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09 20:56:48

고이케 유리코

코이케 유리코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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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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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대
야스이 세이치로
제4·5대
아즈마 류타로
제6-8대
미노베 료키치
제9-12대
스즈키 슌이치
제13대
아오시마 유키오
제14-17대
이시하라 신타로
제18대
이노세 나오키
제19대
마스조에 요이치
제20·21대
고이케 유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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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케 유리코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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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도쿄도 심볼마크_White.svg 2016년 도쿄도지사 선거 주요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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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005BA6,#FFC224> 정당 이름 비고
<colbgcolor=#808080><colcolor=#fff> 무소속 고이케 유리코 당선
무소속 토리고에 신타로
무소속 우에스기 다카시
무소속 사쿠라이 마코토
무소속 맥 아카사카
1959 1963 1967 1971 1975 1979
1983 1987 1991 1995 1999 2003
2007 2011 2012 2014201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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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도쿄도 심볼마크_White.svg 2020년 도쿄도지사 선거 주요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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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5BA6,#FFC224> 정당 이름 비고
<colcolor=#fff> 무소속 고이케 유리코 당선
무소속 우쓰노미야 겐지
れいわ 레이와 신센구미 야마모토 타로
무소속 오노 다이스케
第一 일본제일당 사쿠라이 마코토
ホリ 호리에몽 신당 타치바나 타카시
1959 1963 1967 1971 1975 1979
1983 1987 1991 1995 1999 2003
2007 2011 2012 2014 2016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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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일본신당 로고 반전.png 일본신당 대표대행 및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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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에다 사쓰키
고이케 유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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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18,#e5e5e5
초대
노다 가즈사
제2대
고이케 유리코
제3대
노다 가즈사
제4대
아라키 지하루
제5대
모리무라 다카유키

}}}}}}}}}}}}}}} ||

파일:희망의당(2017년) 로고 하얀색.svg 희망의 당(2017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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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고이케 유리코
제2대
다마키 유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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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구 (선거대책위원회)
선거대책위원장 <colbgcolor=#ffffff,#1F2023> 오니시 겐스케 <colbgcolor=#ffffff,#1F2023>
상임의결기관 (양원의원총회)
양원의원 총회장 고미야마 야스코
중앙당 지도부
대표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대행 오시마 아쓰시
당무집행기구
간사장 후루카와 모토히사 간사장 대리 시나 다케시
기시모토 슈헤이
정무조사회
정무조사회장 나가시마 아키히사 정무조사회장 대리 이데 요세이
파일:일본국 내각총리대신 심볼.svg 국회조직
국회대책위원장 이즈미 겐타 국회대책위원장 대리 이마이 마사토
참의원 의원단장 마쓰자와 시게후미
고문단
특별고문 고이케 유리코
파일:희망의당(2017년) 로고 하얀색.svg
역대 당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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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이시이 미츠지로
2대
스나다 시게마사
3대
사토 에이사쿠
4대
고노 이치로
5대
마스타니 슈지
6대
이시이 미츠지로
7대
호리 시게루
8대
아카기 무네노리
9대
후지야마 아이이치로
10대
나카무라 우메키치
11대
마에오 시게사부로
12대
후쿠나가 켄지
13대
시이나 에쓰사부로
14대
하시모토 토미사부로
15대
스즈키 젠코
16대
나카소네 야스히로
17대
스즈키 젠코
18대
나다오 히로키치
19대
마쓰노 라이조
20대
에사키 마스미
21대
나카소네 야스히로
22대
쿠라이시 타다오
23대
스즈키 젠코
24대
니카이도 스스무
25대
다나카 타츠오
26대
호소다 키치조
27대
가네마루 신
28대
미야자와 기이치
29대
아베 신타로
30대
이토 마사요시
31대
미즈노 키요시
32대
카라사와 슌지로
33대
니시오카 다케오
34대
사토 고코
35대
키베 요시아키
36대
무토 카분
37대
시오카와 마사쥬로
38대
모리 요시로
39대
후카야 다카시
40대
이케다 유키히코
41대
오자토 사다토시
42대
무라오카 카네조
43대
호리우치 미쓰오
44대
규마 후미오
45대
니와 유야
46대
니카이 도시히로
47대
사사가와 다카시
48대
다노세 류타로
49대
고이케 유리코
50대
시오노야 류
51대
호소다 히로유키
52대
노다 세이코
53대
니카이 도시히로
54대
호소다 히로유키
55대
다케시타 와타루
56대
가토 가쓰노부
57대
스즈키 슌이치
58대
사토 쓰토무
59대
후쿠다 다쓰오
60대
엔도 도시아키
61대
모리야마 히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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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e5e5e5
오키나와 및 북방대책 담당대신(2001년~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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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하시모토 류타로
2대
오미 고지
3대
호소다 히로유키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오키나와 및 북방대책 담당)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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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
모테기 도시미쓰
3·4대
고이케 유리코
}}}
5대
다카이치 사나에
6·7대
기시다 후미오
8·10대
하야시 모토오
9대
사토 쓰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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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대
하야시 모토오
11·12대
마에하라 세이지
13대
마부치 스미오
14대
에다노 유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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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가와바타 다쓰오
16대
다루토코 신지
17대
야마모토 이치타
18·19대
야마구치 슌이치
20대
시마지리 아이코
21대
쓰루호 요스케
22·23대
에사키 데쓰마
24대
후쿠이 데루
25대
미야코시 미쓰히로
26대
에토 세이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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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대
고노 다로
28·29대
니시메 고사부로
30대
오카다 나오키
31대
지미 하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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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e5e5e5
환경대신(2001년~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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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
가와구치 요리코
3대
오키 히로시
4대
스즈키 슌이치
5·6·7대
고이케 유리코
8대
와카바야시 마사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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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0대
가모시타 이치로
11·12대
사이토 데쓰오
13·14대
오자와 사키히토
15대
마츠모토 류
16대
에다 사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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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호소노 고시
18대
나가하마 히로유키
19대
이시하라 노부테루
20·21대
모치즈키 요시오
22대
마루카와 다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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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대
야마모토 고이치
24·25대
나카가와 마사하루
26대
하라다 요시아키
27·28대
고이즈미 신지로
29·30대
야마구치 쓰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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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대
니시무라 아키히로
32대
이토 신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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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e5e5e5
경찰예비대본부장관·경찰예비대 상당·해상보안청장관 (1950년~1952년)
초대
마스하라 케이키치
2대
오오하시 타케오
3대
야나기사와 요네키치
방위청장관 (1952년~2007년)
임시대리
요시다 시게루
1대
기무라 토쿠타로
2대
오무라 세이치
3대
스기하라 아라타
4대
스나다 시게마사
5대
후나다 나카
임시대리
이시바시 단잔
임시대리
기시 노부스케
6·7대
고타키 아키라
8대
츠시마 슈이치
9대
사토 키센
10대
이노 시게지로
11대
아카기 무네노리
12대
에사키 마스미
13대
니시무라 나오미
14대
후지에다 신스케
15대
시가 켄지로
16·17대
후쿠다 도쿠야스
18·19대
고이즈미 준야
20대
마츠노 라이조
21대
칸바야시야마 에이키치
22·23대
마스다 가와시치
24대
아리타 기이치
25대
나카소네 야스히로
26대
마스하라 케이키치
27대
니시무라 나오미
28대
에사키 마스미
29·30대
마스하라 케이키치
31대
야마나카 사다노리
32대
우노 소스케
33대
사카타 미치타
34대
미하라 아사오
35대
가네마루 신
36대
야마시타 칸리
37대
구보타 엔지
38대
호소다 키치조
39대
오무라 쇼지
40대
이토 소이치로
41대
타니가와 가즈오
42·44대
쿠리하라 유코
43대
가토 고이치
45·62·63대
가와라 츠토무
46대
타자와 키치로
47대
야마사키 타쿠
48대
마츠모토 주로
49대
이시카와 요조
50대
이케다 유키히코
51대
미야시타 소헤이
52대
나카야마 도시오
53대
나카니시 케이스케
54대
아이치 가즈오
임시대리
하타 쓰토무
55대
칸다 아츠시
56대
타마자와 도쿠이치로
57대
에토 세이시로
58대
우스이 히데오
59대
규마 후미오
60대
누카가 후쿠시로
61대
노로타 호세이
45·62·63대
가와라 츠토무
64대
토라시마 가즈오
65대
사이토 도시쓰구
66대
나카타니 겐
67·68대
이시바 시게루
69·70대
오노 요시노리
71대
누카가 후쿠시로
72대
규마 후미오
방위대신 (2007년~)
초대
규마 후미오
2대
고이케 유리코
3대
고무라 마사히코
4대
이시바 시게루
5대
하야시 요시마사
6·24대
하마다 야스카즈
7·8대
기타자와 도시미
9대
이치카와 야스오
10대
다나카 나오키
11대
모리모토 사토시
12·17·18대
오노데라 이쓰노리
13대
에토 아키노리
14대
나카타니 겐
15대
이나다 도모미
16대
기시다 후미오
12·17·18대
오노데라 이쓰노리
19대
이와야 다케시
20대
고노 다로
21-23대
기시 노부오
6·24대
하마다 야스카즈
25대
키하라 미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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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huugiin_logo.png 일본 중의원 ((구) 효고 2구))
제39대
도이 다카코
고노이케 요시타다
후유시바 데쓰조
호리 마사오
하라 겐자부로
제40대
도이 다카코
고이케 유리코
미야모토 이치조
후유시바 데쓰조
하라 겐자부로
선거제도 개편
파일:shuugiin_logo.png 일본 중의원 ( 효고 6구)
선거제도 개편 제41~42대
고이케 유리코
제43대
이치무라 고이치로

