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야마토급 전함의 문제점을 서술한 문서.2. 상세
어떤 무기라도 문제점은 있다. 물론 성능과 신뢰성이 좋다면 장수만세에 포함되는 무기처럼 오랫동안 큰 변화없이 지속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라도 전술 체계라든지, 기술력, 생산력 같은 시스템 분야는 계속 발전하기 때문에 한번 나온 무기도 필요한 부분은 계속 개량한다. 장수만세에 속하는 무기도 이런 지경인데 일반 무기라면 후속작으로 새로운 무기를 신규로 개발해서 대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그러나 상당수의 무기들은 문제점이 심각하여 빠르게 퇴출당한다. 특히 일본군은 제로센 같은 항공기는 물론 치하 같은 전차도 거의 대다수가 무기로서 치명적인 문제점을 한두 가지씩은 갖고 있었다. 야마토급 전함의 경우, 기본적으로 함대결전사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아래에서 다뤄질 문제가 태생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3. 취약한 부포탑 방어
부포는 성능은 뛰어나지만 부포탑의 장갑이 너무 얇아서 방어력이 너무 약했다. 고작 25mm라는 엄청나게 얇은 장갑을 자랑했는데, 이 수치는 악명높은 치하의 전면장갑과 같다. 그러니까 명색이 규격 외인 초거대 전함의 부포탑이라는 물건이 구축함의 포탄에도 바로 관통된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구축함이라도 최소한 5인치(127mm) 주포 정도는 달고 있었으므로 그 압도적인 함체 장갑에는 어쩔 수 없지만 고작 25mm 장갑판으로 무장한 부포 따윈 손쉽게 파괴할 수 있다.더 심각한 문제는 구축함을 포함한 어떤 군함이라도 달고 있던 40mm급이나 20mm급의 대공기관포도 근접할 경우 부포탑을 충분히 파괴할 수 있다는 점과 함께 이론상으로 항공기의 기총 소사에도 관통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 함재기가 사용하던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은 철갑탄을 사용할 경우 500m에서 19mm 두께인 장갑을 뚫을 수 있는데 여기에 비행속도가 더해지는데다 일본제 장갑의 강도가 미국 것보다 약하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미국 함재기가 철갑탄을 장전한 채로 가까이 접근해 기총 소사를 퍼부으면 부포탑 장갑을 뚫을 수 있다. 물론 실전에서 기총을 이용해 철갑탄을 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쏜다 해도 부포탑을 뚫으려면 죽음을 각오하고 초근접거리까지 접근해야 하기에 실전에서 기총 소사에 의해 부포탑이 관통될 일은 사실상 없다. 그러나 애초에 전함의 부포탑이라는 물건이 고작 기총 소사 따위에도 관통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이다. 기관총 이상의 기관포는 말할 것도 없고, 정식적인 공격인 함포사격과 항공기에서 부포탑을 노린 급강하 폭격만 제대로 들어와도 큰일이 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급강하 폭격에 관한 문제는 결국 나중에 오키나와에서 현실이 된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애초에 모가미급 중순양함의 주포를 8인치(203mm) 2연장 주포탑인 3년식 20cm 50구경장 함포로 교체하면서 기존에 달고 있던 6.1인치(155mm) 3연장 주포탑인 3년식 155mm 60구경장 함포가 남게 되었으나 워낙 크고 무거워서 일본군의 다른 경순양함에게 장착이 힘들었기 때문에 상당량이 재고품으로 남게 되었으며 이걸 개량해서 야마토급 전함의 부포탑으로 채택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포탑의 장갑은 사실상 그대로 유지한게 문제였다. 일본은 여러 이유로 인해 순양함 포탑에 25mm 두께인 매우 얇은 장갑만을 적용했다. 그런데 별다른 장갑 강화 조치도 없이 전함에 장착하는 바람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어차피 개량작업이 들어갔다면 포탑의 장갑도 강화했어야 하며 그 수준도 후술할 문제점을 고려한다면 포탑의 장갑을 25mm가 아닌 250mm 이상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부포 탄약고와 주포 탄약고가 인접했다는 것으로, 재수 없으면 부포탑에 인화된 불길이 주포 탄약고에 옮겨붙어서 걸레짝이 되는 사태가 날 수 있었다. 물론 일본도 당연히 이 문제점을 인식하고 방염처리를 하고 부포 바벳을 강화했지만 그렇게 한 강화책은 고작 50㎜ CNC +25㎜ DS 정도며, 그나마 포탑 부분은 포방패를 포함해서 그냥 25㎜로 유지했으므로 그 정도로는 완전한 대책이 되지 못했다. 참고로 6인치 3연장 부포탑을 운용한 리슐리외급 전함은 부포탑 정면기준 각각 130mm 45도 경사장갑, 리토리오급 전함은 아예 280mm라는 순양전함 주포탑 전면급의 떡장을 둘렀다.[1]
애초에 부포탑 피탄이 탄약고 유폭등을 불러와 함선 침몰로 쉽게 이어지는 문제로 인해 타국 전함들은 일본처럼 운용하는게 화력 집중과 운용에 편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포탑을 함체 중심선이나 주포탑 인근에 놓지 않고 일부러 함체 양 측면에 놓은 것이다. 그렇게 배치하면 동일한 화력을 내려면 중심선상에 있던 부포탑 개수의 2배인 마운트가 필요하지만[2][3], 피탄 당하더라도 해당 부포탑만인 국부성 손상으로 끝난다. 최악의 경우인 부포탑 연쇄 폭발이 발생하더라도 한쪽 측면 상부만 파손되므로 당장 침몰하지는 않는다. 리슐리외급 전함처럼 함미에 부포탑 3기를 놓는 특이한 경우나 부포탑과 주포탑을 가까이 붙여두는 리토리오급 전함은 최소한 앞에서 말한 장갑 대책 정도는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나마 측면장갑의 보호를 받고 외부로 노출된 부위는 포탑밖에 없는 측면 부포탑은 대공 화력의 증대를 위해 제거하면서, 주포탑보다 높은 위치에 존재하는 바람에 포탑과 바벳은 물론 탄약고의 일부도 갑판장갑 위에 있어서 측면장갑의 보호를 못 받는 선체 중심선상의 부포탑을 남겼다는 문제점까지 있었다. 물론 해당 부포탑도 상부 구조물 안에 있지만, 갑판장갑 위에 위치한 상부 구조물은 장갑함교같은 일부 특수부위를 제외하고는 장갑이 없다. 적의 공격이 머리 위로 떨어지건 측면으로 날아오건 간에 이를 막아낼 장갑은 부포탑이 가진 얇은 장갑에 불과하다는 것은 실로 처참한 경우다.
이 문제는 2번함 무사시의 의장원(건조 도중의 승무원)이었던 치하야 마사타카(千早正隆)에 의해 지적되어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에게도 보고가 올라갔고, 야마모토는 부포를 철거하고 장갑판으로 덮어버리는 것이 좋겠다 고 언급했지만 결국 별다른 조치는 시행되지 못했다.
여기에 대해서 야마토급 전함의 부포탑과 바벳, 탄약고는 타국 전함들처럼 장갑으로 방어된 바이탈 파트의 외곽에 있는데, 이로 인헤 부포탑 및 바벳 관통에 따른 부포탄약 유폭이 주 탄약고를 인화시켜 대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므로 부포탑이 폭발해도 탄약고를 방호하는 장갑 외곽에서 폭발이 일어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얼핏 보면 맞는 이야기 같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실제 탄약고 폭발은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의 영향력이 더 크다. 밀폐된 공간에서 폭발이 발생할 경우, 상하좌우의 모든 영역에 큰 압력이 가해지게 되며 선체 전체에도 만만치 않은 타격을 입힌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알량한 탄편 방어용 내부 장갑판 가지고는 쉽게 막기 어렵다. 영국의 전함은 전함의 주포탄 1발이 장갑을 뚫고 내부에서 작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측면장갑을 엄청나게 강화했는데, 해당 주포탄 1발의 작약량은 잘 쳐주어도 몇십 kg에 불과하다. 그런데 부포탑의 작약량은 포탄이 많은 관계로 최소 수백 kg 이상이며, 여기에 장약까지 들어가므로 유폭 시 위력이 그냥 주포탄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
그리고 야마토의 15.5㎝ 대수상부포는 원래부터 경순양함의 조약상 한계급까지 구경이 늘어나고 3연장이었으며 포신도 장포신이고 강력한 포탄을 원거리까지 발사할 수 있는 관계로 부포 탄약고로서는 지나치게 대규모였고 이것의 폭발은 장갑영역 외부에 지나치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실제로 야마토 침몰 당시 부포 탄약고에 공격을 받았을 때는, 1번과 2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아래와 같은 심각한 손상을 가져왔다.
최후의 전투에서 야마토가 받은 공격과 피해 |
- 후방 사격관제실과 부포관제실 파손. 이 과정에서 측거기를 포함한 광학조준장비가 몽땅 파손된다.
- 레이더실 완파. 덕분에 레이더는 그냥 고철로 전락한다.
- 127mm 2연장 대공포탑 2기 완파. 그나마 가장 쓸 만했으며, 대공화력의 주력을 담당한 127㎜급 대공포탑 12기 중 2기가 한번에 고철이 되었다.
- 후방 부포탑 탄약고 폭발. 엄청난 수준의 화재가 발생했다.
- 후방 보수반원 전멸. 불을 끌 사람들이 전멸해버렸다.
