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03 19:44:28

두불건

진서(晉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color: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제기(帝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사마의 사마사 · 사마소(昭) 사마염
4권 「혜제기(惠帝紀)」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사마충(衷) 사마치 · 사마업 사마예 · 사마소(紹)
7권 「성제강제기(成帝康帝紀)」 8권 「목제애재폐제기(穆帝哀帝廢帝紀)」
사마연(衍) · 사마악 사마담 · 사마비 · 사마혁
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 31·32권 「후비전(后妃傳)」 ||
[ 재기(戴記) ]
||<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width=33%> 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2><width=34%>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width=33%>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
유원해 , 유화 · 유선, 유총 ,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석륵 , 석홍 · 장빈, 석계룡 ,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모용외 , 배억 · 고첨, 모용황 , 모용한 · 양유,
110권 「모용준재기(慕容儁戴記)」 111권 「모용위재기(慕容暐戴記)」
모용준 , 한항 · 이산 · 이적, 모용위 , 모용각 · 양무 · 황보진,
112권 「부홍등재기(苻洪等戴記)」 113 · 114권 「부견재기(苻堅戴記)」 115권 「부비등재기(苻丕等戴記)」
부홍 · 부건 · 부생 , 왕타, 부견 , 왕맹 · 부융 · 부랑, 부비 · 부등 , 삭반 · 서숭,
116권 「요익중등재기(姚弋仲等戴記)」 117 · 118권 「요흥재기(姚興戴記)」 119권 「요홍재기(姚泓戴記)」
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 윤위, 요홍
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800080><tablebgcolor=#800080> ||
}}} ||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杜不愆
생몰연도 불명

동진의 인물. 자는 숙비(叔羆). 양주(揚州) 여강군(廬江郡) 출신.

2. 생애

어렸을 때, 외조부인 곽박으로부터 《 주역》의 점술을 배웠고, 여러 차례 예언을 하여 적중시켰다. 고평(高平) 사람 치초가 스무 살이 넘은 나이에 중병에 걸리자, 두불건을 불러 시험 삼아 그에게 점을 치게 하였는데, 점궤를 본 두불건이 말했다.
"점괘에 따르면, 그대의 고통은 곧 사라질 것입니다. 다만, 동북쪽 30리 거리의 상궁(上宮) 가문의 집으로 가서 그들이 기르는 장끼를 가져와서, 그것을 동쪽 처마 아래에 두어야 합니다. 그 후 9일이 지난 병오일 정오에 까투리가 날아와 짝을 이룰 것이고, 그 후 꿩들이 함께 떠나면 병이 20일 안에 완전히 나을 것입니다. 이는 길한 징조로서 그대는 80세까지 살고, 지위는 사람들 중 최고에 이를 것입니다. 그러나 까투리만 떠나고 장끼만이 남아 있다면, 병은 한 달에 걸쳐 나을 것이나, 나이는 80세의 반쯤 살 것이고, 명예와 지위도 잃을 것입니다."
치초는 당시 매우 쇠약하여 죽음을 눈앞에 둔 상태였으므로, 웃으며 답했다.
"80세의 반만이라도 살 수 있다면 만족하겠소. 병이 한 달 만에 낫는다면 그리 늦는 것도 아니오!"
그리고는 두불건의 점궤를 믿지 않았으나, 어떤 자가 밑져야 본전이라며 두불건의 말을 따르라 설득해 마지못해 장끼를 가져오게 하였다. 병오일이 되었을 때, 치초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남쪽 툇마루 아래에 누워 이를 관찰하였다. 날이 저물 무렵, 과연 까투리가 날아와 장끼와 짝을 이룬 후에 떠났으나, 장끼는 까투리를 따라가지 않았다. 치초가 탄식하며 말했다.
"과연 관중이나 곽박의 예언보다도 뛰어나구나!"
치초의 병은 수년 동안 계속되다가 겨우 나았고, 40세에 중서랑을 지내던 중에 사망하였다.

이후로 두불건의 점괘는 점점 더 불명확해져 그의 예연은 이전처럼 미래의 일을 적중시키지 못하였다. 훗날 그는 임관하여 건위장군 환사(桓嗣)[1]의 참군이 되었다.


[1] 권신 환온의 동생인 환충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