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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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 1989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 · 1994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 · 1998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 · 2002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 · 2006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 · 2022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 | |||
기타 | 노동자당 · 보우사 파밀리아 · 룰라주의 ·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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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 연방 공화국의 제35, 39대 대통령을 역임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의 생애를 서술한 문서.2. 젊은 시절
1945년 10월 27일 브라질 동북부 페르남부쿠 주의 카에테스에서 포르투갈계 브라질인 가정에서 태어났다.룰라의 아버지 아리스티데스는 룰라가 태어나고 며칠 후 상파울루로 훌쩍 떠났다. 7년 후 룰라의 어머니와 자식들이 상파울루로 찾아갔을 때, 아버지는 이미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려 아이까지 본 상황이었다. 아버지는 첫 아내와 자식들을 본척 만척했고, 심지어는 룰라와 형제들을 학대하기까지 했다. 결국 견디다 못한 어머니와 룰라의 친남매들은 그런 아버지와 의절을 하고 타 지역으로 떠났다. 이후 아버지는 알콜 중독으로 일찍 사망했다. 룰라의 아버지는 죽을때까지 여러 여자와 23명의 아이를 보았다고 한다.
룰라 집안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향을 떠나 상파울루 주로 삶터를 옮겼고 이사를 하고서야 호적서류를 꾸미게 된다. 룰라는 이사 직후인 만 7세 때부터 땅콩장사와 구두닦이를 해야 했고 만 11세인 초등학교 5학년 때 학업을 포기하고 염색공장에서 일했다. 14세 때부터 상파울루 철강공장에서 일했다. 18세 때는 일당 천원 근처의 돈을 벌기 위해 공장에서 야간근무를 하다가 기계 사고로 왼손 새끼손가락을 잃었다. 이후 룰라는 손가락이 절단된 공장에서 만난 여인과 결혼을 하는데, 워낙 열악한 작업공간 때문에 아내는 임신한 채로 간염에 걸려서 아기와 함께 사망하고 만다. 이 당시 일자리를 찾아 헤매다 가끔은 길가에 주저앉아 흐느껴 울었다고 한다. 문제는 이 당시 희망없던 룰라의 삶이 브라질 국민 다수의 삶이었다는 것이다.
3. 정계 입문
1966년 한 금속산업 공장에 취업한 이후 1969년 노동운동가로 나섰다. 이 시절 브라질은 1964년 군부세력이 쿠데타로 주앙 굴라르 대통령의 좌파 정권을 무너뜨린 후 85년까지 20년 이상 무력으로 정권을 유지했다.브라질 전국에서 손꼽는 노동운동가가 된 룰라는 1979년부터 노동자 정당 창당을 준비하고 있었고 총파업 주도 혐의로 1980년 1월에 체포되어 31일간 구금당한다. 룰라의 동지들은 1980년 1월 노동자당을 창당했으며 이후 2월 10일 노동자당이 공인되었다. 당시 34세의 룰라는 머그샷이 공개되자 그 턱수염 때문에 오징어라는 뜻의 룰라(Lula)로 불리게 되었다.
1982년 상파울루 주지사 선거에서 노동자당 후보로 출마하여 4위에 머물렀다. 그 후 대통령 직접선거 운동을 주도하여 1983년과 1984년에는 각 주의 주도에서 대규모 시위를 이끌었다. 대중적 인기와 카리스마를 겸비한 룰라는 1986년 전국 국민의회 선거에서 상파울루 지역을 대표하는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86년 군사정권이 축출되고 룰라는 연방하원 선거에 출마해 최다 득표로 화려하게 정계에 진출했다.
4. 제35대 브라질 대통령
89, 94, 98년 세 차례 대권 도전에서 룰라는 돌풍을 일으켰지만 급진적인 좌파 정책 때문에 모두 2위에 머물렀다. 그러다 2002년 10월 대선에서는 공약을 온건중도적인 내용으로 바꾸고 유세 복장도 티셔츠와 야구 모자 대신 정장으로 바꾸고 수염도 다듬는 등 온건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을 거뒀고 상당수 중도파와 중도우파 성향의 정치인까지 포섭하여 대선에 승리했다.참고로 2011년부터 2016년 8월까지 브라질의 대통령이었던 지우마 호세프를 탄핵으로 몰고간 인물로 손꼽히는 인물인 쿠냐 전 브라질 하원의장도 따지고 보면 룰라 때부터 호세프 정권 중반기까지는 노동자당 정권과 한 배를 탔던 인물이다.
룰라는 2003년 1월 임기 4년의 브라질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했으며, 2006년 말 재선에 성공하여 브라질 사상 두 번째로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이 된 룰라는 대대적으로 빈곤층에게 생활보조금을 지원하는 정책을 펼치고 지원 대상을 점점 넓혀갔다. 다만 여기에 아이를 학교에 보낼 것. 단, 결석률 15% 이상이면 지원 보류라는 조건을 걸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ília) 정책이다.
식민지 시절 지주-소작농 경제구조가 그대로인 상태에서 군부독재가 오래 지속되면서 사회적 양극화가 극심한 남미에선 빈민층들이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을 포기하는 자포자기 상태가 된 지 오래이다. 이런 종류의 저소득층 지원형 복지정책이 다 그렇듯 "이런 경제사정에 복지에 돈을 쏟으면 나라를 파탄낼 것이다"라는 명렬한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보우사 파밀리아의 가장 큰 효과는 바로 국가의 미래인 어린이들에게 나타났다. 룰라가 브라질 대통령이 된 직후 실시된 보우사 파밀리아의 핵심은 바로 빈민층을 지원하면서 그 지원의 대가로 자녀들을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로 보내고 교육시킬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때 지원금은 월소득 140헤알 이하(미국 달러 환산 연소득 $672 이하)의 가족의 경우 백신 접종을 받고 학교에 출석하는 16세 미만 어린이 1명당 32헤알($13), 최대 5명까지에 대해 지급한다. 그리고 16~17세의 학교에 출석하는 청소년 최대 2명에 대해 1명당 38헤알($15)을 지급한다. 만약 월소득 70헤알 이하의 극빈층(미국 달러 환산 연소득 $336 이하)이라면 위의 혜택을 포함하여 추가로 월 70헤알($28)을 지급한다.
이 정책으로 학교 출석률은 큰 상승을 보였고, 반대로 어린이 노동 착취는 줄어들었다. 또한 극심한 가난으로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한 아이들에게 영양이 공급되기 시작했다.
룰라의 보우사 파밀리아는 급속한 극빈층의 감소와 중산층의 증가로 나타났다.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보조금도 받게 된 빈민들이 그럭저럭 중산층 행세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호전된 중산층의 경제능력은 증가하는 소비의 기반이 되었고, 이는 내수시장을 발전시켜 기업의 이익과 궁극적으로는 전체 경제에 커다란 도움을 주게 되었다. 극심한 빈곤에서 벗어나 사람다운 삶이 가능하게 된 수많은 국민들은 룰라의 절대적인 지지층이 되었다. 빈곤층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왜 부자들을 돕는 것은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만 말하는가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이렇게 막장이었던 브라질 경제를 안정화시키는 큰 업적을 이뤄낸 룰라는 수많은 정치인들이 경의를 표하는 대상이 되었다.[1] 미국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조차도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브라질 대통령이라고 언급했을 정도. 경쟁자이자 룰라에게 패배한 사회민주당의 주제 세하(José Serra) 주지사도 "룰라의 뒤를 이어 브라질을 발전시키겠다"라고 할 정도였다. 뒤는 동지인 지우마 호세프 후보가 있었다.
