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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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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FC No.7
유병수
(兪炳守 / Yoo Byung-soo)
생년월일 1988년 3월 26일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출신지 대구광역시
신체 조건 183cm, 76kg
포지션 스트라이커
유소년 클럽 대구신암초등학교
둔촌중학교 (2001~2003)
언남고등학교 (2004~2006)
홍익대학교 (2007~2009)
소속 클럽 인천 유나이티드 (2009~2011)
알 힐랄 FC (2011~2013)
FC 로스토프 (2013~2016)
김포시민축구단 (2017~2018, 군 복무)
화성 FC (2019~)
별명 월미도 호날두
국가대표 6경기 0골
파일:K리그 클래식 시그니처 문구 로고 없는거.png 득점왕
2009년 2010년 2011년
이동국
( 전북 현대 모터스)
유병수
( 인천 유나이티드)
데얀 다미아노비치
( FC 서울)

1. 소개2. 유소년 경력3. 클럽 경력4. 국가대표 경력5. 플레이 스타일6. 논란
6.1. 승부조작 연루 의혹

1. 소개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포지션은 중앙 공격수이다. 한국프로축구 역사상 최연소 한국인 득점왕이었으며, 많은 이들에게 촉망받던 유망주이지만 커리어는 순탄치 않았던 비운의 선수. 또한 인천 유나이티드 역사상 가장 많은 득점을 기록한 선수이기도 하다.[1]

2. 유소년 경력

대구 신암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 이후 서울 둔촌중학교에 진학, 경기당 1골을 기록하는 활약을 펼쳤다. 언남고등학교 시절 백록기 전국고교 축구대회 득점상[2]과 추계 한국고교축구연맹전 득점상을 수상. 2008년 홍익대학교에서 전국추계 1, 2학년 대학축구대회 우승을 이끌고 도움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한편 어린 시절 역시 대구에서 살던 남준재와 인연이 닿아 친하게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2009년 대학을 휴학하고 K리그 드래프트에 참가하여 1순위로 인천 유나이티드 입단이 결정되었다. 인천 유나이티드는 유병수를 데려오며 방승환을 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시켰다. 당시 팬들은 이 결정에 우려를 표했지만 안종복 사장과 페트코비치 감독이 모두 유병수의 잠재성을 믿고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이 결정은 인천 유나이티드의 10년을 결정지을 용단이었다.

3. 클럽 경력

3.1. 인천 유나이티드

2009 시즌, 유병수는 개막전부터 부산 아이파크를 상대로 출전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여 전반 이준영의 헤딩패스를 이어받아 데뷔골을 기록했다. 그 뒤로도 유병수는 약 40m 거리의 프리킥 찬스에서 강력한 무회전 프리킥을 구사하며 인천 호날두라는 별명을 얻는 등 맹활약을 이어갔다. 특유의 엠블렘을 입에 물고 질주하는 세레모니로 인천 팬들에게 높은 인기를 구가하게 된 것은 보너스.

첫 시즌 리그 27경기에서 12골을 뽑아내며 인천 유나이티드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고, 리그 막판까지 김영후와 경쟁하며 신인왕을 노렸지만 아쉽게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했다. 이 때 내셔널리그 출신의 김영후가 신인의 자격이 있는가에 논란이 굉장히 뜨거웠고, 대부분은 유병수가 받는 것이 맞다고 판단하였다.

2010 시즌에는 인천 유나이티드의 대들보로 자리 잡았다. 7라운드까지는 슬럼프라고 느껴질 정도의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무득점, 2년차 징크스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8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전에서 4골을 넣으며 화려하게 부활했다.[3] 이후 폭풍같이 매경기 득점포를 몰아치며 K리그 득점 1위를 수성했다. 이에 따라 인천 유나이티드 역사 상 최다 득점자에 오른 것은 물론이요, 한 경기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린 선수가 되었으며, 최다 경기 연속 득점을 성공시켰다. 2014년 진성욱도 4경기 연속 골을 성공시켜 유병수와 동률을 이뤘지만, 유병수는 FA컵을 포함하면 5경기 연속 득점이 되므로 여전히 1위에 올라있다.

