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01:40

서재응/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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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뉴욕 메츠
2.1. 2002 시즌2.2. 2003 시즌2.3. 2004 시즌2.4. 2005 시즌
3.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3.1. 2006 시즌
4. 탬파베이 데블레이스
4.1. 2006 시즌4.2. 2007 시즌
5. KIA 타이거즈
5.1. 2008 시즌5.2. 2009 시즌5.3. 2010 시즌5.4. 2011 시즌5.5. 2012 시즌5.6. 2013 시즌5.7. 2014 시즌5.8. 2015 시즌5.9. 은퇴
6. 국가대표 경력7. 연도별 성적

1. 개요

뉴욕 메츠,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탬파베이 데블레이스, KIA 타이거즈 소속 우완 투수 서재응의 선수 경력을 모아 놓은 문서.

2. 뉴욕 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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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메츠 시절.[1]

광주화정초, 충장중,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1996년 해태 타이거즈의 고졸우선 지명을 받았으나 인하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다. 1998년에는 인하대학교를 중퇴하고 뉴욕 메츠와 135만 달러에 입단 계약을 맺으며 형 서재환[2]과 함께 미국 무대에 진출하게 되었다.[3] 메츠와 계약을 맺은 후인 1998년 말 방콕 아시안게임 국가대표팀에 합류, 금메달을 따내며 병역특례를 받는데 성공한다.

2.1. 2002 시즌

입단 이후 팔꿈치 부상으로 토미 존 수술을 받으며 재활하게 되었고 마이너리그에 있다가 9월 뉴욕 메츠 소속으로 메이저리그에 처음 콜업되어 1경기에 중간계투로 등판했다.

2.2. 2003 시즌

선발진에 진입하며 9승 12패 188⅓이닝 3.8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주목을 받았다. 팀 타선이 도와 주지 않아 10승에는 실패했고, 이는 전성기 시절 박찬호를 제외하면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인 선발 투수로서는 최고의 기록이었으나 포스팅 시스템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류현진이 2013년 8월 2일, 시즌 10승째를 거두면서 기록을 경신하였다.

2.3. 2004 시즌

릭 패터슨 투수코치와의 불화로 인해 마이너와 메이저를 오가며 5승 10패로 전년보다 부진한 성적을 냈다.

2.4. 2005 시즌

시즌 초반 마이너리그에 있다가 4월 막판 잠시 출전해 호투를 했음에도 기회를 얻지 못하다 선발진의 부상을 틈타 8월쯤 메이저로 콜업, 14경기에 등판하여 8승 2패를 거두고 평균자책점 2.59를 기록하며 현지에서 팀 에이스 페드로 마르티네스보다 위력적이다 라는 평을 받았다.

3.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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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2006 시즌

그러나 WBC가 끝난 후 2006 시즌을 앞두고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트레이드되어[4] 고등학교 후배 최희섭과 아주 잠깐 한솥밥을 먹기도 했으나, 최희섭 보스턴 레드삭스 트레이드되었고, 자신도 메이저리그 19경기에서 2승만 거두는 부진[5]을 보였다.

다만 이 당시 거둔 2승 중 1승은 MLB 사상 최초의 한국인 선발투수 맞대결에서 거둔 승리다. 이 당시 서재응은 5월 23일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했는데 하필이면 상대팀 선발이 광주일고 1년 후배인 김병현이었다. 서재응은 7이닝동안 6피안타 1볼넷 1실점(비자책)으로 호투했고 김병현도 6이닝 6피안타 2볼넷 2탈삼진 3실점으로 나름 호투했다. 경기는 6-1로 다저스가 이겼고 서재응이 승리투수가 됐다.

4. 탬파베이 데블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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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2006 시즌

결국 한 시즌도 못 채우고 탬파베이 데블레이스로 또 다시 트레이드됐다. 탬파베이로 이적한 후에는 팀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 1승(8패)밖에 거두지 못했지만 종종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며 다저스 시절보다는 그나마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평균자책점도 시즌 막바지에는 4점대 후반까지 끌어내렸지만, 마지막 두 경기를 크게 말아먹고 결국 5점대 평균자책점, 게다가 떨어진 구위로 인해 무려 31피홈런을 기록하는 부진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4.2. 2007 시즌

어쨌든 2007년에도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해 시즌을 시작했으나 3승 4패 평균자책점 8.13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찍으며 결국 마이너리그로 강등당했고, 시즌이 끝난 뒤 방출되었다.

참고로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최희섭, 추신수 모두에게 홈런을 허용한 유일한 한국인 메이저리그 투수다. 추신수의 말에 따르면 (홈런 치라고) 서비스급으로 던져준 공이었다 한다.

5. KIA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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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17일 KIA 타이거즈 입단식에서.

2007 시즌 후 탬파베이에서 방출된 서재응은 한때 일본프로야구 진출설도 돌았으나[6] 고향 팀 KIA 타이거즈[7]에 입단하면서 대한민국 무대로 돌아오게 된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당시 서재응의 부친이 지인의 보증을 잘못 서서 집안이 완전 깡통을 차게 되자 아들에게 SOS를 청했고, 이게 서재응이 대한민국으로 복귀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다고 한다. 한 마디로 가정사가 겹쳐서 설상가상이었다. 이 사건이 터지기 2년 전만 해도, 서재응은 뉴욕에 자신의 집을 갖고 있었다.[8] 서재응 부친의 이야기로는, 그 일만 없었다면 서재응이 절대 미국에서 나올 상황이 아니었다고 하니...[9] 다만 서재응은 그 일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긴 했지만 직접 들은 게 아니라 인터뷰 기사를 통해 알게 된 것이고, 가족들의 환경 적응 문제가 가장 컸다고 말하긴 했다.

