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3 08:53:19

크리스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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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 보안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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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탕
영국령 홍콩 보안장관(1973-19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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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특별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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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대 홍콩 보안장관
PDSM
Chris Tang Ping-ke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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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이름 Chris Tang Ping-keung
중국 이름 鄧炳强 (등병강)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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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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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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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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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5년 7월 4일 ([age(1965-07-04)]세)

[[영국령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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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령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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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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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학력 Chung Chi College (졸업)
홍콩중문대학 ( 사회복지학 / B.A)
현직 홍콩 보안장관(2021년 6월 25일 – 현재)
복무 홍콩 경무처
복무 기간 1987년 ~ 2021년
최종 계급 처장(Commissioner of Police)

1. 개요2. 상세3.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4. 홍콩 경무처장5. 미국의 제재6. 보안장관 임명7. 2022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 입후보 실패8. 여담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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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홍콩의 6대 보안장관이자 전직 경찰공무원.

2. 상세

파일:입직당시 크리스탈 경찰관.jpg

위 사진은 경찰간부후보생 시절 경찰훈련학교에서 찍은 사진이다.

1987년 홍콩중문대학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6월 16일 홍콩 경찰에 입직했다. [1]

홍콩중문대학이라는 홍콩 탑2 명문대학을 졸업했는데도 굳이 경찰간부가 된 이유는 그가 전공이 별 볼일 없었기 때문이었다. 캐리 람 전 행정장관도 똑같이 홍콩대학을 졸업했으나 학과가 별 볼일 없어서 공직에 입직했다.[2] 애초에 홍콩의 경찰 간부후보생 등은 명문대학이나 해외 대학 출신도 전공이 별 볼일 없으면 많이 입직한다. 홍콩은 학교 전체 서열보단 학과별로 서열을 매기고 한국과 달리 전공을 취업시장에서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가 홍콩 경찰에 입직한 때는 1984년 중영공동선언의 발효로 인해 이미 홍콩 정부의 권력이 친중파로 넘어간 시점이었다.[3] 그래서 영국령 홍콩 왕립경찰 시절부터 친중 성향을 마음껏 드러냈는데 스티븐 로처럼 강경 친중 성향을 마음껏 드러내면서 1997년 홍콩 반환이 이뤄지자 급속도로 승진하기 시작했다.

경찰 입직 당시 간부과정을 거쳐서[4] 견습독찰 계급부터 시작했다. 강성 친중 성향과 동시에 입직 초반부에 PTU대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7년 뒤 진급하였을 때는 삼합회 소탕 작전에도 투입되어서 활동하였다.

스티븐 로는 홍콩의 FBI라고 할 수 있는 특수수사국인 CID(형사보안국)을 거쳤지만[5] 그는 준군사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경찰기동대(PTU), 그것도 대한민국 경찰의 과거 백골단과 같은 사복 체포조인 랩터부대 지휘관 출신이며 대테러부대인 SDU( 경찰특공대)도 거쳤다. 특히 중국의 지원 하에 영국 경찰 특수부대, 미국 경찰의 각 SWAT 팀들, 심지어 이스라엘의 비밀경찰인 샤바크 소속 대테러부대까지 여러 해외 경험을 쌓으면서 전술훈련을 받아 오기도 했다.

2003년 홍콩 시민들이 홍콩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를 할 때부터 강경하게 시위대를 진압하고 최루탄, 고무탄, 실탄 발포를 서슴지 않았다.

2009년 반국가분열법 홍콩조항 개정 사건 당시 홍콩에서도 또다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는데 이 때 시위 강경 진압의 선봉에 서서 시위대를 폭행하고 강압적으로 체포하는 등 악명을 쌓았다. 당시 중국의 실권자 장쩌민은 이런 모습을 보고 매우 그를 마음에 들어해서 그를 랩터부대 차장으로 지명했다.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에서도 당연히 랩터부대의 선봉에 서서 홍콩 시위대를 강경 진압했는데 이 공적으로 시진핑 눈에도 들어 2015년 스티븐 로가 홍콩 경무처장에 취임하자 스티븐 로의 "추천" 형식으로 홍콩 경무처 작전부처장 겸 PTU대 사령관이 되었다. 참고로 PTU대 행동대장은 2005년 WTO 반대 시위 때부터 모습을 드러냈던 영국인 백인 경찰간부인 당시 홍콩섬 사령관 데이비드 조던이었고 이 인간은 총사령관이다. 이 인간이 작전을 짜면 백인 부사령관인 데이비드 조던이 이를 하달받아 이행하는 식이다.

