 다섯 관을 지나며 그대들을 모두 벨 것이다."
사마모는 한나라와 초나라가 천하를 다툴 때 은혜나 원수를 채 갚지 못한 자, 억울하게 죽었거나 재능을 다 펴 보지 못한 자들도 모두 삼국시대에 다시 태어나게 해서 뜻을 펴게 했다. 그리고 야박하고 남을 해친 자, 악독한 음모를 꾸민 자, 은혜를 갚지 않은 자들은 말로 태어나 장수들을 태우게 하며 고생스러운 일생을 살게 했다.
사마모가 하룻밤 만에 판결을 끝내니 옥황상제가 탄복하며 말했다.
"잘 하였다. 그대 역시 한신의 부하가 되어라. 그대는 훗날 승상의 지위에 올라 후일 삼국을 통일할 자의 조상이 될 것이다. 한신이 비록 원수를 갚지만 황제를 깔보고 황후를 시해하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다. 따라서 그대의 후손이 한신이 한 행동을 그대로 되풀이할 것이다. 후세 사람들이 전생의 사연은 모르고 후세의 행동만을 배울까 염려되어 하는 일이니 후세 사람들에게 선행을 권해야 한다. 그러니 한신은 원망하지 말거라. 그대는 또 바라는 것이 있는가?"
"저의 처 왕씨는 평생을 저와 함께 하며 부귀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제가 후세에 부귀를 누린다면 그녀 역시 다시 저의 아내가 되어 부귀를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알겠다."
옥황상제는 이를 흔쾌히 허락했고 사마모는 이승에 돌아와 왕씨에게 사연을 알려줬다. 얼마 뒤 사마모는 죽었고 왕씨도 따라 죽었다. 결국 사마모와 왕씨를 포함해서 사마모가 판결한 장수들도 모두 각자 분담된 역할로 환생했다.[10]
- 사마모→ 사마의
- 왕씨→ 장춘화
- 한신→ 조조
- 소하→ 양수
- 팽월→ 유비
- 항우→ 관우
- 번쾌→ 장비
- 기신→ 조운
- 괴철→ 제갈량
- 허복→ 방통
- 척씨→ 감부인
- 여의→ 유선
- 영포→ 손권
- 정공→ 주유
- 유방→ 유협
- 여후→ 복황후
- 항백·옹치→ 안량·문추
- 여마동·왕예(王翳)·양희(楊喜)·하광(夏廣)·여승(呂勝)·양무(楊武)→ 공수· 한복· 변희· 왕식· 진기· 채양
- 한신: 유방을 신뢰하고 있었던 것 같긴 하지만 그러면서도 트롤짓을 많이 했다. 대표적으로 이미 역이기의 말빨로 구슬러놓은 제나라를 괜히 공격해서 애먼 역이기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제나라가 항우랑 손잡게 만드는 대형사고를 쳤다. 유수 전투에서 한신이 이겼기 망정이지 여기서 졌으면 정말 큰일날 뻔 했다. 그런 주제에 제나라 왕작을 요구하고, 유방이 쿨하게 승낙했는데도 고릉 전투에서 유방을 지원하지 않아 패배에 일조했다. 해하 전투도 '거래' 끝에 참전한 거다. 천하통일 이후에도 주발, 관영, 번쾌를 걸고 투덜대는가 하면 다다익선 드립으로 유방을 긁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고도 목숨만은 무사했다가 결국 유방이 반란 진압하러 나간 사이 진희와 짜고 진짜로 반란을 일으켜온 것이 발각되어 소하, 장량과 결탁한 여후에게 죽는다.
- 영포·팽월: 팽월도 '거래'로 해하 전투에 참전한 반독립세력이었지만 유방은 통일 이후에도 딱히 그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팽월을 죽인 건 여후였다. 게다가 척부인의 판결에서 함께 나온 '여후가 팽월에게 구애했으나 실패해 앙심을 품고 역적으로 몰았다'는 설정은 여후가 까무러칠 일이다. 영포 또한 한신, 팽월이 숙청되는 거 보고 의심을 품어 정말로 반란을 일으켰다 죽은 거다.