5.1. 2008 시즌

선발진에 합류해 초반엔 좋은 제구로 그럭저럭 재미를 봤으나 무릎, 어깨 등 부상에 시달리며 5승에 그쳤다.

5.2. 2009 시즌

시즌 초반엔 잘 했으나, 사직 롯데전에서 팀의 공격 도중 나지완의 파울볼이 무릎을 강타, 그 이후 다시 잔부상이 겹쳐 장기였던 제구도 말썽을 일으키게 되어, 전년도와 같은 승수에 방어율은 폭등하며 응원단장이라는 비아냥까지 듣기도 했다.

9월 8일 막판 선두 경쟁을 하던 SK와의 경기에서 3회초 정근우에게 몸에 맞는 공을 던져 부상을 입히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는데 사구 후 정근우는 서재응에게 사과를 요청했고 서재응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 장면에서 옥근우라는 별명도 탄생. 참고로 정근우는 9회에 사구를 또 맞았다.

그 때는 아무도 몰랐다.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을.

그 당시 지펴졌던 불씨는 한국시리즈 3차전 4회말 스코어 0:4로 SK 와이번스가 앞서고 있던 시점에 폭발했는데, 2사 상황에서 정근우 KIA 타이거즈의 두 번째 투수 서재응을 상대로 투수 앞 땅볼을 쳤는데, 서재응은 바로 송구하지 않았다. 아웃이라 생각하고 천천히 달리다가 송구를 하지 않자 빨리 달리기를 반복하던 정근우는 결국 아웃됨과 동시에 서재응을 응시했는데, 후배인 정근우의 노려보는 듯한 시선에 서재응은 뭘 꼬라봐 이 XX놈아라는 욕설을 시전, 정근우가 '왜요'라고 응수하면서 그대로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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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신경전 정도로 끝났지만, 이 와중에 정근우 대학 선배인 KIA 김종국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오바하며 선수단의 동요를 막음과 동시에 정근우에게 달려들었다. 일각에서는 이 신경전 때문에 2007년 한국시리즈 두산 베어스와 달리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KIA 타이거즈 SK 와이번스와의 심리전에서 밀리지 않고 우승을 차지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특히, 김종국은 어디 가서 큰소리 한번을 제대로 안 치는 성격으로 널리 유명한지라 KIA-SK 팬 외에도 그를 아는 사람은 전부 그 어색함에 벙쪘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서재응은 벤치 클리어링 이후 평정심을 잃고 5회말 만루 위기에서 정상호 최정에게 연속으로 밀어내기 사구를 내주며 마운드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관련기사 해태 출신이면서 어느 정도 타이거즈에 애정이 있는 해설자 이병훈이 이건 서재응의 잘못이라고 말할 정도.

이러한 사건으로 서재응은 SK 와이번스를 매우 싫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대놓고 이런 말을 했을 정도... 당연하지만 SK 팬들도 서재응을 매우 싫어한다. 2011년 4월 28일 광주 무등구장에서 SK 박진만의 머리를 강타하는 공을 던졌고, 사과는 커녕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몸을 돌리는 바람에 SK 팬덤과는 완벽히 앙숙이 되고 말았다.

이 사건은 2016년 3월 21일 SBS스포츠의 주간야구에서 서재응이 참가하면서 다시 회자되었는데, 서재응 본인의 말로는 그 후에 골프도 치고 문자도 주고받는 등 잘 지내는 사이라고 한다.

훗날 2022년 이영미 기자와의 인터뷰, 2024년 정근우와의 대담에서 정근우가 출루하면 상대 투수 입장에서 골치가 아파지기에 SK를 잡으려면 정근우의 기를 꺾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잘못된 것을 알면서 비난받을 것을 감수하고[10] 자신이 먼저 시비를 건 것을 인정했다. #

5.3. 2010 시즌

시즌 첫 등판이었던 무등 삼성전에서 5이닝 1실점하며 팀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4월 7일 문학 SK전에서 시즌 첫 승을 거두었다. 이 경기가 끝나고 서재응은 15승이 목표라고 인터뷰했다. 이 때 서재응 VS 정근우 3차 대전을 기대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6월 18일 문학 SK전에서 스코어 3:2로 KIA가 힘겹게 앞서고 있었던 9회말 1사 1, 2루 상황에서 마무리로 올라왔으나 조동화에게 초구 끝내기 2루타를 맞았다. 이 날 승이 날아간 윤석민은 분한 마음에 락커룸을 손으로 가격했다가 전치 6주 부상을 입게 되었다.

6월 20일 선발 투수로 나와 6회 2실점하고 강판되었는데, 이 상황에서 욕하는 것(F word)이 중계방송에 잡히고 말았다.

8월 4일에는 3일 쉬고 등판하여 6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그러나 나오는 불펜들마다 불을 질러서.. 무등예수 지못미. 그렇지만 얻어맞은 불펜투수들을 토닥이고 격려하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래서 무등예수란 별명을 굳힘과 동시에 까방권을 얻었다.

8월 17일 넥센전에서 6이닝 무실점 호투로 시즌 7승을 수확하였다.