2010년 정규시즌이 종료되고 득점왕을 달성했다. 리그 28경기 22골. 경기당 약 0.79골의 위업을 달성하며 수상이 확정되었다. 몰아 넣기가 많아서 편차는 심하지만, 아무튼 평균은 경기당 0.785골이다. 여담으로 유병수 혼자 광주 상무 불사조의 시즌 팀 득점보다 무려 5골이나 더 넣었다.

실감이 잘 안난다면 이때 유병수 나이가 만 22살이고, 이는 2014년 기준 특급 유망주 취급을 받는 이종호보다 한 달 어리고 김승대보다 1살이 적었다는 것이다. 경기당 득점률이 유병수를 넘는 선수는 아직까지 데얀 다미아노비치가 유일하고, 데얀에겐 세르히오 에스쿠데로, 마우리시오 몰리나, 하대성, 윤일록 등의 특급 도우미가 받쳐줬으나 유병수를 받쳐준 선수들은 남준재, 강수일, 브루노 등으로 모두 아쉬움을 남기는 자원이었다. 그럼에도 한 팀 득점보다 우위인 것. 오직 득점만으로 공격포인트 1위와 동률을 기록한 것도 주목할 만한 점. 한화 이글스 류현진이 있다면 인천엔 유병수가 있다고 할 정도로 처지가 비슷하다. 각자 팀을 넘어 리그 전체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지만, 팀 전력이 낮은 편이라서 그 실력에도 불구하고 팀의 일원으로서 영광을 맛보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잘던지고, 아무리 많은 골을 넣어도 다른 선수들이 받쳐주질 못하니... 완봉 못해서 팀이 졌다는 말이 나오는 류현진처럼 '4골 못넣고 해트트릭만 해서 팀이 못이기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때의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MVP, 심지어 베스트 11에조차 못 들어가는 안습한 상황이 벌어졌다. 팀 성적이 걸림돌이 되었다고 하기에는 2016년 정조국같은 케이스도 있기에, 이후로도 아쉬움과 의문을 짙게 남긴 사건.

EPL 볼턴 원더러스나 프랑스 리그앙 AS 모나코 이적설이 돌기도 했다. 볼튼은 비자 문제로 포기했다고 한다. 팬들은 이런 기사가 한 번 나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고. 가난한 시민구단 인천 유나이티드는 창단 이래 우수한 선수를 많이 배출했지만 그들이 모두 이적했기 때문이다. 실제 최효진, 김치우, 데얀 다미아노비치는 모두 인천 유나이티드 출신이다.[4] 팬들은 유병수가 임중용같은 인천 유나이티드의 레전드가 되어주길 바랬고 2011년 2월 18일, 인천 유나이티드가 유병수와 2년 더 계약을 연장했다는 소식이 들리며 이는 현실이 되어가는 듯하였다.

3.2. 알 힐랄 FC

파일:attachment/Yoo_Byung-Soo_Al-Hilal.jpg

하지만 재계약에도 불구하고 시즌 초부터 여름 이적시장에 유병수가 나온다는 설이 파다하게 돌았으며, 전반기에 인천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뛰기는 했지만 결국 2011년 7월 24일 사우디아라비아 프리미어 리그 강호인 알 힐랄 FC로 공식 이적했다.

공식적인 계약금은 밝히지 않았지만, 150만 달러 바이아웃 조항을 충족해서 계약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 이영표가 뛰던 구단이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상당히 잘나가는 구단이기 때문에 잘갔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랍권 리그 수준을 보면 사실상 돈 때문에 갔다는 것이 정설이며,[5] 설상가상으로 이영표가 재계약을 포기했기 때문에 현지적응에 대한 문제도 존재한다.

참고로 알 힐랄은 알 이티하드에게 FA컵 4강전 패배 이후로 리그 무패 우승을 이끈 가브리엘 칼데론 감독을 해임했다. 이는 라이벌인 알 이티하드에게 5:0 대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칼데론 감독은 이전에 알 이티하드 감독으로 있다가 반대로 알 힐랄에게 5:0으로 대패하여 그때도 잘렸던 경력이 있다. 더블 우승을 이룩하고도 잘린 안첼로티가 생각나지만, 칼데론은 5:0으로 지자마자 단번에 잘렸을 정도로 알 이티하드에 대한 알 힐랄 구단주와 서포터들의 경쟁심은 장난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이 점은 알 이티하드도 마찬가지이다.

