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01:17:30

3김저그


1. 개요2. 현역 시절3. 세부 비교
3.1. 개인리그3.2. 프로리그3.3. 다른 저그들과의 비교3.4. 3김저그 서열에 대한 의견
4. 은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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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진락 변태준 마준동 이후 2000년대 후반부터 스타크래프트 저그 라인에서 활약했던 3명의 저그 김윤환, 김정우, 김명운을 말한다.[1] 세 선수 모두 한 차례 개인리그 결승 진출 경험이 있는[2] 드래프트 세대의 상위권 저그들이었다.

이제동 2007년 말부터 저그 최강자로 군림하기 시작하였고, 2009년에 이르러선 아예 스타판 원탑이 되었다.[3] 이때 저그가 황금기를 맞는데, 이제동의 아래로 떠오를 만한 선수들이 공교롭게도 모두 김씨라 3김저그라 불리게 되었다. 어느 한 명이 딱 정한 건 아니고 그냥 셋 다 김씨니까 스타 커뮤니티에서 이렇게 불렀는데 이게 널리 퍼진 것. 3김이라는 말 자체가 우리 국민들에게 익숙한 것도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정착된 용어이다.

사실 3김저그와 비교해 여러모로 우위를 다툴 수 있던 박찬수, 박명수 신동원도 있었다. 박찬수의 경우 MSL 1회 우승, WCG 우승과 스타리그 4강 2회 진출, 프로리그 준우승 1회 등 3김저그가 떠오르기 이전 이제동의 뒤를 잇는 저그 2인자로 꼽히던 선수였다. 김윤환보다 4강 횟수가 1회 적지만 WCG 우승, 팀 단위 대회 준우승까지 전체적인 커리어가 3김저그는 물론 타 종족과 비교해 봐도 우승 1회의 박성균, 박지수보다도 커리어가 높았으며, 개인리그와 WCG에서 모두 우승해 본 만큼 명예의 전당 헌액 가능성도 존재했으나[4] WCG와 MSL 우승 이후 급격한 스막화를 맞이하더니 끝내 조작 사건에 연루되면서 기록이 말소되고 말았다.

동생 박명수는 스타리그 준우승, 프로리그 우승, 준우승 경력이 한 번씩 있고, 꾸준히 양대리그 본선에 진출했다. 테저전에서 이제동을 제외하면 가장 빛난 저그이기도 했으나, 박명수 역시 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기록이 무의미해졌다. 단, 프로리그 우승 또한 통합 프로리그 출범 이전인 SKY 프로리그 2004 3Round에서 기록한 것이며, 박찬수나 신동원과 달리 3김저그 중 말석인 김명운보다도 커리어가 반 수 이상 떨어지는 선수라서 자주 언급이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신동원은 개인리그 우승 1회 - 4강 2회로 김정우, 김명운보다 개인리그 커리어가 앞서지만 전성기가 이들 중 가장 늦은 스타판 말기인 2011년인 데다 신동원이 우승을 달성할 당시 WCG가 이미 스타 2로 전환되는 등 뭔가를 더 보여주기도 전에 스타 1 공식리그가 막을 내린 점[5]과 은퇴 후에 개인방송을 하지 않아 아프리카TV로 유입된 시청자들이 잘 모른다는 점[6] 때문에 보통 3김저그와 함께 묶지는 않았다.

결국 3김저그와 비등했으나 승부조작으로 커리어가 날아간 박찬수를 제외하고 비슷했던 신동원을 포함하여 서열을 정리하면 '' 순이며[7], 박찬수를 포함한다면 '' 순이다.

프로토스 육룡과 비슷한 느낌이 있지만 그 쪽은 육룡 내에서 머리/꼬리를 평가하여 종족 최강자를 나누는데다 최강자 후보인 택뱅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던 반면, 이 셋은 역대 저그 최고 커리어를 보유한 규격 외의 이제동을 일찌감치 원탑으로 놓고[8], 그 다음 가는 사람들을 묶어놓은 드래프트 세대의 저그 2인자 집단[9]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육룡만큼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으며[10], 저그 1인자와의 압도적인 격차로 인해 3김저그를 잘 몰랐거나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11]

다만 육룡도 결성 당시를 기준으로 김택용, 송병구가 수장급이고 나머지와의 차이는 어마어마했으며 막판에 개인리그 우승 2회를 달성해 택뱅과 함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허영무를 제외하면 끝내 나머지 선수( 김구현, 도재욱, 윤용태)들은 개인리그 우승을 추가하지 못하는 등 그 차이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에 3김 저그나 박찬수, 신동원은 중하위권 육룡이나, 드래프트 세대에서 우승 경험이 있지만 명예의 전당에는 헌액되지 못한 박성균, 박지수 정도에 해당하는 위치라고 볼 수 있다.

2. 현역 시절

3김저그의 양대 개인리그 경력
이름 온게임넷 스타리그 MSL
본선 횟수 본선 횟수
김윤환 0 0 2 5회 1 0 1 7회
김정우 1 0 0 5회 0 0 0 3회
김명운 0 0 1 6회 0 1 2 9회
셋을 비교하자면 현역 시절 당시 김윤환을 3김의 수장으로 보면서, 김정우를 중간, 끝으로 김명운을 그보다 낮게 쳐주는게 정설이다.[12]