- 소하: 한신을 의리 없이 배신한 게 아니다. 애초에 한신을 추천한 사람이 소하였으니 이건 한신이 하도 업보를 쌓은 탓이라 봐야 한다.
- 괴철: 오히려 허복보다 이쪽이 더 큰 죄를 지었다. 제나라를 앞에 두고 김이 팍 샌 한신을 부추긴 사람이 그였다. 즉 괴철이야말로 역이기를 죽인 제1원인인 것이다.
- 항우·번쾌: 팽월의 좌우를 지키기 위해 무력 최강자(그 항우를 쫄게 만든 유일한 인물이 번쾌다)를 붙여준다는 설정 자체는 적절하지만, 섬기던 왕인 의제를 시해하는 불충을 저지르고 적지의 백성을 그저 화가 난다고 학살하는 등 항우의 행적은 관우와 비교하기가 미안할 정도. 번쾌도 담백한 성격으로 (속 뒤틀린 한신을 제외한) 모두에게 호감형이었는데 아내의 죄 때문에 내생에서 제 명줄을 못 채우는 꼴이 되었다.
- 척부인: 유방의 총애를 믿고 자기 아들을 태자로 밀었다. 상대가 여후였으니 본인이 동정받는 거지,[12] 태자 교체 건은 당시의 중신들부터 죄다 유방을 뜯어말릴 정도로 지지를 받지 못했다.
- 정공: 제일 개연성 없는 판결로, 주군보다 먼저 천수를 다한 삼국지 인물이 한둘도 아니고, 주유는 정공과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충의로운 인물이었다. 주군을 배신했으니 벌을 받아야한다는 판결문으로 보면 차라리 원소, 여포, 유장처럼 부하들에게 배신당해 망하는 부류의 인물이 더 어울린다. 특히 정공이 원소라면 (비록 얼자였어도) 4세3공 명문가 출신이니 유방이 약속해놓고 주지 않았던 포상을 받은 셈인데다, 무력으로 한나라 땅 일부를 뺏었으니 유방에게 복수한 게 되고, 안량과 문추를 잃었으니 관우로 환생한 항우에게 복수당한 게 되기에 개연성이 제대로 맞아떨어졌을 것이다.
- 옹치: '항우의 원수인 유방의 작위를 받았으니 너도 항우의 원수'라고 하는 건 좀 비약인데 애초 옹치는 항우랑 같은 편이었던 적이 없었다. 오히려 옹치가 처음 유방의 통수를 쳤을 때, 유방은 항량의 지원을 받아 옹치를 응징했던만큼 항우와 사이가 좋았을 이유가 없다.
-
사마모(번외): 사마의로 환생해 복락을 누린다 했는데 사마의 본인은 몰라도 후손들은 썩 좋지 않았다.
위의 사례들을 보면 옥황상제가 판결 잘못 내렸다며 벌을 내릴 만 하다아니, 본인조차 한신이 환생한 조조와 함께 망탁조의로 묶이며 후세에 역적의 대명사로 조롱까지 받게 됐다. - 왕씨(번외): 장춘화로 환생해 사마의와 부귀를 같이 누리긴 했으나, 사마의가 부귀해지자 뒷전으로 밀려나더니 '성가신 늙다리(老物)'라고 까이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1]
원나라 지치(至治, 1321~1323) 연간의
복건성 건안 간행본
[2]
삼국지연의는 민담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3]
講史. 역사를 이야기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송대의 만담가들이라 할 수 있는 설화인들 중 일부가 이야기 주제를 장편 역사를 주 대상으로 하기 시작하면서 클래스가 체인지된 케이스이다.
판소리처럼 대부분 그 길이 때문에 한 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 부분으로 잘라서 이야기했다.
[4]
총 3권짜리 이야기인데 삼국지 연의가 24권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거의 1/10 수준이다.