7월 현재 감독 대행은 전 국가대표 선수이자 사우디아라비아 축구계 전설인 사막의 여우 사미 알 자베르. 90년대 사우디 아라비아 전성기를 이끈 축구선수이자 한국 대표팀에게도 많은 곤란을 안겨주었고 사우디의 월드컵 16강을 이끈 스트라이커인 만큼 돈뿐 아니라 성장도 기대해 볼 만하다.

이적 후 프리시즌 대회인 리야드 인터내셔널 토너먼트에서 알 이티파크 및 알 타운과의 경기에서 멀티골을 작렬했다. 그러나 대회 결승에선 킹스컵 우승팀인 알 샤바브에게 패해 팀의 준우승을 바라봐야 했다. 그래도 일단 리그 적응은 순조롭다는 평이다.

2011년 9월 11일에 열린 사우디아라비아 프리미어리그 10/11 시즌 개막전에서 출장, 83분동안 뛰다가 교체되었다. 아쉽게도 3번의 골득점 기회를 놓쳤는데 알 힐랄은 승격팀 하지르를 2:1로 이겼다.

17라운드까지 2골 1도움을 기록 중이며, 2012년 1월 23일에 열린 알 나스르와의 크라운 프린스컵 8강전에서 1골 2도움을 기록하여 팀의 4:1 대승에 기여했다. 이 경기는 한국 선수끼리 만나서 뜻깊었는데 알 나스르에 입단한 김병석도 1도움을 기록했기 때문.

그리고 4강전에서 라이벌 알 이티하드 FC와 또 만났는데 여기서 골을 기록하며 2:0 승리에 기여했다. 결승에선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으나 그래도 공동으로 크라운 프린스컵 득점왕에 오르며 주가를 올렸다. 리그 17경기에 나와서 5골 5도움을 기록. 한편 2011-12 아시안 챔피언스리그에서 맹활약하며 득점 3위까지 올랐다. 2012년 5월 23일에 벌어진 16강전에선 아랍에미리트의 바니야스 SC를 상대로 무려 4골 1도움을 기록하며 7:1 팀의 대승에 완벽한 기여를 했다. 8강까지 5골 1도움으로 팀내 아챔리그 최다득점을 기록 중이다. 현지 아나운서 왈, 슈퍼 헤트트릭 유뵹수 그 때의 활약 덕에 골닷컴이 선정한 5월 아시아 베스트 11에 들었다. #

2012년 연말부터 2013년 연초까지 폼이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면서 동료인 웨슬리 로페즈의 득점이 저조한 가운데 다시 팀의 주 득점원으로 올라서는데 성공했다. 이집트의 명문축구팀 알 아흘리와 우크라이나 축구팀 샤흐타르 도네스크와의 친선경기에서 골을 기록했으며, 폼이 올라온 이후 거의 매 경기마다 공격포인트를 올리며 2013년 1월 28일 기준으로 9골 득점으로 리그 득점랭킹 4위에 랭크되어 있다. 1위는 팀 동료 웨슬리 로페즈 15골.

팀 내 활약 등이 여러 모로 상당하기에 연장계약도 이뤄질 전망일 듯 하다. 하지만 2013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열심히 뛰었으나 심판 문제와 같은 불운으로 팀이 16강에서 탈락하던 순간을 봐야 했다.

3.3. FC 로스토프

그리고 2013시즌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서 90만 유로의 이적료로 북한 국대 공격수 홍영조의 옛 소속 팀인 러시아의 FC 로스토프로 이적하면서 마침내 유럽 진출을 달성했다.