김윤환이 3김의 수장으로 평가받던 주된 이유는 '우승 1회 - 4강 3회'라는 훌륭한 커리어와 다승 순위 때문이다.[13] 김정우, 김명운과의 상대전적 우위도 있긴 하다. 여기에 셋 중 비공식전 포함 최다전적, 최다승을 기록하고 있는 등 오랜 기간동안 수준급 커리어를 유지했고 온게임넷과 MBC게임 양쪽에서 수준급의 커리어를 보유한 점 때문에, 3김 수장이 김윤환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거의 없다. 상대전적 역시 김명운과는 7:6으로 미세한 우세에 있으며 자신이 우승을 차지했던 아발론 MSL 2009 8강에서 김정우를 3:0으로 셧아웃 시키는 등 김정우와의 상대전적에서도 5:1로 김윤환이 크게 앞서 있다.[14] 다만 2009년 이후로는 테란전이 크게 무너진데다 엔트리 예고제가 폐지되면서 잠시 패왕라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프로리그 성적이 안 좋았다는 점이 약점으로 꼽힌다.[15] 또한 기본기와 피지컬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서 눈썩 경기를 보다 많이 선사한 것도 아쉬운 점.

김정우는 이영호에게 리버스 스윕하며 우승한 임팩트가 있다. 개인리그 커리어가 결국 실력이며 비교의 1순위 잣대가 되고[16], 다전 숫자가 딸리는 만큼 큰 의미는 없지만[17] 비공식전까지 포함할 시, 3종족전 승률이 모두 60% 이상으로 셋 중에서 가장 높긴 하다. 동료 프로게이머들이 높이 평가할 만큼 연습실에서의 잠재력이 상당한데도 불구하고 실제 경기때는 기복이 꽤 큰 편이었으며, 우승을 찍은 뒤에 연이은 양대리그에서 16강, 8강에 머물렀으며[18][19], WCG 2010 한국 대표 선발전마저 탈락하였다.[20] 온게임넷 스타리그 MBC GAME 스타리그 양대 리그가 자리잡기 이전인 99 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 우승자인 최진우를 제외할 시 우승자 출신 중 커리어가 가장 낮은 것이 김정우이다. 우승 외엔 준우승은 커녕 4강 진출도 1번도 못했으며, 8강도 2번 밖에 가보지 못했다.[21] 그 이영호를 결승전에서 잡고도 직후 8강 1번 가보고 더이상 상위 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했으며, 우승 이전에 8강에서 바로 김윤환한테 0:3 셧아웃패를 당하고 우승까지 하는데 일조했다. 거의 대부분의 개인리그에서 광탈이었다는 뜻. 이후 뜬금없이 은퇴를 선언하고 노량진으로 들어가버렸고, 실질적인 전성기가 매우 짧았다. 그야말로 현역 시절에는 반짝 스타였던 것이다.

김명운은 오랫동안 개인리그에서 활약한 김윤환보다도 개인리그 본선 진출 기록이 더 많다는 점을 고평가한다. 그러나 이영호에게 3대빵을 당하는 등 3명 중 유일하게 우승 없이 준우승이 최고 성적이라는 점은 위의 둘보다 높게 쳐 줄 수 없게 만든다. 3김 중 커리어가 가장 떨어진다는 점에서 조진락 중 커리어가 가장 떨어지는 팀 선배 박경락과도 닮았으며, 박경락이 개인리그 3연속 4강 이후 급격히 하락세를 탔던 것과는 달리 꾸준하긴 했는데 우승을 못했다. 프로리그 에결에서 택뱅리쌍을 잡는 등 활약도 많이 했지만 거꾸로 새가슴 소리[22]를 듣기도 했다. 그래도 역대 저그 선수들 중에서 명전 헌액자들 빼고 비우승자 선수 중에 최상위권 선수이기도 하며, 같은 준우승 1회가 최고 성적인 심소명, 한상봉, 박명수, 차명환보다 우위로 평가 받는다.[23] 꼬리이기는 하나 괜히 3김저그가 아닌 셈.[24]

읽다보면 알겠지만 3명 다 기본기, 승부사 기질, 꾸준함이라는 3개 강자의 덕목 중에서 1개만 빠진, 2개씩만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판짜기의 귀재였고 항상 양대리그 중 하나는 시드를 땄지만 다소 부족한 기본기 때문에 OME 경기 또한 많이 보여줬던 김윤환, APM 400을 상회하는 무서운 피지컬에 심리전의 달인이었지만 기복이 너무 심했던 김정우, 본선 진출은 제일 많이 했고 기본기도 좋았지만 새가슴이라서 중요한 경기에서는 매번 패자가 되었던 김명운으로 대변된다. 이 3명이 판짜기랑 피지컬 다 무서운 수준인데다가 5년 동안이나 저그 원탑 자리를 계속 유지한 선수보다 분명한 하위급으로 취급받은건 이런 이유도 있다.[25]

1대1 개인 종목인 만큼 팀 커리어는 의미없긴 하지만 이 셋 중 스타 1이 조금이라도 있는 팀 단위 대회 우승 및 결승 진출 경험이 그나마 있는 선수는 스타 2와 병행 시즌으로 치러진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시즌 2에서 우승한 김정우가 유일하다. 08-09 위너스리그도 있긴 하지만 동일 시즌 프로리그와 비교해서 6개 라운드 중 1개 라운드만 진행한 점, 우승 상금도 최대 1/11[26]인 점 때문에 별로 쳐주진 않는다. 김윤환 같은 경우에는 프로리그 우승 및 결승 진출을 한 경험이 없고, 김명운도 마찬가지로 프로리그 우승 및 결승 진출을 한 경험이 없다. 그나마 스타 2에선 각각 코치, 선수로서 팀이 해체되기 직전인 12-13 시즌에 결승에 진출했다. 스타1에선 김윤환은 경남-STX컵 마스터즈에서 2회 우승, 2회 준우승을 경험하긴 했지만, 이 대회 역시 프로리그와 비교해 보았을 때 위상과 권위가 많이 낮고 비공식전이다. 제대로 된 팀 단위 스타 1 프로리그 우승은 세 명 다 아예 없다. 김정우와 김윤환은 각각 08-09, 09-10 시즌에 정규시즌 5위와 2위를 기록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전적이 있다.

