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00:32:14

임중용

1 민성준 · 2 김건희 · 3 김연수 · 4 오반석 · 5 [[이명주|{{{#fff 이명주 '''}}}]]
C
· 6 문지환 · 7 김도혁
VC
· 8 신진호
9 무고사 · 11 제르소 · 13 최승구 · 14 최우진 파일:부상 아이콘.svg · 15 임형진 · 16 이가람 · 17 김준엽
20 델브리지 · 21 백민규 · 22 지언학 · 23 정동윤 · 24 김민석 · 25 이범수 · 26 김성민 · 27 김보섭
28 민경현 · 30 김훈 · 31 성윤수 · 32 강도욱 · 33 김현서 · 34 하동선 · 37 홍시후
38 박진홍 · 47 김동민 · 55 권한진 · 66 김세훈 · 77 박승호 · 82 요니치 · 88 이종욱 ''' 파일:부상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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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중용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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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인천 유나이티드 FC 로고.svg 인천 유나이티드 구단 공인 레전드
장외룡 임중용 전재호 김이섭 김학철

인천 유나이티드 FC 위대한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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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이름 임중용
林重容 | Lim Joong-yong
출생 1975년 4월 21일 ([age(1975-04-21)]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4cm
직업 축구 선수 ( 중앙 수비수, 수비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축구 행정가
소속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선수 한일생명 축구단 (1998)
부산 대우 로얄즈/ 부산 아이콘스 (1999~2002)
대구 FC (2003)
인천 유나이티드 FC (2004~2011)
감독 인천 유나이티드 FC (2011 / 플레잉 코치)
인천 유나이티드 FC U-18 (2013~2014 / 코치)
인천 유나이티드 FC U-18 (2015~2017)
인천 유나이티드 FC (2017~2020 / 코치)
인천 유나이티드 FC (2019, 2020 / 감독 대행)
행정 인천 유나이티드 FC (2020 / 기술 이사)[1]
인천 유나이티드 FC (2021~2024 / 전력 강화실장)[2]
인천 유나이티드 FC (2024~ / 단장)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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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학력 서울상계초등학교 (졸업)
재현중학교 (졸업)
강동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학교 체육대학 (체육학 / 학사)
응원가 임중용 응원가
등번호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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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
2.1. 인천에서의 위상
3. 플레이 스타일4. 지도자 경력5. 행정가 경력
5.1. 인천 유나이티드 FC 기술 이사/전력 강화실장5.2. 인천 유나이티드 FC 단장
6. 임중용에 대한 언사7. 여담

[clearfix]

1. 개요

파일:영원한주장임중용.jpg
"야! 라돈! 투게더, 똑같이 해 새끼야, 임마!"
- 영화 ' 비상' 에서 라돈치치에게(...)[3]

대한민국 축구 선수 출신 코치, 행정가. 현재 자신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단장을 맡고 있다.

인천의 창단 멤버이면서 오랫동안 주장으로 활약했고 선수 경력의 마지막까지 함께하며 인천 축구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그야말로 인천의 레전드. 실력 자체도 K리그 수준급의 수비수였지만 무엇보다 임중용이 대단했던 건 특유의 프로 정신과 리더십이었다.[4] 선수로 인천에 큰 족적을 남긴 데 이어서 은퇴 이후에도 대건고에서 유소년을 길러내고 1군에서 코칭스태프나 전력 강화실장, 단장직 등을 역임하는 등 인천과의 동행을 지속하고 있다.

2. 선수 경력

파일:임중용인천의20번.jpg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임중용/선수 경력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인천 엠블럼, 그것은 저에게 있어서 태극마크와도 같았습니다."
- 은퇴 이후 인터뷰 #

2.1. 인천에서의 위상

2023년 시점에서도 인천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힌다. 선수를 넘어서 지도자, 프런트로도 인천에 헌신했기 때문에 더더욱 평가가 높다.

부산 출신 선수들이 안종복과의 인연으로 대거 인천에 창단멤버로 합류했고, 임중용 역시 시작은 그러한 선수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존재감을 보였고, 결국 2년차에 주장으로 선임되면서 인천의 심장이 됐다.

