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폭발을 통해 적에게 피해를 입히는 과정에서 조종사가 사망하거나 원래는 파괴되지 않는 게 원칙인 운반모체가 함께 파괴되는 병기.2. 기준
본래 자폭 병기라고 하면 카미카제 등 조종사의 희생을 전제한 공격을 의미했다. 간혹 성능 결함으로 탑승자의 생명을 위험하게 만드는 비행기 등에도 자폭 병기라는 명칭이 비속어로 붙기도 한다.애초부터 터지라고 만든 포탄, 로켓, 미사일등은 자폭 병기라고 부르지 않지만 목표물을 잃은 미사일이 엉뚱한 곳에 맞지 않도록 일정 시간이 지나서 폭파되는 경우에는 자폭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한편 2020년대를 기점으로 드론이 군사무기로 급부상하면서 '가미카제 드론, 자폭 드론'이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고 있는데 샤헤드-136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용례는 드론이 피자 배달이나 풍광 촬영, 군사정찰과 같이 민군을 가리지 않고 여러 방면으로 쓰이는 것을 고려한 것이다. 포탄, 로켓, 미사일은 본래의 용도가 폭발하는 것인 반면 드론은 다양한 용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좁혀서 표현하는 것이다.
3. 자폭 병기 일람 및 검토 사례
상술한 '기존의 용례'에 따른 것들이다. 정말 '자폭 병기'에 해당하는 것들은 '인간을 이용한 자폭 병기'에 보이는 일본군의 물건들과 테러리스트의 자폭 테러 정도다. 그 외의 항목은 비교를 위해 기재하였다.3.1. 인간을 이용한 자폭 병기
인간이 실제로 탑승한 채 자폭하는 병기다. 사용자는 적의 포로가 되지 않는 한 임무의 성패와 관계 없이 무조건 사망한다. 당연히 매우 반인륜적이고 비효율적인 방법이므로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나 탈레반 같은 테러리스트 집단처럼 인명경시 풍조가 만연한 막장 집단이 아니면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국가의 정규군 중에서는 일본군이 개발해 써먹었던 자폭병기들이 유명하다.-
카미카제
엄밀히 따지면 카미카제는 자폭 병기 자체가 아니라 조종사가 비행기를 타고 자폭 공격을 하는 행위다. 그 시점에서 자폭 병기의 한 구성품으로 전락해 버리니 거기서 거기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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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1(로켓) 유인형
일단은 돌입 직전에 파일럿은 탈출하도록 설계되었다. 심지어 2차대전기의 일반적인 항공기처럼 캐노피를 열고 탈출하면 후방의 엔진에 충돌할 위험을 감안하여 동체 하부로 의자째 빠져나가는 탈출 시스템을 만들어두었을 정도다. 결국 히틀러가 반대하여 실전배치되지는 않았다.
타국에도 병기를 충돌시켜 적의 병기를 파괴하는 개념은 있었다. 특히 폭탄의 화력이 강화되면서 한번에 여러 타겟에 타격을 입힐 수 있게 되면서 장비와 화력이 부족하고 오직 사람수만 많은 무장 집단에서 사람을 던져넣고 포로나 민간인을 가장한 자폭 병기를 숨긴 사람을 자살 폭탄 테러로 밀어넣어 타격을 입히는 오직 일방적으로 불리한 무장 집단이 인권따윈 개나 줘 버리고 사람을 갈아넣어 이득을 취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이를 위해 종교 등 각종 수단을 이용해 가스라이팅을 시도해 자폭 병기를 쥐어준다.
그러나 타국의 자폭병기들이 일본의 카미카제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는데 다른 나라의 '비슷한' 것들은 사람이 직접 몰더라도 사람은 폭탄을 '수송'만 하는 개념이었지 충돌 직전엔 탈출을 상정하고 있었던 것들이거나[1] 아니면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자원자를 받은 후 현장을 면밀히 판단하고 실행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중동의 세속 민족주의 테러리스트인 헤즈볼라도 초창기 이후애는 이렇게 한다. 명백한 테러 단체인 이들도 어쩔 수 없을 때만 자원자를 받은 뒤 자살 돌격을 실행하고 그마저도 가급적이면 하지 않기를 권고하는데 일본군은 이런 테러범들보다도 사고 방식이 뒤쳐졌다는 뜻이다.