어쨌든 이들이 스타판에 어느 정도의 활력을 불어넣었음은 확실하다. 처음에는 그닥 존재감이 없는 프로게이머들에 가까웠지만[27], 좋은 성적과 더불어 각자의 캐릭터성이 확실히 차이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다지 넓지 않은 드래프트 세대 시절 저그의 선수층을 그나마 채워주는 공이 있는 선수들이다. 막말로 이들마저 없었으면 저그는 조작으로 박찬수& 박명수 쌍둥이마저 날아간 후에는 이제동 단 1명이 다 해먹는 종족으로 남았을 것이다.[28]
  • 김윤환
    양산형 경기가 판치는 스타판 후반기에 기발한 전략을 종종 보여주고 뛰어난 판짜기 실력과 심리전으로 브레인 저그라는 별명이 붙었다.
  • 김정우
    좋은 피지컬에 재재재재경기 끝에 16강을 뚫고 결승에서 이영호를 패패승승승으로 꺾으며 우승하는 큰 임팩트를 남겨 불사조 등의 별명이 붙었다. 단, 김정우의 경우 날카로운 눈매 덕분에 '매'라는 게임 외적인 요소에서 유래한 별명이 더 유행하였다.
  • 김명운
    안정적인 후반 하이브 운영의 진수를 잘 보여주었고, 특히 퀸을 자주 쓰며 잘 활용하여 퀸명운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스타크래프트 2 전환 후의 행보는
  • 김윤환 : 테란으로 종족을 바꿨지만,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결국 다시 저그로 복귀하고 이후 플레잉 코치로 뛰다가 STX SouL 해체 후 은퇴.
  • 김정우 : CJ 엔투스에서 꾸준히 경기에 출전했으나, 기복을 보이며 부진 끝에 2014년 재은퇴.

아쉽게도 3김저그 라인에는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명예의 전당 헌액자가 없다. 개인리그 우승이 없는 김명운은 애당초 명예의 전당 입성을 논할 성적이 못 되며[29] 그나마 이 중 커리어가 좋은 김윤환이 여기에 가장 근접했으나, 최종적으로 헌액되지 못했다.[30] 보통 명예의 전당 헌액 여부를 시대의 1인자 혹은 종족별 1인자였던 선수들을 판독의 기준으로 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어떻게 보면 원탑 저그, 1인자보다는 확실하게 레벨 차이가 나는 격차가 큰 2인자 저그들의 한계일지도 모른다.[31][32]

다만 승부조작으로 기록이 날아간 마재윤을 제외하면 온게임넷 스타리그와 MSL 결승에 둘 다 진출해 본 적이 있거나[33] 우승 1회, 준우승 1회 이상의 커리어를 기록한 선수들은 모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만큼 만약 김윤환과 신동원이 결승을 1번이라도 더 갔거나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도 결승전에 진출했다면 충분히 명예의 전당 헌액을 노려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34]

공교롭게도 3김저그 3명 모두 은퇴 후 의무경찰로 입대해 전환복무로 군 문제를 해결했다. 김윤환, 김명운, 김정우 순으로 전역하여 다시 아프리카TV 개인방송에 복귀해서 현재도 BJ를 하고 있다.

3김저그 간의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기준 상대 전적 리스트.
(공식전/비공식전 포함, 왼쪽의 선수가 앞으로)
김윤환 김정우 김명운
김윤환 5:1/5:1 7:6/7:6
김정우 1:5/1:5 5:1/9:4
김명운 6:7/6:7 1:5/4:9

3. 세부 비교

3.1. 개인리그

(4강, 8강의 상대가 우승자인 경우는 상대의 이름을 굵게 표시)
김윤환 김정우 김명운
우승 아발론 MSL 2009(vs한상봉 3:1)[35] 대한항공 스타리그 시즌 1 2010(vs이영호 3:2)
준우승 ABC마트 MSL 2011(vs이영호 0:3)
4강 EVER 스타리그 2009(vs이영호 1:3) 로스트사가 MSL 2009(vs박찬수 0:3)
하나대투증권 MSL 2010(vs이제동 1:3) 피디팝 MSL 2010(vs차명환 1:3)
박카스 스타리그 2010(vs정명훈 2:3) tving 스타리그 2012(vs허영무 2:3)
8강 빅파일 MSL 2010(vs정명훈 0:3) 아발론 MSL 2009(vs김윤환 0:3) 아발론 MSL 2009(vs한상봉 0:3)
피디팝 MSL 2010(vs신동원 0:3) 빅파일 MSL 2010(vs이재호 1:3) 박카스 스타리그 2009(vs이제동 0:2)
ABC마트 MSL 2011(vs김명운 2:3) EVER 스타리그 2009(vs진영화 0:2)
대한항공 스타리그 시즌 1 2010(vs김정우 0:2)
대한항공 스타리그 시즌 2 2010(vs윤용태 0:2)
16강 대한항공 스타리그 시즌 1 2010 박카스 스타리그 2009 NATE MSL 2010
진에어 스타리그 2011 EVER 스타리그 2009
대한항공 스타리그 시즌 2 2010