현재까지도 인천 역사상 리그에서 최고 성적인 리그 준우승을 주장으로 이끌었고, 이듬해 개봉된 영화 비상에서 임중용의 솔직한 모습들이 그대로 비춰지며 팬들에게 더욱 더 높은 지지를 얻었다. 인천에서 최초로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선수였으며, 창단 이후 팀과 8시즌을 쭉 보내면서 누구나 자랑스럽게 언급할 수 있는 레전드로 꼽히고 있다. 일시적 시력 손상이라는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적도 있고, 2008년에는 실신 사건도 있었지만 임중용은 언제나 위기를 털고 일어나 팀 수비의 중심을 지켰다. 2023년 김도혁이 기록을 깼지만, 그 전까지 정말 오랜 시간동안 인천 소속으로 가장 많이 뛴 선수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최장기간 주장이라는 기록은 아직까지도 임중용의 몫.

풋볼 매니저에서도 만들기 힘든 이런 감동적인 스토리 덕분에 인천 홈 팬들의 임중용의 사랑은 그야말로 절대적이다. 인천 서포터즈들은 그가 은퇴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그를 기리는 걸개를 내걸고 있으며 그의 등번호 20번은 이후 인천의 수비를 책임지는 최고의 선수에게만 허락하는 등번호가 되었다. 이 계보는 임중용 - 정인환[5][6] - 안재준 - 요니치 - 부노자 - 델브리지로 이어진다. 인천에는 다른 레전드들도 물론 있었지만, 등번호 하나에 이렇게까지 큰 의미가 담겨 전통으로 내려오는 경우는 임중용의 20번이 유일하다.

3. 플레이 스타일

팬들에게는 흔히 센터백으로 알려져있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포지션을 경험했다. 원래는 공격수였고, 프로 입성 이후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정착했다. 그리고 대구와 인천에서 센터백으로 본격적인 전향이 이뤄졌다.

공격수와 미드필더로 뛰어본 경력 덕분에 기술적인 면에서 강점을 보였다. 빌드업이 능숙했고, 킥력도 뛰어나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패스를 곧잘 구사했다. 정신적인 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후방에서 수비진 전체를 통솔하고 리드하는 타입의 선수였다. 인천에서는 특히 이 점을 높게 평가받아서 쓰리백의 중앙을 담당했고, 전성기에는 국가대표 후보군으로 이름이 언급될 정도였다.

센터백 기준으로는 평범한 키였지만, 점프 능력이나 낙하지점 포착이 뛰어나서 제공권도 좋았다. 여기에 공격수 출신답게 공격수의 움직임을 읽는 능력을 지녔고 축구 지능이 높아 판단도 빠른 선수였다. 이를 바탕으로 영리하게 플레이하고, 한편으로는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로 상대와의 경합을 두려워하지 않는 면도 지녔다.

미드필더 시절에는 득점력이 좋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공격 본능도 살아있는 선수였다. 공격수 출신인지라 슈팅에 장점이 있었고 활동량도 갖춰서 높은 존재감을 보였다. 오히려 미드필더 초창기에는 공격수에서 내려온지 얼마 안 된 여파로 수비력을 길러야 한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공격에서의 재능이 드러났던 선수.

단점으로는 스피드가 자주 언급됐다. 빠른 판단을 통해서 약점을 최대한 커버했지만, 노쇠화의 영향으로 점차 두드러졌다. 또한 종종 집중력을 잃어서 위험한 패스미스를 범할 때도 있었다. 수비수로의 전향이 늦은 편이어서 깔끔한 수비보다는 거친 파울을 불사하는 면이 있었는데, 그 영향으로 카드도 꽤 받았다. 아예 퇴장까지 나온 적도 있을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성기에는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될 정도로 리그 수위급 수비수로 인정받았다. 국가대표 승선이 거론될 정도였으며[7], 인천에서만 200경기를 넘게 뛸 정도로 인천 역사에서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선수.

4.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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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인천 유나이티드 FC 플레잉 코치

2011 시즌을 앞두고 플레잉 코치 신분으로 전환하며 재계약을 맺었다. 다만 이 시기에도 이미 사실상 은퇴한 상태였고, 2군에서 우성용 코치와 함께 지내면서 지도자 교육을 받았다. 지도자 자격증도 받고, 선수들을 지도하는 경험도 쌓으면서 은퇴 이후를 준비했다.

