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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다한 성채
성채에서 내려다 본 쿠라 강과 시내
튀르키예어, 영어: Ardahan
쿠르드어: Erdêxan
조지아어: არტაანი (아르타아니)
아르메니아어: Արդահան (아르다한)
1. 개요
터키 동북부의 도이자 동명의 도시. 에르주룸에서 동북쪽으로 150km, 카르스에서 북쪽으로 50km 떨어진 쿠라 강변에 위치한다. 북동쪽으로 30km 가면 조지아, 동쪽으로 60km 가면 아르메니아와의 국경이 나오는 변경 도시이다. 인구는 2만에 불과하지만, 지정학적 위치 덕에 옛부터 중시되었다. 강북이 구도심, 강남이 신도심이다. 볼거리로는 아르다한 성채가 있다.2. 역사
아르다한 성채
고대 이베리아 왕국에 속했고, 고가레네로 불렸다. 중세 시기에는 흑해 연안과 압바스 왕조령 이라크의 중계 무역으로 번영하였다. 10세기까지 바그라투니 왕가의 아르메니아가 일대를 지배했고, 1021년 동로마 제국의 공격으로 주민들이 학살당한 후에는 전자의 방계인 바그라티온 왕조의 조지아가 지배하였다. 1230년대 몽골 제국군이 점령했지만 1266년 조지아계 삼츠케 공국이 재점령하였다. 1555년 삼츠케 공국이 오스만 제국에게 병합되며 아르다한 산작이 설치되었다. 오스만 지배기에 아르다한은 거대한 난공불락의 성채 도시로 변모하였다. 주민의 대다수를 이루던 아르메니아인들은 19세기 초엽 러시아-튀르크 전쟁이 격화되며 러시아령으로 떠났다.
2.1. 러시아의 지배 (1877 ~ 1917년)
1877년 5월 5일, 아르다한을 점령하는 러시아군
그리고 1877년 제12차 러시아-튀르크 전쟁 도중 러시아 군이 점령하였다. 1886년 20%에 불과했던 러시아계 인구는 1897년 32%까지 증가하였고, 아르메니아계 역시 비슷한 수준이었다. 터키계는 50%에서 18%로 격감하였다. 이후 40여년간 아르다한은 러시아의 대중동 교역 도시로 성장하였다. 1차 대전기인 1914년 12월 25일, 오스만 제국군이 아르다한을 탈환하였다. 그리고 많은 아르메니아계, 폰투스계, 조지아계 기독교도 주민들이 학살되었다. 이듬해 1월 5일, 반격에 나선 러시아 군이 재점령하였다가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철수하였다.
2.2. 현대
아르다한 성채의 위성사진
그후 아르메니아 민병대가 아르다한에 주둔했는데, 1918년 3월 6일 오스만 군이 현지 무슬림들의 도움으로 도시를 수복하였다. 전후에는 영국군이 주둔했다가 아르메니아 제1공화국에게 넘겨졌다. 하지만 터키-아르메니아 전쟁에서 터키군이 1920년 11월 다시 아르다한을 점령하자 남아있던 기독교도 주민들은 아르메니아, 조지아, 그리스로 이주하였다. 그후 소련과 터키가 체결한 모스크바 조약으로 아르다한은 터키령으로 확정되었다. 1960년까지 아르다한은 인구 7천의 작은 도시였는데 현재는 4만 이상으로 6배 증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