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7-26 10:23:27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크루스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81818,#E5E5E5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font-size: 0.742em; letter-spacing: -0.35px"
{{{#!wiki style="" <tablewidth=100%><tablealign=center> 라틴어 문구 색상 범례
  • sine collega: 동료 없이 단독 선출
황제 겸 집정관 }}}
기원전 100년 기원전 99년 기원전 98년 기원전 97년 기원전 96년
가이우스 마리우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네포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티투스 디디우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기원전 95년 기원전 94년 기원전 93년 기원전 92년 기원전 91년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코엘리우스 칼두스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마르쿠스 페르페르나 섹스투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기원전 90년 기원전 89년 기원전 88년 기원전 87년 기원전 87년 보결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스트라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포르키우스 카토 퀸투스 폼페이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메룰라
기원전 86년 기원전 86년 보결 기원전 85년 기원전 84년 기원전 83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
가이우스 마리우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기원전 82년 기원전 81년 기원전 80년 기원전 79년 기원전 78년
가이우스 마리우스 마르쿠스 툴리우스 데쿨라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바티아 이사우리쿠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퀸투스 루타티우스 카툴루스
기원전 77년 기원전 76년 기원전 75년 기원전 74년 기원전 73년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루키우스 옥타비우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 루쿨루스
마메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리비아누스 가이우스 스크리보니우스 쿠리오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기원전 72년 기원전 71년 기원전 70년 기원전 69년 기원전 68년
루키우스 겔리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수라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퀸투스 호르텐시우스 호르탈루스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클로디아누스 그나이우스 아우피디우스 오레스테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크레티쿠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렉스
기원전 68년 보결 기원전 67년 기원전 66년 기원전 65년 기원전 65년 보결
세르빌리우스 바티아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마니우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루키우스 볼카티우스 툴루스 푸블리우스 아우트로니우스 파이투스 루키우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기원전 64년 기원전 63년 기원전 62년 기원전 61년 기원전 60년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데키무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마르쿠스 푸피우스 피소 프루기 칼푸르니아누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켈레르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피굴루스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히브리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무레나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니게르 루키우스 아프라니우스
기원전 59년 기원전 58년 기원전 57년 기원전 56년 기원전 55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스핀테르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마르쿠스 칼푸르니우스 비불루스 아울루스 가비니우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네포스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기원전 54년 기원전 53년 기원전 52년 기원전 51년 기원전 50년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파울루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루푸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 스키피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기원전 49년 기원전 48년 기원전 47년 기원전 46년 기원전 45년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퀸투스 푸피우스 칼레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크루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이사우리쿠스 푸블리우스 바티니우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sine collega
기원전 45년 보결 기원전 45년 보결 기원전 44년 기원전 44년 보결 기원전 43년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가이우스 카니니우스 레빌루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가이우스 비비우스 판사 카이트로니아누스
가이우스 트레보니우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아울루스 히르티우스
기원전 43년 보결 기원전 43년 보결 기원전 42년 기원전 41년 기원전 40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푸블리우스 벤티디우스 바수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루키우스 안토니우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퀸투스 페디우스 가이우스 카리나스 루키우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이사우리쿠스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폴리오
기원전 40년 보결 기원전 39년 기원전 39년 보결 기원전 39년 보결 기원전 38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발부스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켄소리누스 가이우스 코케이우스 발부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푸블리우스 카니디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누스 푸블리우스 알페누스 바루스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플라쿠스