4.2. SV 베르더 브레멘 해외 연수

2011 시즌을 마치고 선수 생활을 공식적으로 은퇴했다. 허정무 감독은 원한다면 바로 인천 코칭스태프로 합류할 수도 있지만, 하고 싶은 부분에 대해 고민해보라는 권유를 했다. 이에 구단에서 허락해준다면 해외연수를 떠나보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구단이 수락하면서 유럽으로 떠나게 됐다.

원래는 영국으로의 해외연수를 생각했지만,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독일 브레멘 지역에서 지내는 후배도 있었고, 적응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브레멘행을 결심했다.[8]

처음으로 브레멘에 갔을 당시에는 구단 간 협조도 아니었고, 일단 독일로 간 입장이었다. 처음에는 독일어를 공부하면서 후배로부터 4부리그 팀을 소개받아 코치로 합류했지만, 2군과 유소년 팀에서 제한적인 경험만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SV 베르더 브레멘 측에 연수 문의를 했지만 처음에는 잘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때마침 브레멘 경기를 보러 갔다가 인천이 창단하던 당시 골키퍼 코치로 활동했던 미하엘 크라프트와 마주쳤고, 임중용이 있었던 4부리그 팀 코치가 크라프트와의 만남을 성사시켜줬다. 이후 크라프트는 임중용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고, 토마스 볼프 2군 감독과 만나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베르더 브레멘에서 생활하게 됐지만, 처음에는 정식 지도자 자격이 아니었다. 훈련을 참관하는 상황에 그쳤고, 그 와중에 2군 선수들과 훈련을 받거나 연습경기까지 뛰었다. 볼프 감독에게 자신은 배우러 왔다고 항의하기도 했지만 시키는 대로 하라는 답을 받았고, 결국 성실하게 할 일을 하면서 한 달을 보냈다. 결국 이 한 달이 지난 후 볼프는 임중용을 인정하면서 코치 수업을 받으라고 했고, 구단 물품도 받으면서 공식적으로 브레멘 팀에 합류했다.

합류한 이후에도 비자 만료 문제로 고생했지만, 구단 측에서 정식 계약서를 써주면서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이후 1군과도 함께 하면서 토마스 샤프 감독의 지도 방식까지 지켜본 임중용은 브레멘에서 약 1년 6개월간 활동하였다. 원래는 1년간 해외에 나가있다가 인천과 다시 논의하기로 했는데, 임중용의 1년 성과를 본 인천이 독일에 더 있어도 되겠다고 허락하였다.

4.3. 인천 유나이티드 FC U-18 코치/감독

인천 유스 황금세대의 시작

2013년 7월 귀국한 임중용은 곧바로 인천 U-18인 인천대건고등학교 축구부의 코치로 선임됐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임중용은 독일에서 배운 점을 토대로 유소년 시스템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실제로 임중용이 합류하기 이전 대건고는 성적이 그리 좋은 팀은 아니었지만, 임중용 체제를 거친 후 유스 레벨에서 명문으로 거듭났다.

그 전까지 대회 입상 기록이 없던 대건고는 임중용이 코치로 합류한 이후 2013년 전국체전에서 결승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냈다. 아쉽게도 2 : 0의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동점을 허용했으며 승부차기에서 패배해 준우승을 거뒀지만, 분명 눈에 띄는 발전이었다. 신성환 감독 밑에서 활동한 임중용은 선수단 지도에 큰 노력을 기울였고, 2014년에도 대건고가 왕중왕전에 진출하는 등 좋은 성과를 이어갔다.

그 성과를 인정받아 2015 시즌을 앞두고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어서 선수 시절부터 함께 했던 전재호가 대건고 코치진에 합류하면서 레전드들이 유스를 키우는 그림이 만들어졌다.