부사령관인 데이비드 조던도 영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친중 성향이 강한 인물로 시위 자체를 궁지에 몰린 자국(영국) 정보부가 사주한 일이라는 황당한 음모론을 믿고 시위대에 적대적이다.[6]

한국 경찰청에 해당하는 홍콩 경무처는 영국 런던광역경찰청의 영향으로 행정부처장과 작전부처장이 나뉘며 이 중 실권은 대테러작전 등 굵직한 임무를 수행하는 작전부처장이 갖고 있는데 작전부처장에 취임한 것 자체가 이 인간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신뢰를 보여준 셈이다. 행정부처장은 작전부처장에 비하면 한직이기 때문이다.[7]

3.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연히 2019년 홍콩 범죄인 인도법안에 강경하게 찬성했으며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이 터지자 54세라는 나이를 비웃듯 시위 현장에 출동해 직접 기동복에 완전무장 상태로 나가 시위대를 때려잡는 노익장을 과시[8]함은 물론이고 PTU 예하의 대테러부대 SDU도 진두지휘해 폭력시위가 벌어진 홍콩이공대학 점거 시위 당시 근처 고층건물 옥상 등에 저격수를 배치해 살상용 무기를 든 시위대를 사살하도록 지시했으며 과격 시위대가 토끼몰이로 몰려버린 홍콩이공대학은 고립시켜 시위대의 투항을 받아내 어렵지 않게 진압했고 무리해서 공권력을 투입하기보단 말려죽이는 고사전술을 써서 비난을 최대한 피해가는 지능 플레이를 보였다.

결국 그가 취임하자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용무파 대부분은 겁 먹고 잠적해 버렸고 거짓말처럼 폭력시위가 사라졌다. 용무파 대부분에 대한 전원 검거 및 수배령도 내려져 신원이 파악된 자들은 전원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

스티븐 로 경무처장은 50대 후반이 되어서 2010년 이후 주로 내근직으로 근무한 반면 그는 내근직 따위 하지 않았고 무조건 시위대를 강경하게 때려잡기만 했다.

이런 강경한 모습 때문에 "강철 주먹(Steel Fist)"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강철 주먹이란 표현 자체는 원래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 때 나온 말이지만 그 별명이 전 홍콩, 아니 전 세계에 그 악명을 떨치게 된 것은 2019년이다.

4. 홍콩 경무처장

파일:크리스 탕 경무처장 임명 인터뷰.jpg

임명 직후 SCMP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이 시위대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중요한 발언들을 했다.

2019년 11월 스티븐 로 경무처장이 정년(58세) 퇴임하기로 결정했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시진핑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은 스티븐 로의 연임을 권유했으나 스티븐 로는 퇴임하겠다는 의사를 강력히 표시하면서 그를 후임으로 추천했다. 그가 "강철 주먹"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스티븐 로 시진핑한테 보고했는지 시진핑은 바로 그를 후임 경무처장으로 지명했다. 스티븐 로는 11월 15일 퇴임하고 그는 11월 16일부터 "권한대행" 형식으로 임기를 시작했으며 2019년 11월 18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그를 홍콩 경무처장에 앉히는 임명동의안이 통과되어 11월 19일 정식으로 홍콩 경무처장에 취임했다.