4.1. 평가
4.1.1. 긍정적 평가
그의 인기는 대단해서 퇴임을 2달 앞둔 때까지 지지율이 80%대였다. 브라질 대통령은 3연임이 불가능하지만 중간에 쉬고 다시 출마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런 식의 3연임을 허용하는 헌법 개정에 대해 룰라 본인이 별로 탐탁찮은 반응을 보임에도 국민의 대다수가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을 정도다. 결국 3연임을 하지 않고 스스로 물러났는데 그의 뒤를 이을 차기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서 완전 무명이었던 지우마 호세프를 오로지 자신만의 힘으로 당선시켰다. 룰라는 이때까지만 해도 그야말로 박수칠 때 떠날 줄 알았고, 자신의 재임보다 더 중요한 자신의 의지를 후계자에게 계승시키는데 성공한, 진정한 지도자계의 위너였다. 이후 퇴임할때의 마지막 지지율은 무려 87%에 달했다.후임인 호세프는 원래 지지율 10% 미만에서 시작했는데, 룰라와 같이 대선유세를 다니면서 지지율이 엄청 뛰어올랐다. 룰라가 손 한번 잡고 연단에 설 때마다 지지율이 상승했다는 여론조사까지 있다. 지우마 호세프는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다.
특이한 것은 여당 후보인 호세프는 물론이고 야당 후보인 시우바마저도 룰라 사진을 내걸고 유세를 했다는 것이다. 시우바는 대놓고 자신이 브라질 대통령이 되어도 룰라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브라질 내에서 룰라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하는 대목이다. 심지어 제2야당인 녹색당 후보마저 룰라 만세를 외치고 다녔다고 한다.
4.1.1.1. 경제성장
그가 집권한 8년간, 브라질의 실업률은 12%에서 7%대로, 경제규모는 약 7천억 달러가 늘어나 세계 8위로, 국가부채 규모는 GDP 대비 5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18%대로 낮아졌다. 80년대 외채위기를 겪은 이후 브라질에 대한 국제금융시장의 신뢰도는 매우 낮아 국채에 비싼 이자를 물어야 해서 선진국 같으면 아무것도 아닌 50%도 브라질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브라질은 그 막대한 자원과 넓은 영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어두운 시절이 계속 되었다. 군부독재 역사, 아동노동착취, 국정막장운영, 정치부패, 너무 많은 빈곤층 등 나라의 땅덩어리와 규모에 비하면 암울했었다. 이런 막장상황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론 집권 직전의 경제 규모가 세계 12위일 정도로 겉에서 보기엔 멀쩡한 나라였지만, 실상은 높으신 분들의 삽질과, 불안한 국내정세, 희망을 잃은 국민 등 국가 막장 테크를 가장 성실하게 타고 있던 국가였다.
특히 1999년에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1998년 러시아의 모라토리움이 연이은 것의 여파로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1달러당 환율이 1.16레알에서 1.81레알로 56%나 폭등했고, 2000년부터 2002년까지도 1.83레알에서 3.08레알로 68%나 폭등하면서 3년 만에 환율이 2.7배 가까이 올라버렸다. 결국 1999년부터 2002년까지 1인당 GDP는 5050달러에서 2825달러 미만으로 56% 수준으로 폭락했고,[2] 1998년 세계 평균급이던 브라질의 1인당 GDP는 1999년에는 세계 평균의 64%, 2003년에는 세계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게 되었으며, 총 GDP는 1998년 8637억 달러였던 것에서 2002년 5098억 달러로[3] 59% 수준으로 폭락하며 2002~2005년에는 인구가 2억을 목전에 둔 나라가 인구가 5000만도 되지 않는 대한민국에까지(!) 전체 GDP를 추월당할 정도로[4] 브라질의 경제는 완전히 박살이 나고 말았다.[5][6] 당연히 민생도 좋을 리가 없어 나라에 빈곤층이 전체 인구 중 16%에 달했을 정도였다.[7]
그런 나라를 8년 만에 모두 뒤집어버린 대통령이 바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이다. 브라질의 GDP는 룰라의 퇴임 직후인 2011년에는 2.62조 달러를 넘기며 대한민국(1.25조 달러)의 2배를 넘기는 것은 물론 영국(2.664조 달러)에 버금가면서[8] 이탈리아(2.3조 달러)도 능가하는 세계 7위 경제대국이었고,(2010년에도 세계 7위 경제대국이었다) 1인당 GDP도 13201달러로 세계 평균의 1.25배를 기록하며 브라질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9], 룰라 임기 말의 브라질은 세계 5위권 GDP[10]를 목표로 달려가고 있었다.
다만 룰라가 재임했을 당시의 브라질의 평균 성장률 자체는 의외로 꽤 낮은 편이다.(2003-2010 3.4%) 차베스 집권기의 베네수엘라(1999-2012 연 평균 2.7% 성장)보다는 조금 높은 수준이고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집권기의 아르헨티나(2003-2007 연 평균 8.9% 성장)의 절반도 안 된다. 아르헨티나의 경우에는 90년대 말-2000년대 초반에 진행된 경제위기의 여파가 워낙 심하다보니 그만큼 경제성장률이 높은 측면도 있다. 오히려 당시 브라질의 GDP 성장의 직접적인 요인은 저환율 기조였는데, 룰라 시기 브라질의 환율은 2003년 1달러에 3.08레알이던 것에서 2011년 1.67레알로 2003년의 56% 수준으로 떨어졌다.
4.1.1.2. 소통정치
룰라가 브라질 대통령이 되고 난 후 미국의 월가 등지에서 룰라를 " 포퓰리즘으로 성공한 기회주의자에 터무니없는 복지 예산 집행으로 심각한 재정 지출을 야기해 브라질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인물."이라고 맹공했었다. 그리고 브라질의 외국 자본들이 죄다 도망가버렸다. 조지 소로스 또한 브라질은 룰라로 인해 아르헨티나처럼 나라를 들어먹을 거라고 2002년 브라질 대선 당시부터 대차게 까댔다. 룰라는 조건 없는 무차별적 복지를 스스로 경계했다고 한다.우파들한테만 까인 것도 아니었다. 좌파도 마찬가지였다. 중남미 사회운동에 정통한 좌파 사회학자 제임스 페트라스는 룰라 정부의 1년(2003년)을 평가하면서 "탈레반 신자유주의자"에 불과하다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룰라의 빈곤퇴치정책이 빈곤과 실업을 더욱 증가시키는 포풀리즘 수법에 불과하다고 평가 절하했으며 미국이 주도하는 미주자유무역지대 협상에서 개발도상국의 입장을 강화하려는 시도가 브라질을 미제국주의의 하위파트너로 변질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브라질 내외의 좌파들이 룰라와 노동자당에 대한 환상에서 시급히 벗어나야 한다고 결론 짓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예상과 달리 순탄한 경제 성장이 이뤄지자 그런 소리는 싹 들어갔다. 그 대신 '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성공한 룰라 대통령'이라고 칭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룰라는 시장주의자들을 고용해 중앙은행이나 경제부에 투입시켜 낮은 법인세, 소득세, 세금 감면 정책들을 유지하며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고 투자금을 끌어모았다. 아마존 개발은 그렇게 시작되었으며, 보우사 파밀리아 정책 또한 그렇게 끌어들인 돈들, 특히 세계은행에서 준 차관으로 시작한 것이다.
