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볼카티우스 툴루스 라틴어: Lucius Volcatius Tull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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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루키우스 볼카티우스 툴루스(아버지) 가이우스 볼카티우스 티우스(형제 또는 사촌)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33년 |
전임 |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피켄스 |
동기 | 옥타비아누스→ 루키우스 아우트로니우스 파이투스 |
후임 |
루키우스 플라비우스 가이우스 폰테이우스 카피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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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기원전 2세기부터 로마 정계에서 활약한 노빌레스 가문인 볼카티우스 씨족의 일원으로, 아버지 루키우스 볼카티우스 툴루스는 기원전 66년 가문 최초로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휘하 레가투스(Legatus: 군단장)였던 가이우스 볼카티우스 툴루스가 그의 형제라는 설이 있으나, 많은 학자들은 그의 형제가 아니라 사촌이라고 추정한다.기원전 46년 도시 법무관에 선임되어 로마에서 활동하던 그는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라는 인물에게 일정 금액을 빌려줬다가 돈을 떼어버린 루키우스 티투스 스트라보의 고발장을 접수한 뒤 갈리아에 있던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를 로마로 소환했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스트라보의 친구였기에, 이 일에 관한 내용을 서신에 적었다. 재판 결과가 어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후 킬리키아 총독에 부임한 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바수스와 시리아 총독 가이우스 안틴스티우스 베투스간의 전쟁에 직면했다. 베투스는 바수스를 아파메이아에 포위하고 공세를 퍼부었지만, 아랍 왕자 알칸도니오스와 파르티아 왕자 파코로스 1세가 바수스를 구원하는 바람에 큰 피해를 입고 퇴각했다. 베투스는 키케로에게 충분한 지원을 제공하지 않은 그를 비난하는 내용의 서신을 보냈다.
기원전 33년 옥타비아누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하지만 옥타비아누스는 취임 첫날에 루키우스 아우트로니우스 파이투스에게 직임을 넘겼다. 그 후 그는 그 해 5월 1일에 가이우스 폰테이우스 카피토에게 직임을 넘겼고, 파이투스 역시 루키우스 플라비우스에게 넘겼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