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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式中戦車 "チ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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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제국 육군이 개발한 중형전차. 4식 중전차 치토를 개발하는 도중 대전차 화력을 임시로나마 증강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1식 중전차 치헤의 차체에 75mm 3식 전차포를 단 포탑을 신규제작해서 장착한 전차다. 정식 명칭은 3식 중전차 치누.2. 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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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fff> 3식 중전차(三式中戦車) "치누(チヌ)" | |
제원 | |
개발기관 | 미쓰비시 중공업 |
개발연도 | 1943년 |
생산기관 | 미쓰비시 중공업 |
생산연도 | 1944년 ~ 1945년 |
생산 댓수 | 144 ~ 166대[1] |
운용 연도 | 1944년 ~ 1945년 |
운용 국가 | 일본 제국 |
전장 | 5.73m |
전폭 | 2.33m |
전고 | 2.68m |
전비 중량 | 19t[2] (21t)[3] |
탑승 인원 | 5명 (전차장, 조종수, 포수, 탄약수, 무전수) |
엔진 | 미쓰비시 100식 발동기 4행정 V형 12기통 공랭식 디젤엔진 |
장갑 |
전면 50mm 측면 20 ~25mm 후면 20mm 상면 10mm 하면 8mm 포방패 50mm |
최고 출력 | 240hp |
출력비 | 11.4hp/t |
현가 장치 | 벨 크랭크 현가장치 |
최고 속도 | 38.8km/h |
항속 거리 | 210km |
주무장 | 75mm 3식 전차포 II형 1문 (70발) |
부무장 | 7.7mm 97식 중기관총 1(+1)정[4] (3,670발) |
3. 특징
3.1. 장점
치누에 달린 3식 대전차포는 90식 75mm 야포를 개수한 것으로, 90식 75mm 야포는 프랑스 슈나이더제 Canon de 85 mle 1927 야포를 기반으로 한다.[5] 3식 대전차포는 100m에서 90mm 정도를, 1km에서 65mm의 장갑을 관통할 수 있었으며[6] 이는 기존 47mm로 상대하기 어렵던 M4 셔먼 전차를 제한적으로나마 상대 가능한 수치였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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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의 37mm, 47mm와 75mm 대전차포가 M4 셔먼, 처칠 전차, 스튜어트 전차를 어딜 얼만큼 거리에서 관통할 수 있는지 그려놓은 미군 실험 자료[8] |
3.2. 단점
3.2.1. 무장
M4 셔먼급 화력을 가진 전차를 보유하는데 성공했지만 임시방편으로 급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신형 차체가 아니라 치헤의 작은 차체에 무거운 포와 포탑을 달았다는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차체에 비해 포가 무거워서 신뢰성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일단 이전의 야전 대전차포를 개수한 대다수의 일본 전차와 같이 주퇴복좌기가 완전히 외부에 노출되어있고, 상대적으로 대구경이던 야포를 전용한 탓에 주퇴복좌기가 이전의 일본 전차보다도 더 크게 노출되어 있었다. 또, 하필이면 외부로 튀어나온 부위가 포탑 전면이라 적의 공격이 집중되는 곳에다가 약점을 만들어놓은 셈과 다름없게 되었다. 당장 해당 부위에 어떤 포탄이라도 관통된다면 포의 정상적인 작동이 불가능하게 되는데, 이는 매우 치명적이었다. 이렇게 설계된 이유는 기술력 부족으로 주퇴기를 포탑 내에 넣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 전차의 대다수가 공유하는 문제점으로, 37mm 이상의 주포의 주퇴복좌기를 소형화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작은 포탑 안에 넣을 수 없었다. 그나마 장갑판으로 감싸놓긴 했으나 이마저도 빈약한 수준이었다.
주퇴복좌기는 그 내부에 점성이 높은 기름으로 채워져 포가 발사되면 압축되었다가 스프링과 함께 반작용으로 포를 자동으로 원위치시켜 차탄 발사를 원활하게 하는 물건인데 여기에 구멍이나 흠집이 생기면 기름이 새어나가서 나중엔 명치유신 시절의 주퇴복좌기 없던 후미장전식의 암스트롱포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노출해봤자 약점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차탄 연사력과 명중률 감소로 이어지는 심각한 문제다. 포수나 탄약수, 전차장이 직접 뒤로 밀린 포를 앞으로 끄집어내야 하고, 이렇게 다시 설치된 포가 포수가 원하던 조준 방향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이 조치는 심각하게 안일했다. 비록 소련의 T-34-76, T-34-57 또한 이 장비가 포탑 밖으로 나온 설계였지만 이쪽은 차체 전면 또는 포탑 전면에 준하는 두께로 꽤 두껍게 장갑을 둘렀다. 전차가 아닌 대구경 야포를 탑재한 자주포인 ISU-152 또한 주조 장갑으로 아예 떡칠을 해놓았다.
