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3 01:13:17

장옥정, 사랑에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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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6BDC3,#010101><colcolor=#18101B,#DDDDDD> SBS 월화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
(2013)
Jang ok-jeong, Living in Love
파일:장옥정 사랑에 살다 메인 포스터 2.jpg
장르 팩션, 사극, 미스터리, 로맨스
채널 SBS
방송 시간 월 · 화 / 오후 10:00 ~ 오후 11:10
방송 기간 2013년 4월 8일 ~ 2013년 6월 25일
방송 횟수 24부작
제작사 스토리티비


<colbgcolor=#A6BDC3,#010101><colcolor=#18101B,#DDDDDD> 제작 배선해, 박희설, 고대화
연출 부성철
극본 최정미
원작 최정미 《장옥정, 사랑에 살다》
출연 김태희, 유아인, 홍수현, 재희, 이상엽, 한승연, 성동일
스트리밍 Wavve | 왓챠
시청 등급 파일:15세 이상 시청가 아이콘.svg 15세 이상 시청가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등장인물3. 시청률4. 반응
4.1. 방영 전4.2. 방영 후
5. 평가
5.1. 캐스팅5.2. 희빈 장씨 캐릭터에 대한 나쁜 평가5.3. 시대고증 관련 비판
5.3.1. 하이라이트 영상5.3.2. PPL 논란5.3.3. 장옥정 설정 관련
5.4. 배우들 연기 평가
6. 사실과 다른 점7. 기타

[clearfix]

1. 개요

2013년에 제작 및 방영한 SBS 월화 드라마.

그 동안 역사 속 요부로만 알려진 장희빈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 깊이 있는 내용과 재미, 역사적 상상력을 풀어낸다는 취지로 만들어지는 사극으로 최정미의 소설 '장희빈 사랑에 살다'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침방 궁녀로 들어온 조선의 여성 디자이너로서의 장희빈을 그려낸다고 하였다.

2. 등장인물

3. 시청률

  • 굵은 글자는 '최고 시청률'을 의미하고, 빨간 글자는 '시청률 상승'을 의미하고, 파란 글자는 '시청률 하락'을 의미합니다.
  • 시청률 제공 : 닐슨코리아
회차 (방영일) 대한민국(전국) 변동 서울(수도권) 변동
1회 (2013.04.08) 11.3% - 12.8% -
2회 (2013.04.09) 9.1% 2.2%▼ 10.0% 2.8%▼
3회 (2013.04.15) 7.9% 1.2%▼ 8.6% 1.4%▼
4회 (2013.04.16) 7.0% 0.9%▼ 7.5% 0.9%▼
5회 (2013.04.22) 6.9% 0.1%▼ 8.2% 0.7%▲
6회 (2013.04.23) 7.5% 0.6%▲ 7.9% 0.3%▼
7회 (2013.04.29) 8.2% 0.7%▲ 8.7% 0.8%▲
8회 (2013.04.30) 7.8% 0.4%▼ 7.8% 0.9%▼
9회 (2013.05.06) 9.3% 1.5%▲ 9.7% 1.9%▲
10회 (2013.05.07) 8.0% 1.3%▼ 7.7% 2.0%▼
11회 (2013.05.13) 9.2% 1.2%▲ 9.3% 1.6%▲
12회 (2013.05.14) 9.2% - 9.0% 0.3%▼
13회 (2013.05.20) 9.6% 0.6%▲ 9.4% 0.4%▲
14회 (2013.05.21) 9.2% 0.4%▼ 8.9% 0.5%▼
15회 (2013.05.27) 11.1% 1.9%▲ 10.8% 1.9%▲
16회 (2013.05.28) 10.5% 0.6%▼ 10.0% 0.8%▼
17회 (2013.06.03) 11.4% 0.9%▲ 11.2% 1.2%▲
18회 (2013.06.04) 11.3% 0.1%▼ 10.9% 0.3%▼
19회 (2013.06.10) 11.0% 0.3%▼ 10.5% 0.4%▼
20회 (2013.06.11) 10.0% 1.0%▼ 9.3% 1.2%▼
21회 (2013.06.17) 10.2% 0.2%▲ 9.9% 0.6%▲
22회 (2013.06.18) 9.9% 0.3%▼ 9.9% -
23회 (2013.06.25) 9.0% 0.9%▼ 8.2% 1.7%▼
24회 (2013.06.26) 10.3% 1.3%▲ 9.7% 1.5%▲
* 일단 1화 방영 시청률은 11.3%으로 동시기 직장의 신의 12.3%, 구가의 서 1화의 11.2%와 막상막하였으나, 3화, 4화를 거치며 7% 시청률로 추락. 5화는 자사 월화극도 잡아먹는다는 강력한 괴물 가요무대가 방영하는 악재와 겹쳐서 6.9%. 장희빈 소재를 사용하는 드라마가 보통 이 정도로 추락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확실히 초반은 바닥을 기었다!
* 한 예로 2003년 김혜수의 장희빈도 초반에는 시청률이 낮았으나 후반 들어 작가가 교체되며 시청률이 크게 오른 바 있다.[1] 김혜수의 연기력이나 배우 포스 김태희와 비교하면 넘사벽 수준이었다는 것. 으로, 1995년 SBS에서 방영된 장희빈을 연기한 정선경은 그냥 레전드급.
* 시청률은 3사 월화극 중에서 한 자릿수에 꼴찌였다가 장옥정이 입궁하고 권력의 암투가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에는 시청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하기도 하는 등 꽤나 롤러코스터를 탔다. 하지만 종영을 앞둔 시점에서는 여전히 시청률이 9 ~ 11% 사이에서 왔다갔다 할 뿐이었다. 장옥정이 갑작스레 악녀로 돌변하고 극 전개가 너무 빨라 시청자들이 이해 불가능하니 볼 재미를 잃어 시청률이 더 이상은 올라가지 않는 게 이유인 듯 했다. 그래도 유아인의 숙종 연기에 대해서는 방송 내내 호평이 계속 이어졌고 ‘숙종 앓이’ 하게 만든 유아인 때문에 장옥정을 본다는 시청자들이 대다수였다. 오죽하면 제목을 숙종, 사랑에 살다로 바꾼 게 더 자연스럽다고들 할 정도이니..
* 그동안 원작자가 극본을 집필하여 생긴 일반 시청자와의 내용 이해 부족, 세세한 고증 연구를 못한 제작진들 덕분에 초반 시청률은 충공깽 수준이었으나, 6회에서 7.5%로 시청률이 반등하더니 7회에서는 극중 김태희의 목욕신 공개 및 극본이 수정되고[2] 김태희의 연기도 괜찮아졌다는 평을 받으며 시청률이 드디어 8%대로 진입했다.
* 직장의 신도 종영했겠다, 이제 그 인기는 <장옥정, 사랑에 살다>로 넘어올 듯 했으나, 오히려 구가의 서로 시청층만 더 넘어가 버렸다. 똑같이 종영하는 구가의 서가 닐슨기준 시청률 22%를 넘은 것이 그 예. 새로 시작한 KBS 2TV의 드라마 상어가 맥을 못 춘 것도 이런 이유라 하겠다.
* 결국 월화극 킬러 가요무대의 벽을 넘지 못하고 시청률 10.2%(닐슨 기준), 24화로 종영되면서 2012년 대풍수에 이은 SBS의 재앙이 되고 말았다. 24화는 그야말로 폭풍전개, 소드마스터급 엔딩.
* 이런 와중에 낮은 시청률로도 또 말도 많았다. 결정적으로 상기했듯이 드라마 자체의 완성도가 높다고 볼 수 없었다는 게 가장 큰 독으로 작용했다.

