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H. 브룩스 Edward H. Brook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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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에드워드 헤일 브룩스 Edward Hale Brooks |
출생 | 1893년 4월 25일 |
미국 뉴햄프셔주 콩코드 | |
사망 | 1978년 4월 25일 (향년 85세) |
미국 뉴햄프셔주 콩코드 | |
복무 |
버몬트 주방위군 미합중국 육군 |
최종 계급 | 미국 육군 중장 |
복무 기간 | 1915~1953 |
학력 |
콩코드 고등학교 노리치 대학교 펜실베이니아 군사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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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뉴햄프셔주 콩코드에서 태어났고 노리치 대학교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1915년 버몬트 주방위군에 입대해 제1기병연대 대위로 복무하며 생업인 토목쪽에 종사했다. 1917년 8월 미합중국 육군 소위로 전군했고 11월 기병에서 포병으로 전과해 미시시피주 캠프 셸비에 위치한 제76포병연대에서 복무했다. 연대가 제3보병사단에 편입되어 미국 원정군소속으로 서부전선에 파견되어 작전장교에 임명되었다. 제2차 마른 전투, 생미이엘 공세, 뫼즈-아르곤 공세에 참가했고 뫼즈 아르곤 인근에서 적 탄약 열차에 포격을 퍼부어 파괴시킨 공으로 수훈십자장을 수여받았다.전후에도 군 경력을 이어나갔으며 포병학교 고군반을 수료하고 필리핀에 있누 제24포병연대에 배치되었고 제28포병연대에서 복무하다가 지휘참모학교를 수료하고 하버드 대학교 학군단 훈육관으로 복무했다. 이후 육군전쟁대학을 수료하고 지휘참모학교 교관으로 임명되었다.
1939년 전쟁부에서 2년간 복무했으며 1940년 중령으로 진급했다. 1941년 9월 제이콥 데버스의 요청으로 기갑군단의 참모로 복무했고 대령을 건너뛰고 준장으로 진급했다.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이 세계 대전에 개입하자 유럽전선으로 투입되었고 소장으로 진급했다. M7 자주포를 고안하는데 노력했고 제11기갑사단장으로 임명되었다. 데버스, 존 C. H. 리와 함께 작전을 강구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당시 오마하 해변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렀고 보카주에서도 독일군과 전투를 치렀다. 이후로도 프랑스 전역에서 전투를 치렀고 이 공으로 은성훈장을 수여받았다. 제2기갑사단장으로 임명되어 참모장인 찰스 D. 파머와 함께 겐트를 탈환했다. 벌지 전투당시 독일군의 반격에 유연하게 대처해 공세를 저지했다. 이후 라인강을 건너 독일 본토로 입성했고 종전을 맞이했다.
전후 육군인사부참모에 임명되었고 1949년 중장으로 진급하고 1953년 퇴역했다. 고향에서 플라잉 낚시를 즐기며 지내다가 1978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