또한 포의 주퇴제어에 격발 시 발생하는 가스를 사용했는데, 문제는 포탑에 환기용 팬을 장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투 시 사격을 하면 포탑에 가스가 충만하여 포수의 눈을 자극하는 것은 예사고 심하면 코피까지 흘리게 되었다. 당연히 승무원의 전투효율은 나락으로 떨어지며, 이러한 상태로는 아무리 전차의 성능이 좋아 봤자 종합적인 전투력이 크게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치누의 포탑상부 주포쪽에는 통풍용 작은 해치 3개가 있는데 이걸 여는 방법으로 적의 공격에 덜 노출 되면서 가스를 내보낼 수 있었다.[9] 또한 치누의 포탑에는 전차장용 전망탑(큐폴라)를 포함하여 해치가 6개 있는데, 이걸 여는 방법으로 쾌적하게 포를 쏠 수 있었다. 대신 적 포탄으로 인해 발생한 폭압이나 파편, 보병의 소화기 사격에도 취약해질 수 있게 된다.[10] 특히 일본 본토 침공 작전은 핵과 화학무기, 백린탄을 들이부을 작정이었으니 이런 상황에 열었다간 바로 화생방 상황에 노출된다.
원본인 75mm 90식 야포에 선회포탑 탑재를 위한 최소한의 개량만을 진행해서[11] 급하게 탑재한 탓에 격발 장치도 흔히 생각하는 버튼식, 레버식이 아니라 포병들마냥 줄을 당겨서 격발하는 방식이며, 따라서 포수 혼자서 격발하기는 어렵거나 불가능하고 대신 포수가 관측을 수행한 뒤 주포의 위치를 조절해 조준을 끝내면 격발을 같이 담당하는 무전수가 끈을 당겨 격발하는 방식을 썼다. 여의치 않을 때는 전차장이 이 임무를 대신 맡았다.
이렇게 고생고생해서 조준하고 발사하더라도, 셔먼 후기형을 전면에서 격파하기가 쉽지 않았다. 셔먼 후기형 이지에잇의 수직 환산 전면장갑은 93mm, 치누의 75mm 일반 철갑탄의 관통력은 1,000m에서 약 70mm / 500m에서 약 80mm(일본측 실험), 같은 관통력의 포를 노획한 미군의 실험에선 500 야드 (약 457.2m)에서 3.3 인치 (약 84mm), 250 야드 (약 228.6m)에서 2.4 인치 (약 89mm)였다. 텅스텐으로 제작된 특수 철갑유탄 (特甲)[12][13] 사용시 500m 에서 100mm를 관통 가능했다지만 이것도 각도에 따라 도탄되기 쉬운 아슬아슬한 차이고 무엇보다 막장인 일본의 상황에서 텅스텐 탄은 그 가공의 불리함 탓에 수급 자체가 아주 어려운, 극히 희귀한 탄 이었다.
중전차 격파는 더 어려웠는데. 미국이 몰락작전 개시할 땐 6호 전차 티거보다 단단한 셔먼 개량형 점보 셔먼을 투입할 예정이었으며 오키나와에는 M26 퍼싱과 실험용 중전차들도 보낼 계획도 있었다. 한편 영국 또한 처칠 전차를 개량해 전면 수직장갑 전체가 152mm(6인치)인 처칠 Mk.VII을 양산중이였던데다가 17파운더를 장착한 A43 블랙 프린스와 센추리온 Mk.I도 거의 개발 완료 단계였다. 2차대전 연합국 중형전차까지는 어찌 상대할 수 있더라도, 연합국이 자신보다 더 체급이 나가는 5호 전차 판터, 6호 전차 티거, 티거 2들을 상대로 발전시킨 T29, T32, T34 등의 중전차들과는 승산은 미미했다.
