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晉書) | ||||||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color: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제기(帝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
1권 「선제기(宣帝紀)」 |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 3권 「무제기(武帝紀)」 | |||
사마의 | 사마사 · 사마소(昭) | 사마염 | ||||
4권 「혜제기(惠帝紀)」 |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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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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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기(戴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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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石氏생몰연도 불명
서진의 인물. 출신지는 불명. 정휴(鄭休)의 처.
2. 생애
어릴 때부터 덕성과 절개가 있어, 나이가 10살이 조금 넘었을 때부터 고향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를 칭찬하는 소문이 자자하였다. 이후 석씨는 정씨 가문의 자제인 정휴에게 시집갔고, 9족(九族)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정휴의 아버지 정포(鄭布)에게는 갓 태어난 서자 정침(鄭沈)이 있었는데, 정포는 임종을 앞두고 정침을 내다버릴 것을 명령하였다. 당시 정휴에게는 전처가 낳은 어린 딸 하나만 있었기에, 석씨가 반대하며 말했다."어찌 시아버님의 혈통을 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후, 정휴의 딸과 시동생 정침을 같이 키웠다. 그러나 그녀의 힘만으로 두 아이를 함께 돌보기에는 부족했고, 그 때문에 9년 동안 세 번이나 자신의 아이를 낳지 못한 채 유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