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0 01:43:12

클레오파트라 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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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우코스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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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우코스 18대 군주
Cleopatra Thea
클레오파트라 테아
파일:클레오파트라 테아.jpg
<colbgcolor=#000> 출생 기원전 164년경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알렉산드리아
사망 기원전 121년
셀레우코스 제국 프톨레마이스
재위 <colbgcolor=#000> 셀레우코스 군주
기원전 126년 ~ 기원전 1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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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 제호 클레오파트라 테아
Cleopatra Thea
가족 프톨레마이오스 6세(아버지)
클레오파트라 2세(어머니)
그 외 형제 자매는 후술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첫째 남편)
데메트리오스 2세 니카토르(둘째 남편)
안티오코스 7세 시디테스(셋째 남편)
안티오코스 6세 디오니소스(장남)[1]
셀레우코스 5세 필로메토르(차남)
안티오코스 8세 그리포스(삼남)
라오디케(장녀)[2]
안티오코스 9세 키지케노스(사남)[3]
참전 셀레우코스 내전 }}}}}}}}}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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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셀레우코스 왕조의 18대 군주.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공주로, 셀레우코스 왕조에 시집온 이래 세 왕의 왕비가 되어 네 명의 왕을 낳았다. 권력투쟁 끝에 셀레우코스 제국의 여군주로 등극했으나, 아들 안티오코스 8세를 독살하려 하다가 이를 눈치챈 아들에게 먹이려고 한 독주를 강제로 먹고 죽었다.

2. 생애

기원전 164년경 프톨레마이오스 6세 클레오파트라 2세 사이에서 출생했다. 형제자매로는 동복형제로 프톨레마이오스 유파토르, 프톨레마이오스 7세가, 동복자매로 클레오파트라 3세가, 이부형제로 프톨레마이오스 멤피테스[4]가 있었다. 기원전 150년 아버지의 뜻에 따라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와 결혼했고, 둘 사이의 유일한 자식이자 장남인 안티오코스 6세를 낳았다. 그러나 기원전 146년, 프톨레마이오스 6세는 알렉산드로스 1세와의 관계를 단절하기로 마음먹고, 클레오파트라 테아를 이집트로 소환했다. 이후 기원전 145년 데메트리오스 2세와 딸의 혼인을 성사시켰다. 클레오파트라 테아는 데메트리오스 2세와의 사이에서 차남 셀레우코스 5세, 삼남 안티오코스 8세, 그리고 장녀 라오디케를 낳았다.

그러나 데미트리오스 2세는 크레타 용병대의 전횡을 방관했고, 용병대에게 끊임없이 약탈당하는 현실에 분노하여 봉기한 안티오키아 시민들을 무차별 학살하는 바람에 민심을 잃어버렸다. 이 틈을 타 디오도토스 트리폰 장군이 안티오코스 6세를 옹립하여 기원전 144년경 반란을 일으켰다. 데메트리오스 2세는 반란 진압에 실패하여 셀레우키아 피에리아로 피신했고, 그녀는 남편의 뒤를 따라갔다. 이후 셀레우코스 제국은 안티오키아, 아파메아, 라리사, 칼키스를 포함한 시리아 대부분을 지배한 안티오코스 6세 세력과 킬리키아 등 제국 동방 일대, 시리아와 페니키아의 해안 도시들을 장악한 데메트리오스 2세 세력으로 양분되었다. 기원전 142년 또는 141년경 안티오코스 6세가 급사했고, 디오도토스 트리폰이 왕을 자칭했다.

기원전 138년, 데메트리오스 2세는 동방 영토를 자꾸만 갉아먹는 파르티아를 응징하기 위해 출정했다가 오히려 파르티아군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후 파르티아가 바빌로니아를 포함한 제국 동방 영토를 모조리 장악했고, 디오도토스가 남은 영토를 모조리 차지했다. 클레오파트라 테아는 셀레우키아 피에리아에서 농성하면서, 로도스 섬에 있었던 남편의 동생 안티오코스 7세에게 결혼을 제의했다. 안티오코스 7세는 즉시 승낙하고 셀레우키아 피에리아에 상륙한 뒤, 반역자 디오도토스 트리폰을 격파하고 셀레우코스 왕조의 단독 군주가 되었다. 두 사람은 기원전 138년 10월경 결혼했고, 클레오파트라 테아에게는 사남인 안티오코스 9세를 낳았다.[5]

안티오코스 7세는 상당히 유능한 군주였다. 그는 혼란스러웠던 제국의 질서를 재정비하고, 제국에 공공연히 반기를 들었던 하스몬 왕조 유대 왕국을 제압해 충실한 봉신이 되도록 했으며, 파르티아와의 전쟁에서 연이어 승리해 바빌론, 메디아 등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았다. 그러나 129년 2월경 엑바타나 계곡에서 매복에 걸려 전사하면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한편 데메트리오스 2세는 파르티아에서 억류 생활을 하면서 미트리다테스 1세의 딸인 로도구네와 결혼해 아이까지 낳았다. 그러다 안티오코스 7세와 내전을 벌이게 하려는 파르티아 왕 프라아테스 2세의 의도로 풀려났다. 데메트리오스 2세는 시리아에 도착한 뒤 안티오코스 7세가 이미 죽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국왕에 복귀하여 클레오파트라 테아와 재결합했다.