그 외에는 처음부터 잃을 것이 없는 고아들을 지속적으로 가스라이팅해 자폭 병기 전사로 만드는 막장 테러집단(대표적으로 탈레반,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들이나 쓰는데 태평양 전쟁 때 일본군은 국민 전체를 총력전에 동원해 놓고 아예 병기에 사람이 타고 그대로 폭격하는 병기를 정식 편제로 운용했다. 당시 일본군에서 얼마나 인명경시 풍조가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 덕분에 기본적으로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 심한 편이던 서양인들을 더 편견에 물들게 하는 역효과만 낳았다.
3.1.1. 일본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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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텐
상부에서는 면피삼아 '탈출장치는 꼭 붙여라' 라는 핑계를 붙였지만 조종사가 탈출하면 선체가 크게 흔들리면서 조준이 빗나가므로 그냥 들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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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류
일본 해군이 대전 말기에 제작한 2인승 자폭 잠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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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식 파갑폭뢰
독일군의 흡착지뢰처럼 전차에 붙여 쓰라고 만든 거여서 자폭병기는 아니지만 자석 성능의 한계로 잘 붙지도 않았고 신관 신뢰성도 없으니 나중에는 그냥 들고 들이박는 무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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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돌폭뢰
성형작약 탄두를 매단 긴 막대. 위의 무기들처럼 설계부터 자살하라고 만든 무기는 아니지만 성형작약은 전체 폭발력의 60% 정도가 전방으로 집중되고 나머지는 확산되며, 폭심지로부터 1.5m 정도 거리를 둔 것으로는 살아남기 힘들어서 결국 자폭무기나 다름이 없다. 게다가 저렇게 눈에 띄는 긴 막대를 들고 전차에 접근하라는 것부터가 자살행위. 미군 보고에는 1944년 필리핀 레이테 섬에서 처음 등장했다는데, 1945년 3월까지 다 막아냈다고 한다.
3.1.2. 나치 독일
Sonderkommando Elbe(특수사령부 엘베)전투기 조종사들에게 서약서를 받고 연합군 폭격기를 들이받는 임무에 투입했다. 장갑 등을 다 뜯어낸 메서슈미츠 Bf 109를 사용했으며 무장이라곤 기총 하나에 60발 넣어둔 게 다였다. 다만 아군기를 적기와 충돌시키면서 조종사는 낙하산으로 탈출한다는 방식이라 그나마 무조건적인 동반자살을 전제로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일본과 달랐다. 낙하산이 없거나 비행 시간이 너무 부족한 경우에는 야전 지휘관들이 출격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실제로 낙하산을 이용해 살아 돌아온 조종사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죽은 경우가 더 많다. 자원병을 대상으로 한 작전이라고는 하지만 이것이 자원이었는지 아니면 반강제였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당시 독일은 막대한 소년병을 운용했고 엘베 특수공격대의 생존자들도 아직 가치관 정립이 되지 않았을 갓 20세 혹은 그보다 안 되는 청년들이었다.
그 외에는 유선 혹은 무선으로 만든 무인 자폭차량[2]인 골리아트 지뢰라는 무기가 존재했는데 주로 공병들이 사격 유도나 전선 설치용으로 사용했고 필요하면 전차 밑에 굴러들어가서 폭발하거나 적군이 배치된 건물을 파괴할 때 쓰이거나 90kg짜리 폭탄이 다가오는 것을 막아야 하는 적군의 반응을 유도하는 등의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사람은 멀리서 조종만 하고 자폭은 무인 기계 혼자서 했다.
항공기 쪽으로는 이와 비슷한 아이디어가 제시됐는데 다행히도 이쪽도 유인 항공기가 아니라 폭탄을 가득 실은 무인 폭격기 위에 전투기를 얹은 디자인으로 목표 지점까지 다다르면 조종을 하던 전투기가 폭격기와 분리되어 귀환을 하고 폭격기는 목표에 충돌해서 자폭하게끔 하는 방식이었다. 일명 미스텔이라고 불리며 주로 Bf 109나 Fw 190에 Ju 88 폭격기를 결합하는 것이었지만 Me 262 제트전투기에 Ar 234 제트 폭격기를 결합하는 계획도 존재했다.