재미있는 건 르라 홍콩 경무처장으로 지명되자 강경파 반중 대학인 홍콩중문대 출신인 걸 본인도 자각했는지 자기 모교를 점거한 시위대에게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냈다는 것이다. 11월 11일부터 11월 14일까지 진행된 중문대 점거 투쟁은 그의 지명이 공식 발표된 11월 14일 밤에 홍콩 경찰이 먼저 물러나서[9] 홍콩중문대 측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냈고 이에 중문대에 있던 시위대들이 11월 15일 논의 끝에 알아서 시위 상태를 해제하였다. 그는 중문대 시위에 대해서는 자진해서 시위를 풀었다는 명분으로 몇몇 주동자들만 체포하고 나머지는 신원확인만 하고 집에 보내줬다.

반면 홍콩이공대학 점거 시위( 11월 17일 ~ 11월 20일)는 강경하게 진압했다.

11월 18일 그가 현장에 출동해 직접 나와서 이공대 진입을 시도했지만 시위대가 투석과 화염병에 심지어 까지 쏘고 형사가 발사된 화살에 다리를 맞는 등 격렬히 저항하는 바람에 결국 실패했다. 그러자 경찰은 방법을 바꾸어 이공대를 아예 봉쇄했다! 수도도 전기도 가스도 모두 끊어 버리고 이공대로 가는 모든 도로는 진입을 막았으며 근처 홍함역도 폐쇄해 시위대가 달아날 구멍 자체를 막아 버렸다. 그 와중에 수십여 명의 시위대는 육교 밑으로 줄을 내리고 그걸 타고 내려가 미리 대기타던 오토바이에 올라타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이후 무려 400명이 넘는 시위대를 체포했다. 100명 정도 남은 결사대는 당초 유서까지 써 가면서 버텼으나 음식도 물도 없고 심지어 구급차도 들어가지 못하게 봉쇄되어[10] 대부분 투항했고 일부는 하수도 등으로 탈출을 시도하다가 실패해 전원 검거되었으며 결국 이공대 점거시위도 진압되었다. 교내에 남았던 12명도 앞날에 기약이 없었고 몇 달 간 홍콩 시위 현장을 누비던 용무파는 패배감에 전의를 상실해 급속히 위축됐으며 11월 23일 이후 폭력시위는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민주화 운동 자체는 몰라도 사실상 과격 폭력시위는 끝장났단 평.

11월 19일 홍콩 경무처장 취임식 직전에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와 인터뷰를 가졌는데 그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다. 기사

11월 20일 200여명의 시위대를 폭동법을 적용해서 모조리 기소했다. 기사

12월 7일 천안문 국기 계양식에 참석했다. 선거에 관계없이 중국 정부로서는 신용한다는 의사표현을 한 셈이다.

4.1.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 참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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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4일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 때 치안 유지를 명분으로 투표소 앞에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PTU 소속 전경들을 깔아놓는 일까지 했다.

홍콩 유권자들은 경찰의 이런 행동에 신물을 느꼈고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에서 민주파 본토파에 몰표를 던져주며 친중파를 완벽하게 심판했다. 공민당 앨빈 양 대표는 선거 승리가 확정되자 홍콩이공대학에 잔류한 30여 명의 시위대를 구출하러 가겠다고 선포했다. 시위대는 11월 25일 빅토리아 공원( 홍콩 섬)과 홍콩이공대학 앞에 있는 홍함역 광장( 구룡반도)에서 선거 승리를 축하하는 대규모 시위를 예고했다.