4. 반응

4.1. 방영 전

인현왕후 역에 동년배 여배우들 중에서도 사극 경험이 특히 많은 홍수현이 캐스팅 되고, 인경왕후 역에[3] 예전에 사극( 한성별곡, 추노) 쪽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김하은이 캐스팅되면서 공주의 남자 초반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이 묻히지 않을까 우려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나마 홍수현이 공주의 남자 후반에서는 주인공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비중이 줄어들었기에 크게 부각되지 않았으나, 인현왕후 희빈 장씨 숙빈 최씨와 함께 드라마를 이끌어 갈 3대 축인 동시에 희빈 장씨의 라이벌 포지션이 될 가능성이 커 비교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숙종의 정비 라인인 인경왕후, 인현왕후 역에 비슷한 나이대 여배우들 가운데서는 사극 경험이 꽤 있는 여배우들이 캐스팅 되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불안요소가 상당 부분 존재하는 게 사실이었다는 평. 일단 1화에선 그럭저럭 괜찮아진 면도 있다 정도였다.

4.2. 방영 후

가상역사물 성격이 강해서인지 이전 장희빈과 다른 점도 많이 보였는데, 이전 장희빈에서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던 희빈 장씨의 당숙부 장현을 부각하거나, 숙종과 장옥정을 두고 라이벌격 관계를 형성하는 조선 최고의 거부 현치수라든지[4] 희빈을 연모하는 동평군의 존재 등의 요소들이 스토리상으로 존재한다.[5] 숙빈 최씨는 한승연의 표독스러운 연기 때문에 이전 장희빈 드라마와 달리 악역 및 민폐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극이 진행될 수록 무리수를 많이 던졌다는 반응. 또한 기존 역사와 끼워맞추려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을 뿐더러, 주변 인물들의 평면적인 악역화나 조선시대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상황전개에 오히려 이전의 드라마가 더 나았다는 평을 들었다.

5. 평가

5.1. 캐스팅

장희빈 숙빈 최씨 역에는 당대의 쟁쟁한 배우, 그것도 연기력이 어느 정도 보장된 배우들이 주로 캐스팅되었기 때문에 이런 캐스팅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동시기 방영되는 구가의 서 캐스팅이 차라리 안정적이라는 평까지 있을 정도였다.[6][7] 주연인 장희빈 얘기는 없고 조연의 연기력이 더 뛰어나다고 평가한 기사까지 나왔다. 거기에 명안공주 역할에 달샤벳 아영이 캐스팅되면서 캐스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명안공주는 낙마 이후 완전히 공기가 돼버렸다. 비판하는 자들은 "소설 원작이라지만 조선시대 패션 디자이너라는 설정부터가 무리"라고 지적했다.

한승연 아역 배우 출신이지만 현직 아이돌 가수로서 성인이 되고 첫 정극, 그것도 사극 도전이었기 때문에 연기력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이 상당히 많았다. [8] 실제로 드라마 방영 내내 한승연의 발연기는 몰입 방해에 엄청난 원흉이 되었고, 비난도 들었다. 후에 한승연도 직접 당시 연기가 많이 부족했다고 언급했다. #

주요 등장인물로 장옥정을 짝사랑하는 재희가 6회에 등장하기로 했으나 등장하지 않았다. # 그러다가 13회가 돼서야 등장. # 시청자 반응은 기획의도와 이야기가 달라져서 현재는 극의 중심 인물이 못 되었다고 지적했다.

5.2. 희빈 장씨 캐릭터에 대한 나쁜 평가

역대 희빈 장씨를 모두 집대성해서 최악으로 순서를 정했었다. 그 결과 본 작품의 김태희가 부동의 1위를 차지했다.

먼저 시청자가 보고 싶었던 건 착한 장희빈이 아니었고, 더 큰 문제는 장희빈과 숙종을 띄워주려고 다른 등장인물들을 일방적인 악역으로 만든 것 때문이다.[9] 드라마 방영을 시작한 시점부터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를 운운하며 '이게 실제 역사입니다' 하면서 장옥정을 띄우고 숙빈 최씨 인현왕후를 무작정 까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기존 장희빈 소재의 패악무도한 장희빈이 주로 인현왕후전 서인 노론 계통의 야사[10]로 인해 왜곡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며 그 이미지와 괴리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아래에 언급되었듯이 이 드라마 속에선 장희빈이 무슨 행동을 하든지 다 이유가 있고 인현왕후[11]와 숙빈은 그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모습만 늘어나니 오히려 장옥정에 대한 반발을 일으켰다. 이미 이 드라마가 퓨전, 가상역사 타이틀을 걸고 있다는 점에서 실제 역사와 부합한다고 말하기는 무리이며 오히려 실제 역사에 대한 존중이 없는 측에 가깝다. 실제 등장인물만 가져와 작가 입맛대로 아무렇게나 고쳐 쓴 로맨스물이라는 가차없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드라마 내에서 쓸데없는 장희빈 전용 러브라인까지 만들어서 스토리가 더욱 꼬였다는 비판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장희빈 드라마는 숙종을 놓고 벌이는 인현왕후 vs 장희빈 구도가 보통인데 여기에 장희빈을 마성의 여자로 만들 계획이었는지 숙종도 모자라 웬 갑툭튀 거상에 동평군까지 오만 남자가 장희빈에 꼬이는 상황을 설정하니 스토리 라인이 갈팡질팡하다가 그야말로 안드로메다행. [12]

하지만 다른 면을 살펴보자면 희빈 장씨 투표가 나올 정도로 닳고 닳은 캐릭터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었다는 것은 인정할만 하다. 23년 현재는 이 인물의 재평가가 이루어졌다지만 2013년 당시엔 그러지 않았기 때문. 기존의 사씨남정기 바탕인 현숙한 정실 패악스러운 후첩이란 인물 설정에서 벗어나 인현왕후를 충분히 호전적인 인물로, 숙빈 최씨 무고의 옥 사건의 밀고자로, 장옥정을 무조건 악역이 아니고 오히려 정쟁의 피해자라는 인물로 설정한 것은 조선왕조실록을 대부분 바탕으로 함으로 충분히 납득 가능하다. 괴리감을 말한다면, 드라마 상에서의 장희빈은 기본적으로 선한 인물이지만 필요 할 때 악할 줄 아는 인물이어서 위 첫 문장 처럼 마냥 인현왕후스러운 캐릭터가 아니다. 오히려 인현왕후 숙빈 최씨는 긴 시간 선역화 되어 왔다. 이 오래된 흑백 논리와 야사의[13][14][15]기반한 캐릭터성에 지친 몇 시청자들은 오히려 절절한 로맨스에 집중하기 편했다는 반응도 많다.

