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05 23:39:30

좌분

진서 후비전(后妃傳)
장춘화 하후휘 양휘유 왕원희 양염 양지 좌분 호방 제갈완 가남풍 사구

진서(晉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color: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제기(帝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사마의 사마사 · 사마소(昭) 사마염
4권 「혜제기(惠帝紀)」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사마충(衷) 사마치 · 사마업 사마예 · 사마소(紹)
7권 「성제강제기(成帝康帝紀)」 8권 「목제애재폐제기(穆帝哀帝廢帝紀)」
사마연(衍) · 사마악 사마담 · 사마비 · 사마혁
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 31·32권 「후비전(后妃傳)」 ||
[ 재기(戴記) ]
||<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width=33%> 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2><width=34%>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width=33%>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
유원해 , 유화 · 유선, 유총 ,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석륵 , 석홍 · 장빈, 석계룡 ,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모용외 , 배억 · 고첨, 모용황 , 모용한 · 양유,
110권 「모용준재기(慕容儁戴記)」 111권 「모용위재기(慕容暐戴記)」
모용준 , 한항 · 이산 · 이적, 모용위 , 모용각 · 양무 · 황보진,
112권 「부홍등재기(苻洪等戴記)」 113 · 114권 「부견재기(苻堅戴記)」 115권 「부비등재기(苻丕等戴記)」
부홍 · 부건 · 부생 , 왕타, 부견 , 왕맹 · 부융 · 부랑, 부비 · 부등 , 삭반 · 서숭,
116권 「요익중등재기(姚弋仲等戴記)」 117 · 118권 「요흥재기(姚興戴記)」 119권 「요홍재기(姚泓戴記)」
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 윤위, 요홍
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800080><tablebgcolor=#800080> ||
}}} ||

1. 개요2. 생애

1. 개요

左芬
(? ~ 300)

서진의 인물이자 좌사의 누이동생으로 자는 난지(蘭芝).

천하의 명문장 삼도부(三都賦)[1] 를 편찬한 당대의 문장가 좌사의 여동생이다.

2. 생애

청주 제국 임치현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공부를 좋아해 문장을 잘 지으면서 명성이 좌사에 버금갔으며, 사마염이 좌분의 문필과 재능이 뛰어나단 소문을 듣고 후궁으로 들였으며, 272년에 수의가 되었다. 조서를 받들어 걱정에 관한 문장을 짓고 완성해 이사부라 이름을 붙였다.

이후에 귀빈(貴嬪)에 책봉되었고 용모가 못생겨서[2] 호색한으로 유명했던 사마염의 총애를 받지는 못했지만 재덕(才德)으로 예우를 받았다. 몸이 약하고 걱정이 많아 감상에 젖어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항상 누추한 방에 살아서 사마염이 매번 화림(華林)에서 놀 때마다 항상 수레를 돌려 좌분을 보러왔다. 문학이론을 이야기하게 되면 답변이 맑고 아름다워서 주변 사람들이 모두 찬미했다.

274년 7월에 무원황후가 죽자 뇌문을 지었고 276년에 무도황후를 들이면서 사마염이 송을 짓도록 하자 글을 지었으며, 이후 만년공주가 죽자 사마염이 뇌문을 짓게 하자 그 문장이 화려했다.

사마염이 좌분의 글을 중하게 여겨 매번 공물이나 신기한 물건이 있으면 반드시 조서를 내려 부송을 짓게 했고 이로 인해 여러 차례 은사를 받았으며, 좌사에게 답하는 시, 편지, 부송 수십 편이 있었지만 전해지지 않는다.

20개 넘는 시, 노래 등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전해지는 내용에 따르면, 사랑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고 슬픔이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은 그녀가 못난 외모와 연약한 몸 때문에 황제의 총애를 받진 못했을 것이라고 본다. 좌분은 재능있는 여인이지만 황제의 문학적 소품으로 살다 간 인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좌분이 항상 누추한 방에 살았다는 것은 황제의 후궁들에게 주어진 처소의 차등 때문에 나온 말인데, 황제가 총애하는 애첩일수록 더 좋은 집이나 방에 살 권리가 있었다. 좌분이 자연스럽게 누추한 방에 살았던 것은 총애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1] 당시 사람들이 이 삼도부를 베끼느라 낙양의 종이 값이 폭등하기도 했다. [2] 오빠 좌사도 못생겼다는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