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5 21:56:28

임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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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이 임재범인 가수에 대한 내용은 JAY B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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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시나위/디스코그래피
[ 각주 펼치기 · 접기 ]

[1] 시나위 활동 중 군에 입대, 군 복무 중 사고로 사망했다. [2] AC/DC의 브라이언 존슨 스타일의 보컬리스트로, 헤비메탈에 최적화된 보컬이었다고 한다. [3] A.F.A.의 리더이며 2013 ~ 2015년까지 시나위 10집 미러뷰 앨범의 작사에 참여 했고 투어기타를 맡았다. [4] 달파란 [5] 신대철과 자유에서도 활동했다. 간경화로 사망. [6] 칵스의 보컬 & 기타 [7] 칵스의 멤버이며 2012 ~ 2014년까지 키보드 세션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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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범
任宰範 |Yim Jae-beum
파일:0497795A-555A-47F6-BC00-052263494FA0.jpg
<colbgcolor=#2F2F2F><colcolor=#fff> 출생 1962년[1] 10월 14일 ([age(1962-10-14)]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본관 풍천 임씨 (豊川 任氏)[2]
신체 182cm[3]|76kg| O형
가족 아버지 임택근[4]
적모 여양 오씨(1941년생)
이복동생 손지창
고종사촌 성 김[5]
배우자 송남영(2001년 결혼 ~ 2017년 사별)[6]
딸 임지수(2002년생)[7]
학력 중앙대학교사범대학부속국민학교 (졸업)[8]
중앙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 (졸업)
서울고등학교 (중퇴)[9]
데뷔 1986년 시나위 1집 앨범
' 크게 라디오를 켜고'
종교 개신교[10]
소속사 블루씨드컴퍼니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다음 카페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가창력3. 히트곡4. 성격5. 음반 목록
5.1. 듀엣곡
6. 공연 활동(Live)7. 방송 활동
7.1. 나는 가수다7.2. 나는 가수다 출연 후7.3. 히든싱어
8. 사별, 그리고 7년만의 복귀9. 논란 및 사건 사고10. 가족사11. 여담12.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진심을 노래한 카리스마 보이스
Mnet 레전드 100 아티스트
대한민국 가수.

1986년 서울고등학교 동창인 신대철이 이끌던 국내 최초 헤비메탈 밴드인[11] < 시나위> 1집 'Heavy Metal Sinawe'에 참여하여 〈 크게 라디오를 켜고〉를 부르면서 대중 음악계에 데뷔했다. 이후 발라드 등 장르를 넘나들며 전천후 보컬로 명성을 날린다.

2. 가창력

외인부대 - 쥴리
Michael Bolton - How am i supposed to live without you
임재범 - 그대는 어디에
소리 좋다라는 칭찬이 가장 설레요. 쑥스러운 척은 하지만, 속으로는 그럼, 하늘에서 받은 건데 괜찮지 해요(웃음) 진심 어린 눈동자로 절 보고 손잡고 노래 잘 한다고 할 때의 그 감흥이란, 정말 그 소리를 들으려고, 0.5초도 안 되는 기쁨을 누리려고 이제껏 칼을 간 거예요.
임재범
전성기 기준 국내 보컬계에서 Topclass 위치다. 맹수의 포효를 연상케 하는 풍부한 성량과 두터우면서도 애절한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특히 음색의 범용성이 사기적이라, 다른 음색 좋다는 가수들과 비교해서도[12] 그 범위가 넓어서 , 메탈, 발라드, R&B, 소울, 포크, 블루스 등 거의 모든 장르를 자신만의 색깔과 독창성으로 소화해낸다. 예를 들어 메탈을 부를 때는 소울을 부를 때의 발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특정 장르에 맞는 발성에 대한 이해도와 숙련의 정도가 탁월하다. 또 여린 소리부터 괴수 같은 중음 그로울링, 갈아서 내는 듯한 샤우팅까지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다.

임재범의 창법은 락음악과 소울, 팝 음악 등 다양한 장르 가수들의 영향을 받아 완성되었다. 임재범이 라디오나 콘서트에서 밝힌 바로는 락 쪽으로는 데이빗 커버데일, 로니 제임스 디오, 롭 헬포드, 제프 테이트.. 소울이나 팝 쪽으로는 스팅, 제임스 잉그램, 루더 밴드로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13] 녹음할 때 곡에 어울리는 특정 가수들의 소리를 썼기에 몇몇 곡에 그들의 소리가 숨어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다양한 창법을 사용하게 되었으며, 라이브할 때 힘들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rowcolor=#fff> 외인부대 - 환상의 락앤롤 Rock In Korea - The Same Old Story Asiana - Missing You
임재범의 락커 시절 대단함을 알 수 있다. 다만 오늘날 남은 라이브 영상이 매우 드물다는 것은 아쉬운 점.

백두산의 기타리스트 김도균은 지금은 사라진 그의 블로그에서 임재범과 영국 거주 시절 함께 했던 SARANG 시절을 회상하면서 "드럼 연주자가 영국에서 상당히 유명한 밴드 "Marmalade"의 후기 드럼 연주자로 활동했던 친구라, 주위에 많은 유명 음악인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Michael Schenker 밴드의 보컬 Gary Barden을 추천했죠. 그러나 저는 밴드 내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인 보컬을 이야기했었죠. 그래서 급기야 재범이를 영국으로 불러오게 된 겁니다."라고 쓰고 있다. 임재범이 영국 본토 시장 공략에도 전혀 부족하지 않은 탁월한 락 보컬로 여기고 있었다고 봐도 될 듯하다.

ManiaDB 임재범 보컬, 작곡에서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한국 Rock의 사관학교 시나위, 국내 Rocker들의 해외 진출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그룹 외인부대, 아시아나 등의 활동으로 솔로 데뷔부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임재범 그가 그전 그룹 활동에서 보여주었던 폭발적인 힘의 아성을 갈무리한 솔로 1집 <이 밤이 지나면>을 출반했을 때 그를 기억한 팬들의 성원과 반응은 그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판매고인 60만장의 앨범 판매로 확인되었다.
1998년 여름 많은 음반 관계자들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임재범 매니아들의 필수 구입 앨범 3집이 출반되었다. 인류 근원에 관한 엄청나고 난해한 메시지. 신과 인간에 대한 그만의 유니크한 해석. “Return To The Rock”의 기치를 내건 그의 3집은 그 구성의 특이성과 전격적인 출반 일정으로 화제를 일으키며 한국 Rock의 부활을 꿈꾸는 많은 Rock 매니아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었다.
임재범 - 이 밤이 지나면
임재범 - 그대 내게 와
임재범 - 고해

2006년 고스트 스테이션에서 신해철이 말하길[14] 리즈 시절 임재범은 "롤플레잉 게임 들어갔을 때, 전사이면서, 마법 배우고, 아이템 긁어모아서 칼 바꾸고, 갑옷 바꾸고, 투구 바꾸고, 할 수 있는 건 모조리 다 손에 넣는 불가사리 같은 존재 같았다"며, "영국적인 보컬리스트들의 흉내내기를 통해서 목소리를 단련시켜 나가고 있던 젊은 보컬리스트가, 또 그 이후에 아시아나 등의 여러 락밴드들을 거치게 되면서, 이제 정제되고 단련되고 해서 어느 정도 수준의 경지에 올라간 그런 모습을 보여주다가, 그 이후에 소울이라든가 발라드에 여러 팝을 소화하는 여러 가지를 집어 삼켜 버리고, 그리고 또 원래 임재범이 소유하고 있던 음역대 훨씬 이상의, 거의 한 옥타브에 가까운 음역대를 손에 넣어 자유자재로 휘두를 수 있는 그런 무기들을 손에 넣고 나서는, 마치 이제 이 앞으로의 행보는 이 아티스트에게 있어서는 "내 맘인데 뭘 하면 좋을까?" 왼손에는 포크 300개, 오른손에는 나이프 15개, 그리고 발에다가는 국자 차고... "도대체 뭘 요리를 하면 좋단 말인가"라는 그런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 그런 아티스트"로 보여진다고.

그 동년배 또래의 가수들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기도 하고, 나름대로 이제 언더그라운드 혹은 헤비락 씬에서 탈출해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을 때, "몰라, 난 노래 연습해" 이러고 지리산에 들어가버리기도 했다. 가끔 수련의 결과물로 앨범을 내어주시고는 앨범에다가 "내공과 외공을 겸비하면 이렇게 되느니라, 아이들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신해철이 평가하는 임재범.

2010년 시나위 신대철은 시나위를 함께 한 보컬리스트 중 임재범을 최고로 뽑기도 했다.
배철수: 야~ 이 친구 진짜 내 맘에 든다 하는 친구가 있었는지?
신대철: 사실은 다 그 특색이 다 있었어요 다... 사실은 임재범 씨가 처음 이렇게 등장했을 때 저는 사실은 '와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을까?' 정말 놀랬으니까요 그 때. 아 노래를 신기한게 그 분은... 저는 연습한 걸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근데 노래를 하면은 입만 열면 노래가 돼요, 이 사람은.
배철수: 오 어휴 야... 이거 진짜 부럽다
신대철: 예... 아마 없을 거에요 그 분 빼고는.
신대철이 말하는 임재범 (배철수의 음악캠프中)

신대철은 정영진 최욱의 불금쇼 108회에서도 "저는 굉장히 임재범 씨 보컬에 대해서 굉장히 저는 좋아했었어요. 야... 우리나라에 저런 보컬이 있었어 정말 대단해"라고 평하기도. 시나위 신대철.

2011년 SBS 라디오 프로그램인 '이현우의 뮤직 라이브'를 진행할 당시 이현우는 처음 음반사에 오디션 보러갔을 때 마침 녹음실에서 녹음하고 있던 임재범을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아, '내가 과연 가수를 할 수 있을까'라고 무척 고민했다고 밝혔다. '하필이면 임재범이야~!!!'라고. 관련 기사

음악 채널 Mnet에서 교수, 가요 전문 기자, 평론가, 뮤지션, 업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50명의 심사위원단이 한국 가요사를 빛낸 전설의 가수 100명을 선정하면서, 레전드 20인의 보컬 아티스트에 선정되었다. "진심을 노래한 카리스마 보이스 임재범은 살아남은, 그리고 살아있는 록 보컬리스트다. 헤비메탈로 시작한 임재범의 강렬한 힘은 시간과 관록이 켜켜이 쌓이며 큰 울림을 갖게 되었다. 범접하기 어려운 경지에 도달한 내공은 때로는 경외로 듣는 이들을 밀어냈고, 때로는 짙은 잔향으로 듣는 이들을 끌어당겼다. 살아남은 자의 살아있는 목소리, 단 한 순간도 잊힌 적이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깊이를 더해가는 그의 목소리에 박수 소리는 더욱 커진다."는 평 레전드 20인의 보컬 아티스트

록&밴드 부문 레전드 20에서도 그의 데뷔 앨범 시나위 1집 'Heavy Metal Sinawe'가 선정되었다. 엠넷 레전드|록&밴드 부문 레전드 20 관련기사 "한국 헤비메탈의 개척자 신대철은 시나위가 '장르 음악'을 좀 더 일반화시키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것으로 그룹이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갖는 의미를 정리한다. 시나위는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대표적 언더그라운드 장르였던 헤비메탈을 주류로 끌어올린 주인공으로 평가받는다. 비록 대중적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받은 적은 없지만 항상 우직하고 튼실한 존재가 시나위다. 한국의 록 팬들은 1980년대에도 지금도 시나위의 존재를 자랑스럽게 여긴다."라는 심사평.