V-1 로켓을 개조해 유인으로 조종하는 Me 328 전투기도 존재했다. 유인 V-1 로켓을 주장한 사람은 독일의 유명 여성 조종사 하나 라이치와 오토 스코르체니다. 하나 라이치는 세계 최초의 여성 테스트 파일럿이자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종을 조종한 여성으로 DFS 230 글라이더, Me 163 제트기, Ju 87 급강하폭격기 심지어 V-1까지 조종했다. 특히 V-1은 실험 단계에서 자꾸만 발사 직후 추락하는 일이 이어지자 원인 및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탑승했다. 그 결과 V-1의 비행 불안정성이 확인되어 대대적인 설계 개수 끝에 실전 투입을 할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하나 라이치는 히틀러를 마지막으로 본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당시 제6항공군 사령관 로베르트 폰 그라임 상급대장과 함께 히틀러를 탈출시킬 작정으로 Fi 156 정찰기를 소련군이 바글대는 베를린 공방전에 뛰어들어 총통 관저 앞 공터에 비행기를 착륙시켰다.
유인 자폭 항공기를 사용하지 못한 것은 아돌프 히틀러가 반대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유인항공기 계획은 충돌 직전에 조종사가 탈출하는 방식인데도 인명 존중 문제로 반대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바로 "자살 공격은 독일 민족과 맞지 않다." 후퇴의 '후' 자만 들어도 게거품을 무는 그 히틀러가 말이다.
그러나 실험은 해 본다고 V-1 로켓을 개조한 것을 만들기도 했으며 결국 1945년 전쟁 종결 직전 연합군이 베를린 가까이 진격하던 시점에도 계속 설득했고 히틀러도 패전이 눈 앞이라 전황만 돌릴 수 있으면 될 대로 되라면서 동의해서 상술된 엘베 특별공격대가 조직되어 히틀러가 반대했던 유인 항공기에 의한 "자살 공격 비슷한 시도" 가 감행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이것조차 TV 카메라를 장착한 무인 버전을 제작하기도 했는데 현대식 SAM의 조상이다.
일단 미스텔의 경우 사실 2차대전 말기에 나온 아이디어인 만큼 독일측에선 불필요한 존재인 남은 폭격기의 유일한 활용 용도였을 테고 잘만 맞춘다면 꽤 엄청난 타격을 줄 수 있었겠지만 활약 기록이나 그런 건 찾긴 힘들다. Action 24라는 이름으로 비스와 강의 소련군 도하를 막기 위한 교량 파괴 계획이 수립되었으나 흐지부지되었고 성공 사례는 1945년 3월 오데르 강에서 소련군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교량 파괴에 투입된 것들 중 일부밖에 없다. 많은 미스텔들은 실질적으로 투입되지 못했거나 투입되더라도 극소수의 희생과 훨씬 적은 전과만을 거둔 채 끝났다. 애초에 독일군은 조종사를 아깝게 희생시키고 싶지 않았고 조종사가 교량을 폭격한 후 스스로 강에서 헤엄쳐 돌아오는 식의 자살 공격 같지만 자살 공격이 아닌 애매한 작전만 짜다가 끝난 것이다.
3.1.3. 이탈리아 왕국, 영국
이탈리아 해군도 가이텐과 유사한 특수 어뢰를 만들었는데 이쪽은 카미카제나 가이텐처럼 돌격해서 적과 충돌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적함 밑에 가서 자석이 붙은 기뢰를 배 밑바닥에 부착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3] 즉, 자폭 병기가 아니라 수중 택시다. 알렉산드리아에 이 어뢰가 투입되었을 때 붙잡히지 않은 나머지 4명은 상륙하여 적당히 외국인인 척을 하다가 연락책과 만나기 전에 잡혀서 포로가 되었다.이걸 타고 알렉산드리아에 잠입했던 이탈리아 해군 승무원 6명[4] 중 어뢰가 중간에 고장나 붙잡힌 2명은 자기들이 폭탄을 설치한 군함에 포로로 잡혀서 구조되어 심문을 받다가 폭탄이 터질 때가 다 되자 "5분 후 이 배는 폭발한다!" 라는 명언을 남겼고 정말로 5분 후에 배가 폭발했다. 이 공격으로 영국군은 전함 2척이 대파당했고 동지중해의 제해권을 상실할 뻔했다. 이때 대파된 게 바로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의 1번함인 퀸 엘리자베스와 3번함인 밸리언트이며 영국군은 "이탈리아 해군의 용기는 타고 있는 배의 크기에 반비례한다" 는 말을 남겼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폭탄이 선체에 제대로 붙은 게 아니었기 때문에 대파당한 군함들은 그럭저럭 갑판이 물 위에 떠있을 정도는 되었고 이탈리아군 승무원들은 폭탄 근처 구획에 갇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부상만 입고 살아남았다. 이후 이들은 포로수용소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으며 이탈리아가 추축국에서 탈락한 후에는 신생 이탈리아 해군의 일원이 되어 독일군에 대항해 싸웠다.
