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식 자주포는 구식인 38식 15리
유탄포에 기동성을 더해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게 하자는 의도에서 개발되었다. 모델이 된 것은
독일군이 운용한
1호 자주포와
그릴레같은 15cm sIG 33보병포를 탑재한 자주포였다.
약칭 호로(ホロ)라는 이름으로 1944년 7월에 육군기술본부에서 신형자주포의 개발이 시작되어 8월에 일찌감치 시제차량이 제작되었다. 38식 유탄포는
치하의 차체에 탑재되었고 포의 앞쪽과 측면과 상면에 방호판을 장비했다.
방호판은 정면이라 해도 두께가 25mm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뒷부분은 무방비였던 점 등 당시 거의 모든
자주포 ,
구축전차들이 가지는 결점을 모두 갖고 있었지만 실전에서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준기는 직접조준사격이 가능하여 이것이 본 차량의 대구경 화포의 위력을 활용해 대전차 전투를 상정해 개발되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포의 선회각도는 좌우 3도뿐이라 적은 사각이 문제였다.
포탄은 전투실 및 기관실 상부의 포탄상자에 탑재되었는데 그 수량은 12발 또는 28발이라는 등 현재까지 확실하지가 않다.
당시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4식 자주포를 생산했지만 전쟁 막바지여서 12문(25문이라는 설도 있다)정도의 소량만 제작되었다.
개발당시 미군과의 일대격전지로
필리핀을 선택한
일본 육군은 이 호로(ホロ)차를 바로 4식 15리 자주포라 제식화하여 긴급히 추가전력으로 구성해 필리핀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부대편성에는 육군 야전포병학교에서 요원들이 선발되어 1944년 12월 8일에 4식 15리 자주포 3문을 장비한 제1 자주포 중대를 만들었다.
제1 자주포 중대는 빨리 필리핀으로 보내기로 했기 때문에 22일에 수송선에 실린 채 필리핀으로 향했다. 그러나 1945년 1월 1일에 필리핀 근해에서 수송선이 적기의 공습을 받아 중대는 자주포 1문과 많은 장비품을 잃었다. 우여곡절끝에 필리핀에 상륙한 중대원들과 자주포 2문은 제14방면군 직할의 제14 방면군 가편자주포 중대로 재편되어 독립전차 제 8중대와 같이 클라크 지역에서 비행장 방위임무에 종사했다.
비행장 방위전때 4식 자주포는 그 위력과 기동성을 발휘해 미군의
M4 셔먼들에게 피해를 입히기도 했지만 압도적인 미군의 공세에 밀려 2월 및 3월에 거의 다 격파되어버리고 잔여병력은 산악지대로 후퇴했다.
종전 직전에 일본 육군은 본토결전용으로 3식 포전차와 4식 자주포를 근간으로 하는 독립자주포 10개 대대의 편성을 구상해 육군야전포병학교에서 요원교육과 자주포의 배치를 개시하고 정비하던 시점에서 패전을 맞이했다. 4식 자주포는 당시 각 부대 전부를 합쳐 10문 정도가 배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