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1 19:51:29

볼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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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터키 볼루 1.jpg
도심 중앙 광장과 바예지트 모스크 (좌), 사라차이 모스크 (우)
파일:볼루 터키 57.jpg
시가지 전경

1. 개요2. 역사
2.1. 로마-셀주크 전쟁
3. 오스만 제국

1. 개요

Bolu

터키 중북부의 도시. 앙카라에서 서북쪽으로 110km, 아다파자르에서 동쪽으로 80km, 종굴다크에서 남쪽으로 70km 떨어진 협곡 분지에 위치한다. 인구는 약 20만명으로, 볼루 도의 주도이다. 옛 지명은 비티니움 혹은 클라우디오폴리스 혹은 하드리아노폴리스 등으로 다양했고, 튀르크 지배기 들어 에스키히사르 (옛 성채)라 불리다 폴리스의 중세 그리스어 발음인 볼리가 튀르크 식으로 변형된 볼루로 정착되었다.

고대부터 마르마라해 연안과 흑해 지방을 잇는 교통의 요지였다. 출신 인물로는 하드리아누스의 동성 연인으로써 후일 신격화된 안티노우스가 있다. 폰투스 산맥과 무두르누 강 사이에 동서로 7km 가량 펼쳐진 시내에는 바예지트 모스크 (울루 자미), 타쉬한 (여관), 사라차네 모스크, 볼루 박물관, 로마 시대 경기장 유적 등의 볼거리가 있다. 해발 700m의 고지에 위치하여 여름에도 32도 이상으로 잘 오르지 않는 선선한 기후를 지닌다.

2. 역사

파일:볼루 터키 9.jpg
로마 시대 경기장 유구. 아나돌루 고등학교 남쪽 담장으로 남아있다

기원전 2000년 경부터 마을이 있었고, 헬레니즘 기에는 비티니아 왕국 내륙의 주요 거점으로써 비티니움 (Βιθύνιον)이라 불렸다. 로마 제국기에는 클라우디우스 황제를 기리며 클리우디오폴리스로 명명되었고, 서기 123년 6월 순행의 일환으로 하드리아누스가 방문하자 이를 기념하여 동전에 표기되는 지명에 하드리아나가 더해졌다. 한편 방문 도중 12세의 현지 청년 안티노우스와 조우한 하드리아누스는 그를 로마의 황실 학교로 보내어 교육시켰고, 약 3년 후부터 하드리아누스의 연인이 되었다. 이후 황제의 순행에 동행하던 안티노우스는 130년 이집트에서 사망하자 신격화되었다.

기독교 확산과 함께 300년을 전후로 하여 주교구가 세워졌고, 첫 주교는 이탈리아 출신으로써 일대에서 선교하다가 31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박해 당시 순교한 성 아우토노무스였다. 4세기 말엽 테오도시우스 1세는 자신의 차남 호노리우스의 이름을 따서 비티니아와 파플라고니아 일대를 아우르는 호노리아스 주를 편성하였고, 클라우디오폴리스는 주도가 되었다. 이어진 동로마 제국기에는 하드리아노폴리스라 불렸고, 현 에디르네와 구별하기 위해 호노리아데의 하드리아노폴리스라 표기되었다. 1080년경 튀르크 인들이 점령했으나 1차 십자군과 함께 1097년 동로마 제국이 수복하였다.

2.1. 로마-셀주크 전쟁

12세기 아드리아노볼리는 룸 셀주크에 맞서는 동로마측 내륙 거점 중 하나였다. 1176-77년 미리오케팔론 전투의 패배를 히엘리온-리모키르 전투에서 되갚은 동로마 군은 기세를 이어 프리기아로 진격했으나 패배하였다. 이후 반격에 나선 룸 셀주크 군은 1179년 2월 아드리아노볼리를 포위하였고, 수비대의 역습을 저지하였다. 수비대가 원군 없이는 중과부적으로 항복할 것이라 전하자 마누일 1세는 소식을 접한 다음날 친히 출정하였다. 황실 보물 대신 말과 갑옷 만을 챙기고, 잠도 아끼며 쉴 때는 병사들과 바닥에서 함께하는 마누일의 모습에 군대의 사기는 진작되었다.

이로써 동로마 군이 니코메디아를 지나 모습을 드러내자 예상치 못한 신속한 구원에 놀란 룸 셀주크 군은 포위를 풀고 철수하였다. 마누일은 적군을 추격하였고, 그해 말엽 유리한 조건의 휴전을 맺었다. 그후 3차 십자군과 함께 한동안 제대로 된 공세에 나서지 못하던 룸 셀주크는 1197년 가짜 알렉시오스 2세 반란을 틈타 아드리아노볼리를 점령하였다. 이는 서북부 방면 룸 셀주크 최후의 팽창이었고, 동로마 제국은 상가리오스 (사카리아) 강 방어선을 구축하게 된다. 튀르크 지배 하에 지명은 아드리아노볼리를 축약한 볼리 혹은 볼루로 정착되었다.

3. 오스만 제국

파일:볼루 터키.jpg
1382년에 세워져 1899년에 보수되었고, 1944년 재건된 바예지트 자미

룸 셀주크의 쇠퇴 후 1325년 일대는 오스만 제국에게 정복되었다. 비록 앙카라 전투 이후 잔다르 왕조에게 넘겨지기도 했으나 1423년 수복하였고, 그후 카스타모누 산작에 속하였다. 15세기 주교구가 소멸된 후 튀르크 무슬림 위주의 도시가 된 볼루에는 여러 건축물이 세워졌다. 19세기 초에는 1799년 오스만 조정에 의해 폐위된 몰다비아 공 알렉산드루 칼리마치가 볼루로 유배되어 1821년 12월 이곳에서 사망하기도 하였다. 인구 1만의 중간 규모 도시로써 볼루는 1864년 행정 개편 당시 독립적인 산작으로 승격되었다. 2007년에는 15년 간의 공사 끝에 볼루 산 터널이 개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