당시 제네바 협약 등이 형식상으로나마 남아있어 영미연합군은 물론 막장 독일, 일본이나 독재정권이었던 소련처럼 프로파간다로 떡칠된 나라더라도 경우에 따라 포로에 대한 대접은 나쁘지 않았고 특히나 저렇게 용감한 작전을 수행하는 등 (적, 아군을 떠나) 군인으로 존경받을 만한 전공이나 무공, 용기를 보여준다면 포로가 되어도 극진하게 대접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단적인 예로 라쎄이니에서 독일 6기갑사단의 진격을 이틀동안 저지시켰던 KV-2가 끝내 격파당하자 독일군은 조국을 위해 최후까지 저항한 그들을 최대한 정중히 매장하였다고 하며 위에서 진주만 공습 당시 피격당한 기체로 끝까지 저항하다가 자폭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사망한 일본군 파일럿도 미군이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러 주었으며, 그 옛날 임진왜란 당시에도 최후 항전한 부산 군민들을 한 곳에 바르게 매장하고 (나무긴 하지만) 비문까지 새겨준 왜군 등등 수없이 많다. 이탈리아군 승무원들이 (심문은 받았지만) 좋은 대접을 받은 것도 그래서다.
이후 영국 해군도 이탈리아군 어뢰정과 비슷한 물건을 만들어 채리옷이라고 명명했고 비스마르크급 전함 2번함 티르피츠를 앉은뱅이 오리 꼴로 만드는 데도 나름대로 공을 세웠다. 이때의 활약은 수중폭파 전술이라는 특수전 전술의 한 획을 그어 70년이 지난 지금도 대부분의 특수부대들이 활용하는 대표적인 전술이 되었다.
3.1.4. 한국
6.25 전쟁 시기에는 많은 육탄전이 있었는데 이때 한국군이 처한 상황이 37mm포를 탑재한 M8 그레이하운드가 유일한 기갑차량이었다. 당시 한국군에서는 장갑차건 자주포건 진짜 전차건 구분 없이 탱크라고 불렀을 정도로[5] 기갑차량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실정이었는데 M1 바주카도 T-34-85를 잡기에 부족해서 부랴부랴 M37 슈퍼 바주카를 도입한 뒤에 겨우 상대할 수 있었다.춘천-홍천 전투에서는 매복한 57mm 대전차포로 적 기갑차량 측면 10m 거리에서 발포해서 전과를 올린 경우도 있고 육탄11용사가 시체로 위장하고 있다가 적 전차를 기습해 11대의 기갑차량을 파괴하고 모두 살아서 돌아왔다. 당시 교전지역이 절벽이었는데 11용사 중 1명이 폭발에 의해 절벽 아래로 떨어졌으나 절벽의 나뭇가지에 걸려 구조되었다. 이후 육탄 11용사들은 훈장과 1계급 특진을 받았으며 최초로 적 전차에 돌격한 조달진 일병을 포함한 3명은 2계급 특진을 받았다. 조달진은 7월 24일에 또 대전차 특공대에 지원했는데 이번에도 성공하면서 2계급 특진을 또 받아서 소위로 진급했고 불사조, 탱크(킬러) 등의 별명을 얻었다. 육박전을 하더라도 자살 공격만 한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 공군의 김영환이 해인사 폭격 명령을 받았으나 팔만대장경판의 파괴를 막기 위해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일부러 가까이 접근해서 프로펠러로 위협해서 북한군을 쫒아냈다는 일화가 있다. 이것도 항공기의 몸체 자체를 무기로 쓴 건 비슷하다만 자폭 공격은 아니다.
