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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전경
투즈 괼뤼 (소금 호수)
인근 관광지인 으흘라라 협곡
1. 개요
Aksaray터키 중남부의 도시. 콘야에서 동북쪽으로 100km, 네브셰히르에서 서남쪽으로 55km 떨어진 평지에 위치한다. 인구는 약 30만명으로, 악사라이 도의 주도이다. 옛 지명은 가르사우라로, 카라반 대상들이 지나던 무역 도시이자 시리아 방면 군사 거점으로 성장하였다. 15세기 오스만 제국령이 된 후 주민들이 다수 이스탄불로 이주되어 현재까지도 구도심 (파티흐) 남부 해안 일대인 악사라이 구의 유래가 되었다.[1]
시내에는 근대 건축물과 박물관 외에는 볼거리가 거의 없지만 주변에는 관광지가 많다. 서북쪽 25km 지점에는 터키 제2의 호수인 소금 호수 투즈 괼뤼가 있고, 동남쪽 20km 지점에는 카파도키아의 시작이자 자연 유산이며 기독교 성지이기도 한 우흘라라 협곡이 있으며, 서남쪽 35km 지점의 술탄하느에는 셀주크 건축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술탄한 카라반사라이가 있다. 동남쪽 산지에는 크즐 킬리세, 찬르 킬리세 등의 옛 교회 유적이 있다.
2. 역사
1236년에 세워져 27도 기울게 된 '터키 피사의 사탑' 에으리 미나렛 / 시계탑 일대 야경 |
고대부터 아나톨리아를 지나는 실크로드 교역 도시로 성장하였고, 카파도키아 왕국의 마지막 군주 아르켈라우스의 이름을 따서 아르켈라이스 ( Ἀρχελαΐς)라 명명되었다. 로마 제국기에는 콜로니아 (Κολώνεια)로 불렸고, 동로마 제국기에는 병영이 설치되어 군사도시가 되었다. 만지케르트 전투 이후 룸 셀주크령이 되었고, 아나톨리아의 주요 상업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14세기에는 카라만 왕조에 속하였고, '흰 궁전'이란 뜻인 악사라이로 명명되었다. 당시 일대를 방문한 이븐 바투타는 무슬림 상인이 많고 정원과 관개 수로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도시라고 묘사하였다.
1468년 악사라이를 점령한 오스만 제국의 대재상 이스학 파샤 현지 주민 상당수를 근래에 점령된 새로운 수도 코스탄티니예로 이주시켰다. 이주된 이들 중에는 3세의 나이로 수도에 다다른 후 1518 ~ 1523년간 셀림 1세와 쉴레이만 1세 양대에 걸쳐 대재상을 지낸 피리 메흐메트 파샤가 있다. 오스만 제국기에 악사라이는 인근 투즈괼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팔아 부유해졌고, 19세기 근대화 시기에 신오스만 양식의 건물이 다수 지어졌다. 공화국 수립 후 악사라이 도로 편성되었으나 1933년 니으데 도에 편입되었다가 1989년 다시 독립된 도로 복귀하였다.
[1]
다만 이스탄불의 악사라이 구는 유흥 업소가 많은 지역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