공식적으로 감독이 된 이후에는 더욱 뛰어난 지도력을 선보였다. 2015년 K리그 주니어 전, 후기리그 통합우승을 거두며 팀 창단 이후 첫 우승을 이뤘고, 금석배와 후반기 왕중왕전에서도 준우승을 거뒀다. 팀 내 유망주들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으며, 연령별 대표팀에 선발되는 선수들도 생겼다. 대표적으로는 김진야.

2016 시즌에는 K리그 U-17 챔피언십, U-18 챔피언십에서 나란히 준우승을 거뒀다. 아쉽게도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임중용이 감독으로 지내는 기간동안 대건고의 위상이 크게 올라 인천 유스가 유명세를 탔다.

임중용이 U-18 감독직을 맡은후 포항의 제철고, 수원의 매탄고, 울산의 현대고가 독식하던 유스 무대에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또한, 임중용 시절 길러낸 제자들이 훗날 프로 무대에 올라와 인천의 암흑기를 지탱하고 강팀으로 올라가는 현재 주축으로 활약하는 들이 있다.

길러낸 대표적인 제자는 이태희, 이정빈, 임은수[9], 최범경, 김동헌, 김진야, 김보섭, 정우영, 구본철, 민성준, 이준석, 천성훈, 이호재 등이 있다. 1995년생 세대부터 2000년생 세대까지를 직접 지도했고 이 중 1997년생부터는 감독으로 지도했다.

4.4. 인천 유나이티드 FC 코치

2016년을 마지막으로 대건고 감독을 그만두고 성인 팀인 인천 유나이티드의 코치로 올라왔다. 대건고 감독직 후임은 마찬가지로 선수 생활을 인천에서 보냈던 전재호..

인천 팬들의 지지가 높고, 대건고에서 좋은 실적도 냈기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는 호의적인 평이 주를 이뤘다. 선임 후 첫 시즌에는 수석 코치를 따로 두지 않는 수평적인 구조를 실험했고, 이에 따라 임중용은 박성철 코치와 함께 이기형 감독을 보좌하게 되었다. 첫 시즌부터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 험난한 시즌을 보냈지만, 어떻게든 잔류에 성공하면서 무사히 넘겼다.

그러나 시즌 말미로 가면서 다양한 루머가 나왔는데, 이기형 감독과의 관계가 마냥 좋지는 않다는 말까지 나왔다. 급기야 코치 전원이 해임된다는 말까지 나왔고, 인천 팬들이 단체로 반발하면서 성명서를 내고 기자회견까지 여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대표이사 강인덕이 입장을 바꾸면서 코치진 해임도 없던 일이 됐고, 이기형, 임중용, 박성철, 권찬수까지 모두가 팀에 잔류했다. 유일하게 외국인 피지컬 코치만 프라노에서 야스민 무이쟈로 변경되었다.

시즌 시작 후에도 팀의 분위기는 썩 안정적이지 않았고, 결국 이기형 감독은 5월을 넘기지 못하고 경질되었다. 이기형이 경질되면서 감독 대행설이 돌기도 했지만, 박성철 코치가 대행으로 올라가고 임중용은 코치로 유지됐다.

욘 안데르센 감독 부임 이후에도 코치직을 수행했다. 그러다가 강원 FC 원정 7 : 0 참사가 일어나면서 감독과 코칭 스태프 사이의 소통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그 직후 임중용은 수석 코치로 승격되어 안데르센의 옆을 보좌하고 박성철은 본인이 자원한 것이라고 밝혀지기는 했으나 관중석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행보를 보이며 코치의 구도가 다소 변화하였다. 이때부터 임중용의 팀 내 입지가 더욱 커졌고, 2019 시즌을 앞두고는 김이섭 코치가 복귀하는 등 변화가 있는 가운데 본인은 수석 코치 역할을 계속 이어나갔다.