Mnet Legend 100-Artist 3회:보컬 #2.자유의 정신ROCK편에서는 "묵직한 고음의 파워 보컬, 거칠고 시원한 목소리에 녹아있는 세상에 얽메이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불세출의 로커, Legend 임재범"라고 평했다. [mnet legend 100-artist 3회:보컬] #2.자유의 정신ROCK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임재범의 데뷔 앨범 시나위 1집 'Heavy Metal Sinawe'가 32위에 랭크되어 있다. 링크

음악취향Y Best 100에서는 96위에 아시아나(Asiana) 'Out On The Street'가 선정되었다. "임재범은 헤비메탈 보컬리스트로서 최고의 컨디션을 보여주고 있는데, 쇳소리 두성과 흉성을 적절히 섞어 만들어 낸 고음은 당대 외국의 어떤 보컬리스트와 견줘도 손색없는 빼어난 실력을 선보인다."는 평 음악취향Y Best 100

음악취향Y Best 100 Heaviness 부문에서 아시아나(Asiana)의 'Out On The Street'는 1위에 선정되었다. 음악취향Y Best 100 Heaviness 50+5 "임재범은 쇳소리 두성과 엄청난 호흡을 바탕으로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선보인다." "임재범의 육중하면서도 문득문득 한국적 한이 서린듯 소울 냄새를 풍겨내는 목소리, 김도균의 국적을 무색케 하는 무시무시한 피킹의 향연이 주는 이질적인 하모니는 물론 그 자체로도 인상적이다."는 평.

2006년 조선일보에서 김연우 등의 보컬 트레이너들에게 물어본 최고의 보컬리스트에서 조용필, 이승철에 이어서 3위를 차지하였고, "한국 가수가 갖기 힘든 톤과 파워를 가졌다"는 평. 기사.

《월간조선》에서 대중문화·음악평론가 1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여 '한국 대중가요 역사를 통틀어 가장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를 선정한 결과, 80년대 이후 가수 중 이승철과 공동 1위를 차지하였다.[15] 전문가가 선정한 이 시대 최고의 가수는? 임재범은 이 평가에서 "어떤 곡도 '임재범의 창법'으로 소화해내는 록보컬의 레전드", "기교와 형식을 넘어선 깊이감을 갖춘 가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음악 전문가 20인에게 질문한 가장 노래 잘 하는 가수에서도 조용필, 이승철, 인순이에 이어서 4위를 차지했다. #, #

2009년 이선희는 20대 시절 시나위의 임재범을 보며 저렇게 부를 수 없어서 절망했다고 한다.[16] 참고링크.

작곡가 겸 음악 프로듀서 김형석이 임재범과 함께 한 프로듀싱 도중 녹음실 가창을 하던 임재범을 보며 "가수 10명 중에 한 명이라도 임재범의 반만큼만 노래할 줄 알면 좋겠다"는 평을 하기도 했다. 영상.

'대중음악 사운드(SOUND)'에서 한국 대중음악 명예의 전당에 추천하는 100인을 10개 분야(보컬리스트, 기타리스트, 베이시스트, 드러머, 키보디스트, 작곡가, 작사가, 프로듀서, 레코딩엔지니어, 음반기획자) 10인씩 선정한 결과, 한국 대중음악 '최고의 보컬리스트' 10인에 이승철과 함께 선정됐다. 링크.

음악취향 Y에서 선정한 Ballad Best 100에서 "너를 위해"가 13위, 박정현과 함께 부른 "사랑보다 깊은 상처"가 17위에 올랐다.[17]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2018년)에서 34위에 Heavy Metal Sinawe 시나위가 선정되었다. 100대 명반 선정은 총 3번의 시도가 있었는데, 첫째로 1998년 잡지 '서브'에서 선정된 리스트가 있고, 둘째로 2007년에 음악전문 웹진 가슴네트워크에서 52인의 선정위원을 위촉하고 100개의 명반을 선정해 경향신문에 공개하고 리뷰를 연재했던 리스트가 있다. 그리고 셋째로 2018년에 언론사 한겨레, 음원사이트 멜론, 출판사 태림스코어가 47인의 선정위원의 투표를 통해 선정한 리스트가 있다. 임재범의 데뷔 앨범 시나위 1집은 3차례 연속 선정되었다.
윤도현은 MelOn PLAYLIST에서 그의 음악 인생에 막대한 영향 끼친 추천곡으로 외인부대쥴리를 선곡하고, "대한민국 헤비메탈의 일맥을 장식한 밴드, 윤도현이 가수 데뷔를 하게 된 시발점이 된 노래"라고 소개하고 있다. "목소리가 정말로 그런 보컬이 없어요. 뭔가 칼 같기도 하면서 목소리 톤도 되게 와이드하고 굉장히 고급스러운..." 영상.

임재범의 보컬적인 장점을 요약하자면, 허스키한 탁성과 맑은 소리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컨트롤 능력과 스피드한 음악까지 쉽게 소화하는 뛰어난 리듬감,한 소절조차 흘려 보내지 않는 디테일, 열린 발성을 기반으로 한 엄청난 성량, 진성과 가성, 그리고 저음과 고음을 오가는 넓은 음역대,그리고 다양한 장르의 곡을 자신만의 감정과 창법으로 소화해내는 표현력이다.

발성을 보자면 성량에 있어서 상당한 강점을 보인다. 고음뿐 아니라 중저음에서도 성량이 크게 나오고 게다가 야외 콘서트에서도 관중석 뒤쪽까지 울려퍼지는 수준, 거기에 허스키한 음색을 더욱 두껍게 만드는 파워가 전부 성량이다.[18][19] 파사지오 구간에 진입할수록 터져나오는 듯한 강렬한 고음역 성량도 백미. 게다가 가성이 진성처럼 들려서 따라부르기도 어렵다.

음역대 역시 0옥타브 레♯(D♯2)부터 3옥타브 솔(G5)까지 소화해내는 상당히 넓은 음역을 가졌다(가성 포함).[20]

임재범의 전성기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 첫번째는 아시아나와 외인부대에서의 활약을 위시한 강력한 록 보컬로서의 전성기. 이 당시 임재범의 거칠고 강렬한 벨팅 창법과 거대한 성량, 파워풀한 샤우팅은 웬만한 헤비 메탈 록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특유의 낮은 톤으로 3옥타브 후반대를 발성하는 강력함과 폭발적인 스크래치는 듣다 보면, 같은 음을 내는데 옥타브는 다른 두 음이 동시에 들리는 정도로 그야말로 악마의 포효가 따로 없었다. 또한 젊은 시절이다 보니 곡을 부르는 5분 동안 소리에 힘이 줄지 않는 괴물 같은 호흡을 보여주기도 했다. 다만 원래도 고음이 주무기였던 보컬은 아니었고, 나이가 들면서 성대에 팽팽한 내전율과 탄성력이 필요한 파사지오 구간에서의 음 이탈이 잦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 임재범에게 리즈 시절의 록커 모습을 기대하는 건 무리가 있다.

락커를 그만둔 이후 임재범은 90년대부터 솔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감성 보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 밤이 지나면>, <그대는 어디에>, < 고해>, < 사랑보다 깊은 상처>, < 너를 위해>, < 비상>을 비롯한 발라드풍 곡을 잇달아 발표하며 파워풀한 록커에서 부드라운 발라더로서의 전환을 시도했고 대중성은 이때가 더 좋았다. 그러다 또 한동안은 두문불출했는데,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2011년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며 제3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특히 '여러분' 무대를 통해 감성 보컬의 포텐을 제대로 터뜨렸다. 이후에도 특유의 애절한 음색을 이용한 매력적인 중저음, 감정을 토해내는 듯한 고음에 몇몇 사연이 만들어낸 불세출의 감성이 더해져 손색없는 발라더의 면모를 여전히 보여주는 상황이다.

3. 히트곡

시나위 1집 앨범의 ' 크게 라디오를 켜고'를 시작으로 솔로 이후론 이 밤이 지나면, 사랑보다 깊은 상처(듀엣곡), 비상, 고해, 그대는 어디에, 너를 위해, 낙인, 사랑, Desperado[21], 나가수에서 부른 여러분 등이 유명하다.

2022년 6월 16일 Seven, (Prologue) 싱글에 발표된 성인 취향의 발라드 '위로'가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임재범은 본인 정규 앨범에 실릴 곡들의 멜로디를 대부분 스스로 작곡한다. 고해, 비상, 그대는 어디에 등이 임재범이 멜로디를 만든 유명한 노래이다.

4. 성격

이런저런 루머가 많은 임재범이지만[22], 지인들의 임재범 성격에 대한 평은 세간의 평과 상당히 다르다.[23]

일례로 30년 지기인 김도균은 MBN '아궁이'에서 "평소 임재범은 양처럼 순하다. 다만 너무 바르고 교과서적이다 보니, 틀을 벗어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데 세상 일이 교과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 부분에서 마찰이 생기는 것 같다. 임재범을 '거친 남자'로 오해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서부터 오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였다. 김도균, "카리스마 임재범, 양처럼 순한 사람".

손지창은 2001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형과 몇 번 얘기를 주고 받으면서 내가 형의 동생이라는 점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괴팍하다는 소문과는 달리 다정다감했고 모든 면에 천재성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너무 순박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점이 아쉬웠다." 한편, 손지창은 지난 2011년 3부자 상봉 후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좋은 형을 갖게 되어 자랑스럽다"며 "형은 음악적 재능을 떠나서라도 지금까지 내가 만난 그 어떤 사람보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임재범에 대한 마음을 밝혔다. 기사

동창들에 따르면, 임재범은 J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J 중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 3학년 시절에는 당시 학생들의 제식 훈련을 지휘하는 '학생 연대장'을 지냈고, 또 학생들의 질서를 담당하는 규율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서울고등학교를 다니다 가수를 하기 위해 자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재범의 학창 시절.

그와 친했던 동창생들은 그가 우등생까지는 아니었어도 반듯한 학생이었고, 일단 친해진 친구들에게는 매우 유머러스한 학생이었다고 기억했다. 임재범의 국민학교 동창인 B씨는 "재범이는 늘 좋은 옷을 입은 예쁘장한 아이였고, 쾌활하고 명랑했다"고 말했다. 중학교 동창인 C씨는 "그가 또래에 비해 키도 크고 낯을 좀 가리는 편이어서 평소에는 무게를 잡았지만, 일단 친해진 친구들에게는 배한성씨나 이대근씨의 성대모사를 하거나, 가수들 모창도 들려주곤 했다"고 말했다. C씨는 "친한 사이에서는 재미있는 얘기들을 자주 들려줘서 웃음을 주는, 아주 유머러스하고 착한 친구였다"고 말했다.
"한번의 이혼을 통해 가정과 직장, 세상 명예와 나의 아버지까지 잃은 저를 위로하고 격려해주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엄마잃고 상처받았을 나의 아들을 위로하며 용기와 격려를 해주던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가수 임재범과 그의 아내 연극배우 송남영 부부가 그들입니다.
제가 아는 사람중에 가수 임재범은 가장 순수하고 심성이 착한 사람입니다
...교회 주변의 임대아파트에 사는 어려운 이웃들과 장애우, 그리고 한가정 부모의 아이들이 대부분인 교회 공부방 아이들에게 연극과 뮤지컬, 노래를 가르치며 오랫동안 봉사해 온 송남영 선생을 수년간 보아왔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착하고 선한 부부입니다.
임재범/송남영 부부에 대한 어느 무명 성도의 이야기