그는 좌파이긴 하나 좌우이념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정치인이었다. 오히려 임기 초엔 서민보다 부유층의 지지를 받았는데 극좌적인 정치행보를 보일 것이라 예상했던 룰라가 의외로 온건한 중도좌파, 개혁적인 스탠스를 취했기 때문. 또 반대로 수천만 저소득층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복지정책과 양극화 개선을 시행했는데, 이건 국가부채의 해결과 함께 브라질이 2008년 9월 세계금융위기 속에서도 버텨낼 수 있는 힘을 키워줬다. 룰라의 경제 정책 평가에서는 단순히 우파적인 정책이나 좌파적인 정책 한 면만 보고서 평가하기보다는 이 두가지의 정책이 어찌 서로간의 시너지를 발휘했는지 알아보아야만 한다.
문제가 있으면 좌우여야 구분없이 당의회 가리지않고 직접 만나고 부딪히는 게 룰라식 소통정치였다.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있던 조제 사르네이 전 대통령과도 친구가 된 그는 조제 사르네이 전 대통령에게 "룰라의 말에는 믿음과 진정성이 있다. 다민족 브라질 사회에서 모든 계층의 지지를 이끌어낸 진정한 대중의 대통령, 위대한 브라질의 대통령"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참고로 이런 소통정치는 브라질의 정치 구도와도 관련이 있다. 브라질은 국회에서 한 정당이 과반수를 확보하기 쉽지 않다. 봉쇄조항 없는 권역별 비례대표제(하원) 등의 이유로 브라질에서는 국회에 진출한 정당이 20개가 넘어가며, 룰라 집권 시기에 제1당이었던 노동자당도 의석수로는 전체의 1/3도 되지 못했다. 따라서 대통령 중심제이지만, 여러 정당을 끌어들여서 연립정부를 구성해야만 했다. 이렇기에 설사 룰라가 급진적인 좌파노선을 원했다고 하더라도 추진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만 이해관계가 다른 여러 정당들을 모두 끌고 가려고 하다보니 부패가 발생했다. 노동자당의 고위간부들이 비자금을 조성해서 연립정권을 유지하는 대가로 정기적으로 뇌물을 건넨 것이다. 룰라는 온건 이미지로 집권해서 우고 차베스나 라파엘 코레아처럼 여론을 무기로 집권당에 유리하게 선거제도를 개편할 수도 없었으나 이 때문에 지우마 호세프가 비교적 쉽게 축출될 수 있었다는 평도 있다.
4.1.2. 부정적 평가
룰라 역시 정치인이라 그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일단 마약과 치안 문제는 그의 집권기간에도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그는 빈곤층과 부자 사이의 소득 차이 완화 및 브라질의 위상 제고와 경제성장에 큰 공을 세웠으나, 그 이면에는 무분별한 아마조니아 개발이 뒤따랐다. 특히 환경단체는 아마존의 무분별한 개발을 중단할 것을 요청했지만 아마조니아는 브라질 땅이라며 거부했다. 물론 아마존이 브라질 땅이고 개발도 자유라고 볼 수 있지만 지구 전체로 봤을 때, 아마존은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땅이다. 또한 선진국들도 과거의 행태를 반성하고 더 많은 환경복구금을 지참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으므로 적정한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선진국들은 주장한다.
더욱이 아마존 개발 과정에서 아마존 밀림에서 살던 브라질 원주민들이 박해당한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이런 비판을 의식해서 브라질 정부도 헬리콥터를 띄워서 아마존을 무단개발하는 걸 적발해서 막대한 벌금을 물리게 한다. 그러나 너무 넓어서 일일이 단속하기도 힘들고, 개발업자들이 돈과 권력이 있고, 공무원들도 부패한 사람들이 있어 뇌물을 챙겨서 쉬쉬하니깐 효과는 없었다. 원주민들에게도 원주민 마을에 국어인 포르투갈어를 가르치는 강사를 보내서 수업에 참석하면 경제 지원금과 무상교육을 주는 등의 복지 정책을 펴긴 하였지만 원주민들에게 근본적인 도움이 되지 않았고, 원주민 문화에 대해 우월감을 갖고있다고 느낄 수도 있는 전시행정일 뿐이었다. 아무리 룰라가 노동자와 서민층을 우선하는 좌파정권의 대통령이라고 해도 어차피 브라질 원주민들에겐 룰라는 자기가 원래 살던 영토에 자본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 정책을 펼치는 백인 통치자에 지나지 않았다.
또 그의 아들들은 대통령 당선 전에는 평범한 대학생과 교사였으나 당선 이후 유명한 통신회사의 CEO가 되어 야당에서 해당 내용으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국가 예산을 빈곤층 지원에 많이 할당한 나머지 다른 부분의 예산이 삭감되어버린다. 국가예산을 대대적으로 확충할 수 없었던 원인도 있다. 국가예산 확충을 하려면 세금제도를 개편하든지 해야되어야되는데 여러 가지 후폭풍이 밀려올 게 뻔했기 때문에 못 한 것. 그래서 보건소의 약이 떨어지고 의사의 수도 줄어들었으며 병실도 모자라 많은 환자들이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고 죽어갔다. 언론기관의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인해 생긴 빚을 자신의 재임 중에 탕감 또는 체납액 지불을 미뤄 언론을 장악했다는 평가도 있다.
한편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브라질의 정치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지 못했기 때문에 나중에 지우마 호세프가 경제위기 속에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탄핵당하는 결정적인 원인을 만들어 냈다는 비판을 받는다. 브라질의 정당제도는 십수여 개의 정당이 일정 수준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고, 거대 정당이라고 해도 전체의석의 20% 안팎을 차지하는 수준인데, 이 때문에 법안 통과를 위해서 정당 하나 하나를 설득해야 되어서 공약과 다르게 브라질의 부패상을 퇴치하지도 못했고, 룰라 자신의 발목까지도 잡게 되었다. 물론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선거제도 개혁 등이 필요한 사항이지만 연립정권이 붕괴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주저했고, 결국 지우마 호세프의 발목까지 잡게 되었다.
한편 룰라에 대한 비판은 그에 대한 언론의 우호적이지 않은 태도와도 연관되어 있다. 브라질은 몇 개의 우파 언론 그룹이 대부분의 신문 방송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우파 정책을 옹호하고 좌파 정책의 모든 것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특히 누구의 문제라고도 말하기 어려운, 브라질의 각종 경제 사회 문제까지 사회주의 정부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연결해 보도해 후임 지우마 호세프 정권의 인기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4.1.2.1. 경제성장 거품론
큰 업적 중 하나라는 경제 성장 또한 단순히 전 세계적 호황기에 집권한 덕이다. 룰라 정부의 거시경제 정책은 사실상 전임 페르난두 엔히키 카르도주 대통령의 말기에 수립된 정책을 수정없이 그대로 이어간 것이 룰라 정부에 들어서며 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도 비판을 많이 듣기도 했지만 별 다른 대안이 없는지라 걍 버로우.브라질 자국 내 산업 성장으로 인한 경제성장이 아닌 급성장하는 중국으로의 원자재 수출이 늘어나는 덕분에 브라질 경제가 고도성장을 이룬 것이라 자원 수출에 기대는 부실한 경제 구조 또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비판받는다. 2003~2010년간의 브라질 수출 품목을 비교해 보면 전체 수출에서 전자기계(9→7%), 교통장비(14→9%) 등이 차지하는 비중은 감소하였으며, 광물자원(14→29%)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다만 브라질이 '영원한 미래의 나라(그러니까 잠재력은 큰데 발휘를 못해 늘 미래에 성장할 거라는 말만 듣는다는 소리)'라고 불렸다는 점을 보면, 이런 기회를 잘 잡은 것도 나름의 능력이라 할 수도 있다.