당장 입은 피해만 추산해도 엄청나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게다가 후방 부포탑에서 발생한 화재는 보수인원이 전멸하여 아예 손도 못 댔기 때문에 파괴된 부포탑 천정에서 횃불처럼 불길이 올라가면서 야마토가 침몰할 때까지 소화되기는 커녕 더 크게 번졌으며, 결국에는 3번 주포탑의 탄약고 유폭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온도가 올라갔다는 보고가 지휘부에 올라갈 지경이었다. 해당 보고는 야마토의 지휘부가 퇴함 명령을 내리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한마디로 말해 더이상 전투를 지속하더라도 주포 탄약고 유폭으로 인해 알아서 침몰할 운명이었다. 종합하자면 애초에 해당 위치에 부포탑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엄청난 피해를 입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여기에 대해서 일본 측은 실제로 부포 탄약고의 유폭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당시 야마토의 전투 보고서 상으로는 미군의 1차 공격 당시 떨어진 폭탄이 후방 사격지휘소 부근의 상갑판을 뚫고 들어가 터졌고, 이때 일어난 화재가 후방 부포탑까지 이르렀지만 탄약고 자체는 무사했던 것으로 돼있다. 애초에 부포탑 탄약고가 폭발했더라면 그 바로 옆에 있는 주포탑 탄약고도 무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 당시 야마토의 피해보고서. 후방 부포탑의 직격은 없는 걸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건 교차검증이 안 된다. 야마토의 피해를 기록한 『軍艦大和戦闘詳報』는 「大和被害経過資料不足ニテ詳細不明」이라는 주석을 달아서 야마토의 피해 경과 자료 부족으로 인하여 자세한 것은 불명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표현한 데다가, 최후의 전투 당시 동행했던 제2수뢰전대(第二水雷戦)의 전투상보와도 어뢰 명중등에서 차이가 나서 교차검증이 안 되는 등 매우 부적합한 자료이다. # 게다가 이 자료는 부포탑 날아간 것은 교묘하게 숨기고 있고 폭탄 2발이 낸 피해가 너무 크며, 침몰 직전까지 꺼지지 않은 화재를 낸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데다가 피해 표시에 대한 도면도 자세하게 표현한 미국의 물건과는 달리 진짜로 대충 그린 물건이다. 따라서 신빙성에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주장은 일위키에 실려있는 주장으로, 어차피 부포탑 구획은 맞을 일이 거의 없을 작은 구획인데 뭐가 문제냐? 라는 말이다. 얼핏 보면 맞는 말이긴 하나 포탑과 탄약고는 당연히 탄약이 밀집한 곳으로 어떤 부위보다 방호력이 요구된다. 다른 전함들처럼 부포가 함체 측면 외곽에 있으면 구역 폐쇄 등의 대처에 여유가 있으나 야마토급 전함이나 리토리오급 전함은 그렇지 않다. 리토리오급 전함도 결국 전함 로마가 프리츠 X 유도 폭탄에 명중해서 갑판장갑을 관통당하고 부포탑 탄약고 옆에서 폭발하는 바람에 부포탑 탄약고가 터지면서 인접한 주포탑 탄약고가 충격을 못 이기고 연쇄폭발해서 순식간에 격침당했다. 그리고 야마토급 전함은 부포탑 장갑 얇은 것을 제외하고라도 개장 후에도 철거되지 않은 부포탑의 경우에는 주포탑보다 높은 곳에 달아놓았기 때문에 피격 부위가 말처럼 작지만도 않을뿐더러 측면장갑이나 갑판장갑의 보호도 못받으며 주포와는 아예 붙어있어 유폭시 위험성도 크다.
이 부포에 대한 또다른 일위키의 변론을 보자. 야마토의 사관들은 155mm포의 수상공격력보다 대공능력을 더 눈여겨보고 있었으며, 155mm부포가 5인치 부포보다 구축함을 구축해버리기 좋으며 부포와 고사포는 분리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장전이 수십초가 걸리는 야마토의 주포로도 대공사격을 하였으므로 말도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일단은 삼식탄이 있고 고각으로 발사하여 대공수단으로 사용은 할 수 있으며 야마토 이외의 함선들의 대공능력을 보았을 때 일본치고는 155미리 부포의 대공능력은 충분히 눈여겨 볼 만하다.
그러나 이건 당시 일본의 대공화기 및 대공방어능력이 매우 저열했음을 인증하는 것에 불과하다. 애초부터 89식 12.7cm 40 구경장 함포같은 주력 대공포가 장거리 대공능력이 없다시피 해서 주포로 3식 통상탄을 발사해서 대공사격을 해야 하는 것 자체가 답이 없는 짓이다. 그리고 3년식 155mm 60구경장 함포는 연사속도가 분당 5 ~ 6발에 불과하고 3연장 포탑이라는 크고 무거운 구조 덕분에 포탑선회속도도 초당 5 ~ 6도에 불과하며 포신부앙속도도 초당 10도인데다가 자유장전도 아니고 장전각도가 7도라서 고각사격시 1발 쏘고 포구를 7도로 내려서 장전하고 다시 고각으로 올리는 시간소모가 심한 과정이 추가되므로 대수상용 함포라면 몰라도 대공용으로는 실용성이 0%에 가까운 답 없는 무기였다. 애초에 3년식 155mm 60구경장 함포가 그렇게 대공성능이 좋다면 야마토급 전함 개량시 선체 양쪽 측면에 달린 3연장 부포탑 2기를 제거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6인치 (152mm)급 함포를 양용포로 쓰려면 미국의 우스터급 경순양함에 달린 6인치 47구경장 Mark 16 양용포처럼 연사속도가 분당 12발은 되어야 하며 포탑선회속도도 초당 25도는 되어야 하고 포신부앙속도도 초당 14.8도는 되어야 하며 어떤 각도에서도 자유장전이 가능해야 하고 VT신관도 사용가능해야 하며 이 모든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미국도 작고 가벼운 2연장 포탑이 실제로 제작이 가능한 한계수준이었다. 그나마 이것도 6인치급 함포라 대공능력도 보유하면서 동시에 대수상전 성능도 깎아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감안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실제 대공화기로서 시원하게 사용하려면 5인치 38구경장 양용포처럼 연사속도도 분당 22발까지 늘어야 한다.
그리고 미국의 공습에 일본군 함대가 찜질을 당하는 상황에서 모든 화기를 대공사격에 사용해도 모자란 것이 현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접근하는 것을 거의 볼 일이 없는 미국 수상함부대에게 대응한다고 부포를 155mm 구경으로 유지하며 부포와 대공포를 분리한다는 것 자체가 일본 제국 해군의 경직된 사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것은 이미 입증된 지 오래다. 그리고 레이테 만 해전의 사마르 해전에서 3년식 155mm 60구경장 함포는 미국 구축함 격퇴에는 그렇게 자랑하는 성능광고를 감안할 경우 의외로 소용이 없었다. 차라리 공고급 순양전함의 1차대전형 영국제 빅커스(Vickers)식 14인치 (356mm) 45구경장 2연장 주포탑이 오히려 미국 구축함에 명중탄을 더 많이 날려주었다.
4. 형편없는 대공포좌 배치
대공포의 경우도 숫자에 비해 위력이 약하고 방어력이 없다시피 해서 상대방의 공격에 취약했다.물론 일본 제국 해군이 대공능력에 신경을 아예 쓰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야마토급 전함 건조 당시에는 127mm 대공포 12문, 25mm 고각기총 24문에 불과했지만 대공화기를 지속적으로 증설하면서 최종적으로 127mm 대공포 24문, 25mm 고각기총 162문으로 크게 늘었다. 단순히 포문 수만 비교하면 대공 성능이 뛰어난 미국의 전함들도 압도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포문 수만 늘었지 그에 따른 대공능력 향상이 적은 게 문제였다.
애초에 일본의 대공포가 발사 속도, 포탑 선회 능력, 포신 부양 능력, 명중률, 유효 사거리 등 모든 성능이 영국과 미국의 대공포보다 떨어진다.
- 89식 12.7cm 40 구경장 함포는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등장 당시에는 미국의 극초기형 5인치 38구경장 양용포와 성능이 비슷했고 양용포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었으나 별로 개량도 안하고 써먹는 바람에 태평양 전쟁 시점이 되면 퇴물에 가까운 성능으로 전락한다. 원래 담당해야 하는 장거리 방공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중거리 이하에서 대공사격을 하는데 그 또한 신통치 않다는 게 문제였다. 실전을 겪은 일본군 군함들이 해당 함포를 떼어내고 98식 10cm 65구경장 함포를 달아달라고 할 수준이니 말 다했다.
- 98식 10cm 65구경장 함포는 항목에 나온 것처럼 일본 제국 해군이 가진 대구경 대공포중 대공성능이 가장 높아서 슈퍼 야마토급 전함으로 불리는 A-150 전함에도 대량으로 채용되기로 한 대공포다. 하지만 포신 수명이 350 ~ 400발로 짧고 생산량이 적다는 문제점이 있으나 그걸 감안하더라도 육상용으로 배치된 대공포를 가져와서 충분히 장착할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기는 고사하고 심지어 마츠급 구축함에도 장착하며 전동 동력부를 10kw에서 15kw로 강화해서 포신 부앙속도와 포좌 회전속도를 모두 초당 16도로 올린 89식 12.7cm 40 구경장 함포의 후기형도 달지 않아서 결국 문제점 많은 89식 12.7cm 40 구경장 함포의 전기형만 사용한다는 똥고집을 부렸다.