정성호는 "사실 '나도 가수다'는 일회성 코너로 기획됐어요. 처음에는 괜히 희화화해 누가 될까봐 겁이 났죠. 부담이 컸는데 예상과 달리 반응이 엄청나더라고요. 그래도 불안감이 없지 않았는데 임재범 형님이 직접 전화를 해주셔서 '즐겁게 잘 보고 있다', '계속 같이 잘 해보자'고 응원해 주셔서 겨우 가슴을 쓸어내렸죠."라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임재범은 최근 콘서트 무대에서 정재범을 화제로 올렸고, 정성호에게 문자를 보내 소재가 떨어지지 않았는지 걱정도 해줬다. 심지어 '이런 걸 해보는 건 어떠냐'고 아이디어까지 제공해줬다. 정성호는 "아직 실제로 뵙진 못했지만 정말 털털하고 좋은 분이고, 제가 웃다가 통화가 끝날 만큼 유머감각이 탁월한 분"이라면서 "(임재범 씨가) 가수가 아니라 배우가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기사

정성호는 임재범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자신이 6개월 간 '나도 가수다'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임재범의 지원이 컸다. 그는 "사실 하는 동안 안티팬이 많이 늘었다. 임재범 형 팬들의 미움을 많은 받았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불편한 마음도 있었는데 임재범 형이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줘 지금까지 잘해올 수 있었다"고 전했다. 기사

다음주에 둘째 딸을 갖게 되는 정성호는 " 정재범[24] 라는 이름을 지어주려고 했는데 둘째도 딸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아들을 낳을 때까지만 계속 낳자'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정성호는 MBC TV '웃고 또 웃고-나도 가수다'에서 가수 임재범을 따라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임재범은 정성호 부부를 직접 자신의 콘서트에 초대하기도 했다. 정성호는 "임재범 씨를 처음 만났을 때 우리 부부를 정말 잘 챙겨주셨다. 나와 아내를 자신의 콘서트 무대에 세워줘서 영광이었다"며 "말이 별로 없으셨는데도 포스가 대단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정성호, 임재범 때문? "아들 낳으면 재범이라는 이름 붙여줄 것"

김영호는 임재범을 "자기 세계가 강한 사람"이라고 했다. 김영호는 "방송에선 귀엽고 익살스런 임대디의 모습이 많이 비춰지지만 촬영하지 않을 땐 남에게 말도 안 걸고 조용히 음악만 들어요. 자기 세계가 너무 강해 다른 사람들이 어울리기 힘들어 하지만 누구보다 맑고 깨끗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기사

차지연은 "임재범 씨를 처음 봤을 때 무섭지는 않았나"라는 질문에 "진짜 무서워서 기가 팍 죽었다. 그러다 두세 번 뵙고 나니 겉으로 표현은 못해도 속은 참 여린 분이란 생각이 들더라. 투박하게 '밥 먹었나'라고 짧게 말을 해도 영혼이 순수하고 맑은 사람이란 느낌이 왔다."고 밝혔다. 기사

윤도현은 임재범의 첫인상에 대해 "무서웠지만 막상 만나 보니 선하시다"며 "임재범을 만났을 때 잃어버린 형제를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 임재범 형님과 의형제를 맺었다. 강렬하고 카리스마가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픈 묘한 에너지를 가진 분"이라고 전했다. 기사 "임재범의 집에 자주 놀러가곤 했는데 가면 잘해주고 선물도 해주며 자상하게 대해줬다 그래서 나도 답례로 자전거를 드렸다"며 우정을 과시했다(힐링 캠프). 기사

소울다이브는 "호랑이 같은 면은 선배님의 카리스마를 말하는 것이다. 정말 호랑이처럼 강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계신다. 하지만 강한 면모 속 숨겨 놓은 부드러운 진심으로 후배들에게 따뜻한 말로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다"며 "식사를 챙겨주시는 것은 물론이고 무대 위에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배려해주시는 따뜻한 분"이라고 호랑이보다는 어머님같은 선배라고 전했다. 소울다이브, 호랑이 같은 임재범에 "호랑이 아닌 어머님"

1집 당시 록을 버리고 다른 장르를 시도했을 당시엔 출연 정지를 당해서 나오고 싶어도 못나왔고, 자의로 잠적한 게 아니다라며 자신의 억측을 사실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임재범이 이밤이 지나면으로 인기를 얻었던 건 1991년이었고, 출연 정지 기사가 난 건 1993년 3월 이후이다. 그가 1년간 오대산에서 칩거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관련 기사.

임재범 본인은 "1990년대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토토즐)에 나가서 '이 밤이 지나면'을 한 번 불렀는데 지금의 '나는 가수다'(나가수) 같은 반응이 왔다. 하루 새에 갑자기 음악 차트 3, 4위 상위권에 랭크가 되더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실제로 임재범 1집은 60만장 이상 팔리는 놀라운 판매고를 보였다. 하지만 록커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임재범에게 이들은 '솔로로 잘 나가서 좋냐'고 비아냥 거렸고 록커의 자존심을 버렸단 생각에 임재범 또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가끔 포장마차 이런 데서 막걸리 한잔 할 때면 신대철한테 무조건 사과부터 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그는 록커로서가 아니라 한국의 마이클 볼튼으로 불렸다. 결국 그는 리듬 앤 블루스나 소울, 발라드는 진정 하고 싶은 음악이 아니라며 오대산 등에서 1년간 잠적하기에 이르렀다. 이후에도 앨범을 내고 잠적하고 다시 돌아와 앨범을 내고 잠적하는, 아니 증발하는 일이 반복됐다. 하지만 김준원은 임재범이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인한 잠적을 했다고 했고, 실제로 소속사에게 제대로 된 정산을 받지 못하였다. 이를 보면 잠적은 임재범 개인의 문제라고만 볼 수 없다. 그리고 임재범은 가수 꼭두각시처럼 다루는 연예계 상황, 홀대받는 한국 음악, 그리고 아티스트로서 가수를 존중해주지 않고 비판하는 대중들에게 스트레스를 느꼈고, 이런 점 또한 잠적에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사.

92년 특종 TV연예에서 신대철을 비롯한 시나위 멤버들과 함께 '특종 TV 연예'에 출연한 임재범은, 인터뷰에서 "혹시 또 한 번 증발하실 계획이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에 "글쎄요. 증발이라는 단어 자체가 날아가 없어진다는 뜻인데 제가 물이 아니므로, 더는 증발할 이유는 없고 다 말랐습니다. 이제"라고 대답하는 모습에서 젊은 시절 임재범의 개그 섞인 반항적인 카리스마를 엿볼 수 있다.

5. 음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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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듀엣곡

2024년까지의 임재범의 듀엣곡들은 다음과 같다.
1998년 박정현 1집 사랑보다 깊은 상처 - (원곡 : 임재범 2집 - 사랑보다 깊은 상처)
1998년 박진영 5집 - 재회(With 임재범)
2001년 서영은 2.5집 - 아직도 사랑할 뿐인데 - (원곡 : 임재범 4집 - 아직도 사랑할 뿐인데)
2006년 겨울愛(Single) - 겨울이 오면(With Tei)
2010년 사랑에 아파한 날들(Single) - 사랑에 아파한 날들(With 윤하)
2013년 I Love You(Single) - I Love You (With 알리)
2015년 After The Sunset - White Night - 사랑보다 깊은 상처 - (With 태연)

이 중, 사랑보다 깊은 상처와 아직도 사랑할 뿐인데는 임재범 2집과 4집에서 솔로로 불렀던 곡이며, 원곡을 그대로 유지하며 각각의 파트로 녹여내어 발매한 것이다.

특히 유명한 것은 박정현과 함께 부른 ' 사랑보다 깊은 상처'. 특이하게도 이 곡은 보통의 남녀 듀엣과는 달리 남자 보컬이 원음을 부르고 여자 보컬이 화음을 쌓는다. 몇몇 부분에서는[25] 남자 보컬이 여자 보컬보다 높은 음을 내기도 한다. 그래서 커버할 때 여자 보컬들은 편하게 부르는 반면 남자 보컬들은 피똥을힘겹게 성공하거나 삑사리가 나는 경우도 제법 있다. 이는 애초에 듀엣곡으로 기획된 곡이 아니라 임재범이 2집에서 먼저 솔로곡으로 발표했고, 박정현이 후에 자신의 파트를 따로 녹음해서 하나로 합친 거로 임재범의 음역대에 맞춘 곡이다 보니 남자들에게는 힘들고 여자들에게는 편한 것.[26]

6. 공연 활동(Live)

(솔로활동 이후, 방송용 Live 제외)

[2004 시즌]
임재범 첫번째 콘서트, JB'S Vanguard (부제)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2004.10.30 ~ 2004.10.31, 각 1회, 총 2회 / 콘서트 라이브 실황앨범, 《First Concert Live & Life》

[2005 시즌]
임재범 콘서트, 사랑 저편에... (부제) 서울, 어린이대공원내 돔아트홀, 2005.10.28 ~ 2005.10.30, 각 1회, 총 3회

[2006 시즌]
2006 임재범 데뷔 20주년 기념 전국 투어 라이브 콘서트, 비상(飛上) (부제)
임재범 데뷔 20주년 기념 전국 투어 콘서트 서울, 올림픽홀(5호선올림픽공원역3번출구), 2006.09.16 ~ 2006.09.17, 각 1회, 총 2회
2006 임재범 데뷔 20주년 기념 전국 투어 콘서트 대구, 대구 엑스코, 2006.10.21, 1회
2006 임재범 데뷔 20주년 기념 전국 투어 콘서트 부산, 부산 KBS홀, 2006.11.18, 1회
2006 임재범 라이브 콘서트 서울 앵콜, 코엑스 대서양홀, 2006.12.29, 1회

[2008 시즌]
임재범 전국투어 콘서트, 歸還(귀환) (부제)
임재범 전국투어 콘서트 부천, 부천실내체육관, 2008.12.31, 1회
임재범 전국투어 크리스마스 콘서트 대구, 대구 엑스코, 2008.12.24, 1회
임재범 전국투어 콘서트 광주, 광주 김대중 컨벤션센터, 2008.12.27, 1회

[2009 시즌]
임재범 콘서트 서울, 올림픽공원내 올림픽홀, 2009.03.21, 1회

[2010 시즌]
임재범의 산책 (부제) 서울, 연세대학교 대강당, 2010.05.01 ~ 2010.05.02, 각 1회, 총 2회

[2011 시즌]
2011 임재범 콘서트, 다시 깨어난 거인 (부제)
2011 임재범 콘서트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2011.06.25 ~ 2011.06.26, 각 1회, 총 2회
2011 임재범 콘서트 광주, 광주 염주실내체육관, 2011.07.02, 1회
2011 임재범 콘서트 청주, 청주실내체육관, 2011.07.08, 1회
2011 임재범 콘서트 대구, 대구 엑스코, 2011.07.16, 1회
2011 임재범 콘서트 수원, 수원실내체육관, 2011.07.30, 1회
2011 임재범 콘서트 부산, 부산 벡스코, 2011.08.06, 1회
2011 임재범 콘서트 인천, 인천삼산월드체육관, 2011.08.20, 1회
2011 임재범 콘서트 대전, 대전무역전시관, 2011.09.03, 1회
2011 임재범 콘서트 울산, 울산동천체육관, 2011.12.02, 1회
2011 임재범 콘서트 일산, 일산 킨텍스, 2011.12.10, 1회
임재범 2011 크리스마스 콘서트, 거인...세상을 깨우다 (부제)
임재범 2011 크리스마스 콘서트 대구, 대구 엑스코 신관 1층, 2011.12.24, 1회
임재범 2011 크리스마스 콘서트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2011.12.30 ~ 2011.12.31, 각 1회, 총 2회