8월 27일 SK전에서 6이닝 무실점 하고 KIA 타선이 웬일로 김광현한테 2점이나 뽑아 승리투수가 될 듯 했으나 구원투수로 올라온 김희걸이 승을 날렸다. 결국 이 경기는 최희섭 타석에서 고효준의 끝내기 밀어내기 볼넷으로 KIA가 이겼고, 안영명이 어부지리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9월 15일 윤석민의 024(⅔이닝 4실점)에 백인호 신종길, 김선빈이 합작한 뇌주루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따내며 시즌 9승째를 챙겼다.

2010 시즌을 보면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시즌이 막판까지 가는데도 10승을 못 챙겼을 정도로 불펜진 방화의 피해를 많이 입었다.

결국 시즌 최종 성적은 140이닝 9승 7패 ERA 3.34 WHIP 1.16으로 10승만 못했을 뿐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WAR 또한 2010 시즌 KIA에서 가장 높은 4.32로 16승 투수인 양현종을 제치고 실질적인 에이스 역할을 했다는 것이 중론. BB/9 또한 1.86으로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들 중 1위로 화려한 제구력을 뽐낸 시즌이었다.

5.4. 2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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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2012 시즌

불펜진도 불펜진이지만, 선발진에서도 양현종이 부상으로 빠지고 용병으로 데려온 앤서니 르루 호라시오 라미레즈의 기량도 의문인[11] 상황에서 윤석민과 함께 풀타임 선발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로 꼽혔다. 시즌이 개막하자 실제로 팀의 기대에 부응하는 성적을 내고 있다. 하지만 승수는 그의 투구내용에 걸맞지 않았으니..

개막전 선발 투수로 나왔던 4월 7일 문학 SK 와이번스전에서는 수비진의 실책과 타선의 불발로 인해 SK전 연승이 깨지며 패전의 멍에를 안았다.

4월 13일 LG 트윈스전에서는 박용택의 솔로 홈런에 의한 1실점을 제외하면 준수한 투구 내용을 보이며 5이닝 1실점으로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었지만 KIA의 火펜진의 방화로 인해 승리요건이 날아가는 불운을 겪었다. 이 날, 팀은 레다메스 리즈의 볼질로 8:6 승리를 거두었다.

4월 19일 목동 넥센 히어로즈전에 와서야 겨우 1승을 챙겼다. 하지만 서재응이 7이닝을 1실점으로 틀어막고도 7회 이전까지 KIA 타선이 홍재호의 솔로홈런으로 인한 1득점만을 기록하면서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어떨까 조마조마했던 것이 사실.

6월 26일 잠실 LG 트윈스전에서 매우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날 KIA는 공식적인 실책 3개와 기록되지 않은 실책까지 수비가 상당히 불안정했다. 특히 4회가 절정이었는데, 윤완주가 송구 실책으로 주자를 내보냈고 김상훈은 이닝을 마무리 할 수 있었던 파울 플라이를 놓쳤다. 5회에도 조영훈이 2사에서 실책으로 만루위기를 빚었다. 그러나 서재응은 에러가 나올 때마다 에러한 선수를 격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실책을 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윤완주를 향해 크게 이름을 부르며 고개 숙이지 말라는 제스처를 보낸 것은 리더십의 절정으로 찬양받았다. 결국 서재응은 위기를 스스로 돌파하며[12] 에러로 인한 실점을 하지 않고 4승째를 올렸다. #

9월 18일 광주 두산전에서는 7이닝 74투구수 2피안타 1볼넷 3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였으나[13] 불펜 투수들[14]이 불을 지르며 8승이 날아가버렸다. 승리가 날아갔음에도 오히려 특유의 아빠 미소로 불펜 투수들을 격려하는 모습으로 KIA 팬들의 안구를 촉촉하게 만들었다. 역시 대인배... 이 날 경기는 2:2로 무승부로 끝났다. 이 날 경기로 그의 평균자책점은 2.83이 되었으며, 순위는 류현진과 공동 3위, 토종 투수들 중에서는 공동 1위가 되었다. 여담으로 류현진도 이날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9월 23일 목동 넥센전에서 9이닝 투구수 110개 3안타 1볼넷으로 프로 통산 첫 완봉승을 올렸다. 이 시점에서 36이닝 연속 무실점, 선발로는 35이닝 연속 무실점 중. 선동열의 선발 37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 경신이 눈앞에 왔다.

9월 30일 군산 롯데전에서 9이닝 122투구수 30타수 5피안타 1사사구 6탈삼진 무실점 무자책점으로 완봉승을 거두면서 2경기 연속 완봉승으로 시즌 9승째를 올렸다. 선동열의 37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을 경신하였고, 기록을 44이닝으로 늘렸다.[15] 또, 평균자책점 2.57인 셰인 유먼을 제치고 2.49를 기록하며 평균자책점 2위에 올라섰다.

10월 6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1회초에 실점하며 연속이닝 기록도 깨지고 8이닝 4실점하며 스코어 4:3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시즌 10승에도 실패하고 평균자책점 순위도 4위까지 떨어지며[16] 결국 9승 8패로 또 다시 시즌 10승을 달성하지 못한 채 시즌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2016 시즌 은퇴식 날에 중계석에서 밝힌 바로는 제일 아쉬웠던 시즌이 바로 이 2012 시즌이었다고 한다.

5.6. 2013 시즌

WBC 후유증 때문인지, 시즌 초반에는 다시 서재앙 모드로 돌아오며 KIA 타이거즈 팬들에게 욕을 먹었다.

