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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스라엘, 남아공의 대외관계에 대한 문서.2. 역사적 관계
지금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지지하는 흑인 정권 때문에 관계가 소원하지만, 소수가 다수의 적대적인 국가로 둘러싸인 시절인 아파르트헤이트 때는 모잠비크와 앙골라를 경영하던 포르투갈 이스타도 노부와 덜 악랄한 백인 정권이었던 로디지아와 국민당 치하 남아공은 국제적 고립 해소와 공산 게릴라 제압을 위해 삼국동맹을 결성, 비슷한 왕따 국가 이스라엘과 대만과 돈독한 외교적 관계를 냉전내내 유지했다. 다만 74년도에 포르투갈이 식민지에서 철수하고, 로디지아도 80년에 짐바브웨로 교체되면서 졸지에 더 고립된 남아공은 대만, 이스라엘, 칠레 등지와 관계가 돈독해졌다.이스라엘은 1961년 UN의 아파르트헤이트 규탄안에 반대표를 던졌지만, 남아공에서는 1956년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반역자로 몰려 재판을 받기도 하는 등 양국간의 갈등도 있었다. # 하지만 동시에 이스라엘 정부는 남아공과 군사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였다.
또한 많은 국가들이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항의로 남아공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하는 와중에도 중화민국과 더불어 외교관계를 유지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의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독립지지와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을 전후하여 상당수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단절했으며,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몇 안되는 아프리카 국가인 남아공은 비밀리에 무기개발 등에 협력하였다. 이 시기에 이스라엘이 남아공의 핵개발에 도움을 줬다는 의혹이 있으며, 같이 핵실험까지 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좀 더 깊게 들어가자면, 이스라엘과 남아공이 처한 외교 안보적 상황이 비슷했고(소수(백인, 유대인)가 다수(흑인, 아랍인) 적대적인 인구와 주변 국가와 국경을 접함), 방대한 지역을 소규모 병력으로 기동 방어해야 했던 점(나미비아를 남서아프리카로 점령하고 있던 남아공과 팔레스타인, 골란고원등을 점령하던 이스라엘)이 비슷해 자연스레 경보병 부대 특유의 소부대 전술과 전군 기계화와 소수의 훈련받은 징집병과 특공 병력의 운용을 요구받았고, 때마침 무기 수급도 77년 이후론 원활하지 않았던 남아공은 기존에 운용하던 프랑스제 잠수함과 초계함이나 미라주 전투기, 알루에트나 쉬페르 플레리온 헬기용 부품이나 유지부속, 탄약이나 미사일을 수입했고, 이스라엘제 갈릴을 백터 R4로 도입했다. 이때 사르-4급 미사일 고속정을 이스라엘로부터 도입했고, 이스라엘제 카피르를 바탕으로 치타 전투기를 개발했다. 또한 구닥다리 센추리온 전차를 이스라엘의 마개조 기술력으로 105mm 포를 올리고, 사통장치를 갈아업는 수준의 개량을 해 올리판트 전차를 만들어냈다. 이스라엘은 남아공 방위군의 소부대 전술, 기계화부대 운용 경험, 남아공제 보병용 군장, MRAP 장갑차 기술등을 전수받았다. 어쨌든 둘도 없는 우방국이었기에 남아공 백인들도 이스라엘로 관광을 많이 왔고, 그 반대의 상황도 흔했다.
어쨌든 좋아던 시절이 다 가고 졸지에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동맹이 된 이스라엘 정부의 국제적 신뢰도는 하락했다. 덕분에 이스라엘 정부는 남아공 흑인들에게 아파르트헤이트를 도왔다는 이유로 단단히 찍혔으며, 아파르트헤이트 폐지 후에 관계가 다소 멀어지기도 했다. 또한 현재까지 남아공의 흑인 정치인들은 이스라엘보다는 팔레스타인에 더 긍정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남아공은 어느정도 친서방적인 모습도 있으니 이스라엘하고도 외교관계를 닫아 두지는 않는다.
아파르트헤이트를 경험한 남아공 국민들은 이스라엘의 군정 치하에 있는 서안지구 팔레스타인인에게 동질, 동정심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현대 남아공 국부인 넬슨 만델라 또한 이스라엘은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라고 비판했고, 이스라엘과 관계는 끊지 않으면서 할말은 하는 수교국 중 하나이다.[1]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일어나자 국제 사법 재판소(ICJ)에 이스라엘을 제노사이드 혐의로 고발했다. 친 팔레스타인측 세력은 크게 환호했고, 이스라엘은 반발했다. # # 결국 국제 사법 재판소는 이스라엘에게 제노사이드를 방지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이스라엘군에 가담한 자국민들에게 국적박탈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