파일:shuugiin_logo.png 일본 중의원 ( 도쿄 10구)
제43대
고바야시 고키
제44대
고이케 유리코
제45대
에바타 다카코
제45대
에바타 다카코
제46~47대[1]
고이케 유리코
제47대[2]
와카사 마사루
}}} ||
일본국 제2대 방위대신
<colbgcolor=#4b0082><colcolor=#ffffff> 제20·21대 도쿄도지사
고이케 유리코
小池百合子 | Koike Yuriko
파일:코이케 유리코.jpg
출생 1952년 7월 15일 ([age(1952-07-15)]세)
효고현 아시야시 로쿠로쿠소초
거주지 도쿄도 네리마구 사쿠라다이 2초메
현직 제21대 도쿄도지사
재임기간 제5-7대 환경대신
2003년 9월 22일 ~ 2006년 9월 26일
내각부 특명담당대신[분야]
2004년 9월 27일 ~ 2006년 9월 26일
제2대 방위대신
2007년 7월 4일 ~ 2007년 8월 27일
제20·21대 도쿄도지사
2016년 8월 2일 ~ 현직
서명
파일:고이케유리코 서명.svg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도쿄도 심볼마크.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니코니코 동화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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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a3c,#ddd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4b0082><colcolor=#fff> 가족 아버지 고이케 유지로
어머니 고이케 에미코
학력 아시야시립 이와조노 소학교 ( 졸업)
코난여자중학교 (졸업)
코난여자고등학교 (졸업)
칸세이가쿠인대학 사회학부 ( 중퇴)
카이로 아메리칸 대학교[4] (동양학)
카이로 대학교 문학부 ( 사회학 / 학사)
소속 정당

지역구 구 효고 2구 → 효고 6구 도쿄 10구
의원 선수 1 (), 8 ()
의원 대수 16 ()
40, 41, 42, 43, 44, 45, 46, 47 ()
약력 닛폰 테레비 보조 아나운서
TV 도쿄 앵커
비례대표 일본 참의원
효고현 제6구 중의원
일본국 환경대신
내각부 특명담당대신[분야]
외교안보 관련 총리 직속보좌관
일본국 방위대신
도쿄도 제10구 중의원
희망의 당 초대 대표
도민퍼스트회 2대 대표
}}}}}}}}}}}}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정계 입문2.3. 도쿄도지사 1기 시절
2.3.1. 희망의 당 창당2.3.2. 2020년대
2.4. 도쿄도지사 2기 시절
3. 정치 성향4. 논란5. 소속 정당6. 선거 이력7. 여담8.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일본 정치인. 前 제2대 방위대신, 現 제20·21대 도쿄도지사.