11월 25일 선거 참패에 대한 기자들의 입장 표명 요구를 회피했다. 그래도 과격 시위그룹인 일명 용무파를 완전히 제압해 무력화, 와해시킨 공로가 있어서 홍콩 정부의 신임을 받았기 때문에 당장 경무처장 자리에서 해임될 일은 없겠지만 사실상 레임덕에 봉착했다는 것이 주 의견이다. 이와 별개로 경찰 독립조사위원회의 조사 등 원하지 않는 껄끄러운 상황을 마주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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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결과를 확인한 구룡반도 주민들은 홍콩이공대학 앞( 홍함역)으로 뛰쳐나왔다. 무려 1만여 명이나 되는 야우침몽구 주민들이 이공대학 앞 홍함역 광장을 점거하고 홍콩 경찰한테 홍콩이공대학 봉쇄를 풀라고 요구했지만 경찰은 이걸 전혀 들어줄 턱이 없었고 그래서 학생들을 데리고 나오려고 진입을 시도하던 일부 시민들이 경찰과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충돌이 격화되자 공민당 앨빈 양 대표, 공공단업연맹 폴 치머만 대표, 민주당 우치와이 대표를 위시로 한 민주파 정치인 협상단들이 그를 소환했다. 선거 이전이었으면 절대로 안 오고 뻗댔을 그는 선거 결과에 충격을 받아 소환에 응해 바로 이공대 앞으로 와서 정치인들과 협상했다. 민주파 정치인들은 더 이상의 폭력시위나 무력진압 등 비극은 있으면 안 된다는 입장을 가졌으며 더구나 자신들이 다수파가 된 이상 폭력시위를 말릴 책임도 민주파에 있었기 때문이다.

협상 결과 민주파 국회의원들의 홍콩이공대 입장 소방차, 구급차 등 소방구조대의 이공대 출입이 허용되었다. 협상 타결 후 근처 이스트 침사추이 구급서와 침사추이 소방서에서 출동한 구급차가 학교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국회의원들을 대동한 소방관들이 구조를 위해 학교로 들어간 후 1만여 명의 시위대는 이공대 주변에서 경찰에 항의하는 피켓을 들거나 주변 건물에 올라가 이공대 시위대를 응원하는 종이비행기를 접어서 날렸다. 기사1, 기사2, 기사3 시위에 참가했던 시민들도 이전과 달리 자신들의 편인 민주파가 다수가 된 지라 굳이 폭력시위로 울분을 풀 이유가 없었고 그래서 예전 같았으면 화염병을 던지고 지하철역 등을 파괴하며 길을 막았을 시간대에 그렇게 하지 않고 질서 정연하게 피켓을 들거나 종이비행기 날리기 등 평화시위로 일관하며 진압경찰을 부끄럽게 만드는 방법을 택했다. 경찰도 진압 명분이 없자 이를 보고만 있었다.

정황상 이공대학에 갇힌 나머지 학생들은 이미 용무파고 뭐고 할 것 없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크게 약해지고 일부는 PTSD를 보이기까지 하는 등 상태가 심각랬다. 따라서 마지막 학생들이 전원 소방관들과 민주파 국회의원들의 도움을 받아 학교에서 나온다면 이공대학 점거사 태는 국제사회의 우려와 달리 평화적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런데 이후 구급대원들과 함께 교수들이 안에 들어가 보니까 학생들은 없고 18세의 일반 시위자 여성 1명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2019년 11월 28일 시점에서 이공대 안에 잔류인원은 없어졌다.

5. 미국의 제재

2020년 8월 7일(미국시간) 미국 정부에서 그를 포함한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스티븐 로 전현직 홍콩 경찰청장, 테레사 쳉 법무장관, 존 리 보안장관 등 친중파 홍콩 요인들에 대한 제재 조치를 발효하였다.

여기서 제재 대상에 오른 인물들은 영구적으로 미국 입국이 금지되고 이들이 미국에 보유하거나 미국 은행에 맡긴 자산들에 대한 동결 조치가 들어간다. 기사 물론 기사와 달리 이들이 미국 은행에 맡긴 자산도 없고 미국에 갈 일이 없어서 실효성 없는 분풀이성 무의미한 제재라는 지적도 많았다. 차라리 그럴 거면 본국인 중국 인사들에 대한 제재가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중국 관영 언론들은 미국의 제재 조치를 비난했다. 기사

6. 보안장관 임명

2021년 6월 25일 홍콩 행정장관 캐리 람은 홍콩 행정부의 인사이동을 발표하면서 보안장관 존 리를 매튜 청의 후임으로 정무장관에, 그를 존 리의 후임으로 보안장관에, 레이먼드 시우[11]를 그의 후임으로 경무처장에 임명했다.

