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3 13:09:04

이용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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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FC No. 74
이용래
李容來 | Lee Yong-Rae
<colbgcolor=#88c1ea,#051d39><colcolor=#000000,#ffffff> 출생 1986년 4월 17일 ([age(1986-04-17)]세)
대전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75cm / 체중 71kg
직업 축구 선수 ( 중앙 미드필더)
축구 코치
소속 <colbgcolor=#88c1ea,#051d39><colcolor=#000000,#ffffff> 유스 FC 메스 (2002~2003)
선수 경남 FC (2009~2010)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1~2017)
안산 경찰청 축구단 (2014~2015 / 군 복무)
치앙라이 유나이티드 FC (2018~2020)
대구 FC (2021~ )
감독 대구 FC (2021~ / 플레잉 코치)
국가대표 17경기 ( 대한민국 / 2010~2011)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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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8c1ea,#051d39><colcolor=#000000,#ffffff> 학력 대전중앙초등학교 (1993~1998)
대전동중학교 (1999)
대전봉산중학교 (2000~2001)
유성생명과학고등학교 (2002~2004)
고려대학교 (2005~2008)
등번호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6[1], 11[2]
경남 FC 9
수원 삼성 블루윙즈 6[3], 43[4], 4[5]
안산 경찰청 축구단 7
치앙라이 유나이티드 FC 8
대구 FC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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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기록
5.1. 우승 기록
6.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축구 선수 출신 코치. 대구 FC 소속 중앙 미드필더이자 플레잉 코치.

성실함이 뒷받침된 인생 역전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아마추어 시절

아마추어 시절에는 상당히 촉망 받는 유망주로 유성생명과학고 1학년에 재학 중일 때 대한축구협회의 지원을 받아서 프랑스 리그 1 소속 FC 메츠로 1년 동안 축구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6] U-17, U-20 대표팀에도 콜업되고 약체로 평가 받던 유성생명과학고를 우승으로 이끄는 등 고교 무대를 호령했다.

그러한 활약 덕분에 당시 대학 팀들의 스카웃 대상으로 떠올랐으며 2005년에 고려대학교 축구부에 입단했다. 조민국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새내기 때 전국 춘계 1, 2학년 대학축구대회에서 준우승과 함께 4골로 득점왕을 타는 등 앞날이 창창해 보이는 선수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성화 감독이 이끄는 청소년 대표팀에서 발목이 돌아가는 큰 부상을 입고 한 학기를 통째로 쉬며 재활을 했는데 그 후유증이 쉽게 회복되지 않으며 전체적으로 폼이 저하됐다.

그래도 2학년부터는 동기 권순형 바로 앞에서 드리블로 상대를 휘저으며 팀의 크랙으로서 맹활약하며 팀을 4년 연속[7] 전국대학축구대회 우승으로 이끈 주역이었다.

다만 졸업 시즌인 2008년도에 K-리그 스카우터들 앞에서 경기를 뛸 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4학년에 보여준 경기력의 저하와 2학년에 당한 장기부상 때문에 프로 선수로서 플레이가 어렵다는 루머까지 돌 정도였다.

2.1.2. 경남 FC

결국 2009년 K리그 드래프트에서 어느 팀도 이용래를 지명하지 않았고, 경남 FC의 번외 지명에서 지명을 받아 연봉 1,200만 원에[8] 경남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 그동안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였는데 어느 팀도 자신을 드래프트하지 않자 축구에 대한 회의감이 심하여 방황을 하기도 하였다고 할 정도.

그러나 당시 경남 FC의 감독은 유망주 육성에 관심이 많아서 일명 ' 조광래 유치원'을 이끄는 '컴퓨터 링커' 조광래 감독이었고, 2009시즌을 앞두고 시행한 동계훈련에서 조광래 감독의 눈에 띄어 시즌 초반부터 기회를 부여받았다. 데뷔전부터 좋은 움직임을 보이더니 데뷔 시즌인 2009시즌에 30경기를 출장하며 6골 6도움을 기록하여 경남 유치원의 확실한 주전멤버로 도약하였고, 이 시즌의 활약으로 각 팀들이 경쟁적으로 높은 주급을 제시하며 이용래를 이적시키려 시도하였다.[9]

그러나 이용래가 타 팀의 이적을 거절하고 '좀더 많은 주전 경험을 가질 수 있는 경남에 남겠다'라고 선언하였고, 경남 FC도 이에 화답하며 연봉을 큰 폭으로 상승시켜주었다.

