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제7대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7세 Ptolemy VII Neos Philopat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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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이름 |
프톨레마이오스 7세 Πτολεμαῖος | Ptolem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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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기원전 152년 |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 ||
사망 | 기원전 144년 (향년 7-8세) |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 ||
재위 기간 | 이집트 파라오 | |
기원전 145년 7~8월 (약 1개월) | ||
전임자 | 프톨레마이오스 6세 | |
후임자 | 프톨레마이오스 8세 | |
부모 |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6세 어머니: 클레오파트라 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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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이집트 다신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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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7대 파라오.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6세가 사망한 후 한달간 즉위했으나 숙부 프톨레마이오스 8세에게 밀려난 뒤 얼마 안가 피살되었다.2. 생애
기원전 152년 프톨레마이오스 6세와 클레오파트라 2세의 막내 아들로 출생했다. 형제자매로는 동복형제로 프톨레마이오스 유파토르가, 동복자매로 클레오파트라 테아, 클레오파트라 3세가, 이부형제로 프톨레마이오스 멤피테스[1]가 있었다.별칭인 네오스 필로파토르(Neos Philopator)는 아버지의 새로운 사랑을 받는 자라는 뜻이다. 프톨레마이오스 6세는 본래 프톨레마이오스 유파토르를 후계자로 염두에 뒀지만, 기원전 152년 가을에 요절했다. 결국 막내아들을 후계자로 두었지만, 아무래도 걱정이 많이 됐는지 누나 클레오파트라 3세를 기원전 146년 신격화하여 공동 후계자로 삼고 동생을 지키게 했다.
기원전 145년, 프톨레마이오스 6세는 오이노파루스 강 전투에서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의 군대를 격파하고 데메트리오스 2세를 셀레우코스 왕조의 새 국왕으로 옹립했다. 그러나 이때 입은 부상이 악화되면서 이집트로 귀환하던 중 사망했다. 당시 7살이었던 그는 그해 7월 파라오로 등극하여 어머니 클레오파트라 2세와 누나 클레오파트라 3세의 섭정을 받았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 시민들은 어린 파라오보다는 전 파라오의 동생을 의지하는 게 낫다고 여기고, 프톨레마이오스 8세를 추대했다. 결국 민심을 등에 업은 프톨레마이오스 8세가 귀환하여 파라오로 즉위했고, 프톨레마이오스 7세는 한 달만에 폐위되었다.
그 후 클레오파트라 2세와 결혼한 프톨레마이오스 8세는 조카인 프톨레마이오스 7세를 죽였다. 유스티누스에 따르면, 결혼식을 치른 날 밤 암살자가 프톨레마이오스 7세를 찔렀고, 프톨레마이오스 7세는 어머니의 품에서 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 발견된 파피루스 기록에 따르면, 그는 프톨레마이오스 8세 집권 후에도 후계자 지위를 유지했고, 기원전 144년 클레오파트라 2세가 프톨레마이오스 멤피테스를 낳은 후 제거되었다고 한다. 현대 학자들은 파피루스의 기록이 사실에 가깝다고 본다.
3. 여담
프톨레마이오스 7세는 기원전 145년에만 짧게 부모와 공동 통치자였을 뿐, 곧장 삼촌 프톨레마이오스 8세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에 몇몇 자료에서는 아예 생략되는 경우가 있다.
[1]
프톨레마이오스 8세 소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