[5]
예를 들어 관우가 유비에게 돌아가려 하자 그에게 비단옷을 내리는 척하며 정말로 사로잡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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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족으로 유비나 한나라하고는 상관이 없다. 다만 유연의 선조 묵특 선우가 유방과 형제의 의를 맺고 유씨를 칭한 이후로 상징적으로 유씨를 사용했고 실제로 유연은 한나라를 세웠고 유총은 전한, 후한, 촉한을 모두 선조로 추존하고 한나라의 계승을 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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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현대에는 여기 언급된 이들은 다 숙청당할만 해서 숙청당했고 유방은 되려 가급적 숙청 안 하거나 해도 온건하게 끝내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그러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한신은 역이기가 제나라를 구슬러놨더만 제나라를 공격해 역이기는 죽고 제나라가 항우에게 붙어버리게 만드는 트롤링을 저지르는 등 아군에 끼친 해악이 너무도 커서 그가 숙청당할 때 무려 그를 천거한 소하조차도 찬성했다. 심지어 이마저도 회음후로 강등된 후의 일로 이전에는 초왕이었는데 이마저도 전에는 제왕이었으니 나쁘지 않은 대우를 받은 것이고 강등된 것도 무려 반역 혐의 때문이었던지라 그 때 안 죽고 강등만 당한 것으로도 다행인 일이었다. 결국 여후에게 죽지만 이 때는 유방이 반란 진압하러 나가 없는 사이에 쓱싹 해치워진지라 유방은 한신이 죽은 후에야 일을 알게 되었다. 팽월이나 영포는 한신만은 덜하지만 팽월은 유방 명령 잘 안 들었던 적이 있고 영포는 다 좋은데 두 사람이 숙청되는거 보고 지가 쫄아서 반란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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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시대의 실존 인물도 아니고 삼국지평화 원전에도 없는
요음사사마모단옥의 창작 인물이다. 괴철이 한신에게 그러게 왜 자신의 천하3분지계를 따르지 않아 죽음을 자초했냐고 나무라자 한신은 허복이라는 점쟁이가 72살까지 살 거라고 예견한 걸 믿었기 때문이라고 변명했는데, 허복은 한신이 네 가지 죄(도주로를 알려준 노인 입막음 살해, 역이기의 죽음에 기여, 감히 신하의 몸으로 군주에게 절을 받음, 초나라 병사를 지나치게 많이 죽임)를 지어 수명 40년이 줄어서 그렇다고 변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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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지만 항우는 이렇다 할 여성편력이 없다. 항우는 아내가 없었고 그나마 우희라는 총애하는 여자가 있긴 했으나 그의 말인 추와 함께 그런 이도 있었다는 기록과 사면초가 당시 님긴 화항왕가 외에 아무 기록도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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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는 사실 고증오류(?)다. 몇몇 인물들은 출생년도가 영제 시기보다 한참 전에 태어났기 때문. 이 시기가 영제 시기라고 했는데(168~189년) 조조(155년), 유비(161년), 관우(160년대 초로 추정), 장비(165년으로 추정)은 모두 영제 이전 시기에 태어났다. 다르게 말하자면 사마모가 이 판결을 내리고 있을 때 이미 네 사람은 세상 어딘가에서 어린아이로 살고 있었다는 것. 배경을 환제 시기(146~168년)로 조금만 앞당겼어도 실제와 맞아떨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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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는 삼국지평화가 연의처럼 어느 정도의 문학적, 역사적 고찰을 하면서 쓰여진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민중들을 대리만족시키고 재미를 주기 위해 쓰여진 민담이기 때문이다. 삼국지평화는 그 내용 자체가 가치있기보다는 당시 시대의 민중들이 초한시대와 삼국시대의 인물들에 대해 어떠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간접적인 자료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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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어디까지나 여후의 잔악한 보복때문에 동정받는 것일 뿐 그녀가 보복당한 것 자체는 납득가는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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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야 당시에 그 인물의 능력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된 거니 뭐 어쩔 수 없다. 방통도 연의에서 뇌양현에서 현령으로 있는 동안 놀기만 해서 빡친 유비가 장비를 보내니 밀린 일을 반나절만에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