사실 40년대부터 70년대 초반기까지 브라질은 나름대로 고도성장을 거두던 국가이기는 했다. 경제적으로 막장포스를 뿜기던 국가는 결코 아니었다. 50년대와 60년대 전반기에는 인플레 문제가 있었고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는 빈부격차가 급속히 확대되는 문제가 있었지만 이때는 나름 공업화에 성공하고 인구도 급증하여 나름 강대국이 될 듯하기는 했다. 그러나 오일쇼크와 80년의 금리인상으로 인해 엄청난 외채를 짊어지는 바람에 브라질은 경제적으로 막장가도를 달리기 시작했고 공업화도 그 여파로 지지부진해지며 그 후유증이 2000년대 초반까지 갔다.
후임자인 지우마 호세프의 인기가 급속도로 떨어지면서, 룰라에게 책임을 묻는 의견도 있다. 경제구조 개선을 미루면서까지 월드컵과 올림픽 개최에 심혈을 기울여 사회복지 시스템의 확충이 늦어졌다.
2000년대 후반에 유전개발로 (중동 산유국이나 베네수엘라, 노르웨이처럼) 복지비용을 충당하려는 계획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개발을 하려다보니 심해유전이라 채굴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채굴작업이 지지부진했다.게다가 2014년 하반기부터 사우디의 대대적인 증산으로 석유값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바람에 오히려 채굴해봐야 손해만 보는 구조가 되어버린다.이는 사우디에서 의도한 바이기도 하다. 80년대 중반에 영국에서 북해유전을 무기삼아 가격자유화를 선언하자 사우디에서 석유생산량을 대대적으로 늘려서 유가를 폭락시키는 방법으로 영미권의 석유업체를 말끔히 말려죽인 적이 있었기 때문.
결국 복지확충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얘기가 되어버렸다. 원자재 가격이 떨어지고 시위대가 문제를 제기한 사회복지 확충에 드는 비용 마련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호세프이 지지율은 지지율대로 떨어진다. 거기에다가 공업 발달도 궤도에 오르지 못하는 바람에 브라질은 저성장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 전 세계에 중계된 2014 브라질 월드컵 전후의 크고 작은 시위와 소요사태도 이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는 평.
결국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떨어지자 브라질의 주요 수출품인 철광석 등 원자재의 가격이 크게 하락하고, 고공행진하던 브라질의 경제성장률은 떨어지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5. 퇴임 후 기소 및 구속
퇴임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2011년 10월, 후두암 진단을 받고 입원했다. 방사선 치료 때문에 수염이 사라지고 대머리가 된 사진도 공개되었지만 특이하게도 콧수염은 그대로 남았다. 치료가 잘 끝나 이듬해 2월에 퇴원했다. 노화의 영향도 있지만 항암 치료의 영향으로 1, 2기 때와 비교하면 3기 때는 목소리가 쉬었고, 머리숱도 줄었다.퇴임 후 룰라 집권 당시 여당에서 국영 석유기업인 페트로브라스의 자금을 부풀려 기재한 뒤, 그 돈을 비자금으로 빼돌려 의회내 표를 매수했다는 것이 드러난 멘살랑(Mensalão, 직역하면 큰 월 단위 용돈.) 사건이 터졌다. 룰라나 노동자당은 룰라가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고 부정했지만, 노동자당에서 룰라가 갖는 독보적 영향력을 고려할 때 그가 모를 리 없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좌측 정당답게 노동자당은 정치 부패에 대한 비판을 앞세워 왔는데, 정작 여당이 된 뒤 국영기업을 통해 정치권을 매수하는 행태를 보였다는 점에서 청렴 이미지가 크게 실추된다. 이에 브라질 국민들에게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는 점도 악재로 거론되었다. 스캔들이 터지면서 2014년 대선에서, 과거 노동자당 내 룰라 후계자 경쟁에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지우마 호세프에게 밀렸던 사회당의 마리나 시우바가 대선 경쟁 초기 큰 인기몰이를 하는 원인이 되었다.
물론 제3의 후보들이 늘 그렇듯 시우바는 찻잔 속의 태풍이 되었고, 결선투표는 전통 '우파'인 '사민당'의 네비스 후보가 올라간다. 네비스는 브라질 사회민주당 소속이지만 브라질 사회민주당 자체는 카르도주 시절에 우경화 되었기에 우파성향의 정당이 되었다. 포르투갈 사회민주당도 비슷하게 창당 초기에는 사회민주주의 노선이었지만 우파정당과 연합하는 과정을 거치고 정책도 우경화되면서 우파정당화 되었다.
결국 이 과정을 거쳐 호세프 대통령이 노동자당 텃밭 북동부 몰표로 재선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15년 이후로 부정부패 스캔들로 인해 여당과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날로 떨어져서 룰라가 다시 대통령 선거에 나간다해도 40%대의 득표율로 탈락할 것이라는 전망까지도 나오고 있는 중. 고급 리조트를 건설회사로부터 뇌물로 받았다는 의혹이 추가로 제기되었다. 또한 룰라 재단에 대형 건설사들이 기부한 돈이 무려 800만 달러나 된다는 점도 룰라와 대형 건설사의 유착을 의심하게 한다.
그러던 중 2016년 3월 16일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룰라를 수석장관으로 임명했다. 연방정부의 장관직에 임명되면 연방법원, 연방검찰만이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어 현재 부패 수사를 주도하고 있는 상파울루 주 법원의 구속을 피할 수 있기 때문. 장관직 임명이 이번 기소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지만, 연이어 검찰에서 폭로한 감청된 호세프와 룰라의 통화 내용은 장관 임명이 면책특권을 위한 것임이 드러나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호세프 대통령은 룰라에게 경제, 정치 분야에서 파격적인 권한을 부여하였다. 이로써 아직 후광이 남아있는 룰라가 지지율이 바닥인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대신 사실상 섭정을 할 것으로 보인다. 야당은 물론 연립정권 탈퇴를 고려 중인 브라질 민주운동당도 도피성 장관직을 강하게 비판하다 3월 29일 연립여당에서 탈퇴해, 룰라의 앞날이 여전히 밝진 않다. 이로써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다시 탄핵 위기에 처했다.
결국 브라질 연방 법원이 수석장관직 임명에 대해 효력정지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룰라는 비리수사를 회피할 수 없게 되었다.
부패 스캔들로 인해 결국 룰라 전 대통령은 2016년 3월 브라질 법원에 구속되었으며, 이후 돈세탁 혐의 등으로 정식으로 기소되었다.
하지만 옥중출마 가능성이 시사되고 있기도 하다. 옥중출마라도 입후보 자체는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고 브라질 대통령은 3연임만 금지할 뿐 한 텀 이상 쉬고 나서 3선 출마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단 2018년 대선에서 대권지지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부패스캔들 수사가 진행되면서 우파 성향의 정치인들도 대거 감옥에 들어가게 생겨버려서 사실상 그놈이 그놈이 되었다. 상대후보로 예측되는 네비스도 녹취록이 공개된 사건의 여파로 훅 가버렸다. 지우마 호세프를 탄핵시키고 대통령직에 오른 미셰우 테메르는 아예 부패인사를 대놓고 내각에 참여시키고 검찰수사를 방해하는 등 부패정치인으로써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로 지우마 호세프 탄핵에 찬성했든 반대했든 간에 부패수사를 방해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인 건 마찬가지다. 탄핵된 지우마 호세프가 브라질 정치계에서는 그나마 깨끗한 축에 들 정도로 막장이었다. 또한 개혁정치를 후퇴시키는 행보를 보이고 있어 지지율이 매우 낮다.