초반에는 출전 기회가 잘 오지 않았지만, 데뷔전에서 7분만에 골을 기록하며 능력을 입증했다.컵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사진을 로스토프 홈페이지에서 확인이 가능했으나 국내에서는 알수가 없었다 시즌 막판인 5월에 드디어 2호골을 기록했으나 이미 많이 잊혀진 선수가 되어서 관심을 가지는 이들은 적었다 사실 알 힐랄에서도 나홀로 4골을 넣었을 때도 크게 기사가 안나옴

이후 시즌에는 점점 더 존재감이 희미해졌다. 2014~2015 시즌에는 리그 4경기 출전에 그쳤고, 2015~2016 시즌에는 오랜만에 득점을 기록하기는 했으나 최종 7경기 1골의 저조한 활약에 그쳤다.

한편 유병수의 병역 문제에 대해서도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나이 초과로 상주 상무 아산 무궁화 행은 불가능하고 상근예비역으로 복무하며 K3리그에서 뛰는 방안이 유력해졌다. 이후 본인 이야기에 따르면 아산 입대를 노리고 K리그 복귀도 생각했으나 로스토프와의 계약 문제로 어려워지면서 상근을 택했다고 한다.

3.4. 김포시민축구단

2016년 6월에 계약 기간이 만료된 유병수는 국내로 귀국했고, 9월 50사단 훈련소에 입소해 상근예비역으로 복무를 시작했다. 이후 그의 행보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2017년 1월 축구관련 언론사 축구저널에 의하면 K3리그 소속 팀인 김포시민축구단에 입단했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3ttm1WzOfsY 이 영상을 보면 7번을 달고 뛰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시즌, 리그 첫 경기에서 네 골을 기록하면서 간만에 대활약을 펼쳤다. 그 중에는 프리킥 골도 있어 과거 월미도 호날두의 위엄을 간만에 선보였다. 경기에 따른 기복이 있었고, 과거 전성기에 비해서 활약도가 많이 내려온 것은 사실이었지만 클래스가 사라지지는 않아서 K3리그에서는 충분히 통하는 선수로 활약했다. 전역 이후 유병수의 행보 역시 그의 과거 경력으로 인해 주목을 받았는데, 전역한 이후 일단은 해외 팀을 더 알아볼 것으로 추측되었다.

3.5. 화성 FC

2018 시즌 8경기 8골의 기록을 남기고 6월 22일부로 소집해제했다. 그리고 소집해제 후 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J1리그에 있는 요코하마 F. 마리노스의 팀 훈련에 합류했는데, 아무래도 소집해제를 앞두고 요코하마 측과 미리 이야기를 한 듯. 그러나 결국 정식 계약은 실패했고, 이후 J2리그 반포레 고후의 훈련에 연습생 신분으로 합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최종 계약까지 이어지지는 않았고 A리그 웰링턴 피닉스 FC에 입단 테스트를 받고 있다고 한다. 관련 기사 그러나 이 입단 테스트도 잘 풀리지 않았는지, 정식 계약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고 유병수의 이름 또한 다시금 잊혀지는가 했다.

그러던 중 2019 시즌을 앞두고 유병수는 화성 FC 이적을 선택했다. 화성에서 유병수는 예전보다 비록 신체적인 능력은 많이 줄었지만 탁월한 득점력을 뽐내며 K3리그 최상위급 공격수로 활약했고, 팀의 주포로 여겨졌다. 화성이 FA컵에서 순항하는 가운데 주전 공격수로 활약을 이어나갔고, 특히 8강 경남과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K3리그 역사상 첫 FA컵 4강 진출에 기여했다.

4. 국가대표 경력

K리그에서의 활약에 비해서 대표팀 데뷔는 훨씬 늦었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준비하던 허정무 감독은 월드컵 최종예선 3경기를 앞둔 시점에서 대표팀에 처음으로 유병수를 차출했다.

2009년 6월 3일 오만과의 친선전에서 A매치 데뷔를 했는데, 이 경기는 교체선수 인원이 11명에 달하면서 A매치 자격을 잃었다. 유병수와 함께 이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던 김형일, 이강진, 양동현, 김근환은 그저 안습. 경기도 0-0으로 비겼다. 그나마 유병수와 김형일은 이후 정식으로 A매치 데뷔전을 치뤘지만 나머지 셋은 기회를 얻지 못했다. 당시의 유병수는 홍명보 감독에게도 외면받았다. 자칭 고려대 앙리라고 불리우는 박희성에게 밀려 아시안게임에도 나서지 못했다만, 결국 금메달에 실패했기에 병역 특례에 대한 아쉬움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이후 2010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뽑히지 못하고 A매치 데뷔전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 10월 13일 한일전에서 대표팀에 합류했고, 경기 종료를 앞두고 교체 출전하면서 정식으로 데뷔전을 치뤘다. 경기 결과는 0-0.