4.5. 인천 유나이티드 FC 감독 대행 1기

그러나 인천이 2019 시즌 부진에 빠지면서 4월 15일 안데르센 감독이 사임을 선택했다. 임중용이 당시 팀의 수석 코치였기 때문에 정식 감독 부임 전까지 최대 60일동안 감독 대행을 맡을 예정이다.[10]

4월 17일 청주 FC와의 FA컵 경기를 통해 감독 대행 첫 경기를 치렀는데, 1 : 0 패배로 탈락하면서 자존심을 구겼다. 다만 이날 경기에서는 R리그만 뛰는 선수들을 대거 내보냈고 프로 데뷔전을 치르는 이들도 많아서 크게 의미를 둘 경기까지는 아니었다. 이후 리그에서의 첫 경기는 8라운드 FC 서울 원정이었는데, 이 경기에서는 현재 인천의 팀 상황을 고려하여 짠 수비적인 전술을 기반으로 시즌 첫 무실점을 달성했다. 지루한 경기라고 비판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인천에게 제일 맞는, 실리적인 전술이었으며 박세직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환경을 만들었고 인천도 역습을 통해 슈팅을 종종 진행하는 등 완전히 수비일변도로 나서지는 않았다. 서울보다 유효슈팅 많이 때렸다. 서울은 유효슈팅이 아예 0개였으니까... 인천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했고, 이를 통해 시즌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를 제시했다는 평이 많다.

이후 유상철이 새 감독에 임명되면서 다시 수석 코치 역할로 복귀했고, 팀이 잔류 경쟁을 이어나가는 과정에서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유상철 감독이 투병 생활을 시작하면서 팀을 떠났고, 시즌 종료 후 새 감독이 선임되기까지 비는 전지훈련 기간을 자신이 사실상의 감독 신분으로 이끌게 됐다.

4.6. 인천 유나이티드 FC 감독 대행 2기

1차 전지훈련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온 뒤 임완섭 감독이 선임되면서 다시 수석 코치로 돌아왔다. 그러나 시즌 초 인천이 최악의 부진을 이어갔고, 9라운드 서울전 패배 이후 임완섭이 사임하면서 전 해에 이어 또 한번 감독 대행이 됐다.

감독 대행이 된 후 첫 경기는 FA컵 수원 FC와의 경기였는데, 2 : 2 무승부를 거둔 이후 승부차기에서 패배했다. 중계가 없었고 코로나19 문제로 직관도 어려웠기에 경기를 본 사람이 거의 없어서 경기에 대해서는 별다른 평이 없었고, 재개되는 리그 일정이 중요하다는 게 여론이었다.

이후 리그 10라운드 울산 현대전을 이끌었으나, 4 : 1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엘리아스 아길라르가 복귀해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으나 이를 제외하면 상당히 실망스러운 경기였다. 이때를 전후로 하여 임중용에 대한 여론이 악화됐었는데, 감독은 바뀌지만 코치는 그대로인 모습이 말이 안 된다는 류의 비판부터 시작해서 온갖 루머가 확산되었다. 임중용 본인도 이 당시에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할 정도.

11라운드 상주 상무전에는 실점을 내준 상황에서 이제호 송시우가 퇴장당하며 최악의 위기에 몰리고 말았다. 그러나 지언학선수가 2명 부족한 상황에서도 동점골을 터뜨리며 연패행진을 끊고 승점 1점을 얻어냈다. 퇴장과 별개로 경기력 자체는 생각보다 괜찮았고, 팀의 스피릿을 다시 회복한 인상을 줘서 안 좋았던 여론이 개선되었다. 이어서 12라운드 전북전에도 지언학의 골을 앞세워 무승부를 거뒀고, 13라운드 포항전까지 비기면서 야금야금 승점을 챙겼다. 적어도 임완섭 시절보다는 팀의 분위기가 개선됐다는 평.

그러나 14라운드 광주 FC전에는 부진하다가 3 : 1 충격패를 당하고 말았다. 라인업도 평소 흐름과 다른 묘한 로테이션이 적용돼서 이런저런 말이 나왔던 경기. 그리고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8월 7일, 조성환이 인천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감독 대행 생활은 종료됐다.

대행 시절의 임중용은 결국 0승으로 끝났다. 참작할만한 사정도 많았고, 긍정적인 부분도 분명 보였으나 팬들의 대체적인 평가는 지도자 역할을 맡기에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게 주류. 그래서 행정가로 자리를 옮긴 이후 좋은 모습을 보여주자 행정가가 더 어울린다는 평이 나왔다.