[2012 시즌]
2012 임재범 6집발매기념 전국투어 콘서트, 해빙[解氷] (부제)
2012 임재범 6집발매기념 전국투어 콘서트 부산, 부산 벡스코, 2012.08.18, 1회
2012 임재범 6집발매기념 전국투어 콘서트 인천, 인천삼산월드체육관, 2012.08.25, 1회
2012 임재범 6집발매기념 전국투어 콘서트 광주, 광주 김대중 컨벤션센터, 2012.09.01, 1회
2012 임재범 6집발매기념 전국투어 콘서트 서울, 잠실실내체육관, 2012.09.08, 1회
2012 임재범 6집발매기념 전국투어 콘서트 대구, 대구 엑스코 5층, 2012.09.22, 1회
2012 임재범 6집발매기념 전국투어 콘서트 원주, 원주따뚜공연장, 2012.10.06, 1회
2012 임재범 6집발매기념 전국투어 콘서트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야외공연장, 2012.10.13, 1회
2012 임재범 6집발매기념 전국투어 콘서트 수원, 수원실내체육관, 2012.10.27, 1회
2012 임재범 전국투어 Last Concert 성남,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2012.12.01 ~ 2012.12.02, 각 1회, 총 2회
2012 임재범 화이트크리스마스 콘서트 부천, 부천실내체육관, 2012.12.25, 1회
2012 임재범 연말앵콜 콘서트 인연 (부제) 서울, 세종대학교 대양홀, 2012.12.30 ~ 2012.12.31, 각 1회, 총 2회
게스트) 주다스 프리스트 고별 내한공연 서울, 올림픽공원내 올림픽홀, 2012.02.04, 1회

[2013 시즌]
임재범 전국토어 콘서트, 걷다보면... (부제) / 콘서트 라이브 실황앨범, 《임재범 2013 라이브 콘서트 앨범: 걷다보면...》, 2013
2013 임재범 전국투어 콘서트 서울, 연세대학교 대강당, 2013.07.05 ~ 2013.07.06, 각 1회, 총 2회
2013 임재범 전국투어 콘서트 천안, 천안예술의전당 대공연장, 2013.07.12 ~ 2013.07.13, 각 1회, 총 2회
2013 임재범 전국투어 콘서트 수원, 경기도문화의전당 행복한대극장, 2013.07.19 ~ 2013.07.20, 각 1회, 총 2회
2013 임재범 전국투어 콘서트 광주,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극장, 2013.07.26 ~ 2013.07.27, 각 1회, 총 2회
2013 임재범 전국투어 콘서트 부산, 부산 KBS홀, 2013.08.09 ~ 2013.08.10, 각 1회, 총 2회
2013 임재범 전국투어 콘서트 대전, 충남대학교 정심화홀, 2013.08.16 ~ 2013.08.17, 각 1회, 총 2회
2013 임재범 전국투어 콘서트 창원(마산), 창원(마산) 3.15아트센터, 2013.08.23 ~ 2013.08.24, 각 1회, 총 2회
2013 임재범 전국투어 콘서트 청주, 청주 예술의전당 대공연장, 2013.09.07 ~ 2013.09.08, 각 1회, 총 2회
2013 임재범 전국투어 콘서트 대구, 경북대학교 대강당, 2013.09.27 ~ 2013.09.28, 각 1회, 총 2회
2013 임재범 전국투어 콘서트 성남,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2013.10.04 ~ 2013.10.05, 각 1회, 총 2회
2013 임재범 전국투어 콘서트 과천, 과천 시민회관 대극장, 2013.10.18 ~ 2013.10.19, 각 1회, 총 2회
2013 임재범 크리스마스 콘서트...그 마지막 여행, 올림픽공원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 2013.12.24 ~ 2013.12.25, 각 1회, 총 2회

[2015 시즌]
임재범 30주년 콘서트, after the sunset:White Night (부제)
임재범 30주년 콘서트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2015.10.30 ~ 2015.10.31, 각 1회, 총 2회
임재범 30주년 콘서트 인천, 인천 남동체육관, 2015.12.05, 1회
임재범 30주년 콘서트 부산, 부산 벡스코 제1전시장 1홀, 2015.12.13, 1회
임재범 30주년 콘서트 울산, 울산동천체육관, 2015.12.19, 1회
임재범 30주년 콘서트 광주, 광주염주실내체육관, 2015.12.24, 1회
임재범 30주년 콘서트 고양, 일산 킨텍스 제1전시장 5A홀, 2015.12.30, 1회
임재범 30주년 콘서트 대구, 대구 엑스코 1층, 2016.01.09, 1회
임재범 30주년 콘서트 수원, 수원실내체육관, 2016.01.17, 1회
임재범 30주년 콘서트 성남,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2016.01.23 ~ 2016.01.24, 각 1회, 총 2회
임재범 30주년 콘서트 의정부, 의정부실내체육관, 2016.01.30, 1회
임재범 30주년 콘서트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016.02.13 ~ 2016.02.14, 각 1회, 총 2회

[2022 시즌]
2022년 임재범 전국투어 콘서트,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부제)
2022년 임재범 전국투어 콘서트 서울, KSPO DOME (올림픽체조경기장), 2022.10.29 ~ 2022.10.30, 각 1회, 총 2회
2022년 임재범 전국투어 콘서트 일산, 일산 킨텍스 제1전시장 5홀, 2022.11.19, 1회
2022년 임재범 전국투어 콘서트 부산, 부산 벡스코, 2022.12.10 ~ 2022.12.10. 1회
2022년 임재범 전국투어 콘서트 대전, 대전컨벤션센터 제2전시장, 2022.12.17, 1회
2022년 임재범 전국투어 콘서트 광주, 광주여대 유니버시아드 체육관, 2022.12.24, 1회
2022년 임재범 전국투어 콘서트 대구, 엑스코 서관, 2022.12.31, 1회
2022년 임재범 전국투어 콘서트 수원, 수원컨벤션센터, 2023.01.14, 1회
2022년 임재범 전국투어 콘서트 서울(앵콜), KSPO DOME (올림픽체조경기장), 2023.02.11 ~ 2023.02.12, 각 1회, 총 2회
2022년 임재범 전국투어 콘서트 청주, 청주대학교 석우문화체육관, 2023.03.11, 1회
2022년 임재범 전국투어 콘서트 인천, 송도컨센시아, 2023.03.25, 1회

7. 방송 활동

7.1. 나는 가수다


임재범이 재조명 받은 계기는 2011년 나는 가수다 출연이다. 아내가 암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 비보 속에 나가수 출연 제안이 왔고, 아내를 위해 출연을 결심한 임재범은 끝판대장 분위기를 풍기며 등장하여 대표곡인 ' 너를 위해'를 열창. 선호도 경연 1위를 차지했다. 사실 음정이 어긋난 부분이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성적으로 어필하여 시청자들의 눈에서 눈물까지 뽑아냈다. 즉, 전성기는 이번 공연보다 더 대단하다는 사실.

무대 전 인터뷰에서 "내가 프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추어도 아니고 마니아 수준의 가수라고 생각한다"는 망언이나, 꼴등하면 집에 가서 애나 본다는 등 의외로 예능성 멘트도 날려 토크에서도 빛을 냈다. 윤도현의 말에 따르면 엄청난 대선배님이시고 카리스마가 넘쳐서 만나기 전부터 두근두근했었는데 의외로 이야기해보니 너무 편안하고 재미있는 아줌마 스타일이라고. 임재범 역시 윤도현과는 공통스런 장르에 종사했다는 친근감을 가지고 있는 듯 하여 처음 만났을 때도 주먹을 맞부딪히며 Rock & Roll Baby!라고 외치기도 했다. 윤도현 갤러리에서는 임재범을 임대디, 윤도현을 윤베베로 부른다.

경연 1차전에서는 남진의 트로트곡 빈잔을 편곡해 들고 나왔다. 장르적으로 보면 한국 전통 사운드에 하드록을 결합한 형태로 마치 시나위나 아시아나 시절에 보여주던 음악을 연상시켰다. 프로그램의 자문위원인 장기호 교수는 "해외에서도 충분히 통할 만하다"고 높은 평가를 내렸다. 결과는 생각보다 낮았던 4위. 하드했던 스타일 때문에 호불호가 갈린 탓이라는 분석이 있다. 컨디션도 최악이었던지라 보컬 운영에서 아쉬운 점이 있던 것은 사실이나 특유의 카리스마와 놀라운 편곡은 극찬을 받았다.

이후 젊은 층 가수나 아이돌 천하나 다름없는 KBS 뮤직뱅크에서 4집 앨범의 타이틀 곡 '너를 위해'가 발표 11년 만에 1위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상대는 박재범.[27] 범의 전쟁 디지털 음원, 방송 횟수, 시청자 선호도에서 임재범이 박재범을 앞섰으나, 음반판매량에서 박재범이 앞서서 결국 박재범이 1위를 차지했다.

5월 16일에 맹장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나흘이면 퇴원할 수는 있지만 당분간 노래는 자제하라는 의사의 당부 때문에 나가수 제작진과 향후 출연을 논의하겠다고 했고 결국 23일 녹화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5월 20일, 드라마 시티헌터의 OST곡인 "사랑"이 공개되었다. 임재범 특유의 감성에 순식간에 멜론 실시간 차트 3위를 기록 중. 그리고 5월 21일 1위로 올라섰다. 도시락, 엠넷닷컴, 벅스뮤직, 소리바다, 싸이월드 등 다른 음원사이트에서도 실시간 1위 기록 중, 본방이 시작하기도 전에 OST가 음원 차트 1위를 기록한 것은 전례없는 일이라고 한다. OST가 시청률 올릴 기세

나는 가수다 23일 녹화에는 참여했지만 결국 건강상 노래를 부를 순 없었고, 최종적으로 하차를 결정했다고 알리는 자리가 되었다. 하차 후에는 건강을 추스리며 콘서트 준비에 들어간다고. #

5월 22일 방송된 나는 가수다 최종 경연에서는 다시 한번 최종 보스 모드로 각성, 거기다 경연 순서도 7번째라는 이점과 1차 경연보다 나아진 목 상태로 완벽히 편곡한 ' 여러분'을 선사했다. 청중단은 기립박수 및 눈물바다. 과장 좀 보태서 '임재범도 울고, 동료가수들도 울고, 청중 평가단도 울고, 너도 울고, 나도 울었다.' 자문 평가단의 평가 역시 극찬 일색. 이후 원곡자인 윤복희는 "임재범은 내가 왜 이 가사를 썼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트위터를 통해 감상평을 남겼고, 작곡가 윤항기 목사 또한 "내가 남자라 그런지는 몰라도 윤복희가 부른 원곡보다 훌륭하다"며 극찬했다.[28]

임재범 역시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대신 불러준 것이라 스스로 겸손해했지만 각설하고 2차 경연 순위는 무려 28.9%라는 압도적인 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 28.9%가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계산을 하면 이는 청중평가단 500명이 각각 3표씩을 행사해 나온 총 1500표 중에서 433~434표(28.8666…~28.9333...)에 해당하는 것으로, 청중평가단 전체의 86.6~86.8%가 임재범을 선택했다는 의미.

참고로 이날의 경연은 다른 날도 아닌 522대첩이었다.