다음은 역대 최악의 희빈 장씨 선정과 그에 따르는 평가들이다. #, #.
등수 비율 배우 출연시 나이
(방송년도)
작품 방송국 평가
1위 5,444명
(46%)
김태희 34살[16][17]
(2013년)
장옥정, 사랑에 살다 SBS 이도저도 아닌 어물쩡표 장희빈.캐릭터가 없다.
2위 1,611명
(13.6%)
이소연 29살
(2010년)
동이 MBC 재미없다. 그냥 단아하기만 하다.[18]
3위 1,347명
(11.4%)
윤여정 25살
(1971년)
장희빈 MBC 너무 무섭고 독하다. 악역인 게 정도가 지나쳤다.
4위 973명
(8.2%)
정선경 25살
(1995년)
장희빈 SBS 정선경 개인 연기력으로 처절하게 때웠다.
5위 944명
(8%)
김혜수 33살
(2002년)
장희빈 KBS 관능적이지만 싸움을 너무 잘한다.
이건 장희빈이 아니라 항우다.
6위 917명
(6.9%)
전인화[19] 24살
(1988년)
조선왕조오백년
인현왕후
MBC 부드러운 카리스마. 악역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7위 704명
(5.9%)
이미숙 22살
(1981년)
여인열전-장희빈 MBC 섹시함-표독스러움-카리스마를 모두 갖췄다.

1위라서 문제가 아니라 2위~7위와의 간극들이 너무 압도적이라서 정말로 참담했다. 그나마 2위인 이소연도 연기력 자체가 비판받은 것이 아니라 극중 캐릭터가 장희빈하면 떠오르는 화끈하고 막장적인 캐릭터가 아니어서 아쉬웠다는 의견과 억지적인 스토리 설정으로 욕먹게 되었다는 것이다.실제로 방영 당시에는 외려 이전 장희빈들과 달리 공감할 만한 이유로 변해가는 악역이란 점에서 호평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 정도면 그대로 참담 그 자체.

반론을 해보자면, 저 투표는 사실상 옛날 그 요녀의 이미지를 가져가며 패악스럽고 표독스러웠던 그리고 오래된 드라마의 장희빈이 높은 점수를 받은 게 사실이다. 예를 들어 드라마 동이의 방영 당시 이소연 배우의 장희빈은 매우 호평을 받았고 드라마도 역사와 달랐지만 좋은 평가를 받아 주연인 한효주가 대상을 받았음에도 불구 2위라는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연령층을 다르게 잡거나, 희빈 장씨의 여러 재평가가 이루어진 지금 다시 투표를 해보았다면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결론을 내면 대본이 갈팡질팡하면서 처음에 내걸었던 디자이너 장옥정이 아닌 기존의 악녀와 별 차이 없는 캐릭터가 되어 버린 것도 문제지만 전개가 광속으로 빨라지면서 개연성[20]은 날아가고 그렇게 재앙급 장희빈으로 남게 생겼다.

5.3. 시대고증 관련 비판

5.3.1. 하이라이트 영상

제작발표회 때 8분 정도의 하이라이트 영상이 떴다. 그런데 아무리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일지라도 믿으면 심히 골룸한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또한 작중에 조선힐마네킹이 등장하고, 연회라 이름붙여진 스탠딩 파티까지 등장하면서 퓨전사극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지나치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방영 후로선 조선힐은 지운건지 눈에 띄지 않고, 연회도 중요한 장면으로 나오질 않는다.

이 부분에 대해 제작진도 논란이 될 것을 우려했는지, 방영시작 전에 이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으나 등장인물과 사건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픽션화 된 부분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인경왕후 인현왕후의 시호는 사후 붙여진 것이지만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물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는 자막을 내보내고 있다.

거기다가 극 중 장현 역을 맡은 성동일은 마냥 내시 역할인 양 수염을 안 붙이고 나왔는데, 제작사 관계자는 그것에 대해 "장현의 직업인 역관의 특성상 외국인과의 접촉이 많으므로 그것에 맞춰 수염을 제거했다"고 했다. 조선 시대 역관들이 접촉하는 외국인이라고 해 봐야 중국, 일본, 류큐, 몽골 정도의 동북아시아 일대 사람들인데 해당 문화권에는 수염을 완전히 깎는 관습이 거의 없었다는 걸 생각하면 그냥 오류.

5.3.2. PPL 논란

게다가 5월 27일 방영본에서는 대놓고 PPL을 해서 비난이 쏟아졌다. 숙종이 미행을 나갔는데 저잣거리에 떡하니 목우촌 간판이 노출된 것. [21]

파일:external/static.news.zumst.com/htm_201305289646c010c011.jpg
[22]

제작진의 변명이 압권인 게 "숙종은 한글을 사랑했다"[23]한글을 사랑한 것과 목우촌이 무슨 관계인 것인지는 넘어가자 그러나 조선구마사가 등장하면서 재평가가 나오고 있다.

5.3.3. 장옥정 설정 관련

초기에 "장옥정은 조선의 디자이너"를 표방하면서 고증이고 뭐고 개나 줘를 시전해서 엄청 까였다. 마네킹 등장부터 시작해서 하이힐, 한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남존여비 남녀칠세부동석이 엄격하던 당시에 양반 가문의 미혼 남녀가 자유로이 어울려 노는 스탠딩 파티[24], 기생 동원 패션쇼까지 충공깽. 신나게 까였음에도 제작진의 변명은 뻘소리 일색이여서 근본 없는 드라마라고 욕 먹었다. 의복 고증으로 까이는데 그동안 해놓은 뻘짓이 너무 과해서 헤어 스타일이나 당의 고증 이런 건 애교 수준. 궁중 여자들이 대비나 중전이나 후궁이나 할 거 없이 죄 머리에 애기들이나 착용하는 배씨댕기를 착용하는 것부터가 심각한 왜곡이다.

