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5 17:30:20

안대희

역임한 직위
[ 펼치기 · 접기 ]
파일:검찰 CI (흰색).svg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word-break: keep-all"
{{{#000,#DDD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초대
서상환
제2대
김익진
제3대
서정국
제4대
박승준
제5대
정창운
제6대
최대교
제7대
김병화
제8대
김영천
제9대
서병균
제10대
김성재
제11대
이영환
제12대
이길주
제13대
김석휘
제14대
서동권
제15대
이명희
제16대
김세권
제17대
김양균
제18대
한영석
제19대
서정신
제20대
김유후
제21대
김현철
제22대
김기석
제23대
김기수
제24대
김종구
제25대
주광일
제26대
김상수
제27대
강신욱
제28대
이명재
제29대
김경한
제30대
이종찬
제31대
정진규
제32대
김종빈
제33대
안대희
제34대
이종백
제35대
홍경식
제36대
박영수
제37대
권재진
제38대
한상대
제39대
차동민
제40대
안창호
제41대
김진태
제42대
채동욱
제43대
임정혁
제44대
길태기
제45대
국민수
제46대
김현웅
제47대
이득홍
제48대
박성재
제49대
조은석
제50대
박정식
제51대
김영대
제52대
조상철
제53대
이성윤
제54대
김후곤
제55대
이주형
}}}}}}}}}}}}}}}}}}

파일:검찰 CI (흰색).svg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word-break: keep-all"
{{{#000,#DDD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초대
박희태
제2대
김동철
제3대
김경회
제4대
변재일
제5대
김기수
제6대
김택수
제7대
심상명
제8대
이원성
제9대
공영규
제10대
최환
제11대
이명재
제12대
임휘윤
제13대
심재륜
제14대
김각영
제15대
김승규
제16대
이정수
제17대
안대희
제18대
임승관
제19대
이종백
제20대
박상길
제21대
김준규
제22대
문효남
제23대
조근호
제24대
황교안
제25대
김홍일
제26대
김현웅
제27대
김경수
제28대
이득홍
제29대
문무일
제30대
박정식
제31대
황철규
제32대
양부남
제33대
박성진
제34대
조재연
제35대
노정연
제36대
최경규
}}}}}}}}}}}}}}}}}}

파일:검찰 CI (흰색).svg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000,#DDD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초대
이종남
제2대
김두희
제3대
한영석
제4대
김경회
제5대
강원일
제6대
박종철
제7대
최명부
제8대
신건
제9대
송종의
제10대
정성진
제11대
김태정
제12대
이원성
제13대
안강민
제14대
최병국
제15대
심재륜
제16대
박순용
제17대
이명재
제18대
이종찬
제19대
신광옥
제20대
김대웅
제21대
유창종
제22대
김종빈
제23대
안대희
제24대
박상길
제25대
박영수
제26대
이귀남
제27대
박용석
제28대
이인규
제29대
김홍일
제30대
최재경
폐지
제31대
김경수
}}}}}}}}}}}}}}}
前 대한민국 대법관
<colbgcolor=#e61e2b><colcolor=#fff> 안대희
安大熙 | Ahn Dae-hee
파일:1702702233615_tygqqx_2_0.jpg
출생 1955년 3월 31일 ([age(1955-03-31)]세)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1]
본관 순흥 안씨 (順興 安氏)
재임기간 제17대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2004년 6월 1일 ~ 2005년 4월 6일
제33대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2005년 4월 8일 ~ 2006년 7월 10일
대법관 ( 이용훈 대법원장 제청 / 노무현 대통령 임명)
2006년 7월 11일 ~ 2012년 7월 10일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colbgcolor=#e61e2b><colcolor=#fff> 가족 배우자 김수연, 슬하 1남 1녀
학력 부산교육대학부속국민학교 ( 졸업)
숭문중학교 ( 졸업)
경기고등학교 (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 행정학 73 / 중퇴)
병역 육군 대위 만기전역 ( 군법무관)
소속 정당

약력 제17회 사법시험 합격
제7기 사법연수원 수료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춘천지방검찰청 영월지청 검사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검사
인천지방검찰청 특수부장
대전지방검찰청 대전지청장
대구지방검찰청 제1차장검사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장
서울고등검찰청 형사부 부장검사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부장
제17대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제33대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대법원 대법관 (2006.07. ~ 2012.07.)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안대희 법률사무소 변호사
국세청 세무조사감독위원회 위원장
법무법인 평안 변호사
새누리당 최고위원 (지명직)
자유한국당 당무위원 겸 법무특임위원
미래통합당 당무위원
국민의힘 상임고문 겸 당무위원
}}}}}}}}}