5. 행정가 경력

5.1. 인천 유나이티드 FC 기술 이사/전력 강화실장

조성환 감독이 인천에 부임한 이후 최영근 강릉시청 수석 코치가 인천 수석 코치로 부임했고, 연쇄적으로 임중용은 수석 코치가 아닌 구단 전력 강화실 기술 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때마침 이천수 전력 강화실장이 사임했기 때문에 사실상 그의 뒤를 이어받는 직위로 여겨진다.

한편 2020년 9월 9일, 정식 감독이 되는 데 꼭 필요한 P급 라이선스 수강 명단에 드는 데 실패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현장으로의 복귀는 아무래도 더 늦춰질 전망.

처음 반년은 이적 시장도 이미 닫힌 상황에서 부임했기 때문에 크게 부각될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2020 시즌 종료 후 이천수의 자리였던 전력 강화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력 강화실장이 된 후 이적 시장에서 전면에 나서는 역할을 맡게 됐다. 이 시기부터 일명 라는 단어가 인천 팬들 사이에서 나왔는데, 대표이사 전달수와 전력 강화실장 임중용, 감독 조성환이 각자의 위치에서 완벽하게 역할을 수행하며 팀의 반등을 이끌자 생긴 말이었다. 전달수 대표이사가 운영 및 재정적인 부분에서 활약하고, 임중용 실장은 이적 시장 전반을 이끌면서 스카우트 시스템을 정비하며, 조성환 감독은 이적 시장에서 누구를 원하는지에 대한 최종 판단 및 실제 팀의 지도를 도맡았다.

첫 이적 시장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선수들의 설득에 나서고 전략을 수립하는 등의 활동을 보여줬다. 그 결과 김광석, 오재석 등 이전의 인천이라면 영입하기 어려웠을 선수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이 시즌에 실제로 이전과 달리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임중용 역시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22 시즌에도 전력 강화실장으로의 활동을 이어갔다. 이번에는 무려 이명주의 영입을 성사시켰고, 그 외에도 이적 시장 전반을 훌륭하게 주도했다. 그리고 인천은 이 시즌 리그를 4위로 마치며 창단 이후 첫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달성했는데 임중용 역시 이 과정에서 큰 공헌을 했다.


한편, 2022년에 공오균, 주승진 등과 함께 대한축구협회 P급 지도자 자격 강습회 명단에 선발되며 강습회에 참가했고, P급 자격을 취득해 향후 인천의 감독으로 부임할 가능성도 남겨뒀다.

2023 시즌에는 신진호, 제르소 페르난데스 영입을 성사시키는 등 여전히 공격적이고 돋보이는 이적 시장 활동을 이어갔다. 시즌 중간에 험난한 순간들도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전면에 나서서 팬들과 소통하고,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움직이면서 팬들에게 높은 지지를 얻었다. 이후 여름 이적 시장에서 스테판 무고사 재영입까지 성공하면서 더욱 평가가 올라갔다. 후반기에는 매스컴에도 자주 나섰고, 원정 경기까지 항상 동행하며 팬 친화적인 행보를 보여줬다.

임중용이 보직을 옮긴 선택은 팬들 사이에서 매우 성공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시민 구단으로서의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주로 검증된 선수, 감독 스타일의 맞는 선수 위주 영입을 진행하고 선수단 정리 역시 매우 훌륭하게 매년 진행되고 있다. 그 결과로 2021년부터 인천은 예전과 달리 문제 없이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5.2. 인천 유나이티드 FC 단장

2024년 3월 21일 개최된 제 21기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사내이사 선임과 함께 단장으로 영전되면서[11] 더욱 안정적으로 구단 운영을 할 수 있게 되었나 싶었다. 하지만 팀이 거듭된 부진 속에 마침내 12위로 다이렉트 강등되면서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6. 임중용에 대한 언사

중용이형 보고싶어
제난 라돈치치
임중용은 우리팀의 중심이다
장외룡
중용이형 같은 선수가 되고 싶어요
안재준
제2의 홍명보를 찾아야 한다면 멀리 갈 필요 없죠
2006 시즌 어느 한 해설위원

