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제18왕조 제4대 파라오
투트모세 2세 Thutmose I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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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나크 신전에 새겨진 투트모세 2세의 부조 | ||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이름 | 투트모세 2세(Thutmose II) | |
출생 | 미상 | |
사망 | 미상 | |
재위 기간 | 이집트 파라오 | |
기원전 1493년/1513년 ~ 기원전 1479년/1499년 (약 13년) | ||
전임자 | 투트모세 1세 | |
후임자 | 하트셉수트 | |
부모 |
아버지 :
투트모세 1세 어머니 : 무트노프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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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 하트셉수트, 이제트 | |
자녀 | 투트모세 3세 | |
무덤 | 왕가의 계곡 KV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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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집트 신왕국 제18왕조의 제4대 파라오.약13년 정도 이집트를 다스렸다. 아내인 하트셉수트 여왕이 투트모세 2세의 뒤에서 대신 국가를 통치했다는 의혹이 있고, 후계자이자 아들인 투트모세 3세가 워낙 많은 업적을 남겼기에 존재감이 많지 않다.
2. 통치
투트모세 2세는 투트모세 1세와 후실인 무트노프렛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인 무트노프렛이 왕의 정실이 아니라 후궁이었기에 투트모세 2세의 왕권은 약한 편에 속했고, 이때문에 투트모세 1세와 정실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자신의 이복누이인 하트셉수트와 결혼해 입지를 다지려고 했다. 투트모세 2세가 즉위하면서 왕권 교체기로 인해 이집트 내부가 약간 뒤숭숭해지자 곧바로 남쪽의 누비아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반란군에 맞서 이기지 못한 이집트 군대는 선왕인 투트모세 1세가 지어놓은 요새로 후퇴했고, 누비아 반란군은 요새에 대해 공성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전령을 통해 이를 전해 들은 투트모세 2세는 바로 군대를 파견해 누비아인들을 진압하도록 했다.[1] 누비아인들을 굴복시킨 이후에는 시나이 반도의 유목 베두인족들을 공격했다. 이집트 군대는 시리아까지 진출해 공적을 올린 후 돌아왔다고 한다.투트모세 2세의 미라는 데이르 엘 바하리에서 1881년에 발견되었다. 제18왕조 및 제19왕조의 파라오들과 함께 발견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아흐모세 1세, 아멘호테프 1세, 투트모세 1세, 투트모세 3세, 람세스 1세, 세티 1세, 람세스 2세, 람세스 9세 등의 파라오가 함께 안치되어 있었다. 가스통 마스페로가 1886년 7월 1일에 투트모세 2세 미라의 붕대를 풀었고, 부검 과정에서 투트모세 2세가 아버지인 투트모세 1세와 상당히 닮았음을 밝혀냈다. 투트모세 2세의 미라는 도굴군들에 의해 심각하게 파손된 상태였는데, 왼쪽 팔이 어깨에서 완전히 빠져 탈골된 상태였고 오른쪽 팔은 팔꿈치 아래로 아예 잘려버렸다. 흉곽과 갈비뼈 역시 도굴꾼들이 도끼 등으로 내려쳐서 아예 내려앉았으며, 오른쪽 다리 역시 심각하게 파손되었다. 게다가 투트모세 2세가 생전에 입은 수많은 상처 및 수축된 근육[2]으로 미루어 봤을 때, 31년의 짧은 생을 살다간 파라오가 생전에도 딱히 건강한 삶을 살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