기원전 38년 보결 기원전 38년 보결 기원전 37년 기원전 37년 보결 기원전 36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루키우스 겔리우스 포플리콜라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루키우스 카니니우스 갈루스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
기원전 36년 보결 기원전 36년 보결 기원전 35년 기원전 35년 보결 기원전 35년 보결
루키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 루키우스 코르니피키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퀸투스 마르키우스 크리스푸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티투스 페두카이우스
기원전 34년 기원전 34년 보결 기원전 34년 보결 기원전 34년 보결 기원전 33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루키우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 가이우스 멤미우스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피켄스 루키우스 볼카티우스 툴루스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루키우스 아우트로니우스 파이투스 루키우스 플라비우스 마르쿠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루키우스 비니키우스
가이우스 폰테이우스 카피토 퀸투스 라로니우스
기원전 32년 기원전 32년 보결 기원전 31년 기원전 31년 보결 기원전 31년 보결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코르비누스 마르쿠스 티티우스
가이우스 소시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기원전 31년 보결 기원전 30년 기원전 30년 보결 기원전 30년 보결 기원전 30년 보결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루키우스 사이니우스
기원전 29년 기원전 29년 보결 기원전 28년 기원전 27년 기원전 26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섹스투스 아풀레이우스 포티투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기원전 25년 기원전 24년 기원전 23년 기원전 23년 보결 기원전 22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세스티우스 알바니아누스 퀴리날리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아이세르니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플라쿠스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루키우스 아룬티우스
기원전 21년 기원전 20년 기원전 19년 기원전 19년 보결 기원전 18년
마르쿠스 롤리우스 마르쿠스 아풀레이우스 가이우스 센티우스 사투르니누스 마르쿠스 비니키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
퀸투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푸블리우스 실리우스 네르바 sine collega 퀸투스 루크레티우스 베스필로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기원전 17년 기원전 16년 기원전 16년 보결 기원전 15년 기원전 14년
가이우스 푸르니우스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리보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프루기
가이우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루키우스 타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아우구르
기원전 13년 기원전 12년 기원전 12년 보결 기원전 12년 보결 기원전 11년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아피아누스 가이우스 발기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카니니우스 레빌루스 퀸투스 아일리우스 투베로
푸블리우스 퀸크틸리우스 바루스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퀴리니우스 루키우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파울루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기원전 10년 기원전 9년 기원전 8년 기원전 7년 기원전 6년
아프리카누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켄소리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데키무스 라일리우스 발부스
율루스 안토니우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크리스피누스 술피키아누스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갈루스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기원전 5년 기원전 5년 보결 기원전 5년 보결 기원전 4년 기원전 4년 보결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퀸투스 하테리우스 가이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누스 가이우스 카일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루키우스 비니키우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루키우스 파시에누스 루푸스 갈루스 술피키우스
기원전 3년 기원전 2년 기원전 2년 보결 기원전 2년 보결 기원전 2년 보결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ⅩⅢ 가이우스 푸피우스 게미누스 퀸투스 파브리키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메살리누스 마르쿠스 플라우티우스 실바누스 루키우스 카니니우스 갈루스
기원전 1년 기원전 1년 보결 연도 불명
코수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아울루스 플라우티우스 판사 카이트로니아누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아울루스 카이키나 세베루스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8px; padding: 0 6px"
}}}}}}}}}}}}}}}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크루스
라틴어: Lucius Cornelius Lentulus Crus
생몰년도 미상 ~ 기원전 48년
출생지 로마 공화국 로마
사망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이집트
지위 파트리키
국가 로마 공화국
가족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아버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크루스켈리오(아들)
참전 카이사르의 내전
직업 로마 공화국 집정관
로마 공화정 집정관
임기 기원전 49년
전임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파울루스
소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동기 대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후임 율리우스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이사우리쿠스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로마 공화국의 군인, 정치인. 옵티마테스파 인사로, 카이사르의 내전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맞섰지만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패한 뒤 폼페이우스와 함께 이집트로 피신했다가 살해되었다.