그래도 K리그 득점왕을 마냥 시험도 하지 않은 채 무시할 순 없었는지 조광래호 2011년 AFC 아시안컵 대표팀에 포함되었다. 시리아와 평가전에선 후반에 교체투입되어 K리그에서도 기용되지 않은 포지션인 좌측 윙어로 뛰면서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아시안컵 본선 호주전에서는 후반에 투입되었으나 염기훈과 함께 온갖 욕을 먹었고, 후반전에 교체로 들어왔다가 30분 뛰고 다시 교체로 나가는 굴욕을 당했다. 그 뒤로는 더 이상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5. 플레이 스타일

전형적인 골잡이이다. 키가 크지는 않지만 위치 선정이 좋아 세트피스에서 헤딩 성공률이 매우 높으며, 헤딩의 기술도 좋다. 왼발 오른발 모두 사용 가능하고 상대와의 몸싸움에서 쉽게 밀리지 않으며, 빠르진 않지만 특유의 스텝과 폼을 이용한 스피드 완급조절 드리블이 뛰어나 돌파[6]에도 자신이 있어 1:1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에게 온 기회를 높은 확률로 득점으로 연결하는 '득점기계'. 프리킥 능력까지 장착하고 있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이다.

전방에서 볼을 따내고 지켜내는 능력도 준수하다. 때문에 밀집 수비 내에서 몸싸움으로 수비를 등지고 버텨낼 수 있어서 2010년 집중견제에도 엄청난 득점 레이스를 이어갈 수 있었다. 슈팅은 박주영이나 여타 한국 국대급 공격수처럼 로빙슛 같은 기술적인 슈팅을 선호하기보단 짧고 간결하게 차거나 특유의 허벅지로 강하게 차는 걸 선호한다.

가장 큰 장점은 오프사이드를 거의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프사이드를 만들지 않고 1:1 상황을 만들어내는 플레이가 상당히 좋다. 은근히 섀도우 스트라이커 성향이 강한 공격수이다. 실제로 2009시즌엔 챠디 밑에서 사실상 공미에 가깝게 뛰기도 했고 2010시즌에도 브루노 밑에서 2선 자원으로 뛰기도 했다.
또 유병수가 활약하던 시절 인천 유나이티드 공격진과 미들진은 잉여들로 가득했다. 괜히 잉천이란 별명이 나온 것이 아니다. 박주영은 히칼도가 있었고, 데얀은 몰리나와 하대성이 있었고, 김신욱에겐 한상운과 이근호, 하피냐가 있고, 이동국에겐 에닝요와 루이스, 최태욱, 레오가 있었는데 유병수는 아무도 없었다...당시 1:1찬스 5회 무산, 골키퍼 제치고 백패스하던 강수일은 있었다. 이 시절 인천 유나이티드의 전력을 감안한다면 반쯤은 혼자 힘으로 득점왕을 땄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덕분에 마크만 네다섯씩 붙었지만 밀집 수비를 부숴내는 저돌적인 시도가 장점이기도 하다.[7]

6. 논란

6.1. 승부조작 연루 의혹

2010년부터 줄곧 유병수가 승부조작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었는데, 2011년 4월 9일부터 본격적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포항 스틸러스와의 2011년 K-리그 경기에 나섰던 유병수는 후반 막판 동점골을 넣으면서 팀의 2대2 무승부를 이끌었는데 이후 축구계에서는 '인천이 이 경기에서 원래 패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유병수가 동점골을 넣는 바람에 불법 베팅에 참여한 세력들이 큰 손해를 봤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유병수는 득점 직후 왼쪽 발등에 통증을 호소해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이를 두고도 '승부 조작 임무'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서지 못한 것이라는 추측까지 나돌았다.
이후 팀 동료 윤기원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고, 유병수가 부상 재활 탓에 2군으로 내려가자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대됐다. 최근 유병수가 해외로 진출하려 한다는 소식은 '상황을 피하고자 도피하려 한다'는 차가운 시선으로 이어졌다.