일본 헌정사 최초의 여성 방위대신과 여성 도쿄도지사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효고현 아시야시에서 태어나 아시야시립 이와조노(芦屋市立岩園)소학교, 코난(甲南) 여자중학교를 거쳐 코난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재학 중에는 테니스, 소프트볼 스포츠에 소질이 뛰어나 고등학교 대표팀으로도 활약했다고 한다.[6] 고등학교 재학 중 고베에서 무역상을 하던 친아버지가 이시하라 신타로가 만든 '일본의 새로운 세대의 모임'의 추천을 받아 1969년 12월 제3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출마했다. 구 효고 2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결국 낙선했다. 이 사건은 고이케의 진로와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외가 쪽이 오가와 염전 지주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많이 유복했다.[7]

코난여자고등학교 졸업 후 간세이가쿠인대학 사회학부에 입학했지만, 아버지의 회사의 사정[8]으로 가족이 도쿄 롯폰기로 이사를 갔다. 마침 그 당시 국제연합의 공식 언어로 아랍어가 추가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신문 기사를 계기로, 고이케는 아랍어 통역에 관심을 두었다. 그리하여 1971년 9월에 대학을 갑작스레 중퇴하고 아버지가 무역 중인 이집트에 유학을 떠났다. 친척의 자금 지원으로 부모도 카이로 시내에서 일식 레스토랑을 경영했다.[9] 대학 졸업 후 아랍어 통역으로 활동했고, 특히 PLO 의장 아라파트 카다피의 회견에서 코디네이터 겸 인터뷰를 맡는 등 여러 중요한 경력을 쌓았다.

이러한 경력 덕에 1979년부터 85년까지 닛폰 테레비「타케무라 겐이치의 시사 대담」이라는 프로에 출연하여 보조 앵커를 맡았고 여러 TV 메인 보도 프로그램에 안착하는 등 성공가도를 달렸다.[10] 원체 일본 방송계에서도 여성 캐스터로는 선구자적인 존재였다고 한다. 그 이후, 1988년 4월 4일부터 1992년 6월 26일까지 TV 도쿄에서 월드 비즈니스 새틀라이트 메인 앵커로 활약했다.

2.2. 정계 입문

이를 바탕으로 1992년, 일본신당 소속으로 참원선에 출마, 당선되어 정계에 진출했다. 이듬해인 1993년 제40회 중원선 출마를 위해 참의원 의원을 사퇴한 하고, 고향인 효고 2구에서 당선되었다. 처음 중의원 의원에 당선된 후 일본신당, 신진당, 자유당, 보수당 등으로 당적을 여러차례 바꾸다가, 2002년 자민당으로 옮겼다.

2003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에서 환경대신으로 입각했고, 2004~2006년에는 오키나와-북방영토(남쿠릴열도) 담당 특명대신을 겸직했다. 2005년 제44회 중원선에서 자객 공천으로 도쿄 10구에 출마해서 당선되었다. 이듬해 제1차 아베 신조 내각에서는 외교안보 관련 총리 직속보좌관으로 재직했다. 이러한 경력으로 얻은 별명이 '일본의 콘돌리자 라이스'이다.

파일:external/www.mod.go.jp/new_ph_02.jpg
파일:external/www.mod.go.jp/new_ph_01.jpg
2007년 7월, 방위대신 임명식 당시의 모습(위)과 자위대 의장대를 사열하는 모습(아래)[11]

2007년 7월 초, 방위대신으로 임명되었다. 방위성이 내각 산하의 '방위청'에서 독자 부처인 '방위성'으로 승격된 이후 제2대 방위대신이며, 여성으로는 일본 최초였다. 그러나 방위성에 대한 외부 인사의 영입 문제가 정치 논란으로 비화되었고 자민당 제21회 참원선에서 패배하면서 8월 말 개각으로 교체되었다.

2012년 자민당 총재선에서 이시바 시게루를 지지했다. 그러나 아베 신조가 당선되면서 자민당 내에서 비주류가 되었고, 제2차 아베 신조 내각에서도 입각하지 못했다.

2.3. 도쿄도지사 1기 시절

파일:external/www.japantimes.co.jp/n-electionresults-e-20160801-870x593.jpg
첫 도쿄도지사 당선 후 환호하는 고이케 진영
아베 신조 총리를 지지하지 않은 탓인지 자민당 추천을 받아 2016년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려고 했으나, 마스다 히로야를 추천하며, 공천 배제를 당했다.

이에 고이케는 불복을 선언하며 독자 출마 했다. 개표 결과 넉넉한 격차로 도쿄도지사에 당선되었다. 동시에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도쿄도지사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고이케는 도쿄도지사로서 4년 뒤에 열릴 2020년 도쿄 올림픽의 원활한 준비, 개최를 책임져야 하는 과제가 놓여져있긴 하지만 원활하게 개최하면 향후 총리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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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리우 올림픽 폐회식에 참석하여 올림픽기를 전달받은 고이케 지사

8월 22일, 2016 리우 올림픽 폐회식에 참석하여, 차기 개최 도시의 시장 자격으로 올림픽기를 전달받기도 했다.[12]

고이케 지사는 쓰키지 시장을 2016년 11월 7일에 도요스 시장으로 옮기는 동시에 해체하기로 했는데, 쓰키지 시장 해체 날짜를 연기하며 도요스 시장 개장도 2017년 2월로 연기되는 것을 발표했다. # 여론조사에서도 쓰키지 시장 이전 연기 결정에 공감대가 나오면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답변이 86.3%가 나왔다. 그러나 이전 예정지에서 기준치의 79배를 넘는 유해물질이 검출돼 이전이 연기될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

그리고, 전임 도지사 마스조에 요이치 이상으로 강력한 금연 정책을 밀어붙일 계획을 밝혔다. 대놓고 정책 이름을 도쿄 도민들의 공기질을 깨끗하게 하는 정책이라고 붙였으며, 금연조례 제정, 공공장소 전면금연 정책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는 2020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는 차원과 일본 정부의 담배 방치정책에 대한 불만이 결합한 것이다. 2020 도쿄 올림픽 예산 검증에 대해서 4배 이상 초과하였는데, 이는 도쿄도 내 3개 경기장을 도쿄도 밖에 있는 시설로 변경하는 등의 당초 계획을 대폭 바꾼 수정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

또한, 도쿄도 내와 정부 간의 소통이 부재가 커짐에 따라 도청관리본부를 설립하기로 했다. # 도쿄도의회에서 도지사 급여 50% 삭감에 승인하였다. # ## 이례적으로 TV 생중계를 해주는 동시에 일본 공산당마저 고이케 도지사의 행정능력을 인정하였다. #

2016년 10월 30일, 정치학원인 희망의 주쿠를 열었다. # 2017년 도쿄 도의회 선거에서 희망의 주쿠 출신들을 중심으로 후보를 내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2017년 1월 23일, 신당 도민퍼스트회를 창당했다.

2017년 도쿄 도의회 선거에서 도정 여당 도민퍼스트회 자민당을 꺾고 선거 전 5석에서 49석으로 무려 10배에 달하는 의석을 확보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선거 직후 고이케 지사는 쓰키지 시장 이전 문제에서 이전지인 도요스 시장의 지하수 및 토양오염 무해화 정책을 포기하고 빠른 이전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 그러나 선거 전까지 무해화 정책을 위해 사용되었던 막대한 예산이 공중분해가 된 상황이라 도쿄도민의 비판이 터져나왔다.