3.1.5. 북한
북한 공군도 6.25 전쟁 후반기에 몇몇 조종사들이 유류 저장 시설에 자폭공격을 시도한 적이 있으며 현대 북한 공군도 An-2를 써서 유사시 운용할 자살특공대를 준비하고 있다고도 한다.미 해군 항공모함 전단을 상대로도 무전파-초음속 비행이라는 카미카제 전술을 구상하고 있다.
3.1.6. 중국
6.25 전쟁 당시 미국과의 공군력 차이로 인해 자살특공대를 운영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1937년 제2차 상하이 사변 당시 일어난 사행창고 전투를 바탕으로 한 영화 800에서도 등장한다. 창고에 접근하는 일본군이 머리 위에 철판을 올리고 있어서 수류탄을 던져도 튕겨나가 터지기 때문에 큰 효과가 없자 중국군 병사 한 명이 몸에 수류탄을 감고 뛰어내려 체중으로 철판 안까지 뛰어들어 자폭하여 물리친다. 일본군도 몇 번이고 접근을 반복하기에 중국군 병사들이 줄줄이 도열해서 한 명씩 유언을 외치며[6] 뛰어내리는 장면이 연출되고 3시간 내로 창고를 점거하겠다던 일본군은 공격이 실패해 국제연맹 사절단 앞에서 수모를 당한다.
3.1.7. 미국
미국에서는 폭약을 가득 채운 폭격기에 일단 승무원이 탄 뒤에 이륙한 후 일정 고도에서 탈출한 뒤 이 무인상태가 된 폭격기를 뒤따르는 항공기가 무선으로 조종하여 목표물에 들이받게 한다는 아프로디테 계획이 연구된 적이 있다. 역시 초기적인 순항 미사일이지 자폭병기가 아니다.9.11 테러 당시 테러범들에게 납치당한 유나이티드 93편을 격추시키기 위해 긴급 출격했던 미 공군의 F-16 전투기도 자폭 공격을 감행하려고 했다고 한다. 다만 이 경우에도 당시 출격했던 전투기들은 훈련 비행을 마치고 귀환했다가 새로 무장을 장착할 시간도 없어서 바로 출격하였기 때문에 정말 답이 없던 상황이었다. 조종사들도 일단은 날개로만 부딪히는 방식을 쓰려고 했으나 정말 불가피할 때 동체 충돌할 각오는 했다고 한다. 유나이티드 93편은 충돌 작전을 시행하기 전에 승객들의 저항으로 추락해서 카미카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유나이티드 항공 93편 테러 사건 항목 참조.
이후 미국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한 남성이 부부싸움을 크게 하고 자신이 일하는 회사 소속 경비행기를 훔쳐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돌진하여 부딪쳤다. 결과도 실제 카미카제와 같이 남성만 죽고 아무런 인명 피해가 없었다.
조지프 스탁이라는 사람은 미국 국세청 건물에 카미카제를 시전했다.
3.1.8. 알카에다
대형 여객기를 탈취하여 시내의 빌딩을 향해 돌진하는 끔찍한 테러를 벌였다.[7]이전에는 에어 프랑스 8969편 납치 사건을 제외하면[8] 비행기 납치는 자폭 공격에 쓰이는 일은 없었다. 문제는 이들은 이걸 실행했고 결국 성공했다는 것이다.
A6M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하고, 멀리 가기 위해 연료를 가득 채운 제트 여객기는 무게도 상당하고 속도도 훨씬 빠르며 폭발할 경우 화염도 엄청날 거란 걸 계산하고[9] 이를 실행에 옮겨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테러 작전을 위해 사망한 테러리스트가 19명, 희생자가 무려 2977명인 것을 보아 9.11 테러로 알카에다는 테러리스트 한 명당 약 156명에 달하는 비율로 사람들을 죽여서 역대 최대의 항공기 자폭 공격이자 최악의 테러로 남았다.