- 96식 25mm 고각기총은 항목에 언급한 바와 같이 40mm급 기관포가 담당하는 중거리 방공과 20mm급 기관포가 담당하는 근거리 방공을 모두 수행하는 바람에 양자를 모두 수행하기에는 어중간한 위력과 사정거리로 인해 이도 저도 아닌 결과만 가져왔으며 그 외에도 반응속도가 느리고 진동이 심한 포가와 부실한 조준장치, 15발이 장착되는 용량 적고 잘 부서지는 탄창등 여러가지 문제점을 가득 가진 물건이었다. 특히 사격시 진동이 심해서 명중률이 떨어졌다.
기본적으로 상당수의 대공화기들이 노천배치식이며 포방패도 없어서 적 전투기가 기총 소사만 해도 대공포가 파괴되고 포 조작원이 다수 죽거나 다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일본 제국 해군의 삽질인 레이더 개량미비과 대공 무장 보강열악 및 함대 대공방어 전술의 답없음까지 합치면 이미 헬이다.
실제 야마토의 사진을 보면 바깥으로 노출된 대공포좌 말고 조그만 3연장 포탑처럼 생긴 대공포좌도 보이는데 포신의 상하각을 조절하기 위한 구멍을 제외하면 전부 다 막혀있는 것을 보면 대공포좌에 악천후 및 파편방어를 위한 포방패를 달아놓은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들의 숫자가 상당히 부족하다는 것이 보이는데 기본적으로 일본군 기준에서 제대로 된 사격통제장치와 방어도구를 갖춘 대공화기는 건조 당시에 장착된 것 + 여유가 있을 때 정성스럽게 추가한 것으로 숫자가 그렇게 많지 않다. 기본적으로 밀폐형 포탑이어야 할 대구경 대공포도 원래부터 장착된 12.7㎝ 포좌들은 대개 밀폐형 포탑방식이었으나, 나중에 대공화력의 증강을 위해 대규모로 증설된 12.7㎝ 포좌들은 노천개방된 상태였다.
여기에 더해서 건조 당시 설치된 대공포좌에는 선체 내부에 통로가 연결되므로 탄약과 부품, 인원보급과 보충을 적의 방해를 받지 않고 수행이 가능했지만, 나중에 설치된 대공포좌는 전함의 장갑이 너무 두꺼움 등의 이유로 그런 방식의 연결통로를 만들 수 없었기에 일단 포좌에 배치된 탄약을 다 써버리면 아무런 엄폐물 없이 인력에 의존해서 포탄을 공급받아야 했다. 당연하게도 적함의 주포탄 포격과 적기의 기총 소사가 난무하는 전장 한가운데에서 그런 섬세한 작업은 불가능했으므로 전투가 어느 정도 지속되면 탄약 부족과 인명 손실로 인해 상당수의 대공포좌가 멈춰버리므로 대공 화력이 더 격감된다.
종합하자면 대공화기의 대규모 증설 때 아무런 생각이 없이 대공화기만 미친듯이 아무렇게나 때려박았다는게 딱 보이는 결과였다. 실제로 대공용으로는 별로 쓸모가 없는 13.2㎜ 2연장 기관총좌 2기가 야마토급 전함을 건조할 때부터 침몰할 때까지 계속 장비된 채 있기도 했고 야마토에는 장착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96식 25mm 고각기총의 2연장 기관포좌가 침몰된 잔해 수색시 발견되기도 한 것을 보면 대공화기 증설이 얼마나 답없게 이루어졌는지 바로 수 있다.
이렇게 되니 실전에서 공습을 당할 때마다 피박을 쓰게 된다. 레이테 만 해전의 시부얀 해전 당시 공습에 의해 격침된 2번 함 무사시의 함장 이노구치 도시하라 소장이 남긴 수첩에도 대공포의 위력이 부족하다는 내용이 남아 있었다. 대공포탄에 명중한 적기가 여럿 있음에도 좀처럼 격추되는 것은 없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당연한 게, 시부얀 해전 당시 미 해군의 함재전투기는 F6F 헬캣들이다. 그 이전의 미 해군의 주력 함재전투기인 F4F 와일드캣에도 격추 스코어가 저조한데 훨씬 강해진 신작에 먹힐 리가 없다.
일본이 이러는 동안 미국은 5인치 38구경장 양용포에 의한 장거리 방공, 보포스 40mm 포에 의한 중거리 방공, 오리콘 20mm 기관포에 의한 근거리 방공으로 체계적인 방공담당구역을 만들었고 해당 대공포들을 레이더와 사격통제장치에 의한 자동식 집중운용으로 대공화망을 제대로 구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쟁이 진행될수록 5인치 양용포에는 VT신관을 사용해서 대공화력 효율을 더 높였으며 적기가 초근접한 상황에서도 오리콘 20mm 기관포에 60발짜리 드럼 탄창을 사용해서 기관포수 이외에는 별다른 운용 인원이 없어도 빠르고 민첩하게 대응하면서 기관포탄을 난사해서 예측불허의 사태에도 최대한 대비하려고 노력했다.
대공화기 자체의 방어력 측면에서도 미국은 노천배치식이라고 해도 기본적인 포방패등의 방호수단을 가진 경우가 매우 많다.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대공용 양용포탑은 모두 악천후와 파편을 방어하기 위해서 밀폐된 포탑이었다. 보포스 40mm 대공포좌의 경우 순양함급 이상의 대형 함정에는 포방패가 달려있었고 오리콘 20mm 대공포좌의 경우는 함종 구분 없이 거의 다 포방패가 있었다. 여기에 대공화기 자체의 성능도 좋고 레이더와 사격통제장치를 갖추어서 대공화기를 통합해서 질서 있게 운용하므로 가뜩이나 장갑도 얇고 기체의 구조방어도 미약한 일본군 전투기가 동일한 짓을 하려고 하다가는 먼저 항공모함 함재기들에게 도륙당하며 어떻게든 함재기들을 뚫고 함선의 방공망에 접근해도 일본기의 장갑으로는 대공포에 격추당하는 데다 미군의 함재방어 대구경 대공포는 기본적인 장갑도 든든하게 구비됐기에 기총 소사를 긁어대도 효과가 매우 덜하다.
그리고 미 해군은 대공화기와 방공망 확충에도 신경을 썼다. 지금 기준으로는 초보적이라도 레이더와 사격통제장치의 도움을 받아 전기식 마운트에 연동된 다연장 대공포좌를 대소 함정에 달아 썼고 대전 후반으로 가면서 오버홀에 들어가 함정마다 개량해서 기술과 전술 모두 발전했다. 수량적인 면에서도 전반적으로 미해군의 중소구경 대공 화기 성능이 일본해군의 그것을 압도한 데다 함정당 달아준 수로도 압도적이었다. 대전 말기로 가면 미해군 구축함은 멀쩡한 주포 마운트와 어뢰 마운트를 대공포좌로 개조했고, 구축함부터 전함까지 5"/38구경장 양용포가 기본이 되었다.
주포 발사용 3식 통상탄도 문제가 있었다. 12.7cm 구경급의 대구경 대공포가 장거리 사격이 실제로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인식한 일본의 고육지책이었으나 일단 포탄 자체의 대공능력도 대공용으로는 별로 안좋은 상황에서 포탄을 발사할 때마다 포구에서 강력한 후폭풍을 발생시키는 전함의 대구경 주포로 쏘게 되니 문제가 더 커졌다.
특히 야마토급 전함에서 이 문제가 심각했다. 전함에 장착된 것으로는 가장 구경이 큰 18.1인치 주포 발사시의 포구에서 폭발풍 압력은 1평방미터 근처 약 8톤 정도로 노출 상태의 인간이나 계측장비는 파괴될 가능성이 높았으며 당시 일본도 위험성을 인식했다. 얼마나 심각한가 하면 전함이 보유하는 수상기가 개박살나고 갑판 위에서는 인간이 안전한 곳이 없을 지경이었다. 실제로 실험을 위해 무사시에 기니피그를 넣은 바구니를 갑판등에 여러 개 배치한 후 주포 사격을 실시한 결과 절반의 바구니가 그냥 후폭풍에 날아가면서 완전히 파괴되었고 남은 바구니 안의 기니피그도 말 그대로 압사당해서 피떡이 되는 등의 사태가 났으며 무사한 바구니는 거의 없었다는 참사가 발생할 정도였다. 우리를 설치해서 개와 원숭이를 배치해서 한 실험에서도 동물들이 모조리 전멸하였다. 이래서 야마토급 전함은 일본 군함중 함재정과 함재기의 격납고를 함내에 설치해서 주포 후폭풍 대책을 한 유일한 사례가 된다.[4]
그래서 주포 사격 시 후폭풍으로 인해 비장갑 대공포좌는 사람이 있으면 매우 위험해지므로 발사 전에 대피신호가 울리게 된다. 대피신호는 주포 사격 지휘소에서 부저(Buzzer)를 눌러서 시행하는데 2회로 구성된다. 첫번째로 부저가 울리면 갑판에 나온 승조원들은 함내로 들어가며 대공포좌에 배치된 인원은 함내로 들어가면서 동시에 충격에 취약한 기관포의 조준기를 분해해서 가지고 들어간다. 두번째로 부저가 길게 울리다가 멈추면 주포가 발포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적 항공기를 발견하자마자 빠르게 대응하지 않으면 안그래도 포탑선회, 포신부앙, 장전절차, 조준방식등 여러가지 면에서 항공기에 대응하기에는 느린 주포는 대공사격 자체를 실시할 수도 없게 된다. 여기에 더해서 함내로 들어간 인원들이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야 하고 분해한 조준기를 다시 기관포에 붙여야 하며 주포 발사후의 연기 때문에 시야까지 가려져서 오히려 적 항공기가 이 틈을 노리고 공습해오면 대응도 제대로 못하고 당하는 경우까지 예상할 정도였다.
