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04 23:50:18

왕침(문학가)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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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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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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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륵 , 석홍 · 장빈, 석계룡 ,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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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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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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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王沈
생몰연도 불명

서진의 인물. 자는 언백(彥伯). 연주 고평군(高平郡) 출신.

2. 생애

출신이 한미하고 강성한 지역 호족들의 억압을 받았으나, 이러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부터 뛰어난 재주를 지니고 있어 세속에 쉽사리 휩쓸리지 않았다. 장성하고 고평군의 문학연(文學掾)으로 임관했지만 뜻을 자유롭게 펼치지 못 함에 답답함을 느꼈다. 이에 왕침은 〈석시론〉(釋時論)을 지어, 오로지 가문의 위세에 따라 출세가 결정되고 정작 능력있는 인재들은 중앙에 진출하지 못 하는 서진의 현실을 풍자하였다. 왕침의 글은 비슷한 내용의 작품인 채홍(蔡洪)의 〈고분론〉(孤奮論)과 함께 당시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