3.2. 프로리그

김윤환 김정우 김명운
2005 후기 개인전 0승 2패 총합 0승 5패
팀플 0승 3패
2006 전기 개인전 3승 5패 총합 3승 7패
팀플 0승 2패
2006 후기 개인전 1승 0패 총합 10승 1패
팀플 9승 1패
2007 전기 개인전 4승 1패 총합 13승 10패 0승 1패 총합 0승 1패
팀플 9승 9패 0승 0패
2007 후기 개인전 8승 8패 총합 13승 12패 0승 3패 총합 6승 6패
팀플 5승 4패 6승 3패
2008 개인전 4승 7패 총합 5승 11패 1승 2패 총합 4승 5패 7승 11패 총합 9승 12패
팀플 1승 4패 3승 3패 2승 1패
08-09 40승 21패 33승 17패 30승 31패
09-10 31승 26패 36승 27패 40승 27패
10-11 25승 26패 38승 30패
2012[36] 10승 6패 18승 8패 14승 15패
통산 150승 125패 91승 57패 137승 122패

3.3. 다른 저그들과의 비교

3.3.1. 신동원

2011년 대한민국 e스포츠 대상 올해의 저그 상을 수상한 신동원보다 개인리그 커리어, 프로리그 다승을 모두 앞서는 선수는 김윤환 뿐이다. 김정우, 김명운은 프로리그 승수는 앞서지만 개인리그 커리어는 뒤쳐진다.[37]

네 명 중 우승 경력이 없는 김명운은 제일 아래라는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고, 우승자 세 명을 집중해서 비교해보자면

1. KeSPA 랭킹
  • 김윤환 : 3위 7회 포함 5위 이내 10회
  • 김정우 : 2위 1회, 3위 1회 포함 5위 이내 11회
  • 신동원 : 2위 5회, 3위 2회 포함 5위 이내 13회

2. 개인리그 커리어
  • 김윤환 : 16강 2회, 8강 3회, 4강 3회, 우승 1회
  • 김정우 : 16강 3회, 8강 2회, 우승 1회
  • 신동원 : 16강 4회, 4강 2회, 우승 1회

3. 프로리그 다승
  • 김윤환 : 150승 125패[38]
  • 김정우 : 91승 57패
  • 신동원 : 59승 48패

일단 김윤환이 세 명의 우승자 중 탑을 달리는 건 당연히 알 수 있다. 중요한건 김정우와 신동원의 비교인데, 개인리그 커리어 차이와 KeSPA 랭킹 차이, 개인수상 차이 때문에 신동원을 위로 두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 때문에 스갤에선 '뇌참매퀸'이라는 용어가 네 명의 서열을 정리한 것으로 사용됐었다.

사실 김씨 3명 묶어서 부르는게 편해서 적당한 김명운이 들어갔을 뿐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일부분은 맞지만 대부분은 틀린 이야기다. 3김이라는게 입에 달라붙어서 김명운을 넣은건 맞지만, 신동원은 2011년에 치고 올라온거라 그 전까지는 언급도 없었다. 단지 김명운의 결승 진출이 신동원보다 늦었을 뿐 3김저그라는 용어가 09-10 시즌 즈음에 쓰이기 시작한건데, 당시에 이제동을 제외한 저그 TOP3에 김명운이 들어간건 맞다.

3.4. 3김저그 서열에 대한 의견



  • 김정우의 의견은 개인 유튜브에 따로 업로드 되어있지 않으나, 아프리카TV 개인 방송에서 3김저그 서열과 관련하여 일부 시청자들끼리 수장을 놓고 이견을 보일 때, "그거 서열 따져서 뭐하냐 이 양반들아. 제이디 미만 잡이야, 이야기도 꺼내지마 창피하니까"라고 직접 언급한 바 있다.

4. 은퇴 이후

김윤환은 스타크래프트 2로만 진행된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12-13에서 코치로 활동면서 팀의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을 함께했고[39] 김정우, 김명운, 신동원은 스타2를 하다 현역 프로게이머 은퇴 이후, 3명의 김씨는 아프리카TV 개인 방송을 하고 있고, 신동원은 아주 잠깐 개인 방송을 하다가, 회사원이 되었다. 그리하여 현재 아프리카 스타판에서도 3김저그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 방송에서 보여주는 3김저그의 모습은 현역 때와 비교하면 평가가 많이 바뀌었다. 현재 아프리카TV에서 3김저그라는 단어에 걸맞은 명성을 가진 게이머는 김윤환이 아니라 김민철이며, 이들 3명(김민철, 김명운, 김정우)은 아프리카판에서 부동의 탑3 저그이기도 하다. 은퇴 이후의 아프리카 스타판 커리어 역시 ASL-KSL 체제에서 김민철 3회 우승, 김명운과 김정우가 각각 2회 우승을 달성한 바 있다.
한때 3김저그 수장이었던 김윤환은 암센세라는 새 별명에서 보듯 자타공인 꼴찌로 추락했다. 은퇴 후 입대하여 전역한 뒤 스타1을 잡았기 때문에 폼이 떨어진 건 그렇다 치더라도 전역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한 실력으로 맨날 못한다고 까이고 있다. 브레인은 아직 어느정도 살아 있는지 저저전에서 빌드를 자주 먹거나 심리전과 판짜기로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서는[40] 발전투와 멀탯으로 견제에 휘둘리다 역전패 당하는 경우가 많다.[41][42] 그래도 실력이 내려간 덕(?)에 그것이 암센세라는 별명을 탄생시켜서 하나의 캐릭터로 잡힌 데다가 화려한 말빨 및 준수한 외모까지 갖춰 개인 방송은 나름 흥하는 중이다. 그래도 현역 시절의 판짜기랑 전략 준비성은 죽지 않아서 다른 프로들과의 단판전이나 개인리그에서 예선을 뚫으면 의외의 다크호스가 되기도 하는데 ASL 시즌 7에서 예상 밖의 선전[43]으로 8강에 진출했다. 비록 8강에서 변현제에게 1:3으로 탈락했지만 변현제는 김윤환의 실력 저하를 감안해도 특히 상성이었던지라 1세트를 딴 것도 나름 선전했다고 평가받았다. 하지만 이후부터는 대회에서의 선전마저 완전히 없어져 일말의 기대감도 사라진 상태이며, 그의 개인방송도 랜능크 등 스타 관련 컨텐츠가 설 자리가 거의 없어지고 점점 LOL 방송 비중이 늘고 있다. 2020년 12월 이후부터는 사실상 스타크래프트 컨텐츠를 완전히 접고 LOL, 종합게임 BJ로 전향하여 활약하는 중. 그러나 개인단위 리그인 ASL은 계속 도전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나, 이미 LOL 방송이 완전히 자리 잡은 상태에서 다시 스타크래프트 연습 방송을 할 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며, 설사 도전한다 하더라도 큰 공백기로 실력이 훨씬 더 떨어졌음은 기정사실이기에, 이전보다 나은 성적을 거두기는 매우 힘들어 보인다. 이후 스타 대학교 열풍이 불며 다시 스타 방송 비중이 크게 늘었지만, 안타깝게도 실력은 계속해서 바닥을 치는 중이다. 그래도 브레인 저그의 이름 끝발은 남아서 오랜만에 진출한 ASL S16에서 한참 위라고 평가받는 김민철과 정윤종을 잡고 16강에 올라갔다. 비록 이전같이 8강은 못가고 16강에서 떨어졌지만 정상급 저그중 한명인 박상현을 잡고 정영재를 간담 서늘하게 만드는등 아직 전략은 죽지 않았다는걸 보여줬다.