다만 퍼싱을 제외하고는 다른 중전차들이 널리 쓰이지 못했다는 점과[14] 점보 셔먼은 물론 퍼싱도 76.2mm인 측면 포탑, 차체는 치누의 포로도 관통은 가능했다.(처칠은 측면장갑이 76.2~95mm로[15] 퍼싱보다 더 격파가 어렵다.) 어찌되었던 간에 미군의 주력전차는 셔먼이었다. 치누가 가진 가장 큰 의의는 드디어 일본 전차가 제한적인 상황에 한해서이더라도 후기 연합군 기갑과 전투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다만 소련군과 비교한다면 꽤나 암울한데, T-34-85는 몰라도 T-44는 400m안에서 측면을 공격하면 관통가능, IS-2는 측면을 공격해도 거의 영거리 사격을 해야하며, IS-3같은 경우는 측면조차 관통 할 수가 없다.
동시대 타국 전차들과 비교할 때 공축기관총과 경심철갑탄과 같은 특수탄의 부재라는 문제점도 있었다.
3.2.2. 장갑
치누는 치헤의 차체를 사실상 그대로 썼기 때문에 장갑이 얇다. 한발이라도 적 전차포탄에 맞으면 바로 죽는다는 현실은 그대로였던 셈이다. 전면장갑의 두께가 셔먼과 비슷하다고는 하지만 A3 이전의 셔먼과 비슷할 뿐이었고, 모든 차량이 전면적인 경사장갑을 채용한 셔먼과는 달리 3호 전차나 4호 전차같은 판터 이전의 독일전차처럼 경사장갑이 극히 일부분만, 그것도 거의 수직에 가깝게 채용되었기 때문에 실질 방어력이 한참 모자랐다. 게다가 셔먼은 구동계의 신뢰성이 뒷받침되어 장갑을 더 붙일 여지도 존재했지만[16],치누는 그러한 임기응변이 여의치 않았다. 이는 선적용 크레인의 중량 제한과 교량 및 철도 수송 능력의 한계 때문에 무게 제한이 걸리며, 추가적인 구동계의 신뢰성이 담보되지 않고 구동계통의 제한 또한 엄격했던 치누는 장갑을 증가시키기 어려웠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새롭게 개발되던 4식 중전차 치토와 이전의 1식 치헤 사이의 임시에 불과했던 만큼 장갑도, 구동계도 개량할 이유가 없었다.거기에 훗날 한국 전쟁에서 발표한 영국군 자료에 따르면 비관통임에도 전차를 못쓰게 만들었다는 포격에 대한 방어 필요성이 대두됐다. 그래서 이 이후로도 미국과 영국은 2세대 MBT임에도 장갑을 포기하지 않은 치프틴 전차와 M60 패튼을 둘 정도였다.
일본 또한 국토 70%가 산지일 정도로 많은 편이라 본토 결전이 6.25 때와 같이 전차로 직접가서 때리기보단 포격이나 공습으로 때리는 것이 전차전보다 더 많았을 것이며 이 때 치누의 장갑은 너무 얇은 편이라 그 포격 파편과 충격에 적국보다 데미지를 더 크게 입을 수 있다.
3.2.2.1. 연철장갑설
당시 일본은 물자부족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 때문에 전차 장갑판에 니켈과 같은 귀중한 금속을 할애하기가 힘들었다. 특히, 니켈은 치누의 제작시기 이전인 1943년부터 당시 필요량의 10%도 충당하지 못하던 시절이었고, 항공기의 프로토타입에 써먹기도 모자라서 니켈을 조금만 더 달라고 울부짖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장갑판이 프라이팬 수준의 연철을 사용했다. |
시바 료타로의 주장 | 완성품의 장갑을 줄로 밀어서 가공할 수 있었다. 연철장갑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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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설계진들의 반론 | 표면경화장갑보다 더 방어력이 좋은 균질압연장갑을 사용했으나, 탄력있는 새(치하기준) 장갑 특성상 줄로 갈릴 수 있다.[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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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누의 생산공정에 있었던 현장사람들의 재반론 | 진짜로 연철을 사용했다. 하지만 양심의 가책은 있어서 치하처럼 장갑은 물론, 리벳도 포탄 좀 튕겨내라고 전부 줄로 갈아서 매끈하게 가공했다. |
결국 치누의 연철 사용여부는 증언보다는 확실한 증거인 문헌 밖에 없는데, 현재 남은 문헌들 중에서 치누가 연철을 사용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더군다나 이 떡밥은 한일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서는 해당 떡밥에 대해서 모르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거기에 본래 치헤를 개량한 물건인데 치헤에게는 연철 떡밥같은게 없다.
어째든 확인 한뒤 전차를 불태워 버린 미군 보고서 에서도 연철 이야기는 없다.결정적으로 현재 일본에 있는 실물치누에도 연철장갑같은건 없다.