2.3.1. 희망의 당 창당

고이케 지사가 창당한 도민퍼스트회 2017년 도쿄 도의회 선거에 압승하면서 차기 총리 후보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도민퍼스트회는 지역정당이고, 중앙 정계에 고이케의 정치 세력은 거의 없다시피했다. 모리토모 학교 비리 사건과 도쿄 도의회 선거 참패로 궁지에 몰린 자민당은 북풍 몰이로 지지율을 끌어 올리는데 어느 정도 성공하자 9월 28일, 아베 총리는 중의원 해산을 선언했고, 10월 22일 제48회 중원선이 예정되어 있었다.

9월 25일, 고이케 지사는 중앙 정계 진출을 위해 희망의 당을 창당했다.

창당 후 발표된 마이니치신문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당 지지율이 자민당 29%, 희망의 당 18%로 발표되었다. 기사

그러나 고이케 지사가 야권을 통합하기는 커녕 호헌파 배제를 밝히며 오히려 야권을 분열시켰고, 결국 선거 결과 희망의 당은 호헌파를 중심으로 창당된 입헌민주당에 밀린 50석을 획득하면서 제2야당이 되었다. 고이케 지사는 이번 선거로 정치 인생에 타격을 입게 되었다.

2.3.2. 2020년대

2020년, 코로나19 2020 도쿄 올림픽 중지라는 소문이 오르내리는 가운데 2일(현지시간) 도쿄도지사 고이케 유리코가 자국민에게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을 당부하며 계획대로 올림픽 개최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고이케 지사는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배구와 휠체어 농구대회를 개최할 1만 5,000석 규모의 체육관 개관식에 참석해 “이것은 내가 매우 걱정하는 것 중 하나”라며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고이케 지사는 "현재 지역 및 국가 당국이 힘을 모아 도쿄도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바이러스 확산 방지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며 “손과 손가락을 제대로 씻고, 마스크를 착용해 몸을 보호하기 바란다. 작은 단계부터 스스로 보호하고 통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고이케 지사는 이와 관련해 “이것은 매우 일반적인 규율”이라며 해당 기관의 합리적인 논의로 난국을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숀 베일리 런던시장 후보가 "올림픽 개최지를 런던으로 바꾸자"는 얘기를 하자,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21일 기자회견에서 "런던 시장 후보가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올림픽 개최 대체 도시로 런던을 거론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비난했다. 고이케 지사는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관심을 끄는 상황에서 (올림픽 개최 문제를) 시장선거의 쟁점으로 삼는 발언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고, 또한 "전 방문 시 사디크 칸 런던시장과 도쿄 올림픽을 위한 협력 관계 강화에 합의했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고이케 지사는 일본에서 코로나19 감염자를 쏟아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가 영국 선적이라고 지적하면서 "그런 점에서도 협력과 이해를 당부하고 싶다"고 런던 시장 후보들의 말조심을 주문했다.

24일 산케이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나는 제1차 아베 신조내각에서 초대 국가 안보 문제 담당 보좌관으로 국가안보회의 창설 준비를 담당했다. 이번 감염증 대책은 의학적인 관점뿐만 아니라 국가로서보다 종합적인 대책이나 판단을 살리기 위해 NSC 등의 노력의 필요성을 느낀다."라고 발언했다.

고이케 지사는 27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받고 아베 신조 총리가 표명한 학교의 휴교 요청에 대해 "더 빨리 내놓아도 좋았는데"고 한 뒤 "여러 과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큰 목적을 위한 조치인 것으로 생각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날 도의회 종료 후 보도진의 취재에 도쿄 올림픽 · 패럴림픽 개최에 대한 우려를 부정하는 발언에서 "이번에 간신히 학교에 대한 대응이 정부에서 나온 것처럼 앞으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하면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확대 방지를 철저히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이케 지사는 23일, 기자회견에서 “도시 봉쇄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며 “3주간 환기가 안 되는 밀폐 공간, 사람이 밀집된 곳, 근거리 대화를 삼가 달라”고 요청했다. 고이케 지사는 “무증상 상태의 젊은이들이 자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감염을 확산시킬까 봐 걱정”이라며 “위기의식을 도민들, 특히 젊은층과 공유하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고이케 지사는 25일, 저녁 8시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주말 외출 자제를 시민들에게 요청했다. 고이케 지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대로 (코로나19 감염) 추이가 확산되면 록다운(도시 봉쇄)을 부를 수 있다”고도 말했다. 26일에는 "도쿄와 인접한 4개 현에 주말 외출 자제 협조 요청을 하겠다"고 밝혔다. 

고이케 지사는 4월 5일 NHK '일요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총리가 긴급사태를 선언하면 지금까지 요청 수준이던 조치들이 법률에 근거해 지금보다 한 걸음 진전된 단계로 추진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코이케 도지사는 "도쿄도뿐 아니라 시민과 사업자들도 사전 준비를 하고 있고 정부의 결단을 기다리는 상황"이라며, "국가 차원의 법적 지원을 반드시 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해 가토 후생노동성 장관은 같은 방송에서 출연해 "경제와 사회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 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사람들이 공포에 빠지는 등 긴급사태 선언에 따른 부정적 효과를 줄일 방안을 포함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11일부터 일본 도쿄도 내 주요 유흥·상업시설 등이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의 요청에 따른 정식 휴업에 돌입했다. 당초 도쿄도는 지난 7일 밤 아베 신조 총리가 긴급사태선언을 발령한 직후인 8일 0시부터 일부 시설에 휴업 요청을 할 계획이었지만, 정부와의 조정이 난항을 겪으면서 무려 사흘이나 허송세월을 했다.

당초 도쿄도가 휴업을 요청하려 했던 이발소가 요청 대상에서 빠지고, 이자카야(居酒屋·선술집)의 경우 전면 휴업이 아닌 ‘오후 8시까지만 영업’으로 조정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고이케 지사와 도쿄도 주장의 대부분이 관철된 모양새가 됐다. 