따라서 실제 상황에서는 위의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생겨서 대공포 인원들이 갑자기 영문도 모르고 주포의 후폭풍을 맞게 된다. 덕분에 무사시가 시부얀 해전 당시 공습을 받을 때 이런 문제가 현실화되었다. 덕분에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그나마 부상자의 경우에는 이전에 했던 훈련에서 주포 후폭풍에 노출될 승조원에게 미리 귀에 면덩어리를 붙이고 그 위에 귀마개를 하며 그 위에 조종사 헬멧을 뒤집어쓰고 잘 묶은 뒤에 철모를 쓰고 방어해본 경험을 살렸기 때문으로 본다. 덤으로 워낙 강한 후폭풍 덕분에 주포의 조준장치와 대공기관포의 조준장치에도 손상이 오는 등 사태가 심각해졌다. 야마토에서도 이 문제로 인해 부상자가 나올 지경이었다.
이런 문제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는 전함의 주포탄을 이용해서 대공 사격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독일은 일본의 3식탄과 유사한 대공 유산탄을 사용했다. 그러나 결과는 3식탄과 마찬가지로 효과적이지 못했다고 한다. 그나마 실용적으로 생각해본 사례가 미국이지만 주포로 대공 사격을 한다는 구상 자체는 나왔고 VT신관을 이용하려 했다, 물론 주포로 대공 사격을 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판단되어 검토 단계에서 취소되었다. 다만 주포 발사시 후폭풍이 약한 중순양함용으로는 주포를 이용해 사격할 수 있는 대공 포탄이 실제 개발되기는 했는데 이 역시 실전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물론 광학장비와 조준장비의 내구성도 좋아서 주포 사격으로 인한 후폭풍등으로 망가지는 일은 적은 데다가 수리 및 보충도 쉬웠다.
5. 장갑의 이면
1야마토급을 비롯한 일본 함선들에 주로 사용된 MNC와 NVNC 강재는 미국 함선들에 주로 사용된 B class장갑에 비해 97%, 95% 강도를 지녔다. 또한 측면장갑에 사용된 VH강은 고작 84% 수준의 강도를 보인다. 2 이렇게 된 이유는 균질압연장갑이 아니라 표면경화장갑이며 고품질의 장갑재 제조에 필수인 니켈 공급 부족 문제로 인하여 구리를 일정량 첨가하는 방법으로 부족한 니켈 성분을 대체하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야마토의 장갑은 카탈로그상으로는 16인치 같은 작은 구경의 주포를 가진 전함의 포격에 면역 수준이어야 하지만 품질 문제로 인해 의외로 유효한 타격을 받게 된다.가령 아이오와급 전함과의 1대 1 및 서로 무조건 상대방을 격침해야 끝나며 해역이탈이 불가능하고 시간제한까지 걸려서 접근전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대결을 가정하면, 야마토의 410mm 현측장갑은 아이오와급의 16 Inch Mk.7을 상대할 때 약 22km - 32km의 안전지대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참조문서에 들어간 후 아래로 내리면 관통력 테이블을 살필 수 있다. 통상 교전거리에서 현측 관통을 기준으로 할 경우 아이오와는 야마토의 현측을 대략 23,000m 이하부터 관통할 수 있고 야마토는 대략 25,000m 이하부터 아이오와의 현측을 관통할 수 있다. 갑판 관통을 기준으로 한다면 아이오와는 야마토의 갑판을 대략 32,000m 이상부터 관통할 수 있으며 야마토는 아이오와의 갑판을 대략 31,000m 이상부터 관통할 수 있다.
그래서 스펙상으로는 야마토급 전함이 유리하다. 사실 주포 구경이 2.1인치나 차이나고 기준배수량이 19,000톤이나 작은 전함에게 스펙상으로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
- 실전에서의 전함 포격전이 보통 20km 내외라는 점
- 이 거리에서는 야마토의 광학식 조준장치 및 사격통제장치도 정확한 사격이 가능하다.
- 측면 관통력이 카탈로그 스펙과 실전이 동일하진 않다는 점
- 티타임으로 이해하면 쉽다. 게임처럼 의도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 15도 이상의 낙각을 대낙각이라고 하고 이쯤부터 갑판 타격 확률이 현측 타격 확률보다 높다. 20키로는 대략 17도 정도. 따라서 현측엔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있는 거리에서 명중탄을 기록하더라도 갑판에 착탄할 가능성이 높다.
- 야마토의 포탄이 구경이 차이가 나는 만큼 충전량이 더 많고 탄자 중량이 더 무겁다는 점
- 야먀토의 91식, 1식 철갑탄 작약 33.85kg. 포탄중량 1.4톤
- 아이오와의 Mark 8 철갑탄 작약 18.55kg. 포탄중량 1.2톤
그러나 더 가까이까지 접근을 허용한다면 아이오와급 전함의 능력으로 인해 동귀어진이 될 수 있다. 다만 체급 차로 인해 야마토급 전함이 더 버틸 가능성이 높다.
- 우수한 포격 능력
- 후술할 레이더, 사격통제장치, 포신안정화 장치등의 능력으로 좀 더 우수한 포격이 가능함.
- 약간 빠른 연사 속도
- 실전에선 명중률이나 기동, 착탄까지의 소요 시간 등의 문제로 분당 연사 속도 그대로 사격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론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고 실제로도 푼타스틸로 해전에서 HMS 워스파이트가 24km에서 명중탄을 기록할 때까지의 7분 동안 13회의 salvo를 기록한 사례도 있다.-32초당 1회 사격, 교전 거리 27~24km까지 영 15inch 체공시간 51초~40초대 초중반.
결론적으론 야마토가 단순 공방능력은 우세하긴 하나 각종 변수가 발생하는 실전에 있어서는 비슷하다 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어뢰 명중을 예상하고 달아놓은 벌지의 문제가 컸다. 1943년 12월 25일 요코스카에서 트럭으로 병력과 장비를 수송하던 야마토를 포함한 수송함대는 트럭섬 서방 290㎞ 거리에 있던 미국 잠수함 스케이트(USS Skate)에게 발각되었다. 스케이트는 야마토를 목표로 어뢰 4발을 발사, 이 중 한 발이 3번 주포탑 우현에 명중하여 구멍이 뚫리고 침수가 시작되었다. 일단 피격 지점은 벌지(bulge)뿐이라 정상 경우에는 벌지만 손상되고 끝이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어뢰의 충격으로 현측장갑의 하단부가 안쪽으로 밀려들어가고 상부장갑 브라켓이 무너지면서 안쪽으로 구멍을 내는 송곳으로 작용해서 구멍은 더욱 커져 총 3,000톤의 물이 쏟아져 들어갔다. 게다가 브라켓이 송곳으로 변하면서 탄편 방어용 세로벽이 찢어져서 3번 주포탑의 상부 탄약고와 기계실에 침수가 일어났지만 탄약 폭발은 없었고 야마토는 우측으로 기울어진 상태로 트룩으로 향했다.[5]
여기서 벌어진 상황을 감안하면 해당 부위에 포탄이라도 맞는 즉시 침수가 시작된다는 이론이 성립돼버린다. 당연하게도 구레항에서 배를 수리하는 동안 5천 톤 이상의 대어뢰 장갑(수밀격벽)을 붙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더 이상 무게 증가가 어렵고, 저러면 당연히 반년 넘는 추가적인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판단, 기각되었다. 한편 이 부분의 경우, 일본군 수뇌부에서 일부러 이 같은 문제를 의식하지 않은 면도 있다. 야마토급 전함의 건조에 참여했던 마키노 시게루 주인의 기록에 따르면, 이러한 치명적인 문제점을 상부에서는 누수 대책을 세우면 되며, 근본적인 설계 변경은 필요없다며 넘겨버렸다고 한다.
일단 야마토는 손상 부위를 수리하며 구조 보강을 했으나 무사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언급이 없고 피팅할 때 그럴 시간도 없었으니 보강이 전혀 되지 않았을 것으로 사료된다. 이래서야 야마토가 만약에 미국 잠수함들과 한 번 더 마주쳤다면 극적이고 장렬한 대공 전투고 뭐고 없이 포 한 발 못 쏴보고, 후술할 시나노의 허망한 최후를 그대로 따라갔을지도 몰랐을 일이다.
동형함이었지만 항공모함으로 개장된 시나노의 사례에서 설계 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 전후 일본에 대한 미국의 해군 기술 임무 분석가들은 시나노는 설계 단계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무엇보다도 선체의 대포탄용 장갑과 수선 아래의 대어뢰 방뢰구역(bulge) 사이의 연결 설계가 문제였다. 잠수함의 어뢰는 모두 이 연결부위를 따라서 폭발하였다. 게다가 어뢰의 폭발력은 기관실 중 하나의 H형 들보를 밀어냈는데, 밀려난 들보는 두 기관실 사이의 구멍을 내는 초대형 망치가 되어버렸다. 방수격벽 문제도 침몰하는데 큰 원인이 되었는데,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침수가 너무 급격히 진행되었기 때문에 도무지 대응할 수 없었다고 한다.
수선하장갑과 벌지의 부적절한 리벳 접합 본 링크를 들어가보면 수선하장갑과 벌지를 충격시 지탱해주는 리벳이 실질적으로 겨우 2 ~ 3개임을 바로 알 수 있다. 물론 2차대전 당시 리벳 접합을 사용한 전함이 대부분이므로( 아이오와급이나 KGV도 리벳 접합을 사용했다) 리벳 접합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 없지만 리벳 접합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부분은 방어면의 약점으로 남게 되었다.