3.2.3. 기동력
치헤의 차체에는 과분하다 싶을 정도로 크고 무거운 포탑을 단 덕분에 원래 그럭저럭 괜찮은 기동성을 보유했던 치헤보다 기동성이 상대적으로 더 낮아져 버렸다.다만 그렇다해도 치누의 중량은 포탑을 포함해도 19톤에 불과했으며, 중량 자체는 매우 가벼운 편이었기에 치누의 중량을 고려해보면 240마력 엔진은 그렇게 모자란 출력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기동성이 좋다고 말할 수준까지는 아니었고 그냥 40km 정도의 속도를 내었다.하지만 치헤의 단점을 고스란히 물려받아서 기어를 넣으려면 레버를 망치로 때려야 하는 조종하기 참 엿같다는 특징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이렇다보니 운용 편의성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보면 치헤의 조작 계통은 좋다고는 말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현가장치는 여전히 연약했다. 치하의 악명을 높인 이유중 하나가 바로 벨 크랭크 현가장치인데, 일본의 한계로 더 좋은 현가장치를 만들지 못하다 보니 생긴 문제였다. 이는 4식 중전차 치토나 치리까지 이어진다.
3.3. 생산량
일본군의 만성적인 물자부족은 치누의 양산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제작개시 시간도 1944년 12월 제조개시로 늦었기 때문에 종전까지 166량(1944년 55량, 1945년 111량)이 생산되었다. 참고로 M4 셔먼은 총 5만 대가 넘게 양산되었다.그리고 체급 자체가 다른 M26 퍼싱은 1945년 2월까지 300대, 12월까지 총 2000여대나 생산되었다.
4. 실전
4.1. 제2차 세계 대전
4.1.1. 태평양 전쟁
물자를 일본 본토로 수입할 배조차 연합군의 해상봉쇄에 막혀 말라죽어가는 판국에 어떻게 전차를 태운 배를 전장으로 내보내겠는가. 게다가 일본군으로서는 이런 자국군 기준으로 강한 전차를 본토결전을 위해 온존해둬야 했다.만약 본토 침공 작전인 몰락 작전이 실행되었다면 미군은 전차병의 안전을 위해 격파될 가능성이 있는 M4 셔먼보다는 M26 퍼싱을 다수 투입했을 것이다. 만약 치누가 퍼싱을 마주친다면 종잇장 찢어지듯이 격파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알다시피 퍼싱은 유럽전선에서 맹활약했던 6호 전차 티거를 잡겠다고 만든 전차다.[18]
5. 종전 이후
일본의 패전 후 남아있던 치누는 미군의 간단한 조사를 받은 후 휘발유를 뿌리고 불태우는 등 체계적으로 고철로 처리되었다. 그 중 2량만이 남아서 1량은 미국에 전시되었고, 나머지 1량이 쓰치라의 육상자위대 무기학교에 전시되어 있다.본의 아니게 시바 료타로가 소설가가 되는데 일조하기도 했는데, 당시 견습 사관이었던 시바 료타로가 본토 결전을 준비중에 시민들과 아군이 길을 막으면 어찌하냐는 질문에 상관이 "그냥 깔아 뭉개버려라."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 전쟁에 미친 일본인을 규탄하는 소설을 쓰게되었다고 한다.
6. 차기 전차
전황이 계속 급박하게 돌아가다보니 후속차량도 계속연구 되었고, 그 결과물이 4식 중전차 치토와 5식 중전차 치리이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항목 참조4식 중전차 치토의 배치에 상당 기간 소요될 것을 알았던 일본군은 치토의 포탑과 포를 장착한 버전과 3식 중전차의 포탑에 치토의 포를 단 버전을 준비하였다. 그 중 치누의 차체에 치토의 포탑과 포를 올린 실험을 진행하였고, 211호차 이후로 생산하기로 했으나 종전이 되는 바람에 실험용 차량 1량을 만들고 끝이 났다. 보통 치누 '改(개)' 또는 '치누 II'라고 한다.
7. 미디어
7.1. 게임
7.1.1. 월드 오브 탱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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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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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누 카이 |
7.1.2. 워 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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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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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누 카이 |
7.1.3. 배틀필드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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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필드 V에서 등장한 일본 제국 육군 소속 치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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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필드 V에서 등장한 일본 제국 육군 소속 치누 카이 |
7.1.4. Gunship Sequel WW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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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nship Sequel WW2에 등장한 치누 |
7.2. 만화
7.2.1. 걸즈 앤 판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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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즈 앤 판처의 치누 |
참고로 주차장에 있는 모습은 츠치우라의 육상자위대 기지에 있는 유일한 실물 치누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했다.
