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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E. 어빙 코스 作, 190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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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Nescire autem quid antequam natus sis acciderit, id est semper esse puerum."
"태어나기 이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모른다면, 영원히 어린아이로 남을 것이다."
키케로, 기원전 46년
역사학(
歷
史
學, history) 또는 사학(
史
學)은 말 그대로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접근과 공부하는 방법에 따라
인문학에 분류되기도,
사회과학에 분류되기도 한다. 역사를 연구한다고 하면 과거 문헌들을 줄줄 읽고 유물을 줄창 파며 연구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과거의 사료를 평가, 검증해서 역사적인 사실, 그리고 그들의 관계를 추구하는 학문이다."태어나기 이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모른다면, 영원히 어린아이로 남을 것이다."
키케로, 기원전 46년
학생들에게는 암기 과목으로 여겨지지만, 사학이란 하나의 사건을 정치, 경제, 외교, 지리, 과학기술, 사상, 종교, 문화 등 여러 관점에서 뜯어보는 학문이다. 이러한 훈련은 일반인들은 고사하고 사학과 학생들이라고 해도 자신이 진심으로 역사를 좋아해서 들어온 게 아니라 순전히 점수에 맞춰서 들어온 학생들, 심지어 좋아하는 학생이라고 해도 매우 버거운 훈련이다. 그래서 역사학이라는 학문이 쉬우면 쉽고, 어려우면 어려운 학문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또한 역사를 공부하면서 과거와 현재나 결국 근본적인 정치 체제는 비슷 하므로 인생을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어느 시대나 뛰어난 인물들이 나라를 이끌었다.
사학계의 학문적인 성과는 어떻게 내느냐에 따라서 국가부터 개인까지의 역사관, 정치, 외교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에서는 친일반민족행위자 문제가 해방 이후인 현재까지도 사회적 이슈이며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되었을때 학계에서는 크게 문제없었으나, 정치권에서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나치정권은 역사를 통해 아리안족을 위대한 종족으로 설명하고 유대인에 대한 증오의 근거를 찾기도 했다.
2. 역사
자세한 내용은 사학/역사 문서 참고하십시오.3. 분과 및 인접분야
바로 위에서 언급 됐듯이 사학은 하나의 사건을 인과관계를 따져 다양한 방면에서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사학은 정치, 경제, 철학, 지리, 문화 등 다양한 학문들과 관련있다. 결국 사학은 인간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이고 인간의 역사는 곧 인간의 생태이며 사회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3.1. 보존과학
광학, 전자기학, 화학, 수학, 통계학, 지질학 등 자연과학 지식을 동원하여 유물, 문헌, 유적지의 연대를 추정하고 보존하는 분야다.- 금속 유물 분석
- 세라믹 유물 분석: 도자기, 토기, 유리.
- 안료 분석
- 유기물 분석: 천, 가죽, 음식물.
- 고생물 유체 분석: 뼈, 배설물 화석에서 유전인자를 체취하여 질병이나 나이, 사망 시기, 영양 상태를 추정한다.
3.2. 철학
- 기호학 semiotics, semiology
-
비판 역사학 / 역사 비평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각자의 문제 의식에 따라 과제를 설정, 연구를 하게 된다. 자신이 살아있는 사회에 대해 아무런 문제 의식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역사에 대한 문제 의식도 없다. 이것은 역사 연구가 주관적으로 객관성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 논리적인 고찰을 통해 타인을 납득시킬 수있는 연구가 요구된다. 일반적으로 역사 연구는 선조로부터 축적된 사실과 과거의 학자들의 업적을 바탕으로 연구를 비판하거나 심화 발전시키는 것이 사학의 목표가 된다( 일본 위키백과 참조).