이런 가운데 나가수는 여러 가지 이유로 각종 루머에 휩싸이게 되었고 루머를 제작진에서 부인한 후엔 언론에서 임재범의 난동설이 보도되었다. 임재범 측은 실제로 다툼이 있던 것은 사실이고, 다만 난동이라는 표현은 과장된 표현이라고 밝혔다.[29]

7.2. 나는 가수다 출연 후

2011년 5월 31일 자신의 팬카페에 심신과 영혼이 지쳐 영국으로 떠난다라는 글을 올리고 돌연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나는 가수다로 갑작스럽게 신드롬을 일으키며 일어난 엄청난 관심과 부담에 본인이 지친 듯. 6월 11일에 있을 돔아트홀 공연 연습을 위해 돌아올 예정이었지만 돔아트홀 공연이 취소되면서 또 도마에 올랐다. 임재범이 영국으로 멋대로 떠나버려서 공연이 취소되었다고 일부 네티즌들이 썰을 퍼트렸지만 공연 기획사에서는 회사 내부 사정으로 취소되었다고 해명했다. 이래저래 파란만장한 임재범의 인생(...).

그런 가운데 최대 음반사로 꼽히는 예당과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 나가수에서 임재범의 편곡을 맡기도 했던 하광훈이 예당과 계약했던 걸로 볼 때 하광훈의 연결이 있었던 듯.

2011년 7월엔 카페라떼 CF도 찍었다. 그 해, 매일유업은 컵커피 시장에서 4년만에 1위를 탈환했다고 한다.

여전히 방송 출연은 꺼리는 걸로 보인다. 데뷔 30주년…방송가 출연 요청에 침묵.

2015년 3년만의 신곡이자 데뷔 30주년 기념앨범 발매로 방송가의 러브콜이 뜨거웠지만 2011년 MBC ‘나는 가수다’와 ‘바람에 실려’ 이후 4년째 방송출연이 없는 임재범은 여전히 자신만의 ‘동굴’ 속에 있다.

6일 임재범 측에 따르면 임재범이 30주년 기념앨범을 낸다는 사실이 알려진 9월부터 토크쇼와 음악 예능을 중심으로 방송가의 출연 제안이 쏟아졌다. 방송출연이 거의 없던 임재범은 이미지 소모가 없어, 늘 ‘신선한 인물’을 찾는 방송가의 구미에 맞는 섭외 1순위다. 특히 임재범이 올해 데뷔 30주년이라는 의미도 있어 방송 출연에 나설 가능성도 높아 보이지만, 임재범은 방송가의 요청에 ‘묵묵부답’인 상황이다. 임재범 측 관계자는 6일 “지상파와 케이블 등 웬만한 예능 프로그램으로부터 출연 제안을 받고 있지만, 임재범은 이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30주년 기념 전국 투어 ‘애프터 더 선셋: 화이트 나잇’은 2015년 10월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 2회 공연을 시작으로 인천 남동 체육관, 부산 벡스코, 울산 동천체육관, 광주 염주체육관, 일산 킨텍스, 대구 엑스코, 수원 실내체육관, 성남아트센터, 의정부 실내체육관, 그리고 서울 세종문화회관 등 2016년 2월 14일까지 총 10개 도시에서 14회 동안 진행된 투어는 성황리에 종료되었다. 전국 콘서트 투어는 공연 시장의 전체적 불황에도 불구, 객석 점유율 98%를 보여 더욱 눈길을 끌었다. 임재범, 30주년 전국투어 5개월 대장정 마무리..객석 점유율 98%.

7.3. 히든싱어


'히든싱어4' 임재범 출연 2015년 11월 29일에 히든싱어로 4년 만에 방송에 복귀했다! '히든싱어' 측은 시즌 1부터 임재범의 섭외를 위해 접촉을 시도했다. 삼고초려가 결실을 맺었고, 시즌4의 초반 라인업으로 나설 예정이었지만,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부득이하게 하반기로 미뤄지게 됐다.

조승욱 CP는 19일 서울 상암동 JTBC 본사에서 열린 '히든싱어4' 기자간담회에서 "임재범은 워낙 방송 출연을 잘 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간간이 콘서트만 개최했다"고 밝혔다. 조 CP는 그런 임재범에게 고마워하면서 "방송가에 떠도는 임재범에 대한 소문에 사실 걱정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녹화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줬다. 또 모창능력자들에게 좋은 얘기를 많이 해줬다. 평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만의 속깊은 이야기, 팬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최초로 들을 수 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히든싱어 출연한 임재범은 중간중간에 아재개그도 터트려주고, 예능감을 멋지게 드러냈다. 우승한 건 덤. 히든싱어에 나와서 잃어버린 초심을 다시 찾은 듯한 기분이라며 흡족해 하였고, 참가한 모창 능력자들은 이제 자신들의 후배들이라며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진심어린 조언도 해주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역시나 모창 대상 가수로 가장 많이 손꼽히는 가수답게 모창 능력자들도 후덜덜한 실력들을 선보였으며, 20분이나 연장된 방영시간에도 불구하고 이날 방송 시청률은 6.838%를 기록하였다. 이는 ' 히든싱어4' 방송분 가운데 가장 높은 시청률이었을 뿐 아니라 동시간대 지상파와 종편의 다른 프로그램 시청률을 넘긴 수치였다. 다만 왕중왕전 직전에 가수들이 모창자에게 조언을 해주는 부분이 모창자마다 나오는데, 임재범의 모창자만 따로 녹화한 게 아니라 임재범편 종료 직후에 함께 통으로 촬영한 것으로 보아 방송 출연 자체는 여전히 많이 꺼리는 것으로 보인다.

2015년 11월 28일 방송된 JTBC ‘히든싱어4’ 출연으로 주말 포털사이트, 티켓 예매 사이트를 뜨겁게 달군 데 이어, 방송 직후 1만여장의 공연 티켓을 팔아 치우는 저력을 과시했다.

임재범의 전국 투어 ‘애프터 더 선셋: 화이트 나잇(after the sunset: White Night)’은 ‘히든싱어’ 방송 직후, 티켓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에서 1위부터 10위까지 순위를 줄 세우며 대중적 관심을 받았다. ‘음악의 神’ 임재범, ‘히든싱어 효과’ 톡톡..전국공연 티켓 주말내 1만장 판매.

8. 사별, 그리고 7년만의 복귀

2017년 6월 12일 부인 송남영이 향년 45세에 갑상샘암으로 사망했다. 사별을 한 뒤론 어떤 앨범 활동도, 콘서트도 하지 않은 채 팬들과의 소통도 끊어졌다. 2022년 6월 16일 미디어 청음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아내와 사별한 후 음악, 텔레비전을 끊었었다고 한다. 2020년까지만 해도 평소보다 15~20㎏ 덜 나가는 체중에, 머리카락은 허리 밑으로 내려오는 모습이라 주변인들이 걱정한 모양.

2021년 5월 14일, 임재범 소속사 측은 임재범 공식 SNS 계정 및 유튜브를 통해 임재범의 21년 전 앨범인 Memories의 최초 녹음 릴 테이프를 발견했으며 데이터 복원 중에 있다고 알렸다. 임재범/음반 목록 이쪽에서 Memories 앨범에 들어있는 곡들을 확인할 수 있다.

2022년 5월 9일 드디어 컴백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공식 페이스북과 팬카페 등에 응원을 부탁한다는 글이 동시다발적으로 올라왔으며 임재범 본인의 공식 온라인 홈페이지도 새롭게 오픈되었다. 유튜브에 임재범 본인이 직접 출연한 숏츠 동영상이 업로드 되었고 유튜브 숏츠 1 유튜브 숏츠 2 홈페이지에 신규 앨범 녹음 장면으로 보이는 스틸컷도 업로드 되어 공식 홈페이지 조만간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것을 암시했다.
참 긴 시간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많이 아프고 또 아팠습니다.

두려웠고, 조심스러웠습니다.

다시 한번 스스로를 다잡으면서 여러분께 마음의 손을 내밀어봅니다.
임재범, 공식 홈페이지
정규 7집 SEVEN,(세븐 콤마) 선공개곡 '위로'

2022년 6월 16일, 정규 7집 선공개곡 '위로'[30]가 발매되었다. 2015년 데뷔 30주년 앨범 이후 약 7년만의 활동 재개이자, 10년 만의 새로운 정규 앨범인 셈. 7집 앨범은 현재 작업 중이고, 프롤로그곡인 '위로'를 시작으로, 7월 중순부터 1막, 2막, 3막, 에필로그로 나누어 순차적으로 음원을 공개하며 올해 하반기에 앨범을 최종적으로 완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7집의 가사 대부분은 <너를 위해>를 쓴 작사가 채정은이 썼다고. 또 임재범 스스로 밝히길 노래를 오랫동안 안 해서 톤이 얇아졌고, 전에는 반가성 창법을 썼는데 지금은 진성을 쓰고 있다고 한다.

2022년 10월 29일을 시작으로 전국 투어 콘서트를 돈다.
'Soldier Of Fortune'
2023년 1월 6일 첫 방송된 비긴어게인 - 인터미션에 출연했다. 버스킹 형식의 콘서트를 하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많은 팬들이 그의 출연을 반겼다.
'일동 기립'하게 만든 大가수 임재범의 등장'

2023년 10월 26부터 방영된 싱어게인 3 - 무명가수전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했다. 첫 오디션 심사위원 출연인데다 실용음악계에선 이미 보컬 레전드기도 하고 가장 연장자인지라 주변 심사위원들이나 참가자들이 첫 등장시 경악한 게 포인트. 허나 독설을 내뱉을 것만 같은 일각의 예상과 달리 젠틀하고 솔직담백한 심사평을 해서 호평을 받았다. 잘한 참가자에게 주는 '참 잘했어요'가 심사 시그니처 포인트.

9. 논란 및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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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가족사

배우이자 가수인 손지창과 이복형제다. 임재범의 아버지 임택근 전 아나운서가 외도로 쉽게 말해 정부인 외 다른 여자들과 바람 피워 낳은 자식이 임재범과 손지창이다. 임재범은 임택근의 두번째, 손지창은 임택근의 세번째 여인의 자식이다. 즉, 둘 다 서자다. 게다가 임택근은 그렇게 낳은 자식들을 제대로 돌봐주지도 않아 이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보면 그 아픔이 어땠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일단 요약해서 족보를 설명하자면, 첫 번째 아내와의 결혼 생활이 불만스러웠는지 자식도 없던 임택근은 2명과의 불륜으로 사생아인 임재범, 손지창을 얻었다. 물론 애당초 자식 계획은 없었는지, 이후 임재범은 한 살 때 생모가 일본으로 떠나 어쩔 수 없이 키웠지만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고 관심도 주지 않은 채 숨겨 키웠다. 이때 임재범은 고아원과 할머니집을 전전하며 살았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하고 두 번째 결혼을 한 뒤에야 호적에는 올려줬다고 한다.[31] 임재범도 자신의 어머니가 생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한동안 방황했다. 즉, 첫 번째 부인과 결혼 생활 중에 제3의 여인(임재범의 생모)과 바람을 피워 자식을 낳았는데 호적에는 또다시 별개인 두 번째 부인 아들로 들어가 있다(…). 이딴 출생의 비밀은 어지간한 막장 드라마에도 나오기 힘들 듯.