이와 관련해서 아사히신문은 마지막 절충 과정에서 아베 총리가 "내가 (고이케 지사의) 발목을 잡고 있는 듯 인식된다면 그건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다. 더는 안 싸워도 된다"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도쿄도 일본 정부의 대립이 너무 큰 주목을 받게 되면 마치 정부가 도쿄도의 방역 활동을 방해하는 것처럼 비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아베 총리가 '양보'를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이케 지사는 ‘감염 억제를 최우선시하는 도쿄도, 경제를 걱정하는 한가한 정부'의 구도를 만들어왔다. 정부와의 절충 끝에 휴업 요청 대상을 발표한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도 고이케는 "(휴업요청에 관한) 도지사의 권한이 (일반회사의) 대표이사쯤은 된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이런저런 목소리가 들려 오면서 결국 (내 권한이) 중간관리자쯤이 된 느낌”이라며 아베 내각의 개입에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사실상 고이케의 완승으로 끝난 모양새가 된 데 대해 정부 내에선 “정부가 도쿄도를 압박하고 있는 듯한 모양새를 만든 고이케 지사의 전략이 통했다”는 반응이 나온다고 아사히는 보도했다.  산케이신문은 12일 “고이케 지사의 (정치적) 스승인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반대 세력을 ‘저항 세력’으로 비유하며 여론에 직접 호소하는 극장식 정치에 능했는데, 고이케 지사 역시 ‘정부의 핍박을 받는 여주인공’의 모습을 연출했다”며 "여름 도지사 선거를 앞두고 존재감을 발휘했다"고 평가했다. 

25일은 고이케 지사가 ‘목숨을 지키는 스테이 홈(stay home·집에 머물다) 주간’으로 지정한 첫날이다. 지난 7일 긴급사태가 선언된 일본은 스테이 홈 첫 주말이 아닐 유동인구가 더욱 감소했다.

고이케 지사는 23일 기자회견에서 "슈퍼마켓에서 매일 가지 말고 사흘에 한 번 정도만 장을 보라"고 주민들에게 요청했다. 아울러 "슈퍼마켓에 소비자가 밀집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덜 붐비는 시간대 정보 공유, 장바구니 수 제한, 고령자·장애인·임신부 전용 시간 설정, 요일이나 시간대에 따른 포인트 상향 캠페인 중단, 개점 전 대기자가 없어지도록 상품 진열 시간을 변경하는 방안 등을 추진하라"고 업계에 권고하기도 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29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휴교 장기화를 계기로 '9월 학기제'로 전환하자는 주장에 대해 "다양한 선택지를 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이날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입학 및 개학 시기를 9월로 변경하는 것에 대해 신중론도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고 교도통신과 NHK가 보도했다. 다마키 유이치로(玉木雄一郞) 국민민주당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휴교가 계속되고 있어 배움에 구멍이 생기고 있다"면서 9월 학기제로 이행하는 방안도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9일 열린 전국 47개 도도부현 지사회 영상회의에서도 9월 학기제 도입 방안이 논의됐다. 이 자리에서 고이케 지사와 요시무라 히로후미 오사카부지사, 무라이 요시히로 미야기현지사 등 9월 학기제 도입을 찬성했다. 

신규 확진자 수가 대폭 감소한 것에 대해 고이케 지사는 "월요일은 검체 반입이 가장 적기 때문이다. 결코 느슨해질 수 없다"며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대신을 만나 대응책을 논의한 고이케 지사는 대책 회의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깜깜이 확진자를 막기 위해)유흥업소 종사자들이 사생활 노출 걱정 없이 상담할 수 있는 창구를 설치하고 정기적인 검사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일본내 코로나 19 사태 대처에서 무능함을 보이고 거기다 검찰청법 개정안으로 여론의 반발을 사는 등 사실상 레임덕 정국에 빠진 반면, 차기 총리주자 중 한 명인 고이케 지사는 아베 총리에 한 발 앞서 긴급사태 선언을 향한 정치적 결단을 촉구하는 등 코로나 정국에서 차기 총리로 선명한 인상을 각인시켰다는 평가를 받고있는 상황었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2020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할 경우 차기 총리 레이스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日아베 '레임덕 적신호' , 고이케 '재선가도 청신호'

고이케 지사는 6월 12일, 공식적으로 2020년 도쿄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고, 개표 결과, 압도적인 표차로 재선에 성공했다. 다만 같이 열린 도쿄도의회 보궐선거에서는 도민퍼스트회 후보들이 자민당 후보에 패하면서 향후 도정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2.4. 도쿄도지사 2기 시절

2021년 1월 5일,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코로나19 긴급사태 선포 절차를 밟는 가운데 고이케 지사의 압박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원래 스가 총리는 경제 위축을 우려해 긴급사태 선포에 소극적이었으나, 고이케 주도로 4개 도도부현이 1월 2일, 공동으로 긴급사태 선포를 요청하자 스가 역시 더이상 버티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고이케 지사는 작년말 긴급사태 선포에 효과가 작을 것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던 바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집권 자민당 측에서는 고이즈미식 극장 정치에 당했다고 분을 삼켰다. #

2021년 5월 7일,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긴급사태 선포를 다시 연장할 정도로 코로나19 감염 상황이 악화됐음에도 도쿄올림픽 개최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럼에도 "긴급사태 선언을 해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선언 연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2021년 6월 22일, 도쿄 올림픽 개막 및 2021년 도쿄 도의회 선거를 앞두고 급작스레 입원한 후 두문불출하고 있는데 도쿄도에서는 '코로나19 대응이나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준비 등 중요한 업무가 겹쳐 최근 1주일 정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과도한 피로로 인해 요양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

선거 전날인 7월 3일, 갑작스럽게 등장해 도쿄도 내 20여 군데의 격전지를 돌며 도민퍼스트회 후보의 유세를 지원했고, 이런 고이케의 등장에 힘입어 참패가 예상됐던 도민퍼스트회는 2석 차이로 아깝게 도의회 내 1당 자리를 놓치며 선전했다. 올림픽 개최 문제로 시끄러운 여론을 예리하게 파악하고 승부를 걸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성공한 셈. 외려 고이케 지사가 요양 중일때 막말을 날린 아소 다로 부총리 때문에 자민당에 역풍이 불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

선거 이후 나온 정보에 의하면 단순히 선거 전략이었던 것이 아니라 진짜로 몸이 안 좋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로 인한 과로가 누적돼 온몸에 관절염부터 시작해서 각종 병이 도진 듯 하다. 2021년 9월에도 도쿄도지사로서의 활동은 최소화하고 식이요법 병원 방문을 통한 건강 회복 시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2023년 6월 28일, 오세훈 서울시장을 만나 서로 협력하기로 했다. 서울시장과 도쿄도지사가 만난 것은 2015년 박원순 서울시장과 마스조에 요이치 도쿄도지사가 만난 후 약 8년 만이다. #

2023년 10월에는 다시 감기로 인해 업무를 중지하고 자택에서 요양했다. 올 5월에도 피로를 이유로 3일간 요양한 전례가 있다. #

10월 15일 열린 도쿄도의회 타치카와시 보궐선거에서 도민퍼스트회 후보인 이토 다이스케를 1위로 당선시키면서 여전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한편 2위는 의외로 제1야당 입헌민주당 후보가 차지했고, 자민당 후보는 3위로 낙선했다. 이로서 도쿄도의회에서 도민퍼스트회와 자민당의 의석수가 동률이 되었다.