2010시즌에는 새로운 중원의 파트너로 2010시즌 드래프트를 통해 새로이 입단한 윤빛가람을 만나게 되면서 두 선수가 다같이 물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0시즌에도 32경기 4골 1도움을 기록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게 된다.

2.1.3. 수원 삼성 블루윙즈

파일:external/www.bluewings.kr/a767e53ebe22580ab25de89660845bad.jpg

그리고 시즌 종료 후인 2010년 12월에 이적료 6억 원, 계약 기간 3년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하게 된다. 이 당시 수원의 중앙 미드필더진은 이름값에 비해서 실속이 딸리는 미드필더진이었기에[10] 수원 팬들은 '어이쿠 이런 어리고 좋은 선수를 저렴하게 사다니 경사로세'를 외치던 분위기였다.

2011년에는 수원 소속으로 데뷔하여 오장은과 함께 수원의 중원을 형성하고 있다. 다만 이전의 경남 FC 시절의 경우에는 김태욱 선수와 같이 뒤에서 궂은 일을 해 주는 수비력 좋은 미드필더가 보조를 해준 반면, 수원에서는 오장은과 이용래 모두 우수한 공격력에 비해 수비력이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처럼 썩 좋은 편이 아닌지라 수원의 미들진이 가끔 상대의 거친 미드필더진에게 심하게 쓸려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있다.

2012년 여름에 중동 클럽의 오퍼를 받고 이적을 시도했으나, 메디컬 테스트에서 심장 이상을 지적받고 불합격했다. 이후 수원에 남았으나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시즌 아웃. 2013년 5월까지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가 복귀를 했다. 이후로 오장은과 콤비를 맞추며 괜찮은 활약을 마치고 시즌이 끝난 후 안산 경찰청 축구단에 입대했다.

2015년 9월 25일 전역 후 원 소속 구단 수원으로 복귀했으나 이전에 당한 십자인대 부상으로 인해 2015년 시즌엔 뛸 수 없었다.

2016년 스페인 전지훈련에서의 친선 경기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2016 시즌 전반기 내내 부상 후유증으로 제대로 경기를 뛰지 못했다. 상하이 상강과의 챔피언스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는 선발 출전했다가 둔한 움직임으로 전반에 교체되기도. 후반기 들어 이종성과 짝을 이루어 중앙 미드필더로 연속 출장을 하고 있지만 경기력은 상당히 부진한 편. 확실히 부상 기간 동안 스피드와 체력이 많이 떨어져 수비형 미드필더에게 가장 필요한 활동량이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수비형 미드필더가 부진하니 수원 수비진에 과부하가 걸리는 건 당연지사.

그래도 2017년에는 꾸준히 출장 기회를 받으면서 그동안의 기나긴 부진을 조금씩 만회하는 중, 전북과의 32라운드 홈경기에선 비록 전반뿐이었지만 국대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35라운드 슈퍼매치에서 2011년 입단 후 처음으로 슈퍼매치에서 골을 기록하게 된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는 그간의 고생 때문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영상

또한 36라운드 강원 FC 전에서 역전 골을 성공시키며, 2연속 골을 성공시켰다. 이날 조나탄도 3경기 연속 득점과 더불어 득점을 기록하는 덕에 같은 선수가 연속 경기 골을 넣는 기록을 세웠다.

2.1.4. 치앙라이 유나이티드 FC

파일:이용래태국.jpg

12월 26일 대표팀시절 조광래의 수석 코치였던 알렉산드레 가마가 감독으로 있는 타이 리그 1 치앙라이 유나이티드 FC로 이적이 확정되었다. #

그리고 태국에서의 첫 시즌에 리그를 제외한 FA컵, 리그컵, 슈퍼컵 국내 대회 트레블이라는 기록을 세울 때 큰 공을 세웠다. 차기 시즌인 2019 시즌에는 아일톤 실바 감독 지휘 하에 태국 내에서 최강이라 불리는 부리람 유나이티드 FC를 밀어내고 구단 역사 최초의 타이 리그 1우승에 크게 공헌했다.

