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제1중간기 제10왕조 3대 파라오
와카레 케티 Wahkare Khe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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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휘 | 와카레 케티(Wahkare Khety) | |
부왕 | 불명 | |
선대 |
카카레 이비 혹은
와지카레 혹은 네페르카레 8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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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 | 메리카레 | |
묘지 | 불명 | |
자녀 | 메리카레(Merikare)[추정] | |
재위 | 이집트 파라오 | |
연도는 불명이나 재위기간은 50년으로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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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집트 제1중간기 10왕조의 3대 파라오이다. 8왕조의 4대 파라오로 보는 의견도 있고, 9왕조의 초대 파라오인 케티 1세와 동일 인물로 보는 의견도 있다.2. 통치
남아있는 기록이 매우 부실한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시대의 파라오인지 논란이 오가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 메리카레 왕을 위한 가르침"이라는 유언장 형식의 책을 저술한 것으로 추측된다.[3] 또한 와카레 케티도 아시아인의 침략을 막기 위해 하이집트의 세력들과 일시적인 동맹을 맺어 하이집트의 대부분의 세력이 와카레 케티가 10왕조 3대 파라오임을 인정시키고, 아시아인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방어하였다. 또한 하이집트의 룩소르 토착 세력과 같이 11왕조의 인테프 2세가 점령했던 티니스[4]를 탈환했다. 하지만 티니스의 오래된 유적들을 털어버리는 심각한 오판을 저질러 버렸고, 이는 룩소르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켜 룩소르가 티니스를 역으로 점령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후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전쟁없이 하이집트와 11왕조와 평화적 공존을 선택하고 50년동안 길게 통치하다가 메리카레에게 파라오가 넘어갔다.
[1]
파라오의 관은 이중 이상으로 되어있다. 해당 관은 가장 외부에 있었던 관이다.
[추정]
[3]
내용은 자신의 후계자인
메리카레에게 반란을 진압하는 방법, 신하를 다루는 방법, 군대와 종교 행사를 진행하는 방법, 선왕들의 업적을 따라하는 방법 등을 알려줬고 기존 건축물을 재활용하지 말고 새로운 돌을 채굴하라고 지시하였다. 파피루스 자체는 세 조각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가장 상태가 온전한 부분인 레닌그라드 파피루스는 필기 오류와 누락이 있어 번역에 어려움을 격고 있다고 한다.
[4]
1왕조의 수도였던 그 티니스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