1. 개요2. 생애3. 정치4. 여담5. 선거 이력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2. 생애

1955년 3월 31일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서 태어났다. 부산교육대학부속국민학교, 숭문중학교,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3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73학번)에 진학했다. 서울대학교 3학년 때이던 1975년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2][3] 곧 학교를 중퇴했다.[4] 이후 검사로 근무했는데, 주로 특수부에서 활동하면서 내성적인 성격과 원리 원칙을 고집해 사법연수원 시절 별명이 '수줍은 사무라이'였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 검찰개혁에 대항하여 2000년대 제16대 대통령 선거 기간에 일어났던 당시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 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 등을 수사하면서 칼잡이 검사, 국민 검사로 유명하였다. 검찰총장 송광수와 중수부장 안대희가 이끄는 검찰 수사팀은 안희정, 이광재 등 정권 실세까지 성역 없이 수사하여 한국판 마니 풀리테라는 찬사를 받으며 팬클럽까지 생기는 등 국민적 인기를 받았다.[5]
파일:hby_171725_1[213888].jpg
대선자금 수사결과 발표하는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6]
그는 검찰 내에서 대검 중수부 1, 3 과장, 서울지검 특수부 1, 2, 3 부장 등 요직이란 요직을 다 거치며 특수통으로 성장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 '너무 잘 드는 칼'이라는 것이 단점으로 작용해 검사장 승진에서 두 번 탈락하기도 했다. 이때 검사복 벗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기도 했었다고. 결국 노무현 정부 시절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당시 검사장급)으로 승진했다. 이후에도 요직을 거쳤으나, 2005년 11월 검찰총장 인선에서 사법연수원 동기 정상명에게 밀렸다. 검찰 시절 최종보직은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2006년부터 2012년까지 대법관을 역임하였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검찰 출신 강신욱 대법관이 퇴임한 후, 판사 출신들로만 구성된다면 법조 전체의 의견을 대법원 재판에 반영할 수 없다고 판단해 안대희를 제청했다. 그러면서 대법원 간부들에게 "법원의 대법원을 넘어 대한민국의 대법원이 되려면 검찰 출신 대법관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연히 개인적인 악연도 있어서 탐탁지 않아했지만 이용훈은 "검찰 출신 대법관이 한 사람은 있어야 합니다. 대법원은 우리나라 전체의 법률 문제에 관해 최종적인 해석을 하는 곳입니다. 검찰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절차에 따라 수사하는지를 알지 못한 채 재판한다면 대법원이 제대로 된 법률 의견을 제시한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라고 말하며 설득했다. 그러나 이용훈은 안대희 대법관 취임 후 그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검찰의 시각을 뛰어넘지 못하는 데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고 한다.

3. 정치

대법관 임기를 마친 안대희는 2012년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의 당선에 기여하였다. 이후 법무법인 평안 소속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2014년 5월 정홍원의 후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되었으나, 변호사 시절 5개월간 16억원을 수임료를 받은 사실 때문에 전관예우 논란이 일어나 지명 6일만에 사퇴하였다.[7]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 에 입당하여 같은 해 1월, 지명직 최고위원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새누리당 후보로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선거구에 출마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김무성 대표 등 일부 지도부가 험지 차출론을 제기하였고, 이에 따라 서울특별시 마포구 갑 선거구에 도전하기로 결정하였다. 해당 지역구에서 제18대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비박( 친이)계인 강승규와 경쟁 끝에 공천을 받았고, 강승규는 이런 새누리당의 결정에 반발하여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공천 전에는 충분히 당선이 가능하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많았으나 정작 공천 이후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후보에게 크게 뒤지는 상황이 되었고, 결국 큰 표 차로 낙선하였다. 안대희(33.2%)와 강승규(4.26%) 둘의 지지율을 다 합쳐도 노웅래 후보(51.92%)에게 한참 모자랐다. 표 분산으로 인한 패배 책임을 강승규에게 돌리기 힘들 정도의 표차.