김정우는 ASL 2회 우승을 차지하며 아프리카 스타판에서 정상급 저그까지 뛰어 올랐다. ASL 전신 대회인 반트 스타리그에선 김택용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러다 한동안 16강, 24강에 계속 머물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으나, 결국 ASL 시즌6 결승에 올라 이영호를 잡고 우승해버리며 부진을 씻어내는데 성공하였다. 현역 시절과 마찬가지로 기복은 여전하지만, 특유의 날카로운 심리전과 소위 완전히 긁히는 날의 실력에 태클을 거는 사람은 없다. 군 입대 직전까지도 김민철과 함께 저그 강자 자리를 양분할 정도로 좋은 폼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의경 전역 이후 공백기, 손목 부상으로 인한 수술 여파와 그로 인해 떨어진 연습량 등으로 실력이 크게 떨어져 현재는 스타 밀리를 예전만큼 오랜 시간 플레이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김명운도 ASL 2회 우승을 차지하며 아프리카 스타판에서 정상급 저그까지 뛰어 올랐다. 한동안은 온라인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오프라인 대회 성적이 영 시원찮았다.[44] 현역 시절에도 3김저그 중 가장 기본기가 탄탄하고 기복이 적다는 평가를 받았던 만큼 평소 방송할 때의 실력은 매우 뛰어났지만, 오프라인에서의 새가슴 기질과 판짜기 부족이 약점으로 꼽혔다. 그러나 의경 전역 이후 서서히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격차를 줄이더니 ASL 시즌9에서 김택용, 도재욱, 이영호, 이재호 등을 꺾고 데뷔 약 13년 만에 생애 첫 우승까지 차지한 것에 이어서 ASL 시즌10에서 저그 최초로 ASL 2시즌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오프라인 대회에서도 좋은 폼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2023년부터는 기량 하락으로 오프라인 무대에서 이전만큼의 성적을 거두진 못하고 있다.

한편 신동원은 네 명 중 스타2로 전향하고 제일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졌다. 아직 한국 선수들이 막강했을 2015년이긴 하지만 해외 대회인 2015 WCS Season 2[45]에서 우승함으로써 스타1, 스타2 1티어급 대회를 모두 우승한 두 번째[46] 선수가 되었고, 그 해 말에 최고 권위 대회인 2015 WCS Global Finals에도 진출해서 8강까지 올라갔다. 이듬해인 2016년에도 진출했지만, 결혼식 때문에 진출을 포기했고, 은퇴를 선언한다.

참고로, 은퇴 후 3김저그 세 선수 모두 아프리카 ASL 다전제에서 프로토스 변현제에게 매우 약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ASL 시즌7 8강에서 김윤환이 변현제를 만나 1:3으로 패배했고, 김명운도 ASL 시즌11, ASL 시즌12 4강에서 연달아 변현제에게 1:4로 패한 바 있다. 끝으로 김정우 역시 ASL 시즌7 4강에서 2:3으로 패배했으며, ASL 시즌16 4강에서 변현제를 다시 만나 0:4로 완패했다. 이 때문에 역상성임에도 이 셋의 천적으로 군림하는 변현제에게 '3김 슬레이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여담으로, 다른 김씨 성의 저그인 김민철은 변현제에게 약하지 않으며, ASL 시즌16 결승전에서도 변현제를 4대 1로 완벽하게 제압하고 우승하였다.