예전 시리즈와 같은 표독스러운 장희빈이 나오면서 그나마 좀 볼 만 하다는 평이 나오는데, 그러면서 드라마 초기에 나온 '조선의 디자이너 장옥정'은 날아버린 상황.

대본 쓰는 작가도, 정통 사극으로 가고 싶은데 방송국에서 자꾸 "퓨전으로 가라"는 압박이 와서 엄청 괴로워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파일:HvWitq1.png
파일:7juWh69.jpg
회임했다는 이유로 옥좌에 앉아 대신들 앞에 군림하는 여왕 장옥정(...)

사실 한국 사극의 전형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후궁은 엄연히 품계(종4품 이상)가 존재하는 신하고, 왕비는 내명부의 주인인데 장희빈이 너무 막나간다. 일개 후궁이 편전에 들어서 회임 발표를 하고[25] 대비전 상궁의 뺨을 때리고[26] 숙종의 암살 미수를 한답시고 궁궐에 자객이 난입하는 등[27] 갈수록 안들호로 가는 전개에 차라리 해품달처럼 가상의 인물로 하지 왜 장옥정으로 끌어들었냐는 원성이 나오고 있다. 작중 모란과 작약의 품계에 관한 내용이 나올 때 장옥정이 나비와 벌을 들어 인현왕후를 조롱하는데,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면 당장 사약을 내려도 무방할 정도. 심지어 인경왕후, 인현왕후, 장옥정, 숙빈 최씨까지 왕의 여자가 4명이나 등장하는데 장옥정 빼고 전부 숙종의 승은을 입은적이 없다[28] 밤을 보냈다는 듯한 언급이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고, 심지어 숙빈 최씨 소생의 영조도 태어나지 않는다. 애청자들도 욕 하면서 보는 사극이라는 의견.

작중 드라마의 대사만 봐도 현대극으로 완전 재무장했다고 하기에도 어려운 고어를 사용하면서도 단어나 내용은 자극적이고 저급한 아침드라마에나 나올법한 현대 대사들로 도배되어있다. 한마디로 옷만 전통을 입고 막장 드라마를 만든 셈. 장옥정이 점차적으로 강해지며 외부인들에게 맞서는 장면들 또한 당대 예라는 관념과는 상당히 어긋난 것들이다. 작가가 사이다를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반대로 그 사이다 장면으로 실존인물들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도 살펴봐야 할 점이다.

드라마는 처음인 작가와 사극에는 입봉인 제작진 때문에 상기한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그중 유일하게 까이지 않는 것은 음악감독. 2013년 6월 17일에 발매된 정규 OST앨범은 트랙이 무려 41개에다가 음악들의 제목을 보면 기획의도를 가장 잘 따라간것이 음악밖에 없는 듯 하다. 작곡가 김경범이 작곡한 '닿을 수 있나요'는 가수 이수영의 보이스를 잘 살렸다는 평을 받았으며 임재범의 '비가'는 겹치는 일부 배역들(성동일, 김하은, 민지아) 때문에 추노가 연상된다는 의견도 있다.

5.4. 배우들 연기 평가

드라마 캐스팅 단계부터 방영 직전까지 김태희의 연기력이 우려 되었고, 실제로 1화부터 논란은 현실이 되었다. 어떤 장면에서도 일관된 뻣뻣한 표정 연기와 어색한 사극톤 등 김태희의 연기력은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다행히 장희빈이 흑화하기 시작한 중반부터 안정된 연기를 보였고, 숙빈 최씨로 등장한 한승연의 발연기가 워낙 충격적이라(..) 김태희 연기가 상대적으로 좋은 반응이 있었으나 고증 따위 갖다버린 드라마 설정과 무너진 완성도 때문에 제대로 된 연기력을 평가 받을만한 상황이 아니어서 결국 연기력 논란을 잠재우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사족으로 1995년 방영된 ' 장희빈'의 정선경은 당시 장선우 감독의 영화 너에게 나를 보낸다로 데뷔해 '엉덩이가 예쁜 여자'라는 타이틀을 얻은 당시 2년차 신인배우였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연출자는 사극계에서 잔뼈가 굵은데다 엄하기로 소문난 이종수였는데,[29] 그 흔한 포옹씬도 연출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눈물나게 혼날 정도로 엄했다. 이렇듯 훌륭한 연출가와 정선경 개인의 노력 덕분에 정선경은 연기력으로 인정 받았고 드라마 대박과 동시에 3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김태희의 경우, 당시 연기 경력이 무려 13년차 중견배우급인데 여전히 연기력은 신인배우 수준에 머물러있고, 하물며 연출자도 드라마 몇 편 만들어 보지 못한 거의 초짜급인 신출내기인지라 서로 보완은커녕 각자의 부족한 실력만 드러내는 꼴이 되고 말았다. 장옥정 감독의 배우들 캐스팅 비화.

반면 연기력으로 '숙종 앓이'까지 양산한 유아인은 ‘新숙종..유아인의 물오른 연기, 숙종 앓이, 섹시 숙종’이라는 등의 호평들이 방송 내내 이어졌다. 기사1, 기사2. 김태희에 대한 연기 비판과 유아인에 대한 연기 호평이 대조를 이루며 드라마 제목을 바꿔 ‘숙종, 사랑에 살다’라는 기사까지 나오기도 했다. ‘동평군’ 을 연기한 이상엽은 종영 인터뷰에서 유아인의 연기력에 감탄했다고 소감을 남겼다. 촬영하는 동안 기억에 남는게 있냐는 질문에 “5~6개월 동안 촬영했는데 유아인의 연기에 굉장히 감동했고, 유아인의 모든 연기가 기억에 남는다”고 답했다. 이상엽 종영 인터뷰

다행히 김태희 대신 유아인이 극을 직접 끌고 간 덕에 시청률이 더 내려가는 건 피할 수 있었다. 다만 김태희와 마찬가지로 작가의 대본 때문에 힘들어했던 부분은 있는 것 같다.