이 치누도 이전의 전과와 마찬가지로 국산 전차라는 이유로 호평을 받으며[20] [21]애니에 등장하게 되었는데 본편에서의 결말을 보면, 결국 감독 및 제작진들도 나중엔 이게 어떤 물건인지 알게 된 듯.. 덕분에 OVA의 전차 소개 코너에서는 소개를 담당한 아키야마 유카리마저도 다른 전차들은 강점들을 좌르륵 늘어놓으며 설명하는 와중에 치누만은 아예 대놓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강해보이는 전차"라는 설명이 뜨며 확인사살.
극장판에서는 결승전의 굴욕을 만회하기위해 분기탱천하며 훈련을 거듭한 개미핥기 팀이 그 변속기 뻑뻑하다는 치누로 드리프트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정도의 훈련 끝에 75mm 포를 활용하여 M26 퍼싱을 격파하는 등 처음으로 치러본 실전임에도 제법 활약하며 TVA의 굴욕을 만회하며 시청자들에게 점수를 땄지만 최종전에서 이번에는 너무 힘을 준 나머지 변속 레버를 부러뜨리는 바람에 조종불능 상태에 빠져 센추리온 전차에 의해 리타이어. 물론 상대가 그 시마다 아리스인 만큼 변속 레버가 멀쩡했더라도 얼마 버티진 못했을 것이다. 거기에 누가 오아라이 학원생이 아니랄까봐 성인 남성에게도 제법 무거운 75mm 포탄을 좁은 차내에서 가볍게 휙휙 던져서 건네고 그걸 한 손으로 턱턱 잡아다 주퇴기에 처넣어 장전(...)하는 모습이 압권.
최종장에서는 1라운드 BC자유 학원전에서 소뮤아 S35 한대를 격파한 뒤 플래그차인 마리의 르노 FT 격파를 시도하다 안도에게 격파, 2라운드 치하탄 학원전에서는 성과 없이 카미 1, 2호에게 격파되었으며, 3라운드 케이조쿠 고교전에서 플래그 차량을 맡았다.
7.2.2.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11권에서 포탑에 현대식 무인기관포탑을 올려놓은 식으로 마개조한 버전이 나오는데 주인공에게 당연하다는 듯 털린다. 주포를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기관포만으로도 인간을 상대하기엔 충분하다 못해 과한 상황이었기에 큰 문제는 아니었다. 전차가 장애물에 걸린 상황에서 전차 하부를 관통당해 조종수가 무력화된 틈을 타, 외부 카메라와 기관포를 파괴당함으로서 무력화된다. 그렇게 된 원인은 제병협동전술을 무시하고 호위해줄 보병 없이 전차 단독으로 행동한 것 때문이었다.8. 모형
8.1. 프라모델
8.2. 브릭
9. 기타
오키나와 사투리로 치누(チヌ)라고 하면 감성돔을 뜻한다. 감성돔의 일본 표준어는 미나미쿠로다이(ミナミクロダイ).치누가 피봇 턴이 가능하다고 하는 내용이 일어판 위키백과에 서술되어있다. 치헤의 차대를 그대로 유용했는데 치헤 문서에는 이 내용이 없는 것으로 보아 와전되었거나 왜곡으로 보인다.
10. 관련 문서
11. 둘러보기
기갑차량 둘러보기 | ||
대전기(1914~1945) | 냉전기(1945~1991) | 현대전(1991~) |
[1]
Zaloga, Steven J. (2007). Japanese Tanks 1939–45. Oxford: Osprey Publishing. ISBN 978-1-8460-3091-8, p. 22. & Taki's Imperial Japanese Army: Type 3 "Chi-Nu"
[2]
비슷하게 75mm 주포를 장착한 중형전차인
4호 전차 후기형과
M4 셔먼에 비해선 심각하게 가볍다. 그나마 비슷한 수준의 전차는 스웨덴의
Strv m/42가 있긴 하다.
[3]
Hara, Tomio 1972, p. 18.
[4]
차체 전면 동축기관총 사수석에 1정 있다. 포탑 상부의 대공용 마운트에 1정을 추가로 더 장비할 수 있다.
[5]
Tomczyk, Andrzej (2005). Japanese Armor Vol. 4. AJ Press. ISBN 978-8372371676.