[1] 다만 앞선 라인들이 최강자를 포함한 3인방인 반면, 3김 저그는 원탑 이제동과 성씨가 다르고 전성기가 달랐던 신동원을 제외한 5위 안쪽의 저그 3인방을 묶은 용어이다. 테란의 신이염과 유사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2] 김윤환이 맨 처음으로 2009년 아발론 MSL 2009에서 우승, 이후 김정우가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 1에서 우승, 마지막으로 김명운이 ABC마트 MSL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3] 2007년 말, 온게임넷 스타리그 첫 우승을 차지한 이후 이제동은 2008년 1월부터 2011년 7월까지 43개월 간 단 한번도 KeSPA 저그 랭킹 1위를 빼앗긴 적이 없다. 이 때문에 동 시대에 활약한 3김저그는 개인리그 결승에 진출했던 각자의 전성기 시절에도 독보적이었던 이제동에 가로막혀 1위를 찍은 적이 없다. 그나마 이후 김명운만이 2012년 9월과 10월에 단 2개월 간 1위에 올랐던 경험이 있긴 하다. 흔히 말해 그 당시 이제동은 신계, 이 셋은 인간계 최고 저그 정도. [4] 개인리그 우승과 함께 WCG에서 동메달 이상의 수상 경력이 있는 선수들은 승부조작에 연루된 박찬수를 제외한 전원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개인리그 우승 + WCG 금메달: 박태민, 임요환, 서지훈, 최연성, 송병구, 이제동, 이영호 / 개인리그 우승 + WCG 은~동메달: 기욤 패트리, 박성준, 김택용) [5] 신동원은 스타 1 개인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마지막 저그인데, 그 신동원의 우승보다 김명운의 준우승이 더 늦었다는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점이다. [6] MPL 시즌1 팀 소개 영상 중 CJ 엔투스 파트에서 신동원이 신동욱이라고 나오는 대참사가 있었다. 주최자인 김봉준도 CJ에 아주 잠깐이긴 하지만 몸담았던 적도 있었는데... (다만 김봉준의 경우 하이트 스파키즈 해체 후 CJ 합류를 거부하고 곧바로 다른 팀으로 이적시켜 달라고 했고, 이적 준비 기간 동안 숙소가 아닌 집에 머물렀다고 증언했다.) [7] 실제로 이 단어 역시 현역 시절에 쓰였다. [8] 이제동은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역대 저그 최고 커리어인 양대 리그( 스타리그, MSL) 통산 5회 우승, 4회 준우승을 달성하였다. 당시에 3김저그 세 명의 양대리그 커리어를 모두 합친다 하더라도 2회 우승, 1회 준우승인걸 보면 그 격차가 상당하다는 걸 체감할 수 있다. 심지어 3김저그와 비슷했던 신동원과 박찬수의 양대리그 커리어까지 총 다섯 명을 모두 더한다 하더라도 4회 우승, 1회 준우승인데 이렇게 5 vs 1로 맞붙여놔도 결국에는 이제동 혼자에게 밀린다. 그만큼 그 당시 이제동과 드래프트 세대의 다른 저그들과의 차이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만큼 거대했으며, 드래프트 세대 내에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저그 또한 이제동이 유일하다. [9] 정확히는 본인들이 활약했던 드래프트 세대 한정으로 저그 2인자 집단이다. 이전의 올드 게이머 세대를 포함한 브루드 워 역대 저그 라인에서는 스타크래프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이제동, 박성준, 홍진호, 조용호, 박태민에게 모두 밀린다고 평가받는다. [10] 공교롭게도 정치계의 3김도 처음 묶여 다뤄질 당시 2인자( 김종필)와 대안세력( 김영삼, 김대중) 취급을 받고 있었다. 셋 중 두 명이 리그의 우승에 비견될 수 있는 대통령 집권에 성공하는 것도 오리지널 3김과의 유사점. [11] 당시 스타크래프트를 라이트하게 시청한 사람들이면 3김저그를 잘 모르는 경우가 꽤나 많았다. 실제로 훗날 은퇴 후 개인 방송에서 이영호 이제동조차 3김저그라는 말을 처음 듣는다고 하였다. [12] 김명운 본인도 자신이 3김저그 들어갈 정도는 되지만 그 중에서는 비교적 떨어진다고 종종 언급했다. [13] 우승 1회 - 4강 3회는 오영종, 서지훈, 박태민 등 말석으로 명예의 전당에 등록된 선수들과 거의 동률이다. 유일한 개인리그 우승이 흥행에 실패한 아발론 MSL 2009에서 들어올린 트로피인 데다 저저전만 줄창 하고 우승한 탓에 임팩트가 덜해서 명전에 못들어갔다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김윤환은 저 세 명과는 다르게 우승 1회 이후 개인리그에 결승에 진출한 적도 없고 프로리그, 위너스 리그와 같은 공식 팀 단위 대회에서도 우승하거나 결승에 진출한 적이 없었다. 거기에 다승왕, MVP, 결승전 MVP, 위너스 리그 결승전 MVP 등 개인 수상 커리어도 부족한게 가장 큰 요인이었다. 그 외에도 준메이저 대회인 WCG에서도 메달을 단 하나도 수상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서지훈과 박태민은 WCG 금메달리스트이고, 오영종은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에서 준우승, 2007 후기리그에서 다승왕, 정규 시즌 MVP, 결승전 MVP를 수상했고, 이어진 통합 챔피언전 MVP까지 석권하면서 팀의 유일무이한 우승을 이끌었다. 