2016년 5월, 정운호 게이트와 관련하여 비리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받았다. 전관예우로 거액을 착복해오던 홍만표 변호사에게 부동산회사 대표 김 모 씨를 소개한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관련기사 해당 부동산회사의 계열사인 출판사 '글길나루'에도 안대희 전 대법관이 연루된 정황들이 포착됐다.[8] 이에 대해 안대희는 MBN과의 통화에서 "홍만표 변호사와 전혀 관련이 없다"며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의 경상남도지사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불출마를 선언했다.[9]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역시 불출마를 선언하였고, 대신 용인시 병 지역에 출마한 같은 당 이상일 후보, 그리고 홍천군·횡성군·영월군·평창군에 출마한 유상범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았다. 또 공주시·부여군·청양군에서 5선에 도전하는 정진석 후보를 지지하였고, 미래한국당 조수진 국회의원의 후원회장을 맡으면서 정치 활동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2020년 8월부터는 오거돈 성추행 사건으로 인해 시장직을 사퇴해서 공석이 된 부산광역시장 후보로 간간이 언급되었지만, 결국 경선에 출마하지 않았다.[10] 자타로 꾸준히 거론되는 인물인 만큼 오랜 인연의 윤석열 대통령 휘하에서도 정치적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2023년 3월 8일로 예정된 국민의힘 3차 전당대회를 앞두고는 장예찬 청년최고위원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았다.

4. 여담

  • 공교롭게도 한자 이름이 같은 검사 출신 변호사가 1명 더 있다(1981년생. 연수원 41기).
  • 윤석열 대통령과 여러 인연이 겹쳐 있다고 알려져 있다. 2003년 대검 중수부장이던 안 전 대법관이 이끈 16대 대선자금 수사팀에서 함께 일했고, 정치 투신 이후에도 꾸준히 안 전 대법관과 소통해 왔으며, 안 전 대법관이 주도한 싱크탱크 '경제사회연구원'은 이후 대선 캠프의 직속 기구 '경제사회위원회'의 토대가 됐다고 언론 지상에 보도 되었다.[11]
  • 실제로 안철수 의원과 단일화 담판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규 의원과 제가 안대희 전 대법관과 친분이 있는 '안대희 계원' 입니다."라고 이야기한 사실이 알려지도 했다.[12]

5.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마포 갑

[[새누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
28,429 (33.20%) 낙선 (2위)

6. 관련 문서



[1] # [2] 참고로 사법시험 동기가 노무현인데, 훗날에 노무현의 오른팔 왼팔을 잘라낸 것을 보면 악연이다. [3] 당시 고졸은 노무현과 안대희 2명 밖에 없었다. 물론 안대희는 서울대 법대 중퇴이기 때문에 고졸은 노무현 1명 밖에 없다고 여겨진다. [4] 군법무관 시절 내심 중퇴한 것이 아쉬워 복학을 하려 했으나, 법대 교수들의 반발로 실패했다. [5] '마니 풀리테(Mani pulite: 깨끗한 손)'의 추억( 머니투데이), [기자24시] `마니풀리테`와 대선자금 수사( 매일경제신문), 검찰 사정 칼날 伊 '마니 폴리테' 따라 하기?( 주간동아) [6] 왼쪽부터 이인규 춘천지검 원주지청장,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 문효남 대검 수사기획관, 남기춘 대검 중수1과장 [7] 결국 안대희가 물러나자, 청와대는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을 내세웠으나 그 마저도 각종 실언들이 논란이 되어 낙마했다. 결국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를 급하게 구원투수로 올리면서 총리를 시킨다. [8] 건물은 홍만표 변호사의 소유로 확인됐지만, '글길나루'를 처음 설립한 사람은 안대희 전 대법관으로 알려졌다. '글길나루'를 세운 이유 자체가 안대희 전 대법관의 법률 서적을 출간하기 위해서 세웠다는 것. '글길나루'는 2015년 사재기 소송에 휘말리며 '도서출판 평안'으로 이름을 바꿨고, 안대희 전 대법관의 법률서적을 계속 출판했다. 참고로 '평안'은 현재 안 전 대법관이 대표변호사로 있는 로펌 이름이기도 하다. [9] 결국에는 재선 도지사를 지낸 김태호 전 최고위원이 공천을 받았다. [10] 대신 박형준 전 국회사무총장이 출마해 당선되었다. [11] 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220310/112263191/1 [12]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52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