이들 중에서 존 리는 나중에 홍콩 행정장관이 되었으며 전임 캐리 람의 암흑시대 수습을 위해 홍콩의 입국제한을 해제하는 등 경제 살리기에 나섰다. 물론 민주파는 숨통을 끊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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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경무처장 레이먼드 시우, 정무장관 존 리(1957), 행정장관 캐리 람, 보안장관 크리스 탕.

홍콩 행정부의 2인자로 승진한 존 리나 새로 보안장관에 오른 그가 모두 경찰 출신이다 보니 안 그래도 홍콩 국가보안법으로 본격적인 시동이 걸린 상태였던 홍콩의 경찰국가화는 더더욱 가속화되리라는 예측이 팽배했지만 결국 그는 역량부족을 이유로 입후보에 실패했다.[12]

7. 2022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 입후보 실패

2022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 입후보하려고 했으나 중국공산당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회에 의해 입후보가 거부되었다.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론으로 보인다고 했는데 시점이 너무 오래된지라 그것보다는 캐리 람의 측근이라서 막혔다고 보는 게 더 나을 것이다.

8. 여담

  • 전직 배우다. 홍콩중문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재학하던 대학생 시절 친구들과 함께 2편의 단편영화에 출연료를 받고 연기한 적이 있다. 때문에 위키백과에 기재된 그의 커리어패스에는 배우로 활동했다는 경력이 공식적으로 기재되어 있다.
    참고로 출연한 영화들은 코미디 영화였는데 영화가 나온 해인 1984년에 가장 역겨운 영화 13위에 랭크됐다고 할 정도로 저질이었으며 어찌 보면 흑역사다.
  • 외모가 꽤나 동안이라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
사실 홍콩은 평균 수명이 진짜 100세 시대를 맞아 중년 기준도 1990년대부터 50세 이상이며 노인 기준도 70세 이상이었던 곳이라 사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당장 홍콩 경찰관들은 40대는 젊은 경찰관으로서 현장직에서 구르며 진급 빠른 비간부면 순찰대장이나 형사반장 혹은 국장 정도를 한다.
참고로 홍콩에서 나이는 타 선진국들처럼 2030이 아닌 1020을 청년으로 분류하며 3040은 장년으로 같이 묶고 재무설계 등을 상담할 때도 30대와 40대는 같이 묶지만[13] 20대는 내용이 크게 다른 학자금 대출 같은 것들이 나오며 노인 관련 보험은 70대 이상은 되어야 나온다. 그런 만큼 아직 한참 일할 나이인 그가 늙어 보이지 않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14] 이는 전임 스티븐 로도 마찬가지다.[15]
  • 덩치가 남방 중국인인 홍콩인치고는 꽤 큰 편으로 근육돼지라서 살집이 많다. 사실 이 사람 인상 자체가 전형적인 군인 스타일이다. 육중한 거구를 앞세워 현장에서 날아다니며 강철주먹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러나 전임자 스티븐 로나 옛 부하 데이비드 조던 등은 인상이 부드러운 편이고 체격도 마른 체구여서 비교된다. 후임 레이먼드 시우 처장도 인상이 부드럽고 덩치가 작은 편이다. 어찌보면 홍콩인보단 중국 본토인과 더 가까운 체격이다. 거기에 머리도 늘 옆을 밀어 버리는 전투적인 헤어스타일을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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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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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구의회 선거: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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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콩의 대학교 중에서는 홍콩이공대학 친중 성향이 가장 강하고 홍콩중문대학 반중 성향이 제일 강하다. [2] 영국의 영향을 받은 홍콩은 대학 간판이 아닌 학과를 중요하게 여기며 법학, 경제/경영학 등 쓸모있는 문과 학과들이 각광받는다. 