2.1.5. 대구 FC

2020년 11월 30일을 끝으로 치앙라이와의 계약이 끝나고 경남 FC 국가대표시절 감독이자 조광래가 현재 단장으로 있는 대구 FC 플레잉 코치 직책으로 1년 계약이 확정됐다. #
2.1.5.1. 2021 시즌
등번호 74번을 배정 받았는데 아내 생일이 7월이고 아들 생일이 4월이어서 둘을 합쳐 74번으로 정했다고 한다. #

2월 28일 수원FC와의 개막전 경기에서 후반 67분에 교체 출전하였는데 들어오자마자 중원을 장악하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6라운드 울산 현대와의 경기에서도 선발 출장하였다. 그렇게 71분내내 뛰다 교체되어 나왔다.

약 2주간의 A매치 휴식기 이후 7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도 선발로 출장하였다. 이진용과 함께 중원에서 괜찮은 활약을 하였으나, 전반 39분 포항의 역습 과정을 끊는 과정에서 경고를 받았다.

11라운드 자신의 친정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경기에서도 선발 출장했다. 경기 내내 대구의 중원을 책임져 주었으나 후반 75분 수원의 정상빈과 볼 경합 과정에서 정상빈의 발을 밟아 옐로카드를 받아 다음 경기에 경고 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12라운드 광주 FC전에서는 앞선 경기에서 받은 옐로카드로 인해 경고 누적으로 선수로 뛰지 못해 코칭스태프로 광주에 내려와 코치직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13라운드 수원 FC전부터 다시 선발 라인업에 복귀하여 뛰고 있다.

22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의 홈경기에서도 선발 출전했으나 전반 18분 몸에 이상이 생겼는지 이른 시간에 츠바사와 교체되어 나왔다. 그리고 이어진 울산 현대와의 원정 경기를 시작으로 약 3주간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다 26라운드 광주 FC와의 홈경기에서 오랜만에 교체 명단에 들었다. 하지만 경기 출장은 불발됐다. 27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 FC와의 원정 경기에서는 선발로 나와 약 82분 동안 경기를 뛰다 조진우와 교체되어 나왔다.

29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로 출장했다. 그리고 전반 26분 고영준이 소유한 볼을 뺏는 과정에서 고영준의 발목을 밟아 퇴장 논란 등 좋지 않은 경기력을 펼치다 후반 56분 박한빈과 교체되어 나갔다.

AFC 챔피언스 리그 16강전 나고야 그램퍼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장해 나고야의 공격을 잘 짤라내는등 좋은모습을 보여주었으나 후반 56분 부상을 당하며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팀은 부상으로 빠진 정태욱의 높이와 이용래의 미드진 밸런스가 무너져 버려 이후 3골을 연달아 먹히며 아쉽게 대회에서 탈락하게 되었다.

9월 16일에는 지난 28라운드 포항 스틸러스 원정에서 고영준의 발목을 뒤에서 밟은 것으로 인해 2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2경기 출장 징계가 끝난 32라운드 수원 FC와의 홈경기에서 교체 명단에 복귀하였다. 그리고 후반 57분 햄스트링 부상으로 빠지는 세징야 오후성을 대신해 이근호와 함께 교체되어 들어왔다. 그리고 후반 65분 수원 FC의 역습을 차단하는 과정에서 박주호에게 파울을 저질러 옐로카드를 받으며 2차 경고누적 징계로 다음 경기에 출장 정지를 당하게 되었다.

21시즌 기록은 리그와 FA컵, ACL을 합쳐 32경기 출전.
2.1.5.2. 2022 시즌
구단과 플레잉 코치 신분으로 재계약하며 잔류했다.

16라운드 성남 FC 원정 경기에서 우즈베키스탄에서 개최된 AFC U-23 아시안컵에 참가했다가 성남전 경기 전날 입국한 이진용을 대신해 오랜만에 선발 명단에 들었다. 그리고 개막전 FC 서울전 처럼 이용래- 라마스 조합이 속도가 느려 성남전에서도 위험하지 않겠냐는 여론과는 다르게 전반 내내 중원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 후반 71분 이진용과 교체되었다.

햄스트링 부상으로 한 달간 빠지다 30라운드 성남 FC전에서 오랜만에 선발로 출장해 이진용과 함께 대구의 중원을 잘 이끌어 갔다. 이후 체력 안배를 위해 후반 6분 페냐와 교체되었다.