대본의 막장성으로 치자면 역시 망한 캐릭터 인현왕후 민씨를 연기한 홍수현도 신나게 까여야 하지만 정작 홍수현 입장에서도 나와서 남는 게 없는 드라마였다.[30]

반론을 하자면 김태희 배우가 습관적으로 연기력 논란에 발을 들인 것은 여론의 물타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이바이마마에서도 호평을 받았지만 처음에도 걱정스럽다는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그 드라마의 팬이라고도 볼 수 있기에 중립을 지키진 못하겠지만 장옥정, 사랑에 살다를 실제로 지켜본 시청자들의 입장은 배우가 인생작을 만났다는 평이었다. 김태희의 연기는 실제로 눈에 보일 정도로 늘었었고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연기를 못한 숙빈 최씨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지만 김태희 배우의 연기는 실제로 눈에 보일 정도로 늘었었고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6. 사실과 다른 점

  • 명성왕후 김씨는 1642~1683년까지 살았고 1674년부터 1683년까지 왕대비로 살았다. 1686년 즉 왕대비 사후 3년 뒤 장옥정은 후궁으로 숙원에 올라갔다. 즉 드라마에서 왕대비와 숙원 장씨가 싸운 건 역사적 시간으로 보면 시체와 싸웠다는 걸 의미한다. 무수리 등 궁녀로 생활하며 명성왕후와 만난 적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후궁의 지위로서는 만날 수 없다.
  • 숙종은 1661년 8월 15일 경덕궁 회상전(會祥殿)에서 태어나 1667년 정월 왕세자에 책봉되고 1674년 8월에 즉위한다. 즉, 숙종은 이미 7살에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14살 때 이미 조선의 왕이 되어 있었다. 인경왕후는 1671년 11살세자빈으로 책봉되었으며, 당시 숙종은 11살, 인현왕후5살, 희빈 장씨13살, 숙빈 최씨2살이었다.
  • 위에 언급한 대로 극에서 인경왕후 인현왕후가 같이 세자빈 삼간택을 치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유일하게 고증이 잘 된 부분이라면, 13화에서 처음 등장하는 인현왕후의 계모인 풍창부부인은 실제로 인현왕후보다 8살밖에 많지 않은, 희빈 장씨와 동갑내기였고, 극 중에서도 언니뻘로 보이는 배우가 캐스팅되었다.
  • 숙종이 희빈 장씨를 만나게 된 때는 대체로 인경왕후 사후 즈음(1680년)으로 알려져 있으며, 숙종과 인경왕후의 금슬은 매우 좋았다고 한다. 즉위 초 딸을 2명이나 보았을 정도.
  • 희빈 장씨천출이 아니다. 흔히 '장씨의 어머니 윤씨가 조사석 처가 집안의 노비였고 그 당시 조사석과 사통했다더라'는 설이 알려져 있는데, 당시 기록하던 사관이 '그랬다카더라'라고 자기 의견을 적어놓은 것으로, 후일 숙종실록보궐정오 같은 날짜 기사에 '그거 허황된 소리임'이라고 정정했다. 그는 잘나가는 중인 집안의 딸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엄연히 정실 부인이다. 당숙인 장현만 해도 효종 8년에 이미 정2품 자헌대부를 제수받은 거물 역관이었다. 거기에 친오빠 장희재는 희빈 장씨가 궁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무과에 급제했고 희빈 장씨가 궁에 입궐했을 때 종6품 포도부장을 하고 있었다. 어느 조선왕조가 천출에게 포도부장이라는 관직을 줄지 생각해보자. 진짜 천민인 임꺽정이 괜히 도적이 된 게 아니다. 정6품, 종6품은 중앙 관직이라면 그 유명한 이조 정랑과 좌랑(전랑)이 6품에 해당하며 이는 외직으로 나가면 전설의 고향에서 만날 썰려나가는 수령급이었다. 그런데 장씨가 천출이라니 말이 안 된다. 덤으로 조선의 후궁도 엄연한 왕의 아내이기 때문에, 궁인이 승은을 입지 않는 이상 대부분은 간택 후궁으로, 엄연한 양반집 규수들이 상당수였다. 숙빈 최씨라는 예외적인 인물을 제외하면 천민이 정1품 빈 자리씩이나 올라갈 수는 없다는 것. 또, 장희빈은 왕비의 자리에까지 올랐는데 조선은 공식적으로 양천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양인만이 왕비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장희빈은 중인이었으나 중인 역시 어엿한 양인이었기에 왕비가 될 수 있었던 것.
  • 희빈 장씨의 입궁 시기는 분분하지만 생부 장형의 옥산부원군신도비 기록에 따르면 희빈 장씨가 어린 나이에 간택되어 입궁해 성장한 것으로 되어있으며, 숙종실록에도 머리를 따올릴 때부터 입궁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자의대비)의 수발을 드는 궁녀로서 생활하였다.
  • 숙종이 환국을 주도하고 막강한 왕권을 휘두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정통성이라는 배경이 있었다. 그는 조선 왕실에서도 보기 드물게 왕비 고명아들이었다.[31] '원자(원손)-세자-왕 테크'를 타는 데 큰 걸림돌이 없는 입장으로, 특히 정통성이나 명분, 봉건적 신분질서 등을 굉장히 중시했던 조선 성리학 사회에서는 가장 강력한 뒷배경이자 무기였다. 애초에 예송논쟁도 결국은 '정통성'이 '정치 권력'의 힘이라 생각했던 사대부들이 벌인 짓이었다. 현종의 통치기에 숙종 외에는 왕세자가 될 만한 이가 없었는데 신하들이 왕세자 책봉식을 거부할 수 있었을까?
  • 숙종 즉위 초는 1674년 2차 예송논쟁으로 남인들이 승리하여 남인들이 집권하고 있던 시기였다. 서인들이 적극 등용된 것은 1680년 경신환국 이후의 일이다.
  • 민유중이 명성왕후를 만나서 "제 여식 인현이..."라고 하는 대목이 있는데, ' 인현왕후'는 엄연히 사후(死後)에 내려진 시호다. 시호가 '효경숙성장순의열정목인현왕후(孝敬淑聖莊純懿烈貞穆仁顯王后)'라서, 끝부분만 따서 '인현왕후'라 불리는 것이다. 다만 인현왕후의 본명은 전해지지 않고 있고, 제작진도 이를 알고 있지만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냥 인물명을 인현으로 정했다고 1화 시작 전에 밝혔다.
  • 17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극중에 상궁들이 직접적으로 착용한 가체는 등장하지 않고 단지 쇼용 장식품으로서의 역할로 전락하였으며, 오히려 족두리가 보편적으로 궁 내에서 등장한다.[32] (족두리가 등장하는 계기가 된 가체금지령은 영조대에 시행되었다.) 엄청 까이는 소재인 동시에 90년대 후반 이후 여성연기자의 목 건강을 고려했다는 옹호론이 교차되는 지점. 그와 함께 왕실 의례 행사시에 반드시 상궁들이 착용하는 가체 + 떠구지머리, 어여머리 등이 등장하지 않는데, 장옥정의 숙원 책봉식(12화)에 등장하였다.