[6]
Taki's Imperial Japanese Army: "Tank Guns" Type 3 75mm Tank Gun
[7]
하지만 점보 셔먼과 현지 개조 이지에잇을 보면 미군은 수틀리면 셔먼에 추가 장갑을 증설해서 티거 이상의 장갑을 마련할 수 있었으며 점보셔먼 또한
몰락 작전 당시 투입될 예정이었다.
[8]
여기서 사용한 포는 원판인 90식 75mm 야포로서 개수되어 탑재된 치누의 3식 대전차포는 여기 나와있는 것보다 관통력이 더 강하다.
[9]
주포 바로 윗쪽 해치는 점검용으로 추정되지만 좌우의 작은 해치 2개는 무슨 용도인지 찾을 수 없었다.
[10]
그이전에 일본군이 싸워야 할 환경을 생각해보자. 비가 오면 그대로 안으로 물이 들어온다.
[11]
포좌, 조준기를 재설계하고 주퇴복좌기의 후퇴거리를 680mm로 단축하는 정도의 소소한 개량.
[12]
자료를 찾기 극히 힘들다. 3식 전차포에 텅스텐을 사용한 특수 철갑유탄이 존재했다는 문서를 찾을 수 없었으나 실존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문서의 내용은 보존하고 일부 서술에 수정을 가했다. 탄 자체는 37mm, 47mm 전차포용으로는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며, 일반적인
APCR과는 다르게 기존 철갑탄의 재질만을 텅스텐 합금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13]
# 해당 아카이브의 27쪽 왼쪽 상부에 37mm, 47mm 전차포에 텅스텐을 사용한 실험용 탄의 거리 별 관통력이 다뤄져 있고, 35~37쪽까지 탄도, 40~45쪽에 드로잉이 그려져있다.
[14]
M26 퍼싱도 당시 셔먼의 수와 비교해보면 생산량이 적은 편이었다.(약 2,800대) 처칠은 보병전차로 분류가 다르다.(총 생산수 약 5,800대)
[15]
Mk.I~VI까지는 76.2mm, Mk.VII~XI는 95mm이다.
[16]
점보 셔먼 등에서 실증된 바 있다.
[17]
재미있게도 치누 개발에 참여한 '소네 마사노리(曽根正儀)'는 전차매거진(戦車マガジン) 1980년 5월호에서 위와 같은 뉘앙스로 말하며, 연철을 사용했다는 소문을 부정했다.
[18]
게다가 그 외에도
IS-3,
T-44,
센추리온 전차,
코멧 전차 등 전쟁이 끝나버려 유럽전선에서 얼마 활약을 못한 전차들이 투입될 계획도 있었다.
[19]
동
시대
다른
국가의
전차는 8티어 정도에 배치된다. 물론, 2차대전에서 조기 탈락한 프랑스는 대전기 전차는 4티어
B1이 끝이고, 중국의 대전기 전차는 M5 스튜어트가 마지막. Type T-34(T-34 1943년 형)은 소련에서도 씨가 말라가던 때라 소량만 중국에 넘어갔으며 실전 투입 용도는 아니었다.
[20]
DVD 특전영상 중, 육자대 전차학교에서 일본산 전차들에 대해 설명하던 스즈키 타카아키(걸&판의 밀리터리 슈퍼바이저 담당)가
4호 전차와 거의 동등한 전차라며 자랑모욕하니
미즈시마 츠토무 감독이 감탄을 하는 장면이 들어있는데, 사실 이 영상은 막 제작결정이 되어서 사전조사작업을 진행하던 때에 찍은거라 미즈시마 감독이 전차에 대해 거의 모르던 시기였다. 또는 전차에 대해선 아는데 마이너한 자국 전차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을수도 있다. 어쨌든 밀리터리 슈퍼바이저가 좋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집어넣는 건 당연한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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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4호 전차와 거의 동등한 전차라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다. 4호 전차는 원래 운용 목적이 보병지원이었던 전차였고 대전차는 3호가 맡는 교리였기 때문에 F2 이전 사양까진 스펙 상의 장갑과 화력 자체는 치누가 우위에 있긴 하다. T-34 쇼크로 인해 본격적으로 대전차 임무에 투입되기 시작하는 4호 전차인 F2형(G형)부터는 치누의 성능을 뛰어넘으며 G형 후기부턴 전면 장갑이 증설되면서 방어력도 크게 차이난다. 치누는 4호는 커녕 장갑이 증설되고 50mm 장포신을 탑재하기 시작하는 중후기형 3호 전차에도 적잖이 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