3.3. 주제에 따른 분류
-
기록학 /
서지학
사학에서 다루는 사료들은 과거의 기록물이다. 역사적 사실이 기록자와 보존가의 손을 거치며 변질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사료가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 신뢰하더라도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가령 연구할만한 사료가 자서전이거나 선전물이라면 저자의 사견이 상당히 많이 개입되어 있을 것이므로 그 부분을 적당히 가려내어서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해야 할 것이고, 후대에 기록된 역사서의 경우 특정 사실이 앞 시기로 소급되어 기록되었는지의 여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예컨대 전자의 사례로는 춘추필법이 있는데,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에서는 기록을 편찬할 때 실제를 담는다기보다는 지나간 왕조를 평가한다는 의도를 담아서 용어를 임의로 고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가령 칭제한 나라인데 후대에 보기에는 정통성이 부족하여 천자국 자격이 없다고 여겨서 칭호와 관등, 관제 등을 전부 격을 낮추어 제후국의 것으로 적는 것이 있다.[1] 후자의 예시로는 삼국사기가 있는데, 그 당시에는 아직 'A'라는 것이 등장하지도 않았는데 김부식이 "아무래도 이건 A라고 해야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겠군!"이라고 생각하여 'A'라고 미리 적어버리는 경우가 있었다.[2] 또한 단어 하나하나, 맞춤법 하나하나를 면밀히 검토하여 "이때는 존재하지도 않은 단어가 쓰여 있으므로 이 책은 가짜."라고 판정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핵심만 이야기하자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과연 이 사료가 대상으로 하고 있는 시기를 올바르게 반영하고 있는가?"라는 것을 알아내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
사학사 History of Historiography / 역사서술 Historiography[3]
역사를 다루는 역사로서 메타사학이다. 한편으로는, 사학 연구 성과는 그조차 일종의 저작물이기도 하다. 역사 문서에서도 언급하고 있듯, 기록자는 의식적 · 무의식적 심상과 사고관, 주관, 매체 가용량 및 특성적 한계 등 여러 이유로 정보를 취사 및 재구성하게 되고, 이러한 점들은 역사가조차 피하기 어렵다. 역사학적 연구는 객관적인 진실을 추구하지만, 이를 글로써 남기는 역사서술 단계에서 같은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4] 기록자와 사료에 대한 문제는 보통 상술한 기록학이나 서지학 차원에서 주로 다루어진다면, 연구자와 그 서술에 대한 문제, 특히 태도와 관점은 사학사 차원에서 다루게 된다. 사학사란 이러한 태도 각각과 그것들의 시간적 흐름을 연구하는 것이다.
거칠게 요약하면 "과연 이 연구자는 어떤 상황에서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쓰고 있는가?"를 연구한다.
-
언어학
사학의 기록물은 인간의 언어를 통해 기술되기에 사학은 과거부터 언어학과 함께 발전해왔다. - 지역언어학 / 언어지리학: 일부 단어는 특정 지역에서만 사용한다.
- 사회언어학: 언어는 주변 환경의 영향에 따라 변화한다. 특정 단어의 파생/연관 단어가 많을 경우, 해당 분야의 영향이 얼마나 짙었을지 추정할 수 있다.
-
고고학
고고학은 인간이 남긴 '물질'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인간의 과거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사학은 (좁은 의미에서) 문자의 탄생 이후 인간이 '기록'한 자료를 통해서 의미를 파악하는 학문이다. 물론 기록을 통해서 검증하기 힘든 사실들을 물질적인 자료를 통해서 연구하고, 발견된 고고학 유물을 사료를 통해 고증하는 등, 두 학문은 밀접하게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특히 고대로 갈수록 문자로 기록된 사료의 양이 현저하게 적어지므로 고대사를 연구하고자 한다면 고고학에 대한 이해가 거의 필수적이다. 유럽사의 경우, 고대부터 근세(프랑스 혁명 1789년까지)까지를 주로 고고학의 연구 분야로 본다.
-
정치외교사
근대 역사학이 탄생한 이래 가장 처음 다루어진 분야이다. 당시 일반에 공개되기 시작한 공공기록보관소의 문헌 연구, 당대 다수 심성을 뒤흔든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국가와 국민, 그들의 정치외교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것에 따른 현상이었다. - 정치이념사상사
- 왕조사
- 정당사
- 선거사
- 혁명·독립운동·투쟁사
- 국제관계사
-
군사사
군대와 군사작전, 군 지휘통제, 병력, 무기, 국제 안보 정세의 흐름 등을 다루는 분야. 군사학의 일부이며, 전쟁사를 매개로 정치외교사와 긴밀하게 연결되기도 한다. 의외로 군사 안보를 주관하는 국방부에서 역사를 중시하는 이유. 실제로 미국 국방부는 군인 교육을 위해 사학자들을 고용하고 있으나, 미 전역에 퍼지고 있는 인문학 전공 기피 현상으로 인해 사학 전공자 수가 감소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를 지적하며 "역사학이 국가안보와 직결된다"는 언론의 평도 나오는 중. # - 전쟁사
- 무기사
-
사회문화사
문화인류학 및 사회학적 영향이 강하다. 그밖에 분야에 따라 의학, 법학, 유전학, 미학 등 다양한 학문과 연계된다. - 미술사
- 음악사
- 문예사
- 여성사/젠더사
- 지역사, 향토사
- 미시사
- 가족사
- 요리사(식문화사)
-
심성사
당대 사람들이 보고 느끼고 반응하는 것, 즉 '심성'(mentalités)을 연구한다. 일상 및 사회적 심리, 발상에 관한 것을 다룬다. 특히 프랑스 아날학파를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 민족지학 ethnography
- 민속학
- 계보학 genealogy / 가계사 family history
- 문장학 heraldry
- 기장학 vexillology
- 도시사
-
지성사 Intellectual history
사상과 개별 지식인, 지식인 간 교류를 포함한 지식인사회의 활동, 그리고 출판산업이나 도서시장과 같이 식자층 저변에 관련된 물질적인 것을 다룬다.