  • 조선 후기 이후 어떤 신분이든간에 여성의 철릭 또는 주의(두루마기), 장삼, 도포 등의 포류 의상 착용 자체가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보라색 철릭을 입은 스타일샷이 등장함. 이 당시 여인들은 기본적으로 내외를 원칙으로 하므로 얼굴을 가려야만 했으며, 그에 따라서 외출시에 장옷을 걸치거나 상류계의 여인들은 반드시 검은색으로 된 쓰개를 써야만 한다. 참조.
  • 작중 등장하는 활옷의 수 위치가 뒤바뀜(수가 놓인 부분은 뒷부분으로 가야 한다.), 또한 그 활옷을 입은 여성의 머리가 혼례 시에 일반적으로 쓰이는 머리 형태가 아니며 하피를 두르지 않음.
  • 왕가에서의 원삼은 3색 제한이 있으며 왕족만이 금박을 두를 수 있으나 작중 쇼에서의 원삼 색은 3색을 초과하였으며 왕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금박을 사용하였다.
  • 금관조복의 경우 왕족의 경우에도 홍색을 겉으로 하고 청초중단을 착용한다. 동평군( 인조의 손자)의 경우 왕족이므로 원칙상으로는 정1품에 해당되기 때문에 홀을 들어야만 하며 금관의 줄은 5줄이어야 한다.
  • 작중 현종의 유언 교서에서 현종이 스스로를 짐(朕)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짐이라는 1인칭 대명사는 오로지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었으며, 따라서 조선의 왕은 자기 스스로를 짐이라고 할 수 없다. 사극에서 많이 쓰는 과인(寡人)이라는 표현이나, (짐에 대응되는 표현으로) 고(孤)라는 표현을 써야 맞다. 숱한 사극이 과인이라는 단어를 썼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디테일마저 뭉개지는 것은 기본적인 성실함의 문제라고밖에 할 수 없다.
  • 작중 영의정 허적이 도체찰사 직을 달라고 숙종을 압박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정말 어처구니 없게도 도체찰사는 국가 비상시에나 임명하는 임시직이다.[33]
  • 작중에서는 영의적 허적이 역모를 꾀하는 악당으로 묘사되지만 당시 허적이 개최한 축하연에 무사들을 모아 역모를 도모한다는 소문은 근거가 없는 것이었고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신원되었다가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으로 서인이 집권하고 남인이 거세되면서 관작이 다시 추탈되었다가 1697년 다시 복권되었다. 1701년(숙종 27년) 무고의 옥으로 다시 관작이 추탈되었다가 정조 때인 1795년(정조 19년) 10월 정조의 특명으로 복관되었다. 허적의 복관 명령이 떨어지자 같은 남인인 채제공은 허목이 그를 반대한 점을 들어 허적의 신원에 반대하였다. 그의 복관 여론은 남인에서도 일부 반대가 있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남인 온건파였기 때문에 서인의 김수항 등은 끝까지 그의 죽음을 막으려 노력했으나 실패했고, 잘못된 서자의 비행 때문에 죽임을 당하고 주변까지 화를 입은 것을 사람들은 모두 애석히 여겼다.
  • 작중에서 악역으로 등장하는 인현왕후의 부친 민유중은 외척을 견제한 신하들에 의해 낙향하고 조용히 살았다. 그런 인물이 작중에선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온갖 욕을 들어먹고 있으니 아무리 퓨전이라지만 해도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많다. 심지어 역모까지 저지르는데 그랬다가는 중전 폐위가 아니라 9족이 멸해질 일인데 투기를 이유로 인현왕후가 폐비만 되고 유야무야 넘어가는것으로 처리되기까지 한다.
  • 최무수리( 숙빈 최씨)가 상당히 간교하게 묘사된다. 중전 장씨가 최무수리에게 회초리 때린 것을 숙종에게 들키자, 최무수리는 숙종 등 뒤에서 중전을 약올리는 듯한 미소를 짓는다. 숙종은 이걸 보고 중전으로 하여금 최무수리에게 종 4품 숙원에 봉하라 명을 한다. 다만 완전히 악녀라고 보기엔 무리인 게 승은을 받는 묘사나, 독이 있는 음식을 일부러 먹어 중전[34]을 모함하고 상전에게 핍박받은 것(장옥정이 명성왕후에게)을 숙종이 알게 되어 첩지를 받는 묘사는 장옥정이 겪은 그대로며, 장옥정의 사랑이 주제인 작중에서 그 사랑을 독차지하는 장옥정과 장옥정처럼 사랑받고 중전이 되고 싶어하는[35] 최무수리로 그려졌다고 볼 수 있다.[36] 하지만 문제는 사람들 기억엔 얄미운 장면만 남는다는 거... 특히 숙빈을 문맹마냥 표현한 것도 지나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덕분에 숙빈은 상당히 욕을 들어먹었다.[37]
  • "숙종이 숙빈 최씨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만들지 않았다."고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게시판에는 "경종이 죽고 조선은 멸망했다" 드립이 판을 치고 있다.
  • 숙빈이 가짜 승은을 입고 가짜 회임을 꾸며 장희재를 함정에 빠뜨리는 묘사는 숙종을 장옥정만 바라보는 로맨티스트로, 숙빈을 자기 자신이 중전이 되고 자기 소생은 왕으로 세우겠다는 야망이 있는 간교한 인물로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연잉군의 생략은 주인공 외의 기타 인물에 후반의 부족한 분량을 투자할 수 없기 때문에 인경왕후 소생의 공주들이나 희빈 장씨의 중전 시절 소생인 성수대군과 같이 생략된 것으로 보인다.
  • 숙종과 장희빈, 인현왕후의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송시열이나 김춘택 등은 아예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동이에서는 김춘택이 심운택으로 이름을 바꿔서 나오기라도 하지만 이 드라마에는 그딴 건 없다.[38]
  • 거기다가 19회에 장옥정이 청나라 대신들 부인들에게 차를 대접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부인들이 치파오를 입고 연미를 하고 기두를 틀어야 하는데 국적불명의 의상과 머리모양을 하고 나온다. 마의에서 강희제의 후궁이 제대로 된 청나라 만주족 의상으로 나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7. 기타