3. 정치 성향

고이케는 대체로 리버럴한 정치 성향과 강경하다 못해 극우 성향의 외교관이 합쳐진 것으로 평가된다. 내치, 행정은 일본 지방자치 영역에서 한 획을 그을 만큼 개혁적이지만 역사, 외교에서는 아베 신조만큼 강경한 정치인이다.[13]

종합적으로 리버럴과 극우가 섞인 형태의 중도우파 정도의 정치노선을 타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찌 보면 일본 내에서 상당히 스마트한 행보인데 입헌민주당, 일본공산당, 사회민주당, 레이와 신센구미와 같은 진보 정당을 제외한 야권 세력에도 어느정도 소구력이 있으면서 일본 우익파~온건파 주류 쪽과도 연계할 수 있고, 동시에 강경 우익 내에서도 인기가 있는 포지션이다. 자민당이 경계하는 이유가 이 여성의 정계 바람몰이 및 여론주도권 획득 능력이 고이즈미 이상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 고이즈미 준이치로도 집권 당시 내치에서는 일본 내에서 보기 드문 자유주의적인 개혁을 시행했지만, 역사와 외교 문제에서는 강경 우익적 노선을 견지하는 이중적인 정치노선으로 대중의 인기를 얻어 다 죽어가던 자민당의 생명을 연장시켰다. 그리고 이런 성과로 말미암아 총리를 오래 하기 쉽지 않은 일본에서 5년씩이나 집권에 성공한 바 있다. 특히 고이즈미는 총리 재직 당시 고이케를 내각에 입각시키면서 본격적으로 거물급 정치인으로 발탁한 정치적 스승임을 생각하면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아닌 게 아니라 고이케의 정치 스타일이 고이즈미와 비슷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기사 아직은 지방자치단체장이고 전국적 기반이 부족하다고 평가받기도 하지만, 인구가 4천만을 넘는 일본의 수도/광역권에 지지기반을 두었다는 점만으로도 역대급 어드벤티지이다. 전국적으로는 지지도는 높지 않지만 호감도는 높은 편이다. 거기에 일본에서 드문 공화주의적인 인물이다.

어쨌든 주변 나라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역사, 영토 문제에 대해 극우파적 자세를 견지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2003년 3월에 일본의 우파잡지인 '보이스'에서 "군사, 외교적인 판단에 따라 핵무장 선택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일본국 헌법 9조의 1항(전쟁과 무력행사 영구 포기)2항(전력을 보유하지 않고 국가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을 무시하는 어마무시한 발언이다. 일본은 헌법 9조 1, 2항에 따라 대륙간탄도미사일의 보유를 금지해왔는데 핵 탄두의 보유를 주장한다는 건 이 1, 2항을 폐지하겠단 발언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헌법 9조의 1, 2항 폐지는 자위대의 정식국방군화도 뜻한다.

고이케 지사가 대표로 있는 희망의 당의 입당 조건으로 "외국인 참정권 부여에 반대하고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고 헌법 개정을 지지한다"는 정책방침에 동의하고 서명하는 것을 내걸었고,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공천에서 배제한다고 한다. 기사

성격이 독선적이며, 정당 대표로써의 운영도 독재적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공약집도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당내 중의원 후보자에게 공약준수를 요구한다거나, 지난 도의회 선거가 끝난 이후로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고 도민퍼스트회의 대표를 사임하는 등의 행보를 보여왔고[14], 총선거 중에 도민퍼스트 회를 탈당한 도의회 의원이 한 TV 프로그램에서 한 인터뷰에 따르면 "TV 출연 금지, SNS 금지, 총회에서 다른 의견 내는 것 금지, 파벌이 만들어진다는 이유로 다른 도의원끼리 회식 금지 같은 언론 통제를 하는 모습을 보여 실망해서 탈당했다"라고 한다.

그러나 또한 외골수를 고집하지 않는 상당히 유연한 성격도 가지고 있다. 공천 교통정리 상황 하에 자신의 측근 포섭 인물들의 다양한 경로 이탈에 대해서도 길을 터주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기 때문. 사실 자민당 구성원의 과반수 이상은 아버지, 종부 친척, 본친척, 방계를 거치면 다선 중의원, 참의원 혹은 대신, 총리 출신들이 참 많아서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용이하게 정계진출을 이뤄냈다. 반면 고이케의 아버지는 효고현 지역구에서 낙마를 하고 이에 큰 상처를 받아 이집트로 이민간 의류상 출신이라 트라우마가 있을 법도 하다. 출신 집안, 파벌이 딸리면 학벌, 커리어가 엘리트든지 아니면 학벌이 딸리면 집안, 파벌이 받쳐주든지 주변 인물들이 대다수 일본 인구 1억 2천만 명 중 최고의 집안, 인맥, 파벌, 학벌, 엘리트 출신의 집합체이므로 상대적 박탈감은 더 심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최종적으로 고이즈미의 최측근이 되었을 만큼 위화감 및 조직력, 포용력을 인정받았다. 즉 고이케의 현재까지의 행보를 여러 각도에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3.1. 혐한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통과 당시에 통과 반대 운동을 벌였던 적이 있으며[15], 자민당이 야당 시절이었던 2011년 일본 내 유명 혐한 단체인 재특회의 강연에 참가해서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인하고, 한국이 다케시마(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16] 2014년에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일본 정부 차원에서 인정한 고노 담화의 철회를 주장했을 정도. 이 밖에도 재특회와 더불어 일본의 유명 혐한 단체의 푸쉬를 받고 있어 논란이 됐다. 애초에 본인부터가 혐한이다. TV토론회에 게스트로 나왔을 때도 한국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또한, 도쿄에 있는 동경한국학교의 정원 초과 문제로 도쿄도의 유상 토지 임대 형식으로 제2 한국학교 건립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선거 당시 이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시하였고 도쿄도지사 취임 후에는 실제로 백지화 해버렸다.[17] 이 때문에 한국학교가 굉장히 노후화, 과밀화 되어 학생들이 고통 받고 있다.