특히나 시범경기부터 주전 포수 자리에 오르내리던 이홍구를 갈구는 장면이 자주 목격되었다. 이닝이 끝난 후 이홍구와 서재응이 덕아웃에 들어가며 볼배합에 대해 설교하는 모습 뿐 아니라 덕아웃에서도 썩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굳은 표정에 열중쉬어 자세를 하며 서재응에게 한 소리 듣던 이홍구의 모습은 압권. 덕분에 자기가 못하는 걸 왜 후배 자책하느냐고 누리꾼들에게 대차게 욕 먹으며 나이스가이 이미지를 스스로 깎아먹었다. 그만큼 자신이 뿌리는 공에 대해 불안감과 압박감이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정규 시즌이 시작되는데...

3월 31일 무등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5⅓이닝 87투구수 6피안타 1피홈런 2사사구 4탈삼진 6실점(5자책)으로 부진, 5⅔이닝 2실점을 기록한 고교 후배 김병현과의 선발 맞대결에서 패했다.

4월 7일 사직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5이닝 79투구수 5피안타 4사사구 1탈삼진 무실점 무자책점을 기록하여 승리 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매 이닝마다 주자를 출루시키며 꾸역꾸역 이닝을 막아냈기 때문에, KIA 팬들로부터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래도 출루한 김문호를 견제로 2번이나 잡아내며 괜찮은 견제 능력을 보여 줬다는 게 다행.

4월 25일 마산 NC 다이노스전에서 다리 상태가 안 좋은데도 이닝을 꾸역꾸역 먹는 모습[17]으로 팬들을 걱정하게 하기도 했지만, 5이닝 5피안타 1피홈런 3볼넷 2탈삼진 1실점 1자책점으로 시즌 2승을 챙겼다.

5월 1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서 간만에 좋은 피칭 내용을 선보였고, 7이닝 6피안타 1볼넷 1탈삼진 1실점(1자책)으로 3승을 챙겼다.

특히 이 날 선발 출장한 포수 차일목의 리드에 만족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5월 18일 잠실 LG 트윈스전에서는 2회를 제외한 매 이닝마다 안타를 맞으며 득점권에 몰렸으나,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보이며 5⅔이닝 8피안타 무사사구 2탈삼진 1실점(1자책)을 기록했고 필승계투조가 아슬아슬한 리드를 지켜 주면서 4승을 챙겼다. 2012년과 비교했을 때 승수를 올리는 페이스가 상당히 빠른 편.

그러나....

자신의 생일5월 24일에 열린 무등 NC 다이노스전에 선발로 등판했으나, 생일빵을 제대로 얻어맞으며 완벽하게 박살났다. 4이닝 동안 101구를 던져 9피안타 3사사구 10실점(10자책)으로 최악투를 기록하며 조기 강판당했고, 결국 KIA가 패하며 자신의 생일에 선물 대신 굴욕적인 패전의 멍에를 썼다. 말 그대로 탈탈탈 털리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구속도 안 나왔고, 제구까지 망하면서 완벽히 무너졌다.

재미있게도 원정 경기와 홈 경기에서 극단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이 날 경기 후 기준)
  • 원정 경기 : 27이닝 4승 ERA 1.33 28피안타 10사사구 9탈삼진 4실점 4자책
  • 홈 경기 : 18이닝 3패 ERA 11.00 26피안타 9사사구 7탈삼진 24실점 22자책

10실점하며 제대로 생일빵을 얻어맞고 패전 투수가 된 후 나간 기사에서는 서재응의 별명인 " 재앙"을 영어로 한 disaster를 본떠서 서재스터라는 댓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서재응 외에도 KIA의 유부남 선수들 대부분이 홈 경기에서 심각하게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6월에 접어들면서도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6월 30일 삼성과의 경기에서는 사실상 경기가 거의 다 기울어진 상황에서 나와 배팅볼 투수 수준으로 두들겨 맞는 등 팬들의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다가 8월 9일 NC 다이노스전에 선발 등판하여 7이닝 동안 5안타를 내주었으나 1실점(1자책)으로 잘 막았으며, 팀도 승리를 거두게 되어 오랜만에 시즌 5승째를 따냈다.

그러나 이후 8월 15일 두산 베어스와, 8월 24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선발 경기에서 모두 패하면서 시즌 7패째를 떠안았다. 이후 경기에서도 부진한 투구를 보여 9패째를 기록했고, 결국 9월 9일 1군에서 제외된 후 시즌을 마감했다.

시즌 성적은 1군 19경기 5승 9패 84이닝 5피홈런 116피안타 36탈삼진 33사사구 평균자책점 6.54로,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다.

시즌 후 천안에 가서 시구를 하면서 타어강을 전염시켰다.

5.7. 2014 시즌

스프링캠프에서는 선발로 나왔지만 이내 더는 선발로 나올 수 없는 상태라고 판명됐는지 불펜으로 전향했다.

4월 2일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스코어 7:7인 9회초에 등판하여 2이닝 37투구수 2피안타 3사사구 1실점 1자책점을 기록했고, 팀이 스코어 8:7로 지면서 이날의 패전 투수가 되었다.

4월 10일 넥센전에서는 팀이 1:0으로 지던 8회말에 올라오지만 박병호에게 솔로 홈런을 맞고 나서 신나게 털려버려 팀이 9회초 2점을 뽑아냈지만 결국 5:2로 패하는 단초를 제공.
5월 4일 넥센전에서는 팀이 4:2로 지던 9회초에 올라오지만 강정호에게 솔로 홈런을 맞고 나서 이성열에게 투런홈런을 맞으며 신나게 털렸지만 팀이 9회말 이대형의 1타점 적시타, 고영우의 무사만루 희생플라이와 브렛 필의 쓰리런으로 동점을 만들고 연장전에서 김주찬의 끝내기 안타로 패전을 면했다.