그 후 클레오파트라 테아와 데메트리오스 2세 사이에 셀레우코스 제국의 왕권을 놓고 분쟁이 벌어졌다. 그녀는 남편이 파르티아 아내 로도구네 사이에서 낳은 자식을 차기 국왕으로 정할까 봐 두려워했고, 해코지당할 걸 우려해 안티오코스 8세 안티오코스 9세를 각각 아테네와 키지쿠스로 보낸 뒤, 데메트리오스 2세를 몰아내기 위해 동맹을 찾았다. 그러던 중 이집트에서 프톨레마이오스 8세 클레오파트라 2세간의 내전이 발발했다. 클레오파트라 2세는 자기 딸인 클레오파트라 테아가 아니라 사위인 데메트리오스 2세에게 자신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데메트리오스 2세가 이를 승낙하자, 클레오파트라 테아와 자식들은 데메트리오스 2세가 통제하지 못하는 프톨레마이스로 도피했다.

데메트리오스 2세는 이집트로 진격했지만, 프톨레마이오스 8세의 군대가 굳건히 버티는 바람에 더 치고 들어가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알렉산드로스 2세 자비나스가 프톨레마이오스 8세의 후원을 받아 국내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데메트리오스 2세는 알렉산드로스 2세를 상대로 수년간 내전을 치렀지만 점점 수세에 몰렸고, 기원전 126년 다마스쿠스 전투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다. 그는 프톨레마이스로 달아났지만, 클레오파트라 테아는 남편을 절대로 들여보내지 않겠다며 성문을 닫아걸었다. 아내에게 버림받은 데메트리오스 2세는 배를 타고 티레로 도주했다가, 도중에 붙들려 처형되었다.

이후 데메트리오스 2세의 장남 셀레우코스 5세가 프톨레마이스에서 어머니 클레오파트라 테아와 공동으로 새 국왕에 즉위했고, 알렉산드로스 2세는 프톨레마이스 일대를 제외한 제국 전역에서 통치를 행사했다. 그러나 셀레우코스 5세가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간 어머니를 비난하자,[6] 클레오파트라 테아는 셀레우코스 5세를 암살했다. 아들을 죽인 직후, 10세 남짓한 또 다른 아들 안티오코스 8세를 공동 왕으로 내세워 왕위를 지켰다.

기원전 124년 프톨레마이오스 8세의 딸 트뤼파이나와 안티오코스 8세의 결혼을 성사시켰고, 프톨레마이오스 8세의 지원을 받은 덕분에 기원전 123년 알렉산드로스 2세를 물리치고 셀레우코스 제국 전역을 장악했다.

여왕으로 군림하면서 권력욕이 대단해 아들 안티오코스 8세를 허수아비로 남겨두려고 했다. 이런 클레오파트라 테아의 태도는 자연스레 안티오코스 8세가 반발하는 이유가 됐다. 그는 아버지 데메트리오스 2세, 형 셀레우코스 5세가 비정하고 냉혹한 어머니의 손에 살해된 것을 보면서, 고개를 숙였지만 머리가 비상하고 눈치가 빨라 조심히 행동하면서 어머니의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자 클레오파트라 테아는 이런 아들을 더 의심했고, 이는 모자 관계를 급속도로 악화시켰다.

기원전 121년, 테아는 아들 안티오코스 8세가 사냥을 나간 틈을 노려 향이 좋은 포도주를 구해 독살할 준비를 마친 뒤 사냥에서 돌아온 아들에게 이를 권했다. 이때 그녀는 평소와 다르게 따뜻하게 행동하면서 포도주를 건넸는데, 이런 태도는 신중하고 독물학에 능통한 아들 안티오코스 8세가 눈치를 채게 만든 실수가 되었다. 이때 아들 안티오코스 8세는 평소와 달리 어머니가 따뜻하게 권유하자, 좋은 향이 나는 포도주를 어머니에게 먼저 마셔볼 것을 권유했다. 그러자 테아는 이를 아들에게 마시라고 강요했고, 이에 맞서 안티오코스 8세는 부하를 시켜 어머니를 포박한 뒤 포도주를 강제로 먹이라고 명령했다. 이때 그녀는 맹렬히 저항했는데, 안티오코스 8세의 예상대로 포도주를 들이킨 테아는 피를 토하고 급사했다.


[1]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 소생. [2] 이상 3명은 데메트리오스 2세 소생. [3] 안티오코스 7세 소생. 안티오코스 9세만이 둘의 사이의 유일한 자식인지는 불확실한데, 둘 사이에는 각각 안티오코스와 셀레우코스라는 이름의 두 아들과 라오디케라는 이름의 하나 혹은 두 딸이 더 있었다는 설이 있다. [4] 프톨레마이오스 8세 소생. [5] 안티오코스 9세만이 둘 사이의 유일한 자식인지는 불확실한데, 둘 사이에는 각각 안티오코스와 셀레우코스라는 이름의 두 아들과 라오디케라는 이름의 하나 혹은 두 딸이 더 있었다는 설이 있다. [6]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아들 셀레우코스 5세가 왕권 강화를 추진하자, 이를 의심해 아들을 죽이라며 지시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