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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민지환(閔智煥) |
본관 | 여흥 민씨[1] |
출생 |
1937년
8월 16일 ([age(1937-08-16)]세) 강원도 원성군 |
학력 | 한국연극아카데미[2] (연기과 / 졸업) |
데뷔 | 1967년 KBS 특채 탤런트 |
가족 | 부인 정명자, 슬하 1남 2녀 아들 민준호[3] |
종교 | 천주교 ( 세례명: 대건 안드레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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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2. 일생
1937년 강원도 원성군에서 태어나 서울 충신동으로 이주했다. 3살 때 생모와 헤어지고[4] 9살 때 아버지도 여의자 삼촌들로부터 키워졌는데, 특히 친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재동국민학교 입학 후 학예회에서 두각을 드러내서 친구들과 함께 극단 비슷한 거 만들어 공연하기도 했으나 고등학교 때 다섯 번 옮겨 다니면서 악동 기질로 살아왔고, 19세 때 군 입대 후에도 여전한 행보를 보이며 당초 군대에 말뚝박을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할머니의 죽음을 전해 듣고서야 할머니의 가르침대로 역경을 딛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 제대 후 삼촌들의 레코드 사업을 돕다 1962년 한국연극아카데미 1기생으로 입학하여 유치진으로부터 장학생으로 뽑혀 학비 면제로 2년을 마쳤는데 책값을 벌고자 막노동까지 하기도 했다.1964년 졸업 후 극단 '드라마센터'에 입단하여 연기에 입문, 특히 1965년 <풍운아 나운규>에선 나운규 연기를 실감나게 해서 나운규의 친구 윤봉춘을 반색케 했고 1967년 <인간적인 실로 인간적인>에서 열연 덕에 제3회 동아연극상 조연남우상을 받아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같은 해 국립극단으로 옮겨 1973년까지 몸담으며 <환상살인(1969)>, <원술랑(1970)> 등지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다.
당초 연극만 하고자 했던 그는 생계를 위해 1967년 KBS 탤런트로 특채되어 '민지환'이란 예명을 쓰기 시작, 1974년 <꽃피는 팔도강산>에서 한혜숙과 같이 연기하면서 브라운관에서도 인기를 구가해 1973년 및 1975년 백상예술대상 인기상을 각각 두 차례 받았다. 또한 1974년 영화 <국회푸락치>에도 캐스팅되어 은막에 진출하기도 했다. 1980년 김인태, 남일우, 이신재, 이종만, 민욱, 이정길 등과 함께 극단 '사조' 창단에도 참여하기도 했으며 1990~2000년대 들어서도 <여명의 눈동자>, <태조 왕건>, <태풍>, <디워> 등에서도 식지 않는 연기혼을 과시했으며 2007년 영화 <바르게 살자>에서 수뢰 도지사 역으로 특별출연 후 열연하면서 천만 관객 달성에 기여해 '천만 배우' 반열에 들기도 했다.
3. 출연작
3.1. 드라마
- 1971년 KBS 사랑의 훈장
- 1971~1972년 KBS 귀로
- 1971~1972년 KBS 고전시리즈: 심청전
- 1971~1972년 KBS 북간도
- 1972년 KBS 고전시리즈: 허생전
- 1972년 KBS 그 얼굴에 햇살을
- 1972년 KBS 실화극장: 야간비행
- 1972년 KBS 임진왜란
- 1972년 KBS 고향
- 1972년 KBS무대: 밤나무골
- 1972년 KBS 실화극장: 위조지폐
- 1973년 KBS 세종대왕
- 1974년 KBS 이율곡
- 1974년 KBS 아! 기미년 3월1일
- 1974~1975년 KBS 꽃피는 팔도강산
- 1976년 KBS 전천후사나이
- 1979년 KBS 대한국인 - 안창호
- 1979년 KBS 토지 - 칠성이
- 1980년 KBS 순교자
- 1982년 KBS1 풍운 - 김병국
- 1982년 KBS1 맥토
- 1983년 KBS1 어머님 날 낳으시고
- 1983년 KBS2 객주
- 1984년 KBS1 독립문 - 박영효
- 1984년 KBS1 전쟁 6.25
- 1984년 KBS1 휴전 6.25 - 남일
- 1984년 KBS2 봉선화
- 1985년 KBS1 오성장군 김홍일 - 김홍일
- 1985년 KBS1 새벽 - 김삼룡
- 1985년 KBS1 고향
- 1986년 KBS2 길손
- 1986년 KBS1 초혼가
- 1986년 KBS2 형사 25시
- 1987년 KBS1 토지 - 김영팔
- 1987년 KBS2 TV 손자병법
- 1989년 KBS2 천명
- 1989년 KBS1 바람과 구름과 비 - 민치구
- 1990년 KBS1 잃어버린 섬
- 1990년 KBS1 서울뚝배기 - 장씨
- 1990년 KBS1 왕조의 세월
- 1991년 MBC 여명의 눈동자 - 이시이 시로
- 1991년 SBS 유심초
- 1992년 MBC 전원일기
- 1993년 KBS1 먼동 - 사이토
- 1993년 KBS2 기쁨이면서 슬픔인 채로
- 1993년 KBS1 다큐멘터리 극장 12.12 군사반란 편 - 노재현