결국 2군으로 내려갔는데 2군에서도 신나게 털려서 은퇴가 임박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일단 선발 준비를 한다고 하지만...

2군에서도 차도없이 전반기를 보낸 가운데, 후반기 들어 데니스 홀튼의 방출로 급하게 1군으로 콜업되었다.

NC전에서 1년만에 선발로 등판. 왜 2군에만 있었지 싶을 정도로 그럭저럭 5선발급으로 나쁘지 않은 노련한 투구를 보여주었으나, 수비실책으로 5이닝 3실점 후 강판. 꽤 아쉬움이 남는 투구였고 이후로는 불펜으로 전환해서 그럭저럭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정도의 투구를 보여주며 이닝을 먹어주고 있다. 2013년에 이어 노쇠화가 진행된 것이 뚜렷하게 보인다는 것이 중평. 더 아쉬운 점은 서재응이 파이어볼러 스타일이 아닌 노쇠화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는 제구파, 기교파 투수임에도 1~2년만에 처참한 수준으로 성적이 폭락하였다는 것이 더욱 큰 아쉬움이다.

그리고 2014년 노쇠화의 영향으로 불펜으로 전환함에 따라, 서재응의 염원이던 한 시즌 10승은 결국 꿈으로 남게 되어 선수 개인에게도 굉장히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게 되었다. 올 시즌 최종 성적은 16경기 32⅓이닝 무승 2패 2홀드 평균자책점 6.40으로 그야말로 처참했다. 팬들은 저딴 성적을 2년 연속 내고서도 억대 연봉 쳐먹는다고 깠다.

그리고 시즌 후 넥센 히어로즈의 비활동기간 훈련 금지 규정 위반을 들먹이면서 그 책임을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에게 돌리는 등 온갖 떡밥을 남겼고, 이 떡밥으로 인해 롯데 선수단 CCTV 사찰 사건과 안치홍 임의탈퇴 건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면서 훈련 금지 규정만을 들먹이며 억대 연봉 선수만 배불리려 한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고, 그렇게 구단들과 전 구단 팬들까지 모두 서재응과 선수협에게 등을 돌리면서[18] 서재응은 사실상 재기가 힘들어졌다.

그런데 2억 원에서 40%가 삭감돼서 1억 2천만 원을 받게 되어 또 억대 연봉을 받는 것이 결정됐다. 제 몫을 한 김병현의 경우는 오히려 동결될 가능성이 큰 편. 비슷한 성적을 냈고, 나이도 비슷한 타팀의 불펜투수들과 비교해보자면, 넥센의 송신영은 3억 원에서 1억 5천만 원으로 반토막이 났고, 이정훈 역시 1억 원에서 5천만 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NC를 보면 이혜천은 1억 원에서 9천만 원으로 10%가 깎였으며, 박명환은 5천만 원에서 4천만 원으로 깎였다. 서재응의 삭감폭이 어느 정도 큰 편이나, 타 선수들에 비해 여전히 연봉이 비싼 편이었다.

팬들은 최희섭조차 연봉이 1억 원에서 7천만 원으로 삭감되었는데, 왜 한 것도 없는 선수에게 1억 2천씩이나 주냐면서 반발하였다.

5.8. 2015 시즌

2군에서 출발하였으나 퓨처스리그에서 17이닝 1자책 ERA 0.53의 빼어난 피칭으로 콜업, 4월 25일 두산전(5⅓이닝 2실점), 5월 2일 SK전(5⅓이닝 1실점)으로 승리를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실점을 최소화하면서 두경기 모두 팀 승리의 발판을 놓았다.

5월 9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 선발로 등판했다. 1⅔이닝동안 2자책을 기록했다.

잠시 2군에 내려갔다가 복귀한 날인 6월 3일에 두산 베어스를 상대해 7이닝 1실점(1자책)으로 시즌 첫 승을 챙겼다! 무려 662일만의 승리. 7이닝까지 82구로 던져 더 던질 수 있었지만 김병현에게 다음 투수들도 투구감각 익혀야 되니 그만 던져라는 말을 듣고 그만 던졌다고 한다. 이 경기에서 던지고 바로 말소되면서 신인투수 박정수와 바턴 교체를 했다.

다만 팀 리빌딩 과정이고 서재응이 오래 던지기에는 나이가 있기 때문에 1군에 자주 있지는 않는다. 선발 등판 시에 1군에 등록되고 그 다음날 말소되는 식. 대신 선수단과 동행을 하면서 플레잉 코치 식으로 선수단을 집결하는 응원단장 역할을 하고 있다. 5선발 체제에서 5번째 선발 자리를 두고 서재응과 다른 선수가 번갈아서 나오는 방식.