3.2. 동물을 이용한 자폭 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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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차 견
소련군에서 사용한 자폭 병기로, 개에 폭탄을 묶은 후 적 전차 아래로 기어 들어가게 해서 자폭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실전에 투입되어서 많은 전차를 파괴했으나 격파된 건 대부분 소련 전차였다.자업자득소련 전차로 훈련했기 때문에 개들이 냄새와 소리가 익숙한 소련 전차 아래로 파고 들어간 탓이었다.(...) 독일군은 이후 모든 수상한 개를 사살하는 방법으로 대처했고 소련군도 이 병기의 문제점을 알고 사용을 그만두었다. 전차 하단은 장갑이 매우 얇다는 것과 파블로브의 조건반사를 이용한 것으로 개에게 폭탄을 매달고 이 개가 조건반사적으로 독일군 전차 밑에 파고 들어가게끔 훈련시켰지만 소련군 전차를 이용해서 훈련시키는 실수를 범하는 바람에 실전에 투입된 개들이 소련군 전차 밑으로 파고 들어가는 사고가 일어나 소련군은 이 계획을 포기했다. 그럴만도 한 게, 독일 전차와 소련 전차는 도색부터 생김새까지 크게 달랐고 독일 전차들은 휘발유 엔진을 쓴 데 비해 소련 전차들은 디젤 엔진을 써서 소리와 냄새까지도 차이가 있었으니 당연할 수밖에. 개를 훈련시킬 때 휘발유를 넣은 노획한 독일 전차를 쓰지 않은 게 탈이었다. - 구일본군약소열전을 보면 "( 미국의 본토상륙 시) 일본군이 가진 유일한 대전차 수단은 폭탄을 안은 여고생이라고 말한 뒤 일제만큼 인명을 경시한 소련[10]에도 비슷한 게 있었는데 바로 폭탄 개"라며 대전차견을 보여준다. 일본 극우 역은 이를 보고 "일본인의 목숨은 소련 개 수준이란 거냐!" 라고 거품을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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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폭탄
미군이 시도했던 자폭 병기로 박쥐가 그늘진 곳에서 잠을 자는 것을 이용해서 박쥐에 시한폭탄을 달아서 도시에 떨어뜨리면 건물 안으로 자러 들어간 박쥐가 폭발해 큰 피해를 준다는 이론이었다. 1년간 200만 달러가 들어갔지만 맨해튼 계획이 마무리되어 가자 44년에 폐기되었다.
3.3. 유도식 무인 자폭 병기
상술한 바와 같이 일반 폭탄이나 포탄, 미사일 등은 자폭 병기로 취급하지 않으나 독특한 사례가 있다.-
IAI 하피를 비롯한 자폭
무인기
일반적인 분류는 Loitering munition(배회형 탄약)이지만 흔히 suicide drone, kamikaze drone으로 일컬어진다. 영국 국방부는 'one way attack unmanned aerial vehicles (OWA-UAVs)'라는 표현을 쓴다.[11] 일반적인 순항미사일과 달리 공중 대기와 목표 수색에 높은 비중을 두었고 무인공격기와 달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귀환하는 것이 아니라 장비된 탄두를 폭발시켜 표적을 파괴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한편 자폭 공격을 목적으로 개발되지 않은 보통 무인기가 장착 무장이 없는 상태에서 반드시 파괴해야 하는 표적을 발견해 동체로 들이받아 폭발하여 파괴한다면 이는 확연히 '자폭 공격'임에 연관된다고 하겠다.
- 2020년대 들어 중소형 드론의 위협이 커지고 이걸 소총으로는 무리고 미사일로는 가성비가 안 맞는다는 관점에서 '코요테2'라는 자폭 무인기가 출시되었다. 싸도 억단위인 미사일과 달리 수백만원 정도 가격으로 드론을 요격할 수 있으며 로켓 엔진을 이용하는 미사일과 달리 드론의 프로펠러 추진 방식을 활용하였고 시스템 면에서도 드론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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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아트 지뢰
분류는 자주식 지뢰지만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자폭용 UGV로 보인다.
- 러시아군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원격조종식 급조폭발물 형태로 T-55를 사용한 바 있다. #
4. 미디어
자세한 내용은 자폭/캐릭터 문서 참고하십시오.생명이 있는 등장인물(들)이 자폭하는 경우는 자폭/캐릭터 문서를 참조할 것.