6. 느린 속도와 짧은 항속거리
애초에 일본 해군이 요청한 수치는 항공모함과 함께 발을 맞출 수 있는 30노트였다. 이를 위해 최신 디젤 엔진을 탑재할 예정이었으나, 실험장착했던 류호가 시도 때도 없이 트러블을 일으키는 통에 디젤 엔진 계획을 취소한다. 엔진이 트러블을 일으키는 것까지는 어떻게 넘어간다쳐도, 집중방어구획 설계로 제작된 야마토의 경우 트러블을 일으킨 기관을 들어내고 정비하는 것이 어렵다는 정비성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강력한 증기 터빈을 추가로 장착하는 안이 있었지만, 디젤 엔진을 비슷한 규모인 증기 터빈으로 변경한 것만으로도 이미 3,000톤의 배수량 상승이 일어났는데 여기에 추가까지 할 경우 배수량이 10,000톤 가까이 늘어난다는 결론이 나왔고, 당시 함정본부는 천문학적인 건조비의 절약을 위해 기관을 늘리는 선택지를 포기한다.
그 외에도 함의 길이를 늘리는 설계 변경을 통해 30노트는 가능했으나, 이것 역시 집중방어구획이 넓어져 추가 예산이 소모된다는 이유로 각하되었다.
여기에 더해서 일본 대형군함용 엔진인 함본식 로(ロ)호 중유 보일러(艦本式ロ号重油専焼罐)와 함본식 스팀터빈(艦本式高中低圧蒸気タービン)은 유럽이나 미국의 1920년대 기술을 답습해서 모방한 수준이었다. 물론 신뢰성이나 작동 성능은 다른 일본의 엔진보다 매우 우수하였지만, 아이오와급의 신형 대형 고출력 스텀 터빈 및 보일러가 섭씨 468도에서 증기압력 42kgf/㎠를 내는 것을 생각한다면 모든 면에서 뒤떨어진다. 그리고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이나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같은 다른 미국 신형 전함에 견줘도 이들이 쓰던 보일러는 섭씨 454도에서 증기압력 39.7kgf/㎠ 이므로 엔진 성능면에서 열세였다. 그래서 최신 기술을 이용할 수 없으므로 안 그래도 떨어지는 출력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미국의 보일러 성능이 다른 나라에 견줘도 좋은 편이기는 한데 야마토와 같은 15만 마력을 채용한 프랑스의 리슐리외급 전함에 탑재된 보일러는 6기, 그것도 일본해군 구축함용 보일러의 온도 및 압력과 동일한 물건인 섭씨 350도에서 증기압력 30kgf/㎠ 이었다. 그리고 영국의 킹 조지 5세급 전함의 보일러도 섭씨 371도에 증기압력이 28bar(28.6kgf/㎠쯤 된다)으로 야마토급 전함의 보일러가 12기를 사용하면서 섭씨 300도에서 증기압력 20kgf/㎠ 라는 점과 비교하면 일본이 안 까일래야 안 까일 수 없다. 이는 일본내 팬덤에서도 야마토급 전함을 까는 데 빠짐없이 등장하는데, 출력에 비해서 기관부 중량이 과대하게 많다는 것이 주요 비판점이다.
그래도 야마토의 속도인 27노트는 건조 당시에는 괜찮은 속도이기는 했다. 하지만 취역하고 나니 주적인 미국의 구식 표준형 전함은 아예 상륙작전용 및 비상대응용으로 전환해버리고 미국의 신형 전함은 모두 똑같이 27노트의 속도를 내며, 영국의 전함도 신형 전함이 28노트를 내므로 따라잡기도 벅찼다. 특히 아이오와급 전함은 전쟁 후반부에 나오긴 했으나 30노트가 가능하며 과부하를 걸면 33 ~ 35노트까지 가능했다. 게다가 야마토의 과부하 지속능력부터 아이오와급보다 크게 떨어지므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오히려 거리의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진다. 덤으로 구상함수에 장착한 음파탐지기 덕분에 함수의 형상이 약간 변경되면서 0.3노트가 추가로 더 느려졌다.
게다가 사실 이렇게 상대방 전함의 속도를 굳이 따질 필요도 없는 것이, 일본군의 중순양함과 같이 다니면서 화력 지원을 해주거나, 조금 멀리 떨어진 지역에 파견 보냈다가 적의 항공권 밖으로 탈출할 능력이 크게 부족하다는 결론이 이미 일본 내부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과달카날 전투에서는 과달카날 해전 1차전에서 공고급 순양전함인 히에이(순양전함)이 중순양함의 근접사격에 당해버리고, 과달카날 해전 2차전에서 기리시마가 급수로는 상대가 안될 정도로 막강한 16인치 주포 탑재 신형 전함인 워싱턴에게 신나게 두들겨맞는 참사가 발생했음에도 야마토를 전장에 파견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핑계없는 무덤은 없다고 일본 해군의 상징을 그런 사소한 임무에 투입할 수 없고 연료가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가 붙지만, 객관적으로 본다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과달카날 해전에서 미군은 최신형 전함을 포함한 모든 전력을 동원해서 공격해왔다. 이런 전투가 바로 함대결전이며 여기에 이용되기 위한 전함이 야마토인 것이다.
항공모함이 태평양 전쟁의 핵심적인 전력으로 부상하면서 야마토의 느려터진 속도는 더욱 부각되었다. 야마토가 30노트를 낼 수 있으면 항공모함을 동반해서 작전할 수 있으므로 야마토가 적의 항공권 밖으로 탈출할 필요도 없다. 항공모함의 함재기들이 적의 비행기들을 제거한 후, 야마토가 18.1인치짜리 주포로 적의 군함이나 비행장을 때려부수면 되는 것이다. 그걸 못한 것은 야마토가 너무 느려터져서 항공모함을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속도가 느린 것도 문제가 큰데, 항속거리를 일부러 축소시키는 실책을 추가로 저질렀다. 원래 자력 이동이 가능한 모든 종류 장비는 항속거리가 길수록 좋다. 길면 공격과 방어시 도움이 되는데다가 도주나 후퇴, 우회 시 경로를 여러가지로 잡을 수 있으며, 보급기지를 덜 만들어도 되기 때문에 다방면으로 유용하다. 일본군도 그걸 인식하지 않은 건 아니라서 방탄설비의 필요성이나 해당 함재기에 탑승할 조종사의 불편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고 억지로 제로센의 항속거리를 크게 늘리고 나름대로 잘 써먹었다. 더 웃긴 건 같은 전함인 나가토급은 개장하면서 속력은 줄었지만 항속거리는 잡아늘렸다는 것.
하지만 야마토급 전함은 오히려 줄여버린 것이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초도함인 야마토가 시험 항해 시 측정된 데이터로는 10,000 해리 이상의 항속거리가 나오는 것으로 판정이 나왔다. 그래서 군령부는 "기름이 너무 많이 먹힌다!"면서 설계진들의 반발을 깔아뭉개고 3번 함 이후인 야마토급은 함내 연료 용량을 삭감해서 7,200해리가 나오도록 조치했다. 그 바람에 설계 변경을 하면서 연료 보유량만 줄인 것이 아니라 장갑판의 두께까지 줄여 버렸다! 현측 주장갑은 400mm, 갑판 장갑은 190mm로 삭감한 것등을 반영하기 위해 3, 4번 함은 기공만 하고 공사가 중단된 기간이 3개월 이상 나왔다고 한다.
만약 중단 없이 건조가 진행되었을 경우 야마토 건조 경험이 피드백되면서 작업이 효율화 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시나노는 진주만 공격 직후에 진수 직후 단계까지 공정이 진행되었을 것이고, 111호 함은 45%까지 공정이 진척되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설계 변경을 하지 않았다면 야마토급 3, 4번 함은 전함으로 완공되거나 아니면 항모로 전환되든 간에 전쟁 중 완성될 가능성이 컸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억지로 일본군이 연료탱크를 줄인 이야기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기름 소모량이 그렇게까지 눈에 걸린다면 큰 연료탱크에 기름을 적게 넣는 식으로 간단히 해결 가능했을 것이다. 굳이 설계 변경과 건조시간 증가까지 불러오면서 억지로 줄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군함의 항속거리는 상정되는 전장의 요구에 따라 결정되고 그러한 요구 이상인 과대한 항속거리는 불필요한 용적 낭비에 불과한 것은 맞으며, 이를 보여주는 적절한 예시로 리토리오급 전함을 예로 들 수 있다. 간단하게 비교할 예를 들어보자면 이탈리아 해군 솔다티급 구축함과 일본 해군 아키즈키급 구축함의 항속거리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솔다티급은 항속거리가 2,200해리에 불과하지만 아키즈키급은 항속거리가 8,000해리에 달한다. 지중해에서 활동하는 이탈리아 해군은 자국 구축함을 딱 지중해에서 작전을 펼치고 돌아올 수 있을 만큼의 항속거리를 가지도록 설계했지만 태평양에서 원활하게 활동하기 위해서는 구축함도 원양 항해 능력이 뛰어나야 하기 때문에 일본 해군은 자국 구축함의 항속거리를 상당히 길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좁은 지중해를 활동 무대로 삼는 이탈리아 해군과 달리 드넓은 태평양에서 활동하는 일본 해군은 항속거리를 늘릴 가치가 충분했다. 사실 일본 해군의 항속거리도 일본 부근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는 것을 가정한 점감요격작전에 대응하기 위해 설정된 것이라 태평양에서 자유롭게 활동하기에는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가령 10,000해리인 항속거리로는 구레시 군항에서 미국 해군 기지인 진주만이 있는 하와이 오하우 섬까지 보급 없이 왕복이 가능하지만 7,200해리로는 보급 없이는 왕복이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목표 성능을 충분히 달성한 이상, 굳이 용적 낭비를 줄이겠다고 항속거리가 길 때의 이점을 포기하면서까지 항속거리를 줄일 필요는 없다.