6월 18일 LG전에서도 6이닝 1실점의 역투를 펼쳤으나 물빠따들이 점수를 못 내며 ND로 물러났다. 팀은 패배. 10일 로테이션으로 던지고 있다는 걸 감안해도 이번시즌 평균자책점 2.49로 터지지 않는 타선에 승운을 못 챙기고 있을 뿐 매우 우수한 투구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끔찍한 부진으로 은퇴하라는 소리까지 나왔던 지난 2년간을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왕년의 에이스의 부활. 등판하지 않을 때에도 팀 케미스트리를 다잡아 주는 고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매우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6월 24일 NC전에 선발 투수로 출전하여 5이닝 9피안타 4볼넷 1홈런 6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이날 NC 나성범의 1회초 선제 투런홈런을 더불어 1회에 3실점을 하였고 2회말에는 신종길이 답이 없는 수비를 연달아 보여주었는데 김종호의 타구를 신종길이 타구판단 미스로 신종길의 키를 넘어가 주자 2명이 있던 1,2루 상황에 주자 모두를 들어오게 했다. 그리고 이 수비의 실책들은 실책이 아닌 안타로 기록되었다. 5회에 1실점을 추가로 하였고 결국 손민한과의 노장선수 대결은 손민한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7월 5일 kt전에 선발 투수로 출전하여 4⅓이닝 8피안타 1볼넷 1홈런 5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부진은 계속되어 7월 11일 SK전에서도 1⅓이닝 3실점으로 물러났다. 날이 더워지며 체력이 다한 탓인지, 거듭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평균자책점은 10점까지 올라갔다. 11일 등판은 서재응이 평소 SK에게 강한 것을 고려해 로테이션을 깬 표적등판이었음에도 크게 깨지며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3경기 연속 부진한 투구로 다음날 1군에서 말소되었다. 이번에는 이전처럼 1군 콜업전 등록하고 등판 후 말소하는 식이 아닌 컨디션을 회복하기 위한 2군행으로 콜업 일정은 미정. 대신 콜업된 투수는 바로 한기주.

한달만인 8월 16일 선발등판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폭우로 취소, 다음날 그대로 선발등판한다.

다음날 선발인 8월 17일 경기에서는 3⅔이닝 2실점 5피안타 1탈삼진 1볼넷 63투구수 후 조기 강판되었다.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4회 폭투가 나오며 분위기가 안좋아지자 빠른 퀵후크를 통한 교체로 마운드를 김광수에게 내주게 되었다. 김광수가 서재응의 책임주자를 불러들이지 않아 추가 실점은 없었지만 팀은 이 실점이 결승점이 되며 역전을 하지 못하고 패했다.

그리고 이 경기가 서재응의 2015년 마지막 선발 등판이 되었다.

이후 2군으로 다시 강등, 콜업되지 못한 채 시즌을 마쳤다. 9경기 선발등판 40이닝 1승 4패 ERA 4.95. 시즌초 오래간만에 왕년의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으나 날이 더워지며 체력과 구위하락을 이기지 못한 것이 아쉬운 시즌.

시즌이 끝나고 은퇴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아직 은퇴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KIA 구단에서도 서재응의 입장을 최대한 배려해 주고 내년까지 선수생활을 이어나가게 해 줄 입장이다. 2015년 12월 11일 5,000만원 삭감된 연봉 7,000만 원에 재계약했고, 2016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겠다고 밝혔다.

5.9. 은퇴

2015년 선언한 대로 현역 마지막 해. 만 39세가 되는 해이다. 왕년의 대투수는 선수생활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을지?...라고 생각했으나 스프링 캠프 중인 2016년 1월 28일에 결국 은퇴를 결정했다. 그리고 선수협회장 자리도 이호준에게 넘겨주고 선수로서의 삶을 마무리지었다. 스프링캠프에서의 구위 등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듯. 은퇴 후 계획은 마땅히 정해지지 않았으나, 구단에서는 코치가 되고 싶다고 하면 연수도 보내주고 적극적으로 지원해 줄 것이라고 한다. 한편, 서재응의 입담이 상당히 뛰어나기 때문에 방송국에서도 해설 제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이후 은퇴에 대한 비화가 나왔는데 원래는 2015 시즌을 마치고 마무리 훈련부터 코치로 합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선수협회장 업무가 남아있어 일단 선수로 계약하고 선수협회장 이임 등 정리를 한 뒤 16시즌 스프링캠프 때부터 코치로 합류하겠다고 구단과 합의했는데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선수로 계약한 상태에서 코치로 전환하는 게 복잡하여 그냥 한 시즌 더 선수로 뛰라는 제의를 받았다. 이를 들은 서재응은 아직 코치로 준비가 안되었고 2군에서 말년선수 노릇하는 것도 그렇다며 은퇴를 결정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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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 광주 한화전에서 최희섭과 함께 합동은퇴식을 가졌다.

6. 국가대표 경력

6.1.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뉴욕 메츠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미국으로 건너갔던 1998년 말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대표팀에 발탁되어 처음으로 태극 마크를 달았다. 당시 대표팀 엔트리에서는 박찬호와 함께 유이한 해외파 신분.

12월 7일 대만과의 예선전에서 구원 등판해 3⅓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대만 킬러의 모습을 보였다. 최종적으로 대표팀이 일본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서재응도 병역특례를 받게 됐다. 대회 성적은 3경기 7⅓이닝 2승 1실점 6탈삼진.

6.2.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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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뉴욕 메츠에서의 화려한 성적[19]을 기반으로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에 선출되었으며, 14이닝 1실점 2승 무패 ERA 0.64 WHIP 0.71[20]을 기록했다. 국가대표팀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내면서 코리안 특급 박찬호를 마무리로 돌릴 수 있게 했으며, 두 메이저리거의 활약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WBC 4강이라는 위업을 달성하게 되었다. 일본을 이긴 이후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는 세레머니를 했는데, 이것이 이후 WBC의 전통이 되어 다른 국가대표 팀도 자신들의 상징을 마운드에 꽂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6.3.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모처럼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참가했지만, 대한민국 타이중 참사를 겪고 예선에서 광탈하는 바람에 뭘 제대로 해 보지도 못하고 귀국해야 했다.