  • 동시기 방영되는 구가의 서와 함께 월화 드라마 사극 라인간의 대결이라는 측면과 '선배 장희빈'인 김혜수가 출연하는 직장의 신과의 대결이라는 측면이 언론에서 부각받았다.[39]
  • 한국에서 흥행에 실패한 것과 달리 중화권과 일본에서는 크게 흥행했다. 한국사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해외에서는 나름 잘 만들어진 로맨스 사극으로 여겨진 것으로 보인다.


[1] 2003년 장희빈은 초반 작품성 면에서는 크게 호평받을 만도 했고, KBS에서도 여러 사학자들을 섭외해 <장희빈, 사극의 배반>이라는 을 낼 정도로 의욕적이었다. 이 책에서 한 사학자는 2003년 장희빈이 묘사하는 숙종이 실제 숙종에 가장 가깝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런데 기존 궁중암투형 사극 시청자층 입장에서 볼 때 달라진 장희빈 캐릭터에 이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결국 작가가 교체된 후 대사의 문학성, 인물의 입체성, 역사적 사실의 고증과 이에 대한 작가적 재해석 등 비평의 잣대로 작용하는 모든 기준에서 후퇴했다. 그런데도 시청률은 더 올랐다는 게 더 아이러니. [2] 쪽대본이 돈다는 소문이 있었다. [3] 장희빈 궁녀 시절을 꽤 비중있게 다루다 보니 인경왕후 역이 생각보다 부각되는 것도 이 사극의 특징으로, 장옥정이 궁녀로 입궐하는 계기를 만든다고 한다. [4] 실제 역사에 없는 가상의 캐릭터이다. [5] 동평군은 실제로 장희빈과 친한 사이였다고 하며, 당대에 서인 진영에서는 장희빈과의 사이에서 추문을 퍼트리기도 했다. [6] 구가의 서 쪽은 가수 출신인 배수지가 여자 주연이었는데 배수지도 연기력 논란은 있었다. [7] 구가의 서는 일단 반인반수가 나오는 판타지 퓨전 사극이었다. 반면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트렌디 사극을 표방하긴 했지만 엄연히 실존 인물을 그린 사극이고, 장희빈은 사극에서 한두번 다루어진 게 아닌 만큼 비교 대상도 너무 많아서 캐스팅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하는 처지였다. [8] 아역을 꾸준히 해서 성인연기자로 넘어온 경우라면 별 탈이 없었겠지만, 한승연은 아역 시절 이후 카라로 데뷔하기까지 10년 가까이 연기계를 아주 멀리 떠나 있었고, 그 후에도 간간히 거의 시트콤에서만 카메오로 출연했기 때문에 당시의 연기 실력은 가늠할 수 없었다. [9] 이전과 달리 시청자들의 의식도 많이 달라졌고 동이가 방송할 때 등장한 패악스럽지 않은 장희빈에도 좋은 반응이 있었다. 또한 방영 초기 열성 시청자들 중에는 장옥정에게 동정적이고 그를 응원하는 반응이 많았다. [10] 그것을 토대로 만든 여타 드라마들까지 포함해서, 실제로 숙종실록의 장희빈의 묘사는 성의없고 패악하게 나오는데 이는 숙종실록의 편찬 책임자 중에 인현왕후의 오빠인 민진원이 있는 등 그 부분을 죄다 서인 노론들이 주도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희빈 장씨 항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은 악의적인 편집이나 매우 편견에 찬 주관적인 사관의 논평을 실어놓을 순 있어도 없는 내용을 마구잡이로 날조해서 집어넣는 그런 어용 역사물하곤 차원이 다른 사서다. 인현왕후의 오빠 민진원이 참여했다 해도 없는 내용을 집어넣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11] 특히 부친 민유중의 악행을 인현왕후가 어느 정도 알고도 감안하는 것이 그의 문제점이 되는데 실제 역사상으로 민유중은 이 시기에 궐에 있지도 않았고 저런 짓을 하지도 않는다. [12] 희빈 장씨가 거의 유일하게 실록에 사관이 보고 쓴 외모 후기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말이 아예 안되진 않는다 심지어 픽션이긴 해도 요즘은 여왕이 후궁들 마구 데리고 사는 소설도 있다. 일(부/처)다(부/처)제에 대한 욕망은 누군가에게든 있는건가 [13] 실존하는 책으로만 꼽아도 사씨남정기의 인물 배경이 숙종과 빈 및 후궁들이라는 걸 모르는 백성들이 없었고 애초에 인현왕후 복위를 위한 여론 형성 작전으로 쓰인 책이다. 이 사씨남정기 부터가 반 야사의 성격을 띄는 책이다 [14] 옛날 드라마에서나 나오던 음모를 꾸미는건 모두 희빈 장씨고 당하는 인물은 인현왕후 혹은 숙빈 최씨라는 기믹도 대부분 야사에서 온 일이다. [15] 실록을 아무리 뒤져봐도 장씨가 잘못했다 말 할 수 있는 공식 사건은 인현왕후에게 방자하게 굴어 매질 당한것 뿐이다. 무고의 옥도 장씨부터 그녀를 모시던 궁녀들이 고문을 받으면서도 거의 끝까지 주장한건 세자 윤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 였었던걸 감안하자. 애초에 무당저주가 효과가 없다는 건 엄연히 사실이기도 하다. [16] 아래에 언급된 김혜수가 30대에 접어들어서 장희빈을 맡아서 했을 때도 나이가 좀 많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그 때의 김혜수보다 나이가 더 많다. [17] 그런데 나이를 운운할 수도 없는 것이 실제 장희빈(1659년 생)이 숙종(1661년 생)보다 연상이었고 숙종, 장희빈, 인현왕후, 숙빈 최씨 이 4명 중 가장 나이가 많았다. [18] 이 쪽은 매우 억울한 게 나름 기존의 희빈 장씨 캐릭터에서 벗어난 매력적이고 인간적인 악역이였기 때문이다. 기존의 희빈 장씨 스타일의 악역만 있는 걸로 유명한 이병훈 사극이어서 더 놀라운 성과인데 시청자들한테는 너무 이질적으로 다가와서 저평가를 받았다. 막말로 너무 신선해서 이질적으로 다가와 저평가를 받은 것. 나중에 재평가의 여지도 아주 높은 편. 물론, 김태희 표 희빈 장씨는 이런 것도 없다. [19] 당시 전인화는 데뷔한 지 3년밖에 안 된 신인배우였는데, 악역을 기피하는 여배우들의 분위기 때문에 장희빈 역은 서로 안 하려고 했던 걸 전인화가 자청해서 한 것이다. [20] 개연성 문제도 억지로 장희빈을 띄우느라고 나머지 캐릭터를 천하의 개쌍놈으로 만들면서 생긴 문제다. 