2017년 8월에는 1970년대 이후 도쿄도지사 명의로 보내져왔던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문을 고이케 유리코는 희생자수 6천 명의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보내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이것은 현재진행형으로, 7년째 되는 해인 2023년에도 보내지 않을 의향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 전대 도쿄 도지사들은 모두 관례적으로 추도문을 보내왔었고, 심지어 망언 제조기로 유명한 이시하라 신타로도 이 날에는 희생자들에 대한 추도문을 보내왔다.

4. 논란

최근 고이케 도쿄도지사의 학력 위조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고이케가 자신의 주장처럼 정말로 이집트 카이로대를 졸업했는지 여부가 핵심이다. 논란은 전부터 있었지만, 2020년 재선 선거가 목전으로 다가오면서 재점화됐다. 그의 과거 행적을 낱낱이 파헤친 책이 최근 출간된 것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도쿄도민은 고이케를 사문서 위조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반면 카이로 대학교는 고이케의 졸업 사실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고이케는 ‘1976년 10월 이집트 카이로대 문학부 졸업’을 자신의 학력으로 밝혀왔지만, 여기에는 늘 ‘가짜’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2016년 한 민영방송은 “고이케가 공개한 카이로대 졸업증서는 가짜”라고 폭로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내기도 했다.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고이케는 아니라고 부인하면서도 딱 부러진 반박 증거는 내놓지 못했다. 완전한 형태의 카이로대 졸업증서 실물은 물론 성적표가 공개된 적도 없었다. 지난 3일 도쿄도의회 본회의에서도 학력에 대한 의원들의 추궁에 “카이로대 졸업증서를 지금까지 줄곧 공개해 왔다”고만 했을 뿐 실물은 보여주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2020년 5월 유명 논픽션작가 이시이 다에코가 출간한 책 ‘여제 고이케 유리코(女帝 小池百合子)’가 논란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시이는 과거 고이케가 카이로에 도착했던 초기에 한 방에 살며 언니처럼 그를 돌봐준 일본인 여성에 대한 현지 취재를 바탕으로 체류 당시 행적을 상세히 전했다. 이에 따르면 고이케는 카이로대 입학허가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아랍어를 거의 공부하지 않고 일본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는 데 열중했으며, 당시 무역업체를 운영하며 이집트에 네트워크를 갖고 있던 아버지의 힘으로 카이로대에 들어갈 수 있다고 장담하곤 했다.

고이케의 학력위조 의혹과 관련해 도쿄도에 사는 한 남성은 지난 9일 그를 사문서 위조 및 행사 등 혐의로 도쿄지검에 고발했다. 검사 출신인 고하라 노부오 변호사 등도 같은 날 기자회견을 갖고 “고이케 지사가 학력을 위조해 선거 홍보물을 만들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항 공표죄에 해당한다”고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카이로대는 고이케를 비호하고 나섰다. 카이로대는 최근 성명을 통해 “고이케가 1976년 카이로대 문학부 사회학과를 졸업했음을 증명한다”며 학력이 위조됐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카이로대는 “졸업증서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대학과 졸업생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으로 간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고이케의 학력위조 의혹을 부인하는 입장 정도만 취해 온 카이로대가 성명까지 발표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지만, 의혹을 불식시키는 데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고이케와 한때 연인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마스조에 요이치 전 도쿄도 지사는 카이로대가 이 시점에 졸업 관련 성명을 낸 것에 대해 “정치적으로 수상하다”고 말했다. 그는 졸업했다는 주장만 하고 성적표 등을 공개하지 않는 점도 그렇지만, 대학이 굳이 성명을 내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며, 카이로대 졸업장을 공개했다. #

그럼에도 2024년 도쿄도지사 선거를 앞두고 학력위조 의혹 공세는 나오고 있다. #

5.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92 - 1994 정계 입문

1994 - 1997 합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
1997 - 1998 정당 해산

1998 - 2000 창당

2000 - 2002 창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02 탈당


2002 - 2016 입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16 - 2017 탈당


2017 - 창당

2017 - 2018 창당
정당 해산

6.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2 제16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비례대표
3,617,246 (8.1%) 당선 (19위)[18] 초선[19]
1993 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구)효고 2구 136,000 (15.1%) 당선 (2위) 초선[20]
1996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효고 6구
89,672 (38.28%) 당선 (1위) 재선
2000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84,647 (33.81%) 당선 (1위) 3선
2003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비례대표
(킨키 블록)


2,833,181 (30.69%) 당선 (8위)[21] 4선
2005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도쿄 10구 109,764 (50.05%) 당선 (1위) 5선
2009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96,739 (43.31%) 낙선 (2위)
당선 (석패율제)
6선
2012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108,983 (53.70%) 당선 (1위) 7선
2014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93,610 (50.73%) 당선 (1위) 8선[22]
2016 도쿄도지사 선거 도쿄도지사

[[무소속(정치)|
무소속
]]
2,912,628 (44.49%) 당선 (1위) 초선
2020 도쿄도지사 선거 3,661,371 (59.70%) 당선 (1위) 재선

7. 여담

  • 와이즈 스펜딩이라는 말이 있듯이, 풍부한 세금수익을 배경으로 세금을 유효하게 활용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를 위해서라도 세이프시티, 다이버시티(diversity[23]), 스마트시티의 3가지 시티를 실현하여

    …(중략)…

    서스테이너블(sustainable)한 도쿄를 실현하며

    …(중략)…

    도쿄대회를 스프링보드로 도민의 생활과 기업의 활동의 새로운 개념을 창출해 낼 것입니다.