-
경제사
크게 두 가지 갈래가 있는데, 하나는 사학적 사회경제사 연구(사학)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학적 역사 연구(경제학)이다. 정치외교사 이후 현대 사학이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분야 중 하나였으며, 사회사와 결합되어 나타나기도 하였다.
중고등 한국사 교과서에서도 역사를 배울 때 경제사를 따로 배우며 특히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살펴보려면 경제학을 접할 수밖에 없다. 경제학과에도 경제사 수업은 거의 매학기 개설된다. - 농업사
- 상업사
- 공업사
-
과학사
더 넓은 범위로는 과학기술사가 있다.
-
종교사
종교학 및 신학 참고. 과거로 갈수록 정치부터 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종교의 영향이 커진다. 예컨대 아라비아 역사를 이해하려면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립과 발전 과정을, 유럽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기독교의 역사와 분할, 그리고 이슬람과의 갈등을 이해해야 한다.
-
환경사
환경에 대한 역사연구는 사회경제사를 거쳐 구조사 관점에서 이미 제시되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발달한 것은 기후문제를 직접적으로 체험하면서다. 환경의 영향력을 강조하지만, 그에 대한 인간의 반응에 주목하여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기술하므로 자연과학이 아니라 인문과학 영역이다.
3.4. 시대에 따른 분류
-
고전학
고전학은 사학 중에서도 전 세계의 고전고대 문화, 즉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화로 불린다. 고전 연구는 예전에는 인문과학의 토대의 하나로 매우 중요히 여겨졌으나, 20세기 동안에 그 중요성이 감소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과 문학과 같은 인문과학에서 고전적 관념들의 영향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다시 말하자면, 고전은 초기 세계의 주요 문명에서 씌여진 기본적인 책들이다. 고전은 유럽에서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등, 인도에서는 베다와 우파니샤드 등, 중국에서는 산해경과 시경, 상서, 주역 등, 이집트의 사자의 서와 마찬가지로 메소포타미아에서는 함무라비 법전과 길가메시 서사시와 같은 책들을 가리킨다.
-
근현대사
3.5. 지역에 따른 분류
모든 지리에는 역사가 붙어오기 마련이다. 지리와 연관되는 학문들과 매우 밀접해질 수 있다. 지리, 지도, 지역 등과 밀접하다.-
세계사 World History
전 인류 역사를 총체적으로 연구한다. 다만 유럽과 미국 중심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
지구사 Global History
20세기 후반에 제기되어 21세기에 대두된 연구분야로 민족이나 국가, 권역 단위의 연구 대신 인간 사회의 지구적 교류에 초점을 두되, 전통적인 세계사에서의 보편적 중심을[5] 배제하는 것이다. 예컨대 남미 포토시 은광에서 난 은이 스페인 제국에 보내졌다가 인도양과 필리핀을 거쳐 청나라까지 흘러들어가는 과정과 영향을 조망하는 식이다. -
비교사
유사한 현상이 존재하는 두 지역 및 사회를 비교·대조하는 것이다. 일례로 마르크 블로크는 저작 『봉건사회』에서 유럽의 Feudalism과 일본의 봉건제를 비교한 바 있다. - 유럽사학
- 동아시아사학
- 남아시아사학
- 서아시아사학
- 중앙아시아사학
- 동남아시아사학
- 아프리카사학
- 아메리카사학
4. 역덕후와의 관계
아마추어 역덕후의 연구 분야는 전쟁사나 무기사, 무술사 등인 경우가 많으며, 정치사라 할지라도 어느 국가가 최강이냐 같은 쪽으로 흐르거나, 특정 국가를 지지하는 쪽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부분은 흥미를 끌기 쉬우나,[6] 실제 그 시대 사회상을 파악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뿐더러 학계에서 깊이 있게 다루지도 않는다. 