리그 최종전 성남 FC 원정에선 전반 10분 이진용과 교체되어 들어가서 안용우의 득점을 어시스트하며 대구 입단 후 첫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2022 시즌 기록은 리그와 FA컵, ACL을 합쳐 36경기 1도움.
2.1.5.3. 2023 시즌
올해로 계약이 끝나며 번호는 여전히 74번이다.

10라운드 수원 원정에서 53분에 코너킥으로 에드가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하며 시즌 첫 도움을 기록했다. 이 골이 결승골이 되면서 시즌 첫 원정승을 거뒀다.

4월 말부터 주장 세징야가 부상으로 이탈하고 부주장 오승훈은 최영은과의 경쟁에서 밀렸으며, 또 다른 부주장인 이근호가 선발 명단에서 빠질 때면 이용래가 주장 완장을 달고 선발 출전하고 있다.

15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 FC와의 홈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해 55분을 소화하고 박세진과 교체되었다. 팀은 에드가의 헤더 멀티골이 터졌으나 후반 92분 홍시후에게 실점하며 2:2로 비겼다.

16라운드 FC 서울과의 홈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하여 70분을 소화하고 케이타와 교체되었다. 팀은 세징야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었다.

17라운드 전북 원정에서 선발로 출전하여 62분을 소화하고 바셀루스와 교체되었다. 팀은 송민규에게 실점하여 0:1로 패하였다.

18라운드 수원 FC와의 홈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하여 73분을 소화하고 박세진과 교체되었다. 팀은 황재원 세징야의 활약으로 3:1 승리를 거두었다.

19라운드 울산 현대 원정에서 선발 출전하여 후반 51분 고재현과 교체되었다. 팀은 1:3으로 패하였다.

20라운드 수원 삼성과의 홈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하여 후반 56분 이근호와 교체되었다. 팀은 세징야의 동점골로 1:1 무승부를 거두었다.

21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 FC 원정에서 후반 90분 박세진을 대신해 교체 투입되었다. 팀은 장성원의 결승골로 2:1 역전승을 거두었다.

22라운드 강원 FC와의 홈경기에서 후반 67분 바셀루스를 대신해 교체 투입되어 중앙 미드필더로 30분 가량을 소화했다. 비가 상당히 많이 와서 경기장이 미끄러웠으나 큰 실수 없이 대구의 중원에 힘을 보태주었다.

25라운드 중 24경기에 출전하며 이번 시즌도 많은 경기에 나서고 있다. 모든 경기 명단에서 빠지지 않았고 6라운드 FC 서울 원정을 제외하면 매경기 선발이든 교체든 출전하였다.

올 시즌도 리그 29경기, FA컵 1경기 등 시즌 총 30경기에 나섰다. 심지어 자신의 단일 시즌 최다 리그 출장 기록을 세울 정도로 많은 경기에 나섰다.어째 해가 지날수록 경기수가 늘어간다

올 시즌을 끝으로 또 다시 FA가 되는데, 대구 입장에선 이미 이진용이 군대를 가는 상황인데다가, 고액의 이적료로 인해 벨톨라가 완전영입될지는 미지수이기에 대구는 이용래의 존재가 필요할 전망이다.
2.1.5.4. 2024 시즌
7라운드 인천유나이티드전을 뛰면서 300경기라는 기록을 달성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2.2.1.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1 정성룡 · 2 최효진 · 3 황재원 · 4 조용형 · 5 곽태휘 · 6 이용래 · 7 박지성
C
· 8 윤빛가람
9 유병수 · 10 지동원 · 11 손흥민 · 12 이영표 · 13 구자철 · 14 이정수 · 15 홍정호 · 16 기성용
17 이청용 · 18 김보경 · 19 염기훈 · 20 김신욱 · 21 김용대 · 22 차두리 · 23 김진현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조광래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박태하
스태프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서정원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김현태 · 파일:브라질 국기.svg 알렉산드레 가마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때 국가대표팀으로 자리를 옮긴 조광래 감독의 콜을 받으며 국가대표팀에 데뷔했다. 특히 아시안컵 5경기에서 김정우를 대체하는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으로 출장하며 MOM을 1회 수상하는 등 최고의 활약을 보였다. 이는 국내 축구 팬들에게 이용래라는 이름을 크게 각인시키게 된다. 이때의 활약으로 아스톤 빌라의 스카우터가 진지하게 지켜봤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실제로 이적할 리는 없으리라는 게 중론이었고[11] 실제로도 언론의 설레발로 끝나고 말았다.