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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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두와의 침두 사건으로 유명하다. 2007년 9월 22일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열린 수원과의 리그 경기에서 에두가 발을 들어서 임중용에게 가격을 했는데 이에 화가 난 임중용이 밀쳤고 에두는 침을 뱉었던 사건이다. 이걸로 임중용은 레드, 에두는 옐로를 받았다. 이후 에두는 FC 샬케 04로 이적하게 되는데 이적하기 전 인터뷰에서 침두 사건에 대해서 사과를 한다.
  • 2008년, 전북과의 경기에서 혼절하기도 했다.
  • 외모나 목소리로 봐서는 상남자 같기도 하고 화난 거 같기도 하지만, 실제로 사인 요청이나 사진 요청 시 상당히 착하고 섬세하다. 팬들 사이에서 미담이 많은 선수이다. 팬서비스가 좋은 선수 중 한 명이다.
  • 한국 축구선수 중 유일하게 주연 배우로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다. 해당 영화 비상.
  • 베르더 브레멘으로 연수 갔던 시절에 인천 로고가 박힌 옷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녔는데 팬들이 항의했다고 한다. 인천 유니폼의 색이 은근히 함부르크와 비슷한데 베르더와 함부르크의 사이가 좋지 않은걸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 강인덕 전 대표이사의 퇴진을 외치는 목소리가 커진 출발점이 임중용을 비롯한 코칭스태프 전원을 내쫓으려고 한다는 소문이었다. 임중용이 인천에서 지니는 위상이 워낙컸던 만큼 논란이 순식간에 번졌고, 결국 이후 강인덕에 대한 수많은 폭로전이 시작되는 도화선이 되었다. 만약 임중용 건이 아니었다면 강인덕 논란이 언젠간 터지기는 했겠지만 훨씬 늦게 사건이 알려졌을 것이며, 강인덕에 대한 여론도 그렇게 급속도로 악화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면 인천 구단은 더한 위기에 처했을테니 결국 임중용의 존재가 인천 구단의 정상화에 큰 도움을 준 셈이다.
  • 2020년 인천이 9라운까지 무승으로 강등권으로 내몰리고 임완섭 감독이 사퇴하면서 3년 연속 시즌 도중 감독이 중도 퇴진하는 사태를 맞았다. 그러자 팬층 일각에서 임중용 회의론이 일고 있다. 좋은 감독은 자기 사단을 꾸려서 함께 움직인다는 것이 상식인 시대에, 이미 구단에서 코치를 다 내정해 놓은 팀에 어느 감독이 기꺼이 오겠냐는 것. # 심지어 임완섭 감독이 사퇴하면서 기자들이 계약기간은 1년 그마저도 기본 6개월에 6개월 연장 옵션이라는 상식이하의 전말을 폭로하자, 코치 하나 때문에 대놓고 바지감독을 데리고 왔느냐고 격분하는 팬들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그러나 서호정 기자 등을 통해 임완섭 6+6개월 계약설은 이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 인천 시절 오랜 기간 호흡을 맞췄던 제난 라돈치치와는 팀이 갈리고 서로 현역에서 은퇴한 후에도 꾸준히 연락하고 있다. 은퇴 후에도 투게더 라돈치치가 임중용의 단장 부임 소식을 듣고 한국어로 축하하는 카톡과 영상편지를 보냈을 정도. 임중용도 KBS와의 인터뷰에서 기회가 된다면 라돈치치를 인천에 다시 불러오고 싶다고 밝혔다.