카페와 블로그에서 다루는 것들은 흥밋거리, 토픽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지만 덕질을 뛰어넘어 보다 의미 있는 연구를 하려면 다른 전문성 있는 학자들이 쓴 논문들을 많이 읽고 스스로 생각해보거나,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료의 원문을 직접 찾아보고 해석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7]역사학에서 중요시 여기는 것은 과거에 대한 객관적 지식에 대한 탐구, 과거 사건의 여러 인과 관계를 파악하는 것[8], 역사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혹은 역사를 통해 사회 구조를 파악하거나 역사가 지닌 다양한 관점과 가능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역덕후라고 함은 자극적인 소재 혹은 흥미를 끌기 쉬운 소재를 통해 역사를 파악하며 로망스적인 해석이 주를 이룬다. 개개의 영웅기를 중요시 여기며 전쟁사가 역사 파악의 핵심이 된다. 물론 이러한 역덕후에서 발전하여 학습을 통해 역사학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역덕후라 함은 역사학에서 추구하는 바와는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개 유비, 관우, 장비 세 명의 일대기를 보거나 그들의 죽음에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끼며 제갈량의 식소사번하고 살신성인 하는 모습, 강유가 촉한의 마지막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통해 애잔함과 슬픔을 느낀다. 이는 역사를 바라보는 태도라기보단 문학을 바라보는 태도이며 이들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 바로 원말명초 나관중의 역사 소설인 <삼국지연의>가 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특히 <삼국지연의>의 시작은 후한 말 황건적의 난으로 시작하나, 역사학에서 바라 보는 삼국시대는 조비가 헌제에게 황위를 선양 받고 조위를 건국했을 때를 기준으로 삼는다. 이 위진남북조 시대 연구는 토지 제도의 변화[9]와 호한 융합[10], 육조 문화[11]의 발흥과 호족의 성장과 귀족들의 대토지 겸병[12]을 핵심으로 삼는다. 삼국시대는 이 시대를 연 시기로 이러한 후한이라는 거대한 통일 왕조가 무너지고 중세를 거치면서 다시 통일 왕조로 이어지는 대변혁의 시대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13]
로마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로마를 선호하는 이들은 카이사르의 일대기, 로마의 광활한 영토, 강력한 군사력 등이 주관심사이며 로마가 유럽에 끼친 영향력에는 큰 관심이 없다. 공화정 초기부터 이어지던 평민 계급과 귀족 계급 간의 갈등, 포에니 전쟁을 통한 로마 내부의 모순 발생과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그리고 암살,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이 된 원로원의 폭정과 마리우스의 군제 개혁, 술라의 숙청, 카이사르의 삼두정치와 제정으로의 이행, 아우구스투스의 프린키파투스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왜 사회가 민주정 혹은 공화정이라는 권력이 분산된 체제에서 전제정이라는 권력의 독점 현상이 일어났는가, 그 과정에서 일어난 로마 토착 종교의 몰락과 밀라노 칙령을 통한 기독교의 공인화가 로마사 연구의 핵심이 된다. 그리고 476년 로마가 서방 영토를 상실하고 일시적으로 서유럽의 체제와 문화가 후퇴했을 때 프랑크족의 발흥, 프랑크 왕국과 카롤루스 대제의 르네상스, 서로마 황제 대관, 베르됭-메르센 조약으로 인한 프랑크 왕국의 분열과 동프랑크 오토에 의한 신성 로마 제국 건설, 그리고 이를 보면서 대립을 세우는 동로마 황제와 동서 교회의 대분열은 중세 유럽과 로마의 관계를 이해하는 핵심이 된다.
역사학은 그 스스로 독립적인 학문이 되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했고 이를 통해 역사학은 ①역사는 객관적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 ②역사학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가? ③역사학은 단순 사실 관계의 나열이 아닌 여러 인과 관계를 파악하는 것 ④역사는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존재하며 과거에 기록된 텍스트를 통해 새로운 해석을 창작하는 과정이라는 존재 의의를 얻었고 이로 인해 지금의 역사학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역사학자들은 역덕후가 바라보는 관점보다 더 폭넓고 다양한 견해를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역덕후는 전쟁사와 무기사라는, 역사에서 다루는 분야보다 극히 지엽적인 부분을 탐구하므로 역사학의 근본적인 영역과는 거리가 멀다.