4.1.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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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국 건국사 -
뇌창
실존하는 무기인 활대기뢰. 한제국 건국사에서 장갑함을 격파하기 위해 도입되었으며 당시 흔히 사용하던 흑색화약이 아니라 조선에서 미래지식으로 생산한 면화약을 사용하여 3배나 위력이 강했다. 활대기뢰는 애초에 사용하는 함정이 파괴되는 것을 감수하고 사용하는 무기이고, 여기에 더해 장갑함인 뉴 아이언사이즈를 격파하기 위해 대형 상선에 뇌창을 3발 묶어 들이받았으므로 확연하게 자폭돌격. 물론 승무원들은 회피 불능 거리까지 접근해서 키를 고정하고 충돌 전에 탈출했다.
4.2. 영화
- 7광구에서 등장하는 시추선 - 캐릭터는 아니지만 그 특성 자체가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독창적인 건물. 나라에서 석유캐내라고 허가해줬더니 화재대비용 대형폭탄을 달아놓았다. 조금만 상식이 있다면 영화에서 자폭버튼을 보는 즉시 이 건물의 설계자는 미친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사실 설치의도는 말그대로 화재대비용으로 실제로 폭발로 공기중의 산소를 날려버려 진화하는 방식이 있기는 하다.
4.3. 만화 및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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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전사 건담 00 -
가가
최소 수천대가 양산된 유인 양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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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자왕 가오가이가 - 31명의
아르마
기계31원종을 완전히 소멸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생체 병기. 각자 원종의 핵을 하나씩 정해하고 대소멸 스위치로 함께 소멸하는 임무가 주어졌으며, 이 임무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아르마의 호위와 원종 격파 및 핵의 적출을 담당하는 킹 제이더( 솔다토 J+ 제이 아크)도 31대가 건조되었다. 하지만 원종 측이 생각보다 더 빨리 붉은 별을 침공하는 바람에 이들 모두 속수무책으로 궤멸당하고 각각 하나씩, 카이도 이쿠미, 솔다토 J-002, 펜치논 만 살아남았으며, 생존자들은 지구에서 한 팀을 이루어서 원종과 싸웠다.[12]
4.4. 게임의 자폭 유닛
자세한 내용은 자폭 유닛 문서 참고하십시오.게임에서 나오는 경우 시전자가 반드시 죽는다는 특성상 데우스 엑스 마키나급 위력으로 책정되는 경우가 많다.
[1]
취소된 독일의 V-1 유인기.
[2]
현재는 'Goliath Tracked Mine', 즉 '골리아트
무한궤도
지뢰'라고 부른다. 분류마저도 'Engineered Demolition Device'지 자폭이라는 용어는 어디에도 쓰이지 않는다.
[3]
이런 형태의 작전을 위해 따로 설립된 부대가
Decima Flottiglia MAS로 현대 UDT의 원조격인 부대다.
[4]
1기당 2명씩 총 3기.
[5]
한국 육군의 보병 병과라도 기계화부대에 속한 장교, 부사관은 육군 보병학교나 육군 부사관학교가 아닌 육군 기계화학교에서 병과 교육을 받으며 이들 기계화보병 특기를 기갑 병과로 통합하려는 계획이 추진 중이다. 병들만 해도 여러 번의 훈련을 하다보면 상세 명칭까지는 무리이지만 대략적으로는 구분이 가능하다.
[6]
처음엔 "국민당 만세" 같은 것이었다가 얼마 가지 않아 "어머니" 나 "배고프다" 같은 비명소리가 강 건너편까지 울려퍼졌다.
[7]
사실상 민항기를 이용한 21세기판 가미카제다.
[8]
이것도
에펠탑에 자폭 공격을 하는 계획만 짜놓았지 다행히 실행되진 않았다.
[9]
이들이 하이재킹한 항공기들은 모두 미 동부에서 캘리포니아까지 가는 장거리 국내선 비행편이었다.(WTC 두 곳을 노린 AA11과 UA175는 모두
보스턴 로건 발
LA 행, 펜타곤의 AA77은
워싱턴 덜레스발 LA행, 실패한 UA93은
뉴어크발
샌프란시스코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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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으로 비교하자면 소련측이 더 양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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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향 공격 무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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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주어졌던 자폭 임무도 최후의 전투에서
Z 마스터가 자멸하도록
더 파워를 폭주시키기 위해 스스로 희생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안 죽고 살아남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