7. 연도별 성적

7.1. MiLB

  • 한 연도에 동일 구단 산하 여러 레벨의 기록이 존재할 경우, Rk → A- → A → A+ → AA → AAA 순으로 서술.
역대 기록(투수)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8 GCL 메츠(Rk) 2 5 0 0 0 0 - 0.00 4 0 0 5 0 0 0.80
세인트루이스 메츠(A+) 8 35 3 1 0 0 .750 2.31 26 2 13 37 13 9 1.03
1998 시즌 합계 10 40 3 1 0 0 .750 2.03 30 2 13 42 13 9 1.00
1999 세인트루이스 메츠(A+) 3 14⅔ 2 0 0 0 1.000 1.84 8 0 2 14 3 3 0.68
2001 6 25⅓ 2 3 0 0 .400 3.55 21 2 6 19 11 10 1.07
빙햄턴 메츠(AA) 12 60⅓ 5 1 0 0 .833 1.94 44 3 17 47 14 13 0.91
노폭 타이즈(AAA) 9 47⅓ 2 2 0 0 .500 3.42 53 4 9 25 18 18 1.25
2001 시즌 합계 27 133 9 6 0 0 .600 2.77 118 9 32 91 43 41 1.06
2002 빙햄턴 메츠(AA) 1 5 0 0 0 0 - 5.40 5 1 1 6 3 3 1.20
노폭 타이즈(AAA) 26 128⅔ 6 9 1 0 .400 3.99 145 14 25 87 66 57 1.30
2002 시즌 합계 27 133⅔ 6 9 0 0 .400 4.04 150 15 26 93 69 60 1.29
2004 노폭 타이즈(AAA) 4 22⅓ 0 2 0 0 .000 2.82 22 1 10 20 7 77 1.34
2005 19 121⅔ 7 4 0 0 .636 4.29 126 13 31 111 64 58 1.28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7 더럼 불스(AAA) 17 97⅔ 9 4 0 0 .692 3.69 98 8 17 64 42 40 1.15
<rowcolor=#373A3C> MiLB 통산
(7시즌)
107 563 36 26 1 0 .580 3.48 552 48 131 435 241 218 1.18
완투, 완봉 기록
연도 완투 완봉
2002년 1완투 0완봉
MiLB 통산 1완투 0완봉

역대 기록(타자)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2001 빙햄턴 메츠(AA) 12 4 .000 0 0 0 0 0 0 0 0 .000 .000 .000
노폭 타이즈(AAA) 9 3 .000 0 0 0 0 0 0 0 0 .000 .000 .000
2001 시즌 합계 21 7 .000 0 0 0 0 0 0 0 0 .000 .000 .000
2002 빙햄턴 메츠(AA) 1 2 .000 0 0 0 0 0 0 0 0 .000 .000 .000
노폭 타이즈(AAA) 26 11 .182 2 0 0 0 1 1 0 3 .357 .182 .539
2002 시즌 합계 27 13 .154 1 0 0 0 0 1 0 0 .313 .154 .467
2004 노폭 타이즈(AAA) 4 1 1.000 1 0 0 0 0 1 0 0 1.000 1.000 2.000
2005 19 14 .143 2 1 0 0 0 1 0 0 .143 .214 .357
MiLB 통산
(4시즌)
71 35 .143 5 1 0 0 1 3 0 3 .211 .171 .382

7.2. MLB

역대 기록(투수)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fWAR bWAR
2002 NYM 1 1 0 0 0 0 - 0.00 0 0 0 1 0 0 0.00 0.0 0.0
2003 32 188⅓ 9 12 0 0 .429 3.82 193 18 52 110 94 80 1.27 3.2 1.8
2004 24 117⅔ 5 10 0 0 .333 4.90 133 17 52 54 67 64 1.56 0.3 0.7
2005 14 90⅓ 8 2 0 0 .800 2.59 84 9 17 59 26 26 1.11 1.9 3.1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fWAR bWAR
2006 LAD 19 67 2 4 0 0 .333 5.78 75 14 26 49 45 43 1.49 0.0 -0.3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fWAR bWAR
2006 TB 17 90 1 8 0 1 .111 5.00 122 17 34 39 56 50 1.70 0.0 0.7
2006 시즌 합계 36 157 3 12 0 1 .200 5.33 197 31 60 88 101 93 1.61 0.0 0.4
2007 TB 11 52 3 4 0 0 .429 8.13 84 11 20 28 53 47 1.92 -0.2 -1.2
<rowcolor=#373A3C> MLB 통산
(6시즌)
118 606⅓ 28 40 0 0 .412 4.60 691 86 201 340 341 310 1.44 5.2 6.4
완투, 완봉 기록
연도 완투 완봉
2005년 1완투 0완봉
MLB 통산 1완투 0완봉

역대 기록(타자)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bWAR
2002 NYM 1 0 .000 0 0 0 0 0 0 0 0 .000 .000 .000 0.0 0.0
2003 33 51 .098 5 1 0 0 0 3 0 3 .148 .118 .266 -0.2 -0.2
2004 25 32 .156 5 1 0 0 1 2 1 3 .229 .188 .417 0.1 0.1
2005 14 29 .103 3 1 0 0 4 2 0 3 .188 .138 .326 0.0 0.0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bWAR
2006 LAD 17 18 .111 2 0 0 0 0 0 0 1 .158 .111 .269 0.0 -0.1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bWAR
2006 TB 2 1 .000 0 0 0 0 0 0 0 0 .000 .000 .000 0.0 0.0
2006 시즌 합계 19 19 .105 2 0 0 0 0 0 0 1 .150 .105 .255 0.0 -0.1
<rowcolor=#373A3C> MLB 통산
(5시즌)
92 131 .115 15 3 0 0 5 7 1 10 .177 .137 .314 -0.1 -0.2