2.2.2. 2011년

조광래호 시절 국가대표에 발탁되기 시작했는데, 대표팀 소집에서 빠진 적이 한 번도 없고 기성용, 구자철과 공존시키겠답시고 이용래를 수비형 미드필더에 박아놓고 무리하게 수비 부담을 지운 결과 2011년 약 60경기가 넘는 경기를 뛰는 혹사를 당하게 된다. 2011년에 계속 소집되었고, 대표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3. 지도자 경력

2020년 11월 30일 대구 FC 플레잉 코치 직책으로 영입이 되었다. 하지만 취업 사기를 당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구에서 코치직보다는 선수로서 거의 매경기 출장해 맹활약을 펼쳤다. 이후 11라운드 수원 삼성 블루윙즈전에서 옐로카드를 받으며 경고 누적으로 직후 경기에 출전이 불가능해져서 12라운드 광주 FC전에서 드디어 처음으로 코칭스태프 직책을 수행했다.

# 이 기사에 따르면 대구 내에서 코치 역할을 하는 것은 맞으나 연맹에는 코칭 스태프로 등록하지 않았다고 한다. 엄밀히 따지면 플레잉 코치는 아닌 셈이다. 코치 등록이 되어 있지 않으면 경기 중에 벤치에서 직접 지시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재 대구에서는 경기장이 아니라 클럽 하우스와 훈련장 등지에서 코치 역할을 겸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감독 성향에 따라 직접 뛰면서 지시하는 플레잉 코치 역할을 부여하기도 하니 실제 직책 부여 여부가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긴 하다.[12]

4. 플레이 스타일

좋은 킥력과 시야, 이에 기반한 좋은 패싱 능력을 갖춘 중앙 미드필더. 데뷔 초기에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기도 했으나 경험을 쌓으며 그보다는 밑으로 내려가 3선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다고 레지스타처럼 활동량이 안 좋은 것도 아니라서 아시안컵에서는 구자철이나 기성용의 파트너로 뛰며 그 둘을 받쳐주는 좋은 활동량을 보여주기도 했다. 다만 파트너를 좀 타서 수원에서는 오장은보다는 다소 밑으로 내려가서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처럼 뛰면서 평범한 활동량을 보여주고 있다.

대구에서는 많은 나이에도 강점을 온전히 살리며 중원의 핵심으로 활동 중이다. 파트너는 바뀌더라도 이용래가 공수 조율뿐만 아니라 수비 시의 빌드업 그리고 공격 전개를 위한 기점이 되는 날이 많은데 보통 파트너가 공격 줄기를 담당하는 만큼 이용래의 보조는 필수적이다. 심지어 30대 후반의 나이에도 경기마다 상위권의 활동량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용래가 경기장에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대구의 승점이 바뀌는 현상이 일어난다. 경기 초반과 후반부에 카메라에 비춰지는 모습을 보면 취업 사기로 조광래를 고소해도 할 말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서 경기장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핵심 자원이다. 문제라면 나이인데 이미 30대 후반에 접어드는 나이라 언제 기량이 확 꺾여도 이상하지 않고 대구 구단 입장에서도 노장인 이용래가 주축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 장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아니기 때문이다.

5. 기록

시즌 클럽 소속 리그 리그 FA컵 대륙 대회 합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06 고려대학교 U리그 - 1 0 - 1 0 0
2009 2 0 2 0 0
2009 경남 FC K-리그 26(4) 6(0) 4(2) 2 0 28(4) 6(0) 4(2)
2010 K리그 27(5) 4(0) 0(1) 1 0 28(5) 4(0) 0(1)
2011 수원 삼성 블루윙즈 28 0 3 3 1 10 0 0 41 1 3
2012 25 2 2 3 0 - 28 2 2
2013 K리그 클래식 20 1 1 1 0 21 1 1
2014 안산 경찰청 축구단 K리그 챌린지 33 3 3 0 0 33 3 3
2015 14 1 1 1 0 15 1 1
2016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 클래식 13 0 0 1 0 1 0 0 15 0 0
2017 19 2 1 3 0 6 0 1 28 2 2
2021 대구 FC K리그 1 24 0 0 1 0 7 0 0 32 0 0
2022 28 0 1 2 0 6 0 0 36 0 1
통산 257(9) 19(0) 16(3) 21 1 30[13] 0 1 308(9) 20(0) 17(3)