당시에는 룰라가 출마한다면 결선투표에서 상대후보로 누가 나와도 10-20% 이상의 격차로 여유있게 당선될 것이라는 여론조사가 나왔다.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해도 형이 취소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재당선된다해도 실질적으로 부통령으로 나오는 인물이 대통령이 될 것이었다. 상대인 시우바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부패스캔들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라서 양자대결 여론조사를 보면 시우바가 룰라를 10% 이상의 차로 앞서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시우바는 2014년 대선에서 1위를 차지했다가고 토론회에서 밀리는 바람에 뒷심부족으로 3위로 탈락한 경험도 있는 데다가 롤라가 독재정권에 저항하면서 탄압받은 것이나 대선 3수를 한 만큼 관록이 대단한 인물이라 토론회에서 룰라에게 말빨로 뒤쳐질 수도 있었다. 룰라는 2016년 말의 여론조사에서도 변함이 없어서 여전히 1위를 달리고 있으며 결선투표에서도 사회당 소속의 시우바가 아닌 우파 사회민주당이나 민주운동당 소속 후보들에게는 압도적인 격차로 승리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즉, 그나마 룰라를 이길 후보는 시우바 정도라는 것이다. 룰라 본인도 인터뷰에서 필요하다면 2018년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
6월 27일 브라질 대법원 판결에서 일단 보석이 허가되면서, 대법원 최종 판결 때까지는 일단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7월 8일 호제리우 파브레토 재판관이 룰라에게 석방 명령을 내리면서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몇시간후에 주앙 제부란 네토가 석방 명령을 무시하고 재수감 명령을 내리면서 혼란이 빚어졌다. 이러한 상충된 명령이 나온 덕택에 브라질 사법부 내부에서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는 평을 들었다. 결국 다시금 재수감 되었다. 그러나 사법방해에 대해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그렇지만 항소심에서 유죄가 있다고 판결내린 것도 모자라서 형량도 더 늘어났다. (9년 6개월->12년 1개월) 판결문을 보면 룰라가 저지른 비리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못한 것으로 나왔고, 검사들이 다른 증언들을 무시하는 등 여러모로 무리수를 뒀지만 항소심 판결 이후로도 지지율 1위를 쭈욱 달리고 있었으나 결국 2018년 4월 5일 대법원의 수감명령이 내려지고 결국 체포영장이 집행되었다. #
다만 재판에 걸려있는 혐의와는 별개로 브라질의 건설회사인 오데브레시가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페루, 에콰도르,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지의 주요 정재계 인사들에게 집중적으로 뇌물이나 선거자금을 뿌리며 사업권을 따냈던 시기(그것도 성향 가릴 거 없이 뿌렸다.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에서 여당과 야당에게 동시에 선거자금을 내주었을 정도이니 더이상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다 수준.)가 전임 카르도수 대통령 후기부터 룰라 집권기때와 맞물리니 알면서도 봐줬다는 것 자체는 기정 사실화된 지 오래되었다. 사실 이렇게 룰라가 다양한 성향의 정당들을 큰 잡음없이 이끌었던 이유 중 하나가 부패사건에 대해서 유하게 봐주었던 것이 컸고, 역으로 지우마 호세프가 탄핵된 이유 중 하나가 부패수사를 막지 못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제 룰라 측은 어떻게든 옥중출마라도 강행하려고 했으나, 9월 1일 선거법원이 룰라의 출마 자격을 최종 박탈하면서 끝내 출마는 물 건너 간 일이 되어버렸다. 브라질엔 항소심 이상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정치인의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규정(피샤림파, 깨끗한 경력)이 있다. 룰라 본인도 결국 출마포기를 선언하고 자신의 러닝메이트인 페르난두 아다지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 문제는 지지율이... 그리고 결국 대통령 선거에서 아다지 후보를 누르고 극우성향의 보우소나루 후보가 당선되며 사면도 물건너 간 것으로 분석된다.
7살 손자 장례식[11] 참석을 위해 일시적으로 석방했다. #
한편 2018년 대선 이후 잠시 소강을 보였던 룰라 석방 운동이 다시 재개될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 2019년 4월에 옥중 인터뷰를 가졌다. # 수감 이후 룰라가 수감 중인 쿠리치바 연방 경찰서 앞에서 아침 점심 저녁으로 인사하는 시위를 펼치고 있다. 석방운동 홈페이지아카이브
룰라를 상파울루 교도소로 이감하려다가 연방대법원에 의해 중지되었다. # 검찰이 남은 형기를 산업시설 등 일하는 것으로 채우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지만 거절하였다. #
2019년 11월 8일 연방대법원이 2심 재판의 유죄 판결만으로 피고인을 수감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단해 580일 만에 석방되었다. #
석방 후 첫 대중집회에서 20만 명이 참석해 다시 반 보우소나루 연대 형성에 들어간 상태이다. # 하지만 2022년 대선에는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
2020년 9월에 2013년 12월부터 2014년 3월 사이 대형 건설업체 오데브레시가 룰라 연구소에 전달한 기부금 400만 헤얼(약 8억 9천만 원)을 돈세탁해 빼돌린 것으로 기소하였다. #
2020년 10월에 부패혐의로 네 번째 피고인 신분이 됐다. #
6. 2021년 실형 무효 판결
2021년 3월 8일, 브라질 연방대법원Supremo Tribunal Federa 단독재판부는 연방고등법원이 룰라에게 선고한 확정판결에 대해 선고 무효를 결정했다.[12]대법관 이드송 파싱Edson Fachin의 결정요지는 룰라의 혐의를 심리했던 파라나 주,Estado do Paraná, 제13 연방법원 수석판사,juiz principal, 세르지우 모루가 재판관할권을 위반하였으므로 1심 및 상급법원의 판결을 모두 파기하고, 대통령 재임시 발생한 사건에 대한 재판관할은 수도 브라질리아 법원에 있으므로 연방특별구법원으로 이송을 명령한 것이다. 절차상 정당성을 문제삼은 판결임에도 해당 결정이 룰라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것과 동일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기존 재판에서 인용된 증거와 증언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으므로 새로 구성될 파기이송심에서는 사용할 수 없음을 명시한 까닭이다.[13] 연방검찰은 해당 결정에 불복하여 비상상고를 청구했지만 파싱 대법관은 이를 기각했다. 그러나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사건보고관 자격으로 연방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사건을 이관했고, 4월 15일 전원합의체는 파싱 대법관의 결정을 8 대 3 의견으로 인용했다.[14]
같은해 3월 23일, 연방대법원 합의 2부,Segunda Turma do Supremo Tribunal Federal,는 세르지우 모루 전 연방판사에게 룰라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위법을 행한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는 결정을 3 대 2 의견으로 인용했다.[15] 합의 2부의 구성원인 이드송 파싱 대법관은 결정에 불복하면서 해당 사건의 보고관 자격으로 전원합의체에서 재심리할 것을 요구했고 대법관 9명의 동의를 얻었다.[16]
4월 22일 연방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합의 2부의 결정을 재심리하여 대법관 11명 중에서 7명이 인용에 투표했다. 그러나 마르쿠 아우렐리우 멜루,Marco Aurélio Mello, 대법관이 심리 연장을 요청하였고, 루이스 푹스,Luiz Fux, 대법원장이 이를 받아들여 공판을 속개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속개일정은 미정이다.[17]
브라질 연방대법원의 결정에 대하여 아르헨티나의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정의가 실현됐다"는 성명을 냈다. 그동안 룰라 진영은 룰라가 기득권층에 의한 사법 전쟁의 희생자라는 내용의 「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를 제작하는 등 여론전을 펼치며 측방 지원했다. 해당 다큐멘터리는 넷플릭스를 통해 시청할 수 있다.