[1] 2020년 8월 조성환 감독이 부임하면서 자신과 평소 인연이 있는 최영근 강릉시청 코치와 함께 일하길 원해서 선임했고 이에 인천 구단은 이를 받아들이면서 임중용 감독 대행/수석 코치를 기술 이사직으로 보직을 변경했다. [2] 2020 시즌 종료 후 2020년 8월 9일 사의를 표명한 이천수 前 전력 강화실장의 후임으로 자리를 옮겼다. 보직명은 전력 강화실장이지만 사실상 단장의 업무도 수행했다. [3] 희대의 명대사가 등장했던 바로 그 장면이다. 가평 에덴스포츠타운 잔디 구장에서 훈련하던 어느 날 미니 게임을 위해 골대를 그라운드 밖으로 옮겨야 했는데 다른 선수들이 다같이 골대를 들고 옮겼지만 라돈치치는 골대를 잡지 않고 골망을 만지작거리며 혼자서 골대를 드는 척만(...) 했다. 제난 라돈치치는 허리 아프다고 핑계를 댔는데 이에 화난 당시 주장 임중용이 라돈치치를 향해 저 말을 던지면서 말다툼을 벌였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라돈치치가 자신의 모국어로 핑계를 대면서 계속 구시렁구시렁하자(...) 임중용이 욕을 하고 라돈치치를 향해 돌진하기도 했고 팀원들이 뜯어말리는 장면도 나왔다. 당연하지만, 저건 라돈치치가 잘못한 게 맞다. 최소한 골대를 같이 드는 시늉이라도 했어야 하는 것이다. [4] 영화 ' 비상'에서 그의 프로 정신과 리더십이 잘 드러나 있다. [5] 정인환은 전남 시절부터 아끼던 허카우터가 남준재, 안재준과 트레이드해 영입했고 안재준은 2013시즌 박재준과 트레이드되어 다시 돌아와서 달았다. 참고로 이 과정에서 인천 팬들이 보여준 모습은 상당히 표리부동했다. 안재준 보내고 정인환 데려왔다고 그렇게 욕을 퍼붓더니 정인환이 잘하자 정인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싸고돈건 그렇다치고 트레이드를 성사시킨 허정무의 공로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6] 다만 안재준을 내보낼 때, 안재준의 입지는 인천의 아들로 불리며 확고한 상황이었다. 이런 안재준을 내보냈으면 그 대체자는 압도적으로 안재준보다 잘해야 했다. 정인환이 실력으로 안재준을 완전히 압도하는 정도였냐라고 하면 글쎄라는 답이 나온다. 정인환이 분명 베스트11에 뽑히고, 국대까지 올라갔지만 안재준도 리그 정상급 활약을 펼치면서 국대발탁 여론이 높았던 시기였다. 이렇게 큰 차이를 벌리지 못한 상태에서 인천의 아들이라는 입지까지 가진 안재준을 전남에 넘겼으니, 정인환을 향한 인천팬들의 기대치는 굉장히 높을 수 밖에 없었다. 즉 정인환이 아예 국대 붙박이 주전이 되었어야 할 정도의 거래였다. 정인환의 기량이 최절정에 이르기 전에 이 거래의 대한 평은 100원 주고 100원 사왔다는 말까지 돌았을 정도로 큰 성공이 아니었다. 그리고 안재준과 함께 진행한 거래인 남준재를 내주고 데려온 김명운의 경우는 헤딩만 잘한다는 평을 남긴 채, 압도적으로 손해봤다라는 평이 나왔다. 이 때문에 허정무가 남준재와 안재준를 내주고 김명운과 정인환을 데려온 트레이드의 평이 낮은 것이다. 차라리 김명운과 남준재는 포기하고 안재준과 정인환만 거래했다면, 지금보단 더 좋은 평을 들었을 것이다. [7] 특히 장외룡 감독이 임중용을 칭찬하는 인터뷰를 하면서 대표팀의 수비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다고 강권하기도 했다. 다만 상기한 스피드 문제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자주 제기되었고, 결정적으로 나이가 많아 서서히 정점에서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발탁되지 못했다. [8] 이 과정에서 장외룡 감독도 독일이 정착하기 좋고, 배울 점이 많다고 이야기하며 임중용의 결정에 힘을 실어줬다. [9] 임은수는 공개적으로 임중용이 인터뷰로 칭찬했을 정도로 크게 신뢰하는 선수였다. 반대로 임은수 역시 임중용의 생일에 케이크를 준비하는 등 깊은 고마움을 표시했다. [10] 임중용은 프로축구연맹이 K리그에 요구하는 P급을 아직 보유하지 못한 관계로 임기가 60일까지만 가능하다고 한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은 2020년부터 챔피언스 리그에 참가하는 팀 감독에게 P급 자격증을 요구한다. 이에 따라 연맹은 클럽 라이선스 심사 과정에서 이 내용을 반영한다. [11] 임기 3년, 2024년 3월 22일부 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