게다가 유사시 연료탱크가 적은 구축함의 연료가 부족할 때, 미국 해군이나 바로 일본군 스스로가 했던 것처럼 아직 여유가 있는 전함의 연료탱크에서 연료를 빼내서 구축함에게 보급하면 호위세력을 유지하면서 보급기지까지 함께 돌아갈 수 있는데, 야마토는 이런 행위가 불가능하니 해당 사태가 발생하면 호위세력을 내버리고 홀로 항해할 수밖에 없으며, 이렇게 되면 함재기나 잠수함 등의 공격에 매우 취약해진다. 이에 더해서 태평양 전쟁이 진행되면서 일본 해군의 연료 사정이 안 좋아지자, 출동하는 순양함이나 구축함의 연료를 항구에 있는 야마토 같은 전함에게서 뽑아내서 보충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말 그대로 항행능력을 일시적으로 상실하고 항구에 묶여있던 기간도 있었다.
7. 매우 안좋은 조타성능
군함의 기본적인 조타 성능은 아래의 3가지 요소가 주요 항목이다. 그 외에는 항구에서 입출항시 편리함을 나타내는 저속에서의 조타 성능이나 정지 성능 등의 요소를 더하여 함선의 운동 성능을 평가한다.-
추종성
조타를 시행했을 때 얼마나 배가 빠르게 반응하는 능력. 이 능력이 낮으면 배를 조타해도 반응속도가 너무 느려서 조타하기가 참 난감해짐.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핸들을 돌렸을 때 바로 반응이 나오는 정도라고 보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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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회성
배를 정상적으로 선회시켰을 때 빠르게 선회하고 될 수록 작은 원을 그리는 능력. 이 능력이 안좋으면 항구같은 좁은 곳에서 암초같은 장애물을 잘 피하지 못하고 방향 전환시 넓은 해역이 필요함.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핸들을 꺾어서 차를 원형으로 움직이도록 할 때 얼마나 작은 원을 그리는가 하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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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로 안정성
조타를 잠시동안 시행하지 않아도 직진항해를 정상적으로 하는 능력. 이 능력이 안좋으면 수시로 조타를 미세하게 조정해주어야 하므로 매우 힘들어짐.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핸들을 놓았을 때 얼마나 똑바로 전진하는가에 대한 것임.
야마토급 전함은 큰 배수량에 대해 상대적으로 짧은 전장, 넓은 선폭이라는 통통한 배다. 선체의 특성상 선회성은 매우 좋았으나 그게 끝이고 방향타에 대한 연구가 충분하지 않아서 추종성은 최악인데다가 선체 특성상 침로 안정성도 별로 좋지 않다.
야마토급 전함의 선회 직경은 26노트로 가로 640m, 세로 589m이다. 나가토급 전함은 가로 530m, 세로 631m이며 공고급 순양전함은 가로 826m, 세로 871m라는 점을 생각해보고 선체의 크기까지 감안한다면 매우 훌륭한 선회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선회시의 선체의 기울기도 야마토급 전함이 9도인데 반해 나가토급 전함은 10.5도이며 공고급 순양전함은 11.5도라 야마토급 전함의 안정성도 우수했다.
하지만 다른 분야가 매우 안좋아서 본질적으로 조타성능이 매우 안좋은 군함이 야마토급 전함이었다.
추종성의 경우를 살펴보자. 야마토급 전함은 전타 후 함수가 실제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일반적으로 무려 90초가 걸렸고 그나마도 이건 양호한 것이 무사시의 항해장인 이케다 사다에는 100초라고 증언하고 있다. 핸들 꺾었는데 100초뒤에 반응이 나오는 똥차만도 못한 추종성을 가진게 야마토급 전함이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1943년에 야마토 항해과 소위였던 사토 키요오는 야마토를 조타해본 후에 소감을 밝혔는데 선체가 거대한 고무대야인 것 같다고 할 지경이었다. 구체적으로는 함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데다가 일단 한번 제멋대로 돌아가기 시작하면 원래의 항해 침로로 되돌릴 수 없을 지경이라고 말한다. 설상가상으로 함수를 돌리면 속력까지 급격히 떨어진다. 덕분에 최대한 좋은 면만 기록하는 공식기록에서도 12노트로 전타를 명령해도 함수가 움직이기 시작하기까지 약 40초가 필요하고, 급강하폭격기나 잠수함이 쏜 어뢰의 회피에는 1분 전부터 전타할 필요가 있다고 적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고 언급한다.
야마토급 전함의 함체 형상은 간단하게 바꿀 수 없기에 방향타의 성능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방향타 자체에 대한 연구가 미진했던 것에 의해 방향타의 면적은 배수량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아서 답이 없었다. 그래서 야마토급 전함의 건조에 종사한 마키노 시게루는 방향타 면적의 증대를 실시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 수준이었다.
침로 안정성에 대해서는 안좋다는 것 외에는 구체적인 상황은 불명확하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문제점에 더해서 주타와 부타를 모두 설치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타를 다 써야 조함이 가능했으며 부타만 쓴다면 함 자체의 선회는 가능하지만 직진상태로 되돌릴 수 없어서 조함이 불가능해지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보면 침로 안정성도 답 없다는 게 딱 느껴진다.
결국 속도도 불만족스러운 전함이 조타까지 안좋아서 실제 전투가 벌어지면 급속선회나 회피기동 같은 것을 할 때 문제가 크게 발생하게 된다. 그나마 선회성이 좋다는 것이 유일한 장점이긴 한데 이것도 상대방이라고 볼 수 있는 아이오와급 전함이 긴 선체와 전장 대비 폭이 좁아서 선회성이 본질적으로는 매우 안좋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30노트에서 744.32m라는 기록을 달성하면서 미국 구축함보다 좋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큰 차이가 안난다.
8. 형편없는 레이더
야마토의 22호 수상 레이더 | SG 레이더의 모습 |
22호 수상 레이더의 화면 | SG레이더의 PPI 화면 |
마크13 FC레이더 | FC레이더 B스코프 화면 그림 |
레이더를 달았다고는 하지만 미국의 SG 레이더처럼 대략 광점의 크기와 움직임을 연속으로 PPI, A스코프에 표시해줘서 각도, 방위, 거리와 함선이 대형인지 소형인지 비교적 쉽게 알 수 있거나 성능이 개선되고 B스코프가 도입된 Mk.8, MK.13 FC 레이더처럼 포탄이 바다에 낙하해서 떨어지는 물기둥 탐지가 이전보다 수월해진 물건하고 성능 차이가 났다.
이렇게 되니 미국이 수색레이더인 SG 레이더로 PPI 화면을 통해 지속적으로 적의 대략적 위치와 방향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면서 A스코프를 통해 적 군함의 구체적인 각도, 방위, 거리, 크기등을 감시하는 것을 놓치지 않다가 정밀한 조준가능거리에 오면 사격통제장치를 담당하는 Mk.8, MK.13 FC 레이더같은 추적레이더에게 정보를 넘기면 추적레이더 쪽에서는 B스코프를 통해 정밀한 레이더 사격관제를 하는 분업이 가능하며 서로 협업을 통해 빠르게 목표를 찾아내고 추적해서 레이더 관제사격으로 박살낼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일본은 SG 레이더보다 한참 성능이 떨어지는 22호 전탐으로 수색과 추적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레이더 전파의 방향을 다이얼로 계속 수동으로 돌려가면서 위에 나오는 A스코프, 그것도 흐릿한 화면으로 목표를 추적해야 한다. 물론 목표를 조준사격하는데 필요한 각종 제원도 매우 느리고 부정확하게 나온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다이얼을 잘못 돌리는 순간 목표 추적을 상실하고 다시 찾는데만도 시간이 엄청 걸리게 된다.
이렇게 된 이유는 관료주의 문제와 구세대 사상[6]으로 인해 이미 알고 있는 기술이 있으면서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군도 레이더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달아 개발에 착수했으나, 실전 배치된 것들은 연합군 레이더보다 성능 열세에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로 인해 실전에서 협차 가능한 사거리는 야간전에서 그 차이가 난다. 22호 전탐은 이론상 15km 정도 거리의 부포 물기둥을 탐지가 가능하기는 하나 방위각 오차가 상당하다. 대략 3도 정도인데 독일의 1936년작 초기형 seetakt 레이더와 거의 비슷한 성능이며 중거리의 range finding만 가능할 정도의 성능이라고 보면 된다. 미국의 화기관제 레이더처럼 탄착 확인이 가능하려면 2 mils 정도의 정확도가 필요하다. 각도 1도가 17.453 mils 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정확도의 차이가 한번에 느껴질 것이다. 따라서 야간전에서 사용하는 것은 무리이다.