6.1. 실형 무효의 배경
룰라의 혐의에 대해 실형이 무효가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사실 그 이전 2019년 6월 '인터셉트 브라질'이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룰라에게 실형을 선고한 세르지우 모루 전 판사가 "연방검사들에게 룰라에 대한 유죄 판결과 수감을 끌어낼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또 '연방대법원은 룰라에게서 실형을 끌어내기 위해 무리한 수사와 비정상적인 판결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이때문에 부패 스캔들 자체가 반대파들에 의한 조작일 가능성이 가시화 된 상황이다.
그와 함께 당시 폭로된 통화에서 검사들이 좌파 노동자당(PT)과 연방대법원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기는 등 정치 중립성이 훼손 되었다는 논란이 불거지는 등 신뢰성이 크게 저하되었다. 공무원에게 왜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치 성향이 드러나면 공무원들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직무 권한 행사에 대해 공정성 논란이 거세지기 때문.
세르지우 모루 전 판사는 페트로브라스 스캔들로 호세프 탄핵 정국을 주도하고 룰라를 전격 구속시키면서 부패수사 상징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2016년 미국 경제주간지 포천으로부터 '50인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선정된 데 이어 영국 일간 파이낸셜 타임스(FT)가 꼽은 '2010년대를 빛낸 50인' 명단에 선정되는 등 크게 인기를 모으으기도 했으나 이 폭로때문에 세르지우 모루의 판결과 본인에게 후폭풍이 몰아닥쳤다.
이후 모루는 거센 논란의 대상이 되어 비난을 받았다. 이제는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여당과도 갈등하면서 이제 진영논리를 떠나 브라질 전방에서 공공의 적으로 취급받게 된다. 룰라 구속 사태의 주범이라는 점에서는 진보 진영으로부터, 그리고 법무 장관으로서 보우소나루와 대립하면서 보수 진영에서도 비판받고 있는 것. 결국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핑계를 대며 법무장관직에서 사임해버렸다. 그러나 룰라 관련 판사, 검사 담합 의혹과 관련하여 공무원으로서의 신뢰성이 근본적으로 추락했기에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잘못을 주장하며 사퇴한 여파가 크지 않았다.
2021년 다시 세르지우 모루가 연방검사들에게 룰라에 대한 유죄 판결과 수감을 끌어낼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에 당사자들은 맞대응을 거부하고 보도 내용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7. 화려한 복귀 : 최초의 3선 대통령
실형 무효 이후 실시된 차기 대선 여론조사에서 자이르 보우소나루와 양자대결 시 룰라가 52%, 보우소나루가 34%를 득표해 무려 18%p차로 승리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 룰라 자신도 건강만 허락한다면 이번에는 재도전할 의사가 있다고 밝히고 있어 정말로 룰라의 3선 도전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2021년 5월 12일, 룰라는 대표적인 중도우파 성향인 페르난두 카르도주 전 대통령과 만나 브라질과 민주주의, 보우소나루 정부의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한 실망감 등 긴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지지율 상승세에 힘입어 중도 진영을 끌어안기 위한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6월 9일, 브라질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해 필요하다면 내년 대선에 후보로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
11월에는 유럽 순방을 마치면서 2022년 2~3월 중 대선 출마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
11월 26일, 브라질 연방대법원 합의2부는 룰라 전 대통령에 대한 자산동결 조치를 취소한다고 결정했다. 내년 대선 출마를 어렵게 하던 족쇄가 또 하나 풀린 셈. #
2022년 1월말 발표된 여론 조사 결과, 결선 투표 없이 1차 투표만으로도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누르고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온건중도 성향의 제라우두 아우키민 전 상파울루 주지사를 지난해 말 러닝메이트로 선택한 것이 아주 주효했다는 평가. # 재밌는 점은 제라우두 아우키민이 2006년에는 룰라 전 대통령과 맞붙었던 후보였다는 것으로, 보우소나루를 막기 위해 좌파진영과 중도진영이 큰 범위의 연대를 맺었음을 상징하는 러닝메이트 구성이 되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파 세력을 결집한 보우소나루의 지지율도 점차 다시 상승하여 최대 20%p 이상 벌어졌던 격차가 2022년 3월 시점으로는 10%p대까지 좁혀졌다. 따라서 1차 투표만으로 룰라가 승리하는 그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2022년 3월 23일, 룰라 전 대통령을 수사한 전직 연방검사에게 권한남용과 명예훼손 혐의로 벌금형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당시 수사를 맡았던 달라기뇨우 전 검사가 지난 2016년 기자회견을 하면서 룰라를 범죄조직의 우두머리로 표현한 파워포인트를 사용하는 등 무리한 수사를 진행했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
2022년 4월 5일에는 룰라는 자신이 다시 집권하면 정부 요직에 있는 군 출신들을 내쫓겠다고 밝히면서 "보우소나루 정부에서 정상적인 임용 시험을 거치지 않고 요직을 맡은 군 출신이 8천 명이나 된다"면서 "올해 대선에서 승리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대통령직으로 돌아가면 무너진 질서를 바로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2022년 4월 7일, 룰라는 라디오 방송 인터뷰를 통해 지난 2017년 말부터 동거해온 호잔젤라 다 시우바와 다음 달 재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참고로 룰라 전 대통령의 전 부인 마리자 레치시아는 뇌졸중 증세로 치료를 받다가 2017년 2월 초 66세를 일기로 사망한 바 있다. #
5월 7일, 룰라가 노동자당의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되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겨냥, "브라질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순간을 지나고 있다"며 "우리를 지배한 무능과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새로운 길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8월 28일 열린 첫 토론회에서 룰라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에 대해 '국가를 망친 장본인'라고 규정하고 "내(룰라)가 이뤘던 경제 성장세와 빈곤 퇴치 계획(보우사 파밀리아)의 유산을 없애 버렸다"며 "물가는 치솟았으며, 아마존 열대 우림은 파괴되고 있다"고 맹공을 가했다. #
8월 31일에는 대선 캠페인을 총괄하는 알로이시오 메르카단테 수석 보좌관이 룰라가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인도네시아· 콩고와 열대우림 연합전선을 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구상은 개발도상국들이 자국 숲을 개발하지 않고 보전하되, 그 기회손실 비용을 선진국들이 부담하는 구조로 향후 열대우림 보전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 강력한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
10월 2일 열리는 대선을 3일 앞두고 룰라가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과 압도적인 격차를 유지하며 지지율이 50%에 육박하고 있다. 이제는 1차 투표에서 결선을 가지 않고 과반 투표율을 기록할 것인지가 관건인 것으로 보인다. #
7.1. 1차 투표 결과
2022년 10월 2일 1차 투·개표 결과, 룰라가 48.43%를 득표해 1위 자격으로 43.2%의 보우소나루와 함께 결선 투표로 진출했다. 1차 투표에서 범좌파 진영 득표율을 생각해 봤을 때 51%가 넘기 때문에 이대로면 결선투표에서 승리할 수 있다. 다만 목표로 했던 1차 과반 득표에 실패한데다가, 보우소나루가 1차에서 여론조사보다 5~10%의 표를 더 득표했기 때문에 당선을 아주 장담하기는 어려워졌다. #세계 주요 언론에서는 룰라를 포함한 범좌파 진영 지지층이 룰라의 1차 투표 당선 실패보다도 보우소나루의 예상치를 뛰어넘은 득표율 때문에 패배에 가까운 좌절감을 얻었다고 평가하면서도 룰라 전 대통령이 결선 승리를 위해서라도 이들의 절망감을 달래고 투표일까지 반 보우소나루 연대가 와해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1차 투표 직후 4위 중도좌파 성향 민주노동당의 시루 고미스와 3위 중도우파 성향 브라질 민주운동의 시모니 테베치가 모두 룰라 전 대통령 지지를 선언하면서 반 보우소나루 연대가 다시 한번 확장되었다.
