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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두르 호수와 구도심 일대 | 인근 관광지인 사갈라소스 유적 |
1. 개요
Burdur튀르키예 서남부의 도시. 으스파르타에서 서쪽으로 20km, 데니즐리에서 동쪽으로 90km, 안탈리아에서 북서쪽으로 80km 떨어진 부르두르 호수 동안의 언덕에 자리한다. 인구는 약 10만명으로, 부르두르 도의 주도이다. 중세 후반기 아나톨리아 내륙과 지중해 연안을 잇는 중개 무역으로 성장하였다. 전통적으로 철제품을 수리하는 양철공들이 많았으나 현재는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인근 50km 이내에 크고 작은 호수가 즐비하다. 대표적으로 부르두르 호, 에이르디르 호, 아즈괼, 아크괼, 야르쉴르 호, 이쉬클르 호, 그리고 '살다 몰디브'라 불리는 살다 호 등이 있다.
시내에는 대사원, 부르두르 박물관, 옛 성당을 개조한 부르두르 자연사 박물관, 그외에 여러 전통 가옥 등의 볼거리가 있다. 시가지 서부에는 메흐메트 아키프 에르소이 대학교가 있다. 동쪽 20km 지점 아크다으 남쪽 기슭에는 옛 피시디아의 중심인 사갈라소스 (Σαγαλασσός) 유적이 있는데, 부르두르 박물관의 유물 대부분이 그곳에서 발굴된 것이다. 호수 인근 저지대에 위치하여 날씨가 더우며, 여름에는 거의 40도에 육박한다. 출신 인물로 1818-20년 오스만 제국의 대재상 (그랜드 와지르)을 지낸 부르두를루 데르비쉬 메흐메트 파샤가 있다.
2. 역사
1300년경 세워져 1935년 보수된 울루 자미 | 1830년대 세워져 1914년에 재건된 시계탑 |
청동기 시대부터 오늘날의 철도역 일대에 마을 형성되었다. 고전기에는 피시디아 지방에 속하였고, 호숫가에 도시가 형성되어 림놈브리아, 동로마 제국기에는 폴리도리온 (Πολυδώριον)이라 불렸다. 그러다 11세기 말엽 만지케르트 전투 후 일대에 유입된 오우즈 튀르크 계열의 크날르 부족이 정착, 폴리도리온이 와전된 부르두르를 지명으로 삼았다. 튀르크 인들은 당초 호숫가 언덕에 거주하였는데, 말라리아가 창궐하자 언덕 위로 이주하여 여러 마을을 세웠다. 일대는 한세기 가량 동로마 제국과 룸 셀주크 간의 완충 지대로써 자치가 유지되다가 1177년 클르츠 아르슬란 2세가 점령하여 룸 셀주크 령으로 확립되었다. 13세기 들어 무역이 활성화된 안탈리아와의 교류로 상업이 발달하며 성장하였고, 튀르크 인이 주민의 다수를 점하게 되었다.
마을들 사이에 들어선 알란파자르 시장에서는 피시디아 산지에서 생산된 트라가칸트 (향 고무), 퀴타히아산 포도주, 아나톨리아 각지에서 생산된 밀랍 / 목재 / 타르 등이 이집트를 거쳐온 향신료, 목화, 설탕 등과 거래되었다. 그러던 1300년경 에이르디르에 기반한 하미드 베이국의 뒨다르 베이가 점령하여 알란파자르 시장에 대사원을 건설하였고, 이를 중심으로 현재의 시가지가 형성되었다. 1324년 추판 가문에 속한 일 칸국의 아나톨리아 총독 티무르타슈가 뒨다르 베이를 죽이고 일대를 점령했으나 추판 일족이 숙청된 후 1328년 뒨다르 베이의 아들 이샤크 첼레비가 수복하였다. 1330년 부르두르를 방문한 이븐 바투타는 과수원과 농장이 많은 축복받은 도시로써 대사원과 성채[1]를 중심으로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고 기록하였다.
14세기 부르두르에는 상업과 수공업에 관여하는 아나톨리아 중부 출신의 아히 길드가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에게해 연안과 흑해 연안 및 콘야 일대를 이어주는 교역 도시로 번영하였다. 1391년 하미드 베이국은 오스만 제국에 흡수되었고, 하미드 산작에 편성되었다. 1478년 부르두르는 3개의 무슬림 구역과 1개의 기독교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수백년 간의 공존은 1923년 그리스-튀르키예 인구 교환과 함께 종식되었다. 19세기에 세워진 정교회 성당은 2016년 자연사 박물관으로 개조되었고, 역시 옛 건물을 개조한 고고학 박물관은 1969년에 설립되었다. 19세기 후반 이즈미르 ~ 에이르디르 철도 건설 시에는 철도가 지나지 않았으나 1936년 지선이 개설되었다. 다만 20세기 들어 인근 으스파르타나 데니즐리에 밀려나 인지도는 낮다.
[1]
현재는 거리명으로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