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12 21:15:36

권정필(1886)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a11, #a11 20%, #a11 80%, #a11); color: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단장
김원봉
고문
김대지 황상규
단원
강세우 강인수 고인덕 곽재기
권정필 권준 김광추 김기득
김방우 김병현 김상옥 김상윤
김성숙 김시현 김익상 김지섭
김철호 나석주 남정각 박문희
박자혜 박재혁 박차정 박희광
배동선 배중세 배치문 서상락
송천흠 신악 신영삼 신채호
신철휴 오성륜변절 유자명 윤세주
윤치형 이구연 이병철 이병희
이성우 이수택 이육사 이종암
이태준 정이소 최수봉 황옥불확실
최용덕 한봉근 한봉인 홍가륵
유시태 이원대 이원기 윤병구
유석현 정율성불확실 문시환 이춘암
공약 10조
① 천하의 정의의 사(事)를 맹렬히 실행하기로 함.
② 조선의 독립과 세계의 평등을 위하여 신명을 희생하기로 함.
③ 충의의 기백과 희생의 정신이 확고한 자라 함.
④ 단의(團義)에 선(先)히 하고 단원의 의(義)에 급히 함.
⑤ 의백(義伯) 1인을 선출하여 단체를 대표함.
⑥ 하시(何時) 하지(何地)에서나 매월 1차씩 사정을 보고함.
⑦ 하시 하지에서나 매 초회(招會)에 필응함.
⑧ 피사(被死)치 아니하여 단의에 진(盡)함.
⑨ 1이 9를 위하여 9가 1을 위하여 헌신함.
⑩ 단의에 배반한 자는 처살(處殺)함이다.
5파괴
조선총독부
동양척식회사
매일신보사
④ 각 경찰서
⑤ 기타 왜적 중요기관
7가살
조선총독 이하 고관
② 군부 수뇌
대만총독
④ 매국노
⑤ 친일파 거두
적탐(밀정)
⑦ 반민족적 토호열신(土豪劣紳)
조선혁명선언 황옥 경부 폭탄사건 }}}}}}}}}
파일:권정필(1886).pn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권재만(權在萬)·권종백(權鍾伯)
자 / 호 종백(宗伯) / 동산(東山)
본관 안동 권씨[1]
출생 1886년 2월 10일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부내면 용상리
(현 경상북도 안동시 용상동)[2][3]
사망 1935년 12월 11일
경상북도 안동군
묘소 경상북도 안동시 안막동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권정필은 1886년 2월 10일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부내면 용상리(현 경상북도 안동시 용상동)에서 아버지 권회영(權檜英)과 어머니 안동 김씨 김원서(金元瑞)의 딸 사이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5촌 당숙(堂叔)인 권갑영(權甲英)에 입양되었다.

그는 1919년 안동에서 3.1 운동에 참가했고, 그해 11월에 만주로 망명한 뒤 의열단에 가입했다.[4] 1922년 6월, 의열단장 김원봉의 명령을 받은 그는 상하이에서 서울로 잠입한 뒤 당시 국내에 밀파된 의열단 단원 및 동지들에게 무기를 공급하기도 하고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금하기 위하여 동지 유병하·유시태(柳時泰) 등과 협력하여 경성부 내자동에 거주하는 이인희(李麟熙)로부터 군자금 오십원을 받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납부하였다.

1923년 만주 안동현에서 의열단원 김시현, 황옥, 김지섭 등과 함께 조선총독을 위시하여 일제 고관의 암살과 주요 관공서 파괴를 목적으로 폭탄 30개, 권총 13정, 의열단의 조선혁명선언문(朝鮮革命宣言文) 및 조선총독부 소속 관공리(官公吏)에 대한 격문 700매를 서울로 반입했다. 그러다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어 동지들이 체포되자, 그는 김지섭과 함께 만주로 피신하여 한때 영고탑(寧古塔)[5]에 거주하였다.

이후 1929년 만주 안동현에 있는 홍종우(洪鍾祐)의 집에서 의열단원 10여명과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의열투쟁 방안에 관해 밀의하던 중 안동 소재 일본영사관 관헌의 급습을 받고 체포되었다. 이후 1932년 12월 23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 항소했고,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1935년 급성 위장병에 걸려 형 집행정지를 받고 풀려났지만 1935년 12월 11일에 고향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권정필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1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1 ( 이전 역사)
문서의 r ( 이전 역사)

[1] 부호장공파 두환(斗煥)계 33세 정(正) 항렬. [2] 인근의 노하동·율세동·안막동·서부동·동부동·신세동·법상동과 함께 안동 권씨 집성촌이다. [3] 1934년 용의조선인명부에는 안동군 안동면 용상동, 즉 현재의 안동시 용상동이 출생지로 기재되어 있으며, 1932년 수형인명부에 율세동은 그의 주소지라고 기재되어 있다. [4] 1920년 12월 25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에서 소위 사기 및 다이쇼 8년(1919) 제령 제7호 위반 혐의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을 받기도 했다. # [5] 중국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닝안시(寧安市) 닝구타(寧古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