7.3. KBO

역대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8 KIA 16 79⅓ 5 5 0 0 .500 4.08 90 7 29 45 37 36 1.45
2009 21 79⅓ 5 4 0 0 .556 6.13 101 12 38 53 56 54 1.65
2010 24 140 9 7 0 0 .563 3.34
(5위)
134 10 40 68 53 52 1.16
(2위)
2011 30 130⅓ 8 9 2 2 .471 4.28 144 7 47 84 68 62 1.38
2012 29 160 9 8 0 0 .529 2.59
(4위)
143 7 58 97 51 46 1.21
2013 19 84 5 9 0 0 .357 6.54 116 5 37 36 69 61 1.77
2014 16 32⅓ 0 2 0 2 .000 6.40 45 6 13 18 25 23 1.70
2015 9 40 1 4 0 0 .200 4.95 52 5 13 16 23 22 1.50
<rowcolor=#373A3C> KBO 통산
(8시즌)
164 745⅓ 42 48 2 4 .467 4.30 825 59 275 417 382 356 1.41
완투, 완봉 기록
연도 완투 완봉
2011년 1완투 0완봉
2012년 2완투 2완봉
<rowcolor=#373a3c> KBO 통산 3완투 2완봉


[1] 이 측면 투구 폼은 여러곳에서 서재응의 상징으로 쓰인다. 특히 부가 설명이 제구파 투수라면 100%다. [2] 동생처럼 해태의 지명을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부상으로 선수생활은 금방 접었고, 이후 서울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재직중이다. [3] 여담으로 처음에 계약금 100만 달러를 제시했던 메츠 측에서 서재응의 부상을 알게되자 계약금을 후려쳤다고...그러나 서재응이 타팀으로 가겠다며 배짱을 부리자 135만 달러로 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4] 이 트레이드는 서재응이 팀의 요청을 무시하고 WBC에 나갔기 때문으로 보인다. [5] 메츠 시절 마이너와 메이져를 넘나들며 4년연속 200이닝 이상을 던졌으며 05시즌 후반기의 호투와 WBC 출전으로 피로가 누적되어 결국 구위 하락과 주무기였던 체인지업의 위력 감소로 이어지게 되었다. [6] 훗날 정근우와의 대담에서 오퍼를 보낸 팀이 치바 롯데 마린스로 밝혀졌다. 그러나 가족들이 또 다시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서 대한민국 복귀를 선택했다고 한다. # [7] 1996년에 그를 지명한 연고지 팀 해태 타이거즈의 고졸우선 지명권이 유효한 상태였고, 서재응은 해외진출 선수가 대한민국 복귀시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야 하는 조항이 생기기 1년 전인 1998년에 미국으로 진출했기 때문에 유예 기간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한민국 무대에 별 탈 없이 복귀할 수 있었다. 휘문고를 졸업하고 OB 베어스의 지명을 받은 뒤 고려대학교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갔던 동갑내기 투수 김선우도 같은 케이스다. [8]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서재응이 회고하길, 아내에게 청혼을 할 때 그 집을 보여주면서 청혼했다고 한다. [9] 출처는 KBS N 스포츠의 "나는 야구선수와 결혼했다" 7회. 실제로 당시 서재응의 커리어라면 근 2년 정도는 부진해서 메이저 보장은 어려워도 스플릿 계약 정도는 충분히 따낼 만한 정도이긴 했다. [10] 서재응 본인은 설령 메이저리그였어도 해서는 안될 행동이었다고 말했다. [11] 아니나 다를까, 라미레즈는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염증으로 1달간 경기에 나오지 못하였다. [12] 5회에는 이준호의 호수비의 도움을 받았다. [13] 이날 영혼의 배터리인 김상훈이 2타점을 얻어내며 분투하기도 했다. [14] 8회초 손영민이 장작을 쌓고 한승혁이 주자를 불러들이며 1실점, 9회초에 올라온 홍성민은 잘 던지다가 2아웃에서 오재일에게 동점 솔로 홈런을 맞았다. [15] 노경은도 9월 30일 기준으로 33이닝 무실점으로 이 기록에 도전중이었다. 서재응은 "내가 기록을 못 깨더라도 노경은이 깨줄 것이다"는 마음으로 편하게 던졌다고. [16] 전체 평균자책점 2위를 기록한 노경은이 규정이닝을 채운 토종 선발투수 중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17] 투수 땅볼을 1루로 보낼 때 토스를 하지 못하고 주저앉은 채로 굴려서 송구를 했을 정도였다. 박재홍 해설위원도 서재응의 이런 투혼을 "가슴으로 던지고 있다"고 평했다. [18] 어느 정도냐 하면 은퇴를 생각했었다는 기사에 하나같이 '왜 실천 안하냐'는 댓글이 달릴 정도... [19] 90⅓이닝 8승 2패 ERA 2.59 피안타율 0.251 피출루율 0.285 피장타율 0.383 [20] 여기서 1실점은 멕시코 대표이자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활약한 루이스 알폰소 가르시아에게 맞은 홈런. 롯데와 한화에서 뛴 적이 있는 카림 가르시아와 혼동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도 그럴 만한 것이 당시 멕시코 야구 국가대표팀에는 가르시아라는 이름을 가진 선수가 선발 라인업에만 무려 3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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