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5-08 09:13:37

해계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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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몽손 혁련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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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系
(? ~ 300)
1. 개요2. 생애

1. 개요

서진의 인물로 자는 소련(少連). 청주 제남군 저현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 해수(解修)는 위나라에서 낭야태수를 지내다가 양주자사로 승진했고, 서진이 들어서자 양추후에 봉해졌다. 동생으로는 해결(解結), 해육(解育)이 있으며, 모두 청렴결백하기로 명성이 높았다.

2. 생애

해계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마치던 당시, 순욱 가문의 위세가 대단하여 조야가 두려워했다. 순욱의 아들 순조는 어느 날 해계를 찾아가 이르기를, "나와 그대는 친구 사이니, 그대는 앞으로 우리 아버지를 만날 때 예를 갖추어 절을 해야한다."라 하였다. 곁에 있던 순욱은 그런 아들들을 말리기는 커녕 "나와 그대의 아버지는 친교가 두터웠다."라며 아들들의 주장을 거들었다. 그러자 해계가 대답했다.
저는 아버지로부터 그런 사실을 전달받은 적이 없습니다. 만약 공께서 저희 아버님과 친교가 두터워 이전에 애도를 표했다면 틀림없이 편지라도 남겼을 겁니다. 고로 저희 아버님과 친분이 두터웠다는 말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이에 순욱 부자는 크게 부끄러워했고, 주변 사람들은 모두 이를 장하게 여겼다. 이후 공부(公府)의 연으로 초빙되어 중서황문시랑, 산기상시, 예주자사를 차례로 역임했다가 상서로 승진하였고, 얼마 안지나 옹주자사, 양열장군, 서융교위, 가절로 임명받고 지방으로 나갔다.

296년, 저족 수령 제만년이 난을 일으키자 정서장군 조왕 사마륜과 함께 이를 진압하기 위해 출전했다. 그러나 작전 회의 중에 사마륜의 총신 손수(孫秀)와 대립하여 말다툼을 벌였고, 결국 합의를 보지 못한 채 서로 다른 작전을 올렸다. 조정에서는 해계의 정직함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사마륜을 소환하고 양왕 사마융이 그 빈자리를 대신하게 했다. 해계와 동생 해결은 사마융의 동의를 얻어 손수를 죽여서 저족과 강족을 위로하려 했으나, 사마륜의 또다른 총신 신염이 적극 변호해주어 손수의 처형 건은 좌절되었다. 위기를 모면한 손수가 사마륜과 합심해 해계를 탄핵하자, 해계는 면직되어 백의로 집에 돌아와 두문불출하였다.

300년, 사마륜이 장화와 배외(裴頠)를 주살하고 해계 형제를 사로잡았다. 양왕 사마융이 해계 형제를 풀어달라 건의하자 사마륜은 분노하여 "나는 강에서 게를 보고도 이를 악하다 여기는데, 하물며 인간이고 나를 얕잡아본 해계 형제야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을 참아야 한다면, 이 세상에 참을 수 없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라 소리쳤다. 사마융은 포기하지 않고 해계 형제를 살리려 애써보았으나, 사마륜은 끝내 해계와 해결을 주살하고 그 처자를 살육했다.

301년, 제왕 사마경은 억울하게 죽은 배외와 해계 형제의 원한을 갚는다는 것을 거병 명분 중 하나로 내걸었다. 사마경은 제후 연합군을 이끌고 사마륜과 손수를 제거한 뒤, 상소를 올려 해계 등의 억울함을 알렸다.

302년, 해계는 복권되어 광록대부로 추증받았고, 개장하여 다시 제사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