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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97년 |
함경남도 함흥 | |
사망 | 1970년 5월 13일 |
일본 오키나와 | |
상훈 | 2019년 건국훈장 애족장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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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임시정부 계열 독립운동가.2. 생애
2.1. 해방 이전
황진남은 1897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이후 부모를 따라 하와이로 가서 고등교육까지 마치고, 1919년 캘리포니아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캘리포니아 대학교에 입학한 그 해 3.1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황진남은 독립운동을 위해 대학교를 자퇴하고 재미동포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이후 임시정부로 가서 도산 안창호의 통역관 겸 임시정부 외무부 참사로서 안창호의 외교 활동을 도와주었었다. 1921년 유럽의 독일로 거처를 옮겨 베를린 대학교에 입학하여 학업을 시작하였다.
1923년 일본이 관동대지진으로 조선인을 학살한다는 내용을 독일에서 규탄하였다. 이후 프랑스의 파리 소르본 대학교에 들어가 학업을 이어갔고, 파리에서 프랑스인과 결혼하였다. 1938년 귀국하여 고향인 함흥에서 교사생활을 하던중 1948년 해방되었다.
2.2. 해방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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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과도입법의회 의원 시절 |
3. 사후
경기도 파주시 하늘나라공원에 그의 묘지가 안장돼있다가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으로 이장됐다. 대한민국 정부는 황진남의 공훈을 기리며 201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4. 여담
- 놀랍게도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최초로 만난 한인이다.
- 엄항섭은 “황진남 군처럼 하던 공부를 중지하고 임시정부에 투신해라“라고 기고문을 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