이에 2011년 5월 26일 천안축구센터에서 열린 2011년 R-리그 성남일화전 이후 유병수는 지금까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승부조작 의혹에 대해 해명을 했다. #

하지만 좀처럼 의혹이 사그라들지 않자 2019년 9월 8일 유병수는 자신의 SNS에 "제가 소속팀에서 활약할 때마다 여전히 부정적인 댓글들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더 이상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자신을 둘러싼 루머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해명했다.

이 글에서 유병수는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저를 아직도 승부조작에 연루된 범죄자인것처럼 보는 시선들"이었다고 밝힌 뒤, "인터뷰를 하고 나면 종종 제목이나 내용 중간에 그런 표현이 함시되어 있었고, 제가 아니라고 말을 해도 내용과 댓글이 자극적으로 올라온 적이 많았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유병수는 이어 "많은 분들이 해명하라고 하는데 어디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며 "이번 기회에 개인 SNS를 통해 이야기를 드리려 한다"고 적었다.

또한 추적 60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걸어 온 전화를 받은 가족 중 한 명이 '모른다'고 대답한 인터뷰를 "지인과의 통화"라며 음성변조되어 내보내는 등 언론과 여론에 자신이 마치 승부조작 가담자로 취급되어 온 것이 몹시 괴로웠음을 하소연하기도 했다.

이후 2018년 9월 경찰로부터 "제보를 받고 5개월간 조사를 했는데 아무 혐의가 없어 내사 종결했다"는 전화를 받았으며, 지은 죄가 없는 상황에서 공개 해명을 하기도 애매했다고 생각한 그는, "이렇게 많은 분들이 (FA컵 4강행으로) 관심을 보여주실 때 제 진심을 알려드리는게 좋다고 생각했다"며 "제 인생과 소중한 제 가족의 명예를 걸고 결단코 승부조작에 관여하지 않았음을 확실하게 말씀드립니다"라는 말로 글을 맺으며 의혹에 대해 해명했다. # #
[1] 이 기록이 대단한 게, 유병수가 인천에서 뛴 기간은 두 시즌 반으로 그렇게 긴 시기가 아니었음에도 데얀 다먀노비치, 케빈 오리스, 제난 라돈치치, 스테판 무고샤 등 쟁쟁한 선수들보다도 많은 득점을 기록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특히 라돈치치는 뛴 기간은 거의 유병수의 두 배 정도이지만, 유병수의 기록에 미치지 못한다. [2] 6경기 12골이다. [3] 이는 최연소 오버 헤트트릭. [4] 돌고돌아 셋 다 FC 서울에서 재회하였다. 가만보면 FC 서울이 은근히 인천 유나이티드 출신 선수들을 많이 쓰는데, 저들 외에도 방승환이 FC 서울에 소속된 적도 있었고 2012년에는 이재권 이규로와 트레이드하였다. 이석현이나 유현 등은 아예 직빵으로 FC 서울로 이적하였다. 반대로 서울 출신도 인천 유나이티드에 많이 왔는데 대표적 사례가 이윤표. [5] 물론 같은 아랍권이라고 해도 리그의 수준 차이는 존재한다. 사우디 리그는 아랍권(아시아 계열)에서는 가장 강하며, AFC 전체에서도 K리그를 제외한다면 가장 강하다. [6] 돌파 스타일이 일반적인 한국 선수와 다르다. 보통 페이크를 부리거나 접고 순간 속도로 치고가는게 아니라 수비수 몇명 끌고가면서 스피드랑 스텝을 조절해서 균형을 흐트려놓는다거나 하는 드리블. 테베즈와 비슷하다. [7] 2010 전반기 대구 FC전 페널티킥 얻는 장면과 부산전 fa컵 선제골 장면을 찾아서보면 거의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혼자힘으로 밀집 수비를 뚫어내는 걸 볼 수 있다. 특히 부산 아이파크전 골은 하프라인부터 드리블해가서 수비 5명 제치고 넣은 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