2. 생애

고대 로마의 저명한 귀족 가문인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씨족의 일원이지만, 아버지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라는 것 외에는 기원이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동 시대에 활동한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스핀테르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의 아들인데, 일부 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두 사람이 친형제이거나 이복 형제였을 것이라 추정한다.그러나 이를 입증할 증거는 없으며,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스핀테르의 아들이 키케로에 보낸 편지에는 그를 "루키우스 렌툴루스"라고 언급하기만 했던 것을 볼때 가까운 혈연 관계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아그노멘인 크루스(Crus)는 ' 정강이'를 의미한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정한 고위 관직의 나이 제한 규정을 토대로 봤을 때, 그는 기원전 98년생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젊은 시절 퀸투스 세르토리우스와의 세르토리우스 전쟁에 참여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 시기에 하데스의 거주민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발부스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했다. 발부스는 훗날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친구가 되며, 기원전 40년에 집정관이 되었다. 발부스는 한 편지에서 그를 "카이사르 못지 않게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기원전 61년 폰티펙스 막시무스 직책을 역임하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집에서 열린 보나 데아 여신을 기리는 행사에 여장을 하고 잠입하다가 발각된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 풀케르를 고발했다. 남자의 출입이 금지된 행사에 함부로 출입했으니, 유죄 판결이 내려진다면 신성모독 혐의로 사형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카이사르가 클라우디우스 가문과 척지고 싶지 않아서 그를 비호한 덕분에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기원전 58년 법무관을 맡아 호민관 클로디우스의 맹공을 받는 키케로를 지지했다. 그는 집정관 중 한 명인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에게 키케로를 도와달라고 요청했지만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기원전 50년 집정관 후보로 출마했다. 당시엔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와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를 지지했고, 폼페이우스는 그를 지지했다. 선거 결과 그와 폼페이우스의 또다른 지지자인 소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가 집정관으로 선출되었다. 고대 기록에 따르면, 그는 막대한 부채와 권력에 대한 욕망 때문에 내전이 가능한 한 빨리 시작되기를 원했다고 한다. 그는 폼페이우스에게 군사 지휘권을 일임하였고, 기원전 49년 1월 1일 첫 원로원 회의 때 타협을 제안한 카이사르의 편지를 읽는 걸 막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카이사르의 편지를 체택하는 걸 단호히 반대했고, 폼페이우스를 믿고 카이사르를 국가의 적으로 선포하라고 요구했다. 심지어 "만일 원로원이 카이사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카이사르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독자적으로 행동하겠다"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한 의원이 폼페이우스가 카이사르에게서 빼앗아 둔 2개 군단이 로마 인근에 주둔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카이사르가 로마로 귀환할 때 이 군대로 자신의 신변이 위협당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하자, 그는 격분하여 카이사르를 옹호한 의원들에게 맹비난을 퍼붓고, 그들의 신변에 무슨 위협이 있을지 보장하지 못한다고 협박했다. 결국 온건파 의원들은 입을 다물었고, 원로원은 카이사르가 정해진 날짜 이전에 군대를 해산하지 않으면 반역으로 간주하겠다고 결의했다.

이후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군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그는 곧바로 로마를 떠나 남쪽으로 달아났다. 카이사르의 친구였으며 그에게도 고마운 감정을 품고 있었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발부스는 그를 찾아가서 카이사르와의 대결을 그만두고 로마로 돌아오도록 설득했지만, 그는 그러기엔 너무 멀리 가버렸다고 답했다. 그는 캄파니아에서 지원군을 모집하려 했지만, 민심이 생각과는 달리 따라주지 않으면서 병사가 제대로 모이지 않았다. 폼페이우스는 이탈리아에서 카이사르와 싸우길 포기하고, 2월 중순에 그에게 모든 병력을 이끌고 브룬디시움에 오라고 명령했다. 그는 명령에 따랐고, 3월 초 선봉대를 이끌고 디라키움으로 건너갔다. 그해 여름 아시아에서 2개 군단을 추가로 모집한 뒤 그해 말에 에피로스에서 폼페이우스와 합류했다.

파르살루스 전투 전날, 그는 로마를 공략한 후 카이사르의 정원과 퀸투스 호르텐시우스 호르탈루스의 호화로운 집을 자신이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의 하인들의 천막은 승리를 상징하는 담쟁이 덩굴로 덮여 있었다. 전투 당일에는 폼페이우스군의 측면을 지휘했으나 예상과는 달리 참패하고 말았고, 로도스로 도망친 뒤 안티오키아로 향하려 했지만 거절당하자 폼페이우스와 함께 이집트로 망명했다. 그러나 펠루시움에서 폼페이우스와 함께 이집트 관원들을 만났다가 폼페이우스가 살해될 때 체포되었고, 감옥에 끌려간 뒤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명령으로 처형되었다.

아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크루스켈리오는 기원전 38년 보결 집정관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