그나마 임재범은 이혼 과정을 이용해서 어찌어찌 출생 사유를 숨겨서 임씨 성은 물려줬지만, 진짜 없는 아들 취급 받은 손지창은 그렇게도 하지 못해 이리저리 떠넘기다가 결국 손윗동서에게 떠넘겨서 그 동서(이모부)의 성인 '손씨'로 호적에 올라가게 만들었다. 임택근은 본처에게도 첩들에게도 너무 개차반 행동을 한 것이다. 손지창이 토크쇼에서 고백한 바에 따르면, 적어도 대학교 합격한 후에 첫 등록금만은 아버지에게 받고 싶었기 때문에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32] 문자 그대로 넌 내 자식이 아니다라고 문전박대당한 트라우마가 있었다고 한다.[33]

나중에도 손지창은 '나는 손지창이지 임지창이 아니다.'고 밝혔고, '나와 오연수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을 임씨로 개명할 마음도 없다.'고 밝혔다. 애초에 손지창에게 손씨라는 성을 준 사람(호적상의 아버지)은 손지창의 이모부고, 손지창은 이모부를 아버지로 생각한다는 말을 했다. 손지창이 스스로 밝히기로, 청소년기가 되기 전까지 가족들이 그에게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지 않고 키웠기 때문에, 이모부가 친아버지, 이모가 친어머니인 줄 알고 그냥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고 이종사촌들을 친형제라 부르며 성장했다고 한다.

임택근은 손지창을 끝까지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다가, 이런저런 소문이 나게 되고 기자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된 후에야 비로서 '아들아!'라며 감동의 재회 따위를 연출한다. 아버지인 임택근이 과거 MBC 유명 아나운서 출신 간부라 인맥빨로 방송가 사람들한테 부탁했는지, 당시 연기자였던 손지창도 윗선의 부탁에 울며 겨자먹기로 그런 연출에 응해는줬지만, 이후 '그건 다 연출이고 난 그 인간 아버지로 인정할 생각 없다'라고 밝혔다.

그래도 임재범과 손지창의 사이는 나쁘지 않다고 한다. 둘은 2002~3년경에 둘 모두와 친분이 있던 룰라 이상민을 통해 만나게 되었는데, 당시 현장에 있던 이상민이 후에 인터뷰에서 밝히길 상당히 화기애애하고 서먹함이 없는 분위기였다고. 같은 사람에게서 받은 같은 상처를 공유하는 애틋한 형제관계인 것이다. 손지창이 라디오에 출연해서 말하길, 더 블루가 재결합을 했을 때 손지창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시켜준 사람이 임재범이었다고 한다. 제수 오연수도 임재범의 팬인 듯. #

다만 승승장구에 게스트로 출연해 임재범이 푼 썰에 따르면, 세부적인 이야기는 약간 다른듯도 하다. 일단 동생인 손지창의 경우 실제 친해서 자주 연락하며 만나고 있는 듯 하며 삼촌인 손지창이 임재범의 딸을 무척 귀여워한다는 듯. 임재범은 한동안 자신을 무녀독남 외동아들로 알고 있었으나 집안 어른들을 통해 '지창'이라는 이름의 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후 손지창이 스타가 되어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자 그것을 보고 평소 친하게 지내던 기자에게 '내게 숨겨진 동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지창이가 아무래도 내 동생인 거 같다'라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이때 그 기자는 그 이야기를 듣고 무척 놀랐는데, 왜냐하면 기자는 손지창에게 그 이야기를 이미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 결국 이상민이 아니라? 그 기자를 통해 이복형제가 만나게 되는데, 손지창은 이때만 해도 임재범을 만나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론 미워하는 감정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형인 임재범은 아버지와 함께 살았기 때문. 그러나 만나서 실상을[34] 알게 된 후 서로 별반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을 알고 원망의 감정은 사라졌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도 아버지라는 인간은 '두 아들을 둬서 행복하다' 따위의 발언 #을 하고 앉았으니 임재범과 손지창만 불쌍하다. 정작 두 아들들은 각자의 2세를 위해 호적 정리를 할 예정이라고. 이미 손지창의 혈연 관계는 임택근에게서 완전히 떨어져 나갔다. 임재범 역시 21세기 무렵 아버지 임택근이 "임재범이랑 교류 안 하고 산 지 몇 년 됐다."라고 인터뷰한 것으로 봐선 호적 정리 유무를 떠나 거의 담 쌓고 산 사이임은 분명하다.[35] 손지창과는 다르게 아버지와 함께 살 수 있었다고는 하나 아버지에게 대놓고 '아버지는 밖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100점짜리일지 모르나 집에서는 0점이에요'라고 말한 적도 있다고 할 정도였다. 나중에 가선 임택근과 더 이상 왕래가 없었다고 한다.

결국 임택근은 이전에 진해군항제에서 당한 목이 부러지는 사고[36]로 하반신 마비가 왔다. 또한 담석 수술 등으로 이미 몸이 크게 약해진 상태. 이런 아버지에게 임재범이 메세지를 날렸는데, '아버지가 지금 굉장히 힘들고 어려우며 몸과 마음도 많이 망가진 것은 알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그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라며 냉정하게 채찍을 들었다. 그래도 언젠가 아버지를 용서해야 될 때가 올 것 같다고 담담히 털어놓기는 했다. 손지창과 이복 형제이며, 그 아버지가 임택근 아나운서라는 점이 최초로 밝혀질 당시 한 TV 연예뉴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도 임재범은 이 문제에 대해 ‘지난 일이고, 그 분(임택근)의 인생에 대해서 어찌되었건 자식이 이렇다 저렇다 제 3자에게 말하는 것 자체가 의미없는 일’이라는 식으로 담담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20년 1월 11일 사망한 임택근의 빈소를 상주로서 지켰다. #

2022년 6월 청음회에서 아버지의 죽음에 슬퍼했다고 하는 걸 보면, 홀대했던 부친임에도 친부는 친부인지라 임택근에 대해 일종의 애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23년 비긴어게인 출연 당시엔 살아계실 땐 참 미웠던 부친이었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종종 생각난다며 그리움을 표하기도 했다. 이별이라는게 많은 미움을 덮어버리더라고..