5. 중등 교육
6. 고등 교육
7. 수험 과목으로서의 사학
- 대학수학능력시험
- 한국사능력검정시험
- 세계사능력검정시험
- 공무원 시험
- 9급 공개경쟁채용시험: 한국사(공통과목)
- 국회 9급공개경쟁채용시험: 한국사(공통과목)
- 법원 9급공개경쟁채용시험: 한국사(공통과목)
- 소방사 공개경쟁채용시험: 한국사
- 초등교원임용경쟁시험 교육과정 중 사회
- 중등교원임용경쟁시험 역사
- 서울시 연구직 경력경쟁채용시험 : 문화사(학예연구직)
- 검정고시 : 사회(초졸학력, 중졸학력), 한국사(고졸학력)
- 독학사 : 1차 국사, 문화사(세계사)
- 준학예사 시험 : 미술사학, 한국사, 자연사, 과학사, 문화사, 문학사 (1교시 선택과목)
- 국제 과학 올림피아드
8. 인물
9. 관련항목
10. 관련 문서
[1]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조선 초에 편찬된
고려사인데, 당초에는 이것도 춘추필법에 따라 용어를 전부 고쳐서 쓰일 뻔했다가
세종이 개입하면서 원래 쓰였던 어휘 그대로 남길 수 있게 되었다.
[2]
예를 들어 백제본기의 경우,
고이왕 때에 좌평제가 완비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학자들 가운데에서는 이를 믿지 않는 사람이 많다. 같은 시대 중국의 정치조직보다 발전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 도성이 제대로 정비되지도 않은 도시국가 단계인데 "도성에…" 라는 식의 기록이 보이기도 한다.
[3]
보통 전자는 사학계에서, 후자는 철학계 등 여타 학계나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에서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여 사학자들이 역서서술이라는 말과 개념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4]
대표적으로 근대 사학에서 흔히
실증주의라고 알려진
역사주의적 사학자
레오폴트 폰 랑케나
테오도르 몸젠도 실제로는 사상이나 호불호 등 자기 주관이 뚜렷한 학자였고, 그 관점의 특성상
국가주의나
민족주의하고도 쉽게 연결되었다. 그리고 이 점은 사료비판에 의한 객관성 확보와는 별개로 서술 및 연구 태도에서 알음알음 반영되었다. 마찬가지로, 휘그사관을 비롯한 많은 진보사관들에서도 은연 중에 진보적인 것으로 규정하지 아니한 것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투영하기도 하였다.
[5]
대표적으로 흔히 "서구중심적"이나 "중화주의적"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있다.
[6]
괜히 삼국지가 인기있는 것이 아니며, 역사를 배경으로 다룬 전략 게임 카페에 역덕후가 많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7]
역덕후와 진짜 전문가를 가려내는 방법도 이와 유사하다. 만약 논쟁이 발생했을 때, 단순한 역덕후라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미 가공된 누군가의 견해를 근거로 드는 경우가 많지만, 진짜 전문가는 원사료를 근거로 든다.
[8]
즉, 역사는 단순한 사실 관계의 나열이 아니다.
[9]
둔전제 → 점과전제 → 균전제 → 장원 형성과 양세법
[10]
북위 효문제의 호한융합정책
[11]
동오 - 동진 - 남조(송 - 제 - 양 - 진)으로 이어지는 강남 지방의 문화 발전
[12]
균전제의 붕괴를 통한 율령체제의 붕괴로 귀족의 대토지 겸병을 인정했고 송대에 이르러 권문세족이 생겨나는 빌미를 제공했다.
[13]
민간에서
촉한정통론이 주목받는 이유도 삼국지연의에 의해서이다. 더 이상 전근대적인 정통성이 필요 없어진 현대에서는 건조하고 냉정한 시각을 통해 조조라는 호족이 권력을 잡고 그 아들 조비가 후한 헌제에게 선위 받았으니 위나라를 핵심으로 삼는다. 당연히 중화의 중심인 화북 지방에 자리 잡은 국가였기도 했고. 때문에 중세 중국의 혼란기를 위진남북조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