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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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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몽손 혁련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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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軼
(? ~ 311)
1. 개요2. 생애

1. 개요

서진의 인물로 자는 언하(彦夏). 기주 평원군 고당현 출신으로 조위 시기에 태위를 지낸 화흠의 증손자다. 아버지는 화담(華澹)은 서진에서 하남윤을 지냈다.

2. 생애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이 있어 명성을 얻었고 박애와 넓은 도량으로 사람들을 맞으니, 주변으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았다. 화일은 박사로 관직에 진출한 뒤, 계속 승진하여 산기상시에 임명되었다. 동해왕 사마월이 형주를 관할할 때, 화일을 초빙해 자신의 유부장사로 삼았다. 이후 진위장군, 강주자사로 전임되었다.

천하는 팔왕의 난으로 인해 한창 혼란스러웠으나, 화일은 전통의례를 숭상하고 유림좨주를 두어 유교적 이념에 따라 강주를 다스리면서 말했다.
지금 대의는 사라지고 본받을 만한 의식이 없으나, 조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이를 바로잡을 길이 없으니, 그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만이라도 이 특별한 관직을 설치해 반드시 유교적 가르침을 바로 세워야 한다. 군문좨주 두이(杜夷)는 성정이 깊어 속세에 큰 뜻을 두고 있지 않고, 학식도 넒으며, 행실도 모범적이니, 그를 유림좨주로 삼겠다.
이러한 화일의 통치로 인해 그 위엄과 명성이 온 강주를 덮었고, 지역 호족과 선비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아 방랑하던 이들도 강주에 귀부하였으며, 백성들에게도 깊은 사랑을 받았다.

당시 서진은 수도 낙양이 한나라 유총에게 늘 위협받았고, 각지에선 민란이 만연했다. 화일은 도움을 요청하는 사마월의 서신을 받고 전(前) 강하태수 도간에게 명해 병사 3천을 낙양에 원군으로 보냈으나, 이미 불리해진 전세를 뒤집기엔 무리였다. 그럼에도 화일은 천하를 바로잡으려는 뜻을 포기하지 않았고, 낙양에 공물을 보낼 때 항상 신하로서 절도를 지켰다. 또, 낙양에서 사자가 오면 그를 영접하며 말하길, "만약 낙양으로 가는 길이 끊긴다면 공물을 낭야왕에게 전달해, 제가 언제나 사마씨를 위해 일하고 있음을 밝히겠습니다."라 하였다.

311년 5월, 낭야왕 사마예가 진동대장군에 임명받고 조정으로부터 양주, 강주, 상주, 교주, 광주의 통치를 위임받았다. 그러나 화일은 아직 낙양에 황제가 건재함을 들어 사마예의 명을 따르지 않으려 했다. 부하들이 모두 이에 대해 간언하자 화일이 말했다.
나는 오직 폐하의 조서만 보고 따를 뿐이다.
이에 사마예는 주방에게 1200여 병력을 거느리고 팽택(彭澤)에 주둔해 화일에 대비히도록 명했다. 주방은 충신인데다 백성들에게 추앙받는 화일과 불화하고 싶지 않아 악릉(䣞陵)에 군대를 주둔시켜 강주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동년 6월, 낙양이 함락되자 사공 순번(荀藩)이 밀(密) 땅에 행대를 세우고 격문을 올려 사마예를 맹주로 추대하였다. 사마예가 무너진 서진의 정권을 대행해, 승제하여 관아를 두고 장리(長吏)들을 교체했는데, 화일은 또 불복했다. 이에 사마예는 양주자사 좌장군 왕돈에게 장수 감탁, 주방, 송전(宋典), 조유를 통솔하여 화일을 정벌했다.

화일은 팽택에 별가 진웅(陳雄)을 두어 왕돈을 막게 하고, 자신은 수군을 편성해 후방에서 지원하는 작전을 세웠다. 선봉 주방이 분구(湓口)에서 무창태수 풍일(馮逸)을 공격하자, 화일은 풍일을 지원하러 갔지만 패배했다. 전황이 불리하니 화일에게 예우받지 못해 불만이 쌓여있던 전 강주자사 위전(衛展)과 예장태수 주광(周廣)이 사마예에게 항복하고, 내응하여 화일을 습격했다. 화일은 안팎으로 협공당하면서 군사 대부분을 잃고 가족들과 안성현으로 도망쳤으나, 풍일이 배반해 그와 그의 아들 5명의 목을 베고, 그 수급을 건업으로 보내면서 항복을 선언했다.

화일을 섬기던 서조연 고이(高悝)는 가까스로 화일의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빼돌려 숨겨준 덕에 후사가 끊기는 일은 없었다. 이들은 수 년간 숨어지내면서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다, 마침내 동진이 건국되고 대사면령이 내려졌을 때 고이가 화일의 두 아들과 자진출두하였다. 사마예는 고이의 충심을 칭찬하고 그들을 용서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