7.2. 결선 투표 결과
결선 투표 결과 룰라 50.9% vs 보우소나루 49.1% 로 단 1.8%p차의 박빙으로 자이르 보우소나루를 누르며 룰라가 당선, 다시 브라질 대통령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당초 1차 투표 당선까지 예측되던 것에 비하면 아쉬운 성적일 수도 있겠지만, 보우소나루 진영의 극한까지 치달은 극우 포퓰리즘과 가짜뉴스 도배, 그를 둘러싼 우파진영의 총집결 속에서 무려 90년대 초부터 중앙정치에 뛰어든 사람이 30년이 지나고서 범죄 음해를 당해 징역까지 살았음에도 이 모든걸 극복하고 3선 대통령으로 당선된 걸 생각하면 참 놀라운 결과이기도 하다.물론 룰라 3기를 기다리는 환경은 녹록지 않다. 정권을 탈환하긴 했지만 의회는 과거와 달리 우파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룰라 퇴임 이후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인해 예산 또한 1, 2기 시절에 비해 더 빠듯해졌다. 거기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예상대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면서 불복을 암시하고 있어 이로 인한 혼란 역시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반대급부로 룰라의 명성 덕분에 서방도 브릭스도 룰라가 이끌 브라질을 향해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30일 저녁 룰라 후보가 당선된 직후 "자유롭고 공정하고 믿을만한 선거를 거쳐 차기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축하한다"며 "앞으로 여러 달, 여러 해 동안 양국 사이의 협력을 계속해 나가기 위해 함께 일하게 될 것을 고대한다"며 축하 메세지를 전했고, 중국 역시 외교부 성명에서 "중국은 룰라 당선인이 이끄는 새 브라질 정부와 협력, 양국의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며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브라질이 새로운 성과를 거두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특히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직접 달려와 진심으로 축하했고, 룰라 당선인은 취임 이후 첫 외국 순방지로 아르헨티나를 선택하겠다고 화답했다. #
재밌는 점은 러시아 역시 친러 성향을 보여온 보우소나루를 내치고 룰라의 높은 정치적 권위가 확인됐다며 양국간에 '건설적 협력'의 진전을 희망한다는 뜻을 밝혔다.
한편 룰라는 당선 소감을 밝히면서 "경제 발전을 바탕으로 배곯는 국민을 없애겠다"고 천명했다. 복지 정책을 강화하면서도 나랏빚을 해결하고 경제 대국으로 성장시킨 '8년간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
룰라 당선과 함께 헤알 가치와 함께 증시가 나란히 상승했는데, 양호한 경제 전망과 높은 금리에 더해 보우소나루발 정치 리스크가 룰라 당선으로 인해 해소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12월 9일에 재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 법무부 장관, 외무부 장관, 수석 보좌관 등 5명의 명단을 발표했으며, 특히 지난 대 선에서 자신을 대신해 출마한 바 있는 페르난두 아다지를 재무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2023년 1월 1일에 있을 3기 취임식을 앞두고 브라질 최고선거법원은 2022년 12년 28일 오후 6시부터 2023년 1월 2일까지 취임식이 있을 수도 브라질리아 내에서 총기류 및 탄약 소지 면허 효력을 일시 중단하는 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을 어긴 사람은 현행범으로 체포되지만 당연하게도 보안군과 경찰, 민간 보안회사 직원 등은 명령 준수 대상에서 제외된다. #
12월 29일. 16명의 신임 장관을 임명하면서 새 정부를 구성할 37명의 장관 임명 절차를 끝냈다. 룰라 당선인이 속한 노동자당 소속 장관은 재무부 장관 및 수석보좌관 등 요직을 포함해 10명이며, 나머지는 중도파와 중도우파에 해당하는 당에서 임명됐다. #
8. 제39대 브라질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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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 취임식을 가지는 룰라 대통령 |
2023년 1월 1일, 룰라는 브라질의 제39대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식을 가지고 임기를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룰라 대통령은 전임 보우소나루 행정부의 정책 기조를 뒤집겠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개인적 구상에 따라 국가를 복종시키려 했던 사람들에 대한 어떠한 복수의 정신도 가지고 있지 않다"며 분열된 국가 치유를 자신의 임무로 내세웠다. 다만 그는 "오류를 범한 사람들은 법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일부 보우소나루 지지자의 쿠데타 선동 행위 등에 대한 처벌을 예고하기도 했다. #
1월 8일, 선거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브라질 국가의회과 대통령궁, 대법원에 난입해 기물을 파손하는 등 2023년 1월 브라질리아 폭동이 벌어졌다. # 룰라 자신은 지난해 말 발생한 홍수 피해를 입은 아라라콰라를 방문 중이었기 때문에 이 폭도들과 맞닥뜨리지는 않았다.
룰라 대통령은 '이 사태를 일으킨 광신도 파시스트 폭도들을 강력하게 처벌하겠다'고 선언하며 군 병력을 투입했다. 또한 이달 말까지 연방정부 차원에서 직접 사태 해결에 나서겠다고도 밝혔다. 그러면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공격을 독려하는 듯한 몇 번의 연설을 한 바 있다"며 이번 사태 배경에 전임 대통령 책임도 있음을 분명히 했다. #
1월 21일에는 줄리우 세자르 지 아루다 육군 참모총장을 해임했다. 극우 성향에 친 보우소나루 성향의 아루다 총장이 폭동 당일 밤 경찰이 브라질리아 육군본부 외곽의 캠프에 피신한 폭도 용의자들을 구금하지 않고 풀어주는 등 사실상 뒷처리를 의도적으로 방치했기 때문이다. 아루다 총장을 포함한 80명의 군 간부들에게도 책임을 물어 해임했다. #
1월 22일 아르헨티나를 방문해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와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1월 25일에는 우루과이의 루이스 라카예 포우 대통령과 회담하고 메르코수르와 중국 간 FTA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룰라의 이날 발언은 3월 방중을 앞두고 우루과이의 독자적인 중국과의 FTA 수립을 견제함과 동시에 FTA 논의 자체를 메르코수르 단위로 확장하자는 뜻으로 풀이된다. #
2월 8일에는 칠레 전역에서 심각한 산불이 발생하자 소방대 등 지원 인력을 파견해 화재 진압 및 구호작업을 지원하도록 지시했다. #
2월 10일, 미국을 방문하여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두 나라가 기후 위기 대처를 위한 아마존 보호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또한 민주주의 제도 및 평화적인 권력이양에 대한 폭력에 규탄한다는 데에도 의견을 같이한다고 밝혔는데 두 대통령 모두 자신의 당선을 받아들이지 못한 극우 성향 폭도들의 난동을 겪은바 있다. #
취임 후 첫 여론조사에서 긍정 40%, 부정 16%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를 진행한 펠리피 누네스 콰에스치 CEO는 룰라 정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경제 의제에 거의 모든 것을 걸고 있는 룰라 정부의 전략적 행보의 결과물이라고 분석했다. 룰라 정부는 연초 헌법을 개정해, 확대된 사회지원금 지급을 유지하고, 최저 임금을 인상하는 등 경제 의제에 집중하고 있다. #
2월 28일 , 브라질 행정부는 미국 플로리다에 머물고있는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에게 3월 내로 브라질 영내에 복귀할 것을 명령했다.