야마토급 전함에는 레이더 외에도 패시브 소나가 구상선수 부분에 장착되어 있어 이 소나를 이용해 30km 거리에서 주포탄이 착탄할 때 생기는 음파를 탐지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음파탐지기 특성상 매우 느린 속도로 항해해야 그나마 쓸만한 성능을 발휘하니 실제 전투시에는 무쓸모에 가깝다. 실제로도 함내에서 발생하는 소음, 특히 주포탑 회전시의 수압기에서 나오는 소음이 음파탐지에 큰 방해가 될 수준이었다니 답이 없다. 결국 목측으로 탄착 확인을 해야 하는데 될 리가 있나. 숙련 견시원이 10km 밖의 '함정'을 겨우 발견하는 수준이다. 조명탄에 탐조등 다 써도 야간에는 광량이 부족해서 광학조준장치가 작동불가하므로 실질적인 사격가능 사거리가 10km가 될까말까했다.
반면 진주만 공습 이후 수리되면서 레이더 및 사통장치를 최신형 전함 수준으로 개장한 콜로라도급 전함인 웨스트버지니아(전함)은 수리가오 해협 해전에서 야간에 레이더로 41,000 야드 (37.4904km)부터 목표를 추적하기 시작해서 레이더 관제사격으로 22,400 야드 (20.48256km) 거리에서 사격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후소급 전함 야마시로에게 명중탄을 냈다.
게다가 야간전이 아닌 주간전에서도 비등하다고 볼 수 없다.
'마스트 끝이 보이는 실제 거리'는 35km이나(사마르 해전) 마스트 끝을 보고 사격을 할 순 없으니까 잘 해봐야 30km정도가 최대 사거리로, 구름이나 안개가 끼기 시작하면 그 거리는 줄어들게 된다. 물론 물기둥 확인이야 가능하겠지만 협차를 확인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24시간 365일 중 기상 상황등의 이유로 수평선까지 보이는 때는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또한 적 함대의 방해로 인해 그 사야가 제한당할 가능성이 없지 않은 바, 주간전에서도 협차 가능할 사거리가 비등할 확률조차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할 수 있다. Mk.8 사격통제장치의 사거리는 40,000 야드 (36.576km)이며 실전에서 38,000 야드 (34.7472km) 거리에서 협차된 물기둥을 확인한 적이 있다. 전술하였듯 스코프에 친절하게 띄워준다. 그리고 미국은 주간전에서는 레이더를 1순위로, 기존의 광학조준장치를 2순위로 해서 한꺼번에 사용하므로 조준속도도 엄청나게 빨랐다.
일위키에서 32km에서 야마토가 협차를 냈다는 출처 없는 정보가 있으나 사실이 아닐 확률이 높다. 일단 함재기 탄착 수정은 하지 못했으며, 세계 최대라고 불리는 일본의 야심작 15.5m 광학측거의의 30km에서의 오차는 300미터에 달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미국의 Mk.8 사격통제 레이더의 30km에서의 오차는 대략 - 33000/1000+15야드, 48야드(44미터) - 정도였다.[7] 30km면 갑판 위쪽이 간신히 보일 정도의 거리인데, 이 상황에서 어림짐작해서 쏜다고 해도 거의 살포계 너비에 준하는 추가적인 오차가 발생하기 때문에 상대가 움직이는 함선이라는 것까지 생각한다면 제대로 된 협차를 기대하기 어렵다. 야마토의 (46cm포의) 교전거리는 20km 전후를 상정한다는 야마토 생존장교의 증언도 있다.[8] 실제로 사마르 해전에서 야마토가 연막등으로 인해 시계가 가려지자 억지로 레이더 전탐사격을 실시했으나 착탄지점을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몇 번 포격하고는 아무런 성과없이 끝났다.
전함 간의 전투거리를 30,000 야드(27.432km)로 할지 그 이상으로 할지를 생각하더라도 아이오와급 전함이 야마토급 전함을 협차 가능 사거리로 압도 가능하다는 사실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말 그대로 아이오와급 전함의 사거리에 제압당한 야마토급 전의 운신 폭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구식 전함들인 표준형 전함이 21노트대의 속력을 가져서 개장 전에는 26.5노트, 개장 후에도 25노트의 속력을 가지는 나가토급 전함을 상대하기에는 최소 4노트나 속력차이가 나서 곤란하다고 일본이 자랑하고 미국이 수긍하는 상황에서 야마토급 전함과 6노트나 차이나는 아이오와급 전함에 야마토급 전함이 근접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고 추축국에서는 자함 방공이 제일 충실하기는 하나 미국 군함들처럼 군용기들을 다 갈아버릴 정도는 전혀 아니니까.
이러니 위에 나오는 1대 1 대결에 접근전을 하는 대결과는 달리 실전에서는 아이오와급 전함이 야마토급 전함을 속력으로 계속 거리를 벌리면서 원거리에서 툭툭 때리면서 시간끌다가 미국 항공모함의 함재기가 엄청난 규모로 출격해서 그 동안의 전투로 손상입은 야마토급 전함을 급강하폭격기와 뇌격기로 갈아버리는 게 가능하다. 설령 미군이 밀리는 상황이 와도 아이오와급 전함이 빠르게 후퇴하고 야마토급 전함이 추적하다가 놓치는 것으로 전투가 종료되어 버린다.
그나마 이것도 아이오와급 전함이 원거리에서 쏜 포탄이 몽땅 빗나간다는 걸 가정한 것으로 야마토급 전함에게 유리하게 판을 짠 것이다. 실제로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갑판 관통을 기준으로 한다면 아이오와는 야마토의 갑판을 대략 32,000m 이상부터 관통할 수 있으며 야마토는 아이오와의 갑판을 대략 31,000m 이상부터 관통할 수 있기 때문에 32,000m 이상의 거리가 벌어질 경우에는 야마토급 전함이 아이오와급 전함을 명중시키는 것은 앞서 말한 이유들 때문에 불가능에 가깝지만 아이오와급 전함은 야마토급 전함에 명중탄을 낼 가능성이 있으므로 전투가 길어질수록 야마토가 지속적인 타격을 일방적으로 입어서 점점 불리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일본측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수상기를 통한 탄착 수정 사격을 통해 협차 가능 사거리를 늘리려고 시도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탄착 수정 사격을 하는 동안 수상기는 무방비 상태가 되며, 대상 함선에 상당히 가까이 접근해야 하는 점 때문에 실전에서 쓰기는 무리라고 보았다. 원래는 제로센 같은 함상 전투기가 아군 관측기를 호위하고 적 공격기/관측기를 저지해야 했지만, 시대가 전함에서 항공모함으로 넘어가며, 그리고 항공전에서 밀리며 항공모함과 함재기 전력이 개발살나는 와중에 일본 전함이 역량을 발휘할 함대결전은 찾아오지 않았다.
자세한 사항은 협차사격 문서 참조.
9. 포신 안정화 장비의 부재
미국 전함은 Stable Element Mk. 6라는 포신 안정화 장비가 자이로 센서를 이용해서 파도나 변침으로 선체가 흔들려도 포신은 조준한 목표를 계속 향하도록 자동으로 포신의 각도를 보정해줬다. 해당 장비의 Continuous aiming 기능에 힘입어, 미국 전함들은 함선이 요동쳐도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적인 사격을 할 수 있었다.하지만 야마토급 전함에는 이런 장비가 없었다. 그래서 변침 중 사격은 굉장히 어려웠고 직진 또는 정지한 상태라고 해도 파도가 높으면 자세가 안정될 때까지 사격을 할 수 없었다. 당연히 야마토급의 실질적인 시간당 발포 횟수는 상당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더해서 적을 추적해서 빠르게 주포를 명중시켜 박살낸 후 일본군 제공권 안으로 후퇴해야 하는 야마토급 전함의 입장에서는 불리함이 더 커지게 된다. 최대 속력을 유지하면 자연스럽게 배가 더 흔들리는데 선체의 경사각이 5도 이상이면 주포탑 선회가 불가능한 야마토급 전함의 특성상 실질적인 사격이 불가능해질 확률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10. 없다시피한 예비 부품들
야마토급 전함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로, 야마토급 전함은 기존 전함들마저 초월하는 거함이라 상당수의 부품이 야마토급만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져야 했다. 당장 위에서 언급한 조준용 측거의만 해도 새롭게 특별 제작한 물건이었다.설상가상으로 진주만 공습 근방에서나 취역한 막둥이라서 미리 전쟁 전에 예비 부품을 제조할 시간도 자원도 없었고 일단 물주에게 선빵을 후려쳐서 적으로 돌려놓고 전쟁에 돌입한 이상 한가하게 예비 부품 따위를 만들고 있을 처지도 아니었다. 따라서 예비 부품이나 장비의 수량이 매우 부족하거나 아예 없어서 손상되거나 고장났을 때 수리를 위해서는 건조가 취소된 다른 자매함들의 부품과 자원을 유용하여 수복하거나 그마저도 안 되면 부품이 제조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추가되므로 한번 손상되면 장기간 도크 내부에서 놀고 지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일례로, 야마토의 자랑인 18.1인치 주포는 아래와 같은 복잡한 과정으로 제조된다.