5.1. 우승 기록

6. 여담

  • 의외로 체력 유지를 위해 황소개구리를 애용한다는 소문이 있다.
  • 절충형이라는 별명으로도 종종 불리는데, 이는 조광래호에서 주전으로 뛰던 당시 한 기사에서 조광래호와 최전성기 FC 바르셀로나의 전술 및 선수들을 비교하는 자료에서 이용래에게 "절충형"이라는 수식어를 썼기 때문이다. 애초에 " 중앙 미드필더"나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도 아닌 "절충형"이라는 낯선 표현을 쓴 데다가 바르샤 선수 중 절충형에 해당하는 선수로 이니에스타를 선정하고 되려 이니에스타보다 공수 밸런스가 잘 잡힌 차비 에르난데스를 "공격형"으로 선정하는 등 기자의 축구 지식이 의심되는 기사였는데, 이게 조광래호 특유의 만화 축구와 처절한 실패와 겹쳐져서 개그짤로 남게 되고 그 중 제일 튀는 수식어가 붙은 이용래에게 덩달아 이상한 별명이 붙어버린 것.
  • 트로트 가수 영탁과 매우 닮았다. 특히 이용래 아내분도 보자마자 너무 닮아서 놀랐다고 했을 정도. 그래서 이용래에게 '올드탁'이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이용래가 영탁보다 3살이나 적다.
  • 2021 시즌 대구 FC에 플레잉 코치로 입단했으나 구단의 얇은 중원 스쿼드 때문에 잦은 교체 출전을 했다. 그리고 6라운드 울산 현대전부터는 선발로 출전하여 팬들로부터 취업 사기를 당한 게 아니냐 할 정도로 뛰게 되었다. 근데 전술한 바와 같이 공식적으로는 코치로 등록되지 않은 상태라서 진짜로 취업 사기를 당했다는 농담이 있다. #


[1]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2] 2003 핀란드 FIFA U-17 월드컵 [3] 2011, 2012. 2013 [4] 2015 [5] 2016, 2017 [6] 이후 메츠와 프로 계약을 맺은 조작법 어모씨, 강진욱과는 달리 메츠의 제의를 거절하고 같은 유학생이었던 김동민과 함께 귀국했다. [7] 2005, 2006, 2007, 2008 [8] 계약 기간은 1년, 연봉은 최저연봉인 1,200만 원이었다. 승부 조작 사건 후 2000만 원 [9] 번외지명은 계약 기간이 1년이므로 계약이 만료된 상황이면 자유계약으로 이적이 가능하다. [10] 장기부상을 당한 이관우, 잔부상 때문에 제대로 된 폼을 못 보여주던 백지훈, 한 시즌만 ㅎㄷㄷ했던 홍순학 등. [11] 경남에서 수원으로 이적한지 2달만에 아스톤 빌라로 옮길 경우 1시즌 동안 2팀 이적 시 마지막 옮긴 팀에서 잔여 시즌 동안 출장이 불가능하다는 규정 탓에 EPL의 시즌 종료까지인 6월까지 출장이 불가하다. [12] 그럼에도 이용래의 사례가 특이하게 비춰지는 것은 플레잉 코치들은 비교적 선수보다는 코치 역할에 집중하며 선수로는 자주 나서지 않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플레잉 코치를 할 정도면 이미 후배 선수들에게 자리를 물려준 베테랑일 가능성이 크고 그렇다면 굳이 플레잉 코치가 아니더라도 경기를 풀 타임으로 뛰기보다는 벤치에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거나 노하우를 전수해 주는 역할을 더 많이 한다. 그나마 출전을 해도 라이언 긱스처럼 강점을 살려 교체 멤버로 짬짬이 출전하는 정도. 그러다 보니 플레잉 코치 역할을 받은 선수들도 자연스레 코치 역할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 아예 R리그 같은 데 내려가서 유망주 코칭에 더 집중하는 경우도 있다. [13] 치앙라이 유나이티드 FC 시절 5경기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