- 1995년 KBS2 가면속의 천사
- 1995년 MBC 제4공화국 - 윤필용
- 1996년 KBS2 프로젝트
- 1998년 KBS1 왕과 비 - 유순
- 2000년 KBS1 태조 왕건 - 김행선
- 2001년 KBS2 명성황후
- 2004년 SBS 장길산
- 2005년 MBC 제5공화국 - 윤필용
- 2009년 CPBC 김수환 추기경에 관한 마지막 보고서 - 공안 당국자
3.2. 연극
- 1964년 춘향전
- 1964년 오셀로
- 1965년 철새
- 1965년 수치
- 1965년 풍운아 나운규 - 나운규
- 1966년 담배내기
- 1966년 나도 인간이 되련다
- 1966년 포기와 베스
- 1967년 산하는 다시 푸르러지리
- 1967년 출발
- 1967년 갈가마귀
- 1967년 이름없는 꽃들
- 1967년 인간적인 실로 인간적인
- 1967년 이끼 낀 고향에 돌아오다 - 김 전사
- 1968년 임금놀이
- 1968년 북간도 - 이창덕
- 1968년 동굴
- 1968년 환절기
- 1968년 동트는 새벽에 서다 - 윤영식
- 1969년 여왕과 기승 - 염종
- 1969년 환상살인 - 성민주
- 1969년 한산섬 달 밝은 밤에 - 이영남
- 1970년 인종자의 손 - 동수
- 1970년 원술랑
- 1970년 인조인간 - 푸리무스
- 1971년 사랑
- 1971년 신라인
- 1971년 달집 - 원식
- 1972년 환상여행 - 안상일
- 1972년 포로들 - 박사현
- 1972년 꽃상여 - 민수
- 1972년 송학정 - 경수
- 1973년 성웅 이순신 - 진린
- 1974년 활화산 - 용
- 1974년 남한산성 - 김상헌
- 1975년 징비록 - 호탁
- 1975년 한강은 흐른다 - 정철
- 1976년 귀족이 될뻔한 사나이 - 철학선생
- 1979년 님의 침묵 - 한용운
- 1981년 학이여 사랑일래라
- 1984년 하늘에 꽃피우리
- 1984년 춘향전 - 허 봉사
- 1988년 전봉준
- 1994년 결혼이란 세금같은 거 아녜요?
- 2005년 세일즈맨의 죽음
- 2010년 레인맨 - 월터 브루너
3.3. 영화
- 1970년 미행자 - 최치한
- 1972년 정따라 웃음따라 - 배원석
- 1973년 언제나 님과 함께
- 1973년 서울에서 온 편지[A]
- 1974년 잊지 못할 모정 - 형근(미술교사)
- 1974년 국회푸락치
- 1974년 새마을 가족[A] - 복동
- 1976년 석별 - 허준
- 1976년 위험한 여자 - 치호
- 1976년 과거는 왜 물어 - 창호
- 1978년 이 한몸 다 바쳐 - 홍근
- 1978년 내일을 위해 산다[7]
- 1979년 학을 그리는 여인
- 1979년 전기안전[A]
- 1981년 여명[A]
- 1984년 사약 - 수양대군
- 1989년 89 인간시장 오! 하나님... - 신대평
- 1991년 인간시장 3 - 신 회장
- 1994년 라이 따이한 - 재국
- 2005년 태풍 - 박완식
- 2006년 거룩한 계보 - 김영희
- 2007년 D-WAR - 보천 대사
- 2007년 바르게 살자 - 도지사(특별출연)
- 2009년 굿모닝 프레지던트 - 이민재
- 2017년 특별시민 - 봉 의원(특별출연)
4. 출처
- <주간여성> 1976년 제364호(1월 25일) '스타 사생활: 조실부모, 고난 딛고 가불결혼하면서 인기 탤런트 된 민지환 편' p42~46.
- <주간여성> 1976년 제379호(5월 9일) '37년전 이혼, 눈물 삼키며 현해탄 건너' p23~24.
[1]
개명 전 이름 민승원(閔承源)이 늑암공파 30세 승(承)자 항렬을 쓰며, 개명 후 이름 즉 현재 이름은 자(字)라고 기재되어 있다. 다음은 이하 출처 사진이다.
[2]
62학번 1기생으로, 동기로는 배우
신구,
전무송,
이호재,
전양자,
반효정 등이 있다. 다만, 반효정은 중퇴하여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에 진학했다.
[3]
이 중 유일한 아들인
민준호는 아버지처럼 배우로 활동 중이다.
[4]
이후 생모는 일본으로 건너가 1년 후 아들을 또 낳았고, 1967년에 일본에서 거주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서신 왕래를 해 오다 1976년에야 NHK 등 일본 공/민영방송사 제작현황 시찰차 출국 후 상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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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문화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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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수협중앙회 공제사업 홍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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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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