장옥정은 악랄하게 굴어도 다 이유가 있고 숙빈이나 인현왕후는 죄다 권력에 집착하는 캐릭터로 나오는데 이러면 당연히 스토리가 말이 되지를 않는다. 대본이 장희빈에게 몰빵되면서 생긴 문제점이니 이걸로 장희빈을 쉴드치는 거 자체가 팀킬. [21] 2023 현재에 와서 보면 더 뜨악인 PPL 이 많이 나오고, 미스터 선샤인에서도 파리바게트를 불란서 제빵소로 PPL해 호평을 받았기에 심각할 정도는 아니다. 이것보다 더 심한 게 나올 줄이야 [22] 간판 중 '촌우목'으로 보이는 간판이 있다. 당대의 한자문화권에서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세로쓰기가 보편적이었는데 이 영향으로 가로쓰기를 할 때도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써내려갔다. 즉, '촌우목'으로 보이지만 오른쪽부터 읽어서 '목우촌'으로 읽는다. 독립신문 문신닙독으로 보이거나 독립문에 있는 '문립독'처럼 보이는 명판도 이런 예. [23] 숙종이 훈민정음 후서를 쓰긴 했고, 어명 문서를 국문으로 쓰려다 반대 의견을 접하고 없던 일로 한 적이 있긴 하다. [24] 어디 양반집 도련님, 아가씨가 서서 그릇을 들고 무언가를 먹는단 말인가. 상것들도 아니고. [25] 후궁은 내명부를 의미하는 말이기도 한데, 말 그대로 궁의 뒤(後), 즉 내밀한 부분을 의미한다. 혹여나 왕이 어려 왕대비가 수렴청정을 할때라 하더라도 왕대비의 얼굴을 대신들에게 노출하지 않기 위해 발을 내리는데, 감히 후궁이 조정 대신들에게 얼굴을 드러낼 수 없다. [26] 물론 높은 품계를 받은 후궁의 파괴력은 궁녀 최고의 지위인 제조상궁을 제조상궁 따위로 만들 수 있긴 하다. 내명부를 군대로 따지자면 제조상궁은 주임원사, 빈이나 귀인 정도로 품계가 높은 후궁은 사단장 정도에 해당된다. 하지만 문제는 대비를 모시는 지밀상궁을 패대기쳤다는 점. 아무리 후궁이 명백히 제조상궁보다 지위가 높다고 하나, 당시 궁중 예법 상으로 자기보다 높은 분이 기거하는 궁에서 일하는 궁녀나 내시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윗사람까지 모욕하는 것으로 여겨져 아주 심각한 일로 간주되었다. 당장 숙종의 손자인 사도세자만 하더라도 대비전 나인이었던 수칙 박씨를 좋아하여 후궁으로 들이려 했다가 세자가 감히 대비전의 궁녀를 취하는 것은 예법에 어긋난다고 부왕 영조의 눈 밖에 나기도 했다. 세자가 나인을 괴롭히거나 때린 것도 아니고 좋아해서 첩으로 삼는 것조차 매우 눈치보이는 일이었는데, 세자도 아닌 감히 후궁 따위가 대비전의, 그것도 무수리나 나인도 아니고 지밀상궁 뺨을 친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난리가 날 일이다. [27] 일개 관가도 아니고 무려 궁궐씩이나 되는 관청의 호위를 담당하는 부서가 그 정도로 만만하다고? [28] 이 중 인경왕후는 숙종과의 사이에서 공주를 두명이나 낳았고 세번째 아이도 유산해서 그렇지, 3번 임신하기까지 했다. 거기다 인경왕후 생전에는 숙종이 장옥정은 물론 다른 후궁이나 궁녀를 가까이 했다는 기록이 없어서 실제로 인경왕후와 숙종의 사이가 좋았다는게 중론이다. [29] 작품으로는 매천야록, 가족, 노다지, 은하수를 아시나요, 모래위의 욕망 등. [30] 공주의 남자에서 진짜 주인공이 아니냐는 평을 들을 만큼 호평이었으나 장옥정에서는 공기화되다시피 해서 대중에게 잊히지 않기 위해 나온 드라마 정도의 의의밖에 못 가졌다. 샐러리맨 초한지 이후 채널A에서 방송한 굿바이 마눌이 관심을 받지 못한 것에 이어 장옥정 역시 별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이 있다. [31] 참고로 현종도 효종의 고명 아들이다. [32] 사실 역대 장희빈 사극에서 가체를 쓰고 연기한 것은 1988년 MBC 조선왕조 500년과 2002년 KBS 장희빈 뿐이다. [33] 실제로는 경신환국 이전에 남인 측에서 김만기 등 서인 출신으로 병권을 쥔 인사들을 몰아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회적으로 병권을 장악하려고 도체찰사 직을 이용했다. 실록에 기록된 남인의 의도. 드라마에서는 허적이 모든 것을 다 처리하지만 숙종실록을 보면 윤휴가 제의하여 허적이 숙종 1년 12월 15일에 도체찰사 직을 수여받아 경신환국 때까지 그 자리를 유지했다. 임명기록. 경신환국 직후의 사임기록 그러나 실록을 보면 효종실록 이후로 허적과 관련되지 않은 도체찰사 관련 기록은 거의 없으므로(있어도 임명했다는 기록은 없다) 국가 비상시에나 임명하는 임시직이라는 말은 맞고, 숙종 때가 그런 임시직까지도 동원해야 할 정도로 당쟁이 치열한 상황이라는 뜻도 된다. [34] 장옥정 중전 민씨를, 최무수리 중전 장씨를 모함한다. [35] 최무수리는 1화에서 '나는 아씨처럼 될래요. 장옥정처럼.'이라는 말을 한다. 그 외에도 몇 번 장옥정이 누리는 것을 훔치러 왔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 최무수리는 인현왕후와의 관계도 왠지 불편하게 묘사된다. 자기가 아들을 낳으면 왕세자는 아니더라도 왕세제로는 세울 수 있느냐고 떠보자 인현왕후가 난색을 표하고, 인현왕후가 아들이 없고 몸이 불편한 것을 알아채자 그의 사후에 자기가 중전이 되고자 하는 야망을 내비치기도 한다. 물론 실제 역사에서는 숙종이 장희빈을 죽이기 직전에 후궁은 중전이 될 수 없다는 법을 만들어버렸다. 숙빈 최씨의 말년에 대해선 내쳐진 것인지에 대한 여러 논란이 있다. 숙빈 최씨참조. [36] 작중에서 마지막으로 장옥정과 대면했을 때 그저 살기 위해서 그랬다고 한다. [37] 하지만 이는 사씨남정기를 거꾸로 들고 읽으면서도 줄거리는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을 통해 서인과 인현왕후가 복위를 위해 숙빈을 들인 것을 숙종이 확신하게 되는 장치이기도 하다. [38] 다만 동이에서는 정작 더 중요한 왕실최고어른인 대왕대비 장렬왕후가 아예 언급도 없이 생략되었기 때문에 동이가 더 나은 것도 아니긴 하다. 본작은 장렬왕후가 직접적인 등장만 없을 뿐 엄연히 작중에서 그 존재가 언급되었다. [39] 기사 1, 기사 2, 기사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