한마디로 비슷한 개인리그 커리어를 바탕으로 다른 면들에서의 격차가 당락을 결정했다는 것. [14] 다만 김명운과는 5전제에서 2:3으로 패한 적도 있다. [15] 이때 프로리그 6연패, 프로리그 최근 10전 1승 9패 등을 찍었다. [16] 물론 그 이영호를 잡고 우승했으니 1.5회 우승이나 마찬가지라는 등, 이영호를 잡은 것만으로 다른 커리어랑 비교가 안된다는 식의 사고를 가지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 [17] 100전 60승이 200전 120승이 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18] 우승 이후 이어진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 2에서 16강 탈락하였고, 빅파일 MSL에서 이재호에게 1:3으로 패배하며 8강 탈락하였다. [19] 김정우 커리어에서 8강은 기대 이하라거나 낮은 편이라 말하기도 힘들다. 왜나하면 우승 1번 외에는 8강 2번이 가장 좋은 성적이기 때문. 커리어 전체를 놓고 본다면 이때 8강 진출은 오히려 프로게이머 인생 전체에서는 상위 커리어라고 말해도 된다. [20] WCG 2010 한국 대표 선발전에서 스타리그 4강에서는 3:0 셧아웃으로 잘만 이겼던 김구현에게 0:2 셧아웃 당하며 4위에 머물러 선발되지 못하였다. [21] 비슷하게 우승 1회 이외에 8강을 넘은 적이 없던 변길섭 박지수는 그래도 각각 8강에 각각 4회랑 3회 더 진출했다. [22] 이영호 역시 "이 형이 오프라인에서 자신감만 좀 가졌으면 우승 몇번은 했을거다."라는 말은 김명운의 경기를 보면서 자주 할 정도로 오프라인에서 새가슴이다. [23] 스타리그 준우승 1~2회인 장진남, 국기봉, 강도경이나 MSL의 전신인 KPGA 투어 시절 우승 경력이 있는 성학승, 이태우의 경우 전성기가 양대리그 및 팀 단위 리그 정립 이전이라 세대 차이도 나고 2000 온게임넷 왕중왕전, KPGA 투어, GhemTV 스타리그, iTV 랭킹전과 같은 현재는 비공식 리그로 격하된 각종 대회 우승~준우승 기록도 있어 객관적 비교가 어렵다. 99 PKO 우승자인 최진우와 1차 iTV 랭킹전 우승과 2000 프리챌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준우승 경력이 있는 봉준구는 당시 환경상 맵과 상대에 따라서 종족을 바꿔서 플레이하는 선택형 랜덤이 일반적이었던 세대라 더욱 애매하다. [24] 이것은 팀 동료 윤용태도 비슷하다. 역시 육룡의 꼬리이나 그래도 육룡 이외 선수들과는 준우승 1회가 최고 성적인 진영화 정도만 빼면 확연한 클래스 차이가 난다. [25] 다만 이 3김저그가 있기에 이제동의 존재가 더 빛난 점도 있다. 어찌되었든 2인자 저그들의 라인업이였던 만큼 그 위의 1인자가 더 빛나는 것은 당연지사. 이렇게 수많은 강한 경쟁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동이 단독으로 원탑 저그 자리를 오랫동안 독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의 상징성은 크다. [26] 08-09 프로리그 정규시즌+포스트시즌 우승 시 1억 1천만원, 위너스리그 우승 1천만원 [27] 김윤환은 2000년대 중반만 해도 팀플 전담 게이머였고, 김명운은 투명라인이었다. 그나마 김정우만 CJ 신인 트로이카로 주목받았다. [28] 그 이외 드래프트 세대 내에서 개인리그 4강 이상을 찍어본 다른 저그를 살펴봐도 3김과 비견되는 강자로 꼽히던 신동원은 전성기가 브루드 워 말기였고, 한상봉 차명환은 김정우 못지않게 전성기가 짧았던데다 그 짧은 전성기에도 준우승이 한계였다. 조일장, 이영한, 김현우, 어윤수(스1 한정)는 끽해야 4강 1회 찍은 것이 한계인 선수들이었고, 문성진의 경우 드래프트 세대 내에서 4강 1회가 최고 성적인 선수 중 커리어가 가장 떨어지는 데다(4강 1회가 최고 성적인 선수 중 가장 커리어가 낮은 선수로는 양대 본선에 단 한 번만 진출해 4강에 올랐던 박찬문, 김상훈(2000 프리챌), 이근택(2001 코카콜라)도 있지만 워낙 극 초창기 선수라 객관적 비교가 어렵다.) 박씨 쌍둥이와 마찬가지로 승부조작으로 영구제명이 된 터라 사실상 의미가 없다. [29]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20인은 준우승 5회, 4강 5회의 홍진호를 제외하고는 모두 개인리그 우승 경험이 있다. [30] 김윤환은 역대 명전 헌액자들과 조작범들을 제외하고 커리어가 가장 좋은 선수이다. 양대리그만 따지면 헌액자인 박태민과 동률이지만 박태민보다 1회 우승 당시의 임팩트가 떨어지고, 결정적으로 박태민은 WCG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31] 상식적으로 이들 중 명전 헌액자가 나왔으면 3김으로 묶이지 않고 이제동과 같이 엮였을 것이다. 당장 같은 우승 1회임에도 정명훈 이영호와 꼼덴으로 묶이지, 박성균 박지수와 묶이지 않듯이 말이다. [32] 마찬가지로 같은 우승 1회인 서지훈 임요환, 이윤열, 최연성과 함께 4대 테란으로 엮이지, 변길섭, 한동욱과 엮이지 않는다. [33] 임요환, 이윤열, 최연성, 이영호, 홍진호, 조용호, 이제동, 강민, 박정석, 박용욱, 송병구, 허영무. [34] 둘 모두 우승 이후 다시 진출한 양대 리그 4강에서 이영호(vs 김윤환 EVER 2009 4강 3:1, vs 신동원 ABC마트 4강 3:0), 정명훈(vs 김윤환 박카스 2010 4강 3:2, vs 신동원 진에어 2011 4강 3:1)을 만나 패배했다는 공통점이 있다.