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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임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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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 ||||||||||||||||||||||||||||||||||||||||||||||||||||||||||||||||||
여우주연상 | |||||||||||||||||||||||||||||||||||||||||||||||||||||||||||||||||||
제5회 ( 196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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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 196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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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 197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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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증녀 ( 산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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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임 (분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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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너의 이름은 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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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0568B,#010101><colcolor=#A1C5D1,#DDDDDD> 남정임 南貞妊 | Nam Jung-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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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이민자 (李敏子, Lee Min-ja) |
출생 | 1945년 7월 21일 |
경기도 광주군 (현 광주시) | |
사망 | 1992년 9월 2일 (향년 47세) |
서울대학교병원 | |
가족 | 남편 노승주, 자녀 1남 2녀[1] |
학력 |
돈암국민학교 (졸업) 성신여자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영화과 / 학사) |
데뷔 | 1966년 영화 ' 유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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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영화 배우. 윤정희, 문희와 함께 1세대 여배우 트로이카로 큰 인기를 누렸다.2. 활동
- 1964년 성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하였다.[2] 1965년 5월 KBS 5기 탤런트로 입사하였고, 그 해 11월에 연방영화사의 이광수 원작의 유정 공모전에서 여주인공 '남정임'역으로 영화계에 화려하게 데뷔하였다. 역할명이 곧 예명이 된 셈.[3]
- 1966년 데뷔작 ' 유정'이 흥행에 크게 성공하여, 순식간에 인기 배우가 되었다. 당시 대학생이 드물고 특히 여대생은 더더욱 드물던 시절이라, 여대생이라는 조건은 그녀의 인기에 상당한 플러스 요인이 되었으며 고은아, 문희와 함께 톱스타로 성장하게 된다.[4] 영화계 데뷔 초에는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고은아와 경쟁하였고[5] 이후 문희가 인기를 얻게 되고 뒤이어 윤정희가 데뷔하면서 본격적으로 '트로이카' 시대를 열게 된다. 트로이카 중 윤정희는 선역과 악역을 아우르는 만능미를 보여주고, 문희가 눈물연기를 중심으로 버림받는 여자를 연기하는 비련미를 주로 보여주었다면, 남정임은 예쁜 얼굴과 특유의 발랄함을 무기로 명랑미를 과시하였다. 데뷔 초 역할들을 보면 밝고 명랑한 역할들이 대부분이었다.
- 1971년에 재일교포 사업가와 결혼하였다. 당시 민주공화당의 당의장이었던 백남억 의원이 주례를 서려 했으나 불발하고 대신 모교인 한양대학교의 총장인 김연준 박사가 주례를 섰다. 당시 결혼식의 장면은 남정임의 은퇴작인 '첫 정'의 장면으로 쓸 예정이었다. 많은 연예인들이 하객으로 참여했는데, 신영균의 경우에는 뒤늦게 오던 중 수많은 인사들로 옷이 찢겨졌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의 사업 문제로 이혼 후 1976년 '나는 고백한다'로 복귀를 했으며 영화보다는 드라마를 위주로 출연했다. 그 중 하나가 한국 최초의 옴니버스 드라마라 불리는 '여고 동창생'. 복귀 이듬해에 애인(이후 결혼)의 폭행을 오빠의 폭행으로 바꾸려고 하다가 들통나고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게 되자 음독을 시도하는 등 시련이 있었고, 이 사건으로 인해 출연 정지를 받았다. 재판을 받는 와중에 연인과의 결혼을 발표하였으며 1978년에 재혼하면서 자연스럽게 영화계에서 은퇴했다. 이후 1989년 6월 유방암 판정을 받고 1992년 유방암으로 사망하였다. 죽기 전 자신의 일생을 다룬 영화를 찍고 싶어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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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시절 소풍을 갔다가 영화 촬영 중이던
김지미와 마주친 적이 있는데 이 때 중학생 남정임을 본 김지미는 “예쁘게 생겼다. 커서 배우가 되면 좋겠다.” 라며 칭찬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그 여학생은 배우로 데뷔하게 된다.
3. 수상
- 1966 제4회 청룡영화상 특별상-신인( 유정)
- 1966년 제13회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신인여우장려상( 유정)
- 1967년 제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신인상(오늘은 왕)
- 1969년 제6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분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