4월 14일 중국에서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진행하였다. 이 자리에서 다자주의 강화를 천명하며 무역·투자, 디지털 경제, 과학기술 혁신, 정보통신, 빈곤 완화, 검역, 항공·우주 등 영역에 걸친 여러 건의 양자 협력 문건에 서명했다. # 중국 순방 과정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서 미국과 EU도 책임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 해당 국가들이 반박하자, 브라질 외무장관 명의로 이를 재반박했다. ##
4월 18일, 대통령 공관에서 진행된 회의에서 비디오 게임이 범죄 연습과 다름없다고 발언하여 논란이 되었다. #
4월 22일, 포르투갈 안토니우 코스타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여기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자 대화를 통한 제3의 해법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월 25일, 스페인 펠리페 6세 국왕과 페드로 산체스 총리를 방문하여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앞서 포르투갈 방문 때처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한 논의와 더불어 메르코수르-EU FTA 등에 대하여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
5월 룰라 대통령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초청으로 일본 히로시마에서 20, 21일 이틀간 개최되는 G7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여러 나라 정상들과 양자회담도 가지는 일정을 소화한다. YH MBC
일본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이목을 끌었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간 만남이 젤렌스키 대통령 일정 문제로 불발됐다. 헤럴드 서울경제
반면 룰라 대통령과 달리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할 수 있는 모든 인도주의적 지원을 약속하며 우크라이나에 손을 내밀었다. 이투데이 모디 총리는 지난 20일 "사태 해결을 위해 인도와 내가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고 했다고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했다. 시사저널
2023년 7월. 남녀 동일 임금 및 임금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에 서명하고 이를 공포했다. # 일반인의 총기 소지·사용을 엄격히 규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
2023년 8월, 경기 호조의 영향으로 지지율 하락세를 벗어나 5%p 상승했다. 특히 대선 때 룰라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낮았던 남부에서의 상승세가 도드라졌다. 여론조사 인터뷰 대상자의 59%가 향후 12개월 동안 경제 상황이 계속 좋아질 것이라고 답했으며, 34%는 지난 12개월 동안 경기가 호전됐다고 응답했다. #
2024년 2월 17일, 에티오피아에서 개최한 아프리카 연합 정상회의에서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대한 발언 중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을 홀로코스트에 비유해 이스라엘로부터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되었다.
한편 3월 6일에는 브라질에 국빈 방문한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외 회담한 후 유럽연합과 메르코수르간 FTA 협상의 조속한 타결을 촉구했다. 현재 해당 협상은 프랑스의 반대로 인해 난항을 겪고 있다.
3월 24일부터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사흘간 브라질을 국빈방문했는데 이 와중에 룰라 대통령과 동성 연인처럼 다정한 모습이 찍힌 사진이 포착되어 한국에서도 일부 화제가 되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에 대해 “결혼식이었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
7월 28일로 예정된 베네수엘라 대선을 앞두고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이 대선에서 패할 경우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다고 암시하는 발언을 남기자 "마두로는 선거에서 패배하면 권좌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걸 배워야 한다"며 "이번 일요일 선거는, 베네수엘라가 국제사회로 되돌아올 유일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8]
8월 15일,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마두로 대통령이 주장하는 대선 승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는 브라질을 비롯해 전 세계에 해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결 방안으로는 투명한 방식의 재선거나 야당을 포함한 연립정부 구성을 제안했다.
9월 6일. 실비오 알마이다 인권시민부 장관이 여성에 대한 성희롱 혐의가 여러 건 제기된 후 해고했다. #
[1]
2002~2005년에는 한국보다도 GDP가 작았던 나라가 고작 6년 후인 2011년에는 영국 GDP도 넘볼 기미를 보일 정도로 급성장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에 힘입어 룰라도 지지율을 암흑기(2005년 측근 비리 폭로 후)에 30% 미만이던 것에서 퇴임 전에는 90% 가까이(87%)를 기록하며 지지율을 3배 가까이 폭등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보였다.
[2]
1999년에는 3456달러로 1998년의 68%로, 2000년에는 3727달러로 2002년의 1인당 GDP는 2000년의 76% 수준이었다.
[3]
덤으로 1999년 브라질의 GDP는 5996억 달러로 1998년의 69% 수준이었으며, 2000년에는 6554억 달러로 2002년의 GDP는 2000년 78% 수준이었다.
[4]
이후 2020년 -3.3%의 마이너스 성장 + 환율 31% 폭등(2019년 3.94레알 -> 2020년 5.16레알)에 힘입어 브라질의 GDP는 2021년까지 다시 한국에 추월당했고(...) 한국은 이와 함께
러시아와
캐나다의 마이너스 성장(러시아는 이와 동시에 환율도 10% 올랐다)까지 더해
IMF 통계 기준 GDP 순위 세계 9위를 기록하는 성과를 냈다.
[5]
정작 아이러니한 것은 당시 브라질은 마이너스 성장만큼은 기록한 적이 없었고, 1998~1999년에도 각각 0.3%/0.5%였다. 2000년에는 4.4%, 2001년에는 1.4%, 2002년에는 3.1%였다.
[6]
그나마
카를로스 메넴 문서에 나오는
아르헨티나보다는 경제적 타격이 덜했고 1인당 GDP 역시 아르헨티나보다는 높았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다.
[7]
당시 한국 인구(약 4800만 명)의 60%에 육박하는 수인 무려 3000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빈곤층이었던 셈이다!
[8]
당시 브라질 GDP는 영국이랑 딱 1.7%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9]
2024년 시점에서도 당시 경제 수치로 복귀한 적은 없을 정도. 심지어 환율 변동을 감안하면 더더욱 높은 기록인 셈이다.
[10]
이는 (당시 기준으로) 미국, 중국, 일본, 독일에 버금가고 프랑스, 영국도 능가하는 수준이다.
[11]
수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12]
연합뉴스, 브라질 연방대법원은 헌법재판소로서 형사사건의 유·무죄를 다투지 않는다. 브라질에서 대법원의 역할은 연방고등법원이 관할한다. 조희문, 「브라질의 헌법재판제도, 외법논집 34권4호」,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연구소"를 참조
[13]
브라질 연방대법원 판결문: 사건번호 HC193726 단독재판부(발췌),
브라질 연방대법원 공보: 사건번호 HC193726 단독재판부 참조
[14]
연합뉴스,
브라질 연방대법원 공보 1: 사건번호 HC164493, HC193726 전원합의체,
브라질 연방대법원 공보 2: 사건번호 HC164493, HC193726 전원합의체 참조. 최종 결정은 4월 22일에 이루어졌다. 이는 새로 구성될 파기이송심 관할에 대한 논의를 위해 심리가 연장된 것으로 결정 내용에 대한 변동은 없었다
[15]
연합뉴스, 룰라측 변호인은 기소된 사건에 각각 구속적부심사(habeas corpus)를 청구하여 항소, 상고를 거쳐 헌법소원 절차까지 밟은 것이다. 구속적부심사는 브라질 연방대법원 업무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16]
브라질 연방대법원 공보: 사건번호 HC164493 전원합의체, 파싱 대법관은 3월 8일 자신이 주재한 단독심리에서 룰라와 관련한 사건들의 파기이송을 결정했으므로, 합의 2부에 계류 중인 사건도 해당 결정에 기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합의 2부의 주심 지우마르 멘지스,Gilmar Mendes, 대법관은 모루 전 판사에게 사법질서 훼손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브라질 연방대법원 공보: 사건번호 HC164493 합의 2부 참조
[17]
브라질 연방대법원 공보: 사건번호 HC164493, HC193726 전원합의체 재인용
[18]
그러나 마두로는 룰라의 경고와 달리 또다시 부정선거로 의심되는 행위를 자행함으로써 국제적 고립을 자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