(4강 1회가 더 많은 김윤환은 하나대투증권 4강에서 이제동을 다시 만나 1:3으로 졌다.) 반대쪽에서 올라오던 선수가 진영화, 이영한(EVER 2009), 윤용태(하나대투증권 2010), 김현우(박카스 2010), 어윤수(진에어 2011)로 꼼덴보다는 한 수 아래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대진운이 없었다는 변명도 가능하지만, 역으로 어째서 이 선수들이 원탑 저그로 올라서지 못했는지를 보여준다. [35] 김정우를 김윤환보다 높게 쳐 줄때 얘기하는 것 중 하나는 이영호를 결승에서 이겼다는 것인데, 한상봉은 그 이영호를 16강에서 2:1로 꺾었다. 그게 아니면 시대의 최강자를 결승에서 이겼다는 건, 4강에서 이제동을 꺾은 것이 있다. [36] 시즌1+시즌2 스타1 [37] 다만 프로리그 커리어로 비교할 경우 신동원은 좀 억울한 면이 있다. 신동원이 빛을 발한건 2010~2011로 스타리그 끝물 시기였기에 출전 기회 자체가 일찍 데뷔한 둘과 비교해 너무 적었다. [38] 와고 기록실엔 131승으로 나와있는데 이는 일부 경기가 누락된 것이다. 김윤환의 현역 스타1 마지막 승리 경기인 vs김명운 네오일렉트릭서킷, 13분부터에서 150승을 기록했다. [39] 이 때 선수진이 지금 보면 무지하게 화려한데, 이신형- 백동준 원투펀치에 백업이 조성호, 김도우, 김성현, 변현제, 신대근이다. 이신형은 37승 19패로 다승 2위이자 2013 WCS Korea Season 1 준우승, 2013 WCS Season 1 Finals 우승, 2013 WCS Korea Season 2 4강의, 이 해 최고의 테란이고, 24승 17패의 백동준도 이 결승전이 있고 며칠 뒤에 2013 WCS Korea Season 3, JOGUNSHOP GSL과 3달 뒤 2013 WCS Season 3 Finals에서 우승할 정도로 강력한 선수였고, 16승 17패의 조성호는 바로 직전 시즌인 2012 SK플래닛 프로리그 시즌2에서 신인왕과 다승왕을 차지했고, 2019년엔 두 번의 GSL에서 준우승을 하고, 15승 9패의 김도우는 시즌 도중 프로토스로 전향하고 12승3패를 기록했으며, 2014년엔 GSL을, 2015년엔 SSL을 우승한다. 8승 10패의 김성현은 스타2로 치러진 첫 번째 스타리그에서 4강에 진출했으며, 8승 8패의 변현제는 프로리그 결승전에서 1세트에 출전해 승리했고, 신대근은 비록 포시에서 전패하긴 했지만 13승 21패로 팀내 다승 5위를 기록했다. [40] 사실 김윤환의 심리전과 판짜기는 아프리카에 와서 '이 정도 까지였나'라는 평이 나올 정도로 특출난 수준인데, 빌드를 먹히고 시작하는 것이 드물 정도로 초반 빌드의 우위를 점하고 시작한다. 그래서 방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기도 했지만 결국엔 대부분 패하면서 방플 논란은 바로 사그라들었다. 이 점을 김윤환도 의식했는지 간혹 게임 시작 직후에 상대의 심리를 예측해서 설명하면서 자신의 빌드를 예고하고 게임하기도 하는데, 정말 상대가 김윤환이 예측한 빌드를 쓰면서 귀신같이 빌드를 먹는다. 물론 그러고 진다. [41] 오버로드가 다 털려서 최대 인구수 한자리 찍기, 희대의 저그맵 배틀로얄에서 완패, 이름없는 아마추어에게 떡실신, 래더 A에게 털리고 래더 1800 테란과 인생경기 등 여러모로 무시무시한 목격담이 많다. 사실 배틀로얄에서의 완패는 상대인 신상문이 현역 시절 못지않게 레이스 운영을 잘 준비해온 점도 있고 김윤환이 급하게 경기를 했기 때문에 맵 파악조차 잘 되지 않았던 점도 있다. 게다가 맵이 원래 레이스나 뮤탈 쓰기가 너무 좋은 맵이기도 하고 (신상문은 현역 시절 똑같이 뮤짤 때문에 저그맵으로 악명이 높았던 비상-드림라이너에서도 일생일대의 천적이였던 이제동을 잡은 바가 있다.) 애시당초 상대편 엔트리를 담당한 전태규가 신상문을 여기 내보낼 때 이런 계산을 다 해서 일부러 노리고 내보냈던 것이다. [42] 현역 말년에도 서서히 피지컬이 하락해 가는 것이 보였는데, 은퇴 이후 방송 복귀까지 거의 스타를 하지 않아 안 그래도 안좋은 피지컬이 완전히 몰락했다는 평이 많다. 개인 방송에서 본인과 팀 동료들의 언급에 따르면 2011-2012년 즈음부터 이미 게임을 거의 놓아버렸다고 한다. 엔트리 예고제 폐지 이후 본인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자 성적이 하락하고, 스타2 전환까지 겹치자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려 결국 코치로 전향하게 되었다고 한다. [43] 그것도 16강에서 김성현, 장윤철, 김민철, 김윤환이라는 죽음의 조를 1위로 뚫고 올라갔다. [44] 그래도 다행히 전역 이후, 제 실력을 찾는데 성공하며 온라인 스폰빵에선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ASL 예선 결승에서 뜬금없이 탈락하는 등 이상하게 오프라인에선 힘을 못 썼다. [45] 해외의 GSL이라고 보면 된다. [46] 최초는 박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