    - 2016년 9월 28일 도지사 소신표명회견 중


    올림픽 경기장은 레거시가 충분한지, 코스트이펙티브인지, 와이즈스펜딩한지를 잘 검토하여…



    - 2016년 10월 도쿄올림픽 수상경기장 선정 관련협의 중

    일본 국내에서의 지지율은 비교적 높은 편이지만 연설 등에서 외래어를 지나치게 남용하여 쓸데없이 문장을 어렵게 만든다는 얘기가 많다. 연설 장면이 뉴스에 나올 때면 가타카나가 전체 문장의 반이 넘는 경우가 있을 정도. 국민들은 물론 매스컴에서도 종종 지적할 정도이다.[24] 인터넷에서도 고이케에 대한 비판의 반은 이 외래어 남용에 대한 내용일뿐만 아니라, 고이케 지지자들조차도 알아듣기 힘들다는 걸 인식했는지 고이케가 연설 시에 사용한 외래어를 정리하여 따로 공부하는 커뮤니티를 만들 정도로 외래어 남용이 심하다. 코로나 19사태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얘기할 때 "소셜 디스턴(Social Distance)"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해외에서 비웃음을 사기도 했지만, 이부분은 "소셜 디스턴스(사회적 거리)[25]를 확보하자"라는 식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딱히 틀린 건 아니다.[26] 애시당초 고이케 유리코가 만들어낸 표현이 아니라 원래 일본에 존재하던 표현이다.[27]
  • 도민퍼스트회 대표 아라키 지하루가 고이케의 비서였는데, 재밌는 일화가 있다. 아라키가 고이케의 정치 행보에 감명 받아 29살 때, 사전 예약도 없이 이력서 한 장으로 고이케의 의원 회관에 난입했다. 집무실에서 고이케가 나타나 누구냐고 물었고, 아라키는 "사실  구마모토현에서 고이케 유리코 의원님을 동경하여 상경하였고, 저도 장래에는 여성 의원으로 일본과 지역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고이케의 비서로 일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말하자 고이케가 쿨하게 "내일부터 와도 좋아요"라고 허락했고, 그 후 고이케의 비서가 되었다. 아라키는 고이케와는 총 6년 간 근무했는데 그 중 1년 반은 고이케의 집에서 동거했다고 한다.
  • 키우는 강아지의 이름이 '소리(총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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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6년 도쿄도지사 선거 출마로 중도 사퇴 [2] 전임자 고이케 유리코의 2016년 도쿄도지사 선거 출마로 인한 사퇴로 재보궐 선거 실시 [분야] 오키나와 및 북방대책 [4] American University Of Cairo [분야] [6] IMF 총재도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수영선수 경력이 있고, 세계 각지의 거물급 여성 정치인들 중 과거 스포츠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음도 특기할 만한 사항이다. [7] 그녀의 출생지인 로쿠로쿠소초도 일본 최고의 부촌으로 알려져 있다. [8] 상기한 선거 낙선 후폭풍 및 재정사태 여파도 크다. [9] 고키에는 이 시기를 "유복했던 가정이, 이때는 좀 힘든 이민 가정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하고 회상했다. [10] 한국의 박영선과 정계진출 기반이 상당히 비슷하다. 박영선도 MBC 방송 기자 시절, 넬슨 만델라와 직접 인터뷰 레포트를 담당하는 등 상당히 잘 나갔고 결국 메인 엥커로 성공했다. 둘 다 거물 정치인급으로 올라선 서로의 현재 위치를 비교해 볼 때 두드러진다. 물론 우리로 치면 환경부 장관, 첫 여성 국방부 장관(아시아에서 2번째), 첫 여성 도쿄도지사란 경력을 쌓은 고이케가 한 수 위지만, 나이는 박영선이 더 젊다. 둘의 반골성향도 비슷하다. [11] 사진 위에 나오는 자위대 장성 4명은 당시 육상자위대, 해상자위대, 항공자위대의 막료장과 해자대에서 배출된 통합막료장 사이토 다카시 제독이다. [12] 형식상으로는 고이케 지사는 광역자치단체의 수장이기 때문에 MAYOR는 아니다. 도쿄도가 옛 광역자치단체 도쿄부와 기초자치단체 도쿄시가 합병하여 탄생했기 때문에 도쿄도지사가 MAYOR 역할을 겸하는 것이다. 또한, 세계적으로도 각국의 수도는 그 자체로 광역자치단체와 동급 또는 윗급(한국에서 서울시장은 다른 광역시, 도지사보다 격이 높은 국무위원이다)으로 편성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이상할 것이 없으며, 런던에서 열린 2012 런던 올림픽에서도 그 주체가 런던 특별구(가령 City of London이나 City of Westminster, 또는 올림픽 경기장이 위치한 뉴햄 특별구)가 아니라 광역자치단체 그레이터 런던이다. [13] 포보스에서는 혐한(Anti-Korean)정치인으로 보도한 바 있으며 #, CNBC에서도 극우적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 물론 그녀를 중도우파 정치인으로 보도하는 외신 보도가 훨씬 많다. 외신에서는 주로 고이케의 정치적 위치보다는 일본 내 소수자인 재일 한국인/조선인 관련 인종차별적인 태도를 중점적으로 비판한다. [14] 전자의 건으로 공산당의 시이 가즈오는 "백지수표를 위임하라는 꼴"이라며 비판했고, 후자의 경우 하시모토 도루는 "공당의 운영을 너무 독단적으로 한다"며 비판했다. 이후 아라키 치하루 대표를 세우는 과정에서 공론화없이 밀실에서 결정하고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15] 하지만 이같은 우익들의 노력에도 하원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16] 일본의 정치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위안부 부인은 일본의 우파 정치인도 발언을 조심하는 부분이다. 우경화가 눈에 띄는 자민당의 의원들조차도 위안부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시인하지는 않고 말을 흐리는 정도지 정면으로 부인하는 경우는 적다. [17] 반면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있었던 일본인 학교는 노후화로 인해 2010년 상암동으로 이전하였는데, 당시 한국에서는 일본인 학교 측이 소유한 개포동 토지를 상암동 토지와 맞교환해주고 차액을 보상해주며 여러모로 도움을 준 바가 있다. 이에 대해 우익 성향의 산케이 신문 서울지국장 구로다 가쓰히로는 "서울 일본인 학교가 한국의 도움을 받았으니 도쿄 제2 한국학교를 위한 유상 토지 임대도 실현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사설에서 주장하였다. #. [18] 일본신당 내 2순위 [19] 1993년 7월 사퇴.(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출마) [20]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의 마지막 중선거구제 [21] 자민당 내 3순위 [22] 임기 중 사퇴.(2016년 도쿄도지사 선거 출마) [23] diversity의 마지막 sity와 도시를 뜻하는 영단어 city의 발음이 같다는 것을 이용한 언어유희이다. 물론 일반적인 일본인들이 전혀 사용하지 않는 외래어다. 고이케의 외래어 사용률이 지나치게 높다는 게 뉴스가 된 적이 있는데, TV에서 거리 인터뷰를 통해서 다이버시티의 의미를 아는지 물어봤는데 50명에게 물어본 결과 50명이 그 뜻을 몰랐다. [24] 심지어는 뉴스에 자막 밑에 일본어 주석이 붙을 정도이다. 즉 일반적인 일본인이 알아듣지 못할 정도라는 얘기이다. [25] 2미터 [26] 실제로 일본에서 "소셜 디스턴싱"과 "소셜 디스턴스를 확보하기"라는 두가지 표현이 모두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실제로 후자가 더 많이 사용된다. [27] 사전적 정의 : 전염병 확대를 방지하기 위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유지가 필요하다고 하는 거리. 약 2미터(感染症の拡大を防ぐために人と人とのあいだに保つべきとされる距離。約2メート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