당장 홍콩대학과 홍콩이공대학, 홍콩중문대학, 홍콩과기대학 이 넷도 간판학과가 다 다르며 듣보잡처럼 보이는 시티대학도 법학과는 꽤 인정받는다. [3] 당시 홍콩 총독 데이비드 윌슨이 친중파이기도 했다. [4] 홍콩 경찰은 애초에 간부후보생은 한국군 학사장교처럼 대학 졸업자만 할 수 있다. 고졸은 짤없이 순경부터 전원 시작한다. [5] 현재는 국가보안처가 신설되어 삼합회 수사나 방첩 등 특수수사 기능은 대거 그 쪽으로 넘어갔다. [6] 사실 1985년 이후 홍콩 반환이 확정되자 백인이고 중국계이고 간에 경찰에선 친중파들이 득세했고 반중 성향 경찰들은 대거 은퇴를 택했거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아 사실상 축출되었다. [7] 수사 부분에 관여를 못 할 뿐 경찰 인사평가가 행정부처장 관할이라 나름 약간의 파워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문제는 이곳이 염정공서의 감시로 공직자들의 부정부패가 불가능한 홍콩이라는 것이며 결국 한국 경찰 등과 달리 행정부처장은 실권이 없다고 봐도 된다. [8] 홍콩 경찰기동대 PTU대와 PTU 소속인 SDU, 랩터부대는 사실상 정년이 있는데 46세다. 이미 50대 들어서 기동경찰 현장직으로 근무한 크리스 탕이 특이한 놈이다. [9] 경찰이 자기들이 철수한다는 말을 캠퍼스에 대고 확성기로 엄청 시끄럽게 방송했다. 낚시일 거라고 생각한 시위대가 움직이지 않자 경찰 측은 동네 경찰관들은 빼고 경찰기동대는 진압장비를 모아서 버스에 싣고 그대로 철수해 버렸다. 낚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임과 동시에 진압 경찰관들의 피로도가 극심해서 철수를 결정한 듯하다. [10] 경찰이 이공대를 봉쇄하면서 의료진과 기자 등을 전원 체포해 의료진의 교내 진입을 막았고 소방서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하던 구급차도 진입을 불허했다. [11] 초기부터 강경 진압을 명령한 영국인 경찰관 루퍼트 도버와 입직 동기이며 스티븐 로 처장 재임기에는 경찰본부 인사부장이었고 크리스 탕이 처장으로 승진했을 때 작전부처장으로 승진했다. 물론 친중 성향이기는 하지만 그건 경찰인 이상 당연한 거고 주특기가 범죄수사와 인사 관리인지라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에도 행정업무에 매진하고 있었다. 다른 간부들과 달리 논란이 될 법한 행동은 하지 않았으며 그냥 좀 고지식한 원리원칙주의자 소리 좀 듣는 사람이다. 때문에 현지에서는 큰 논란이 없는 레이먼드 시우가 크리스 탕의 후임으로 처장이 될 거라는 예측이 많았고, 실제로 적중했다. [12] 그가 캐리 람의 측근이라 그런 것도 있다. 중국이 캐리 람의 재선을 불허하며 측근들도 모두 출마하지 못 하게 막았다. [13] 특히 결혼자금이나 의료보험, 그리고 자녀 교육 등이 많이 나온다. [14] 홍콩 배우들만 해도 50대 및 60대 배우들이 그렇게 늙지 않았다. 당장 견자단만 해도 환갑이 넘었고 성룡은 지금 칠순이 넘은 노인임에도 그렇게 늙어보이지 않고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한다. [15] 진작 100세 평균수명을 이룬 홍콩은 여초 사회라 미혼 여성이 워낙 많아 중녀(中女)라고 30대와 40대 미혼 여성에 대한 밈까지 있다. 한국에서 2030이라고 하는 30-32세 나이대 여성도 짤없이 중녀로 불리고 실제로는 28세 이후부터 중녀 취급을 당한다. 평균 수명이 길어서 장년층 개념이 확실하고 20대와 30대를 완전히 다르게 구분한다. 실제로 30세 이후부터는 결혼, 육아, 본인 건강, 부부관계 문제, 자산 축적 등 20대가 모르는 문제를 마주치게 되어 그게 맞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