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晉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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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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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續咸생몰연도 불명
서진 및 후조의 인물. 자는 효종(孝宗). 병주 상당군(上黨郡) 출신.
2. 생애
속함은 효성이 있고 근면성실하였으며, 공부를 좋아해 두예를 스승으로 모셨다. 이후 유학에 능통하여 제자 수십 명을 거느리고《 춘추》, 《정씨역》(鄭氏易)을 수업하였다. 그리고 법학에도 일가견이 있었는데, 형법에 특히 밝았다고 한다.영가 연간(307년 ~ 313년), 속함은 정위평, 동안태수를 역임하던 중, 병주자사 유곤이 승제하자 그의 휘하로 배속되어 종사중랑이 되었다.
건흥 4년(316년) 12월, 유곤이 한나라의 진동대장군 석륵의 공격을 받고 패해 단필제에게 도주했다. 이때 속함은 석륵에게 항복하여 이조참군에 임명되었다. 속함은 법을 집행함에 있어서 항상 공평하고 꼼꼼하게 처리하면서도 너그러운 면 또한 있어 당시 사람들이 그를 전한의 우공(于公)에 비견된다 평하였다.
무제 석호가 통치하던 시기에 속함이 97세[1]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니, 석호는 그를 의동삼사로 추증해주었다. 속함은 생전에 《원유지》(遠游志), 《이물지》(異物志), 《급몽고문석》(汲冡古文釋) 등 총 10권의 책을 저술하였는데, 모두 세상에 알려졌다.
[1]
석호가 334년~349년에 통치하였으니 238년~253년 사이에 태어났다는 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