11. 여담

  • 그가 한 말 중 "폼 잡을 시간에 연습이나 더 해라.", "즐기면 즐기는 거지 판단하는 게 아니거든요… 음악은…"이 있다.
  • 원래는 외인부대 해체 후 1988년도에 솔로 데뷔를 하려 했다. 실제로 당시 신예였던 윤상과의 곡 작업이 60% 정도는 완성된 상황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임재범의 영국행으로 결과적으로 무산되었고, 1집은 아시아나 해체 이후인 1991년도에 발매되었다.
  • 연기를 한 적이 있다. 실제로 한땐 배우가 될 생각도 했다고 한다. 1991년 강우석 감독의 영화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에서 기자 역으로 출연했는데, 은근히 비중이 있는 조연으로 나온다. 의외로 연기 발성이 상당히 좋다. 첫연기 도전 치고는 내용이 꽤 하드한데, 여주인공 김성령을 겁탈하려다가 폭사한다(...). 일화가 있는데, 임재범이 사석에서 성대모사를 한 모습을 촬영한 테잎을 본 강우석 감독이 출연 제의를 하였다고 한다.
  • 영어 실력이 상당한데, 김도균과 영국에서 밴드 활동을 시작할 당시에는 영어 한마디도 못했으나 영국 생활 6개월 만에 생활영어를 마스터했다는 카더라가 전해진다. 참고로 임재범은 영어 발음이 굉장히 좋은 걸로 정평이 나 있는데, 아마 듣는 귀가 좋아서 그런 점도 있는듯하다. 김도균이 아궁이에 출연했을 때, "미국인이 임재범의 영어를 들으면 네이티브 영국인으로 생각할 정도로 영어 발음과 실력이 뛰어나다."고 밝혔다. 실제로 영어를 쓰는 장면들을 보면 영국 영어 뿐 아니라 미국식 영어에 미국 남부식 영어, BBC 아나운서 흉내, 인도식 영어 등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있는 영어 억양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흉내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원어민들을 상대로 영어로 자연스럽게 농담까지 칠 정도이니 영어 실력에는 도가 튼 셈. 외국어 성대모사 영상. 영어 알려 주는 남자(영알남) 완벽에 가까운 영국영어 구사하는 임재범 영어 실력 (영어발음 장인...)이란 제목으로 임재범의 영어 발음 실력에 대해 다루기도 했다.
  • 일부에선 한국 소몰이창법의 창시자로 보는 시각도 있다. # # 수요 예술무대에서 '저도 웃긴 놈이에요. 헤비메탈하다가 소몰이 창법인지 소머리 국밥인지 한국에서 거의 최초로 했잖아요? 제임스 잉그램이 헤비메탈하는 거 봤어요?'[37]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다만 소몰이창법 항목에도 있듯 임재범의 고음 스타일은 엄밀히 따지면 두성으로, 2천년대 중반 당시 가수들이 구사한 (힘으로 밀어붙인) 소몰이창법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 밤이 지나면'에서 소 몰듯 워우워우워~라는 바이브레이션을 많이 넣긴 했는데 그거 보고 소몰이 했다고 언급한 것일지도 모른다.
  • 음색이 비슷한 가수로 마이클 볼튼이 자주 꼽힌다. 임재범 솔로 데뷔 후 한동안 한국의 마이클 볼튼 소리를 듣기도 했고, 마이클 볼튼의 곡들도 종종 커버했다. 다만 90년대에 방송가에서 불러달라고 해서 부른 것에 가깝고, 임재범이 중저음 소울톤을 연습하다보니 비슷해진거지 마이클 볼튼만 참고한건 아니고, 실제 들어보면 똑같진 않고, 고음역에선 발성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 임재범은 고음에서 반가성이나 성대를 살짝 붙힌 소리를 사용하는 편이다. 제프 테이트의 고음과 비슷한 점이 있다. 임재범이 영향받았다고 하는 제임스 잉그램의 음색 또한 임재범과 비슷한 편이다.
  • 젊은 시절 헤비메탈 보컬로서의 자신을 회고하길 느낌은 화이트 스네이크 데이비드 커버데일을 닮고 싶었고, 중음은 DIO 로니 제임스 디오를, 고음은 그레이엄 보넷을 염두에 두고 연습을 했다고 한다. 물론 상기했듯 이금희의 가요산책에서 임재범 본인이 영향을 받았다는 말은 부인했기에 걸러들을 필요는 있다. 한 보컬만 팠다기보단 방송과 라디오, 팬카페 등에서 직접 언급한 것들을 종합해보면 그냥 자신에게 도움이 될만한 부분을 가진 보컬들은 다 따라해봤다고 봐도 무방하다. 방송에서 모창을 하는 것을 보면 그런 점이 많이 묻어난다. 애초에 펑크록 보컬에 대해서 언급하는가 하면, 승승장구에선 잠적하던 시절에 이니그마 앨범을 들고 산에 들어갔던 얘기를 하는 등 기본적으로 음악을 폭넓게 많이 듣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방송에서 트로트도 자주 듣고 부른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또한 훗날 헤비메탈 씬을 그대로 잇지 못하고 자신은 변절(?)한 거 같아서, 후배들에게 많이 미안하다고.
  • < 고해>는 90~2000년대 남성들이 노래방에서 멋있어 보이고 싶거나 사랑 고백할 때 부르는 노래 거의 1위였다. 다만 시간이 흘러 음치들도 부르다 보니 과유불급이라고 여자들이 '남자들이 노래방에서 부르면 싫은 노래'로 뽑기도 했다(...). 사실 웬만큼 노래하는 사람이라도 임재범의 창법은 상당히 따라하기 힘들기 때문에[38] 원곡과 비교 효과가 나서 쉽게 부르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임재범 노래는 노래방에서 웬만하면 자제하는 게 좋다. 이렇게 되는 수가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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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 그래서 남자들이 부르면 여자들이 싫어하는 노래의 가수로 유명하다. ## <너를 위해> <고해> 등이 대표적. 그 이유는 노래말이 애절해서 마초적 판타지를 자극하기 때문에 남자들이 술마시고 즐겨 지르는 노래지만 남자가 부르긴 다소 음역도 높고 임재범만한 가창력이 없으면 여자들에게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허세로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 팬카페에 올라온 인증으로 봤을 때 와우 유저인 것 같다. 콘서트에서 인증했다. 이제는 빼도박도 못하는 상태[40] 사용 캐릭터는 트롤남캐(…). 이소라에게 낚였다는 말이 있다. 와갤에서 그를 어떻게 찾아낸 후 가방을 주는 훈훈한 모습이 일간베스트로 올라가기도 했다.
  • 나는 가수다에 출연할 당시 삭발을 했는데, 암투병 중인 아내가 치료 관리 이유로 삭발을 해야 했는데, 아내가 그런 일을 겪는데 자기만 머리를 기르고 있을 순 없다는 이유로 자신도 삭발을 해버렸다.
  • 나는 가수다 인터뷰 도중 투병 중인 아내가 남편이 1위를 했다는 사실에 전화상으로 매우 좋아하자 10년 만에 아내가 행복해 했다며, 눈시울을 훔치기도 했다. 알게 모르게 가족에 대한 사랑이 인터뷰 속에서 묻어난다. 특히, 지하철에서 시비를 걸던 남자가 급기야 딸을 울리자 내 딸을 울리다니 하며 야수처럼 격변했다는 일화가 인터넷 카페에서 공개된 적이 있는데 딸에 대한 사랑의 표현은 이미 2004년경 5집의 홍보 때 그 기미를 보여준 적이 있다. 뜬끔없이 딸의 사진을 내보이며 딸이 명령하는대로 따르고 있다는 말을 했었다. 야수 돌변 사건은 어찌 보면 예견된 사건인 셈. 고현정쇼에 출연하여 이때 상황을 자세히 밝힌 바 있다. #
  • MBC 나도 가수다에서 개그맨 정성호가 정재범이라는 가명으로 임재범을 패러디한 개그를 하고 있는 중이다. 정성호에게 임재범이 직접 만나서 막걸리 한잔 하자고 했는데, 맞을까봐 무서워서 안 갔다고 밝혔다(…). 물론 이건 개그고, 실제로 임재범이 나도 가수다 패러디 무대에 대해 직접 조언을 해주는 등, 두 사람은 연락도 하고 굉장히 많이 친해진 모양이다. 자세한 내용은 정성호의 인터뷰를 참조해보자. #
  • 2010년대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출연했을 당시 여러 성대모사를 선보이며 예능감을 발산했다. 사실 사석이라던지 자신의 콘서트에서도 자주 성대모사를 한다고 하며 임재범과 친분[41]이 있는 탁재훈의 증언에 의하면 소싯적 임재범과 주변 사람들이 모여 결성한 사교 모임 '주둥아리 클럽'에서 거의 독보적으로 존재감을 자랑했었다고.
  • 해피투게더에서 박수홍의 진술에 의하면, 1990년대 초에 방송국 근처 여의도 락카페에 놀러 간 김수용이 임재범과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42] "여의도에 김수용이 나를 자주 데려가던 카페가 있다. 어느날 그 카페에서 김수용과 함께 있는데 김수용이 자꾸 한 곳만 응시하더라. 거기 임재범이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둘이 눈싸움을 하고 있더라. 김수용이 복화술로 '오늘 관짜라'라며 중얼거렸고, 그때 임재범이 우리 쪽으로 걸어오더니 낮은 목소리로 '(눈)깔아'라고 말하더라. 정말 무서웠다"고 했는데, 김수용이 기죽지 않고 눈을 마주치며 버텼지만 계속 노려보던 임재범이 자기 팔[43]에다 담배를 끄자, "사람을 잘못 본 것 같네요. 죄송했습니다. 제가 여의도에서 학교를 나온 여의도 출신인데요. 그래서 여의도에 어릴 때 친구들이 많아서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제 옛날 친구랑 닮으셔서 제가 잘못 알아본 것 같네요. 죄송하게 됐습니다."라고 길게 주절주절 변명하면서 사과하자, 임재범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끝났다고 한다. 김수용 본인이 첨언한 바로는 정말 숨이 막힐 것 같았다고 한다.[44]
  • SBS 좋은아침 출연에서 아내가 본인을 "아줌마"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 그리고 음악을 굉장히 많이 듣는 듯 하다. 잠적했을 때는 이니그마의 음악을 일 년 내내 들었다는 발언을 한 적도 있고, 나는 가수다에서도 대기실에 있던 내내 음악을 듣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주다스 프리스트의 월드 투어 서울 공연에 게스트로 출장해 Rock in Korea와 Paradom을 열창했다.
  • 2011년 7월 8일에 방송된 MBC 스페셜 - 나는 록의 전설이다 백두산의 기타리스트 김도균, 보컬 유현상, 시나위의 기타리스트이자 리더인 신대철, 부활의 기타리스트 김태원 그리고 부활 초대 보컬이자 시나위 2집 보컬인 김종서, 부활 5대 보컬인 박완규, 그리고 YB의 리더인 윤도현과 함께 출연했는데[45][46] 사실 중심이 1980년대 한국 록을 주름 잡았던 3대 록밴드인 백두산, 시나위, 부활에 맞춰져 있던 만큼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정작 한국 록의 스피릿을 결정지은 들국화와 한국 록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신중현에 대한 언급은 왜 없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신중현은 아들 신대철이 나왔으니 좀 나은 거 아닌가?? orz
  • 임재범의 팬카페는 '임재범을 알아야 락을 알지(약칭 임알락)'으로, 임재범과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음악 애호가들의 동호회 성격을 띤 다음 카페이다. 이와 관련해서 임재범은 자신의 팬카페를 2번 탈퇴했다가 결국 2번 복귀한 이색적인 경험의 소유자이다. 처음은 나가수 촬영 도중 맹장 수술로 하차한 과정에서 탈퇴한 것으로 2일 만에 복귀했다.[47] 두 번째는 루리웹 만지소 인증사건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터진 일이기에 그 사건의 임재범 버젼에 가까웠다.
  • 임재범 갤러리에 임재범이 직접 글을 남겼는데 문제는 (디시 유저들 입장에서) 사칭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일명 '유동닉'이었고, 이에 유저들이 가짜라고 주장하면서 인증을 요구한 것이다. 그리고 이에 분개한 임재범은 "가짜로 오인받아 난감하다(원문 : 여러분들은 웃기세요? 제가?). 인터넷상에서 어느 누구라도 그런 욕을 해도 괜찮은 거냐"며 "저라고 욕을 할 줄 몰라 안 하겠느냐, 음악이 여러분에게 끼친 영향이 그거밖에 안 되는 거냐"라는 글을 남기면서 2011년 10월 24일 팬카페를 탈퇴하게 된다. 해당 글의 글씨체(궁서체)와 글씨크기(36p)를 보면... 디시를 처음 접한 일반인들의 흔한 반응 그리고 이는 신문기사화 # 되어서 디시인사이드가 얼마나 막장인가를 보여준 사례가 되었다. 결국 갤주를 물어뜯은 개 꼴이 되어버린 임재범 갤러리와 팬카페는 그야말로 패닉에 빠지게 된다. 결국 1주일 만인 당년 10월 31일에 팬카페에 복귀한 임재범은 상처를 준 것은 사과하지만 탈퇴라는 강한 수단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라고 밝히며 복귀하게 된다. 여러모로 임재범 팬덤에게는 최대의 흑역사.
  • 2013년 2월 23일, 동년 10월 26일 불후의 명곡에 레전드로 출연했다.
  • 본인 말에 의하면 1962년생이지만, 1967년 2월생인 시나위 리더 신대철과 같은 학교 동창 사이다. 신대철은 2017년 정영진 최욱의 불금쇼 108회에서 임재범이 나이가 한참 위이지만, 같은 동기라서 친구로 지냈다고 한다. 정영진 최욱의 불금쇼 신대철. 나이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사람은 아마 이런 사연으로 주변 지인들과 임재범 사이의 호칭이 애매해진 부분에서 의문을 품는 듯 하다. 블랙신드롬의 보컬 박영철은 자신의 자전적 수필에서, 임재범으로부터 이런 이유 탓에 주민등록증의 생년과 실제 태어난 해가 다르다는 요지의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 가족사를 보면 알 수 있듯 아버지 때문에 족보가 꼬인 게 큰 듯. 이후 tvn 예능 고교급식왕에서 호적상으론 68년생이지만 실제론 66년생인 백종원이 '재범이와 친했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왔다. 고등학교에 같은 해 입학한 동기동창이라 나이와 상관없이 친한 친구 사이였던 듯. 신대철과도 친구 사이로 백종원이 신대철한테 기타를 배울 뻔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65년생 전 국회의원 최재성도 임재범 1년 선배이지만 임재범과 돈독한 친분을 가졌었다고 한다. 65년생 김종서동생 신대철은 친구인데 임재범을 항상 형이라고 부른다. 시나위 보컬 임재범과 김종서.
  • 시나위를 탈퇴하고 제52보병사단 방위병[48]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2011년 나는 가수다 출연 후 '다시 태어난 거인' 콘서트 무대에서 "난 도시락 특공대인 방위 출신이다"라며 유쾌한 입담을 선보이기도 했다.
  • FT아일랜드 이홍기를 방송에서 자신의 양아들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아끼는 모양이다. 실제 나이차도 딱 부자뻘이긴 하다. 2011년 MBC 예능 프로그램 바람의 실려에서 함께 미국 버클리 음대로 떠나 공연을 하였는데, 그곳에서 이홍기가 고해를 열창하였고 그것을 보고 아이돌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고 한다. 그 후로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듯.
  • 성인이 된 딸과는 친구처럼 지내며 딸이 노래도 평가해주고 아빠를 많이 응원해준다고 한다. #