1 | 강괴를 가열하여 2,000톤 프레스로 단조 가공한다. |
2 | 강괴의 머리부분 30%와 하단부 15%를 절단한다. 강괴의 머리와 꼬리 부분은 성능을 저하시키는 불순물의 농도가 높기 때문이다. |
3 | 강괴를 1250℃까지 가열하고 2시간 동안 온도를 유지한 후 천천히 냉각시키며 풀림 처리한다. |
4 | 절삭가공을 한다. |
5 | 열처리 후 담금질을 한다. |
6 | 재가열한다. |
7 | 시험편 채취 및 검사를 한다. 이 과정에서 큰 이상을 발견하면 강괴 전체를 폐기해야 한다. |
8 | 자기긴축처리를 한다. |
9 | 마무리 절삭가공을 한다. |
10 | 강선을 가공한다. |
한눈에 봐도 복잡하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과정이다. 이 때문에 일본 제국이 종전시까지 제작한 18.1인치 주포의 포신 숫자는 고작 27문이었다. 1938년 3월에 첫 번째로 완성된 주포는 카메가쿠비 포격 시험장에서 테스트를 받았고, 18문 주포는 야마토와 무사시에 장착되었다. 따라서 남은 주포수는 고작 8문이며, 이걸로는 야마토나 무사시중 한 척의 포신을 전부 교체하지도 못할 수준에 불과했다. 참고로 남은 주포는 1945년 종전 후 2문은 카메가쿠비 시험장에서 폐기되었으며 나머지 7문의 일부는 미완성 단계였으나 상태가 양호한 2문은 버지니아에 있는 Dahlgren 포격시험장으로 보내졌고 나머지 5문은 폐기되어 1950년대 고철로 처리되었다.
당시 미군은 야마토급 18.1인치 주포에 대하여 정밀 분석을 실시하였고, 그 결과는 아래와 같다. #
이 주포는 보기 드물 정도로 정교한 방식으로 제조되는데, 어쩌면 그런 류의 대구경포를 제조하는 일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2A라 명명된 A 튜브는 약실부터 전체 길이의 절반 정도쯤 되는 부분을 압착하여 에워싸는 3A 튜브가 있다. 이렇게 조립하고 나서 와이어 와운드(wire-wound)[9] 공정을 마치고 나면, 모든 부분에 걸쳐 조여주는 2개의 튜브층과, 2개의 부품으로 구성된 약실부 끝의 마개가 추가된다. 포신 중앙부의 여러 튜브들은 접시 스프링 와셔로 꽉 조여져 있는데, 아마도 포신에 쌓이는 피로가 집중되는 것을 줄이고, 혹시라도 모를 "포신 내부의 공간이 좁아지는 문제(steel choke)”를 방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형태는 영국의 빅커스(Vickers)社에서 탄피 홈을 만든 방식과 유사하다. 1A로 알려진 내부의 A튜브는 유압을 이용해서 독립된 3단계의 과정을 걸쳐 방사형으로 팽창되어 고정된다. 내부의 A 튜브가 자리를 잡으면 강신을 새겼다. 또한 3A 튜브에는 짧은 멈춤쇠(breech ring)가 달려있고, breech bush[10]가 파여져 있다. 약실은 일본판 애즈버리(Asbury) 식 약실에 웰린(Welin) 폐쇄기를 조합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식으로 설치하는 방식의 가장 큰 문제점은, 포를 재생(relining)하려면 내부의 A 튜브를 전부 파내야 한다(Boring)는 점이다. 이건 매우 비용이 많이 드는 방식이므로, 두 전함 모두 전쟁 내내 포열을 교환한 적이 없기는 하지만, 단순히 사용한 포를 새것으로 교체하는 것이 더 실용적일 것이라 생각된다. 이 부분은 이 전함들의 짧은 생애를 보여주는 부분이라 하겠다. |
요약 : 여러개의 튜브로 포신을 만들면서 밖에 있는 포신이 안에 있는 포신을 꽉 조이도록 만든 것인데, 재생하려면 안에 있는 튜브를 뽑아야 하므로, 차라리 새로 만들라는 이야기다. |
1940년 11월 1일 진수된 2번 함 무사시를 끝으로 항공모함의 위력이 확실하게 입증된 진주만 공습 이후엔 함대의 주력인 항공모함과 함재기가 아니라 중요성이 떨어지는 야마토급 3번 함 시나노는 물론 이와 연관된 전함 포신과 같은 부품은 생산이 중단되었다.
이로 인해 포신의 수명이 다 되어도 예비 부품이 없으니 교체할 수가 없었다. 야마토급 전함의 주포는 약 150발 ~ 250발을 발사할 수 있는 것으로 예측되었다. 영국이 16인치가 250발, 15인치가 330발, 14인치가 350발, 나가토급의 16인치가 300발, 소련이 소비에츠키 소유즈급에 얹으려 한 16인치도 300발, 아이오와급의 16인치가 350발, 독일이 비스마르크급에 얹은 15인치가 210발이므로 18인치에 150 ~ 250발을 기대할 수 있는 야마토급의 주포가 내구성이 특별히 약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예비 부품이 한 벌도 없었다는 것. 한 척에 9문을 달고 다니는 배를 위해 준비된 예비용 포신이 8문뿐이다! 즉, 야마토급 전함들은 처음 만들어질 때 받은 포를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아껴 써야 한다. 이래서야 승조원들의 숙련도를 유지하기 위한 포술훈련 같은 정기 연습사격도 섣불리 할 수 없다.
그래서 예전에는 야마토급 전함들이 함대결전에만 맞춘 1회용 전함이란 말도 있었다. 물론 진짜 1회용으로 쓰고 버리려고 건조한 전함은 아니지만 어차피 2회용으로 쓸 수 없으니 1회용으로 취급당해도 할 말은 없다. 포신조차 교체할 수가 없었으니 포신 내구도가 다 떨어지면 포 한번 제대로 못 쏘는 수상호텔 신세를 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야마토급으로 배속된 수병들과 장교들은 '다른 함에서 야마토급으로 넘어온 경우'가 아니면, 비유할 필요도 없이 사실 그대로 훈련도 못하고 실전에 투입되어야 하는(...) 사태가 나오게 된다. 다른 함에서 넘어온 경우라도 야마토급 전함에 적응하기 위한 훈련이 필요한데 이게 부족하면 적응이 부족한 상태로 실전을 겪게 되니 답이 없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야마토급 전함이 제대로 실전을 겪은 경우인 레이테 만 해전에서는 전투 후의 전투상보에서는 해전 돌입 전에는 그 전까지 주포가 포탄을 발사한 횟수는 170여발에 불과한데 1문당 4 ~ 5발의 훈련사격에서도 고장이 발생하지 않은 경우를 찾는게 희귀할 정도라는 비판이 들어갔다. 그리고 사마르 해전에서는 해전 기간중에는 단 1회의 고장도 발생하지 않았다라고 언급하여 해전에 직접 돌입하기 전까지의 승조원 훈련의 절대적인 부족이 주포 고장의 주요 원인이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주포 발사의 후폭압에 의해 대공포 운용반이 문자 그대로 괴멸된 무사시의 경우 역시 이것과 직접 연결된 사례이다.
[1]
하지만 이건 이탈리아가 유별난게 크다. 타국은 두꺼워봤자 100mm고 50~100사이를 유지했다.
[2]
야마토의 경우는 함체 중심선상에 부포가 전후방에 1개 마운트씩 있으므로 중심선상을 피하는 설계를 채택한다면 동일 화력을 위한 마운트는 최초 설계 기준 6개로 추가로 필요한 마운트는 2개가 된다.
[3]
야마토처럼 선체 중심선상에 부포탑을 배치하는 방식의 전함으로는
리슐리외급 전함의 4번함으로 예정되었던 가스코뉴가 있다. 전방에 4연장 주포탑 1기와 부포탑 2기를 적층식으로, 후방에 주포탑과 부포탑 1기씩을 적층식으로 배치하는 설계였는데 실제 건조되지는 못하고 계획이 취소되었다.
[4]
잘 이해가 안 간다면
언더 시즈를 보자. 언더 시즈에서 스티븐 시걸이
잠수함을 박살내기 위해서 16인치 3연장포 중에서 하나만 사용해서 사격했지만 토미 리 존스옹이 쭈우욱 날아가고 맨정신이 아닌데
# 이거도 영화 전개를 위해서 '매우 약하게' 표현한 거다. 실제로 이런 상황이라면 포의 발사압에 사람의 몸이 날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터져버린다.
[5]
여담으로 이 사건 당시 야마토에 가 있는 동료에게 야마토가 어뢰를 맞았을 때 리벳이 빠져서 침수가 진행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무사시 생존 승조원의 증언이 있다. 두 함의 승조원 사이에는 연락이 비교적 자유로웠던 것 같다.
[6]
단적으로 논하면 전파로 적을 감지하게 하는 전파 탐신이나 한밤중에 불을 켜고 자기 위치를 적에게 알리는
봉화나 다를 게 없으며, 차라리 그런 기계를 사용하는 대신 견시병의 시력을 올려서 적을 감지하게 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랬기에 미드웨이에서의
운명의 5분을 알린 것이
항공모함 카가에 탑승하고 있던 견시병의 외침이다. "敵機直上、急降下! (적기 바로 위, 급강하!)" 문제는 이 생각을 육군도 똑같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 물론 이러한 생각은 현대에 와서 상당부분 인정되고 있기는 하다. 특히
전자전 분야에서.
SEAD도 이에 기반하여 레이더를 찾아 조지는 전술이기도 하다.
대레이더 미사일도 이럴 때 써먹으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레이더에 대항할 수단이 오로지 레이더뿐이었다는 것이 문제다. 상대의 레이더를 찾으면 뭐하나. 이쪽 견시보다 저쪽 레이더가 이쪽을 찾는 것이 훨씬 빠른데.
[7]
포술가가 말하는 야마토 46센치 거포의 포전전법 40-41 페이지
[8]
NHK, 그때 역사가 움직였다
[9]
열팽창을 줄이기 위해, 강선(총열 내부에 새기는 강선이 아니라, 금속으로 된 와이어를 말한다.)을 두르는 것)
[10]
소총의 총강경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