12. 관련 문서



[1] 프로필상. 주민등록상으론 66년생이고, 나가수 출연 전에는 63년생으로 활동하였다. 후술되어있듯 부친 때문에 족보가 꼬여서, 본인이 몇 년에 한 번 한 살씩 올리는 중이라고. 사실 본인도 잘 모를지도 오죽하면 62년생이라는 건 의리로 믿는다는 인터뷰를 한 동료 가수도 있었다. # 학교도 66년생들과 맞춰 나와서 67년 2월생인 신대철과도 같은 학교 동창 사이다. 덕분에 65년생 김종서는 형님으로 모시는데 신대철과는 서로 반말을 하고 이름을 부르는 사이다. 백종원과도 동창 사이라 "재범"이라고 여러 번 방송에서 호명한 적이 있다. 히든싱어 임재범편에서 출연진 중 한 명이 자기가 호랑이띠인데 임재범 씨도 호랑이띠인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는데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이 있었다. [2] 죽애공파(竹崖公派) 30세손 재○(宰○) 항렬이다. 족보에는 1966년생으로 등재되어 있고 학교도 그 즈음에야 갔다.( 족보) [3] 당시 182cm면, 오늘날 기준으론 더 큰 느낌의 장신이다. 이미 중학교 때 키가 180cm였다는 동창들의 회고담도 있다. 물론 임재범 본인의 주장대로 1962년생이라면 중학교에 다닐 때 이미 성인에 가까운 나이였으므로 키가 거의 다 큰 것이 이상하지는 않다. [4] 2020년 1월 11일에 별세했다. 이복동생 손지창과는 달리 일단 임택근의 호적에는 올라갔다. 다만 후술되어있듯 사이는 좋다고 보긴 힘든 애증의 관계였다. [5] 전 주한 미국 대사, 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대행. 성 김의 모친과 임재범의 부친인 임택근은 남매지간이다. [6] 1972년 9월 15일생. 뮤지컬 배우로 명성황후 등에 출연하였으며, 나는 가수다 출연 당시 결혼 10주년인 2011년부터 갑상샘암으로 투병 중이었음을 밝힌 바 있었다. 6년간의 투병 끝에 2017년 6월 12일 세상을 떠났다. # [7] 싱어게인3에 출연한 가수 임지수와는 동명이인이다. [8] 영화감독 변영주 짝꿍이었다고 한다. 변영주 감독 왈 "그때는 하얀 얼굴의 꽃소년이었다"고. [9] 신대철, 백종원과 동기. 참고로 신대철, 백종원도 친구 사이다. [10] 2004년 라디오 내용을 보면 천주교가 아닌 개신교이다. [11] 하드록에서 헤비메탈로 넘어오는 경계선에 서있는 그룹들은 몇 있었지만(대표적으로 조하문이 있던 하드록밴드 마그마), 스스로를 헤비메탈로 표방하고 앨범을 낸 이들은 시나위가 최초였다. [12] 이른바 무슨 노래든 자기 노래로 만드는 부류. 물론 한두 장르에만 독보적으로 타고난 음색도 있긴 하다. [13] "이들의 영향을 받았다" 고 2022년 콘서트에서 말한 영상자료도 있으니 참고. 다만 임재범 본인이 2004년 이금희의 가요산책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자존심 때문에라도 커버데일, 디오, 잉그램, 밴드로스 등의 노래는 들었으나 영향을 받은 적은 없고, 그 친구들을 따라한 적도 없다고 말할 거라고 밝힌 바 있었다. 그러면서 자기한테 영향력 받았다고 기자들이 평가하는 후배 가수들 역시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하면서, 그냥 좋아하는 음악이 비슷했을 뿐이고 자기들 나름대로 그 장르에 어울리는 톤을 찾다보니 스스로 개발한 것이지, 자기한테 영향 받았다는 소리 함부로 하면 안된다고 한 적이 있다. 본인은 자신의 보컬이 결국 다양한 뮤지션들의 많은 노선을 카피하면서 만들어낸 일종의 종합터미널이라고 표현했는데, 그래서 장르마다 다양한 창법을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하며, 결국 가수의 색깔이란 많이 들어보되 듣는 것만 해선 안되고 혼합할 줄 알아야 된다는 점에 방점이 찍혀있는듯하다. 연장선상에서 상업성 때문에 솔로 1집에서 마이클 볼튼 스타일의 음악을 한 것은 맞지만, 임재범과 마이클 볼튼의 음색이나 창법이 일부 비슷한 것은 샘쿡, 오티스 레딩 같은 중저음의 흑인 소울 보컬을 모티브로 해서일 뿐, 마이클 볼튼에게서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다. 애초에 마이클볼튼이 무명이었던 1986년에 데뷔한 게 임재범이다. [14] 근데 재미있는건 신해철은 어린 시절 시나위 말고 부활 팬클럽 부회장도 할 정도로 밴드 부활 팬이었다고 한다. [15] 재미있는건 오늘날에도 이 둘은 라이벌처럼 엮인다는 것이다. 물론 둘의 음색부터가 미성과 허스키로 원체 차이가 나서 라이벌보단 걍 둘 다 들으면 좋은 보컬 장인들이라고 보는게 더 맞을듯. 서로도 서로의 보컬을 호평해서, 임재범은 자신이 범이면 이승철은 매(, 조관우는 뱀)처럼 부른다고 호평했고, 이승철도 자긴 전달력이 좋은거지 목소리는 임재범같은 목소리를 가지고 싶었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16] 이선희는 어릴 적 꿈이 락커였다고 밝힌 적도 있을 정도로 락 매니아였다. 싱어게인2에서도 자긴 허스키 목소리가 좋다며 자기 목소리 맘에 안든다고 해서 출연자들을 당황시키기도 했다. [17] 여기서는 박정현의 이름으로 순위에 올랐다. [18]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임재범이 성량에서만 최고 수준의 보컬이 아니라는 점. [19] 가끔 그 성량 때문에 마이크 볼륨을 최대로 줄여서 임재범은 노래할 때 들숨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임재범은 고개를 돌리거나 많은 사람들이 임재범을 따라할 때 한 소절 끝나고 고개를 홱 돌리는 그것 마이크를 입에서 떼고 들숨을 쉰다. 그러니 마이크에도 들숨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유튜브 등 동영상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 [20] 진성 파사지오는 전성기 시절 3옥타브 레(D5)까지 찍는 것 정도는 무리없이 해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2옥타브 후반대. 아무래도 벨팅을 사용하는 임재범 발성의 특성상 특유의 진성 같은 가성 샤우팅을 제외하면 다른 락커들 같은 수준의 고음을 소화하기엔 무리가 있다. [21] 2010년대 MBC 음악 예능 '바람에 실려' 촬영 당시 부른 밴드 이글스의 곡인데 임재범화하여 잘 불러서 화제가 되었다. [22] 여담으로 비슷한 터프가이, 상남자 이미지가 있는 배우 최민수도 긍부정 루머가 많은 편이다. [23] 나이가 들면서 더 유해진 것도 있어보인다. [24] 후에 득남하게 된다. [25] '너의 미소', '사랑보다 깊은' [26] 사실 원래 남녀 듀엣곡은 대부분 남자 보컬에겐 빡세고 여자 보컬에겐 편한 경우가 많다. 화음의 구조 자체가 3도를 기본으로 하는데 이는 남녀의 원래 최고 음역 차이보다 훨씬 적기 때문. 아예 한 옥타브를 돌아서 음역 차이를 구성하는 방법도 있지만 (대표적으로 Way back into love) 이 경우는 남자 음이 극도로 낮아져, 저음을 고음보다 힘들어 하는 가수도 생긴다. [27] 박재범도 불후의 명곡 2에서 이 시점에서 1년도 되지 않아 빈 잔을 부른 적 있다. [28] 또 하나의 사례를 들자면 이 노래는 임재범이 부르기 전까지 그저 윤복희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모창을 하던 유머러스한 이미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는데 임재범의 이 공연 이후로는 이 노래를 아무도 유머스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29] 목소리를 높이긴 했어도 고성이라고 할 정도의 말다툼이나 난동을 부린 적은 없다고 하였다. 근데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고성이라 부른다.(...) [30] 작곡 한태수, 작사 채정은으로 이 둘은 이전에 아름다운 나라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31] 하지만 이조차도 외가 쪽 호적으로 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꽤 있다. [32] 정말로 돈이 궁해서는 아니었다고 한다. 말 그대로 20년 넘게 자식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회한 때문이었다. [33] 만난 자리에서 수백만 원짜리 시계를 뻔히 차고 나와서도 나도 힘들다는 소리를 해 손지창이 제대로 빡돌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임택근이 몹시 당황했다고. [34] 임재범도 고아원과 할머니집을 전전하며 살았던 적이 있다. [35] 임씨 성을 쓰는 걸 보면 일단 호적(현 가족관계등록부)에는 올린 듯한데 그렇게 되면 손지창과는 달리 새로 가족관계등록부를 만드는 건 대한민국에서는 불가능하다. [36] 버스에서 내릴 때 발을 헛디뎌 크게 넘어진 것이 원인이라는 걸로 알려져 있다. [37] 창법은 많이 다르지만 비슷한 이미지로 밴드하다가 발라드 가수로 바꾼 마이클 볼튼이 있기는 하다. 물론 마이클 볼튼은 메탈 밴드 블랙잭(Blackjack) 시절에 자기 보이스가 메탈에 별로 어울리지 않아서 상업적으로나 평가적으로나 굉장히 고생하다가 결국 소울락이나 발라드로 전향해 성공한 케이스니 차이는 약간 있다. [38] 엄청난 성량을 보여주지만 가성의 사용 빈도가 굉장히 높다. 보컬의 정석은 엿 바꿔먹었다. 더욱이 이 가성이 진성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특이하고 흉내내기 어렵다. [39]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이동국의 트위터에 있는 내용으로 이동국의 자폭 인증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힐링캠프에서 이동국이 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시청자들의 반응은 '이동국이 잘못했네'(...). 히든싱어 임재범 편에서는 이게 너를 위해가 아니라 고해로 잘못 방송되는 일도 있었다. [40] "여기 얼라 있어요? 트롤 남캐 조심하세요" [41] 탁재훈이 시나위의 드러머 김민기와 친구 사이였기에 이를 계기로 친해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거의 30년 가까이 알고 지내온 사이라고 하며 탁재훈 왈 거의 유일하게 자신을 본명인 성우로 부르는 사람이라고. [42] 서로 연예인인지 인식한 건지는 불분명한데, 정황상 김수용과 박수홍 쪽은 알아본 것일 확률이 높다. 대신 처음 눈이 마주쳤을 때는 거리가 멀어 못 알아봤었다. 가까이 다가오니 그제서야 임재범이었다고 했다. 정말 멀리서도 알아봤다면 같은 연예인이고 임재범이 선배인데 연예인끼리 싸워서 신문에 나올 일을 만들 필요도 없으니, 애초에 시비를 붙을 태도를 취하지 않고 다가가 인사를 하거나 좋게 말하려 했을 확률이 크고, 임재범이 노려보는 것도 "내가 선배인데 인사 안 하냐"는 신호 정도로 이해했을 것이다. 근데 정황상 임재범은 신인 개그맨이었던 그들을 못 알아본 것 같다. [43] 이건 실제로 혀인데 방송이라 순화하려고 왜곡했을 확률이 크다. 박수홍이 말할 때도 잠시 김수용 눈치를 보다가 자기 몸에라고 말했고, 그 전에 임재범이 가죽옷을 입고 다가왔다고 했는데 가죽옷에 문지르는 게 그렇게 겁이 날 리도 없다. 김수용처럼 여의도 싸움꾼이었던 사람이 겁을 먹었다면 분명 혀 정도에는 문질렀어야 하는게 상식적이다. 그리고 혀는 침이 있어서 그런대로 담배가 잘 꺼지지만 진짜 사람 팔은 담배가 잘 안 꺼진다. [44] 그러나 김수용 역시 국민학교 시절부터 짱을 했던 사람인데다가, 고등학생이던 80년대에는 '의리의 여의도 용팔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여의도 내에서 전설의 싸움꾼으로 유명할 정도로 싸움을 잘했다. 사실 체격도 임재범보다 김수용이 더 크다. [45] 록커 출신으로서 다른 영역에도 나섰던 인물들의 굴곡진 이야기를 그린 다큐답게 이런 멤버들로 전부 채웠다. 윤도현은 백두산, 시나위, 부활에게 영향을 받았던 후기 세대라는 점과 대중적으로 유명한 보컬인 점을 감안해 등장했다. [46] 또한 특별 게스트로 신해철, 이승철, 이윤석도 등장했다. 이승철은 알다시피 부활의 초대 보컬이었고, 신해철은 부활의 광팬으로 고딩 때부터 김태원을 따라다녔다.이윤석은 인터뷰 장면에서 특별 등장한다. [47] 사생팬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당시 임재범은 수많은 이유로 탈퇴한다고 밝혔다. [48] 오늘날로 따지면 상근예비역. 참고로 임재범이 군복무를 할 시기는 대한민국의 병역자원이 넘쳐나서 유명인은 물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방위병은 물론 병역면제자들 비율도 상당했던 시기였다. 2020년대에는 무조건 현역으로 가는 질병들도 이 시절에는 면제를 받는 경우들도 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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